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신문기사를 보고도 해석을 제멋대로 해서 하나의 결론을 만들었군요. 모든 진실은 http://cafe.daum.net/KUNSANBASEBALL/LYYy/3?docid=1AOYKLYYy320090126102852 와 http://cafe.daum.net/KUNSANBASEBALL/LYYy/27 에 있습니다. . 이용일과 이호헌의 [한국 프로야구 창립계획서]가 확실한 근거 출처임. 이것보다 정확한 것은 없음. 1. 프로야구는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시행되었음. 2. 이호헌(MBC 야구해설)은 MBC와 정부측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프로야구 창설작업을 의뢰받음. . 전두환 정권은 프로야구를 국민들이 모두 시청하게 하려면 언론강제통합해서 만든 MBC를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MBC가 내세운 근거는 창사 20주년 기념사업임. . ① 재무구조가 튼튼한 대기업을 총수의 출신 도(道)별로 선정한다 ② 경쟁상대인 동종 업종 기업을 가급적 피한다 ③ 전체그룹의 종업원 수가 3만명 이상인 대기업을 우선으로 한다 ④ 프로야구 발전에 관심과 성의가 있어야 한다는 네가지 원칙으로 구단을 선정. . 서울-롯데, 부산-럭키, 대구-삼성, 인천-현대, 대전-동아건설, 광주-삼양사. 서울-대우, 대구-포철, 인천-대한항공, 대전-한국화약, 광주-금호, 해태, 미원 등이 2후보가 초안. . 사실 MBC가 나중에 서울 연고를 주장하며 참여를 희망해 서울 연고를 갖게 됐을 뿐, 초안에는 롯데가 서울 연고팀으로 계획. 그러나 롯데가 초안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님. . 롯데에게 노른자 서울을 주기로 한 것은 롯데는 그당시 이미 일본에 프로야구단 보유. MBC 이진희 사장의 동생 이상희 민정당 의원은 허삼수 군사정권 주역과 절친. . 또한 그당시 MBC와 경향신문은 같은 계열. 따라서 위의 링크의 경향 기사는 MBC에 유리하게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은 해보길 바람. . 롯데는 나중에 동종 업종 기업인 해태가 참여하게 되자 앞서 얘기한 네가지 창단 원칙에 위배된다고 불평하며 수용조건으로 연고지를 서울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금방 수긍했다.
-> 이는 모두 프로야구창설 이전에 나왔던 "계획"이다. 실제 정부의 방침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아마야구의 인기가 프로야구의 인기 못지 않게 많아 프로야구가 창설되면 아마야구가 모두 다 죽을 것이라는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이에 대기업들은 프로야구에 투자를 하게 되면 "아마야구 죽이는 기업"등의 이미지를 심을까 망설이게 되었다.
그래서 계속되는 회의에도 거듭하고 연고지, 선수권 문제를 확정짓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에서 맴맴 돌게된다.
그런데 이가 정부의 입김이었든 무엇이었든 이유야 어쨌든간에 MBC가 무조건 창단을 하겠다고 나서게 된다. MBC가 내건 조건은 서울 연고였고 정부도 프로야구 창설 자체가 유야무야될 수 있는 상황에서
MBC가 초석을 놓으면 다른 기업들도 덩달아 참여할 것을 기대하고 이를 승인하게 된다. 마지막에
경향신문이 MBC에 유리하게 작성되었다는 주장은 말도 안되며 의심이 되면 동아일보 등 다른 기사를 찾아보기 바람. 링크 걸어주고 싶으나 귀찮음.
