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소설] 비상사태, 제 1화 - 비상사태(1)

위정민201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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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멸망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지 살점이 뜯어 먹히는 짧은 찰나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멸망이라는 존재가 떡하니 앞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혼비백산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염자라는 이름의 ‘술래’ 앞에 발악하던 자들은 작은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살아있는 자들은 감염이 되어버린 자들을 몰아내어 자신들의 살길을 찾아내려 애써보았으나 그것은 덧없는 짓이었다. ‘술래’에게 살점이 물어뜯기고, ‘술래’의 타액이 들어간 자들은 똑같이 ‘술래’가 되어 다른 도망자들을 포획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것을 ‘비상사태’ 라고 표기했다. 나는 비상사태가 발표된 당시 그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에 불과했다. 비상사태가 발표 되었음에도 관심조차 없었다. 매일처럼 컴퓨터 앞에 들러붙어 누군가 끝내라고 잔소리를 하기 전까지 끝내질 않았다. 웃기게도 그 상황에서 내가 하던 게임은 좀비와 관련된 게임이었다. 내가 좀비가 되어서 다른 인간의 뇌를 뜯어먹으면 그 자도 좀비가 되는 코믹물의 게임이었는데, 좀비의 외모도 친근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도 아주 코믹했다.

게임에 빠져있음에도 배가 고팠고, 화장실에도 가고 싶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하교한지 하루하고도 열 시간이 더 지나있었다. 물론 밖에 나갈 생각도 없었다. 집 안에 컵라면이 있었거니와 뜨거운 물도 빵빵 나왔으니까.

난 컵라면에 물을 부어넣은 뒤, 라면이 다 익을 동안, 잠시 TV를 켜보았다. 다시 게임을 시작하면 라면이 불어터져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애초에 뉴스 같은 것을 보는 고상한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손가락은 자연스레 유명한 게임인 스타크래프트가 중개되는 방송을 틀어 놓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방송은 조금도 이상 없이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라면이 대충 익었거니 싶어서 몇 달 굶은 돼지새끼마냥 입에 쑤셔 넣었다. 하루 이상 굶어본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하루라는 기간이 길었다는 것에 실감을 느꼈다.

컵라면으로 배를 대충 때워서 포만감이 들자, 잠이 오기 시작했다. 난 이미 지저분하게 펼쳐져 있는 이불 위로 쓰러져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몰랐다. 부모님이 집에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 게임 속의 존재들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아침 새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어나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니, 별달리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것은 나에게 언제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게임은 한 순간만 빠져드는 것으로 만족을 하고, 바로 삭제를 하였다. 난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는 전형적인 악동이었다.

“이틀 전이 금요일이었으니 오늘은 일요일이겠네.”

난 이불 속에서 잠시 밍기적 거리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허기진 배를 채울만한 음식거리를 찾아 주방으로 들어갔다. 냉장고를 열어보아도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김치와 단무지뿐. 아주 잠깐 자장면을 시켜먹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에게는 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 돈 있어요?”

난 안방 쪽을 향해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공허한 침묵뿐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존재감이 없었다. 조금 심한 말이지만, 돈을 벌어주는 것 이외에는 왜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엄마 같은 경우는 주부였는데, 하는 것이라곤 청소, 빨래를 마친 뒤 안방에 놓여있는 TV를 보는 것 이외에는 없었다. 아빠는 항상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다녀왔다.’ 라는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컴퓨터로 뉴스를 둘러보거나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술 한잔하는 일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별다른 인상을 남겨주는 일 없이 지내다보니 누가 있건 없건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들려오는 무거운 침묵에 그만 소름이 돋고 말았다. 아무리 서로 신경도 안 쓰는 존재들이라지만 적어도 어딘가에 나갈 때만큼은 말을 하고 나간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말이 없다. 말도 안 한 채 외출을 했다는 사실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대충 넘어가도 좋을 일 일수도 있지만, 지금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불안감이.

사람은 본능적으로 위험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비록 생쥐라던가, 고양이, 개처럼 강렬하게 느끼진 못 한다. 그러나 인간은 소름이 돋는다. 귀신이 몸을 스쳐지나 간다던지, 날카로운 흉기를 보면 저절로 툭툭 튀어나오지 않는가? 지금의 나도 그런 상황이었다. 귀신이나 흉기가 나를 노리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우리 집 거실에는 만약에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야구방망이 하나를 놓아두었다. 알류미늄 재질의 방망이었는데, 황당하게도 강도를 잡기 위해 두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방망이를 잡기도 전에 칼에 찔릴 것 같았는데 말이다.

난 그 강도를 잡기위한 야구방망이를 집어서 안방을 비롯한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물론 집안 어디에도 부모님이나 강도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자 2층에 창고 겸으로 사용하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쾌쾌한 냄새가 나를 덮쳤고, 날아다니는 먼지가 내 코를 자극하였다.

난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 창고 한쪽 벽면에 자리 잡은 창문에 고개를 내밀었다. 환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언제나 열어두고 있었지만, 별다른 소용도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은 비슷한 건물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미국에서 볼법한 그런 곳이다. 비슷하고 개성이 없다보니 집값이 싼 편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으로 보이는 것이 맞는 다면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간혹 가다가 펑크가 났다 던지, 가로등을 들이박은 자동차 한두 대만이 있을 뿐이었다.

