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밖.에.나.가.지.마.시.오 (64화)

레몬굿201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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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대학 ID: 삶이무의미함 님의글을 퍼온것입니다~

  [김모리]님이 도와주셨슴돠. 그리고 삽화 그려주실분 구하고 있으니까 저에게 쪽지나 ssi200@naver.com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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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 내부는 내가 생활하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층에는 좌우로 봉쇄된 입구가 보였는데 중앙 통로만 이용하는 것 같았다.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주욱 좌우로 뻗은 통로를 보니 제각각 푯말들이 붙어 있다. P.X나 기타 행정부서들 그리고 지휘통제실이 있었다. 걸리적거리는 물건들을 전부 치웠는지 1층 내부가 휑했다.

“일단 쉬는게 우선일 것 같군요. 2층으로 올라가셔서 아무 생활관을 쓰시면 됩니다. 보급품은.. 김 상병!”

이 하사에 말에 소총을 점검하던 김 상병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하사는 김 상병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사람들 좀 부탁해.”
“예. 따라오시죠.”

김 상병은 계단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하사는 다른 소대원들을 이끌고 지휘통제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갔다. 저벅. 저벅. 문득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서 느낀건데 모든 창문이란 창문을 다 검은 색으로 막아 놓은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김 상병에게 물었다.

“창문들은.. 왜 다 막아 놓은거죠?”
“아.. 별로 좋은 광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병사들 사기도 있고 해서..”

김 상병은 그렇게 대답을 회피해버렸다. 뭐, 상관없다. 일단은 이 지독한 피로를 떨쳐내고 싶었고 시큼하게 나는 땀냄새를 지우고 싶었다. 2층으로 올라와 김 상병은 곧장 왼쪽으로 꺾었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니 철문으로 굳게 봉쇄되어 있었고 3층으로 올라가는 통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왼쪽에 있는 행정실과 전방으로 주욱 위치한 생활관의 푯말들이었다. 그 옆으로 샤워실, 세면장, 세탁실이 있었다.

“우와..”

군대 시설을 처음 와보는 여자들은 나지막한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중에서 가장 활발한 것은 단연 은혜였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곳저곳을 누비기 시작하는 은혜. 나는 김 상병에게 양해의 말을 해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저 친구가 정신지체아라서요.”
“괜찮습니다. 이쪽 생활관에서 보급품들을 쓰시면 되고 아무데서나 쉬시면 됩니다. 그럼..”

그렇게 말한 김 상병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고요한 2층 내부에는 은혜가 뛰어다니는 발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치이잉. 철컹.

그 때 행정부 안에서 쇠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한 사람이 우리를 보고는 놀란 기색을 했다. 군복 상의 카라의 계급을 보니 중위였다. 그는 곧 옅게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생존자들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본의 아니게 신세좀 지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인걸요. 푹 쉬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한 중위는 이곳저곳에 널린 서류더미들을 들추기 시작했다. 상당히 바쁘게 움직이는걸로 보아 우리가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서둘러 김 상병에 말한 보급품이 있는 생활관으로 들어가 각종 속옷류들이나 수건 군복들을 챙겼다. 이런 일에 익숙치 않은 여자들에게는 우리가 세세히 알려줘야만 했다.

“해인아. 은혜도 좀 챙겨줄래?”

준우 아저씨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형도 거의 비슷해서 얼추 고르면 맞을 것 같았다. 품 안에 가득 보급품을 안고서 아저씨들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 거지꼴을 면해야 하니까.. 씻도록 합시다. 여자분들께서 먼저 샤워실에서 들어가시고 남은 우리들은 바로 옆 생활관에서 정리하도록 하자구.”

저마다 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기 때문일까.. 그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인이는 저 멀리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뛰어다니는 은혜의 손을 잡고 샤워실로 들어가버렸다. 남은 우리들은 바로 옆 생활관으로 들어가 가져온 보급품들을 비어 있는 침대 위에 대충 올려 놓고 각자 배정된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물론 은혜를 끝까지 따라가려는 남자를 강제적으로 잡아둬야만 했다.

“흐아아아.”

몸이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기지개를 크게 펴고 한숨을 크게 내쉰다. 하얀 백색의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모포에서 나는 텁텁한 냄새가 왜 이렇게 향기롭게 느껴지는 것일까.

“일단 여기까지 오는데 성공했어..”

그렇게 중얼거린 준우 아저씨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 뒤에 우리들이 할 일들은..? 소총과 실탄을 챙기고 다시 부산으로 떠나야하는 것인가. 아직도 유람선을 운영하고 있을까. 우리가 갔을 때 이미 늦어버리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때 아저씨가 몸을 반만 일으켜 두 남자와 봉수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우린 여길 떠날겁니다. 당신들은 어쩌겠소?”

그 말을 들은 세 사람은 서로를 멀뚱멀뚱 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중 봉수 아저씨가 대표로 말했다.

“여기 남겠습니다. 어딜 가시려고 그러는겁니까?”
“부산에 제주도로 운행하는 유람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여기가 더 안전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우리와 같이 있는게..”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정한일입니다.”