연고지 기업체 선정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지역은 인천이다. 현대(당시 사장이 이명박)가 1후보, 대한항공이 2후보였으나 두 기업 모두 거부. . 한국화장품과 접촉했으나 서울연고를 요구해서 결렬. . 두산은 자청해서 팀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두산은 처음에 서울을 희망했으나 MBC에 밀리자 인천을 원했다. . 대전 연고팀이 나서지 않아 5개 팀으로 시작하려는데 삼미그룹 김현철 회장이 인천에 팀을 만들겠다고 자청. 여기서 대전으로 두산을 유도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 . 박용곤 회장은 "좋다. 대전을 맡을테니 3년 뒤 서울로 옮겨준다는 다른 구단주들의 승인서를 받아달라"고 요구. . 결국 두산이 3년 후 서울로 연고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6개구단 창단. (MBC도 인정했다는 것임). . 당시 프로야구는 우수선수가 필요했으나 실업팀에 소속된 선수는 1년 뒤에 입단해야 했다. 이런 피해를 받은 사람이 최동원과 박종훈(LG감독) . 이진희 MBC 사장이 전두환에게 인사가자고 한 자리에서 전두환의 명령으로 지방연고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집을 해당 지방으로 옮겨야했다. 또한 적극적으로 방송에서 드라마 대신 프로야구 중계를 틀기로 결정. . 처음에 5년 동안 구장 사용료 면제가 내무부에서 결정되었으나 서울시는 내무부 소속이 아니라 3년간만 면제. . 초창기는 전두환은 지역감정이 더 강화된다며 지역연고를 반대. 이후에도 5.18 전후로는 삼성와 해태의 경기를 잡지 않게 유도한 적도 있다.
당시 기업들이 야구 연고지로 갖고 싶어했던 지역은 서울과 광주였다. 서울은 수도라는 이점,
광주는 아마야구 인기가 엄청났고 군산상고, 광주일고 등 훌륭한 팜이 있었기 때문.
두산도 그 중 하나였으나 이미 MBC가 서울을 먹은 뒤였고 인천도 탈락.
이후 KBO회의에서 원안대로 대전 확정되자 생떼를 부리게 된다. 창단을 하지 않겠다, 대전에는 선수가 없다 등 계속 생떼를 부리자
창단 일정에 맞추어 구단을 창설해야만 했던 KBO는 두산을 달래기 위해
3년만 대전에 내려갔다가 오면 서울로 옮겨주겠다고 한다.
이 부분을 두고 자신들이 원래 서울 연고지였다고 주장한다면 하라고 하고 싶으나 뒤늦게 서울을 주장하고 나섰으면서 MBC-LG의 서울에 대한 정통성을 폄하하는 것은 애초부터 서울이 연고지였던 우리가 보기엔 정말 어처구니가 없음.
두산팬들은 "원래 3년만 있다 오면"에서 "원래"를 강조하나 "원래대로"치자면
두산은 "원래" 충북이었음.
김태형|2012.06.05 18:21
http://cafe.daum.net/KUNSANBASEBALL/LYYy/27 1989년 가을. MBC 청룡의 최창봉 구단주에게서 구단 매각을 추진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현대와 80억원 인수까지 합의보았으나 막판에 정주영이 거부. 이후 곧바로 럭키금성의 변규칠 사장이 찾아오다. . 1990년 1월 18일 MBC 이건영 사장과 LG 구승회 상무가 양도양수계약 조인식 당시 이사회에서는 럭키금성의 홈구장을 잠실구장이 아닌 목동구장으로 결정했다. . 럭키금성은 구본무 당시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잠실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 매스컴을 이용해서 압박. 청와대 이연택 수석을 통해서도 압박. . 분당쪽에 10만평의 땅을 확보해서 야구장을 만들겠다는 시나리오를 LG에서 제안했다. 럭키금성이 새 구장을 지을 때까지 잠실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결정이 내려졌다. . 과연 LG는 서울 연고에 대해 자격을 주장할 수 있는가?
1. 두산은 자청해서 프로야구 원년 창단에 뛰어들었다. 그에 비해 LG는 원년 초안에 부산에 단독으로 있었으나 참여하지 않음. .
2. 두산이 대전 연고를 3년간 맡으면서 다른 구단주와 3년 후에 서울로 온다는 합의가 있으므로 두산 팬이 서울 연고를 주장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
3. 오히려 LG는 새 구장을 지을 때까지 잠실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받음. 그래서 LG는 지금도 잠실구장을 사용할 때 홈인데도 3루 덕아웃으로 가서 퇴장함. .
