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조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스티븐 레빗이 지은, Freakonomics를 봤을것이다.
거기에 보면, 범죄율 상승은 바로 낙태금지법의 발효가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다고 써있다.
계량경제학적 데이터이기 때문에 결코 쉽게 뒤집을 수 없는 논리로써.
(한국이 낙태율이 아무리 높게 집계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낙태는 불법이며, 특히 요즘과 같은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는쪽보다 지우는 쪽으로 많이들 선택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죠.)
그리고 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범죄가 늘어났다는 말이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이라고 여겨질만큼 나쁜 환경에서 태어난 그들이
사실은 축복받으면서 태어났다고 여겨질만한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이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원치않는 임신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서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게 수치적으로 입증된 설명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아이들이 낙태로 없어졌어야 했다는게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모든 아이들이 이러한 열등한 상태로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쓸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낙태금지법이 발효되었고 이와 다르지 않다.
조폭과의 전쟁으로 치안이 좋은 나라로 명성이 자자했던 나라이지만,
급격한 범죄율 증가와 맞딱뜨리고 있다.
내가 진짜 이야기 하고 싶은건, 낙태와 범죄율이 관련이 있다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다.
우리는 결국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각 개인이 노력한다고 다 되는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때로는 인정해야 할 수 밖에 없다고.
자리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 모두에게 노력만큼의 자리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둘은 논리적으로 다른 문장이다.
그 사람이 비관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고 싶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비관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여야 하거나, 더 나아가 영원히 비관적일수밖에 없을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붙잡아 줄 수 있고, 일으켜 세워줄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고 힘을 얻고, 완전히 삶의 방향을 뒤바꿀수도 있다.
혹자는 이렇게 비웃을 수도 있다. 힘든척, 쎈척하면서 서로 위로하는 집단이냐고.
확실히 주장한다. 이런 속깊은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는 건 결코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
중독학 전공이니 전공을 살려서,
알콜 중독자 집단의 모임의 약자인 AA는, 자신의 알콜 중독과 그것을 헤쳐나가는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공유하는 집단인데, 이 집단의 상호 치료효과는, 그 어떤 정신과 치료나 심리치료와 비교해서 꿇리지 않는 치료효과를 지녔다고들 이야기 한다.
무엇을 뜻하는가? 정해지고 짜여진 정답은 물론 중요하다. 그리고 분명히 효과도 있다. 그러나 그 효과가 모든 것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중독자라면, 정신과 치료도 받고 중독자 집단에 함께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알콜중독자와 다른가? 우린 살면서 수많은 것들에 이미 중독되어 살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는 우리를 서로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곳에 와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지금 현재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하고, 어루만지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완전히 동일하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학에 조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스티븐 레빗이 지은, Freakonomics를 봤을것이다.
거기에 보면, 범죄율 상승은 바로 낙태금지법의 발효가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다고 써있다.
계량경제학적 데이터이기 때문에 결코 쉽게 뒤집을 수 없는 논리로써.
(한국이 낙태율이 아무리 높게 집계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낙태는 불법이며, 특히 요즘과 같은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는쪽보다 지우는 쪽으로 많이들 선택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죠.)
그리고 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범죄가 늘어났다는 말이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이라고 여겨질만큼 나쁜 환경에서 태어난 그들이
사실은 축복받으면서 태어났다고 여겨질만한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이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원치않는 임신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서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게 수치적으로 입증된 설명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아이들이 낙태로 없어졌어야 했다는게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모든 아이들이 이러한 열등한 상태로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쓸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낙태금지법이 발효되었고 이와 다르지 않다.
조폭과의 전쟁으로 치안이 좋은 나라로 명성이 자자했던 나라이지만,
급격한 범죄율 증가와 맞딱뜨리고 있다.
내가 진짜 이야기 하고 싶은건, 낙태와 범죄율이 관련이 있다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다.
우리는 결국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각 개인이 노력한다고 다 되는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때로는 인정해야 할 수 밖에 없다고.
자리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 모두에게 노력만큼의 자리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둘은 논리적으로 다른 문장이다.
그 사람이 비관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고 싶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비관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여야 하거나, 더 나아가 영원히 비관적일수밖에 없을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붙잡아 줄 수 있고, 일으켜 세워줄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고 힘을 얻고, 완전히 삶의 방향을 뒤바꿀수도 있다.
혹자는 이렇게 비웃을 수도 있다. 힘든척, 쎈척하면서 서로 위로하는 집단이냐고.
확실히 주장한다. 이런 속깊은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는 건 결코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
중독학 전공이니 전공을 살려서,
알콜 중독자 집단의 모임의 약자인 AA는, 자신의 알콜 중독과 그것을 헤쳐나가는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공유하는 집단인데, 이 집단의 상호 치료효과는, 그 어떤 정신과 치료나 심리치료와 비교해서 꿇리지 않는 치료효과를 지녔다고들 이야기 한다.
무엇을 뜻하는가? 정해지고 짜여진 정답은 물론 중요하다. 그리고 분명히 효과도 있다. 그러나 그 효과가 모든 것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중독자라면, 정신과 치료도 받고 중독자 집단에 함께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알콜중독자와 다른가? 우린 살면서 수많은 것들에 이미 중독되어 살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는 우리를 서로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곳에 와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지금 현재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하고, 어루만지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완전히 동일하다.
다른 수준낮은 판들과는 다르게.
그것이 남속판의 존재 이유이며, 그것이 우리가 여기에다 글을 적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