봉수 아저씨는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곧 여러분들과 헤어지게 되겠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받았던 은혜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저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세 남자의 말을 들으니 왠지 가슴이 울적해진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걸까. 아빠가 말한 것들은 전부 사실인걸까. 그리고 아빠의 정체는 대체 뭐지..? 어떻게 그날 아무런 제재 없이 녀석들을 뚫고 온 것일까.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머리가 지끈거린다.

“후우.”

의문의 꼬리를 잡으면 잡을수록 주욱 늘어나 아무것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저..”

20분 정도 지났을까.. 해인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촉촉이 젖은 머릿결과 발그레하게 생기된 볼. 샤워를 마친 것 같았다. 손을 완전히 덮어버린 소매를 보아하니 군복이 너무 큰 것 같았다. 우리들은 몸을 일으켜 따로 두었던 보급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응. 알았어.”

내 말에 해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 생활관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작고 폭이 좁은 발소리가 그 증거다. 채비를 마친 우리들도 생활관에서 나와 샤워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어설프게 군복을 차려 입은 여자들이 낑낑대며 군화를 신고 있었다. 버스에 있던 등산복을 챙겨올 걸 그랬나.. 하긴 그 땐 그럴 겨를조차 없었으니까..

철컥.

샤워실 문을 열자 사우나 특유의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매일 화약과 피비릿내를 맡은 우리들에게는 향수나 다름 없었다. 훌렁훌렁 대충 옷을 벗고 샤워실 안으로 들어간다. 샴푸와 바디린스 비누 칫솔 치약 등 많은 도구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공기가 후덥지근한 것을 보니 뜨거운 물이 나오는 듯 싶었다. 아, 지금 밟고 있는 물들이 미지근한 것을 보아하니 확실하게 나오는 것 같다.

쏴아아.

샤워기를 틀자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물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온 몸을 가볍게 두드리는 수압에 기분이 좋아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대로 물을 받아들인다. 온 몸에 찌든 때가 한 번에 사라지는 느낌이다. 근처에 있는 샴푸를 짜내 머리를 벅벅 긁어낸다. 기름기가 좌악 빠지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다. 어느 정도 거품을 낸 후에 물로 그것들을 씻어 낸다.

“푸하.”

머리가 한결 개운해진 것 같다. 이어 비누로 세수를 하고.. 타월로 바디 샴푸로 거품을 내 온 몸 구석구석을 닦아 낸다. 검고 붉은 핏물들이 샤워실 바닥에 스멀스멀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배수구 쪽으로 쭈욱 빠진다. 마치 우리들이 저지른 살생의 흔적이라도 되는 것 같아서 마음 한켠이 씁쓸해진다.

벅. 벅.

이제 자주 씻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구석구석 닦아내고 물을 오랫동안 몸을 씻어냈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우리들은 차례차례 샤워실에서 나와 따로 두었던 수건으로 물기들을 쫘악 흡수하고 보급품들을 입기 시작했다.

“오, 이제 보니 신형이네 이거?”

준우 아저씨가 신형 전투복을 이리저리 훑어 보며 씨익 웃었다. 나 때에도 저런 전투복은 아니었는데 참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적당히 군복을 차려 입은 다음 군화를 신기 시작한다. 예전 신었었던 무거운 구형 군화가 아니었다. 상당히 가벼워서 활동하기가 편해보였다.

“아, 개운하다. 정말.”

제일 먼저 옷을 차려입은 동생이 그 말을 하고 샤워실 밖으로 나갔다. 휑. 차가운 바람이 샤워실 틈으로 들어온다. 볼에 닿은 차가운 한기가 나쁘지 않다. 모두 군복을 차려입은 우리들은 밖으로 나가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직 익숙치 않은 군복과 군화 때문에 쩔쩔매는 여자들을 도와주고 저마다 남은 침대에 앉았다.

“씻고 나니 정말 몰라보겠군요.”

아저씨의 농담 섞인 말에 사람들은 옅게 웃기만 했다. 아저씨는 몇 번 헛기침을 하고서 여자들을 보며 말했다.

“우린 곧 떠날겁니다. 여기 남자분들은 여기에 남는다고 했어요. 여러분들 생각을 듣고 싶군요.”

아저씨 말에 여자들은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인이 어머니가 그 중 대표로 말했다.

“우리도 여기에 남겠어요.”
“그렇군요.”

사람들은 드디어 ‘쉴 곳이 생겼다.’라는 사실 때문인지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만히 있던 해인이가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은혜 언니도 데려가시나요?”

짧은 기간이지만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지 해인이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뭍어났다.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해인이는 우울한 얼굴로 은혜의 손을 잡았다. 곧 해인이의 손을 뿌리친 은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성한 걸음으로 생활관 밖을 나갔다. 주위를 더 둘러보고 싶기 때문이다.

“발이 너무 작아서 걷는데 불편하겠군..”

