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게임]PART 2.(DATA1~4)

왕보리2012.06.08
조회913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berser13 님 >

 

[2010. 7. 23 금요일 10시 45분 서울 양천구]


[빤빠라 빤빠라~ 일어나! 임마! 일어나! 어쭈 안 일어나냐! 이 새끼 봐라]

언제 들어도 기분 나쁜 목소리의 알람 소리에 힘겹게 눈을 떴다.

어제는 지우와 저녁을 보낸 후 늦게 들어와서 더욱 늦게까지 작업을 하다가 잠들었기에 일어나기가 더욱

힘들었다. 두꺼운 검은 커튼을 쳐 놓은 방은 여전히 밤이 지배하는 듯 어두웠다.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지 않고 조금만 더 자다보면 순식간에 저녁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나는 알람시계를 찾아서 알람을 껐다.


[10:45]


시간을 확인 한 나는 한참동안 시계를 쳐다보았다.

분명 이 시계의 알람은 12시에 맞추어져 있었다.

아주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12시에 고정 되어 있는 시계였다.

배터리가 약해졌거나 했으면 그렇게 우렁차게 알람이 울려댔을 리가 없었으니 배터리 문제나

시계 고장은 아니었다.

알람 시간이 조금 바뀌어져 있었다.

나는 시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언제나처럼 시원한 물 한잔을 몸에 넣어야지 정신이 차려질 것 같았다.


방에서 나오자 햇살이 눈을 공격했다.

눈을 찌푸리고 냉장고가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머리통.


나는 잠시 멍해졌다.


아침이었다.

아니 낮이구나.

하지만 막 일어난 나에게는 아침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뇌의 잘 회전 되지 않는 체질이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냉장고 안을 쳐다보았다.

이 냉장고는 거의 항상 차 있었다.

신중이 녀석 때문이다.

지금도 냉장고 안이 가득 차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눈이 확 들어오는 이질적인 물건이 있었다.


머리통!


수박크기만한 머리통! 크기는 분명히 수박만 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녹색 무늬에 검은 줄이 있는 동그란 수박이 아니었다.

혹은 네모난 상자에 넣어서 재배해 정육면체로 변한 동그란 수박보다 비싼 기형아 수박은 더더욱 아니었다.


분명히 머리칼이 있었고 눈이 있고 코가 있고 그 밑으로 턱도 있고 더 아래쪽으로 목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래쪽은 없었다.

물론 그 아래쪽이 있었다면 좁아터진 냉장고안에 모셔져 있을리 없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냉장고 문을 조용히 닫았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싱크대에는 설거지 안한 그릇이 수북했고 식탁 위 역시 라면 봉지 등 먹고 텅 빈 비닐 포장지들이 즐비했다.


모두 어젯밤 신중이 녀석이 먹어 치운 것들이었다.

역시 내 집이었다.

다시 냉장고를 살폈다.

이 곳에 이사 오다가 실수로 부딪혀서 문짝이 조금 움푹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 흔적을 만져 보았다.

똑같았다.


나는 다시 문을 열어 보았다.


머리통!


성인 남자의 머리통이었다.

머리숱은 그다지 없었고 눈은 감겨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깼나? 아니면 아직도 잠자는 중인가?


[짝]


나는 내 뺨을 조금 강하가 싶을 정도로 후려쳐 보았다.


“아얏!”


저절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꿈은 아니었다.


그제야 내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비명을 얼마나 질렀을까? 목에서 더 이상 비명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는 사회자처럼 소리를 내어 보았다.

잠시 갈라지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목소리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비명을 질러 볼까 했지만 그만 두었다.

목만 아플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부엌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지면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던 모양이었다.


“시시신중아!”


최근 들어 별로 반갑지 않던 나의 죽마고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녀석 역시 올빼미 생활을 하는지라 잠을 자고 있을게 분명했다.

나는 다시 신중이를 목청 높게 불렀다.

이정도로 애타게 불렀으면 죽어있던 시체도 벌떡 일어나 대답을 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집안은 조용했다.

하기야 그렇게 비명소리를 질러댔는데도 꿈쩍도 안 한 녀석이 이름정도 부른다고 나올 리가 없었다.


나는 주저앉아 있던 자세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있는 녀석을 자근자근 밟기 위해서였다.

나는 온 집안을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집이라고 해봤자 코딱지만한 공간이라 그다지 돌아다닐 공간도 없었다.

나는 출입문으로 향했다.

신발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얼마 전에 산 농구화는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가 드디어.

26년 싱글 생활을 못 견디고 살인을. 미친놈.

그렇다고 이런 짓을 저지르면. 내가 너무 무심했어.

일주일에 한 시간씩이라도 놀아줄걸. 내가 나쁜 놈이야.

내가. 이 새끼 어디 간 거야. 빨리 자수 시켜야지. 그러면 사형은 면할 수 있을 거야.

우발적 범행이었을테니 10년 정도만 살면 다시 나올 수 있을 거야. 빨리 찾아야지.

아! 맞다. 이 새끼.

나까지 공범으로 몰고 가면 어떡하지?

내가 안 놀아줬다고 보복하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머리통을 냉장고에 가져다 논 걸 거야.

이 나쁜 새끼. 죽일 놈의 새끼.

그러고는 지는 도망을 가! 아니 이 새끼가 아예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그러는 거 아냐.

그리고 지우를 빼앗아가려고! 이 새끼. 찢어 죽어버릴 놈의 새끼.

안되겠다.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지 경찰! 사실대로 일러야지! 내 행복을 뺏으려는 악마새끼를 화형 시켜야지’


내 심장은 엄청난 속도로 피를 내뿜어내고 있었고 내 머리는 그의 부응이라도 하려는 듯 엄청난 속도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현관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악마 등장!


그 악마는 핏발이 선 시뻘건 눈동자를 하고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나보다 더욱 황당하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엇! 깜짝 놀랐네. 왜 현관 앞에서 그런 멍청한 얼굴을 하고 아니 원래 멍청한 얼굴이지. 왜 그런 평소보다 더욱

멍청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거야?”


녀석이 주절거렸다.


“악마 새끼! 인간의 언어는 어디서 배운 거야?”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나 역시 내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기기 위해서는 선빵을 날려라’라는 어느 3류 액션 영화의 주인공의

대사였다.


나는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리고 1초도 지나기 전에 나는 후회 했다.

녀석이 나랑 같이 26년을 솔로 생활을 한 것도 사실이고 그다지 머리도 좋지 못하고 언제나 나랑 같이

빈둥거렸지만 녀석의 아버지는 유도 도장 관장이고 녀석 역시 유도가 3단이라는 사실이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녀석 덩치는 나의 2배 이상이다.

202센치에 100키로 넘는 체구라 어딜 가더라도 별로 시비 거는 녀석은 없었다.

술 먹고 먼저 시비 건 적은 꽤 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쾌애액”


내 입에서 돼지 멱따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녀석의 발길질에 나는 뒤로 나가 떨어졌다.

아프니깐 제 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아야! 이 새끼야 사람 얼굴을 발로 차!”

“앗 미안! 네가 하도 무서운 얼굴로 달려들기에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만.”


무서워서라는 말에 나는 온 몸에 닭살이 돋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무섭긴. 개미가 코끼리 허리 부러트린다고 달려든다고 무서워하는 코끼리가 어디에 있어 엉!”


갑자기 인간에서 개미가 되는 수모 겪는 나였지만 아주 적절한 비유인 것 같아 뿌듯했다.

신중이 녀석이 다가왔다.


“으악! 밟지 마! 나는 밟혀 죽기 싫어!”

“그만 지랄하고 일어나기 나 해. 너 이번 만화에도 그런 썰렁한 대사 집어 넣은 거야!”


나는 신중이 녀석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녀석의 발로 걷어차인 머리가 조금 띵하긴 했지만 내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녀석이 힘 조절을

해준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악마 어쩌고 헛소리를 하면서 왜 달려 든 거야? 혹시 숨겨 놓은 라면 때문이라면 걱정마! 이렇게 라면

사러 나갔다 온거니깐!”


신중이는 손에 들고 있던 라면이 가득 들어있던 봉지를 흔들어댔다.

나를 순식간에 라면 하나 때문에 친구에게 달려든 단순 무식한 인간으로 만든 녀석을 라면으로 때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라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머리통!


