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산카 입니다. 저번판에서 발해에대해서 썻는데 추천수가 적어서... 쓸까말까 하다가...ㅋㅋ 톡커분들이 한번쯤은 꼭알아야할 이야기 일꺼같아서 씁니다. 시작하기전에 한마디말 쓸께요. 생각보다 많은사람들이 제글이 너무 길다고 뭐라하시는데... 진짜 글이 길다고 네이트쪽지로 욕하고 그런거는 뭐하자는 겁니까? 그 쪽지를 보는순간 왜 네이트가 수준이 낮다고 하는지 딱느껴 졌습니다. 글이 긴것은 그만큼 그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이 길어서 이해가 안될정도라면 읽지 마십시오. 이정도의 글이 길다고 뭐라하면 그냥 시집사서 읽으세요~ 여기까지 이렇게 쓰는 이유는 진짜 이런걸로 네이트 쪽지를 지금까지 50통이상 받았습니다.
글바로 시작할께요~
이번판에서는 저번판에 이어서 발해역사가 왜 중국과 한국의 분쟁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쓰겠음. 기본적으로 봤을때 우리또한 중국의 입장을 무조건 적으로 중국이니까 개소리라고 무시할정도는 아님. 그말은, 중국의 논리또한 어느정도 논리적이라는 이야기임. 왜냐하면 발해는 지금의 중국땅에서 건국되었던 나라임. 그렇기때문에 우리나라보다 중국이 발해에대해서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기가 쉬움, 만약에 발해 역사를 100%로 생각했을때 우리나라도 한 20%정도는 중국의 질문에 대답을 명확하게 못하는것이 현실임. 하지만, 나님이 정말 객관적인 입장에서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가장 근본적인이유가 한국의 손에있기 때문임.
.....
중국은 왜 발해를 자기들의 것이라고 우기는가? 간단하게 중국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한 직후, 당나라는 나라를 제건하려는 고구려민들은 압박하기 위해서 안동에 안동도호부라는것을 설치함. 안동도호부를 지금의 지방 구청이라고 생각하면 편할꺼 같음. 그러다가 697년에 당나라가 거란의 침략을받아 나라가 휘청하는 틈을타서 고구려유민들이 발해를 건국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당나라는 더이상 안동도호부를 관리할 힘이 없어서 699년 안동 도독부( 지금의 동사무소 )라고 이름을 바꾸고 한단계 낮은 단계의 관리를 하게됨. 그러다가 발해가 건국되었는데 그때다시 도호부로 바뀜. 그럼 중국의 입장에서보면 발해가 생겨나기 전부터 그지방을 다스리고 있었고, 발해가 생겨난후에도 도호부가 운영이 되고있었기때문에 중국은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부였다고 주장을 하는것임. 지금 중국의 모든 학생들도 그렇게 알고있음 ㅡㅡ;;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불리워지던 당시에도 발해는 당나라에게 조공 비슷한것을 했었는데, 그것또한 중국의 입장에서보면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부였다는 근거가 될수있음.
이정도까지가 간단하게 중국의 입장을 대표적으로 보여줄수있는 예시일꺼같음. 근데, 중요한것은 한국의 입장에서 풀이하면 중국의 저런 논리는 한마디로 개소리임.
발해가 왜 한국의 역사인지 서술하겠음. 일단, 고대사같은 경우에는 100% 정확한것이 없고 학자들마다 해석하는것이 틀리기 때문에 굉장히 구심점을 잡기가 어려움. 그래서 기본적으로 어떤나라가 누구쪽의 역사냐를 판단할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것은 몇가지로 나눌수있는데, 1. 그 나라를 누가 건국했는가? 2. 그 나라의 지배계층은 누구였는가? 보통 이두가지만 확실하게 밝혀진다면 게임 끝임.
이두가지의 답을 생각해보면, 발해를 건국한건 고구려의 장수였던 대조영이고, 지배계층또한 고구려인 이였음. 이에따른 근거는, 발해의 궁궐터나, 묘지를 만드는 공법, 권력층들이 사용했던 장식품또한 고구려 특유의 것과 거의 유사함. 고대사에서 한나라가 다른나라의것과 유사하다는말은 다른말로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말임.
사실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상관관계도 살펴보면 발해의 인구수와 고구려 유민의 인구수가 거의 차이가없음. 그말은 지배계층또한 고구려인이였지만, 피지배게층또한 고구려인이라는 증거임.
