당황해서 말도 안나온다. 감염자라니. 사람들이 그런 우리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말했다.
“저희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세요! 이게 어딜 봐서 감염된 상태라는거죠?”
그 말에 박 중사는 기다렸다는 듯 남자를 턱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몰골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
남자의 특성상 괴물과 완전히 일치 했기 때문에 박 중사의 오해를 산 것이다. 그것을 잘 풀어보려고 준우 아저씨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저기.. 그러니까 이게 말하자면..” “닥치시오! 한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쏘겠소!”
살벌한 그의 태도에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우리들은 이를 악물고 서서히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서서히 그들과 멀어진다. 박 중사는 우리를 유심히 보더니 이내 표정이 일그러져갔다. 괜히 불안해진 마음에 우리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허억..” “흑..”
저 멀리 좁은 길에 꾸물거리며 뭔가가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잊을 수 없는 ‘붉은 색의 물결’이다. 우리들은 망설일 것도 없이 위병소 앞으로 뛰어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 중 한 여자가 박 중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봐요! 이래도 우리가 감염됐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 뒤에 있는 괴물들 좀 보라구요!” “크윽..”
박 중사는 이를 악물고 전방을 계속 주시했다. 그 사태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 하사가 소대원들을 데리고 위병소 바로 앞까지 나가 진열을 가다듬었다. 한명씩 다닥다닥 붙어 일렬로 선 상태에서 가만히 녀석들을 바라본다. 박 중사는 분에 못이겨 몸을 부들부들 떨고는 여자를 거칠게 뿌리쳤다.
“꺄악!”
그 충격에 바닥에 나동그라진 여자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못 이겨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당신들이 전부 이리로 끌고 온거였군!”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박 중사와 그 옆 병사들도 이 하사가 선 대열에 나란히 합류했다. 남은 우리들도 서로 멀뚱히 보다가 점차 가까워지는 녀석들의 소리가 들려오자 머뭇거림 없이 그들 옆에 나란히 섰다.
철컥. 철컥. 철컥.
셀수도 없는 많은 소리들이 오갔다. 군인들은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K-2를 전부 착용하고 있었는데 개개인의 단독군장에는 작은 수류탄이 하나씩 꽂혀져 있었고 탄알집에도 모든 실탄들이 들어 있는지 꽤 두둑해보였다. 일제히 안전핀을 격발로 맞춘 그들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대기했다.
“기다려..”
박중사의 말. 아직 녀석들이 가까워지려면 멀었지만 찰나의 방심이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낮 시간인데도 저 정도의 수가 모여 이곳까지 활보할 정도라면 결론은 하나였다. 그 빌어먹을 우두머리 녀석이다.
“배..고파.. 크으.” “고기.. 고기..”
가래가 잔뜩 끓는 목소리로 말하며 서서히 다가온다. 번뜩이는 붉은 눈은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박 중사는 그 녀석들을 언제까지고 내버려두지 않았다.
“사격!”
두두두두두.
번개와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귀가 금새 멍멍해지며 몸이 슬슬 떨려온다. 수많은 개인화기에서 내뿜는 불꽃들이 거침없이 녀석들의 살갗을 꿰뚫었다.
“끄아아아!” “크아아아!” “사.. 살려..”
엄청난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녀석들. 그 와중에도 배고픔을 못이겨 쓰러진 동료들의 고기를 뜯어먹는 놈들도 있었고 괴물로 변신해 우리에게 다가오려는 녀석들도 있었다.
두두두두.
그러나 우리들의 총에는 자비가 없었다. 그렇게 5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거리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박 중사는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에 맞춰 모두가 탄알집을 분리했다. 익숙하지 않는 화약 냄새가 후각을 강하게 찔렀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부아아앙.
엄청난 바퀴소리와 함께 위병소 뒤쪽에서 레토나 한 대가 빠르게 다가오는게 보인다. 엄청난 소음의 총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대로 우리를 박을 기세로 빠르게 다가온 레토나는 사람들 바로 앞에 칼같이 맞춰서 멈췄다. 선탑자석이 열리며 베레모를 쓴 나이가 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내렸다. 계급을 보니 중령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중령에게 박 중사는 경직된 얼굴로 한발 나아가 경례를 했다.
“충성!”
박 중사의 경례를 대충 받아준 중령이 앞에 깔린 수많은 시체들을 보며 말했다.
“습격인가?” “....”
박 중사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중령도 그것을 다그치지 않았다. 묘한 대치 상태가 이어지자 이 하사가 조심스럽게 나서며 말했다.