“이 새끼야.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아씨! 그래 미안해!”

“너 같은 새끼는 죽어야 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다고 죽을 거까지야!”

“하긴 사형은 아닐 거야? 초범이니 한 10년 정도.”


신중이 녀석이 꼭 뭐 씹어 먹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야. 아무리 내가 라면에 네가 숨겨놓은 계란 2개랑 치즈랑 다 넣어서 먹었다고 사형이 어쩌구 하는 거는 너무

하는 거 아냐! 그것도 네 만화에 나오는 스토리…….”

“아씨! 라면 이야기 그만 안 해!”


나는 신중이 녀석과 똑같은 표정을 잠깐 지어 보이다가 녀석이 들고 손에 들고 있던 라면 봉지를 빼앗아

거실 소파에 휙 집어 던지고는 녀석의 손을 잡아끌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 열어봐!”


나는 신중이를 냉장고 문 앞에 세워 놓고 말했다.


“왜? 그것 말고는 더 먹은 거 없는데...”

“지랄하지 말고 열어봐.”라고 하며 나는 신중이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신중이는 뒤를 돌아 나를 째려보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으아악!”


녀석이 놀라 지르는 비명소리는 마치 곰이 포효 하는 듯 했다.

덩치는 산만한 게 비명을 질러대자 무슨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올라온 악귀 같았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은 공포영화 볼 때도 얼마나 겁이 많은지 내 품에 얼굴을 파묻고 보는 바람에

그 큰 바위 얼굴을 떼어내느라 무지 고생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틀렸다.

자신이 넣어 놓은 물건을 보고 자신이 놀라는 아니 놀라는 척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털푸덕!


녀석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자빠졌다. 나는 녀석에 덩치에 깔려 죽지 않으려고 피했다.


“이…이게 뭐야?”


나는 정말 오래간만에 이 녀석에게 감탄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연기력이 좋은 줄 몰랐다.


“뭐긴 뭐야. 네가 죽인 사람의 머리통이지. 도대체 내가 자는 사이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아무리 날이 덥고

습해서 길거리에서 어깨를 친 것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불쾌지수 90%를 넘어섰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을 죽이면 어쩌자는 거야? 빨리 책임져!”

“무슨 책임을 지라는 거야!”

“아씨! 무슨 책임은 빨리 경찰에 신고하고 자수해! 그리고 저 징그러운 머리통 좀 제발 치워줘! 아 맞다. 우리

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 알려지면 집주인이 나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니 모르니깐 그냥 저거 가지고

사라져 줘!”


신중이 녀석은 잠시 황당한 얼굴로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 이제 알겠다.”


나는 드디어 이 녀석이 완벽하게 미쳤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냉장고에서 그 머리통을 꺼내들었다.


“전에 엽샵(엽기적인 물품들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에 들락거리다니 이거 하나 구입했다 본데. 꽤

묵직하고 이 정도로 정교 한 물건이면 꽤 비싸겠구만. 돈이 어디 있어서 산거야?


나는 속으로 ‘아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녀석이 머리칼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머리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머리칼이랑 눈이랑 진짜 정교하다. 할리우드 특수 효과 팀에서 만든 건가? 어디서 산거야?”

“정말 피까지 뚝뚝 떨어지는 게. 진짜 같잖아?”

“얼마 주고 산거야?”


녀석이 물었다.


“사긴 뭘 사. 요즘 지우랑 데이트 할 돈도 없어서 매일 얻어먹는 거 알면서. 장난치지 말고 네가 산거 아냐?”

“네가 미쳤냐? 그 돈이 있으면 계란을 사서 라면에 넣어 먹지.”

“그럼 이건 뭐야?”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물론 눈높이 차이 때문에 녀석은 내려다보고 나는 올려다보았지만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꿀꺽!”


동시에 침 넘어가는 소리.


“꺄악!”


녀석은 다시 덩치에 안 맞는 비명소리를 질러대고는 손에 들고 있던 머리통을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쿵쾅거리며 도망쳤다.

나 역시 녀석을 따라 도망쳐 나갔다.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04시 20분 서울 양천구 S공원]


“반장님!”

“왜?”


두 남자는 차에서 내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훤칠한 키에 용모 또한 준수했다.

머리는 잘 정리되어 있었고 옷 역시 잘 차려 입고 있었고 구두 역시 완벽하게 깨끗했다.

씻을 시간조차 없다는 형사와는 전혀 다른 용모였지만 이 남자는 분명히 형사였다.

그리고 보조석에서 내린 남자는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와는 상반되게 평범한 키였고 막 자다 일어난 듯한

머리는 까치집을 짓고 있었고 수염 역시 덥수룩했다.

게다가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다.

구두 역시 닳을 대로 닳아 빗물이 세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탤런트를 연상시키는 남자는 김은식 형사였고 노숙자를 연상시키는 남자는 오지혁 반장이었다.

둘은 서울 경찰청 소속이었다.


“여기는 왜요? 살인 사건인데.”

“그냥. 심심하니깐.”


김 형사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계속 오 반장을 따라 갔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곳은 공원의 화장실이었다.

이미 출동한 경찰들로 현장은 꽤나 번잡했다.

둘은 경례를 하는 의경들을 지나쳐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야! 이 새끼들 똑바로 못해! 야 이 새끼 거기 들어오지 마! 기자들 못 들어오게 해.”


현장인 공원 화장실로 다다 갈수록 한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조용한 공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두 남자는 통제선을 넘어섰다.


“오 반장!”


김 형사와 오 반장은 동시에 얼굴을 구겼다. 조금 전 큰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큰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 반장 동기인 강력 1반 구주구 반장이었다.

과격하지만 높은 검거율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언제나 매우 저돌적으로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그 과격함 때문에 시민단체에서 과잉 폭력 및 공권력 남용 등등으로 몇 번이나 소송에 걸렸었지만

요즘같이 흉악 범죄가 많은 세상에서 그런 소리는 거의 묻힌 상태였다.

경찰청 내에서도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었다.


서울 용산에 터를 잡고 있던 조직폭력배 무릉도원파 45명을 일제 소탕! 밑 종로구 일대에서 벌어졌던

노인 등 부녀자를 타켓으로 한 퍽치기 강도 및 살인 사건 일당 소탕 등등으로 최근 연속적으로 흉악범들을

검거하여 그의 주가는 상한가에 상한가를 거듭하고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에 그의 팬 카페가 열렸을 정도였다.

올라간 그의 주가만큼이나 그의 콧대도 하늘을 치솟고 있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구반장님!”


김 형사가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오 반장을 대신해 구 반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 김 형사! 아직도 오 반장 밑에 있는 거야? 그러지 말고 빨리 1반으로 전출 신고서 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

“헛소리 그만하고.”


보다 못한 오반장이 끼어들었다.


“어인 일로 바쁜 오 반장이 여기까지 출두한거야? 나도 한창 바쁜 터라 말이지.”

“어떤 사건이야?”


오 반장이 물었다.


“이 근방과 근처 역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로 보이는 남자가 살해되었어. 신원은 확보 중이고.”

“목격자는 있어?”

“저쪽에…. 이 남자도 노숙자인데.”


구 반장이 목격자가 보호되고 있는 경찰 승합차를 가리켰다.


“남자가 살인 현장을 목격했고 살인범도 본 모양이야. 그런데 약간 정신지체가 있어서 진술을 얻어내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말이야. 금방 잡을 거야. 언제나처럼 말이지. 하하하.”


구 반장은 뭐가 신나는지 연신 큰 소리로 웃어댔다. 오 반장은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 보려고? 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구 반장의 물음에 오 반장은 대답도 하지 않고 현장으로 들어갔다.

현장은 참혹했다.

온통 피바다였다.

피는 화장실 천장이며 바닥 그리고 벽까지 온통 칠해져 있었다.

검시관들은 한창 현장을 검증하고 있었다.

오 반장은 시체를 바라보았다.

웬만해선 표정의 변화가 없는 오반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 만큼 시체는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시체는 상체는 벽에 기대어져 있었고 하체는 바닥에 있었다.

하지만 있어야 할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복부 및 가슴 역시 절개 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그 안에서 나온 내용물들이 흘러 완전 난장판이었다.

김 형사 역시 좋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머리가 없네요.”