4. LG가 MBC를 인수할 때 마스코트와 창단역사를 인수안함. 90년 창단이라고 창단 홈페이지 캡처 화면이 있음. .
5. LG는 "김성근의 저주"로 대표되듯이 구단운영이 엉망임. "서울의 자존심" 주장하지만 9년간 4강에 못간 그런 형편없는 실력의 팀에다, 구장 만들어서 이전하겠다는 약속도 안지키는 팀이고 인수 팀 역사는 부정하는 팀임. . 이제 여기에 대해 글쓴이가 반박해보시오. 결론은 서울 연고는 MBC와 두산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며 잠실 구장은 두산의 것임. LG가 제 3의 장소에 새로 만들어서 나간다고 했으니까
이후 MBC-LG에 대해.
여기서 "서울 연고"와 "잠실 야구장"사용을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음
구단 역사야 어쨌든 서울 연고인 넥센과 같은 경우 잠실 야구장을 쓰고 있지 않음. 많은 두산팬들이 서울 연고와 잠실 야구장 문제를 혼동하는데
어쨌든 LG가 MBC를 넘겨받은데 있어 서울연고의 정당성은 굳건한 문제이니
목동구장을 사용하라고 KBO가 그랬기 떄문에 LG는 서울연고 자격을 주장할 수 있냐고 묻는 무슨 개뼉다귀 논리빵점같은 소리는 반박하지 않겠음.
당시 KBO가 LG에게 목동구장을 쓰라고 했던 것도 사실임
당초 동대문구장을 쓰려고 했던 OB가 아마야구와의 트러블로 잠실로 옮겨오고
(그것도 1988까지만 쓰기로 함) 90년대가 오기전 MBC가 인수되려 하자
KBO에서는 서울 강동/강서 지역에 구단이 하나씩 있으면 프로야구 부흥에 좋을 것 같아 이를 적극 밀어붙임.(최근 넥센과 관련한 기사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 찾아보도록) 하지만 LG는 당초에 "모든 권리"를 MBC로부터 넘겨받았고
이에는 잠실구장 사용권도 들어있으므로 잠실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했음.
두산팬들이 주장하는 "LG는 원래 나가기로 했다"는 문제에 있어
LG는 애초에 이 부분에 대해 합의한 적이 없었음.
이후 야구사랑이 넘치는 LG회장이 LG만의 단독 구장 건립을 위해
여러모로 애썼으나 잘 알다시피 축구계 등의 훼방으로 번번히 실패함..
이걸 두고 또 두산팬들은 LG는 맨날 나가려고 하니까 잠실에 대한
정당성이 없다고 하는데
단독구장 건립과 잠실구장사용권이 대체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 모르겠음.
그리고 LG는 합의본 적이 없으나 애초에 "나가겠다"고 합의한건 두산임.
1988년까지 같이 쓰고 나가겠다고 했는데 안나가고 지금까지 버티는것임
1. 엘지가 부산 초안에 있었으나 창단하지 않은 것도 사실인데 어쨌든 뒤늦게
MBC를 인수했으므로 서울연고권 주장은 정당. 애초부터 창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고권 주장을 할 수 없다면, SK, 넥센 등도 자신의 연고지에 대해 연고권리를 주장할 수 없음.
2. 이 문제는 앞에서 언급했으므로 넘어감.
3. 자꾸 없는 사실 지어내지 마시고 "구장 지을 때까지 잠실구장 사용"이란 증거를 들고 오시기 바람. 홈인데 3루가 덕아웃인 문제는 원래 3루는 MBC-LG 락카가 있었고 1루는 KBO사무실. 3루가 주차장에서 더 가까워 이쪽을 통로로 썼음. 그런데 나중에 OB가 껴들어오면서 KBO 사무실을 차지하게 됨. 1루쪽엔 문도 없었으나 출입구를 하나 더 만들어줌.
4. LG는 MBC를 인수한 후 창단했기 때문에 당연히 LG 창단은 90년이 될 수 밖에 없지 않나. 창단과 인수 문제를 헷갈리지 않기 바람
말도 안되는 두산팬 얘기 반박합니다.
