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편지

ㅅㅂ201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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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너

 

이런 기분으론 도저히 백일 편지를 쓸 엄두가 안나서 여기다 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차피 손 아프게 편지 써봤자 주지도 않을 거고 아무도 못볼 글 쓰자니 그건 또 뭔가 속터져서.

 

널 좋아하는 이유며 사랑한단 말이며 좋은 말 예쁜 말로만 가득해야할 편지를 이런 푸념에 속상함으로 더럽히고 싶진 않다. 넌 모르고 있나 본데 당장 이번주 금요일이 우리 백일이야 임마. 왜 그걸 몰라줘서 내 기분을 복잡하게 만드니 나도 이런 내가 증말 싫다 한심하기 짝이 없어ㅋㅋㅋㅋㅋㅋㅋㅋ

 

 

넌 너대로 지금 짜증이 나있겠지. 그건 내 탓인 거 인정. 기분 안좋으면 안 좋은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못 감추고 다 티내는 내 성격 때문이야. 그러니 나 말고 내 거지같은 성격 탓을 해주렴. 나도 널 탓하진 않을게. 그냥 내 섬세함의 발끝도 쫓아오지 못하는 너의 둔함과 무신경함만을 미워할게

 

미안해. 고작 이런 걸로 마음 쓰고 감정적이 되버려서. 내가 별 쓰잘 데 없는 일에까지 예민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너만큼. 그랬으면 우리 둘 다 기분 상하는 일, 분위기 이상해지는 일 없이 알콩달콩 잘만 사귈 텐데.

 

누구 잘못인지 나는 잘 모르겠어. 내가 여자라서, 네가 남자라서 그렇다고 합리화 하고는 있는데 모두가 다 나같고 너같진 않을 거란 걸 알아. 내가 유난히 더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성격이 더러운 걸 수도, 네가 남들보다 좀 더 배려나 매너가 부족한 걸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난 요새들어 너랑 내가 잘 맞지 않는 거 같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맘 쓰고 신경 쓰며 내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느니, 차라리 힘들더라도 헤어져버리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널 다시 보고 너랑 손 잡고 얘기하고 있으면 이런 마음 같은 건 하나도 들지 않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니 미쳤어 하면서 그냥 니가 너무 좋고 사랑스럽기만 한데. 왜 혼자 있을 때면 울적해지고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지는지 몰라. 정말 모르겠어. 난 왜이럴까. 넌 왜 이런 날 몰라줄까. 알아 이건 그냥 정말 속이 상해서 하는 푸념이지 니가 날 모를 수 밖에 없단 걸 이해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야. 네 탓도, 내 탓도 아니지. 너와 내가 다른 탓이지. 알아서 더 힘들다. 그 차이를 메꿔가는 게 온전히 너와 내 노력이어야 한다는게. 앞으로도 내게 남은 수없이 많은 시간이 이해와 타협이어야 한다는게 말이야.

 

 

누군갈 사귄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나는 몰랐어. 누굴 좋아하고 사랑한단 것도, 그런 사람이 생기는 일에 대해서도, 연애를 하고있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나는 모든 게 니가 처음이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였어.

 

가끔 판을 보다 이상적인 여자친구에 관련한 글을 보게 될 때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는데, 남자친구가 생기면 정말 저만큼, 저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했었어. 널 사귀면서 그건 정말 그냥 생각일 뿐이란 걸 알았어. 상상만으론 누구든 무슨 일을 못하겠니. 결국 상상과 현실은 다른 법인데 말이야.

 

그래도 난 나름대로 노력했어. 좋은 여자친구가 되기 위해서 참고, 이해하고, 나랑 다른 부분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노력하는 내 모습이 내 나름대로는 대견하고 기특하기도 했어. 아. 너한테 지금 전화가 오네ㅋㅋㅋ

 

미안. 받고싶지가 않다. 이럴 때마다 참 울컥해. 그냥 맘놓고 펑펑 울어버렸음 싶기도 하고.. 어쨌든 오늘은, 적어도 이 기분이 다 풀릴 때까진 너랑 연락하지 않으려고. 지금 기분으로 너랑 얘기해봤자 괜히 분위기만 더 이상해져 버릴 것 같거든.

 

네가 쓸 데 없이 착해서, 나한테 화내고 짜증내지 않으려 해서 우린 싸운 적이 없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넌 그저 미안하다, 내가 잘못한 거 같다 그 말만 했잖아. 이번에도 그럴 거 같아서 너랑 얘기하고 싶지가 않아. 난 네 미안하단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네가 무조건 잘못한 일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가 무엇때문에 이러는지 말하고 싶지가 않아 정말로.