“머리는 발견하지 못했네. 게다가 없어진 것은 머리 뿐 만이 아니야. 장기도 없어진 모양이야.”


김 형사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이봐. 사체 중에 없어진 부분이 뭐야?”


구 반장이 한창 사체의 사진을 찍고 있는 검시 경찰에게 물었다.


“국과연에서 검시를 해봐야겠지만 일단 심장, 폐가 없습니다. 뭐 다른 장기도 심하게 훼손되어 있어서 분간이

잘 안갑니다. 거의 난도질 했다고 보면 되겠네요.”


검시관이 대답했다.


“게다가 손가락도 모두 절단 되어 있더군.”


구 주구 반장의 말에 김 형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가학성을 보면 완전히 미친 변태 살인마로군요.”


김 형사가 말했다.


“그런가? 하하 걱정 마. 내일 이면 신문과 TV에 ‘슈퍼 경찰 구주구 반장 이번에는 변태 살인마를 검거하다’라고

대문짝만하게 나올 테니….”


김 형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어처구니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경찰청 내에서 구 반장의 별명은 ‘찍기 대장’이었다.

한마디로 감으로 범인을 찍어서 체포 한다는 뜻이었다.

일단 모조리 검거 한 다음에 그 중에 범인이 있으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그만이었다.

과학적인 수사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가 많았지만 일단은 대외적으로는 많은 흉악범을 검거한 그였기에 경찰청 내에서는 쉬쉬하고 오히려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현실이었다.


그들은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이제 사체 처리하고 국과연으로 넘겨서 검시 하라고 해!”


구 주구 반장이 이렇게 외쳤다.


“구경 잘 했나? 나는 이제 목격자도 심문해야 하고 기자들도 만나야 하네. 살펴 가게.”


이렇게 말하고는 구 반장은 승합차로 발길을 옮겼다.

승합차로 가는 도중에도 구 반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제가 저 양반 보기 싫어서 오기 싫다고 했잖아요. 왜 갑자기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가지세요?”

“그냥 심심하니깐.”


오 반장은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하면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한곳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오 반장의 시선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공원 한쪽을 향해 있었다.

물론 공원 사방은 경찰과 의경으로 쫙 깔려 있었다.

죽은 남자의 없어진 사체 일부를 수색 중이었다.


“저기 남자가….”

“어디요?”


김 형사는 오 반장이 가리킨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풀숲을 수색중인 의경들만 눈에 띄었다.


“없어졌네.”


오 반장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


“가실 건가요?”

“아니. 자네는 가서 목격자 진술 좀 듣고 와봐.”

“네.”


김 형사는 다시 혼잡스러운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오 반장은 잠시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다시 발길을 옮겼다.

 

 

 


Data 3. Autopsy(해부)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11시 01분 서울 양천구]


“헉헉!”

집을 뛰쳐나와 얼마나 달렸을까? 신중이 녀석은 지쳤는지 헉헉거리다가 결국 멈춰 섰다.

나 역시 헉헉거리며 멈춰 섰다.


“야. 헉헉. 너 헉헉”


나는 할말이 많았지만 뇌로 산소가 들어가지 못해서인지 정리가 되지를 않았고 숨쉬는데 입과 코를 다 쓰고

있는지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숨쉬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폐 속으로 하나 가득 공기를 밀어 넣었다 뱉기를 반복했다.

겨우 진정을 시키고 나서야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왜 도망친 거야?”


녀석에 물었다.


“헉헉. 당연 헉헉 하지. 헉헉.”


덩치만큼 몸에 필요한 산소가 더 많은 모양이었다. 한 1분 정도 헉헉거리더니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머리통이 있잖아. 너무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


문득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이 녀석과 함께 한 게 15년이었다.

덩치는 산만한 게 곰 같고 정말 곰처럼 둔한 녀석이었다.

게다가 하지만 이 녀석이 사람을 죽일 녀석은 아니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는 너는 왜 도망쳤어?”


녀석이 물었다.


“네가 도망가니깐 나도 모르게. 그리고 나 혼자 그 머리랑 어떻게 있어.”


“하긴. 그거 진짜 사람 머리 맞지?”


“어. 그런 거 같아.”


우리 둘은 잠시 말을 멈추고 냉장고에서 봤던 그 머리를 떠올렸다.

덥수룩한 머리칼 주름이 자글자글 한 얼굴.

치켜 뜬 눈.

남자였다.

40대 가량.

지금 생각해보니 평범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좋게 봐주면 배고픈 예술가. 있는 그대로 봐주면 완전 노숙자 같았다.

 

“어떡하지?”


신중이가 물었다.


“어떡하긴 신고해야지 경찰에.”


“아 맞다! 경찰!”


나의 말에 신중이는 겨우 경찰이라는 민중의 지팡이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항상 우리 곁에 함께 있다고 하지만 왠지 멀게 느껴지는 그들의 존재가 말이다.


“그럼 경찰에 신고할까?”


신중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갑자기 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잠깐! 신고 하기 전에 몇 가지 좀 생각해보자!”


“뭘 생각해? 그냥 신고해!”


극도로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녀석 다운 반응이었다.


“잠깐만! 일단 그거 진짜 사람 머리 맞지?”


“어.”


“본적 있는 얼굴이야?”


“아니. 전혀.”


“한번도 본 적 없는 거 맞아? 잘 생각해 봐.”


“몰라. 오다가다 봤을지도 모르지만 저런 아저씨 얼굴을 어떻게 기억해. 예쁜 여자라면 몰라도. 노숙자처럼

생겼던데…. 그러는 너는?”


“나도 본 적 없어.”


그랬다.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의 머리가 우리 집 냉장고 속에 들어 있었다.

 

“분명한건 이건 살인 사건이라는 거야.”


“그렇겠지. 노숙자 아저씨가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냉장고에 넣어 놓고 몸만 빠져나가는 재주를 보여주지

않는 한 말이야.”


“그럼 누가 죽인거야?”


내가 물었다.


“글쎄. 난 아니야. 절대 난 아니야.”


녀석이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알았어. 알았어. 넌 아니야.”


솔직히 누가 왜 죽였는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살인 사건은 흔한 일이었다.

뉴스를 보면 하루에 거의 한건 이상의 살인 사건 이 나는 세상이었다.

길에서 어깨를 살짝 부딪쳤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었다.

이 남자 역시 재수 없게 그런 놈한테 걸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원한의 의한 살인이었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왜 그리고 누구한테 죽었는지 전혀 알 필요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왜 그 머리를 우리 집 냉장고에 넣어놓았는지가 중요했다.


“너 정말 아니지?”


녀석이 나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에라이~”


나는 발로 녀석의 허벅지를 한번 찼다. 물론 녀석의 고목 같은 허벅지에 내 발등만 아팠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그럼 누가 왜 우리 집 냉장고에 그것을 넣어 놓았을까?”


나의 질문에 신중은 나름대로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지어보이다가 입을 열었다.


“다른 거는 다 모르겠는데 한 가지는 알겠다.”


“뭔데?”


나는 기대에 찬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상하지 않으려고 그런 걸 거야.”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왜 냉장고에 넣어 놓았냐며? 당연히 상하지 않으…”


“에라이!”


나는 뛰어올라 냅다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 쳤다.

역시 돌머리라 내 손바닥만 아팠다.

이런 돌머리에게 질문이라는 것을 한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면서 발길을 옮겼다.


“가자!”


내가 말했다.


“어딜? 경찰서? 자수하러 가는 거야?”


“집에 다시 가는 거야. 그리고 내가 안 죽였다니깐 자꾸 헛소리 할래.”


“하지만. 너 온순하다가도 성질나면 물불 못 가리잖아. 그리고 네가 그리는 만화에서도 사람 막 죽이고

그러잖아. 혹시 너 만화 그리는데 잘 안 그려져서 한 명 죽여본거 아냐? 실감 나게 그리려고?”


녀석은 내 뒤를 졸졸 쫓아오면서 헛소리를 해댔다.


“아씨! 더운데 짜증나게! 자꾸 헛소리 하면 죽는다!”


“헉!”


내 말에 녀석은 뒷걸음질치며 물러났다.


“너 숙자 아저씨를 더운데 짜증나게 한다고 죽인거야? 왜 그랬어? 좀 참지! 나도 그렇게 죽이려고?”