김태형
같은 신문기사를 보고도 해석을 제멋대로 해서 하나의 결론을 만들었군요. 모든 진실은 http://cafe.daum.net/KUNSANBASEBALL/LYYy/3?docid=1AOYKLYYy320090126102852 와 http://cafe.daum.net/KUNSANBASEBALL/LYYy/27 에 있습니다. . 이용일과 이호헌의 [한국 프로야구 창립계획서]가 확실한 근거 출처임. 이것보다 정확한 것은 없음. 1. 프로야구는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시행되었음. 2. 이호헌(MBC 야구해설)은 MBC와 정부측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프로야구 창설작업을 의뢰받음. . 전두환 정권은 프로야구를 국민들이 모두 시청하게 하려면 언론강제통합해서 만든 MBC를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MBC가 내세운 근거는 창사 20주년 기념사업임. . ① 재무구조가 튼튼한 대기업을 총수의 출신 도(道)별로 선정한다 ② 경쟁상대인 동종 업종 기업을 가급적 피한다 ③ 전체그룹의 종업원 수가 3만명 이상인 대기업을 우선으로 한다 ④ 프로야구 발전에 관심과 성의가 있어야 한다는 네가지 원칙으로 구단을 선정. . 서울-롯데, 부산-럭키, 대구-삼성, 인천-현대, 대전-동아건설, 광주-삼양사. 서울-대우, 대구-포철, 인천-대한항공, 대전-한국화약, 광주-금호, 해태, 미원 등이 2후보가 초안. . 사실 MBC가 나중에 서울 연고를 주장하며 참여를 희망해 서울 연고를 갖게 됐을 뿐, 초안에는 롯데가 서울 연고팀으로 계획. 그러나 롯데가 초안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님. . 롯데에게 노른자 서울을 주기로 한 것은 롯데는 그당시 이미 일본에 프로야구단 보유. MBC 이진희 사장의 동생 이상희 민정당 의원은 허삼수 군사정권 주역과 절친. . 또한 그당시 MBC와 경향신문은 같은 계열. 따라서 위의 링크의 경향 기사는 MBC에 유리하게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은 해보길 바람. . 롯데는 나중에 동종 업종 기업인 해태가 참여하게 되자 앞서 얘기한 네가지 창단 원칙에 위배된다고 불평하며 수용조건으로 연고지를 서울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금방 수긍했다.
-> 이는 모두 프로야구창설 이전에 나왔던 "계획"이다. 실제 정부의 방침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아마야구의 인기가 프로야구의 인기 못지 않게 많아 프로야구가 창설되면 아마야구가 모두 다 죽을 것이라는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이에 대기업들은 프로야구에 투자를 하게 되면 "아마야구 죽이는 기업"등의 이미지를 심을까 망설이게 되었다.
그래서 계속되는 회의에도 거듭하고 연고지, 선수권 문제를 확정짓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에서 맴맴 돌게된다.
그런데 이가 정부의 입김이었든 무엇이었든 이유야 어쨌든간에 MBC가 무조건 창단을 하겠다고 나서게 된다. MBC가 내건 조건은 서울 연고였고 정부도 프로야구 창설 자체가 유야무야될 수 있는 상황에서
MBC가 초석을 놓으면 다른 기업들도 덩달아 참여할 것을 기대하고 이를 승인하게 된다. 마지막에
경향신문이 MBC에 유리하게 작성되었다는 주장은 말도 안되며 의심이 되면 동아일보 등 다른 기사를 찾아보기 바람. 링크 걸어주고 싶으나 귀찮음.
