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위해 뛰어라11~15

왕보리201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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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과메기의 꿈 님 >


11화-수색조


"숨 참아.. 입냄새 맡는다고, 저 새끼."


"하지만.. 학.. 학.. 숨이.. 차서.. 학.. 힘들어요.."


"제기랄.."


아름이와 나는 새로운 변종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놈은 냄새를 맡는다. 귀와 눈은 제 기능을 못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통 좀비들과는 그 신체능력이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놈은 빠르고, 높게 뛰고, 강하다. 내가 초인이 아닌 이상 저 놈을 혼자 상대하기는 불가능하다.

만약 기관총을 들었다 한들 놈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런지.


나는 벽에 등을 대고 빠르게 게걸음을 해 벽 끝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놈은 5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곳에서 네 발로 엎드려 땅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고 있었다.

겉모습은 후드티를 입은 사람이지만 하는 꼴은 그야말로.. 야수.


지금 내가 지닌 무기는 손도끼 뿐. 놈을 죽이려면 기습뿐이다.

놈이 나에게 달려든 후엔 늦는다. 제길, 이럴 때 던지는 나이프라도 있었다면..


"후우.."


나는 평소 싸울때의 버릇대로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 이 쪽을 바라보는 변종 좀비.


한숨을 쉰 뒤에야 내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챈 나는,

다음 순간 내게로 달려드는 변종 좀비를 볼 수 있었다.


"카하악!!"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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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건빵은 맛없구나."


"야 야 그만 먹어. 내가 들은 얘긴데, 어떤 병사가 밤중에 배가 하도 고파서 병참에 들어가서 건빵을 배터지게

먹었대. 그리고 목이 말라서 물을 한바가지 먹고 잠들었는데, 자는동안 위가 터져서 죽었다잖냐."


"지.. 진짜냐, 그 얘기."


"있을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 건빵은 물을 먹으면 5배까지 불거든."


나와 윤호와 태완이는 언제나처럼 잡담을 하고 있었다. 보급품으로 보내준 건빵을 씹으면서.


지금 우리집 마당에 모여있는 생존자 일행의 꼴은 거의 전쟁난민 수준이다.

그나마 옷이 깔끔해서 망정이지, 옷까지 넝마라면 정말 노숙자 그룹이 따로 없을것이다.

폭격으로 목욕탕은 날아갔지.. 샤워는 커녕 세수도 힘들 지경.

그나마 그 옷도 앞으로 하루이틀만 지나면 아주 수건짝이 될 것이다.


뭐 그런 불평은 그때 가서 하자. 아직은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슬슬 갈까?"


수정형이 일어나 엉덩이를 털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윤호의 얘기에 웃음을 터뜨리다 말고 모두를 쳐다보았다.

재복이와 여친 서영이, 수정형을 따라온 여자 생존자 아름이와 나현 누님, 모두 준비가 된 듯 싶었다.


아침은 하루 생활의 원동력을 주는 기초연료 주입이라고들 해서,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하지만

식수가 여의치 않은 우리들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먹기 편한 통조림이나 과자 등을 여자들에게 양보한 우리들에게 남아돌아온 건

금방 얻은 건빵과 딱딱한 육포 정도.

그렇게 아침을 때운 우리는 드디어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자 그럼, 데덴찌 하자."


"에~ 싫어!"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공평한 편 나누기 방법인 데덴찌를 제안하는데

서영이가 재복이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하기사 너는 재복이한테서 떨어지기 싫겠지. 이런 상황이기도 하고..


"그럼 너네 둘은 한팀 해. 재복이가 데덴찌해서 된 팀에 너도 들어가는거다. 알았어?"


"알았어."


서영이는 내 제안에 만족했는지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배부른 소리네 할 것 없이 팀이라는 건 친한 사람들끼리 모일수록 결속력이 좋아져서

그 시너지효과가 커지는 거다.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른다.


"자 그럼 하자구. 데덴~ 찌!"


"아."


"우후!"


"앗 이런."


손을 내민 친구들은 각자 같은 팀을 짜고 싶었던 사람들을 내심 찍어놓고 있었는지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데덴찌의 결과는 이랬다.

손바닥을 내민 건 나와 태완, 아름이, 수정형. 손등을 내민 건 윤호와 재복이 세트, 나현 누나.

뭐 나름대로 공평한 팀이다. 전투 경험자들이 그럭저럭 섞여있고, 나는 어차피 나가 볼 생각이었으니까.

우리 쪽이 남자가 셋이라 전투력이 높고 아름이 또한 지혜누나를 찾고 싶은 의지가 있으니 도움이 될 터다.

나는 결과에 만족하며 말했다.


"자 그럼 우리 팀이 나갈게. 불만없죠?"


"앗.."


아름이가 내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랐다. 나는 녀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왜, 나가기 싫어? 지혜누나 찾아야지."


"그.. 그래도 그게 좀.."


"뭐야, 이제와서 무서워? 내가 나갈까?"


윤호가 아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름이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내가 화가 나서 뭐라고 하려는데 수정형이 말했다.


"아름아. 어차피 우린 잠시 후에 이사를 갈 거야. 그리고 그 후에는 휴전선까지 올라가게 될지도 몰라. 아마

힘든 여정이 되리라고 생각해. 그러기 위해선 경험을 키워놓는게 중요할걸? 계기도 없이 위험을 무릅쓰는

것 보다는, 목적을 두고 밖으로 나가는 게 더 나을테고 말야."


"아.. 알았어요. 해볼게요."


수정형의 설득이 먹혔는지 아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체구도 작고 미대입시 준비를 하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을 텐데,

이런 결정은 좀 무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내 식칼창을 내밀었다.


"받아. 이걸 써."


"네? 하지만 이건 오빠꺼잖아요."


"빌려주는 거야. 기니까 쓰기 편하고, 견제하기에도 그만이지. 난 이게 있어."


나는 손도끼와 서바이벌 나이프를 꺼내며 말했다.

비도도 가져가려 했지만, 저번 경험을 살려 태완이의 타정총이 있으니 일단은 두고가기로 했다.

가슴팍에서 자꾸 쩔그렁거려서 신경쓰이기도 했고.


아름이가 피가 떡칠된 식칼창의 위용(?)에 놀라 그걸 손끝으로 겨우 들고 살짝 무서워하는 기색이 보여 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잘 들어. 너는 기본적으론 전투에서 제외시킬 거야. 하지만 만에 하나, 우리가 모두 너를 도울 상황이 되지

못한다면 네 몸은 네가 스스로 지켜야 해. 알아들었지? 그리고 너 또한 전투원의 일부라는 걸 잊지 말고. 만약

누군가가 위험에 처했고, 그걸 네가 구할 수 있었는데 단지 두려움 때문에 그 사람을 돕지 못해 동료를 잃게

된다면 나는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 네, 네. 노력할께요."


그제야 아름이는 무기를 꽉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완이는 아름이가 식칼창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걸 물끄러미 보더니 수정형에게 타정총을 건넸다.


"에? 왜 나한테?"


"형도 무기 없잖아요. 그 화염병 있잖아요? 형은 원거리에서 견제 담당이예요."


수정형이 못총을 받아들고 헤~ 하고 있는데 내가 수정형을 보며 말했다.


"그거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뭐. 나 사격장 자주 다녔거든. 아마 괜찮을 것 같아."


수정형은 타정총을 양손으로 그럴듯하게 잡더니 한쪽 눈을 감고 어딘가를 조준했다.

그리고 투슉 하며 못 한 발을 쏴보았다.

그리곤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니 만족할 만 한 결과를 얻은 듯 했다.

나는 손도끼를 어깨에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뭐, 나도 앞에 서려면 태완이 검이 필요하니까."


내 손도끼는 파괴력은 발군이지만 육중하고 아직 쓰기가 불편해서 옆에서 기동성 있는

동료가 받쳐주지 않으면 좀 불안하다.

나는 쇠파이프 하나를 보조무기로 집어들고 말했다.


"그럼 갈까?"


"조심해라."


재복이가 서영이를 옆에 끼고 말했다. 나는 손을 파닥파닥 흔들며 말했다.


"걱정 마. 너도 몸조리 잘 해라. 서영이 조심시키고. 아 그리고, 윤호한테 좀비한테 관한 것 좀 들어둬. 도움이

될 거야. 김윤호 니가 여기 남는 사람들 교육담당이다. 알지?"


"맡겨두고 너나 살아돌아와~ 라면 끓여둘까?"


"너란 놈은.."


나는 투덜거리면서 문을 열고 나왔다. 자 드디어 시작이다.


"일단 근방을 돌아볼까요? 지혜누나 찾으러."


"그래. 그럴겸 근처 위험도도 살펴보고. 그래야 이사를 갈지 안 갈지 정할 수 있을테니까."


"텐트같은 것도 구하면 좋을텐데. 집이 망가졌으니 있을곳은 마당뿐이고.. 비라도 오면 진짜 처량해질거야,

우리."


"아앗 저기!"


나와 수정형, 태완이가 각자 한마디씩을 하고 있는데 아름이가 차도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인상을 사납게 구기며 쇠파이프를 쳐들고 아름이가 외친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떠들면서 어느새 골목 밖으로 나온 우리가 아름이 덕분에 쳐다본 곳은 빌딩의 입구.

우연인지 필연인지 좀비가 들끓던 빌딩의 입구쪽은 폭탄세례를 받고 쑥밭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쪽엔 좀비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와, 바퀴벌레 같은 새끼."


수정형이 중얼거리자 내가 말했다.


"조심해요. 뛰는 놈이면 미치니까. 박력 짱이예요 그 새끼들."


"아 그렇지."


수정형은 어젯밤에 즐겼던 불타는 좀비들과의 경주가 기억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슬슬 경계를 풀려는데 태완이가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


"진환아."


"왜?"


태완이가 나를 돌리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찻길 건너편 오른쪽 끝의 작은 빌라 앞에 모여있는 좀비들.

그것도.. 고개를 무언가에 파묻고.


"꺄악.."


아름이가 비명을 지르려는데 내가 입을 막았다. 나는 인상을 구기면서 말했다.


"비명 지르지 말랬지. 입닫아."


"죄.. 죄송해요.."


나에게서 험한 말을 들은 아름이는 울상이 되어 내게 사과했다.

이번만은 태완이와 수정형도 뭐라 하지 않았다. 집앞에서 나가자 마자 몰살당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얼굴을 파묻고 잇는 좀비들은 대략 세 마리, 아니 네 마리.

게걸스럽게 뭔가를 먹고 있는 놈들의 몸 사이로 길다란 것이 튀어나와 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사람 다리겠지. 그리고 이건 생각하기도 싫지만..

운이 나쁘다면 저건 지혜 누나의 다리겠지.


하지만 운이나 감에 의지하고만 있을 순 없다. 확인이 우선이니까. 나는 수정형에게 말했다.


"좀비들은 뒤통수가 약점이예요. 그리고 우리를 알아채는 수단은 기척이고. 형 저놈들이 우릴 알아채기 전에

몇놈 처리할 수 있겠어요?"


"해보지 뭐. 아예 화염병을 던지는게 어때?"


"그럼 시체 확인을 못하잖아요."


다행히도 이 곳은 집 바로 앞이다.

나는 아름이에게 시체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해서 식칼창을 잡고 벌벌 떨고 있는 녀석에게 말했다

.


"아름아, 여기 서서 우리가 위험해지면 안에 사람들 불러. 단 절대 소리지르지는 말고. 시체는 우리가

확인할게."


"네."


아름이는 선뜻 대답을 했다. 뭐 주변엔 좀비도 없고 괜찮겠지. 나는 배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토할 준비 하시고."


"얌마.. 생각하기도 싫은데 벌써부터 겁주냐?"


"우리가 의학도가 아닌 이상 어쩔수 없죠 뭐."


나와 태완이와 수정형은 조용히 걸음을 옮겨 놈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렇게 여유를 두고 조용히 이동하고 있자니 잡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되면 폭격 전이나 후나 별 다를것도 없잖아 미친.. 우리집 물어내 씹새들아!


"쏜다."


수정형이 놈들의 뒤통수가 사정거리에 들어왔는지 조용히 말했다.

나는 형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형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우리 반대편에 있던 좀비 한 놈이 시체를 파먹다 말고

고개를 홱 들어 우리를 쳐다보며 입에 가득 물을 고기를 게걸스럽게 씹기 시작했다.

형이 깜짝 놀라서 못총 쏘기를 망설이자 태완이가 말했다.


"괜찮아요 형. 저놈들 앞을 못 보니까. 그냥 하는 행동일 거예요."


태완이의 말마따나 놈은 다시 시체에 얼굴을 파묻었다.

형은 잔뜩 올렸던 어깨를 천천히 내린 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학


뒤통수 약간 아래에 정확하게 못이 박힌 앞쪽의 좀비는 비명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을 축 늘어뜨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상당한 솜씨였다. 그리고 옆에 있던 놈의 뒤통수에 또 하나.


투슉


놈은 꾸헥 하는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굴렀다.

그 바람에 자세가 흐트러진 좀비 한 놈은 먹던 시체에서 입을 떼고 깜짝 놀라 무언가를 감지하려

벌떡 일어났다.

수정형이 놀라서 그놈의 머리에 못을 쏘려는데 순간 먼저 엎어진 좀비가 팔을 버둥거리자 일어난 좀비가

놈에게 달려들어 엎어진 좀비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웩.."


"아 미친.."


수정형은 총을 늘어뜨리며 헛구역질을 했고 나는 욕을 내뱉었다. 태완이가 말했다.


"어때, 나머지 둘은 어쩔까?"


아직도 시체에 코를 파묻고 있는 놈은 우리를 정면으로 향한 상태다.

이마에 못을 박아봤자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엎어진 좀비를 파먹고 있는 놈은 옆을 향한 상태라 각도가 상당히 애매했다.

나는 수정형에게 말했다.


"우리가 저 새끼 처리할테니까 저 자기 친구 뜯어먹는놈 좀 어떻게 해 봐요."


"알았어."


형의 대답을 들은 내가 손도끼를 들고 앞의 좀비를 처리하려는데 태완이가 나를 막았다.