 

가장 쓸 데 없고 소용없는 게 자존심이란 걸 아는데. 사람 사이에 자존심 내세워서 될 일이 아니란 것도 아는데 그냥 난 너무 자존심이 상해. 나 혼자 너랑 내 특별한 날을 기억하는 거 같아서 나 혼자 괜히 이 난리 치고 있는 거 같아서 말이야.

 

그치 사실 백일이 뭐그리 큰 기념이겠니ㅋㅋㅋㅋㅋㅋㅋㅋ 애기들 백일잔치도 안 챙기는 요즘인데 하물며 흔해빠진 커플, 흔해빠진 백일따위야. 그래도 난 니가 처음이라서 사겨본 것도 남자친구도 백일도 모두 다 처음이라서. 아무래도 상관없다 생각하는 한 편으론 신경쓰고 있었던 모양이야. 한심하지 참ㅋㅋㅋㅋ 꼴불견이다 나

 

 

난 니가 너무 좋은데. 좋은 거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서로 너무 잘 알아서 쟤가 왜 저런지, 지금 왜 기분이 나쁘고 그게 무엇 때문인지, 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론 너무 좋기 때문에 신경쓰이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게 힘들어. 친구였다면 정말 아무렇지 않았을 일들인데 너에게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가끔 오늘 같을 때는 너무 지친다. 넌 어떨까. 너도 나같을까.

 

 

네가 날 좋아해주고 있단 걸 알아. 내가 널 좋아하는 만큼, 적어도 그만큼은. 그럴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고. 그런데도 나는 불안해. 니가 날 좋아한단 걸 알면서도, 내가 널 사랑하고 있는데도.

 

난 사실 처음 널 사귈 때부터 늘 끝을 생각했어. 누가 먼저 끝을 내든, 너랑 내가 평생 가진 않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말이야. 못됐지. 하지만 네가 처음이라서, 처음이 마지막이 되진 않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그랬나봐. 그냥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일을 당해서 충격받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자기 방어 때문에 그런 거 같아. 조금이라도 상처 덜 받으려고 미리부터 그런 생각을 해버려.

 

그런 못된 생각을 해서일까. 왜 난 늘 불안한 건지 모르겠어. 네 노력으로, 애정표현으로 네가 날 좋아하지 않을 거란 불안은 없애줬는데. 이상하게 늘 이유모를 불안감이 들어.

 

아마 이건 내 문제일거야.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쉽게 헤어질까.. 생각부터 해버리는 나. 정말 어느 순간 그런 말을 해버릴까봐. 너랑 내가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릴까봐. 후회하게 될까봐. 후회할 걸 알면서도 후회할 짓을 생각하고, 언젠가 생각대로 실행할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나 때문에 말이야.

 

 

네가 보고싶다. 널 내 옆에 두고, 그냥 이런 걱정 불안함 하나도 안 들게. 평생 어제의 시간에만 멈춰있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거 같아. 고민도 걱정도 불안도 없이 온전히 너랑 사랑하는 일만 생각하는 시간만 있다면 좋을텐데.

 

그래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푸념이라도 늘어놓으니 조금 속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여전히 네 부재중전화를 생각하고 메세지를 생각하면 속이 턱 막혀버려. 답답한 마음이 들어버린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 난감함일까. 어찌됐든 아직은, 너랑 연락할 준비까진 되지 않은 거 같다.

 

널 사귀면서 생각한 건데. 난 아직 누군갈 사귈 준비가 안되어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해. 네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책임감 없고 끈기없고 날 너무 사랑하는 나 때문에.

 

여러모로 너에겐 미안한 일들 뿐이다. 네가 잘못한 게 있다면 그만큼 나도 네게 잘못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너도 단지 말하지 않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는데.. 미안해. 정말 너무 미안해. 그냥 지금은 니가 너무 밉다.

 

백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못 올지 모른다 무심하게 말하는 너도 밉고, 대학생활 대학 사람들과 즐기며 노느라 가끔 날 배려해주지 못하는 너도 밉고, 생긴 건 잘나지도 않은 주제에 쓸 데 없이 매력만 있어서 사람이 많이 꼬이는 너도 밉고, 이런 날 신경쓰며 마음 쓰고있을 너라서 미워. 차라리 아주 나쁜 놈이었다면, 정말 큰 잘못을 했다면 힘들어지더라도 널 뻥 차버릴 텐데. 사소한 일들, 네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닌 일들 때문에 네가 미워져.

 

난 왜 너한테 고백을 해서 이 사단을 만들었을까? 아. 아무리 길게 말을 이어도 머리가 정리되지는 않는구나. 그냥 다 때려치고 내 할 일이나 해야겠다. 짜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