연고지 기업체 선정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지역은 인천이다. 현대(당시 사장이 이명박)가 1후보, 대한항공이 2후보였으나 두 기업 모두 거부. . 한국화장품과 접촉했으나 서울연고를 요구해서 결렬. . 두산은 자청해서 팀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두산은 처음에 서울을 희망했으나 MBC에 밀리자 인천을 원했다. . 대전 연고팀이 나서지 않아 5개 팀으로 시작하려는데 삼미그룹 김현철 회장이 인천에 팀을 만들겠다고 자청. 여기서 대전으로 두산을 유도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 . 박용곤 회장은 "좋다. 대전을 맡을테니 3년 뒤 서울로 옮겨준다는 다른 구단주들의 승인서를 받아달라"고 요구. . 결국 두산이 3년 후 서울로 연고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6개구단 창단. (MBC도 인정했다는 것임). . 당시 프로야구는 우수선수가 필요했으나 실업팀에 소속된 선수는 1년 뒤에 입단해야 했다. 이런 피해를 받은 사람이 최동원과 박종훈(LG감독) . 이진희 MBC 사장이 전두환에게 인사가자고 한 자리에서 전두환의 명령으로 지방연고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집을 해당 지방으로 옮겨야했다. 또한 적극적으로 방송에서 드라마 대신 프로야구 중계를 틀기로 결정. . 처음에 5년 동안 구장 사용료 면제가 내무부에서 결정되었으나 서울시는 내무부 소속이 아니라 3년간만 면제. . 초창기는 전두환은 지역감정이 더 강화된다며 지역연고를 반대. 이후에도 5.18 전후로는 삼성와 해태의 경기를 잡지 않게 유도한 적도 있다.
당시 기업들이 야구 연고지로 갖고 싶어했던 지역은 서울과 광주였다. 서울은 수도라는 이점,
광주는 아마야구 인기가 엄청났고 군산상고, 광주일고 등 훌륭한 팜이 있었기 때문.
두산도 그 중 하나였으나 이미 MBC가 서울을 먹은 뒤였고 인천도 탈락.
이후 KBO회의에서 원안대로 대전 확정되자 생떼를 부리게 된다. 창단을 하지 않겠다, 대전에는 선수가 없다 등 계속 생떼를 부리자
창단 일정에 맞추어 구단을 창설해야만 했던 KBO는 두산을 달래기 위해
3년만 대전에 내려갔다가 오면 서울로 옮겨주겠다고 한다.
이 부분을 두고 자신들이 원래 서울 연고지였다고 주장한다면 하라고 하고 싶으나 뒤늦게 서울을 주장하고 나섰으면서 MBC-LG의 서울에 대한 정통성을 폄하하는 것은 애초부터 서울이 연고지였던 우리가 보기엔 정말 어처구니가 없음.
두산팬들은 "원래 3년만 있다 오면"에서 "원래"를 강조하나 "원래대로"치자면
두산은 "원래" 충북이었음.
김태형|2012.06.05 18:21
http://cafe.daum.net/KUNSANBASEBALL/LYYy/27 1989년 가을. MBC 청룡의 최창봉 구단주에게서 구단 매각을 추진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현대와 80억원 인수까지 합의보았으나 막판에 정주영이 거부. 이후 곧바로 럭키금성의 변규칠 사장이 찾아오다. . 1990년 1월 18일 MBC 이건영 사장과 LG 구승회 상무가 양도양수계약 조인식 당시 이사회에서는 럭키금성의 홈구장을 잠실구장이 아닌 목동구장으로 결정했다. . 럭키금성은 구본무 당시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잠실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 매스컴을 이용해서 압박. 청와대 이연택 수석을 통해서도 압박. . 분당쪽에 10만평의 땅을 확보해서 야구장을 만들겠다는 시나리오를 LG에서 제안했다. 럭키금성이 새 구장을 지을 때까지 잠실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결정이 내려졌다. . 과연 LG는 서울 연고에 대해 자격을 주장할 수 있는가?
1. 두산은 자청해서 프로야구 원년 창단에 뛰어들었다. 그에 비해 LG는 원년 초안에 부산에 단독으로 있었으나 참여하지 않음. .
2. 두산이 대전 연고를 3년간 맡으면서 다른 구단주와 3년 후에 서울로 온다는 합의가 있으므로 두산 팬이 서울 연고를 주장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
3. 오히려 LG는 새 구장을 지을 때까지 잠실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받음. 그래서 LG는 지금도 잠실구장을 사용할 때 홈인데도 3루 덕아웃으로 가서 퇴장함. .