"내가 할게."


태완이는 검을 왼쪽 허리춤에 끼우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조용한 걸음으로 앞의 좀비에게 다가갔다.

놈은 밥을 먹느라 태완이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상태였다.

 태완이는 검을 칼집에 꽂은 채 놈에게 다가가더니,

팔의 각도를 살짝 숙이며 엄청난 속도로 칼을 꺼내며 좀비의 이마에 가로로 칼집을 넣었다.


쩌걱


다음순간 놈의 눈가에 가로줄이 난 것이 보였고, 놈은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가 놀라서 입을 쩍 벌리며 태완이를 쳐다보는데 옆에서 자기 친구를 먹고 있던 놈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태완이의 검이 더 빨랐다. 태완이는 정확하게 놈의 정수리에 검을 꽂아 그 머리를 세로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깜짝 놀라 덩달아 총을 쏜 수정형의 못이 그 좀비의 가슴팍에 세 개 꽂히며 마무리.


나는 입을 벌리고 있다가 말했다.


"나 이제 너랑 안 싸울래."


"하하.. 진검을 들었으니까 그런 거지 뭐. 애라도 칼 들면 전쟁에서 쓸 수 있다잖아."


태완이는 칼을 팍 털어낸 뒤에 칼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태완이의 칼에서(정확히는 우리 관장님의 칼에서)

뿌려진 기다란 타원형의 핏자국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검도 삼배단이란 소리가 괜히 있는게 아니구나.

나는 오늘 칼이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새삼 깨달았다.

나도 검도나 할까? 종합격투기 때려치우고.


나는 눈가에 가로줄이 난 채 죽어버린 좀비의 머리를 발끝으로 톡톡 건드려 보았다.

조금만 힘을 주면 머리가 가로로 갈라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참으며 말했다.


"이게 발도술이라는 거냐? 졸라 무섭네."


"칼을 꺼내면 기척이 느껴질 것 같아서, 언젠가 배웠던 걸 흉내 한 번 내 봤어. 신문지는 잘라봤는데 좀비들

머리통을 그렇게 자를 수 있을 줄은 몰랐지. 하하."


하하라니? 사람 머리를 반으로 갈라놓고 잘도 웃음이 나오겠다. 제일 위험한건 이 녀석 아냐?


"웁.. 우웨억! 쿨럭!"


좀비들에게 처참하게 뜯어먹힌 시체를 본 수정형이 곧바로 고개를 돌리며

아스팔트 바닥에 토를 하기 시작했다.

오 다행이군.. 나도 금방 시선을 내려서 시체를 보려고 했는데 형이 대신 봐줄 줄이야.

나는 형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어때요? 그 누나예요?"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말을 던진 나는 다음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형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형을 다그쳤다.


"지.. 진짜예요? 진짜 그 누나예요?"


"어.. 옷이 그 사람이야. 확실해."


"말도 안돼! 사람 찾으려 밖으로 나와서 제일 처음 본 시체가 그 사람이라니 뭐 이런 엿같은.. 아 썅!"


나는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으면서 의미없는 확인을 위해 그 시체를 쳐다보았다.

시체는 온몸에 이빨자국이 나 있고 다리 한 쪽이 없는데다 배가 다 터져있는 여자의..

그야말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평소같았으면 금방 욕지기가 올라왔겠지만 지금은 머리에 열이 뻗쳐 별로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름이를 데려오지 않기를 잘 했군.

다리가 한 쪽이 없고 아랫배가 그을려있는 걸 보니 아마 여기서 바로 폭격에 당한 듯 싶었다.

나는 쇠파이프를 땅에 집어던지며 다시 욕을 내뱉었다.

땅을 쳐다보고 있는 내 귀에 다시 수정형의 구역질 소리가 들려왔다.


태완이가 한숨을 쉬며 인도의 난간에 걸터앉아 말했다.


"김빠진다.. 아름이한텐 뭐라고 하지?"


나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아름이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길 건너편에서 우리에게 팔을 흔들었다.

사실을 들으면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려는지 짐작도 안 간다.


좀비사태가 난지 사흘만에 우리는 동료를 하나 잃고 말았다.

비록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 역시 나름대로 삶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을 텐데.


다시 내 눈 앞에서 이 꼴을 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전의 준비를 하고 발걸음을 뗀지 딱 10분만에 나는 모든 의욕을 잃고 말았다.

 

 

 

 

 

최후의 생존까지, 아직 30일-

 

 


12화-The Sniffer

 

"괜찮아?"


"네.. 충격이긴 했지만.. 요전에 안 사이고..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했을 뿐이예요."


지혜 누나의 죽음을 확인한 우리는 아름이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녀석은 얼굴이 새햐얘지기는 했지만 걱정했던 것 처럼 울고불고 난리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수정형이 아름이를 설득할때 말했던 '계기' 가 없어졌으므로 너는 우리와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말했지만 녀석은 괜찮다고 말했다.


니가 괜찮은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란 말이다.

의욕없는 녀석을 구하려다 다시 동료를 잃는다면, 설사 녀석을 구한다 해도 그건 적자다.

이 게임에서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들어가라고 한 건데..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름이를 내려다보았다.

생각보다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아도 글쎄..

막상 놈들을 앞에 두고 있다면 어느 정도의 행동력을 보여줄런지.

그래도 자기 입으로 나서겠다고 했으니 일단은 믿어보자.


폭격의 효과는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큰길로만 나가면 좀비들로 들끓었는데 지금은 동네가 상당히 한산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골목골목마다 돌아다니는 놈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우리들은 꼭 필요할 때만 녀석들을 처리하고 불가피할 때에도 어지간하면 밀어내면서 길을 만들어 나아갔다.

도중에 녀석들을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 아름이에게서 식칼창을 빼앗아 든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좀비사태가 일어난지 딱 사흘째다.

그런데 도무지 사람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새 차를 타고 빠져나간건지, 다 죽어버린 건지, 숨어있는 건지 알아 낼 도리가 없었다.

무턱대고 아무 집이나 찾아들어갔다가 좀비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부를 수도 없고..


무엇보다 눈에 밟히는 건 폭격의 흔적.

큰길가에 나 있는 큰 건물이다 싶으면 예외없이 구멍투성이었다.

길 자체는 말 할 것도 없다.

가만히 걷고 있다가 얼굴에 뭐가 찰싹 붙어서 떼어내보니 무슨 재 같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공기에 잿가루들이 가득했다.

대학가라 붐비는 교통량으로 인해 항상 탁한 공기를 지닌 동네였지만 이렇게 폭격이 지나간 뒤니

더 심해진 건 당연하다.


수정형이 말했던 편의점은 이제 5분거리.

우리는 조금만 더 가면 그 편의점이 있는 골목에 들어갔다.

하지만 머지않아 갈림길에 봉착한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였더라?"


"기억이 안 나네.."


유일하게 그 곳을 알고있는 수정형과 내가 동시에 말했다.

우리 뒤를 따르고 있던 태완이와 아름이가 그런 우리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어디로 갈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 건물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빠르게 고개를 돌려 담이 둘러진 한 가정집의 창문을 보니 누군가가 뒤로 빠지며

커튼을 치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내가 소리를 치면서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려는데 태완이가 나를 잡았다.


"왜 그래? 사람이 있다구!"


"냅둬. 지금은 우리만으로도 바쁘다구. 다른 생존자를 본 순간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저 인간..

혹은 인간들은 우리와 협력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소리야."


"태완이 말이 맞아. 무시하자."


인간의 마음이 저렇게 황량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 집의 창문을 원망섞인 눈으로 노려본 뒤에 이를 꽉 물고 고개를 돌렸다.

잘먹고 잘살다가 뒤져라 개꼬추같은 새끼야.

나는 근처에 좀비들만 보이지 않았어도 돌을 던저 유리창을 깨뜨려버렸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흩어질까요? 어차피 이 근방일텐데."


"그러자."


"그럼 5분있다 일로 다시 오기로."


"근데 누구랑 누구랑 가?"


태완이가 말하자 나는 걸음을 옮기다 말고 뚝 멈추었다.

그러고보니 그렇군. 누구랑 누구랑 가지?

살아남기 위해선 태완이를 내 옆에 두고 싶지만 아름이랑 수정형은 혼자 두기엔 영..


고민하고 있는 내 눈에 아름이가 쥐고 있는 식칼창이 들어왔다. 나는 그걸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랑 아름이랑 가지 뭐."


"네?"


아름이가 깜짝 놀라서 날 쳐다보았다. 나는 녀석의 반응에 놀라 말했다.


"뭐, 싫어? 싫으면 태완이랑 가. 대신 식칼창은 나 주고 이 쇠파이프로.."


"아, 아니, 아니예요. 그냥 놀라서요."


아름이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하자 나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제발 뭐 결정할 때 마다 네? 예? 하는 버릇좀 고쳐라. 우린 지금 1분 1초가 아깝다구."


"네.."


내가 아름이에게 핀잔을 주자 옆에서 태완이랑 수정형이 웃었다. 나는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자 그럼 조금있다 보자구요. 그 편의점이 멀쩡하길 바래야죠."


"아 진환아. 이거 하나 가져가."


수정형이 막 떠나려는 나를 붙들고 화염병을 내밀었다.

나는 거절하려다가 장거리 무기를 든 사람이 내 쪽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생각해내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화염병은 꽤 조잡했다.

크기가 클 수록 안에 든 연료가 많을테니 강력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선 휴대성을 최우선해야 하기 때문에 이 화염병의 크기는 꽤 작았다.

색을 보니 소주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거기 심지에 불을 붙이고 던지면 돼. 단 멀리 던져야 한다는 걸 잊지 말고. 화염병은 던져서 병이 깨지는 순간,

 던져진 관성과 병이 깨진 충격에 의해 퍼지는 석유가 공기중의 산소에 노출되고 심짓불이 옮겨붙으면서 확

터지는 거야. 만약 불씨가 옮겨붙은 석유가 한 방울이라도 네 몸에 닿으면 대단히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

조심해."


"크게 다치다뇨? 구체적으로 어떤.."


"피부에 닿으면 그 근처는 다 타들어갈 정도. 거기다 옷까지 입고 있으니까 말 다 했지 뭐. 소이수류탄만큼은

아니지만 연료에 의해 붙은 불은 대단히 잠식성이 강하거든."


볼 살에 불똥이 튀어 온몸으로 불이 옮겨붙으면서 어젯밤 상대한 달리는 좀비들 꼴이 될

나를 생각하니 오싹하며 소름이 돋았다.

나는 등에 지고 있는 등산용 배낭의 물병을 넣는 망 부분에 화염병을 곧게 밀어넣으며

아름이에게 뒤에서 잘 보라고 말했다.

형은 덤으로 라이터도 하나 건네주며 태완이와 저쪽 골목으로 사라졌다.


"자 우리도 가자구."


"네."


우리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자리를 뜨면서 아까 우리를 보고 커튼을 닫은 집의 창문을 다시 한번 째려보았다.

아예 지금 저기다 화염병을 던져버려 그냥?


다행히도 골목은 꽤 넓었다.

벽쪽에 붙어있는 좀비들은 무시하고, 이동로에 있는 녀석들은 밀어내거나 하면서 이동하고 있자니

꽤나 지루했다. 나는 아름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살아났어?"


"네?"


"어떻게 살아났냐구. 이 난리통에서."


아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괜히 물어봤나 하며 저편에 서 있는 좀비를 주시하는데 아름이가 입을 열었다.


"미술학원에 있었어요. 저녁스케쥴에 따라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재료를 사러 나가셨던 원장선생님께서

팔을 물어뜯기신 채 학원으로 돌아오셨어요. 아이들이 모두 난리가 나서 부 원장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조퇴처리 시키려 하시는데 원장선생님께서 부 원장선생님 뒤에 나타나 모.. 목.. 목을.."


아름이가 말을 하다 말고 그 때의 상황이 생각나는지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녀석이 양 손으로 쥐고 있는 식칼창이 내 얼굴 근처에서 흔들리자 나는 고개를 튼 뒤 녀석의 뒤로 돌아가서

어깨를 잡으며 급히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물어서 미안하다."


"흐흑.. 흑.."


"자연스러운 현상을 참으라 해서 미안하다만 울지 않아줬으면 한다.. 니가 울으면 좀비들이 몰려올테니까."


내가 두리번거리면서 말하자 아름이가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친구들 생각이 나서 그만.. 흑.."


친구들이라.. 그러고보니 아직 연락할 놈들이 많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미국에 금방 갈 예정이라 핸드폰 서비스를 중지시킨 상태다.

이번 일이 진정되고 아지트가 안정되고 나면 다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봐야겠다.


이제 골목을 거의 빠져나왔다.

한 칸만 돌면 되는데 언제나 그렇듯 이런 순간 좀비 한 놈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놈은 멀쩡한 상태였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벽 쪽에 처박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아까만 해도 그냥 지나갔겠지만 이 골목 출구는 전봇대 때문에 상당히 좁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멀쩡한 놈 뒤를 무시하고 지나갈 정도의 모험을 할 배짱은 내게 없다.

나는 아름이에게 말했다.


"어때, 니가 해치워 볼래?"


"네, 네? 무, 무리예요! 무리! 무서워요."


아름이가 고개를 마구 흔들자 나는 한숨을 길게 뽑았다. 기대한 내가 바보지.

하기사 세상 어느 여고생이 '식인괴물 머리 뽀개볼래?' 라고 물었을 때 '응!' 이라고 대답할까?

하하. 이거 웃을 수도 안 웃을 수도 없구만.


나는 조용히 손도끼를 꺼내 놈에게 다가갔다.

놈은 좀비로 변하기 전 큰 충격을 먹은건지 어쨌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벽에 고개를 처박고 있을 뿐이었다.

사정거리에 놈의 뒤통수가 들어오자 나는 이를 까득 물면서 어깨 저편부터 손도끼를 풀스윙으로

올려쳐 놈의 뒤통수와 목 사이에 손도끼를 꽂아넣었다.