“대대장님.. 그게 저 사람들이 괴물들을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이 하사의 말에 대대장은 우리를 가만히 훑어 보았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매우 딱딱한 얼굴이었다. 대대장은 고개를 돌려 박 중사에게 다가가 자조적인 미소를 띄며 물었다. 상당히 빠르게 변하는 표정변화다.
“저번처럼 그런 상황인건가?” “....” “지휘관 말에 그렇게 침묵으로 대답하게 되어있나?” “....”
상황이 점차 안좋게 흘러가는 것을 눈치챈 이 하사는 박 중사를 옆으로 밀어내며 대대장에게 말했다.
“대대장님 그게 아닙니다. 박 중사가 단지 오해를 한 것..”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 하사의 얼굴이 크게 돌아갔다. 일말의 신음성도 흘리지 않은 이 하사는 그대로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모든 군인들도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익숙하지 않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은 그저 멀뚱멀뚱하게 서서 대대장과 박 중사의 상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게 군인의 철칙 아니었나!”
쩌렁쩌렁한 대대장의 목소리에 모두가 움츠려들었다. 그러나 박 중사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저런 인간들을 지키려다가 대대장님 아들과 제 아들이 그렇게 개처럼 죽어나간 겁니까?” “박 중사!” “말해보십시오! 저런 인간들이 과연 피 같은 자식들을 희생시켜가며 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겁니까!”
짧은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역시 본인들의 입을 통해 들어아먄 할 것 같았다. 처음 무표정을 유지하던 박 중사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건 대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 난 것처럼 아무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위계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라고는 하지만 중령과 중사의 관계는 엄연한 지켜야할 선이 있고 따라야하는 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둘의 모습은 그런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어 보인다.
“자네처럼 그렇게 과거에 연연하니 미래에 대비를 못하는거야.” “....”
대대장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레토나 선탑자석으로 향했다. 우리들은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대대장은 선탑자석 문을 열며 이 하사에게 말했다.
“잘 모시도록 해.” “충성!”
이 하사는 대대장에게 경례를 하고서 주변을 슬슬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우웅.
레토나의 시동이 걸리며 처음과 같이 빠른 속도로 위병소 뒤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박 중사는 신경질적으로 위병소 철문을 강하게 발로 차버리고는 레토나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렸다. 이 하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아저씨에게 다가와 말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처음 저 남자를 보고 너무 놀라 단번에 믿어버렸습니다.” “아.. 아닙니다.” “정리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끝나는대로 막사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지요.”
우리들은 이 하사와 남은 군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물론 길에 무수히 널린 괴물들의 시체 운반작업이었다. 비위가 약한 여자들은 위병소 뒤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게 했고 남은 남자들은 괴물들의 시체를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녀석들의 거친 털들과 단단한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감촉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걸 다 어디로 옮기는겁니까?”
아저씨 말에 이 하사는 힘들게 괴물의 시체를 옮기며 말했다.
“5톤 차에 모조리 싣고 최대한 멀리 있는 곳에 아무렇게나 버립니다. 하지만 낮에 이정도의 수가 공격을 해온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럽습니다.” “그렇군요..”
그게 하나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이들은 모르고 있는걸까. 아무튼 우리는 무사히 쉴 곳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마음도 필요하다. 아직 그 사실을 알려서는 안될 것 같다. 20마리.. 30마리가 넘어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하사는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군인 셋을 따로 불러 뭐라고 말했다. 곧 고개를 끄덕인 군인들은 위병소 뒤편으로 뛰어갔다.
“어딜 가는겁니까?” “포크레인하고 차를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작에 부를걸..”
이 하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볼에 생긴 새빨간 손자국이 유독 크게 보였다. 많이 아팠을텐데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은 이 하사가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대대장에게 맞은 충격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나자 꽤 커다란 규모의 포크레인과 5톤 트럭이 위병소 밖을 나왔다.
지이잉.
서서히 움직이는 포크레인과 트럭. 그 뒤로는 작업이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1시간도 안되어 끝나자 이 하사는 포크레인을 다시 보내고 두 명의 군인을 따로 선출해 트럭 옆에 타게 한 후에 출발을 시켰다.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부대와 점점 멀어져가는 트럭.
부우웅.
서서히 멀어져가는 트럭. 녀석들의 시체를 치우긴 했지만 남은 핏물들은 어쩌지 못했다. 일렬로 된 흙길이 온통 붉은 색으로 염색이라도 된 것처럼 변해 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우리들은 어느새 까맣게 된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붉은 피에 손이 염색이라도 된 것 같았다. 끈적거리는 이 느낌..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고생했습니다. 들어가시죠.”
