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가 났다는 것은.. 분명 녀석들의 공격해 왔다는 것이다. 그 우두머리 녀석.. 모습을 드러냈을까? 순식간에 위병소에 있는 군인들을 덮친다면 지금 가도 늦을지도 모른다. 서둘러야한다.
터벅. 터벅. 터벅.
어두운 공간에서 우리들의 군화소리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녀석들의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불길하다. 총소리도 들리지 않고.. 뭐가 잘못된 걸까? 괴물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슈슉.
그 때. 허공에서 뭔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것이 어렴풋이 눈에 잡혔다. 붉은 색의 가느다란 선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앞서 가던 군인들 틈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낯선 소리.
푸슉. 푸슈슉.
어두운 공간에서도 보일정도로 붉은 피들이 분수처럼 튀어오르기 시작한다. 순간 몸이 자동적으로 경직되어간다.
“으아악!”
고통에 찬 비명소리. 그리고 소총에서 뿜어져나오는 불줄기. 시끄러운 소음과 매캐한 화약 냄새.
“크아아!”
녀석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곧 꽤 커다란 검은색의 그림자가 우리 쪽으로 느리게 기어오는 것이 보인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저 두 눈. 나를 강하게 노려보고 있는게 확실하다. 주루룩.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군인들은 동료를 잃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예리한 대검을 꺼내 녀석의 정수리에 무차별적으로 박아댔다.
“끅.. 끄."
녀석은 두 눈을 꿈뻑거리며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쉽게 숨을 끊지 못하자 군인들의 대검 세례가 더욱 거세져간다. 푹. 푹. 푸욱. 붉은 빛이 점차 사그러져간다. 마침내 녀석은 그대로 숨을 거둔다. 녀석이 숨을 거뒀나 확인을 위해 다른 군인이 랜턴을 녀석의 몸을 비춘다.
“흐음..”
일반 녀석들과는 달리 상당히 커다란 덩치다. 낮에 봤었던 그 녀석과 많이 흡사해보였다. 어떻게 넘어온거지? 고개를 돌려 녀석이 튀어온 곳을 본다. 검은 색의 산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하사의 말은 거짓이었나? 아니면 녀석은 교묘하게 지뢰나 부비트랩을 전부 피한것인가?
“부상자는?”
감정 없는 이 하사의 목소리. 그리고 즉각 대답하는 군인들.
“박 일병과 이 병장이 당했습니다.”
마치 이런 일이 익숙하기라도 한 듯 군인들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 하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전리품을 챙기고 앞으로 간다.” “예.”
괴물에게 비춘 랜턴을 끄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앞에 있던 다른 군인들이 사상자를 랜턴으로 비추며 소총과 수류탄, 실탄 등을 챙기기 시작한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두 시체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마치 강제로 반을 갈라 놓은 것처럼 사지가 이상하게 절단이 되어 있다. 차마 보기 힘든 꼴이지만 녀석이 우리를 향해 덤벼들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이기적인 새끼.’
마음 속에서 그렇게 말해온다. 별 수 없다. 살기 위한 본능은 누구라도 다 같은거니까. 서둘러 전리품을 챙긴 군인들은 빠른 걸음으로 위병소로 뛰어간다. 아까 전 습격을 받아서인지 그 속도가 더욱 빠르다.
“헉. 헉.”
금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많이 긴장한 탓일까. 내 몸이 이렇게 허약했었나? 제길.. 이런 때에 말썽을 부리다니 빌어먹을 몸뚱아리. 이런 어둠 속에서 홀로 남겨지는 사양이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빠르게 발을 놀린다. 마침내 위병소에 다다른 우리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없어..”
아까 전 위병소를 지키던 세 명의 군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벨을 눌렀던 스위치를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지?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한다. 뭔가가 올 것 같은 느낌이다. 이 하사는 차분하게 소대원들을 진정시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 하사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극도의 불안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이 하사를 보며 아저씨가 말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어찌할 수가 없군요.” “이런.. 것은 본적도 들은적도 없습니다.” “..일단 침착하고 주위를 경계해야겠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상상이상의 속도와 파괴력. 우두머리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세 명의 군인들을 처리할 수 있었지? 그것도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분명 경계를 스던 군인들은 뭔가를 봤기 때문에 벨을 울린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역시?