뻐걱


굉장히 기분나쁜 소리가 나면서 놈의 뒤통수가 빠개지고 놈은 5센치정도 공중에 떳다가

빠르게 땅으로 무너져내렸다.

나는 깨어진 놈의 골을 보지 않기 위해 빨리 고개를 돌린 후 팔에 튄 피를 닦아내었다.

아름이를 바라보니 녀석은 눈을 꼭 감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 이끌었다.


"빨리 나가자. 여기 그 편의점이 없으면 되돌아가야 하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아까 골목에서 마주쳤던 놈들이

얼마나 되나 기억해 둬."


"으으.."


여기까지 와서 싫다고 해봤자 뺄 수도 없다.

아름이는 정말 싫다는 식으로 신음소리를 내며 내 뒤를 쫓아왔다.

골목을 돌아서는데 내 눈에 폭탄을 크게 맞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집의 모습이 들어왔다.

기와를 얹은 현대식 집이었는데, 분명 폭탄을 맞은 흔적이 보이는데도 기적적으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걸 잠깐 본 뒤 나는 옮겨온 길을 확인했다.

좀비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지만 불행히도 그 편의점은 보이지 않았다.


"..아 신발."


아무리 나라고 해도 평범한 대한민국의 일반인이다.

안전하게 지나온 길이라 하지만 그곳에서 나를 다시 기다리고 있을 좀비들의 얼굴을 생각하지 진저리가 났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돌아가야지. 아름이가 불안한 말투로 말했다.


"어.. 없는거예요?"


"그래. 미안하다. 삽질하는 길에 널 끌어들어서. 미안하지만 다시 되돌아가야겠어."


"히잉.."


아름이가 울상을 지으며 울먹거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돌아가는 수 밖에.

다행히 저쪽엔 태완이도 있고 편의점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수정형이 있으니

우리가 올 것에 대비해 더욱 확실한 대처를 해 놓고 갈림길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자니 불안이 조금 가셨다.



"음?"


몇 걸음을 더 옮겨 폭격맞고 폐허가 다 된 집의 돌담 옆에 서 있는데 순간 뭔가가 내 볼을 탁 때렸다.

나는 인상을 씨푸리며 그 물체를 보았다.

조그마한 돌조각이었다.

녀석이 날아왔을 곳을 쳐다보니 그 집의 담이 금방 무너지려는지 빠직 빠직 소리를 내면서 금이 가고 있었다!


"꺄악!"


나는 아름이에게 달려들어 녀석을 밀쳐내면서 나도 역시 저편으로 다이빙해 한 바퀴를 굴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 집은 바로 무너졌다.


쿠르르릉


꽤 크고 무거운 소리가 나면서 엄청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나는 쿨럭거림면서 아름이를 일으켰다.


"고마워요 오빠. 콜록! 콜록!"


"쿨럭.. 너 나한테 빚 많이 졌다? 쿨럭.. 언제 나 한번 구해줘야 돼 진짜로."


"헤헤.. 콜록! 어? 오빠 저기 사람이 있어요!"


"뭐?"


아름이가 기침을 하다 말고 먼지구름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덩달아 그쪽을 바라보니 안에 사람이 있는 것도 같았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안을 쳐다보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와주시오.. 누구.."


"젠장!"


진짜로 사람이 있었다.

목소리로 보니 할아버지 같았다.

나는 먼지구름 안으로 들어가 발로 돌조각들을 밀치면서 말했다.


"어디예요! 구하러 왔어요!"


"여.. 여기.."


내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팔을 마구 휘저어 먼지를 떨쳐내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 집을 둘러싸고 있던 돌담의 안쪽에 몸을 기대고 누워 있었는지,

할아버지 한 분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하반신이 무너진 집의 파편에 파묻힌 채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의 다리쪽에 쌓인 돌조각들을 치워내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요! 꺼내드릴게요!"


"쿨럭.. 고맙네 학생.."


"오빠 누구 있어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어! 도와줘!"


아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내가 외쳤다.

곧 아름이도 안쪽으로 들어와 나를 돕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집은 이 할아버지 근처로만 무너졌지 바로 덮치지는 않았어서

이 분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얇게 쌓인 먼지, 모래와 돌조각들을 치우고 나는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무너진 집의 파편 속에서

그 분을 꺼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노란색 재킷과 헐렁한 바지, 운동화를 신고 계셨고 옆으로 매는 작은 가방을 메고 계셨다.

나는 쿨럭거리면서 말했다.


"왜 우리가 이 앞에 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미안하네.. 아무 것도 듣지 못했어. 늙은 몸이라 귀가 어두워서."


"오빠! 저놈들이!"


아름이가 다급히 말하자 나는 아까 우리가 온 골목 쪽을 쳐다보았다.

아까 저 쪽에서 밀치고 지나온 좀비 몇 놈이 집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고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욕을 씹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달릴, 아니, 걸을 수 있으시겠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못 걷는 게 당연하겠지.

나는 다시 욕을 한번 내뱉은 후 아름이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너를 써먹게 된 것 같네, 아름아. 내 뒤를 봐 줘. 이제부터 골목을 돌아서 아까의 합류지점으로

갈 거야. 꽤 돌아가야 할 것 같으니까 니가 잘 해줘야 해."


"네.. 네!"


아름이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녀석도 자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름이에게 배낭을 맡긴 뒤, 할아버지를 아예 업어버리고 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를 업고 있자니 아까 이 분을 구출해 내면서 보았던 옆으로 메고 있었던

작은 가방이 손에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뭘까 이건.

 

골목을 돌아나오자 큰길이 보였다.

여기 역시 폭격의 상흔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다행히도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힘이 별로 센 편이 아니라 꽤 힘이 들었지만 지금은 살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이를 꽉 물고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그나마 좀비들이 없어서 안심하고 발을 옮기고 있는데 저편에 뭐가 보였다.


"학생, 내가 줄 게 있는데.."


"잠깐만 기다리세요 할아버지. 조용히! 앞에 좀비 한 마리가 보여요."


"좀.. 뭐라구?"


"그냥 조용히 좀 계셔주세요 제발!"


나는 조용히 할아버지에게 말한 뒤 녀석을 주시했다.

희한하게도 놈은 땅에 엎드린 채 네 발로 기어다니고 있었다.

딱히 빨라보이지는 않았다.

기어다니는 변종인가? 그렇다면 환영이지.. 아예 다 저렇게 변해버려라 망할.


"아름아. 저 놈은 기어다니는 것 같으니까 니가 창으로 밀어낼 수 있을거야. 할수 있지? 난 할아버지를 업은

채로 전력으로 옆으로 빠질게."


"네. 해볼게요."


대답은 잘 한다..

그래도 이런 상황일수록 동료를 믿어야 한다.

나는 아름이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뛰기 시작했다.

세 걸음인가 갔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쿨럭!"


내 얼굴 옆으로 뭔가가 튀어나왔다. 피였다.

각혈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기침에 피가 섞여나오다니..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이미 늦은 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버리고 갈 수는 없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앞을 보았다.


"어?"


뭔가 이상했다.

저편에 있던 좀비가 보이질 않았다.

나는 순간 방향을 잘못 잡았나 하며 뒤로 도는데 아름이가 외쳤다.


"오빠! 조심해요!"


"어? 우와앗!"


갑자기 내 시야 앞으로 뭔가가 위에서부터 덮쳐내려왔다!

나는 할아버지를 떨어뜨리면서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뭐가 뭔지 몰라서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고 있는데 나와 아름이 사이로 아까 그 기어다니는 좀비놈이

좌악 미끄러지면서 착지를 하는 게 보였다.

아니 그럼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점프해서 왔다는 소리야?


내가 정신없이 머리를 돌리고 있는데 놈이 다시 펄쩍 뛰어 내 쪽으로 뛰어들었다.


"우아악 신발!"


나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굴러 엎어졌다.

이제 죽었구나 하고 있는데 놈이 이상한 방향에 착지를 해 땅에다 입을 대며

마구 손으로 그곳을 후벼파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잠시 녀석이 하는 양을 쳐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피하고 보자!


"아름아 빨리 와! 할아버지 죄송해요! 좀 끌고갈게요!"


나는 아름이에게 외친 뒤 할아버지를 질질 끌고 폭격에 맞아 박살이 난 어떤 건물의 벽 뒤로 숨어들어갔다.

놈과의 거리는 불과 5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힘들어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안쪽에 기대놓고 벽에 등을 대는 순간 아름이가 뛰어들어와 내 옆에 붙었다.

나는 벽 너머로 놈을 쳐다보았다.


"뭐 하는 거야..?"


놈은 아까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있었던 곳 근처의 땅에 코를 대고 마구 이빨을 들이대는가 하면 손톱으로

마구 그곳을 긁거나 하는 짓을 하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곳을 보고 있자니 빨간 것이 눈에 들어왔다. 피였다.


"아아, 아까 할아버지가.."


놈은 땅에 떨어진 피에 대고 마구 냄새를 맡고 손으로 그곳을 후벼파더니 잠시 뒤

동작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코를 킁킁거렸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놈이 저런 짓을 하고 있으니 정말로 괴상했다.


피.. 피라. 우리가 근처에서 막 소란을 피우며 지나가도 몰랐는데 피에만 집착을 하다니..


"내.. 냄새를 맡는 게 아닐까요?"


아름이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깊은 건 놈의 도약력.

저런 놈이 불시에 나를 덮쳤다면 그건 그야말로..


"쿨럭!"


다시 할아버지가 기침을 했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아니 지금 소리가 문제가 아니지.. 냄새가..


콰앙


"으악!"


"꺄악!"


벽에 몸을 대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며 그 벽이 울리자 나와 아름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벽에서 떨어졌다.

빠르게 벽 너머에 고개를 내밀고 확인해보니 그 놈이 보였다.

그새 피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뛰어왔다가 벽에 부딫힌 것이다.

이 벽이 없었으면 지금쯤 저 할아버지는 놈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놈은 킁킁거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아름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놈 냄새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가 뒤로 돌아가서 죽일게. 혹시라도 할아버지 근처로 놈이 가면 니가

막아야 해. 알았지?"


"네."


아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벽을 등에 댄 채 게걸음을 해 벽의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놈을 보니 놈은 아직도 저편에서 냄새를 감지하고 있었다.

저기까지 걸어서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 뭔가 미끼가 있으면..


순간 내 머릿속에 화염병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아름이에게 다가가 화염병이라고 입모양으로만 말한 뒤 뒤로 돌라고 시켰다.

아름이가 뒤로 돌자 나는 화염병을 배낭 옆에서 꺼낸 뒤 아까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니 놈은 아까 피가 있던 자리로 기어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화염병의 심지를 뽑은 뒤 벽 너머 내 앞쪽에 석유를 뿌렸다.

아니나다를까 내가 맡을 정도로 석유의 냄새가 확 퍼지자 놈이 그새 방향을 틀어 이 쪽으로 뛰어들었다.

놈은 석유 위로 착지해 손을 마구 휘둘렀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화염병의 심지를 다시 꽂고 땅에 내려놓은 뒤 손도끼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놈은 지근거리에서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


"후우우.."


나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길게 한숨을 뽑았다. 그 순간 놈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우와악!"


나는 가까스로 몸을 틀어 벽 안쪽에 넘어졌다.

하지만 놈은 그대로 방향을 틀어 내 쪽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당황해버린 내 입에서 마구 뿜어져나오는 입김이 놈을 불러들인 것 같았다.

나는 욕 한번 외칠 새도 없이 엎어진 채 손도끼를 고쳐잡으려 했다.

하지만 놈이 너무 빨랐다.

나는 손도끼를 손에서 놓고 몸을 틀어 놈을 피하려 했다.



"끄아악! 귀가!"


놈이 어떤 식으로 몸을 확 틀며 내 근처로 지나가는 순간 픽 소리가 귀에서 울려퍼졌다.

다음 순간 내 오른쪽 귀 쪽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오른쪽 귀로 모으자 피가 후두둑 쏟아지는게 느껴졌다.

윗쪽 귓바퀴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미친 강아지! 죽여버릴.."


고통과 분노가 반쯤 섞여서 눈이 돌아버린 내가 손도끼를 집어드는데

내 눈에 다시 들어온 건 달려들기 직전의 그 변종 좀비였다.


탕탕 탕


탕-


갑자기 큰 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눈을 꽉 감고 있던 나는 잠시 그대로 있다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조심스레 눈을 떴다.

눈을 뜬 나는 뒤통수와 등에서 김을 피우며 앞으로는 피를 쏟고 있는 채 땅에 엎어진

그 변종 좀비를 볼 수 있었다.


"하.. 하하.. 뒤지는 줄 알았다.. 신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도 모른 채 허탈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그 자리에 무너졌다.

숨을 고르고 있는데 아름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 할아버지! 그거.. 총이예요?"


총?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몸을 반만 일으킨 채 힘겹게 양 손으로 권총을 쥐고 계셨다.

방금 불을 뿜은 권총의 총구에선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놈이 확실하게 죽었다는 걸 확인한 할아버지는 신음을 뱉으시며 손을 늘어뜨리고

다시 몸을 기대며 쓰러지셨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얼른 다가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쿨럭.. 난 괜찮네 학생.."


별로 안 괜찮아보입니다만은.


나는 할아버지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고개를 흔들며 내 손을 거부하고는 말했다.


"나는 됐네. 방금도 나 때문에 당한 일이잖나.. 나는 이제 머지않아 죽을 몸이야. 나 때문에 밖으로 나간 순경

아들놈도 돌아오지 못했고.. 그러니까 두고 가게."


"그럴 수는 없어요!"


내가 외쳤지만 할아버지는 아랑곳않고 고개를 흔든 뒤 기침을 한 번 하면서 내게 작은 가방을 건넸다.

옆으로 메는 카메라 가방 크기의 검은색 백이었다.

아까 보았던 그거였다.

열린 상태의 그 가방 안엔 아까의 권총과 몇 개의 탄창이 들어있었다.

탄약도 보였다.


"아들 순경놈이 나한테 맡기고 간 걸세. 이걸 가지고 가.. 너희들을 보고 있으니 내 손자녀석이 생각나는구나."


"할아버지!"