이 하사는 앞으로 서며 우리들을 안내했다.
“우웩!”
그렇게 걷는 도중 봉수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먹은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젊은 남자 둘도 구토를 해댔다. 이 하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세 사람을 보고 말했다.
“적응하기 힘드실테지만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제서야 주위를 가득 매운 비릿한 피 냄새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해져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 화약 특유의 냄새까지 섞여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분명 구토를 유발하는 냄새가 분명했다. 더군다나 세 사람은 시체를 직접 만지고 운반했었다. 그 과정에서 참고 참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올라온 것이다.
“허억.. 허억.”
간신히 진정을 한 세 사람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도 다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허옇게 남은 위액들을 대충 흙으로 덮어 버리고는 뒤를 따랐다. 천천히 위병소 뒤쪽으로 가자 앉아 있던 해인이와 어머니가 봉수 아저씨의 몰골을 보고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괜찮아..”
그렇게 말한 봉수 아저씨는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젊은 여자가 따라갔고 멍하니 서있는 은혜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준우 아저씨가 얼른 뛰어가 손을 잡고 데려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레토나가 갔던 바퀴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막사로 보이는 건물이 한 눈에 쏙 들어왔다. 곳곳에 세워진 레토나 여러대와 앰블런스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아저씨가 이 하사에게 물었다. 이 하사는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꽤 된일.. 이라고 해야 하나요?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시작하기 전날.. 각 부대에 비상소집령이 내려졌었습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부대에 최소 운영 인원들만 제외하고는 모든 병력을 최전방으로 투입시켰습니다. 그런데..” “..연락이 없군요?” “예.. 처음에는 잘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뚝 하고 끊겼습니다. 그 뒤로 그 많은 병력들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 현재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는 북한과의 전쟁인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을 먹이로 인식하고 돌아다니는 괴물놈들을 말하는것일까. 중요한것은 그들과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것이고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분명 예삿일이 아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게 틀림 없다. 분명.. 뭔가가 있다.
[펌]밖.에.나.가.지.마.시.오 (63화)
[김모리] 님이 도와주셥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 아니.”
당황해서 말도 안나온다. 감염자라니. 사람들이 그런 우리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말했다.
“저희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세요! 이게 어딜 봐서 감염된 상태라는거죠?”
그 말에 박 중사는 기다렸다는 듯 남자를 턱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몰골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
남자의 특성상 괴물과 완전히 일치 했기 때문에 박 중사의 오해를 산 것이다. 그것을 잘 풀어보려고 준우 아저씨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저기.. 그러니까 이게 말하자면..”
“닥치시오! 한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쏘겠소!”
살벌한 그의 태도에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우리들은 이를 악물고 서서히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서서히 그들과 멀어진다. 박 중사는 우리를 유심히 보더니 이내 표정이 일그러져갔다. 괜히 불안해진 마음에 우리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허억..”
“흑..”
저 멀리 좁은 길에 꾸물거리며 뭔가가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잊을 수 없는 ‘붉은 색의 물결’이다. 우리들은 망설일 것도 없이 위병소 앞으로 뛰어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 중 한 여자가 박 중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봐요! 이래도 우리가 감염됐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 뒤에 있는 괴물들 좀 보라구요!”
“크윽..”
박 중사는 이를 악물고 전방을 계속 주시했다. 그 사태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 하사가 소대원들을 데리고 위병소 바로 앞까지 나가 진열을 가다듬었다. 한명씩 다닥다닥 붙어 일렬로 선 상태에서 가만히 녀석들을 바라본다. 박 중사는 분에 못이겨 몸을 부들부들 떨고는 여자를 거칠게 뿌리쳤다.
“꺄악!”
그 충격에 바닥에 나동그라진 여자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못 이겨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당신들이 전부 이리로 끌고 온거였군!”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박 중사와 그 옆 병사들도 이 하사가 선 대열에 나란히 합류했다. 남은 우리들도 서로 멀뚱히 보다가 점차 가까워지는 녀석들의 소리가 들려오자 머뭇거림 없이 그들 옆에 나란히 섰다.
철컥. 철컥. 철컥.
셀수도 없는 많은 소리들이 오갔다. 군인들은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K-2를 전부 착용하고 있었는데 개개인의 단독군장에는 작은 수류탄이 하나씩 꽂혀져 있었고 탄알집에도 모든 실탄들이 들어 있는지 꽤 두둑해보였다. 일제히 안전핀을 격발로 맞춘 그들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대기했다.