“혹시.. 녀석들 중 유독 특이하게 강한 녀석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내 말에 이 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특이한거라뇨?” “일반 괴물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상이상의 힘을 가진 녀석이 존재하기도 해요. 그 녀석은 평범한 녀석들을 통제하고 사람과 똑같은 사고를 가졌어요.” “그런게..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이 하사는 우리의 말을 인정하기 싫은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그런 절망적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해한다. 우리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런 비슷한 감정들을 느껴왔었으니까. 나는 좀 더 이 하사에게 진실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두머리라고도.. 칭해요. 처음 우리집을 습격했을 때에도 그 녀석이 다른 놈들을 이끌고 공격을 해왔어요. 우린 운이 좋게 살아남았고.. 그 뒤로도 그 녀석과 마주친 적이 있었어요. 게다가 낮에 우글거리며 몰려온 녀석들도 어쩌면 그 우두머리 녀석이 시킨 걸지도 몰라요.” “....”
이 하사는 아무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 표정과 눈에서 거짓을 읽어내려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한치의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생생한 경험을 그대로 얘기했다. 이 하사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내 이 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대강이나마 이 상황이 설명되는군요.” “하지만.. 제가 느낀 바로는 이 짧은 시간 만에 그 우두머리 녀석이 세 명을 모조리 없앴을 리가 없어요. 그것도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채로 말이죠.” “그럼.. 누군가가 군인들을 불러낸 것이 아닐까?”
준우 아저씨 말에 사고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 너무 국한적으로 생각한 내 잘못도 있다. 말끔하게 경계를 스던 인원들이 순식간에 사라질리 없다. 그렇다면 유력한 후보는 군인들이 아닌 그들을 통솔하는 간부급이 된다는 건가? 중위는 행정부에서 서류더미들을 안고 자고 있었고.. 박 중사는 아까이후로 보이지도 않고 대대장은.. C.P실에 있으려나?
“그게 더 와닿는군요. 그러나.. 우리가 정한 규율상 위병소 경계를 스는 인원에게 어떤 명령도 하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충분히 거스를만큼의 지위를 가진 자라면 말이 틀려지지요.”
준우 아저씨 말에 이 하사는 눈매를 좁히며 C.P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대대장님은 그럴리 없습니다. 괜한 오해를 하시는 것 같군요.” “지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이요? 세상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는데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있다는거죠?”
준우 아저씨 말에 딱히 변명거리는 찾지 못하는 이 하사는 굳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대대장님은 그럴분이 아닙니다. 박 중사라면 모르겠지만..” “예?”
우리의 의문 섞인 표정을 빤히 보던 이 하사는 곧 한숨을 쉬며 말을이었다.
“박 중사..는 애초에 군인이 되기를 싫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된거지요.” “그런 것 치고는 계급이.. 중사인데요?” “그건 대대장님의 든든한 후원덕이죠.”
대대장과.. 박 중사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거지? 후원? 우리는 이 하사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대대장님과 박 중사는 배다른 형제입니다. 나이 차이가 좀 나긴해도 둘의 아버지는 같은 사람입니다.” “..이복 형제요?” “예. 저도 그 사실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사이가 저렇게 나쁘진 않았었는데.. 아들들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래서 박 중사가 당당하게 대대장에게 대들었던거구나. 생전 모르는 남도 아니고 친 형제는 아니지만 배 다른 형제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들도 군인이었나요?” “..아뇨. 둘 다 감염이 되었습니다.” “감염이라면..”
우리들의 말에 이 하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괴물과 같은 증세를 보였죠. 실제로 몸에 검은 털들이 듬성듬성 나있었구요.”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습니까?”
아저씨의 말에 이 하사는 남은 군인들에게 전방을 경계하라고 시키고는 우리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딱히.. 얘기할 거리는 아니지만 여러분들에게는 왠지 털어 놓고 싶군요. 저도 이 사실을 계속 안고 산다는 것이 영 꺼림직 했으니까요.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는 다음날이었습니다. 우리 대대에 남은 병력이라고는 간부까지 포함에 24~25명이 전부였지요. 소수의 인원으로 넓은 대대를 지키기 어려워 위병소를 제외한 곳곳에 여러 가지 살상 무기들을 매설하고 24시간 내내 위병소를 지키는 방식을 이어왔었지요.” “....”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지요. 괴물 몇 놈들이 밤에 나와 우리들의 심장을 놀래키는 것을 제외하면요. 낮이었습니다. 여러명의 사람들이 위병소 쪽으로 몰려오더군요. 그날.. 제가 병사들과 같이 근무를 섰기 때문에 명확히 기억합니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는데.. 점점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몸에 돋아난 털들이 이상하게 눈이 가더군요.”