"빨리 가!"


내가 외치자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소리를 치셨다. 내가 깜짝 놀라서 움찔하자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말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나는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따라가서 너희들을 또 위험하게 하느니 여기에 남겠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내 아들놈을 찾아봐 주겠나? 이름은 신 성환이라고 하네."


나는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아름이가 나를 잡은 뒤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입술을 꽉 물었다.

물고있는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잠시 생각한 뒤 나는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하지만 전 절대 할아버질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 계세요. 동료들을 데려올게요."


"그럴 필요 없어."


"필요 있어요! 더 이상 내 앞에서 사람이 죽는 꼴을 두고볼 수는 없다구요!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세요."


나는 아름이에게 손짓을 한 뒤 그 총가방을 챙기고 빠르게 자리를 떳다.

벽을 등지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다시 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한층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빨리.. 빨리!

 

 

 

 


최후의 생존까지, 아직 30일-

 


**외전**


"경장님! 놈들이 바리케이트를 뚫을 것 같습니다!"


"막아라! 어떻게 해서든 막아! 최 경관, spas 12 멀었어? 빨리 가져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경찰서 안.

몇 명의 생존자 가족들과 함께 얼마 전 한국을 오염시키시 시작한 '놈들'에게 맞서서 싸우고,

아니, 버티고 있는 중이다.


"경장님! 실탄 준비했습니다! 샷건은 아직입니다!"


"빨리빨리 장전해! 그리고 여기 계신 아버님들! 권총 쏠 자신 있으시면 도와주세요!"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창문 밖으로 '놈들' 중 한 놈이 입에서 피와 침을 질질 흘리며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저런 건 처음 본다.

생긴 건 사람인데, 인육을 탐한다.

놈들은 죽여도 죽지 않으며, 죽었으며 죽지 않았다.

저런 걸 좀비라고 했던가? 언젠가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설마 그런 걸 실제로 보게 될 줄은.


저것들은 갑자기 나타났다. 온 나라가 알아채지 못한 상황에서 저 괴물들이 퍼져나온 모양이다.


내 이름은 신 성환. 나이는 27세.

막 경장이 된 파릇파릇한 차기 간부다.. 랄까, 나이먹어서 이런 말 하니까 좀 우습군.

여하튼 나는 지금까지 그릇된 삶을 살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경찰이 되어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아니, 그렇게 살고 있었다.


허나 나의 그 자부심으로 가득찼던 삶은, 얼마전 가당치도 않게 무너져버렸다.


"경장님, 바리케이트가!"


"나도 알아! 모두 사격준비!"


철컥- 철컥-


몇 명은 어설프게, 몇 명은 익숙하게 장전을 했다.

우리가 가진 것은 경관용 5발들이 리볼버 다섯 정, 자동권총이 세 정. 그리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샷건이 두 정.. 젠장 뭐 하는거야. 사태는 점점 급박해졌다.

바리케이트가 덜컹거리면서 무너지려고 한다.

놈들의 팔이 얹혀진 걸상들 사이로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끄어어어-"


여기서 이렇게 삶을 마감할 순 없다. 나에겐 지켜야 할 목숨이 있고, 가족이 있고, 국민들이 있다.


"발포!"


타타타타탕-


탕- 탕-


나는 대한민국의 경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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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경장님, 신참들입니다."


언제나처럼 책상에 앉아 다음 주의 스케쥴을 체크하고 있던 금요일 저녁,

동료 경관이 신참 경관들을 이끌고 내 앞으로 왔다.

나는 학생때부터의 버릇대로 들고있던 펜을 귀에 꽂은 뒤 그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경찰대를 나온 엘리트 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의 깊은 눈과는 달리,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이파리 하나부터 시작하는 녀석들의 눈빛은 언제나 또릿또릿하다.


"수고하네. 순찰 갈거지? 같이 가자구."


"아 신 경장 외출하게? 나 포카리스웨트좀."


"직접 사드시게- 자 가자구."


"어이!"


나는 책상 저편에서 들려오는 동료의 말을 무시하고 경관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큰 차선 다섯개가 가로지르고 있는 오거리에 위치한 우리 경찰서는 언제나 일손이 모자른다.

하물며 순찰은 말 할 것도 없다.


밖은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상당히 한산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네. 신 경도입니다."


"하하. 같은 신씨군. 관이 어떻게 되지?"


"평산 신씨입니다."


"오, 우리 친척뻘인데 그래? 앞으로 잘 지내자구. 어디 자네는?"


"신 경장님, 저기.."


아직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경관 한 명이 내 말을 끊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한 남자가 이쪽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고,

그 뒤로 괴상한 움직임을 하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남자가 또 하나 보였다.


"사.. 살려주세요! 경관님들! 좀비야! 괴물!"


"뭐? 무슨 소립니까?"


"히이익! 제길 아직도 쫓아오잖아! 당신들 총 있죠? 쏴버려요 저 미친.. 으아아아!"


급히 달려온 그는 우리 앞에서 허둥거리며 경관들의 총을 뺏으려다가 어느새 가까이까지 다가온

그 비척거리는 지저분한 남자를 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뭐야..? 아니 당신 뭐야? 수상한데?"


"어이 신 경관.."


"괜찮습니다, 경장님. 이런 일 하려고 경찰 된 거 아닙니까. 어이 당신!"


신 경관은 그 비척거리는 남자에게로 다가가 외쳤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묘한 움직임으로 그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거기 멈춰! 방금 달아난 사람과 무슨 관계지? 어이! 멈추라고 했잖아! 당신 경찰 말이 우습게.."


"끄어어어-"


"앗!"


퍼억


묘한 움직임으로 경관에게 다가온 그 남자가 갑자기 팔을 벌리며 그에게 달려들자

그는 깜짝 놀라 그 남자를 주먹으로 때려 버렸다.

그 남자는 잠깐 주춤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주먹을 들고 있는 신 경관에게 외쳤다.


"이봐! 민간인을 때리면 어쩌자는 건가! 징계받으려고 작정했어?"


"아니 지금 이 자식이 절 물려고 했어요! 이.. 어?"


그와 대화하느라 잠깐 한눈을 팔고 있던 사이, 고개를 돌리고 있던 그 남자가 갑자기 그에게 몸을 들이댔다.

신 경관은 그를 팍 밀친 뒤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이봐 당신! 정신나간 척 하면서 경찰을 놀릴 거면.."


콰작


"끄아아아악!!"


신 경관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 남자가 경관의 팔을 물어뜯었다! 그냥 물은 정도가 아니라

고기를 베어물듯 한 입을 크게.

신 경관의 팔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오자 다른 신참 경관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나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잠깐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으아아! 팔이! 팔이.."


신 경관은 피가 쏟아져나오는 팔을 잡고 몸부림치다 땅에 엎어져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총을 꺼내며 말했다.


"이봐! 당신 미쳤어? 거기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


"겨.. 경장님!"


"끄어억-"


"아아아아악!!"


단말마라고 했던가? 사람이 죽을 때 내는 비명소리 말이다.

그 괴한은 쓰러져 있는 신 경관에게 달라붙어 얼굴과 목을 가차없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보는 잔혹한 광경.

물어뜯기는 신 경관은 무력하게 그저 한쪽 팔만을 덜덜 떨며 이름모를 괴한에게 '먹히고' 있을 뿐이었다.


"욱.. 우웨엑! 뭐.. 뭐야! 미친.. 괴물!"


다른 신참이 애써 구역질을 참으며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나는 홀린듯이 그 괴한의 식인행위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빨을 꽉 물고 권총에 실탄을 장전했다.

나는 경관이 무전을 하는 동안 놈에게 총을 겨누고 그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지원요청! 지원요청! 여기 식인행위를 하는 괴한이 경관을 습격했다! 즉시 지원 요청 바란다!"


"큭!"


눈 앞에서 내 동씨의 후배가 뜯어먹히고 있다. 이걸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이빨을 힘껏 깨물며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제지하고 있는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비상경보 발령.

서울시 내 경관들은 사람에게 달려드는 사람을 닮은 식인괴물들을 보는 즉시 발포할 것.

반복한다. 적색경보.

서울시 내 경관들은 사람에게 달려드는 식인괴물들을 보는 즉시 발포해 제거하라.


"뭐라고?"


치익-


무전기에선 대답 대신 다른 무전이 흘러나왔다. 사람을 쏘란 말인가?


머릿속으론 그렇게 고민하면서도 내 몸은 망설이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뜯어먹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발포허가가 귀에 들리는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처먹어!"


탕 탕탕-


"경장님! 이게 무슨.."


"이게 무슨이라니! 사람이 뜯어먹히고 있는데 그럼 발포하지 말라는 말인가? 자넨 그정도 자각도 없어?

그리고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지 않나!"


"하.. 하지만!"


"허어- 쿠워억.."


그 괴물에게 총을 쏜 나를 보고 놀란 경관과 말싸움을 하고 있는데 예의 그 괴한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 가슴에 총알 세 발을 박았는데 살아 움직이다니?


"허어- 허어-"


"히이익..! 이게 무슨?"


신참 경관이 놀라 다리를 덜덜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총알을 다시 장전하고, 이번엔 기어오고 있는 그 괴한- 아니, 괴물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자네, 빨리 경찰서로 한발 먼저 돌아가 사태를 알아보게."


"네.. 네! 아니 그것보다 저도 이 괴물을.."


그는 내 지시를 따르지 않고 이 괴물을 죽이려 했다. 총을 꺼내들으려는 경관에게 내가 다시 다그쳤다.


"빨리 가라고! 내 경찰짓 하면서 적색경보라는 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리긴 처음이야! 빨리 가!"


"네.. 네!"


경관은 그제서야 내게 경례를 붙이고 뒤로 뛰어갔다. 자 이제 너와 나만 남았다 괴물자식아!


"뒤져라, 미친 놈!"


투학


머리에 털나고 사람의 머리에 총을 쏴 본 건 처음이다.

비록 효과적 살상을 위한 총은 아니지만 내 경관용 권총에 장전된 실탄이 이마에 박히자

놈은 뒤통수를 터뜨리며 그 자리에 엎어졌다.

그리고 내 눈 앞엔 정말이지 처참하게 죽은 시체가 두 구 남아있을 뿐이었다.


"..."


나는 숨을 몰아쉬며 총을 집어넣었다. 이 일을 하고 먹고살려면 나름대로 눈치가 있어야 한다.

지금 내 머릿속엔 이런 말이 울리고 있었다.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라고.


나는 죽은 동료에게 잠깐이나마 목례를 한 뒤 그의 시체를 내버려두고 경찰서로 되돌아갔다.

되돌아가는 잠깐의 시간 동안 나는 몇 번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려는 거야 이 나라가..


이윽고 경찰서에 당도한 나는 전에 본 적 없이 미친듯 바쁘게 돌아가는 경찰서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입을 벌리고 서류와 장비들이 날아다니는 서 안을 쳐다보고 있다가 지나가는 동료 경장을 붙잡고 물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 지금 사람을 쏘고 왔어!"


"뭐? 자네 저 괴물을 봤단 말야?"


"그래! 경관 한 명이 죽었다고! 지금.."


"젠장! 지금 말할 시간 없어! 저기 TV를 봐!"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TV를 가리킨 뒤 뭔가를 잔뜩 안고 허겁지겁 다른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는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을 밀치고 안쪽으로 들어가 나와 비슷한 상태에 놓여있는 듯 한

다른 경관들과 함께 TV를 쳐다보았다.

TV에선 묘한 것이 보도되고 있었다.

K-바이러스.. 좀비.. 서울 시가지에 식인괴물 출현.. 신 바이러스 감염폭발.. 미합중국 주둔군대 철거준비..


"미친.."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내 책상으로 가 총과 지갑등 필수품을 챙긴 뒤 서의 뒷문으로 나왔다.

나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로 바빴기 때문이다.


지금 뉴스에 보도된 상황이 사실이라면 우리 가족이 위험하다.


차에 타려는 내 뒤로 서내에서 긴급방송이 흘러나오는 게 어렴풋이 들렸지만 지금은 그걸 들을 경황이 아니다.

들으나마나 식인괴물이 어떻고 발포허가가 어떻고 하는 내용이겠지..


집은 여기서 차타고 10분거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사람들은 좀비사태에 대해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맡고 있다는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평소의 나였더라면 집집마다 억지로라도 문을 열고 위험을 알려줬을테지만,

가족이 위험한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다.


마음을 굳게 먹고 잠시만 경찰로서의 의무를 잊고 있자고마 다짐하느라 잠시 운전대에서

정신을 떼어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창 앞에 인영이 나타나는 것이 느껴졌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브레이크를 밟으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콰다아앙


급한 마음에 제한속도 이상으로 달리고 있던 내 차에 부딫힌 그 사람은 내 앞유리창을 타고 뒤로 날아가버렸다

.

필시 크게 다쳤을 것이다.


사람을 치다니!


아무리 급하다 해도 뺑소니까지 할 수는 없다.

일분 일초가 급한 상황이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차에서 내려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정신차리.."


"께에악!!"


"으아악!"


녀석은 사람이 아닌 좀비였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은 뒤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다시 차로 달려갔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로 친 상대에 대해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인식한 나는

그저 일초라도 빨리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엑셀을 밟는데 백미러로 놈이 이상하게 뒤틀린 몸으로 비척비척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괴물..


큰길가에까지 저런 놈이 돌아다닌다면 이미 늦었다는 건가? 도대체 저건 뭘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다행히도 놈을 친 이후로 지나온 길목엔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알랴, 저 골목 안에서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을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집에 도착한 나는 골목 밖에 차를 세워두고 집까지 뛰어가 급히 초인종을 눌렀다.

마구 초인종을 누르자 얼마 안 있어 아버지께서 대문을 열고 나오셨다.


"아니 성환아, 이런 시간에 웬일이냐? 휴가냈어?"


"아니예요 아버지.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지금 나라 전체가 미쳐돌아가고 있어요. 가족들 때문에 온 건데

다들 어떻게 있죠?"


"응? 뭔 소리냐? 어멈은 애 데리고 자고 있다."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 뒤 준비해놓은 총가방을 아버지에게 건넸다.