난 눈을 비비며 급하게 거실로 내려갔다. 거실에는 내가 틀어놓았던 게임 방송이 요란하게 떠들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넋을 놓고 봤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심장이 미칠 듯이 쿵쿵대었다. 난 급히 뉴스가 나오는 6번 채널로 맞춰보았다. 내 예상대로 뉴스에서는 ‘긴급상황’이라는 말과 함께 현 상황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여러분, 이것은 현실입니다. 과학자들도 분석해내지 못한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사람과 무조건 멀리하십시오. 감염이 된 사람들은 감염된 지 20분에서 1시간 만에 죽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살아납니다. 자세히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확실한 것은 다시 살아난 존재는 여러분의 가족, 혹은 동료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과 접촉을 삼가십시오. 그들에게 물리면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인근 운동장 및 공공장소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가는 길이 막혔거나 감염자들과 마주쳐야 한다면 모든 문과 창문을 걸어 잠근 채 집안에 계십시오. 이것은 반복 방송입니다. 치지지직, 여러분, 이것은 현실입니다. 과학자들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 든 감정은 기대감이었다. 게임 속에서의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과 방탕하게 돌아다녀도 괜찮은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에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방송을 몇 번이고 반복해 볼수록 점점 사그라졌다. 알다시피 난 게임을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좀비가 나오는 게임을 좋아하였다. 여느 학생들처럼 폭력적이었고, 현실이 게임처럼 되기만을 바래왔다. 그러나 현실과 게임이 뒤바뀌었다. 내 생각처럼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과 깊은 두려움이 그 방법마저 망각하게끔 하였다. 그저 내가 헛것을 보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인간에게는 정말 치명적인 것이다. 방금 전까지 안락했던 집마저 이렇게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난 몇 평 안 돼는 나의 좁은 방으로 들어가 한 구석에 쭈그려 앉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컴퓨터가 눈에 띄었다.

게임, 게임이 현실로 변해버렸다. 비록 게임이 현실로 변했지만 치명적인 것(변종 괴물이라던가.)까지 변한 것이 아니었고, 물론 다른 점도 몇 가지 있었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만.

총.

그렇다. 게임에서는 총이라는 것이 있기에 강한 것이었다. 아무리 방망이나 칼로 후려쳐봐야 큰 타격을 입지 못 한다. 그래, 게임에서는 당연히 한 대 후려치기만 해도 픽픽 죽었겠지. 하지만 방망이로 뇌수를 부셔놓는 것보다는 총알 한 발이 두개골을 뚫고 뇌를 관통하는 것이 더 쉬웠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음식도 먹을 필요가 없었고, 체력도 무한정이라 얼마든지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몸이 발달해나가고, 발달하지 못 한 청소년이다. 먹어도 끊임없이 배가 고팠고, 체력도 성인에 비해 한참 약한데다가 감각이나 경험까지 부족하다.

문득 이것이 현실이 맞는지 착각이 들었다. 혹시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닐까? 밖에 나가면 진짜로 감염자라는 것이 존재하는 걸까? 밖에 나가면 아빠가 ‘서프라이즈, 아들!’ 이러면서 반기는 것이 아닐까?

역시 나는 현실감이 부족한가 보다. 잠깐 이렇게 있었다고 금방 진정되는 것을 보면.

이미 망해가는 세상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근방에는 감염자라고 불리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대피하는 사람들을 쫒아서 간 것이겠지. 만일 대피소마저 점령을 당한다면 나같이 숨어있는 자들도 위험해질 것이다. 다시 먹을 인간을 찾아 어슬렁어슬렁 내려 올 테니 말이다.

난 몇 시간이고,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마침내 마음이 안정을 찾았을 때는 거의 2시가 넘었을 때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의외로 너무 편안해서였다.

굳은 몸을 풀어주며 일어나보니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침을 컵라면 하나로 때우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그래도 지금부터는 식량을 아껴야한다. 대충 점검해보니 컵라면도 다섯 개 밖에 없었고, 남아있는 것은 참치 통조림과 나중에 구워 먹기 위해 사 둔 소세지 뿐이었다. 이것을 다 먹는 날에는 10분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던지, 이미 감염되었을 이웃에게 음식을 얻으러 가야만 했다.

물을 끓여서 라면에 부은 뒤, 익기만을 기다렸다. 난 평소에 2분도 안됐을 때 먹곤 했지만 왠지 지금 만큼은 푹 익혀먹는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나중에 가면 이러한 여유마저 없어질 지도 몰랐다.

면이 익자, 아침과는 다르게 천천히 먹었다. 먹는 것에는 심리적 포만감과 신체적 포만감이란 것이 있는데, 천천히 씹어 먹으면 신체적으로는 부족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만족을 한다고 한다. 식량이 얼마 없는 내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라도 먹어서 식사 간격을 넓혀야 했다.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라면국물도 깔끔히 마셨다. 속이 뜨끈한 것이 활력이 생겼다. 난 그 기세를 몰아, 현재 내가 해야 될 일을 생각해보았다. 최우선 적으로 1층의 문과 창문들을 잠그고, 나무판자와 천으로 덧대어 빛이 세어나가지 않도록 해야 됐다. 눈이 썩어서 보이기나 할지 몰라도 예방만큼 나쁜 것은 없다. 이 일이 다 끝나면 컴퓨터를 이용해서 생존해 있을 사람들을 찾아봐야겠다. 이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퍼졌는지, 또 왜 생겨난 것인지를 모르기에 생존자들과 함께 소통을 해봐야 했다.

막상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니, 부모님이 생각났다.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 아들은 버려둔 채 둘이서 떠난 부모님이 야속했다. 귀띔이라도 해주고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원망해봐야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부터는 내가 생각한 일을 해야 한다. 난 아직 죽기 싫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