이 하사는 그날이 뚜렷히 떠오르는지 입술을 달달 떨었다. 보는 우리까지 긴장되서 마른침을 삼켜야했다.
“그건.. 사람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습니다. 붉게 충혈된 두 눈과 이상하리만큼 발달된 송곳니들.. 우리는 바로 막사에 있는 병사들과 간부에게 알렸죠. 저 스위치를 통해서 말입니다.”
저 스위치는 아까 위병소에서 났던 커다란 소음을 내는 스위치가 분명하다. 이 하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 병력들이 위병소로 모여들었죠.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유독 대대장님과 박 중사의 표정이 보기 흉할정도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딱히 이유를 묻지 않아도 왜 그런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죠. 우연히.. 박 중사의 가족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고등학생이었나.. 아무튼 박중사의 아들이 사람들 틈에 껴있었던 거지요.” “그렇군요..” “아이러니하게도 대대장의 아들도 그 틈에 껴있었나 봅니다. 참 웃기는 일이죠. 하늘이 장난도 이런 식으로 치나 하고 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온전히 살려둘 수는 없었습니다. 딱 보기에도 ‘그것’들은 사람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두 사람.. 예. 대대장님과 박 중사는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쏴야한다는 대대장의 말과 일단 격리하자는 박 중사의 말.. 당연히 우리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우선시 해야했지요. 머뭇거림 없이 ‘그것’들에게 총알을 날려주었습니다.”
사라라락.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들이 내는 소리에도 놀랄 정도로 긴장이 되어 있는 상태. 괜히 주위를 둘러보지만 위병소에서 묵묵히 경계를 하고 있는 군인들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두웠다. 괜히 어두운 곳을 빤히 보기가 싫어 이 하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결과는 여러분들이 아시는대로..입니다. 박 중사가 그렇게 오열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런 박 중사의 모습을 본체만체하며 대대장은 서둘러 시체들을 치우라고 했지요. 우리들은 바로 트럭을 가져와 시체들을 멀리 내다버리기 위해 싣기 시작했습니다. 다 싣고 출발하려는데 박 중사가 기어이 운전하겠다고 하더군요. 대대장도 그거까진 관섭하지 않고 그대로 막사로 올라갔습니다.” “....” “그렇게 박 중사는 시체 더미들을 혼자서 처리하고 왔지요. 그 때부터 박 중사의 태도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첫날에는 우울하던 모습을 보이더니 둘 째날부터는 괜한 병사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대대장의 명령을 제대로 듣지 않기 시작했지요. 우린 그려려니 했습니다. 자식을 잃은 충격을 직접 겪어봐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를 여윈 저로서는 그게 약간이나마 이해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박 중사.. 처음 우리를 보며 극도로 경계를 하며 아들이 우리 때문에 죽었다고 괜한 화를 냈었다. 그게 단순히 이 하사가 말한 것들 때문인가.
“그 후로부터 박 중사는 우리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말들을 제외하고는 아예 입을 닫고 살았죠. 더군다나 씻지도 않았어요. 그의 곁에는 항상 땀에 찌든 냄새와 역한 냄새만이 가득했지요.”
그러고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그 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지만 희미하게 박 중사의 몸에서 낯설지 않은 악취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제길! 그걸 왜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까? 큰일이다. 사태가 어쩌면..
“박 중사님!”
그 때 위병 경계를 스고 있던 군인 한명이 전방을 향해 외쳤다. 화들짝 놀란 우리들은 그대로 그 군인 옆으로 뛰어갔다.
“....”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하나의 인영. 빨지도 않았는지 군복 여기저기가 더럽혀져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하는 수단은 오직 카라에 달린 중사라는 계급과 그 왼쪽 아래에 있는 이름표 뿐이다. 서서히 위병소의 얕은 빛으로 드러내는 박 중사. 희미하게 풍기는 이 악취.. 고개를 들어 박 중사의 얼굴을 가만히 본다. 빨간.. 아주 빨간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펌]밖.에.나.가.지.마.시.오 (66화)
웃긴대학 ID: 삶이무의미함 님의글을 퍼온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삐-익.