"이게 뭐냐? 총이잖아?"


남몰래 장만해두었던 자동권총이다.

전직 경찰이시던 아버지는 단박에 총이란 걸 알아보시고 내게 물으셨다.

나는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잘 들으세요..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니까요. 지금 서울시에 사람을 뜯어먹는 사람닮은 괴물들이

나타났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문 열어주지 마시고 소희랑 명철이 꼭 지켜주세요. 전 제가 할 일을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안으로 뛰어들어가 아내와 갓난아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국민을 제치고 가족들을 챙기러 직무유기를 한 시점부터 나는 경관 실격이다.

내 말을 들은 아버지께선 총가방과 나를 번갈아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셨다.


"알았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만 믿겠습니다."


나는 아버지께 경례를 붙이고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성환아!"


아버지께서 나를 불러세우자 나는 차로 달려가다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께선 나이드신 몸으로 내게 경례를 붙이신 뒤 말씀하셨다.


"몸조심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얼른 차로 뛰어서 돌아갔다.


나는 대한의 건아이자, 대한민국의 경관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다.


미쳐돌아가려는 듯한 한국의 대도시 안에서 과연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13화-다시 한번

 


"우오오오! 비켜!"


퍼어억


반 전력으로 달리고 있던 나는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보인 좀비에게 온 힘을 다해 앞차기를 내질렀다.

어깨춤에 내 발차기를 맞은 그 놈은 내게 팔을 뻗다가 그대로 날아가 자빠지며 두 바퀴를 굴렀다.

이 놈들을 한 마리라도 더 없애야 이 동네에 남은 생존자들에게 득이 될 터..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빨리와 김아름!"


"헉.. 헉.. 네!"


나는 식칼창을 꼬나들고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하루에 한번씩은 꼭 로드웍을 하는데다 격투기로 단련된 나를 평범한 여고생이 따라오는 건 굉장히 힘들 테지.

하지만 아름이는 잘 따라와주었다.

나는 속으로 은근히 감탄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정형과 태완이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돌아가려면 이대로 주욱 유턴을 해야 한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니 그닥 거리껴질 것은 없지만 우리들의 안전수위를 낮추는 것이 또 하나 생겼으니..

바로 아까 만났던 냄새맡은 변종 좀비.

우리가 정신없이 싸우는데 그런 놈이 몇 마리나 나타난다면 진짜 방법이 없다.

그나마 놈들은 평소엔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 같으니 길을 가다 만난다면 그럭저럭 판별이 되겠지만,

뭐 판별한다고 해서 별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미치겠군.."


나는 이를 갈며 다시 골목을 돌았다. 놈들은 확실히 위험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급한 건 할아버지의 생명이다.

나는 입에서 피를 흘리시며 나에게 총가방을 건네주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동료들을 이끌고 돌아가야 한다.

만약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그 할아버지 근처에 좀비들이 나타난다면..


나는 할아버지가 좀비들에게 뜯어먹히는 상상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지금! 이런 상황에서 불길한 상상을 하면 거의 99프로 실현된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있는거냐! 정신차려 김진환!


"헉.. 헉.. 아직 멀었어요 오빠..? 헉.."


"다 왔어! 바로 이 앞이야!"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마치 몇 시간동안 달려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마지막 골목을 돌았다.

쭉 펴진 길이 내 눈앞에 보이는 순간 저만치서 좀비 한 마리가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엔 타정총을 든 수정형과 검을 뽑아들고 있는 태완이가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


"어이!"


"진환아! 무사했구나!"


수정형이 손을 흔들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나는 달리던 발을 멈추고 아름이를 살폈다.

녀석은 심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 해 보였다.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안에서 물을 꺼내 아름이에게 건넸다.

아름이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생수통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몇 모금을 마신 아름이에게서 물통을 받아드는데 뒤에서 수정형이 다가왔다.


"우리 쪽 길목에 편의점이 있었어! 편의점은 무사해! 너희들은 별일 없었어? 앗 진환이 너 귀가.."


수정형이 뜯어진 내 오른쪽 귀를 보며 깜짝 놀라 말했다.

나는 물병을 입에서 떼고 아직 피가 멈추지 않은 귀를 손으로 누르면서 말했다.


"..쿨럭! 별거 아니예요. 안에 좀비들은요?"


"아, 응. 없었어. 근데 문이 잠겨있어서.. 유리를 깨고 들어간다면 보강하는데 손이 많이 갈 거야."


내가 입가를 닦은 뒤 다시 물을 들이키는데 태완이가 다가와 말했다.


"사다리같은 게 있어야 할 거야. 옥상으로 올라가서 거기 출입구로 들어가면 될 테니까. 높은데 있는 출입구야

부숴도 상관없고. 그나저나 너 귀는 어떻게 된 거야?"


태완이가 말을 마치고 내가 물을 다 마실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아름이가 말했다.


"저기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위험해요!"


"응? 무슨 소리야?"


"우리가 갔던 쪽에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우리한테 총도 주시고.. 그런데, 그런데 이상한 좀비가 와서 우리가

할아버지를 거기에 놓고..!"


"내가 말할게. 넌 물이나 더 마셔."


내가 기침을 한 번 하며 입가를 다시금 닦고 아름이에게 물을 건넸다.

정리를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던 아름이는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

내가 녀석을 바라보며 물통을 까딱까딱 흔들자 한숨을 쉬고는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다친 오른쪽 귀를 손으로 누르면서 말했다.


"저쪽에 생존자 할아버지가 한 분 있어. 지금 구하러 가야 해. 아 그리고 붕대좀 줘."


"좀비는?"


태완이가 자기 가방을 열고 응급치료 물품을 꺼내며 물었다.


"얼마 없어. 아 그리고 두 가지 소식이 있어. 좋은 것과 나쁜 것. 뭐부터 들을래?"


수정형과 태완이는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윽고 수정형이 말했다.


"좋은 것."


"그 분이 우리한테 총을 주셨어."


"총?"


"진짜 총? 어떻게?"


수정형이 태완이에게서 붕대를 건네받고 내게 주면서 말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뭉친 붕대로 귀를 누르며 말했다.


"나도 몰라요. 하지만 내 눈 앞에서 발포하는 걸 봤으니까 진짜 총인건 확실해요.. 내가 죽을뻔한 상황에서

날 구해준 고마운 녀석이니까. 그리고 지금 여기에 가지고 있어요."


나는 다른 쪽 어깨에 매고 있던 작은 검은색 가방을 탁 쳤다.

수정형이 손을 뻗자 나는 수정형에게 총가방을 건넸다.

형이 총가방의 지퍼를 여는데 태완이가 말했다.


"죽을뻔한 상황이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나쁜 소식이지.. 다른 변종 좀비를 확인했어."


"어떤?"


"네 발로 기어다니는데.. 냄새를 맡고 반응해. 무쟈게 빠르고, 세. 이 상처도 그 새끼한테 당한거야."


"잠깐 환부좀 보자."


태완이가 내 손을 치우며 말했다. 내 상처를 요리조리 살펴보던 태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물어뜯긴 건 아니지? 이빨흔적 같지는 않아."


"나도 모르겠어. 그 새끼가 어찌나 빠른지, 옆으로 홱 지나갔는데 귀에서 피가 팍~ 하더라. 그리고 정신

못차려서 헤롱거리는 나한테 그 새끼가 달려드는 순간에 할아버지가 총으로 탕탕탕!"


나는 짐짓 손으로 방아쇠 모양을 만들어 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오빠. 이제 거기 치료좀 해요. 물 뿌려드릴까요?"


아름이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을 제지하며 말했다.


"아냐. 그건 식수야. 나중에 수도가 콸콸 나오는데서 씻으면서 해도 안 늦어. 지금은 약이나 바르고 붕대

붙혀놓으면 돼."


글쎄, 곱게 자란 놈들이야 모르겠지만 나는 생으로 팔이 부러져본 적도 있고..

머리통에 발길질 당하거나 배가 시퍼렇게 될 정도로 주먹에 맞는 건 일상다반사다.

맨날 몸에 멍을 달고 다니는지라 이렇게 다쳤어도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나는 왁시근거리는, 반쪽밖에 남지 않은 귀를 만지작거리며 태완이에게 약을 달라고 했다.

마데카솔을 들고 안 보이는 곳에 약을 바르며 씨부렁거리는 나를 보던 수정형이 아예 내 옆에 주저앉아

나를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대충 하고 빨리 출발하죠. 그 분 상당히 위독한 상태예요. 걷지도 못하셔서 만약 그 분 근처에 좀비들이라도

나타난다면.."


"심정은 알겠지만 치료는 굉장히 중요해 진환아. 네가 만약 좀비를 죽이느라 얼굴에 피가 튀었는데 그게

귀로 들어가봐.. 감염된다구."


그러고보니 그랬다.

놈들의 피는 감염성이 있지..

나는 재복이를 구하다가 내가 죽여버린 좀비로 변한 그 커플들을 생각하며 입술을 꽉 물었다.


"붕대 꽉 조여서 붙일테니까 참아."


"걱정마요."


형이 붕대를 둘둘 감으며 점점 환부가 조여들어오자 욱신거리던 귀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이윽고 거의 귀를 다 가릴 정도로 붕대를 감은 뒤 형이 말했다.


"자 이제 가자. 그리고 그 총, 내가 써도 될까?"


"그러는 게 좋겠어요. 나도 사격장에는 가 봤었지만 형보다는 못할 테니까.. 타정총은 누가 쥐죠?"


"아름이가 드는 게 좋겠지만.. 어때?"


"총은 한 번도 쏴본 적 없어요."


아름이가 말했다. 태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검의 손잡이를 쥐며 말했다.


"그럼 그냥 두는게 낫겠어. 장거리 무기를 미숙자가 드는 것처럼 위험한 일도 없으니.. 가방에 넣자구."


"무거운데.."


"이것도 훌륭한 무기야. 버리면 안 돼."


"누가 버린대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 말은 사실이었다.

타정총은 대략 3킬로 정도의 무게로, 일반 권총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의 무게였다.

더군다나 부피는 더 커서 손이 작은 여자들은 쓰기가 힘들 정도다.

수정형은 타정총을 태완이의 가방에 넣고 자기가 그것을 짊어들었다.


"근데 그거 진짜 총인데.. 어디 쓸 수 있겠어요?"


"잠깐 쏴볼게."


철컥


형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탄창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핀 뒤 뭔가를 중얼거리며 총에 장전했다.


"베레타.. 12발인가. 꽤 무거운걸. 사격장의 총이랑은 달라."


타앙-


총알은 골목의 오른쪽 벽에 박혔다. 파악 하면서 벽이 패이고 돌가루가 튀는게 굉장히 위력적으로 보였다.

나는 아직도 한쪽 눈을 감고 있는 형에게 물었다.


"어때요?"


"괜찮을 것 같아. 타정총보다 다루기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든든해지겠지. 너도 쏴 볼래? 사격 해 봤다며."


"나야 뭐.."


나는 중얼거리면서도 살짝 들떠 총을 집어들었다.

실탄이 든 자동권총을 한국시내 한복판에서 쏴 볼 기회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살짝 들떠서 형이 아까 총을 쏘았던 벽 쪽에 조준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면서 형에게 총을 돌려주었다.


"왜?"


"할아버지를 구해야 해요. 병신같이 들떠서 잊고 있었어요. 빨리. 시범사격은 나중에 해도 안 늦으니까."


"아 그랬지! 얘들아, 빨리 가자!"


수정형도 그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자기 머리를 탁 친 뒤 태완이와 아름이를 재촉했다.

나는 가방을 고쳐매고 아까 우리가 갔던 길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 나와 아름이가 밀치면서 지나갔던 골목에 있던 너댓마리의 좀비들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하다가 할아버지를 구출하는 순간 집이 무너지는 걸 감지한 좀비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었던 것을 기억해내며 말했다.


"여기 좀비들이 있었는데, 저 앞쪽에 있는 무너진 집 앞에 몰려있을 거예요."


"드디어 이 녀석을 쓸 때가 왔구나!"


수정형이 화염병을 꺼내들며 말했다. 태완이가 형을 보고 말했다.


"글쎄.. 별로 소용없어 보이던데요. 저번에 봤을 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 애초에 대량살상 무기는 내 화염병밖에.."


"어?"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아름이가 갑자기 외쳤다. 내가 아름이에게 물었다.


"왜 그래?"


"좀비들이 없어요!"


"뭐?"


우리는 동시에 외치며 달음박질을 멈추고 앞을 쳐다보았다.

아름이의 말대로 집이 무너진 흔적은 있는데 좀비들은 보이질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났으니까 여기저기로 흩어졌겠지 뭐."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위험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내 뒤로 다른 셋이 황급히 따라붙으며 말했다.


"뭐야, 왜 그래 진환아?"


"아이고 힘도 좋지.."


수정형이 투덜거렸지만 나는 아랑곳않고 계속 달렸다.


"제기랄.. 제기랄.. 그럴 리가 없어.."


"왜 그래요 오빠?"


우리가 할아버지를 두고 왔던 곳은 여기서 멀지 않다.

기껏해야 1~2분 거리. 만약 흩어진 좀비놈들이 그 할아버지의 근처로 갔다면..


다친 할아버지를 업고도 금방 도달했던 거리다.

전력으로 달린 나는 어렵지 않게 할아버지를 두고 왔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 불이다!"


불?


확실히 화끈거리는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변종놈과 싸웠던 거리까지 다가가 옆으로 돌아 우리가 몸을 숨겼던 벽 쪽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으.."


할아버지가 누워있었던 곳에 있는 그을린 시체.. 그리고 그 일대와 함께 불에 타고 있는 좀비들을 볼 수 있었다.


"으으아아아아아!!"


나는 다음 순간 눈이 뒤집어져 손도끼를 빼들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내 뒤에서 수정형이 달려들어 나를 붙잡으며 외쳤다.


"진정해 진환아! 태완아 도와줘!"


"으아아아!! 신발 강아지들!! 죽여버릴거야!! 으아아아!!"