그럼 여기까지가 우리의 강력한 주장이 될것이고, 어떻게 중국의 주장을 반박할수있을까?
중국의 기본적인 주장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부였다는 이야기임. 근데 역사서를 살펴보면 진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음. 발해가 무왕때 무왕이 발해의장군 장문휴를 시켜서 당을 공격하라고 명령함. 그 명령을 받은 발해의 장군 장문휴는 자신의 수군과 육군을 동원하여 당나라의의 수군 요충지였던 등주를 공격하여 그곳의 자사 위준을 죽였음. 그러고 발해는 당나라 땅이였던 등주의 북쪽지방을 점령함.
이에 분노한 당나라는 당나라의 장군 대문예를 시켜서 발해를 공격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신라에게도 발해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림. 근데 발해는 끄떡도않고 막아내어 해동성국의 기초를 닦음.
역사서에 이렇게 나와있음. 중국의 역사어디를 살펴봐도 중국이 지방정부의 공격을받아 땅을빼앗긴 적은 없음. 중국의 주장이 개소리인 이유임.
......
앞에 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중국에서 발해의 공주였던 정효,정혜공주의 무덤이 발견된지 6년이 지났는데 우리 역사학자, 고고학자분들은 이무덤을 구경도 못해봤음. 중국은 거기다가 역사관을 지어서 중국의 유리한 자료만 남기고 우리한테 유리한 증거는 숨기려는 수작을 부리고있음.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음.
이런곳에다가 이런글을 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음. 근데 민주주의의 나라에서 국민의 관심없이는 어떠한 일도 진행될수없음. 발해는 당시에 우리 조상님들이 나라가 멸망하고 엄청나게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 한민족의 정기를 이어가기위해 목숨을 걸고 세운 나라임. 근데 지금 그런우리의 역사가 중국의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이 되려 하고있음. 정말 우리의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고 생각함.
나님은 한국을떠나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있지만, 미국의 역사를배우고 세계의 역사를 아무리 배워봐도 나님이 고등학교때배운 역사만큼 찬란한 역사가 없다고 생각함.
중국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3
저번판에서 발해에대해서 썻는데 추천수가 적어서... 쓸까말까 하다가...ㅋㅋ
톡커분들이 한번쯤은 꼭알아야할 이야기 일꺼같아서 씁니다.
시작하기전에 한마디말 쓸께요.
생각보다 많은사람들이 제글이 너무 길다고 뭐라하시는데...
진짜 글이 길다고 네이트쪽지로 욕하고 그런거는 뭐하자는 겁니까?
그 쪽지를 보는순간 왜 네이트가 수준이 낮다고 하는지 딱느껴 졌습니다.
글이 긴것은 그만큼 그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이 길어서 이해가 안될정도라면 읽지 마십시오.
이정도의 글이 길다고 뭐라하면 그냥 시집사서 읽으세요~
여기까지 이렇게 쓰는 이유는 진짜 이런걸로 네이트 쪽지를 지금까지 50통이상 받았습니다.
글바로 시작할께요~
이번판에서는 저번판에 이어서 발해역사가 왜 중국과 한국의 분쟁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쓰겠음.
기본적으로 봤을때 우리또한 중국의 입장을 무조건 적으로 중국이니까 개소리라고 무시할정도는 아님.
그말은, 중국의 논리또한 어느정도 논리적이라는 이야기임.
왜냐하면 발해는 지금의 중국땅에서 건국되었던 나라임.
그렇기때문에 우리나라보다 중국이 발해에대해서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기가 쉬움,
만약에 발해 역사를 100%로 생각했을때
우리나라도 한 20%정도는 중국의 질문에 대답을 명확하게 못하는것이 현실임.
하지만, 나님이 정말 객관적인 입장에서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가장 근본적인이유가 한국의 손에있기 때문임.
.....
중국은 왜 발해를 자기들의 것이라고 우기는가?
간단하게 중국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한 직후, 당나라는 나라를 제건하려는 고구려민들은 압박하기 위해서
안동에 안동도호부라는것을 설치함.
안동도호부를 지금의 지방 구청이라고 생각하면 편할꺼 같음.