이 소리가 났다는 것은.. 분명 녀석들의 공격해 왔다는 것이다. 그 우두머리 녀석.. 모습을 드러냈을까? 순식간에 위병소에 있는 군인들을 덮친다면 지금 가도 늦을지도 모른다. 서둘러야한다.
터벅. 터벅. 터벅.
어두운 공간에서 우리들의 군화소리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녀석들의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불길하다. 총소리도 들리지 않고.. 뭐가 잘못된 걸까? 괴물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슈슉.
그 때. 허공에서 뭔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것이 어렴풋이 눈에 잡혔다. 붉은 색의 가느다란 선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앞서 가던 군인들 틈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낯선 소리.
푸슉. 푸슈슉.
어두운 공간에서도 보일정도로 붉은 피들이 분수처럼 튀어오르기 시작한다. 순간 몸이 자동적으로 경직되어간다.
“으아악!”
고통에 찬 비명소리. 그리고 소총에서 뿜어져나오는 불줄기. 시끄러운 소음과 매캐한 화약 냄새.
“크아아!”
녀석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곧 꽤 커다란 검은색의 그림자가 우리 쪽으로 느리게 기어오는 것이 보인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저 두 눈. 나를 강하게 노려보고 있는게 확실하다. 주루룩.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군인들은 동료를 잃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예리한 대검을 꺼내 녀석의 정수리에 무차별적으로 박아댔다.
“끅.. 끄."
녀석은 두 눈을 꿈뻑거리며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쉽게 숨을 끊지 못하자 군인들의 대검 세례가 더욱 거세져간다. 푹. 푹. 푸욱. 붉은 빛이 점차 사그러져간다. 마침내 녀석은 그대로 숨을 거둔다. 녀석이 숨을 거뒀나 확인을 위해 다른 군인이 랜턴을 녀석의 몸을 비춘다.
“흐음..”
일반 녀석들과는 달리 상당히 커다란 덩치다. 낮에 봤었던 그 녀석과 많이 흡사해보였다. 어떻게 넘어온거지? 고개를 돌려 녀석이 튀어온 곳을 본다. 검은 색의 산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하사의 말은 거짓이었나? 아니면 녀석은 교묘하게 지뢰나 부비트랩을 전부 피한것인가?
“부상자는?”
감정 없는 이 하사의 목소리. 그리고 즉각 대답하는 군인들.
“박 일병과 이 병장이 당했습니다.”
마치 이런 일이 익숙하기라도 한 듯 군인들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 하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전리품을 챙기고 앞으로 간다.”
“예.”
괴물에게 비춘 랜턴을 끄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앞에 있던 다른 군인들이 사상자를 랜턴으로 비추며 소총과 수류탄, 실탄 등을 챙기기 시작한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두 시체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마치 강제로 반을 갈라 놓은 것처럼 사지가 이상하게 절단이 되어 있다. 차마 보기 힘든 꼴이지만 녀석이 우리를 향해 덤벼들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이기적인 새끼.’
마음 속에서 그렇게 말해온다. 별 수 없다. 살기 위한 본능은 누구라도 다 같은거니까. 서둘러 전리품을 챙긴 군인들은 빠른 걸음으로 위병소로 뛰어간다. 아까 전 습격을 받아서인지 그 속도가 더욱 빠르다.
“헉. 헉.”
금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많이 긴장한 탓일까. 내 몸이 이렇게 허약했었나? 제길.. 이런 때에 말썽을 부리다니 빌어먹을 몸뚱아리. 이런 어둠 속에서 홀로 남겨지는 사양이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빠르게 발을 놀린다. 마침내 위병소에 다다른 우리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없어..”
아까 전 위병소를 지키던 세 명의 군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벨을 눌렀던 스위치를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지?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한다. 뭔가가 올 것 같은 느낌이다. 이 하사는 차분하게 소대원들을 진정시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 하사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극도의 불안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이 하사를 보며 아저씨가 말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어찌할 수가 없군요.”
“이런.. 것은 본적도 들은적도 없습니다.”
“..일단 침착하고 주위를 경계해야겠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상상이상의 속도와 파괴력. 우두머리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세 명의 군인들을 처리할 수 있었지? 그것도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분명 경계를 스던 군인들은 뭔가를 봤기 때문에 벨을 울린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역시?