마구 괴성을 지르며 수정형와 태완이에게 붙잡혀 몸부림치고 있는 내 옆에서 아름이가

바들바들 떨면서 말했다.


"어.. 어째서 불이? 그리고 할아버지는.. 도.. 돌아가신 거예요?"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또! 또 죽었어! 또 죽었다고 신발!! 으아아아아!!"


"진환아 진정하라고!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좀 해 봐!"


형이 나를 겨우 제지하고 있는데 태완이가 외쳤다.


"형! 저놈들이 와요!"


내가 몸무림치며 난리를 치는 바람에, 불에 타고 있는데도 멀쩡한 좀비놈들이 우리의 기척을 알아채고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구하려 했던 사람의 시체는 까맣게 그을려져 뒤쪽에서 연기를 내고 있고,

우리 앞으로는 불이 붙은채 비척비척 걸어오고 있는 살아있는 시체들..


여기는 지옥이다.


"처음이지만 별수 없지.. 아름아, 태완아! 진환이 끌고 일단 후퇴하자! 빨리!"


철컥


아직도 몸을 뻗대며 끅끅거리고 있는 나를 밀치며 수정형이 총을 쏴 좀비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태완이는 나를 급히 말리느라 땅에 내려놓았던 검을 집어넣은 뒤 아름이와 함께 나를 붙잡고

질질 끌다시피 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불에 타서 죽었다.


좀비들에게 둘러쌓여 죽었다.


다시.


사람이.


내 눈앞에서.


알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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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난리치는 나를 붙잡고 이동한 우리 일행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애초의 목적지였던 편의점 앞까지 와 있었다.

반쯤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나는 그동안 누워있었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늘이 보였다.

나는 머리를 잡으며 몸을 일으키고 계단에 걸터앉았다.


"좀 진정이 돼?"


수정형이 내게 물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생수통을 받아든 채 마시지 않고 멍하지 바닥을 바라보았다.


결국 그 할아버지는 죽었다. 불에 타서. 혹은 놈들에게 둘러쌓인 뒤 물어뜯겨서.


..아니다.


나는 그 냄새맡는 놈을 유인할 때 쓰고 두고온 화염병을 기억해냈다.


그걸 쓰셨던 건가.. 좀비들이 다가오니까.


"죽기전의 선물이다 이건가."


나는 피식 웃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그 분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도. 재복이를 구하러 들어갔을 때도, 조금만 더 빨랐으면 그 누나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절대로 용납 못해.."


"응? 뭐라고 했어?"


수정형이 내게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다짐할 뿐이었다.

앞으로 더이상 내 눈앞에 나타난 생존자를 죽게 놔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태완이랑 아름이는요?"


"사다리 구하러 갔어. 이 골목 앞쪽에 운좋게도 철물점이 있더라구. 아예 올때 가져오려고 했지만 너 끌고오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하하."


"흉한 꼴을 보였네요."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왜 거기가 불에 타고 있었던 거지?"


나는 형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말을 들은 형은 눈을 감고 고개를 두어번 주억거린 뒤 말했다.


"좋은 분이 가셨구나."


"..그런가요."


머리가 비었다 라는 게 이런 말일까.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아까 본 광경과 그 서점에서 서로를 물어뜯던 커플들의 모습이 눈앞에 교차되어 나타날 뿐.


"너무 부담갖지 마."


수정형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하자 나는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형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이니까 더욱이 그런거야. 넌 최선을 다했고, 난 그걸 알아. 앞으로 그런 일이 없길 바래야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딱히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나는 대뜸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형은 가볍게 웃을 따름이었다.


"이제 피난지도 확보했으니 전화나 해 볼까. 이쪽은 좀비들도 없겠다.. 아예 휴전선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겠는데 그래? 여기로 이사한 다음에, 한 번만 더 모험을 해서 그 생존자 박스를 확보하는거야. 그래서

전원 팔찌를 갖게 되면 군대가 남하할 때 모두 특별구호조치인가 뭔가를 받을 수 있는거지."


수정형은 싱글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들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휴대폰에서 재복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건, 내가 알기론 수정형과 태완이, 재복이와 그 여친.. 그리고 그 다른 누나.

윤호는 집에 두고 왔고, 아름이는 학원에, 나는 없다. 하나 있는게 편할텐데.


"어, 이재복 군.. 이었나? 나 수정이 형이야."


-아 안녕하세요! 편의점은 찾았어요?


"응. 거긴 어때?"


-순조로워요. 저 뒤 구덩이에 좀비 한 마리가 빠지긴 했는데, 떨어진 다음에 안 움직이던데요. 뭐 대충 그런

상황이예요. 저희 지금 점심식사 하고 있는데 그쪽은 어때요?


"뭐, 우린 아지트 이동준비 하고 있지. 밥은 그 뒤에 먹어도 안 늦어."


"우리 왔어요!"


수정형이 재복이와 한참 대화를 하고 있는데 태완이와 아름이가 돌아왔다. 근데 빈손이었다.


"사다리는?"


"없더라구. 세상만사 다 이런 거 아니겠어, 하하."


태완이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럼 위로 갈 방법은 없는건가?


수정형이 태완이의 말을 듣더니 말했다.


"곤란한데.. 응 재복아. 이제 말 놓아도 되겠지? 응, 응. 그럼 조금있다 다시 전화할게. 모두들 준비하고

있으라고 해 줬으면 고맙겠어. 그럼."


수정형은 전화를 끊은 뒤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리를 뚫고 들어가는 건 보류야. 최악의 사태에 출입구가 뚫려 있다는 건 굉장히 클 테니까."


"다른 건물들 옥상으로 해서 들어가는 건 어때요?"


태완이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편의점 옆에 붙어있는 건물들을 쳐다보았다.

두 빌라 다 편의점보다 높았는데, 왼쪽 건물은 옥상에서 편의점 옥상으로 뛰어내릴 만 해 보였고,

오른쪽 건물은 키가 굉장히 컸지만 편의점 옥상으로 난입할만한 적당한 높이에

창문이 하나 달려있는 게 보였다.


"그럼 이것만 끝나고 우리도 돌아가자."


"이사준비 시작이네요."


나를 제외한 셋은 가볍게 웃으면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다른 이의 죽음과 변종 좀비들의 발견..


괜찮은 건가, 이거.

 

 

14화-또다른 사실

 

잠시 쉰 뒤 우리는 편의점 양 편의 건물 탐색에 들어가기로 했다.

팀을 짠 방식은 나와 수정형으로 한 팀, 태완이와 아름이로 한 팀.

아무래도 아직 수정형과 아름이 만으로 팀을 짜기엔 좀 불안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방식이다.

내 의견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군말없이 동의했다.


일단 (그나마)키가 큰 우리 팀이 옥상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왼쪽 건물로,

태완이와 아름이 팀이 유리창을 찾고 내려와야 하는 오른쪽 건물로 가기로 했다.


"안쪽에 좀비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조심해."


"알았어."


이 편의점이 위치한 골목 안은 좀비들이 적었다.

아니, 아예 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는. 뭐 좀비사태가 일어났다고 해서 이 나라 어디에서나

좀비들이 득시글거리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니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좀비 사태가 일어난지 겨후 사나흘.. 벌써부터 긴장을 푼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까맣게 타서 죽어있던 그 할아버지와 내 앞에서 죽어갔던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되새기며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아무도 없는건가."


"아무도 라고 해야 하나 아무것도 라고 해야 하나.."


"둘 다죠 뭐. 그 새끼들을 사람으로 취급할 수는 없고, 동시에 사람들을 물건으로 취급할 수도 없.."


"조심해!"


선두에 선 내가 고개를 돌린 채 형과 얘기하며 걷고 있는데 앞을 주시하고 있던 수정형이 내게 소리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도끼를 휘두르며 몸을 낮췄다.


"개?"


중형견이었다.

서 있기만 해도 위협적일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빌라의 복도.

형과 내가 이쪽, 저 개가 저쪽에 서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통로는 가득 찼다.

나는 개들을 무지 좋아하고 평소에 개들도 나를 잘 따르는 편이라 나는 오랜만에 만난 개에게

이 지옥에서 잠시나마 정화되는 느낌을 받아 반가워서 손을 벌리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크르르르.."


"괜찮아, 임마. 안 해쳐."


"진환아, 그 녀석 좀 이상하다."


"에?"


수정형의 말에 나는 다가가던 몸을 멈추고, 날이 개를 향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거꾸로 잡았던 손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살짝 몸을 뒤로 뺐다.


"그 녀석 입주변좀 봐. 빨갛지 않아?"


나는 눈을 찌푸리고 살짝 먼 거리에서 녀석의 입가를 잘 살폈다.

확실히 뭔가 빨간 빛으로 물들어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게 생피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질 않았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하지만 긴장하기 시작하면서 말했다.


"짬뽕그릇 갔다놓은 걸 먹었겠죠 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


"그르르.. 컹! 컹!"


"저 봐. 조심해 진환아. 무기 잘 들어."


녀석은 우리와 거리를 둔 채 우리를 향해서 위협적으로 짖기 시작했다.

개를 키워보거나 개와 많이 접촉해 본 사람은 개가 짖을 때 단순히 위협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짖는 건지를 알 수가 있다.

이 녀석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이쯤 되자 나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좀비견이라던가 하는 건 아니겠.."


"크와아아악!!"


"와나 신발!!"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중형견은 내 가슴팍을 향해 시뻘건 것으로 물든 입을 벌리며 돌진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빼며 넘어졌다.


탕탕탕 탕 탕-


그리고 들려온 수정형의 총성.

숨을 몰아쉬면서 일어난 나는 내 머리맡에서 총탄에 의해 몸이 박살나 곳곳에서 김을 뿜고 있는 개..

아니 좀비견을 볼 수 있었다.

수정형은 아직 사격이 익숙하지 않은지 많이 들려온 총성에 비해 녀석의 몸에 난 구멍은 겨우 세 개.

그래도 뭐가 어쨌건 놈은 죽었다.


"신발 똥강아지!"


나는 욕을 터뜨리며 개의 시체를 발로 밟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개를 밟아 으깨는 건 좀.. 이 녀석도 살아있었을 땐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성격좋은 애완견이었을 수도 있었겠지.


"후우..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 알아 진환아?"


수정형이 숨을 몰아쉬고 벽에 기대며 내게 말했다.

나는 말도 말라는 식으로 손을 흔들면서 무기를 집고 일어났다.

이젠 좀비견이냐.. 작작좀 하시지 그래.


"동물한테도 감염이 되는 모양이네요. 그나저나 형, 총 그렇게 쏴도 돼요?"


형은 탄창을 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는지 자루 부분을 손톱으로 깔짝거리며 말했다.


"나는 물건을 쓸 수 있을때 쓰자는 주의라서 말야.. 아껴놓을 만한 건 아껴놓아야 하지만 급한 상황에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지."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얻은 총이었지만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놈의 시체를 살피기 위해 몸을 숙였다.


이미 눈앞에서 골이 빠개지고 배가 터진 시체들을 몇수십이나 보아온 터라

개의 시체는 거의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잡고 얼굴을 살폈다.

예상대로 눈이 시뻘건 게 대단히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눈깔이 빨개요."


"상처로 좀비의 피가 들어갔는지 좀비의 살점을 먹어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빌라 안에 있는 개가

감염되어 있다면 답은 하나지."


"이 안에도 좀비가 있단 건가요."


갑자기 공기가 바뀌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침을 삼키며 주변을 살폈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공간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바뀌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기에

더욱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빌라의 구조는 상당히 특이했다.

입구를 들어가면서부터 복도가 쭉 펼쳐져 있고 양 쪽에 방이 하나씩 있다.

복도 끝엔 미는 철문이 달려있고 거기서부턴 램프계단 식으로 빙글빙글 꼬여 올라간 계단이 있었다.

나는 계단 위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계단은 좁은데 가다가 좀비라도 만나면 진짜 끝내주겠네요."


"불길한 소리는 하지 말자 진환아.."


수정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나도 하고 싶은 말이다.

좁은 공간에 식인괴물과 맞딱트려 피를 튀기고 싸운다니.. 말이야 쉽지.

나는 저 좀비견을 이곳보다 훨씬 협소한 곳에서, 혹은 혼자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를 상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방금만 해도 수정형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 지 장담하지 못한다.

나는 냄새맡는 변종좀비에게 당한 오른쪽 귀가 새삼 시큰거리는 걸 느끼며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닦아냈다.


총성이란 건 생각보다 대단히 시끄럽다.

이럴 때 무전기라던가 단시간에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면 옆 건물로 간 태완이와 아름이에게

조심하라고 일렀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기계는 우리에겐 없었다.

나는 녀석들이 총성을 들었기를 희망하면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긴장해라 얘들아..


계단 홀로 들어서자 왼쪽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서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형이 나를 붙잡았다.


"막 누르지 마."


"왜요? 작동하면 좋지. 다리도 아픈데.."


"영화같은데서 보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그 다음은 말 안 해도 나도 안다.

형은 '너도 알지?' 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나 대신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엘리베이터는 작동했다. 엘리베이터는 꼭대기인 3층에 있었다.

우리는 얼른 뒤로 빠져 문이 열리는 순간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보조무기로 가져온 쇠파이프로 견제할 준비를, 수정형은 빗나가지 않게 무릎을 낮추고

총을 입구 부분에 조준했다.



벨이 울리고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리고 형보다 앞쪽에 서 있던 나는 엘리베이터 안의 광경을 보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안엔 사람 한 명이 목과 다리에 물어뜯긴 자국이 난 채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끄러져 죽어 있었다.

목 부분은 특히 심하게 물어뜯겨 괴기스러운 각도로 꺾여져 있었다.


"언제나처럼.. 실망시키지를 않는구나, 이 현실은."


좀비가 된 후에 죽은건지 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허옇게 뜬 시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까지 여행이라.. 나는 싫다.


"걸어가야겠죠."


"그러자."


수정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뭐 그런 이유를 떠나서 우리가 만약 이 건물 옆에 붙은 편의점에서 머무르기로 한다면 좋으나 싫으나

이 건물 안에 있는 위험요소를 치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별로 하고싶지는 않지만.