은혜의 걸음을 보며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군화가 다른 운동화보다 튼튼하게 오래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당분간은 은혜에게 다른 것을 신게 하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러자 우리 옆에 있던 남자도 바로 은혜를 따라 나섰다. 이상적인 체격을 갖춘 남자라 그런지 군복이 상당히 잘 어울렸다. 단지 저 검은 피부와 붉은 눈을 제외한다면 엄연한 사람으로 보겠지만.. 아저씨는 다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일단 푹 쉬는걸로 합시다. 추후에 우리들은 떠나기로 되어 있으니 내일 바로 떠나도록 하고.. 여러분들은 여기에 계속 남아 군인분들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아저씨와 우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제까지나 여기가 완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가게 될 제주도는 안전하다는 뜻인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날 보았던 아빠의 표정에서는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내가 알던 아빠가 맞다면 충분히 믿어 볼만하다.

“그럼..”

아저씨는 몸을 돌려 여자들이 편히 쉴 수 있게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남은 우리들도 그 뒤를 따랐고 제일 마지막에 나온 동생이 문을 가볍게 닫아 주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행정부에서 나온 중위가 느리게 걸어오며 말했다.

“대대장님이 뵙고 싶어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쉴 사람들은 쉬도록 하십시오.”

아저씨 말에 남겠다고 한 사람들은 전부 우리가 정한 생활관으로 들어가버렸다.

“1층에 지휘통제실 옆 C.P실이 있을겁니다. 거기로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한 중위는 다시 행정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우리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1층으로 내려왔다. 중앙 통로로 보이는 전방에는 넓은 연병장에 아무렇게나 서있는 차량들이 있었고 저 멀리 위병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전부였다. 그리고 희끄무레하지만 확실히 보이는 붉은 색의 길. 녀석들과 생사를 건 사투의 흔적이다.

저벅. 저벅.

지휘통제실을 지나 중위가 말했던 C.P 라고 적힌 문 앞에 멈춘 우리들. 아저씨가 가볍게 두 세번 노크를 하자 아까 들었던 음성이 들려져 왔다.

“들어오시오.”

아저씨는 천천히 문을 열고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들도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10평 정도 되보이는 내부. 중앙에 커다랗게 놓인 테이블 위에 커다란 지도가 있었고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무용으로 쓰는 책상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그리고 테이블 위쪽 창가에는 뒷짐을 쥐고 서있는 대대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까 일은 감사했습니다.”

아저씨 말에 대대장은 몸을 돌려 우리를 보고는 테이블 근처에 있는 의자들을 권했다. 우리는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곧 대대장도 의자에 앉아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밖이 저렇게 돌아가도 여기까지 살아오신 것을 보면 분명 운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예.. 그렇지요.”

대대장의 말투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기 보다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눈치였었다.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아저씨가 먼저 말했다.

“그.. 남자 때문에 그러시는겁니까?”
“..얘기가 빠르군요.”
“그건 저희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구해준 것 뿐인데 저런 상태였습니다.”
“그렇군요.”

아저씨는 은혜 덕분에 저렇게 된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은혜에 대해 대대장이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일이 크게 틀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대대장은 아저씨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눈치였다. 일단 우리에게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협상을 해야 한다. 가만히 있던 동생이 대대장을 보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지휘관이신데 나가지 않으셨네요?”

그 말에 대대장은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작은 미소에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이라크 파견을 막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어나는 일이었지요. 자대에 돌아왔을 때 이미 이렇게 된 꼴이었습니다.”
“..그럼 이라크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나요?”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지요.”

해외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만 국한되게 일어난다는 말이 되는건가? 아니다. 어설픈 추측으로 모든 것들을 결정지을 수 없다. 지금도 시시각각 전 세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대대장은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어찌되었든 여러분들이 이리로 온 이상 최대한 지켜드리겠습니다. 물론 근무나 사격훈련에서 예외는 없지만..”
“아뇨.. 저희는 떠날겁니다.”

아저씨의 말에 대대장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디로 간다는 겁니까?”
“..일단은 부산으로 갈 생각입니다만.”
“부산이라.. 부산.”

대대장은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굵게 자라 있는 콧수염과 턱수염이 그의 강인한 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대장은 이내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듣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유람선이 아직까지 운행을 하고 있을지..”
“최소한의 희망을 거는거죠.”
“알겠습니다. 모두 떠나는 겁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 아까 보았던 검은 피부의 남자. 그리고 제 딸입니다.”

아저씨 말에 대대장은 선선히 수긍했다. 이제 중요한 부탁을 할 차례였다. 아저씨는 잠시 입을 다물고 헛기침을 몇 번했다. 그 미묘한 차이를 대대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필요한건 무기겠지요.”
“그렇습니다만..”
“어차피 미재고로 잡힌 총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줄 정도는 되지요. 이 마당에 군 재산 갖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그럼.”

대대장은 흔쾌히 아저씨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못할 것 없지요. 탄약도 넉넉히 있으니 챙겨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선뜻 우리에게 무기를 내준 대대장이 천사처럼 보였다. 이제 조금이나마 부산에 가기 수월해질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부산에 있을 유람선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대대장은 그렇게 선뜻 내줄 마음이 없었나보다.

“다만..”
“다만?”

대대장은 처음 박 중사에게 보였던 얼굴로 우리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긴다는 가정하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