4. LG가 MBC를 인수할 때 마스코트와 창단역사를 인수안함. 90년 창단이라고 창단 홈페이지 캡처 화면이 있음. .
5. LG는 "김성근의 저주"로 대표되듯이 구단운영이 엉망임. "서울의 자존심" 주장하지만 9년간 4강에 못간 그런 형편없는 실력의 팀에다, 구장 만들어서 이전하겠다는 약속도 안지키는 팀이고 인수 팀 역사는 부정하는 팀임. . 이제 여기에 대해 글쓴이가 반박해보시오. 결론은 서울 연고는 MBC와 두산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며 잠실 구장은 두산의 것임. LG가 제 3의 장소에 새로 만들어서 나간다고 했으니까
이후 MBC-LG에 대해.
여기서 "서울 연고"와 "잠실 야구장"사용을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음
구단 역사야 어쨌든 서울 연고인 넥센과 같은 경우 잠실 야구장을 쓰고 있지 않음. 많은 두산팬들이 서울 연고와 잠실 야구장 문제를 혼동하는데
어쨌든 LG가 MBC를 넘겨받은데 있어 서울연고의 정당성은 굳건한 문제이니
목동구장을 사용하라고 KBO가 그랬기 떄문에 LG는 서울연고 자격을 주장할 수 있냐고 묻는 무슨 개뼉다귀 논리빵점같은 소리는 반박하지 않겠음.
당시 KBO가 LG에게 목동구장을 쓰라고 했던 것도 사실임
당초 동대문구장을 쓰려고 했던 OB가 아마야구와의 트러블로 잠실로 옮겨오고
(그것도 1988까지만 쓰기로 함) 90년대가 오기전 MBC가 인수되려 하자
KBO에서는 서울 강동/강서 지역에 구단이 하나씩 있으면 프로야구 부흥에 좋을 것 같아 이를 적극 밀어붙임.(최근 넥센과 관련한 기사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 찾아보도록) 하지만 LG는 당초에 "모든 권리"를 MBC로부터 넘겨받았고
이에는 잠실구장 사용권도 들어있으므로 잠실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했음.
두산팬들이 주장하는 "LG는 원래 나가기로 했다"는 문제에 있어
LG는 애초에 이 부분에 대해 합의한 적이 없었음.
이후 야구사랑이 넘치는 LG회장이 LG만의 단독 구장 건립을 위해
여러모로 애썼으나 잘 알다시피 축구계 등의 훼방으로 번번히 실패함..
이걸 두고 또 두산팬들은 LG는 맨날 나가려고 하니까 잠실에 대한
정당성이 없다고 하는데
단독구장 건립과 잠실구장사용권이 대체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 모르겠음.
그리고 LG는 합의본 적이 없으나 애초에 "나가겠다"고 합의한건 두산임.
1988년까지 같이 쓰고 나가겠다고 했는데 안나가고 지금까지 버티는것임
1. 엘지가 부산 초안에 있었으나 창단하지 않은 것도 사실인데 어쨌든 뒤늦게
MBC를 인수했으므로 서울연고권 주장은 정당. 애초부터 창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고권 주장을 할 수 없다면, SK, 넥센 등도 자신의 연고지에 대해 연고권리를 주장할 수 없음.
2. 이 문제는 앞에서 언급했으므로 넘어감.
3. 자꾸 없는 사실 지어내지 마시고 "구장 지을 때까지 잠실구장 사용"이란 증거를 들고 오시기 바람. 홈인데 3루가 덕아웃인 문제는 원래 3루는 MBC-LG 락카가 있었고 1루는 KBO사무실. 3루가 주차장에서 더 가까워 이쪽을 통로로 썼음. 그런데 나중에 OB가 껴들어오면서 KBO 사무실을 차지하게 됨. 1루쪽엔 문도 없었으나 출입구를 하나 더 만들어줌.
4. LG는 MBC를 인수한 후 창단했기 때문에 당연히 LG 창단은 90년이 될 수 밖에 없지 않나. 창단과 인수 문제를 헷갈리지 않기 바람
5. 대체 팀성적과 연고 정당성이 왜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음.
이게 연관이 있는 문제라면 글쓴이의 논리로 비춰보아 공부를 상당히 못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숨쉴 자격이 없다는 공식이 성립됨.
자꾸 인정을 안하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지 말고 그냥 쿨하게 인정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