덜컹


"..덜컹?"


몸을 돌리고 수정형을 따라가려던 나는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시체가 일어나고 있었다!


"형! 좀비!"


"뭐?"


이미 2층까지의 계단을 반쯤 올라간 형이 급히 내려오며 총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계단 위로 펄쩍펄쩍 뛰어올라가며 쇠파이프를 꺼내들었다.


"께아아아아악!!"


"우악!"


광속처럼 굴러일어나며 이쪽으로 뛰어오는 좀비를 보며 나는 식겁해서 비명을 지르고

몇 계단을 더 뛰어올라갔다.

놈은 전력으로 달려와 계단에 온 몸을 충돌시켰다.

계단을 온몸으로 기어올라오며 나를 향해 팔을 휘젖는 모습을 보며 나는 패닉에 휩싸였다.


뛰는 좀비다!


나는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수정형에게 말했다.


"으아아 형! 이새끼 뛰어요! 빨리 위로!"


"뭐? 제기랄, 갈수록 태산이구만! 피하기보다 지금 내가 총으로.."


"빨리!"


놈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있는 나는 무엇보다 어서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었다.

어떻게 이놈의 세상은 불안한 상상을 하면 그대로 재현을 해주는 거야!


"헉- 헉- 헉-"


놈은 아직 계단에 부딫혀 넘어진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놈의 저 꺾인 목.. 온몸에 피칠을 한 채 7자로 꺽인 목으로 나를 바라보며 팔을 휘적거리는 모습은

나를 미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건강한 두 다리를 두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기어서 계단을 올라갔다.

진짜 미칠 지경이었다.

뛰어올라가면 놈을 충분히 따돌릴 수 있을텐데 도저히 그러기가 힘들었다.


"으아아! 빨리!"


어느새 나한테까지 내려온 형은 총을 혁대에 끼우고 나를 일으켜세워주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다리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탕 탕


"제길 안 맞아!"


수정형도 적잖게 당황했는지 허둥거리며 총을 쏘았지만 요란스럽게 버둥대며

계단을 기어올라오는 좀비를 맞추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놈들은 머리를 부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형! 일단 위로 올라가서 생각해요!"


"알았어!"


나는 이를 악물고 계단 옆의 쇠 보조대를 붙잡은 채 전력으로 위를 향해 뛰어올라갔다.

만약 이 빌라 안에 또다른 좀비가 있어 이 소동을 눈치채고 위에서 나타나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면

게임오버겠지만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여유따위는 없다.

나는 놀고있는 손에 손도끼를 쥐었다.


"헉.. 헉.."


기어올라오는 놈보다는 아무래도 우리가 훨씬 빠르다.

벌써 3층에 도달한 나는 옥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철컥


"젠장할! 안 열리잖아!"


나는 불안한 눈으로 아래를 쳐다보았다.

2층 복도까지 기어올라온 좀비는 디디고 있는 곳이 평평해지자 몸을 곧추세우고 제대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은 계단에 접어드는 순간 곧바로 다시 넘어져 계단에 얼굴을 비볐다.

좁은 빌라 안에서 쿠당탕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지며 나를 한층 더 어지럽게 했다.

수정형이 아래쪽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어쩌지? 싸운다면 지금 내려가서 죽여야 해!"


"형! 잠깐만 그 총좀 줘봐요!"


"뭐? 왜?"


형은 내게 물으면서 총을 건네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손도끼를 형에게 건넨 뒤 총을 들고 문고리 살짝 옆을 겨냥했다.


타앙


"큭!"


총의 반동은 생각보다 거셌다. 나는 다시금 총을 쥐고 다섯발 가량을 손잡이와 그 근처에 쏴넣었다.


"제발 열려라!"


콰앙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손잡이 옆을 발로 차자 문고리가 박살이 나며 문이 열렸다.

나는 기어나오다시피 하며 옥상으로 나왔다.

수정형도 다급히 밖으로 나와 내게 손도끼를 건네며 총을 가져가 곧바로 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가 자세를 잡기 무섭게 좀비놈이 기어올라왔다.


탕 타앙


형이 총을 두 발 쏘았지만 한 발은 놈의 얼굴을 스치고, 한 발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놈의 목이 꺾여 머리가 이상한 방향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목이 덜렁거릴 정도로 꺾여 머리가 가슴팍에 붙어있는 걸 본 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지만

놈이 가래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자 나는 이를 소리나게 물며 손도끼를 들고 돌진했다.


"으아아아!"


빠직


나는 무리해서 머리에 손도끼를 꽂아넣으려 하지 않았다.

내 손도끼가 작렬한 곳은 놈의 덜렁거리는 목뼈. 비스듬히 꽂힌 손도끼는 놈의 목을 더럽게 잘라버렸다.

목을 잃어버린 신체가 눈앞에서 흔들거리자 나는 욕을 뱉으며 놈에게 앞차기를 선사해주었다.


"뒈져!"



좀비의 몸뚱이는 몸을 푸들푸들 떨며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진 뒤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곧바로 내 발치에 떨어진 좀비의 머리통을 걷어차 빌라 아래로 떨어뜨려 버렸다.


"헉.. 헉.. 아 진짜 무서웠다. 홈런이구나~"


수정형은 손을 미간에 대고 짐짓 멀리 보는 척을 하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신발을 벗고 발등을 문질렀다.


"헉.. 헉.. 사람 머리란게 생각보다 무쟈게 무겁네.."


나는 얼른 계단 아래쪽을 다시 보았다.

다행히 다른 좀비들이 뛰어올라온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다시 건물을 탐색해야겠지만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기에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옥상을 살펴보았다.

돌난간이 쳐져있는 평범한 옥상이었다.

저쪽 구석에 안테나 접시가 보이고 빨랫감을 거는 줄도 보였다.

나는 한쪽 신발을 벗은 그대로 그냥 걸어서 편의점 옥상을 내려다보았다.

높이가 대충 3미터가 좀 넘어 보였다.


"형 이거 뛰어내릴 수 있겠어요? 난 할 수 있겠는데."


"글쎄.. 나는 행동파가 아니라서. 하하."


나는 대충 거리를 가늠해본 뒤, 문 쪽으로 돌아가 신발을 다시 신었다.

살짝 계단 아래를 보니 아까의 좀비 몸뚱아리가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뭐 당연한가.. 목이 날아갔으니. 소뇌에서 보낸 신호를 통해 몸을 움직이는 건 척수.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해주는 게 다름아닌 목. 목뼈를 보는 순간 그 생각이 퍼뜩 나 실행한 비책이 빛을 본 것이다

.


..뭐 그것에 대한 생각은 이쯤 하자. 어쨌건 살아남았으니. 이런식으로 주절거리는 건 태완이나 할 짓이다.


나는 신발을 탁탁 치며 난간 위에 올라섰다.


"형 이정도 높이면 잘못하면 다치니까 저 잘 보고 따라해봐요."


프리러닝이라는 스포츠가 있다.

흔히 야마카시라고 잘못들 알고 있는데, 내가 한때 그것에 빠진 적이 있었다.

뭐 흉내만 내 본 정도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낙법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익혀 두었다.

나는 몸을 곧게, 하짐나 무게중심을 살짝 앞으로 잡으며 뛰어내려 착지하는 순간 몸을 앞으로 굴리며 일어났다

.

내가 먼지를 탁탁 털자 형이 위에서 외쳤다.


"우와~ 대단하다!"


"기본이죠. 형도 빨리 내려와요."


"으으.. 그냥 니가 안에서 열어주면 안 돼? 난 계단으로 내려갈게."


"안에 좀비 남아있을지도 몰라요."


내가 외치자 형은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알았어. 해볼게."


수정형은 내 시야에서 잠시 사라진 뒤, 훌쩍 나타나 이쪽으로 뛰어내렸다.


"앗 형! 몸에 힘.."


쿠당탕


"아이고.."


"낙법을 해야지 뭐하는 거예요! 안 다쳤어요?"


몸을 곧게 하고 다리부터 잘 떨어져야 몸을 굴리기가 쉽다.

형은 온몸에 힘을 주고 뛰어내린 바람에 제대로 충격흡수를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형은 숨이 막히는지 쿨럭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쿨럭.. 으응.. 다치진 않은 것 같아. 나는 너처럼 몸이 날래질 못하다구."


드르륵


내가 수정형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는데 갑자기 저쪽에 있던 창문이 열렸다.

나는 깜짝 놀라 내가 있던 자리에서 달려 멀어지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연 건 다름아닌 태완이와 아름이었다.


"여어 진환아! 벌써 내려와 있었어? 무사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면 모르냐! 빨리 와. 좀비인줄 알았네.."


우리와는 다르게 그 창문은 옥상에서 거의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녀석들은 가뿐히 아래로 내려왔다.


"총소리를 들었어."


"어어.. 좀 난리좀 쳤지. 새로운 소식 하나 있다. 좀비 바이러스, 개한테도 감염되는 모양이야."


"네?"


아름이가 놀라서 외쳤다. 뭐 내가 반대 상황이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흘리는 눈이 충혈된 개라.. 하하. 산책하다 맞딱뜨리기는 싫은 상대지.


태완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 동물한테도 감염된다는 소린가. 위험한데."


"뭐 그래도 변종 좀비들보단 아니지."


내가 말하자 태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만도 않아. 만약 좀비의 시체를 파먹은 비둘기떼 같은 것이 다 좀비화되어버려 우리에게 달려든다고

쳐봐."


"으으.."


수정형은 가히 상상히 간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도 그렇군.

'다른' 동물들이 좀비화된다면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선 생각을 안 해 보았군.


까악- 까악-


다음 순간 머리위에서 까마귀 소리가 들려오자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흠칫 놀라며 위를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그건 그냥 날아가고 있는 까마귀였다.

나는 잔뜩 쫄아서 위를 바라보고 있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거 걱정하는 건 너무 이르고, 일단 여기까지 온 것 만으로도 자축할 일이야. 그쪽

건물은 어땠어?"


"깨끗해. 좀비는 한 마리도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편의점의 옥상 문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제대로 이사 할 때가 온 건가. 우리들의 새 집을 한 번 구경해보자구."

 

 

 

 

최후의 생존까지, 아직 30일-

 


15화-재정비

 


-죽었다구?


핸드폰 저편에서 윤호가 외쳤다. 나는 단무지를 하나 집어먹으면서 말했다.


"그래.. 아깐 급해서 말을 못 했는데 지혜누나라는 사람, 집앞 차도에 바로 널브러져 있더라구. 안된 일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집안에 바로 들어가서 얘기할까 했지만 우리쪽도 바빠서 말야."


-미치겠네. 나가기 싫어진다 야.


"너넨 거기 있어라 그럼. 우린 여기서 안전하게 컵라면같이 맛있는 거 먹고 있다가 구조받을테니까."


-강아지! 빨리 와라. 우린 준비 끝났으니까.


"오야. 배 채우고 금방 가마."



나는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 태완이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태완이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내게 말했다.


"뭐래?"


"뭘 뭐래.. 준비 끝났으니까 빨리 오란다. 피차 얼굴 본지 하룻밤밖에 안 된 사이들이니까 그 누나 죽었다고

해서 난리 칠 사람도 없고. 그 누나한텐 안 된 소리지만."


후루룩


나는 태완이에게 대답한 뒤 사발면을 한껏 들이켰다.

겨우 하루를 거르고 하는 제대로 된 식사(라면을 제대로 된 식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지만)

지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입안에 있는 면발을 정신없이 씹어 삼키고 국물을 한번 들이킨 뒤 단무지를 입에 넣고

다시 면을 입에 우겨넣었다.


편의점 옥상에 도착한 우리는, 옥상 문이 잠겨있자 내가 아까 나와 수정형이 뛰어내린 건물의 옥상에

돌입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잠금쇠를 총으로 해결한 뒤 문고리를 깨고 안으로 들어왔다.

만약 위로 좀비들이 온다면 후회될 만한 행동이었지만 당장 급한 건 그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었다.

정면 유리를 깨고 들어오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편의점 안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깨고 들어간 문이 연결되어 있는 작은 방은 창고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쪽에 철문이 달려있어

여차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열고 들어가니 안은 사무실.

안에는 작은 TV와 사무용 컴퓨터 등 우리집에 폭격이 떨어졌을 때 잃어버린

중요한 정보수집용 비품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편의점 내부로 나가니 대부분의 물품들이 살아있었고 냉장고까지 가동되고 있었다.

다른쪽에 딸린 창고방 두 개 역시 식량 등 물품을 채운 채로 남아있었다.

하나는 냉장고와 연결되어 있는 상태라 굉장히 추워서 사람이 있기는 힘들어보였지만 뭐 그게 어디냐.


만약 이게 큰길가나 사람이 많은 곳에 있던 편의점이었더라면 우리같은 생존자들의 손에 의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겠지만 다행히도 이곳은 정말로 우리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훌륭한 새 보금자리에 들뜬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제일 먼저 음료수와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밥을 먹으면서 허기가 좀 가시자, 그제야 나는 우리집쪽에 남기고 온 친구들과 연락을 할 생각이 들어

녀석들과 통화를 한 것이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두 팀의 짐을 체크하느라 쭈그리고 앉아서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총에 대한 생각이 나서 열심히 삼각김밥을 먹고 있는 수정형에게 말했다.


"형, 권총 탄약은 넉넉해요?"


"음.."


형은 가늠해보지 않았는지 삼각김밥을 한입 베어문 뒤 남은 삼각김밥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총가방을 들어 안을 뒤적거렸다.

안쪽에 손을 넣고 절그럭거리던 형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야예 가방의 내용물들을 책상위에 죄다 쏟아내었다

.

후두둑 하는 소리에 각자 열심히 HP를 채우고 있던 태완이와 아름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형은 탄창들을 손으로 죽 훑으며 체크한 뒤 총 안에 들어있던 탄창까지 빼내어 체크했다.

형은 한쪽 눈을 감고 빼낸 탄창을 물끄러미 보더니 다시 총에 넣어 장전하고 안전장치를 넣으며 말했다.