나는 녀석이 무슨 말 무시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경찰에 그냥 신고하기에는 무엇인가가 걸렸다.

신중이 녀석은 계속 구시렁거리면서 쫓아왔다.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09시 20분 서울 경찰청 강력 5반]


오 반장은 자료를 확인 하고 있었다.


피해자 이름은 남득구. 48세. 범행 시각은 오늘 자정부터 04시로 추정되고 있었다.

사체의 손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정확한 범행 시각 추정에 애를 먹었다.

현장에서 바로 수행한 직장 체온 검사 결과와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에서 검사한 결과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0시부터 4시사이로 결론 지어졌다.

직장 오 반장은 전화를 들어 다이얼을 눌렀다.

그는 국과연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벨이 울리고 내선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김 박사님 저. 오지혁입니다.”


“아. 자네군.”


상대방은 국립과학연구소의 책임검시관인 김호근 박사였다.


“물어 볼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아 그래.”


“이번 공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말입니다.”


“아 그거?”


“사인이 과다출혈로 인한 실혈성 쇼크사이던데요.”


“그렇게 몸을 난자 했으니 당연하겠지.”


“흉기가 이상하네요. 길이 25cm, 폭 2cm 정도의 양날의 예기 및 길이 10cm 이내의 단날의 예기 2종 및

톱이더군요.”


“어. 세 종류의 다른 흉기에 의한 상처가 발견되었네. 첫 번째 예기에 의한 상처가 28군데더군. 내 생각에는

군용 나이프 정도 같은데. 복부를 집중적으로 찔렀더군. 마구 잡이로. 아마도 시체를 난장판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10cm 정도의 단날의 예기는 뭐죠?”


“글쎄. 커터 칼 정도 될까? 아주 예리하게 장기 부위의 혈관을 자른 흔적이 있어.”


“장기 부위의 혈관이요?”


“어. 손상 정도가 심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몇 군데 발견되었어.”


“톱은 어디에 쓰인 거죠?”


“두 군데야. 목을 절단 할 때와 흉부를 절개 할 때.”


“그렇군요.”


“몸에 마취 성분이 검출 되었던데요.”


“어. 병원에서 흔히 쓰는 약품과 같은 거야. 아마도 죽은 남자는 자신이 죽은지도 모르고 죽었을걸.”


오 반장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렇군요.”


“자료를 보니 사체에서 심장과 폐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 다른 장기는 손상되었지만 그래도 사체에 남아 있긴 하는데 두 장기는 아예 없어졌어.”


“조금 전에 단날의 예기에 의한 잘린 혈관은 역시 심장과 폐 부근에 집중되어 있네요.”


“그렇군.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었지만 일단은 그 부근에 집중되어 있지.”


“사체에서 없어진 부분은 머리와 심장 그리고 폐군요. 김 박사님. 혹시 다른 곳에서 살해되고 그 곳으로

옮겨졌을 확률은 없나요?”


“글쎄. 내가 현장에 가본 것은 아니지만 현장 사진만 보면 그것은 불가능 할 듯싶은데. 자네도 알겠지만

현장의 피해자 선혈이 그 정도로 흐른 것을 보면 말이야.”


“그렇긴 하지만. 피야 뽑아낸 후 응고되지 않게 보관 하면 되니. 상처들의 시간차는 없나요?”


“음. 거의 비슷하지만 생체 반응이 없는 상처는 목을 절단한 상처와 손가락들의 상처들이야.”


“그렇다면 피해자가 완전히 죽은 다음에 목과 손가락은 절단 된 거군요.”


“그렇지. 자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글쎄요. 사체의 없어진 부분을 보면 장기 밀매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데요.”


“장기 밀매?”


“네.”


“음.”


김 박사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 역시 불가능 한 일이 아닐까 싶군. 일단 장기의 없어진 부분이 심장과 폐야. 심장이 나빠지면 폐에도

이상이 나타나기 마련이지 그래서 심폐가 동시에 필요한 경우도 많지. 심폐이식 수술은 그 수술 성격상

뇌사자의 심폐만 이식이 가능하지. 그리고 그 수술은 매우 힘든 수술이야. 최고 의료진과 장비가 갖추어진

대학병원에서만 가능한 수술이지. 모두 엄격한 관리 하에 이루어지는 수술이야.”


“그렇군요.”


“게다가. 머리도 없어졌잖아. 머리는 왜 없어진 거지?”


“글쎄요.”


“하하. 이번 사건 구주구 녀석 담당 아니야?”


“맞습니다.”


“녀석은 미치광이 변태 살인마 어쩌구 하면서 난리던데. 이렇게 잔인하게 살해 한 것을 보면 원한에 의한

살인 아니라면 녀석 말대로 미치광이 변태 살인마라는 표현이 딱 맞겠는걸.”


“그런가요? 조금 전에 손가락은 사후에 자르셨다고 하셨죠.”


“그래.”


“뭔가 이상해요. 고문을 하거나 아니면 사람의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려 했다면 마취 따위 했을 리가 없겠죠.

그리고 사후에 손가락을 자른 것도 이상해요. 잔인한 것은 알겠는데 너무 인위적인 냄새가 나요.”


“그런가?”


“아무튼 고맙습니다.”


“그래. 왜 자네가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조사해 보라구. 난 또 해부해야 할 게 있어서 말이야.

그럼 이만 끊네.”


통화를 끝낸 오 반장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다시 책상 서랍을 열어 파일 더미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수많은 살인사건들의 파일들이었다.

그리고는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마치 낙서처럼 수기로 끄적거려 나가는 사건들 사이에 무엇인가 연관성이 들어나고 있었다.


“반장님! 반장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김 형사가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다.


“왜?”


“뭐하세요?”


“아…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사라진 목격자는 찾은 거야?”


“아니요. 아직 입니다.”


범행 현장을 목격했던 목격자가 사라진 것이다.

목격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약간의 정신지체 증상이 있었고 범행 현장을 목격한 후 겁에 질려 패닉 상태에 빠져 조사가 늦어졌다.

안정제를 맞은 후 힘들게 수사에 협조했다.

그의 진술을 바탕으로 범행 현장에서 목격한 남자의 몽타주를 작성했다.

그런데 2시간 전에 그가 사라진 것이다.

정신 지체가 있는 것을 보아 멀리 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주변을 수색해 그를 찾고 있었다.


“그것보다 유력한 용의자 신원 및 위치가 확보 되었습니다.”


“그래?”


오 반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출동하던데요. 가보시죠!”

 

 

 

 

 

Data 4. Survival Game Event(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2010년 7월 23일 11시 21분 서울 양천구]


“아 왜 다시 가는 거야? 무섭게스리”


신중이 녀석은 계속 무섭다며 칭얼거렸다.

덩치나 작으면 이해나 해주련만 그냥 무시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나는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녀석은 계속 구시렁거리면서도 졸졸 뒤 따라왔다.


“그만 구시렁거려. 일단 가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신고해도 되잖아. 그리고 우리가 귀신에 홀린 거 일수도

있잖아. 거 TV에 많이 나오잖아. 한 여름 밤에 귀신한테 홀려가지고 헛것 보고 놀라서 기절하고 일어나보니

암 것도 없었다는 스토리 말이야.”


“아! 그럼 기절을 했어야 하는 건가? 그건 그렇고 귀신은 더 무서운데….”


녀석과 더 이상 실랑이 할 기운도 없었기에 나는 역시 무시라는 방법을 택하고 걸어갔다.

아까는 정신없이 달려서 몰랐는데 무지하게 멀리까지 달려왔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치면 2정거장 정도 거리였다.

게다가 큰 사거리까지 몇 번을 지나쳤었다.

분명히 쉬지 않고 달려왔었으니깐 신호등을 완전히 무시하고 계속 미친 듯이 뛰었던지 아니면 우연히도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파란불이 켜져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파란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넜다.

이 동네에서 젤 번화한 사거리인데 앞에 있는 S전자 대리점 쇼윈도우 앞에 사람들이 멈춰 서서 커다란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나 역시 가끔 축구나 예쁜 여자 가수가 나오면 서서 한참동안 서서 구경을 하고 가곤 한 적이 있었다.


“축구하나?”


우리는 다른 사람 곁에 가 섰다.


“어머! 무서워! 바로 우리 동네잖아.”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듯한 여중생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값 떨어지겠네.”