“혹시.. 녀석들 중 유독 특이하게 강한 녀석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내 말에 이 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특이한거라뇨?”
“일반 괴물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상이상의 힘을 가진 녀석이 존재하기도 해요. 그 녀석은 평범한 녀석들을 통제하고 사람과 똑같은 사고를 가졌어요.”
“그런게..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이 하사는 우리의 말을 인정하기 싫은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그런 절망적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해한다. 우리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런 비슷한 감정들을 느껴왔었으니까. 나는 좀 더 이 하사에게 진실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두머리라고도.. 칭해요. 처음 우리집을 습격했을 때에도 그 녀석이 다른 놈들을 이끌고 공격을 해왔어요. 우린 운이 좋게 살아남았고.. 그 뒤로도 그 녀석과 마주친 적이 있었어요. 게다가 낮에 우글거리며 몰려온 녀석들도 어쩌면 그 우두머리 녀석이 시킨 걸지도 몰라요.”
“....”
이 하사는 아무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 표정과 눈에서 거짓을 읽어내려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한치의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생생한 경험을 그대로 얘기했다. 이 하사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내 이 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대강이나마 이 상황이 설명되는군요.”
“하지만.. 제가 느낀 바로는 이 짧은 시간 만에 그 우두머리 녀석이 세 명을 모조리 없앴을 리가 없어요. 그것도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채로 말이죠.”
“그럼.. 누군가가 군인들을 불러낸 것이 아닐까?”
준우 아저씨 말에 사고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 너무 국한적으로 생각한 내 잘못도 있다. 말끔하게 경계를 스던 인원들이 순식간에 사라질리 없다. 그렇다면 유력한 후보는 군인들이 아닌 그들을 통솔하는 간부급이 된다는 건가? 중위는 행정부에서 서류더미들을 안고 자고 있었고.. 박 중사는 아까이후로 보이지도 않고 대대장은.. C.P실에 있으려나?
“그게 더 와닿는군요. 그러나.. 우리가 정한 규율상 위병소 경계를 스는 인원에게 어떤 명령도 하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충분히 거스를만큼의 지위를 가진 자라면 말이 틀려지지요.”
준우 아저씨 말에 이 하사는 눈매를 좁히며 C.P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대대장님은 그럴리 없습니다. 괜한 오해를 하시는 것 같군요.”
“지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이요? 세상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는데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있다는거죠?”
준우 아저씨 말에 딱히 변명거리는 찾지 못하는 이 하사는 굳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대대장님은 그럴분이 아닙니다. 박 중사라면 모르겠지만..”
“예?”
우리의 의문 섞인 표정을 빤히 보던 이 하사는 곧 한숨을 쉬며 말을이었다.
“박 중사..는 애초에 군인이 되기를 싫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된거지요.”
“그런 것 치고는 계급이.. 중사인데요?”
“그건 대대장님의 든든한 후원덕이죠.”
대대장과.. 박 중사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거지? 후원? 우리는 이 하사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대대장님과 박 중사는 배다른 형제입니다. 나이 차이가 좀 나긴해도 둘의 아버지는 같은 사람입니다.”
“..이복 형제요?”
“예. 저도 그 사실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사이가 저렇게 나쁘진 않았었는데.. 아들들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래서 박 중사가 당당하게 대대장에게 대들었던거구나. 생전 모르는 남도 아니고 친 형제는 아니지만 배 다른 형제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들도 군인이었나요?”
“..아뇨. 둘 다 감염이 되었습니다.”
“감염이라면..”
우리들의 말에 이 하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괴물과 같은 증세를 보였죠. 실제로 몸에 검은 털들이 듬성듬성 나있었구요.”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습니까?”
아저씨의 말에 이 하사는 남은 군인들에게 전방을 경계하라고 시키고는 우리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딱히.. 얘기할 거리는 아니지만 여러분들에게는 왠지 털어 놓고 싶군요. 저도 이 사실을 계속 안고 산다는 것이 영 꺼림직 했으니까요.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는 다음날이었습니다. 우리 대대에 남은 병력이라고는 간부까지 포함에 24~25명이 전부였지요. 소수의 인원으로 넓은 대대를 지키기 어려워 위병소를 제외한 곳곳에 여러 가지 살상 무기들을 매설하고 24시간 내내 위병소를 지키는 방식을 이어왔었지요.”