"12발들이 탄창이 4개, 그리고 지금 안에 남은 총알이 대략 여섯 개.. 50발 정도 남았다고 보면 돼."


"별로 없네요."


"이정도면 많은 거야. 그 할아버지 아들이라는 사람 대단하네. 일반적인 경관용 리볼버도 아니고 자동권총을

이렇게.."


"한 100발 쯤 있었다면 나도 사격연습 좀 해볼텐데."


내가 아쉬운듯이 말하자 수정형은 웃으면서 총을 정리했다.

형은 콜라를 들고 쪽쪽 마시고 있는 아름이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보다 우리 지금 타정총이라는 좋은 무기 하나를 놀리고 있잖아? 아름이가 쓸 수 있으면 되게 큰 전력이

될텐데 말이지. 진환이도 식칼창을 되찾을 수 있을테고."


아름이가 수정형의 말을 듣고 식칼창을 보더니 나를 미안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나는 됐다는 듯이 팔을 흔든 뒤 몸을 돌려 가방에서 타정총과 못, 화약이 든 봉지를 꺼냈다.

생각보다 묵직한게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두세 발 남은 못 탄창을 빼버린 뒤 새로 탄창을 갈며 아름이에게 말했다.


"쏴봐."


"네?"


"쏴보라고. 그리고 그 말할 때 마다 네 네 하면서 물어보는 것 좀 고치랬지?"


"아, 네. 죄송해요."


"사과하는 것도."


"네.. 네! 죄송해요."


"또 그런다.."


아름이가 계속 내게 꾸벅거리면서 쩔쩔매자 수정형이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 주었다.

타정총 연습을 할 곳은 형이 서 있었던 계산대의 뒤쪽 돌벽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산대 너머로 넘어가서 벽쪽에 붙어있던 포스터들을 다 뜯어낸 뒤,

계산대에 널브러져 있던 펜들 중 하나를 집어 과녁을 그리고 말했다.


"사격장 같은 곳엘 가서 정식으로 연수를 받으면 뭐 발을 11자로 놓고 어깨높이가 어떻고 눈이 어떻고..

그런 소리들을 하는데, 지금같은 경우엔 그저 생존수단이니까 그런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지. 편한대로 쏴 봐."


내가 계산대 밖으로 뛰어넘어오자 수정형이 음료수를 마시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 여기로 옮길 거 아냐? 아예 거기를 장거리무기 훈련하는 장소로 정해버리자."


"거 좋네요. 장거리무기래봤자 못총이나 단검정도겠지만."


"근데요.."


아름이가 못총을 쏘려다 말고 신나서 얘기하고 있는 우리 둘에게 말했다.


"여기서 한달만 버티고 있으면, 군대가 도우러 오는 거 아니예요? 그럼 그런 훈련같은 걸 할 필요가 없잖아요."


"네 말도 맞지만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으니까. 이 안에서 한달동안 낑기다가 그대로 구조된다면 그야말로 바

랄 것도 없지."


수정형이 아름이에게 다가가서 여러가지 설명을 해주며 사격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동안

나는 간식거리를 찾으러 편의점을 빙빙 돌아다녔다.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챙기고 나니 어느샌가 사무실 앞으로 돌아와버린 나는 아무 생각없이 안을 쳐다보았다

.

태완이가 어느샌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있었다.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뭐해? 쟤 총연습 조금 시킨 뒤에 출발해야지."


"어.."


태완이는 내 말에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하며 검은색 구식 라디오를 만지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와 TV를 체크해본 뒤 말했다.


"야, 컴이나 티비가 돌아가는데 웬 라디오야?"


"아침에 군에서 준 보급품에 딸려나온 쪽지에, 저주파 군용 라디오를 사용해서 대피경보를 내렸었다는 말이

쓰여져 있었잖아? 혹시나 해서 지금 맞춰보는거야. AM쪽으로 돌리다 보면 뭐가 잡힐지도.."


[삐빅 삑.. ..regarding to ..'s information..]


"어 뭐 나온다."


"영어 아냐?"


어찌어찌 사흘동안 살아남기는 했지만 정말이지 오랜만에 접해보는 바깥정보다.

나는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잊고 태완이의 주파수를 돌리는 손놀림에만 집중했다.

지직거리는 소리뿐인 주파수가 계속되다 어느 순간 제대로 된 소리가 잡혔다.


[..에 따르면 현재 확인된 변종 괴물들은 3가지. Runner, Sniffer, Listener. 런너, 스니퍼, 리스너.

Runners are the most popular irregular forms of zombies. Those things can run like hell,

without of stamina limit. 런너들은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변종으로서, 체력의 제한 없이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다. You might barely see Sniffers on the road. 당신들은 길에서 스니퍼들을 적은 기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Normally, those things are really slow but..]


"뭐야, 이거.."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혼잣말을 하자 태완이가 말했다.


"정보를 주는 거 아닐까? 좀비에 대한. 영문을 직역하는 거 보니까 미군측에서 준 정보같은데."


"우리나라 쪽에선 우리나라 스스로를 살펴볼만 한 위성도 없다는 건가 그럼?"


"나야 모르지."


태완이는 혹시나 주파수를 놓칠까 얼른 손을 라디오에서 떼었다.

대충 들어보니 영문으로 들어온 정보를 그대로 직역해서 들려주는 것 같았다.

마침 변종좀비들을 설명하는 순간에 딱 이것을 듣게 되었으니 우린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행여나 한 마디라도 놓칠까 온 몸의 신경을 라디오에 집중시켰다.

살아남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st, we have Listener. 마지막으로, 리스너라는 변종이 있다. Listeners are really few. 리스너들은 정말

조금밖에 없다. Even on our visual location, we spotted only 1 or 2. 우리가 본 바로도 지금까지 하나나

둘 정도 확인되었을 뿐이다. But we're sure there will be more of 'em. 하지만 우린 그보다 더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뭐야.. 변종이 더 있단 말인가?"


"조용히. 일단 듣자."


뛰는 놈, 냄새맡는 놈도 모자라 이젠 리스너(듣는 자)라..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라디오를 경청했다.

라디오에 신경을 집중시키기 직전 탁 하면서 못총을 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이내 잊어버렸다.


[We can say one thing for sure. They are extremely dangerous. 우리는 한 가지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놈들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Unlike other monsters, these things can hear us.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이

녀석들은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미치겠네."


내 입에서 자동적으로 욕이 흘러나왔다.


[And their physical ability is even higher than sniffers. 그리고 놈들의 신체능력은 스니퍼들을 상회한다.

They have long nails, and wide - opened ears. 놈들은 긴 손톱을 가지고 있고, 넓게 퍼진 귀를 가지고

있다. And all of their teeth are razor - sharp. 그리고 놈들의 이빨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Thier speed is

more faster than bicycle, and their strength is amazing. 놈들의 속도는 자전거보다도 빠르며, 힘 또한

대단하다. When we were doing our mission in In - Cheon, one of our squad was almost destroyed by

 just one Listener. 우리가 인천에서 작전수행을 하고 있었을 때, 한 소대가 단 한마리의 리스너 때문에 궤멸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소름끼치는군."


어느샌가 우리 옆으로 다가와 라디오를 훔쳐듣던 수정형이 내 옆에서 한마디를 내뱉자

나는 흠칫하며 형을 돌아보았다.


"정말이예요. 만약 저 놈을 우리가 만난다면 그야말로.."


"끝이겠군. 바이크같은 속도를 내는데다가 힘까지 센 놈을 우리가 어떻게 이겨? 기관총 든 미군 한 소대를

혼자서 박살낸 괴물인데.."


[..All these informations were collected and defined by real samples that we had earned in real

battles with zombies. 이 모든 정보들은 우리가 실제로 전투에서 얻어낸 샘플에 의한 것이다. Beware, all

citizens of Republic of Korea and please survive. 한국의 국민들은 위험을 자각하라. 꼭 살아남아주길

바란다.. 이상이 남한 북부에서 임무 수행중인 미군들에게서 들어온 정보입니다.]


미군에게서의 정보전달이 끝났는지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은 한국말로 다른 정보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가 동물에게도 바이러스가 감염될 염려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데

태완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걸로 확실해졌어. 더이상 나돌아다니지 말고 안전한 데에 딱 붙어서 연합군이 쓸어버릴 때 까지 숨어있을

 것."


"그게 낫겠지.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 해도 운이 좋았어."


[..이 방송을 듣고 계신 국민 여러분들, 특히 중부에 위치하신 분들. 바이러스의 근원지는 경상남도와

인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태는 폭격 후에도 여전히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경상남도에서부터의 북상

 속도가 대단히 빠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좀비사태가 남한 중부에 모두 확산되기까지 걸릴 예상시간은

약 나흘입니다. 경상북도 외 서울 남부에 있는 시민 여러분들은 속히 피난을 떠나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방송은 앞으로 30분 후 다시 시작됩니다.]


치익-


"나.. 나흘?!"


수정형이 놀라서 외쳤다.


나흘이라니.. 나흘이면 여기서 휴전선까지 가는 것도 벅찬 시간이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태완이가 내게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좀비사태가 확산된다고 하는데, 이미 이곳에도 좀비들이 끓어넘치고 있는 건

마찬가지잖아. 난 의미를 잘 모르겠어."


"나도 마찬가지야."


수정형도 덩달아 내게 말했다. 뭐야, 나보고 뭘 어쩌라고..


"..뭐가 어쨌건, 저 라디오에서 말한 사람이 괜히 우리에게 피난하기를 추천한 건 아니라고 봐요. 뭔가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저번 폭격으로 우리 동네쪽의 좀비들이 많이 사라져서 우리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만약 다른 지역에서 좀비무리들이 이곳으로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한다면

인적없는 이곳이라고 좀비들이 언제까지나 없을 거라고는 장담 못 할걸요."


스스로 말해놓고 나도 놀랐다. 너무 정황에 맞는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틈에서 한달간을 생활해야 한다, 이거지?"


수정형이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태완이는 턱을 만지면서 곰곰히 생각하고 있더니 입을 열었다.


"차를 찾죠."


"뭐?"


내가 놀라서 묻자 태완이가 다시 말했다.


"나흘은 '퍼지기'까지의 시간.. 그러니까 완전히 잠식되기까진 시간이 더 걸릴거야.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남은

기간이 나흘이라는 거지. 나흘간 차를 찾아서, 휴전선으로 올라가자. 그게 제일 안전해. 그리고 차가 있어야

다른 생존자들의 가족들도 찾아볼 수 있지 않겠어."


"아 그러고보니 형 부모님은.."


"으응.. 난 괜찮아."


내가 형 부모님의 상태에 관해 물으려 하자 형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그게? 괜찮다니."


"연락도 안 받고.. 우리집은 대학로 가까이에 있어. 이미 늦었을 거야. 슬프지만.."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래도 찾아봐야지! 애초에.."


"진환아."


내가 발끈해서 외치는데 형이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제지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거야. 그저 믿는다고 능사가 아니란 건 이 지옥에서 버텨온 네가

 더 잘 알거야. 그곳은 이미 이 동네 최악의 지옥이고, 우리집은 그 가운데에 있어. 거기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만약 그랬다 한들 우리 부모님을 찾기 위해 너희들을 모두 끌어들이고 가는 건 너무도

이기적인 짓이야."


"하지만 나라면!"


내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더 말하려는데 태완이가 나를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혀를 한 번 차고 형의 얼굴을 보니, 형도 힘껏 감정을 참고 있는지 이빨을 꽉 물때 불거지는

볼 옆의 세로줄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제 대충 괜찮을 것 같아요. 아직 조금 무겁지만.."


아름이가 총을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형은 언제 심각했냐는 듯 얼굴을 펴고 아름이를 칭찬해 주었다.

아마 아름이에게 사무실 안의 공기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기야 저 녀석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 지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거운 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태완이가 갑자기 말하자 나를 포함한 다른 셋이 녀석을 쳐다보았다.


"공구점이나 문방구같은데에 들러서, 길고 튼튼한.. 그래, 자 같은게 좋겠다. 그런 걸 옆에 대서 개머리판으로

하는 거지."


"개머리판..?"


"그거 좋은 생각이다!"


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름이와는 상반된 반응이 나와 수정형에게서 튀어나왔다.

확실히 그렇게 지지대를 만들어서 어깨춤에 대고 총을 쏜다면 훨씬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다.

명중률은 말할 것도 없다.


"뭐 그건 그거고. 아름이 훈련도 대충 됐겠다 슬슬 가자구. 진환이네 집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쓸 무기는 진환이

일행이 잔뜩 구비해 뒀었으니까 우리가 챙길 거 없지."


수정형이 배낭 쪽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나는 아직 휴전선 쪽으로 옮겨간다는 말엔 동의하지 못하겠어."


내가 나지막하게 말하자 아름이가 놀라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휴전선으로 올라간다니.."


"나중에 설명해줄게. 지금은 가만히 있어봐."


나는 아름이를 조용히 시킨 뒤 태완이와 수정형을 보며 말했다.


"이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다 모이면 그 후에 정하자.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머리들을 대고 생각해보면 더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잖아."


"그래."


"그럼 지금 우리한테 남은 과제는 안전한 이사 뿐이군."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챙겼다.

수정형이 총가방에 있던 내용물들을 가방에 쑤셔넣는 걸 보고 내가 말했다.


"뭐해요? 총 안써요?"


"어.. 아껴두려고. 아까 그 리스너라는 괴물급 좀비가 있다는 걸 듣고, 위급상황에 대비해 아껴두는게 어떻까

해서. 무기는 네 보조무기 그거 쓰지 뭐."


형이 내 쇠파이프를 가리기며 말했다.


"뭐 아무래도 좋지만.. 좀 불안한데요. 하하."


"타정총이 하나 더 있으면 좋을텐데."


"그럴바에야 총이 하나 더 있는게 좋겠지."


우리는 낄낄거리면서 이제 옮기게 될 아지트 안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었다.

마치 지나치게 긴장한 사람들이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듯이.


점점 더 불안해지기만 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더 큰 갈림길에 봉착한 것이다.

 

 

 

 

최후의 생존까지, 아직 30일-


..혹은,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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