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본적 없는 아줌마였다.

문득 엄마의 얼굴이 스쳐갔다.

엄마도 동네에 무슨 일만 나면 집값 떨어진다는 소리를 하곤 하셨다.

이 나라의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관심사는 집값인 모양이었다.


“여기는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현장입니다. 오늘 새벽 이곳 공원 공중 화장실에서 48살 남 모씨가 살해

되었습니다. 남 모씨의 사체 중 머리부분은 절단되어 현장에는 몸뚱이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사체의 몸

역시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에 따르면 살해된 남 모씨는 노숙자 신분으로 공원 주변에서

생활 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목격자의 재보를 기다리고 있으며 주변 탐문을 하고 있습니다.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 그 용의자의 몽타주를 작성…”


“저거 너 네 집에 있는 머리통 주인 아냐?”


주변의 시선이 모두 신중이 녀석에게 쏠렸다.


“성환아. 그 머리통 읍…”


나는 급하게 녀석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는 사람들 사이에서 끌고 나왔다.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들에게 향했다.

지금 보니 사거리 곳곳에 파란 옷을 입은 경찰들이 눈에 띄었다.

좀 전에 TV를 시청하는 무리 중 한 명이 그 경찰들에게 다가가는 게 눈에 띄었다.


“뛰어 이 새끼야!”


나는 녀석의 엉덩이를 발로 세게 한번 걷어차고는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자 머리통은 여전히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다행이다. 난 귀신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귀신이 차라리 낫겠다. 저것 좀 어떻게 해봐!”


나는 부엌 바닥에 뒹구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뭘 어떻게 해? 징그러워! 그냥 경찰에 연락해!”


“가위 바위 보 하자!”


“가위 바위 보는 왜?”


일단 해라고 소리치자 녀석은 마지못해 커다란 주먹을 내밀고 준비자세를 취했다.


“가위 바위 보!”


나는 볼 것도 없이 주먹을 냈다. 이 녀석은 15년 넘게 무조건 가위를 먼저 낸다.


“내가 이겼으니깐 네가 치워!”


“어디다 치워?”


“다시 냉장고에 넣어 놔! 고무장갑 끼고 집어넣으면 되잖아!”


내 말에 신중이는 싱크대에 쳐 박혀 있는 고무장갑을 찾아 그 커다란 손에 억지로 끼어 넣고는 바닥에

놓여져 있는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눈을 질끈 감고는 그것을 집어 원래 자리로 넣어 놓았다.


“야. 고무장갑 낀 김에 바닥에 핏 자국도 닦고 설거지도 해라!”


나는 이렇게 말하고 부엌을 빠져 나와 내 방 컴퓨터로 향했다.

경찰에 신고하기에는 아무래도 뭔가가 찜찜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익스플로러를 띄웠다.

검색 사이트를 띄워 뉴스부분을 클릭 했다.


[끔찍한 엽기 살인 사건]


나는 굵직한 활자로 표시된 제목위로 마우스를 옮겨 다시 클릭했다.


[한 여름 밤 끔찍한 엽기 살인이 벌어졌다. 지난 밤 서울 양천구 공원에서 노숙자로 알려진 남 모씨가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다. 현장에는 김씨의 몸만 남겨진 채였고 머리는 사라진 채 발견되었다. 남겨진 사체 역시

잔인하게 훼손되어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나는 기사를 쭉 읽어 내려갔다.


[경찰은 현장에서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용의자의 몽타주를 작성 용의자 수배중이다.]


아래는 용의자 몽타주가 첨부되어 있었다.

나는 몽타주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신중이 녀석을 부르려고 했다.


“성환아!”


신중이 녀석이 먼저 선수를 쳐 나를 불렀다.


“빨리 와 봐!”


다급한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일으켜야 했다.


“왜?”


“저거 봐봐!”


녀석은 TV를 가리켰다.


[어젯밤 새벽 4시경에 벌어진 살인 사건 현장입니다. 범인은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노숙자인 남씨를

살해했습니다. 범인은 피해자 남씨를 마취 시킨 후 톱으로 가슴을 절개 하고 칼로 장기를 수십 번 난도질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남씨의 머리를 가지고 현장에서 사라진 것으로 경찰은 밝히고

있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한 단서와 목격자의 진술로 범인의 행방을 쫒고 있습니다.


다음은 경찰이 작성한 몽타주와 인상착의입니다. 사진은 이번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23세~27세

정도로 보이며 키 172Cm 이며 왜소한 체격을 하고 있습니다. 용의자를 보신 분은 아래 번호로 신고바랍니다.]


“저거 너 아니냐?”


“뭐?”


나는 뚫어져라 TV화면을 쳐다보았다. 내 얼굴을 몽타주로 만들면 저렇게 되는 것인가? 비슷했다.


“야!”


녀석이 나를 불렀다.


“왜?”


“정말 너 아니지!”


“뭐가?”


“저 사람 말이야! 네가 죽인 거 아니지?”


“당연하지. 이 새끼야. 나 어제 새벽 5시까지 작업하다가 잠들었어. 사건은 3시경에 벌어졌다잖아.”


“혹시…….”


녀석은 나를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뭐?”


“혹시. 그런 거 아니야? 영화 같은데서 나오잖아. 몽유병 같은 거….”


“잠을 5시에 잤다니깐. 그리고 몽유병은 무슨 몽유병이야.”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한대 후려쳤다.

하지만 분명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살인 사건이 벌어진 공원은 여기서 가까운 곳이었다.

게다가 범인은 남자를 죽인 후 머리를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냉장고 속에 있는 머리.


“뉴스에서 나온 죽은 남자가 저 냉장고에 있는 사람일까?”


신중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너 어제 뭐했어?”


“뭐하긴. 나도 어제 일하다가 2시에 잤어.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녀석의 일은 물론 게임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이겠지만 녀석에게는 일이었다.


“몇 시에 일어났는데?”


“9시 정도!”


“그래서 배도 고픈데 먹을 것은 없고 해서 슈퍼도 갈 겸 그리고 매직아이 PC방도 갈 겸해서 나갔지.”


매직아이 PC방은 녀석이 잘 가는 PC방이었다.

거기서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거래를 하기도 했다.


“몇 시에?”


“몰라. 일어나서 바로 나갔어.”


“나가기 전에 냉장고 열어 봤어?”


“글쎄.”


“잘 생각해 봐.”


“열어 봤던 거 같아. 물 마시려고.”


그렇다면 그 전에는 냉장고에 머리통이 없었다는 결론이었다.

녀석이 나간 시간에서 내가 일어난 시간사이에 누군가가 집에 들어와서 냉장고에 머리통을 넣어 놓은 것이다.


‘누가? 왜?’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삐리리~]


핸드폰 벨 소리에 우리 둘은 화들짝 놀랐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마도 지우일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액정을 확인했다.


[발신자 표시 제한]


하지만 발신자 번호가 뜨질 않았다. 나는 의아해 하며 폴더를 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아 들었다.


[빠빠라빠라~~]


갑자기 핸드폰에서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잠시 핸드폰을 귀에서 때었다 붙였다.


“축하드립니다. 고객님은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에 당첨되었습니다.”


직업 여자 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이런 홍보 전화가 걸려오는 걸 통신회사는 여전히 고객 정보를 팔아먹고 있으며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통신 사생활 보호는 말로만 지껄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전화를 끊으시면 평생 후회 할지도 모릅니다.”


알 수 없는 섬뜻함이 온 몸에 퍼졌다.

여자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날카롭게. 나는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적으로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날 노려봐?”


하지만 나를 보고 있는 눈은 흐리멍덩한 신중이 녀석의 눈뿐이었다.


“아…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이번 이벤트는 3일간 진행됩니다.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여자의 목소리는 어느새 과하게 친절한 텔레마케터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전에 경품에 당첨되어서 제주도 2박 3일 무료 여행을 갈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무심코 이상한 카드에

가입해 10달간 생돈 3만원 씩 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탁!]


나는 과감하게 핸드폰을 끊어 버리고는 소파에 던져 놓았다.


“무슨 전화야?”


“몰라! 광고전화야.”


“어떻게 할 거야? 신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래. 일단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그 순간이었다.


[치이익~]


한창 일기 예보를 방송하고 있던 TV 화면이 지직거렸다.