“기다려..”
박중사의 말. 아직 녀석들이 가까워지려면 멀었지만 찰나의 방심이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낮 시간인데도 저 정도의 수가 모여 이곳까지 활보할 정도라면 결론은 하나였다. 그 빌어먹을 우두머리 녀석이다.
“배..고파.. 크으.”
“고기.. 고기..”
가래가 잔뜩 끓는 목소리로 말하며 서서히 다가온다. 번뜩이는 붉은 눈은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박 중사는 그 녀석들을 언제까지고 내버려두지 않았다.
“사격!”
두두두두두.
번개와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귀가 금새 멍멍해지며 몸이 슬슬 떨려온다. 수많은 개인화기에서 내뿜는 불꽃들이 거침없이 녀석들의 살갗을 꿰뚫었다.
“끄아아아!”
“크아아아!”
“사.. 살려..”
엄청난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녀석들. 그 와중에도 배고픔을 못이겨 쓰러진 동료들의 고기를 뜯어먹는 놈들도 있었고 괴물로 변신해 우리에게 다가오려는 녀석들도 있었다.
두두두두.
그러나 우리들의 총에는 자비가 없었다. 그렇게 5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거리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박 중사는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에 맞춰 모두가 탄알집을 분리했다. 익숙하지 않는 화약 냄새가 후각을 강하게 찔렀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부아아앙.
엄청난 바퀴소리와 함께 위병소 뒤쪽에서 레토나 한 대가 빠르게 다가오는게 보인다. 엄청난 소음의 총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대로 우리를 박을 기세로 빠르게 다가온 레토나는 사람들 바로 앞에 칼같이 맞춰서 멈췄다. 선탑자석이 열리며 베레모를 쓴 나이가 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내렸다. 계급을 보니 중령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중령에게 박 중사는 경직된 얼굴로 한발 나아가 경례를 했다.
“충성!”
박 중사의 경례를 대충 받아준 중령이 앞에 깔린 수많은 시체들을 보며 말했다.
“습격인가?”
“....”
박 중사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중령도 그것을 다그치지 않았다. 묘한 대치 상태가 이어지자 이 하사가 조심스럽게 나서며 말했다.
“대대장님.. 그게 저 사람들이 괴물들을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이 하사의 말에 대대장은 우리를 가만히 훑어 보았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매우 딱딱한 얼굴이었다. 대대장은 고개를 돌려 박 중사에게 다가가 자조적인 미소를 띄며 물었다. 상당히 빠르게 변하는 표정변화다.
“저번처럼 그런 상황인건가?”
“....”
“지휘관 말에 그렇게 침묵으로 대답하게 되어있나?”
“....”
상황이 점차 안좋게 흘러가는 것을 눈치챈 이 하사는 박 중사를 옆으로 밀어내며 대대장에게 말했다.
“대대장님 그게 아닙니다. 박 중사가 단지 오해를 한 것..”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 하사의 얼굴이 크게 돌아갔다. 일말의 신음성도 흘리지 않은 이 하사는 그대로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모든 군인들도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익숙하지 않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은 그저 멀뚱멀뚱하게 서서 대대장과 박 중사의 상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게 군인의 철칙 아니었나!”
쩌렁쩌렁한 대대장의 목소리에 모두가 움츠려들었다. 그러나 박 중사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저런 인간들을 지키려다가 대대장님 아들과 제 아들이 그렇게 개처럼 죽어나간 겁니까?”
“박 중사!”
“말해보십시오! 저런 인간들이 과연 피 같은 자식들을 희생시켜가며 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겁니까!”
짧은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역시 본인들의 입을 통해 들어아먄 할 것 같았다. 처음 무표정을 유지하던 박 중사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건 대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 난 것처럼 아무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위계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라고는 하지만 중령과 중사의 관계는 엄연한 지켜야할 선이 있고 따라야하는 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둘의 모습은 그런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어 보인다.
“자네처럼 그렇게 과거에 연연하니 미래에 대비를 못하는거야.”
“....”
대대장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레토나 선탑자석으로 향했다. 우리들은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대대장은 선탑자석 문을 열며 이 하사에게 말했다.
“잘 모시도록 해.”
“충성!”
이 하사는 대대장에게 경례를 하고서 주변을 슬슬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우웅.