“....”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지요. 괴물 몇 놈들이 밤에 나와 우리들의 심장을 놀래키는 것을 제외하면요. 낮이었습니다. 여러명의 사람들이 위병소 쪽으로 몰려오더군요. 그날.. 제가 병사들과 같이 근무를 섰기 때문에 명확히 기억합니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는데.. 점점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몸에 돋아난 털들이 이상하게 눈이 가더군요.”
이 하사는 그날이 뚜렷히 떠오르는지 입술을 달달 떨었다. 보는 우리까지 긴장되서 마른침을 삼켜야했다.
“그건.. 사람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습니다. 붉게 충혈된 두 눈과 이상하리만큼 발달된 송곳니들.. 우리는 바로 막사에 있는 병사들과 간부에게 알렸죠. 저 스위치를 통해서 말입니다.”
저 스위치는 아까 위병소에서 났던 커다란 소음을 내는 스위치가 분명하다. 이 하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 병력들이 위병소로 모여들었죠.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유독 대대장님과 박 중사의 표정이 보기 흉할정도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딱히 이유를 묻지 않아도 왜 그런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죠. 우연히.. 박 중사의 가족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고등학생이었나.. 아무튼 박중사의 아들이 사람들 틈에 껴있었던 거지요.”
“그렇군요..”
“아이러니하게도 대대장의 아들도 그 틈에 껴있었나 봅니다. 참 웃기는 일이죠. 하늘이 장난도 이런 식으로 치나 하고 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온전히 살려둘 수는 없었습니다. 딱 보기에도 ‘그것’들은 사람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두 사람.. 예. 대대장님과 박 중사는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쏴야한다는 대대장의 말과 일단 격리하자는 박 중사의 말.. 당연히 우리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우선시 해야했지요. 머뭇거림 없이 ‘그것’들에게 총알을 날려주었습니다.”
사라라락.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들이 내는 소리에도 놀랄 정도로 긴장이 되어 있는 상태. 괜히 주위를 둘러보지만 위병소에서 묵묵히 경계를 하고 있는 군인들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두웠다. 괜히 어두운 곳을 빤히 보기가 싫어 이 하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결과는 여러분들이 아시는대로..입니다. 박 중사가 그렇게 오열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런 박 중사의 모습을 본체만체하며 대대장은 서둘러 시체들을 치우라고 했지요. 우리들은 바로 트럭을 가져와 시체들을 멀리 내다버리기 위해 싣기 시작했습니다. 다 싣고 출발하려는데 박 중사가 기어이 운전하겠다고 하더군요. 대대장도 그거까진 관섭하지 않고 그대로 막사로 올라갔습니다.”
“....”
“그렇게 박 중사는 시체 더미들을 혼자서 처리하고 왔지요. 그 때부터 박 중사의 태도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첫날에는 우울하던 모습을 보이더니 둘 째날부터는 괜한 병사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대대장의 명령을 제대로 듣지 않기 시작했지요. 우린 그려려니 했습니다. 자식을 잃은 충격을 직접 겪어봐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를 여윈 저로서는 그게 약간이나마 이해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박 중사.. 처음 우리를 보며 극도로 경계를 하며 아들이 우리 때문에 죽었다고 괜한 화를 냈었다. 그게 단순히 이 하사가 말한 것들 때문인가.
“그 후로부터 박 중사는 우리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말들을 제외하고는 아예 입을 닫고 살았죠. 더군다나 씻지도 않았어요. 그의 곁에는 항상 땀에 찌든 냄새와 역한 냄새만이 가득했지요.”
그러고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그 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지만 희미하게 박 중사의 몸에서 낯설지 않은 악취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제길! 그걸 왜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까? 큰일이다. 사태가 어쩌면..
“박 중사님!”
그 때 위병 경계를 스고 있던 군인 한명이 전방을 향해 외쳤다. 화들짝 놀란 우리들은 그대로 그 군인 옆으로 뛰어갔다.
“....”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하나의 인영. 빨지도 않았는지 군복 여기저기가 더럽혀져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하는 수단은 오직 카라에 달린 중사라는 계급과 그 왼쪽 아래에 있는 이름표 뿐이다. 서서히 위병소의 얕은 빛으로 드러내는 박 중사. 희미하게 풍기는 이 악취.. 고개를 들어 박 중사의 얼굴을 가만히 본다. 빨간.. 아주 빨간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