나는 별루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중이 녀석이 신청한 한달에 만원 지불하는 싸구려 유선 방송에서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이 끊어졌다든지 유선 방송사에 무슨 일이 있다든지 하면 짧게는 몇 초, 길게는 한 두 시간 정도

지직거리는 화면을 보내준다.

물론 아무 말도 못한다.

비싼 돈을 지불하는 위성 디지털 방송이라면 난리가 날 테지만 말이다.


[번쩍!]


5초도 되지 않아 화면은 복구되었다. 하지만 일기 예보 방송은 온데간데없었다.


“이게 뭐야?”


분명히 조금 전까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MBC 뉴스였다. 그런데 채널이 바뀐 모양이었다.


“무료 서바이벌 이벤트”


마치 홈쇼핑 방송 같았다.

촌스러운 자막이 화면에 번쩍 거렸다.

TV에서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화면에 비친 모습은 나의 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마치 거대한 해머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있었다. 화면 속에 그녀가 있었다.


지우. 나의 지우가. 화면 속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다리 힘이 쫙 풀려버렸다.


[털썩]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참여 하십시오.”


나는 그제야 TV에서 나온 목소리가 방금 나에게 전화했던 여자의 목소리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야? 저거!”


신중이 녀석이 큰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녀석 역시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TV를 박살이라도 낼 듯 한 분위기였다.


“지금 이 침대 위에는 한 명의 여성이 누워 있습니다. 이 여성이 누구인지 보고 있는 고객님께서는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혹시나 해서 알려드립니다. 이 여성은 25세로 서울에 사는 이지우씨입니다. 현재 A보험회사

서울지사 총무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잠시 화면이 바뀌었다.


[위이잉]


허공에서 원형 톱날이 회전하는 모습이 비추었다.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헉!”


나와 신중이 동시에 탄식이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지금 이 여성 위에는 전기 톱날이 회전하고 있습니다. 이 톱날은 자동적으로 아래로 하강하게 되어 있습니다.”


TV속의 여자의 말대로 톱날은 점점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지우가 있었다.

톱날은 정확하게 지우의 목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지…지우야.”


나도 모르게 나의 주먹은 꽉 쥐어져 있었고 나의 이는 잇몸에 피가 나올 정도로 꽉 다물어져 있었다.


‘지우가 왜 저 곳에 저렇게 있는 것일까? 지우는 괜찮을 것일까? 도대체 누가 왜 저런 짓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고객님.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에 참여하시려면 핸드폰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곧바로. 그렇지 않으면 이

여성의 목숨은 없습니다.”


어느 샌가 소파에 던져 놓았던 핸드폰 벨이 울리고 있었다.

신중이는 TV화면에 확대되어 나오는 지우의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녀석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폴더를 열었다.


“고객님!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에 참여하시겠습니까?”


TV 속의 그 여자였다.


“당신 누구야? 그리고 지우를 어떻게 한거야?”


나는 소리를 내질렀다.


“고객님! 이벤트에 참여하시겠습니까?”


여자는 내 질문을 무시했다.


“지우를 어떻게 한거야?”


나는 다시 한번 소리를 내질렀다.


“고객님! 이벤트에 참여하시겠습니까? 10초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여자는 마치 기계처럼 똑같은 말을 계속 해서 내뱉고 있었다.


“성…성환아.”


신중이 녀석이 나의 어깨를 흔들었다.


“저것 봐. 안 돼.”


녀석이 갈라진 목소리를 내질렀다.

TV화면 속의 톱날은 거의 지우의 목 근처까지 내려와 있었다.

몇 초 후면…. 나의 머릿속에는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남자의 머리가 떠올랐다.


“하면 되잖아. 참여 한다고. 이벤트에 참여 한다고.”


나는 핸드폰에 대고 소리쳤다.


[위잉~. 스르르~.]


톱날이 멈춰 섰다. 불과 지우의 목 위 2~3cm 위였다.


[번쩍]


번쩍 하더니 TV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한창 화장품 광고 중이였다.

신중이 녀석이 좋아하는 유혜원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신중이 녀석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통화는 계속 되었다.


“당신 도대체 뭐야?”


“죄송합니다. 고객님. 질문은 질문 시간에만 허용됩니다. 그럼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규칙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설명은 한번 뿐이니 주의 깊게 들어주십시오. 고객님은 세 가지 미션을 부여 받게 됩니다.

그 세 가지 미션을 제 시간에 모두 완수하게 되면 게임은 종료 됩니다. 만약 미션을 제 시간에 완료 하지

못하면 톱날이 작동하게 됩니다.”


여자의 말에 나는 조금 전 보았던 지우 목 위에서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던 톱날을 떠올렸다.

조금 전에 내가 조금만 늦게 대답했더라면 정말로 그 톱날은 지우 목에 파고들었을까?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톱날은 이지우씨의 목으로부터 정확하게 2m 40cm위에 정지되어 있습니다. 미션을 제 시간에 완료하지

못하면 톱날은 1분에 1cm씩 하강하게 됩니다. 결국 240분 후면 톱날은 이지우씨의 목에 닿게 되며 그 후

10분 후면 미션은 실패로 처리되며 게임은 자동 종료 됩니다.”


“이…이런 제기랄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나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주의 할 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 그 핸드폰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부엌 냉장고 위를

보시면 상자가 있을 겁니다. 지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냉장고 위에는 상자가 있었다.

물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나는 냉장고로 가 그것을 내려서 살폈다.

상자는 꽤 묵직했다.

나는 그것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여러 가지 핸드폰과 돈이 들어 있었다.

핸드폰은 내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기종이었다.

돈은 척 보아도 꽤 되어 보였다.


“앞으로는 지금 사용하는 핸드폰 대신 그 핸드폰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고객님의 편의를 위해 번호도 그대로

되며 내장 메모리도 그대로 옮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통화를 시도하면 꼭 받으셔야 합니다. 만약 받지

않게 되면 이벤트를 포기 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지금 소지하고 있는 카드 및 교통 카드는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현금은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나는 어느덧 이 여자의 말을 순순히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벙어리가 되어버린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첫 번째 미션입니다. 한 사람의 머리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의 물품 보관소 3번에 넣어 두시면

됩니다. 지금 시각은 12시 정각입니다.”


우연일까? 그녀의 말대로 시간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제한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4시간입니다. 만약 내일 12시까지 미션을 완수 하지 못하게 되면 톱날은

작동 하게 됩니다. 그리고 240분 후 즉 16시까지 미션을 완료하지 못할 경우 서바이벌 게임은 실패로 자동

종료되게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나는 여전히 할 말을 못 찾고 있었다.

머릿속은 멍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좀처럼 떠오르지가 않았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빠져 있는지 좀처럼 정리가 되질 않았다.

침착하라고 머릿속은 말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그렇게 되질 않았다.


어제만 해도 나는 가진 것은 없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녀석이었다.

지우와 저녁을 먹었고 1000일 기념으로 그녀에게 반지를 선물하려 했다.

물론 돈은 없었고 신중이 녀석에게 빌려서 샀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것을 전하지 못했다.


자신이 없었다.

그녀에게 주기에는 너무 싸구려 반지였고 내 돈으로 산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반지를 선물 했으면 그녀는 아마도 무척이나 좋아했을 것이다.

싼것이든 비싼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지우는 그런 아이니깐.


하지만 나는 결국 반지를 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남지 않은 공모전을 위해 작업에 몰두했다.

이번 공모에 잘 되면 그 때 선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그녀에게 하려 했던 말도 미루어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새벽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지우를 본 듯도 싶다.

잘 기억은 안 떠오르지만 무척이나 좋은 꿈이었다.


그런데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부터 인생이 꼬여버렸다.


‘아 시계.’


생각해보니 알람 시간이 평소의 12시에서 바뀌어 있었다.

그것부터 이상했다.

알람시계가 저절로 바뀌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바꿔 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그들이 해 놓은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컸다.

아무도 모르게 냉장고에 머리를 가져다 놓았고 그들 말대로라면 상자 속에 들어 있는 내 것과 같은 기종의

핸드폰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핸드폰의 메모리까지 그대로 옮겨 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우를 납치한 것이었다.


‘왜?’


뉴스에 나온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머리가 동일 인물이라면 나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려는 것일까? 그런데 왜 지우는 납치 한 것일까?