레토나의 시동이 걸리며 처음과 같이 빠른 속도로 위병소 뒤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박 중사는 신경질적으로 위병소 철문을 강하게 발로 차버리고는 레토나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렸다. 이 하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아저씨에게 다가와 말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처음 저 남자를 보고 너무 놀라 단번에 믿어버렸습니다.”
“아.. 아닙니다.”
“정리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끝나는대로 막사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지요.”
우리들은 이 하사와 남은 군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물론 길에 무수히 널린 괴물들의 시체 운반작업이었다. 비위가 약한 여자들은 위병소 뒤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게 했고 남은 남자들은 괴물들의 시체를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녀석들의 거친 털들과 단단한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감촉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걸 다 어디로 옮기는겁니까?”
아저씨 말에 이 하사는 힘들게 괴물의 시체를 옮기며 말했다.
“5톤 차에 모조리 싣고 최대한 멀리 있는 곳에 아무렇게나 버립니다. 하지만 낮에 이정도의 수가 공격을 해온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럽습니다.”
“그렇군요..”
그게 하나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이들은 모르고 있는걸까. 아무튼 우리는 무사히 쉴 곳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마음도 필요하다. 아직 그 사실을 알려서는 안될 것 같다. 20마리.. 30마리가 넘어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하사는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군인 셋을 따로 불러 뭐라고 말했다. 곧 고개를 끄덕인 군인들은 위병소 뒤편으로 뛰어갔다.
“어딜 가는겁니까?”
“포크레인하고 차를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작에 부를걸..”
이 하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볼에 생긴 새빨간 손자국이 유독 크게 보였다. 많이 아팠을텐데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은 이 하사가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대대장에게 맞은 충격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나자 꽤 커다란 규모의 포크레인과 5톤 트럭이 위병소 밖을 나왔다.
지이잉.
서서히 움직이는 포크레인과 트럭. 그 뒤로는 작업이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1시간도 안되어 끝나자 이 하사는 포크레인을 다시 보내고 두 명의 군인을 따로 선출해 트럭 옆에 타게 한 후에 출발을 시켰다.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부대와 점점 멀어져가는 트럭.
부우웅.
서서히 멀어져가는 트럭. 녀석들의 시체를 치우긴 했지만 남은 핏물들은 어쩌지 못했다. 일렬로 된 흙길이 온통 붉은 색으로 염색이라도 된 것처럼 변해 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우리들은 어느새 까맣게 된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붉은 피에 손이 염색이라도 된 것 같았다. 끈적거리는 이 느낌..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고생했습니다. 들어가시죠.”
이 하사는 앞으로 서며 우리들을 안내했다.
“우웩!”
그렇게 걷는 도중 봉수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먹은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젊은 남자 둘도 구토를 해댔다. 이 하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세 사람을 보고 말했다.
“적응하기 힘드실테지만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제서야 주위를 가득 매운 비릿한 피 냄새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해져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 화약 특유의 냄새까지 섞여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분명 구토를 유발하는 냄새가 분명했다. 더군다나 세 사람은 시체를 직접 만지고 운반했었다. 그 과정에서 참고 참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올라온 것이다.
“허억.. 허억.”
간신히 진정을 한 세 사람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도 다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준우 아저씨와 동생은 허옇게 남은 위액들을 대충 흙으로 덮어 버리고는 뒤를 따랐다. 천천히 위병소 뒤쪽으로 가자 앉아 있던 해인이와 어머니가 봉수 아저씨의 몰골을 보고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괜찮아..”
그렇게 말한 봉수 아저씨는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젊은 여자가 따라갔고 멍하니 서있는 은혜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준우 아저씨가 얼른 뛰어가 손을 잡고 데려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레토나가 갔던 바퀴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막사로 보이는 건물이 한 눈에 쏙 들어왔다. 곳곳에 세워진 레토나 여러대와 앰블런스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아저씨가 이 하사에게 물었다. 이 하사는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꽤 된일.. 이라고 해야 하나요?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시작하기 전날.. 각 부대에 비상소집령이 내려졌었습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부대에 최소 운영 인원들만 제외하고는 모든 병력을 최전방으로 투입시켰습니다. 그런데..”
“..연락이 없군요?”
“예.. 처음에는 잘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뚝 하고 끊겼습니다. 그 뒤로 그 많은 병력들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 현재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는 북한과의 전쟁인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을 먹이로 인식하고 돌아다니는 괴물놈들을 말하는것일까. 중요한것은 그들과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것이고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분명 예삿일이 아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게 틀림 없다. 분명.. 뭔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