그러다가 697년에 당나라가 거란의 침략을받아 나라가 휘청하는 틈을타서 고구려유민들이
발해를 건국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당나라는 더이상 안동도호부를 관리할 힘이 없어서
699년 안동 도독부( 지금의 동사무소 )라고 이름을 바꾸고 한단계 낮은 단계의 관리를 하게됨.
그러다가 발해가 건국되었는데 그때다시 도호부로 바뀜.
그럼 중국의 입장에서보면 발해가 생겨나기 전부터 그지방을 다스리고 있었고,
발해가 생겨난후에도 도호부가 운영이 되고있었기때문에
중국은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부였다고 주장을 하는것임.
지금 중국의 모든 학생들도 그렇게 알고있음 ㅡㅡ;;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불리워지던 당시에도 발해는 당나라에게 조공 비슷한것을 했었는데,
그것또한 중국의 입장에서보면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부였다는 근거가 될수있음.
이정도까지가 간단하게 중국의 입장을 대표적으로 보여줄수있는 예시일꺼같음.
근데, 중요한것은 한국의 입장에서 풀이하면
중국의 저런 논리는 한마디로 개소리임.
발해가 왜 한국의 역사인지 서술하겠음.
일단, 고대사같은 경우에는 100% 정확한것이 없고 학자들마다 해석하는것이
틀리기 때문에 굉장히 구심점을 잡기가 어려움.
그래서 기본적으로 어떤나라가 누구쪽의 역사냐를 판단할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것은
몇가지로 나눌수있는데,
1. 그 나라를 누가 건국했는가?
2. 그 나라의 지배계층은 누구였는가?
보통 이두가지만 확실하게 밝혀진다면 게임 끝임.
이두가지의 답을 생각해보면, 발해를 건국한건 고구려의 장수였던 대조영이고,
지배계층또한 고구려인 이였음.
이에따른 근거는, 발해의 궁궐터나, 묘지를 만드는 공법, 권력층들이 사용했던 장식품또한
고구려 특유의 것과 거의 유사함.
고대사에서 한나라가 다른나라의것과 유사하다는말은
다른말로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말임.
사실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상관관계도 살펴보면
발해의 인구수와 고구려 유민의 인구수가 거의 차이가없음.
그말은 지배계층또한 고구려인이였지만, 피지배게층또한 고구려인이라는 증거임.
그럼 여기까지가 우리의 강력한 주장이 될것이고,
어떻게 중국의 주장을 반박할수있을까?
중국의 기본적인 주장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부였다는 이야기임.
근데 역사서를 살펴보면 진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음.
발해가 무왕때 무왕이 발해의장군 장문휴를 시켜서 당을 공격하라고 명령함.
그 명령을 받은 발해의 장군 장문휴는 자신의 수군과 육군을 동원하여
당나라의의 수군 요충지였던 등주를 공격하여 그곳의 자사 위준을 죽였음.
그러고 발해는 당나라 땅이였던 등주의 북쪽지방을 점령함.
이에 분노한 당나라는 당나라의 장군 대문예를 시켜서 발해를 공격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신라에게도 발해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림.
근데 발해는 끄떡도않고 막아내어 해동성국의 기초를 닦음.
역사서에 이렇게 나와있음.
중국의 역사어디를 살펴봐도 중국이 지방정부의 공격을받아 땅을빼앗긴 적은 없음.
중국의 주장이 개소리인 이유임.
......
앞에 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중국에서 발해의 공주였던 정효,정혜공주의 무덤이 발견된지 6년이 지났는데
우리 역사학자, 고고학자분들은 이무덤을 구경도 못해봤음.
중국은 거기다가 역사관을 지어서 중국의 유리한 자료만 남기고 우리한테 유리한 증거는
숨기려는 수작을 부리고있음.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음.
이런곳에다가 이런글을 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음.
근데 민주주의의 나라에서 국민의 관심없이는 어떠한 일도 진행될수없음.
발해는 당시에 우리 조상님들이 나라가 멸망하고 엄청나게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 한민족의 정기를 이어가기위해 목숨을 걸고 세운 나라임.
근데 지금 그런우리의 역사가 중국의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이 되려 하고있음.
정말 우리의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고 생각함.
나님은 한국을떠나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있지만,
미국의 역사를배우고 세계의 역사를 아무리 배워봐도
나님이 고등학교때배운 역사만큼 찬란한 역사가 없다고 생각함.
우리나라 사랑하면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