그리고 이벤트는 무엇이란 말인가? 도저히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질문 시간입니다. 질문이 없으신가요?”


“잠…잠깐.”


“네. 고객님. 말씀 하십시오.”


“지…지우는 무사합니까?”


“물론이죠. 고객님. 이지우씨는 무사합니다. 저희는 이지우씨에게 어떤 해도 가하지 않습니다. 현재

이지우씨는 잠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이지우씨는 계속 잠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건강을 위해

 영양제가 투여됩니다. 만약 이벤트가 완료 시 이지우씨는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물론 조성환 고객님

이벤트를 성공한다면 이지우씨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사히 돌아가게 될 것

입니다. 만약 고객님이 이벤트를 실패한다면 이지우씨는 목이….”


“그만….”


듣고 싶지 않았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끔직한 모습의 남자의 머리가 떠올랐다.

지우가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나와 지우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제가 당신 아니 당신들에게 무슨 원한을 졌습니까?”


“고객님이 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원한 같은 문제는 아닙니다.”


여자는 간략하게 대답했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머리는 도대체 뭡니까?”


“그것 역시 저희가 준비한 것입니다.”


“도대체 목적이 뭡니까?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겁니까? 저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려는 겁니까?”


“아닙니다. 고객님. 저희는 고객님에게 살인 누명을 씌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고객님도 아시겠지만 이

이벤트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객님 TV위에 올려져 있는 곰 인형 보이십니까?”


나는 시선을 TV에 올려져 있는 테디베어 인형으로 옮겼다.


“고객님은 지금 바닥에 주저앉아 계시는군요. 왼손은 주먹을 쥔 채 바지를 붙잡고 있으시지요. 그 곰 인형에는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집 안 여러 곳에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지우씨를

다치지 않게 이곳에 모셔 오는 것에도 많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저희는 이 이벤트를 끝까지 무사히 마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목적이 뭡니까?”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것은 지금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제기랄!”


“그럼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금 시각은 12시 03분입니다. 첫 번째 미션 완료 시간까지 23시간 57분이

남았습니다. 고객님이 무사히 미션을 완료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주의 할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통화는 꼭 받으셔야 합니다. 통화가 되지 않았을 시에는 이벤트 포기로 간주됩니다.”


“…….”


“한 가지 더 고객님을 위해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정확하게 10분 후면 총소리가 날 것입니다.

그 때 집 뒤쪽으로 빠져 나가십시오.”


“무슨 말입니까?”


“더 이상은 말씀 드릴수가 없습니다. 그럼 고객님 좋은 하루 되십시오.”


통화는 끊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그제야 신중이 녀석이 내 눈에 들어 왔다.

녀석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녀석의 말은 고막에서만 울려 댈 뿐 내 뇌로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고 있었다.


“왜 지우가 저기에 있는 거야? 설명을 해봐! 서바이벌 이벤트라니 무슨 소리야?”


녀석은 붉게 달아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지우가 왜?”


녀석은 나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대로 나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


[퍽!]


동시에 녀석의 박치기가 나의 이마에 꽂혔다. 순간 정지되었던 뇌가 다시 회전하는 기분이 들었다.


“컥! 이거 놔! 새끼야!”


내가 소리치자 녀석은 멱살을 쥐었던 손을 놓았다. 나는 가까스로 두 발이 땅에 닿을 수 있었다.


“컥! 컥! 숨 막혀 죽을 뻔 했네.”


녀석은 여전히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흥분하는 녀석의 모습을 본 적이 무척 오랜만이었다.

지우는 내 여자친구이기도 하지만 신중이에게도 중요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 녀석은 지우 말이라면 뭐라도 믿고 뭐든지 하곤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방금 TV에서 나온 화면은 뭐야? 왜 지우가 저렇게 된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모르긴 뭘 몰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라는 게 뭐야? 그리고 지금 방금 그 전화는 뭐고?

지우는 납치 된 거야? 저 냉장고에 있는 머리통은 뭐고?”


“3가지 미션!”


“3가지 미션?”


“그래. 3가지 미션을 완수하면 지우를 돌려 보내준데.”


“완수 못하면?”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왜 하필 지우를….”


녀석이 커다란 주먹이 꽉 움켜쥔 채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녀석은 분을 이기 못하고 벽으로 다가가 벽을 주먹으로 거세게 내 쳤다.


[콰앙]


온 집안에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벽이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기랄!”


“너 무슨 짓을 한거야? 누구한테 무슨 원한 같은 거를 산거야?”


신중이 녀석이 나에게 소리쳤다.


“몰라.”


“그런데 왜?”


“몰라. 원한은 아니라고 했지만 모르겠어.”


“미션은 뭐야?”


나는 여자가 말했던 미션의 내용을 떠올렸다.


“한 사람의 머리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의 물품 보관소 3번에 넣어 두는 거야.”


“한 사람의 머리를?”


다시 둘의 대화는 끊어졌다.


“신고하자!”


녀석이 말했다.


“신고하는 게 최고로 현명한 생각 아니냐?”


녀석의 입에서 현명한 생각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 신빙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한 가지는 이 이벤트에 참여 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신중이 녀석의 말대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다.

신고하고 지금 이 상황을 알리면 무슨 수가 나오지 않을까?

핸드폰 추적을 해서 범인의 위치를 파악하고 검거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지우를 무사히 구할 수 있지 않을까?


TV위에 올려져 있는 곰 인형과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말대로라면 그녀 아니 그들은 나를 관찰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신고를 해도 될까?’


분명히 경찰에 신고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신고를 했다가 모든 것이 틀어진다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의 폴더를 열었다.


“잠깐!”


112버튼을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를 주저 하고 있는 나의 손을 신중이 녀석이 움켜쥐며 외쳤다.


“왜?”


녀석은 고갯짓으로 TV를 가리켰다.

지금껏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TV는 여전히 켜 있었고 여전히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다시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번 S공원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조성환입니다. 나이 25세.

키 172cm에 마른편이며 평범한 인상입니다. 평상시에 안경을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용의자는

정신 상태가 매우 불안하며 흉기를 소지 하고 있다고 경찰은 발표했습니다. 경찰은 용의자 조성환의 시민

여러분들은 각별한 주의를 바라며 용의자와 비슷한 용모의 사람을 보면 112나 아래 전화번호로 제보

바랍니다.]


“어떻게 된 거야? 너 사진까지 있잖아.”


“몰라.”


갑자기 살인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 사진 과 이름까지 뉴스에 나오고 있었다.

완벽하게 흉학한 살인범이 되어 있었다.

나는 핸드폰 폴더를 닫아 버렸다.


[시청자 여러분 자세히 확인 해 주십시오! 현재 용의자는 범행 장소인 서울 서부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경찰은 경찰력을 총동원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화면은 용의자인 조성준이

안경을 벗고 머리를 짧게 했을 때의 추정 사진입니다. 다시 한번 확인 하시고 시민 여러분의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뉴스 속보를 마치겠습니다.]


[털썩]


나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털푸덕]


신중이 녀석도 내 옆에 앉았다. 그 반동으로 잠깐 몸이 공중으로 들려올라갔다 내려왔다.


“신고 하는 것은 무리겠군.”


그랬다.

나는 살인범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 살인의 누명을 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여자의 말에는 신빙성이 없었다.

이미 나는 살인 누명을 쓰고 있었다. 만약 그녀의 말대로 그게 목적이 아니라면?

꼼짝없이 말도 안 되는 그 이벤트에 참여 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까?


그 어느 쪽이든 나에게는 말이 되질 않았다.

왜 하필 나 같은 녀석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나처럼 평범한 녀석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나는 세상에 그렇게 득이 되지도 그렇다고 해도 되지 않는 그냥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지극히 평범한 그냥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인 나에게.


“이제 어떻게 하지?”


녀석에게 물었다.


“어떡하긴 지우를 구해야지.”


아주 간결한 대답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얗지만 생각나는 것은 오직 지우 하나 뿐이었다.

이제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삐리리리]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울린 핸드폰은 내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이 아니라 상자 속에 들어 있는 핸드폰이었다.

벨소리는 내 것과 똑같았다.

나는 상자에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서바이벌 이벤트]


액정에 자막이 표시되었다. 나는 폴더를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조성환 고객님. 다시 통화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인범이 되어 있더군요. 저 냉장고의 머리의 주인을 죽인 살인범이 되었단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안타까운 일이군요.”


너무나도 무심한 말투였고 당연하다는 듯 했다.


“당신들 짓인 가요? 설마 이게 목적은 아니겠죠?”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아닙니다. 그리고 모두 계획대로입니다. 고객님.”


“계획대로?”


“네. 고객님 그런 표정 지으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TV위에 올려져 있는 곰 인형을 노려보았다. 다가가 그것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


“저는 고객님께 도움을 드리고자 전화를 드린 겁니다.”


지우를 납치하고 나를 살인범을 만들고 이제는 도움을 준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지금 경찰이 고객님 집 주변에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객님이 자수를 하건 경찰에 신고를

하건 고객님의 자유입니다. 이 이벤트는 자유도가 높습니다. 충분히 고객님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님이 완수해야 할 미션과 미션 완료 시간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런….”


“그리고 그 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가고 싶으시면 10분 후에 나가시면 됩니다. 지금부터 정확히 10분 후에

총소리가 날 것입니다. 그럼 충분히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하고 통화를 마치겠습니다. 아 그리고 총소리를

잊지 마십시오.”


“여보세요.”


이미 통화는 끊어져 있었다.


“이런 제기랄!”


“왜 그래?”


나는 창으로 다가갔다.

나는 커튼을 살짝 젖혀 밖을 내다보았다.

조용했다.

언제나 떠들며 골목길을 뛰어다니던 아이들 소리가 없었다.

매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난 도망쳐야겠어. 곧 경찰이 들이 닥칠 거 같아.”


나는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구석에 쳐 박아 놓은 모자를 하나 꺼내 눌러 썼다.

생각해보니 일어나서 세수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가방에 상자에 담겨 있던 돈다발을 쑤셔 넣었다.

신중이 녀석 역시 등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방에서 튀어 나왔다.


“넌 왜 따라나서?”


“무슨 소리야. 당연히 따라가야지.”


“경찰이 잡으려는 것도 나고 그 말도 안 되는 이벤트에 참여해야 하는 것도 나야.”


“그래서?”


녀석은 무표정하게 되물었다.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언제 내가 너랑 떨어진 적 있냐?”


없었다.


“그리고 이건 지우가 관계된 일이야.”


녀석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건 그렇고 저거는 어떻게 하지?”


신중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제길! 어쩌긴 어째 빨리 챙겨와!”


“저걸 어떻게 챙겨?”


“나도 몰라! 그냥 네 가방에 넣어”


나의 무책임한 말에 녀석의 큰 두 주먹을 들어 우두둑 소리를 냈다.

나는 얼굴을 한번 찌푸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싱크대 서랍을 열어 비닐 봉투 몇 개를 꺼내서는 그것을 집어넣어 겹겹이 싸맸다.

그리고는 천장바구니에 집어넣고는 녀석에게 휙 던졌다.


“근데 어떻게 가지?”


“잠깐!”


나는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기다려봐! 총소리가 날거야.”


나의 말에 신중이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여자의 말대로 총소리가 난 것은 몇 초 후였다.

 

[2010년 7월23일 금요일 11:53분 서울 양천구]

04:11분 신고 전화 접수

04:19분 관할 파출소 순찰 경찰 현장 도착.

04:40분 서울 경찰청 강력 1반 사건으로 이관.

08:35분 목격자의 진술과 현장 부근 CCTV화면에 찍힌 범인의 사진을 바탕 몽타주 작성.

08:50분 몽타주에 따라 용의자 신원 확보 시작. 현장 주변 부근 탐문 수사 시작

10:15분 공개수사 결정.

11:21분 유력한 제보 전화로 용의자 신분 파악 작업 시작.

11:30분 용의자 신원 확인. 용의자 검거를 위해 출동.


“이야 빠르네요! 경찰 특공대까지 투입 되었네요. 인질 사건도 아닌데….”


김 형사는 차에서 내리며 큰 길에 놓여져 있는 특공대 전용 버스를 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둘은 차에서 내려 주택가 언덕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 용의자의 집과는 좀 떨어져 있는데도 출동한 전경들과 주민들로 붐비고 있었다.

용의자가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골목 근처에 다가가자 더욱 부산스러웠다.

용의자가 살고 있는 집은 3층짜리 단독 주택 건물의 2층이었다.

물론 주변의 단독 주택들과 특별히 다를 것도 없었다.


이미 골목은 출동한 전경들로 포위된 상태였다.

물론 용의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서 매우 조심하고 있었다.

용의자가 집으로 예측되는 골목에서 3번째 있는 집 앞에는 형사 및 경찰 특공대원까지 명령을 기다리며

돌격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저 집이 맞긴 맞는 거야?”


“맞겠죠. 설마 전처럼 옆집에 쳐 들어가서 범인 놓치겠습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사이렌은 안 울렸으니….”


김 형사가 비웃듯 말했다.


“잠깐!”


오 반장의 시선이 향한 쪽으로 김 형사는 고개를 돌렸다.


“왜요?”


“아니야!”


오 반장은 머리를 잠시 긁적거렸다.


“손 올린 김에 눈곱도 떼세요.”


“귀찮아!”


이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어이 오 반장!”


김 형사와 오 반장은 동시에 얼굴을 구겼다. 또 구 반장이었다.


김 형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구 반장에게 인사를 했다.


“어 김 형사! 우리 내 밑으로 올 마음의 준비가 된 거야?”


구 반장이 김 형사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찍은 거야? 찍기 대장!”


오 반장의 말에 이번에는 구 반장이 얼굴을 구겼다.


“이번에는 정확해! 어젯밤 범행 현장 목격자 진술에 따라….”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오 반장은 방송국 차량과 카메라를 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아 방송국. 내 과학적인 수사방법을 알릴 좋은 기회잖아. 사건 발생 직후 목격자 제보와 동시에 용의자

몽타주와 미디어를 이용하여 용의자 신원….”


오 반장은 듣기 싫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는 허공에 대고 손을 휘휘 저었다.


“알겠어. 알겠어.”


“여기 또 왜 왔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떻게 살인범을 잡는지 구경이나 잘 하라고. 그리고 TV에서 이 구주구가

나오면 화면 빨 잘 받는지 이야기도 꼭 해주고….”


오 반장은 구 반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려 걸어가 버렸다.


“엇! 오반장님 어디가세요?”


그 모습을 보고 김 형사가 물었다.


“어. 그냥. 화장실. 자네는 여기서 과학적인 수사의 대가인 구반장님이 어떻게 범인을 과학적으로 잡는지 보고

있어.”


오 반장은 인파를 헤치고 사라졌다.


“야 거기 주민들 통제 제대로 못해!”


구 반장은 옆에서 다가오는 카메라 화면을 신경 쓰느라 한껏 폼을 잡고 있었다.


[칙! 집안에 인기척이 있습니다.]


“몇 명이야?”


구 반장은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게 집 안에 커튼이 드리워져서 파악이 잘 안됩니다. 어떡하죠?]


“5분 후에 집 안으로 돌격한다.”


[하지만 집 안이 어떤 상태인지 몰라서.]


“그냥 들어가. 혹시 모르지 저격조 배치 잘하고.”


[네. 치익!]


구 반장은 자신의 완벽한 준비가 만족스러웠다.

이제 방송 앞에서 범인을 멋지게 검거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환상은 몇 초 만에 깨끗하게 깨져버렸다.


[탕!]


총성이 조용한 주택가에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났다.


“어떤 병신이 누가 쏜 거야?”


구 반장이 괴성을 질러댔다.


“아…아닙니다. 반장님. 저희가 쏜 것이 아니에요.”


“그럼 뭐야? 그 놈이 쏜 거야?”


“모르겠습니다.”


“뭐야?”


[탕!]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려 퍼진 것과 동시에 구 반장 옆 전신주 가로등이 박살나며 유리 파편이 부셔져 내렸다.


“으악!”


비명 소리와 함께 주변에 있던 대원 및 기자 및 시민들에게 일대 동요가 일어났다.

구 반장은 허겁지겁 근 처 차 뒤로 숨어버렸다.


“제기랄! 총까지 쏴대는구만. 여기가 미국이야 뭐야! 저격조 보이면 쏴버려”


구 반장은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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