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웃대 : berser13 님 > Data 5. The Fugitive(도망자)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12시 22분 서울 양천구 T약수터] 헉헉! 이 거친 숨소리는 물론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앞에 달려가는 거구의 신중이 녀석은 전혀 숨이 가쁘지 않은 듯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 “야야” “왜?” “너 왜 이렇게 잘 달리냐?” “무슨 소리야?” 우리는 계속 달리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까 머리통 때문에 놀래서 집에서 도망쳤을 때는 나보다 더 헐떡거리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잘 뛰는 거야?” “아. 그때는 너무 무서워서 호흡법 같은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나는 녀석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금 기분이 나빠 오려고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잠깐 멈춰봐!” “왜?” 나는 녀석의 가방을 붙잡고 멈추어 세우려 했지만 오히려 내가 끌려갔다. “멈춰 새끼야! 심장이 터질 것 같단말야!” 그제야 멈추어 섰다. 역시 이 녀석은 큰 소리를 쳐야 말을 듣는 타입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 숨을 골랐다. 총성과 함께 집 뒤편 베란다를 통해 집에서 뛰어 나온 우리는 담을 넘고 또 넘고 또 넘어 도망치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몇 몇 경찰을 만났지만 그들은 이미 쓰러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우리는 의아해 할 여유도 없이 무조건 뛰었다. 우리는 이 동네에서 살아온 토박이이다. 이 곳은 우리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저 집 옥상에서 약수터로 가자!” “약수터는 왜?” “산으로 가는 게 도망가는 데 편할 거 같잖아!” “그런가? 탈옥범이나 산으로 도망 다니는 거 아냐?” “숨 좀 돌렸으니 가자. 약수터 가본지도 몇 년이나 되었는데 잘 됐네.” 우리 둘은 내가 말한 루트로 뒷산으로 향했다. 이 동네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해발 100미터도 채 되지 않은 산이었다. 말 그대로 뒷산. 전에는 단순한 약수터였지만 구청에서 구민을 위함인지 아니면 구청장의 재선을 위한 선심 행정의 일환인지 모르지만 배드민턴장 등 체육시설을 설치 해 많은 사람들 특히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 되었다. 철조망을 넘어 약수터가 있는 뒷산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금세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찾아내 걸음을 옮겼다. 오솔길을 조금 오르락내리락 걷다 우리는 우뚝 멈춰 섰다. “이야 사람 많네!” 나무 사이로 널찍한 공간이 나타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떼를 지어서 뒤로 걸어가고 있는 할머니들. 배드민턴을 치느라 정신없는 아줌마들. 여기 저기 벤치마다 모여서 판을 벌리고 있는 할아버지들. “그러게.” “사람 눈 피해서 도망친다는 게 겨우 여기냐? 어떡할 거야?” “어떡하긴 그냥 태연하게 빠져 나가자!” “그리고는?” “모르겠어. 일단 빠져 나가서 생각하자. 저쪽으로 가서 오솔길 따라 가다보면 옆 동네 나오거든 그쪽에 빠져서 택시를 타자!” 우리들은 사람들 사이를 태연하게 걸어 나가려 노력했다. “태연하게 걸으랬잖아.” “태연하게 걷고 있는 거야! 너야 말로 너무 딱딱하게 걷고 있는 거 아냐? 군대에서 제식 훈련 하는 군인 같잖아.” “내가 뭘!” 우리 둘이 아무리 태연하려고 해도 이상한 것은 당연했다. 두 녀석 모두 커다란 쌕을 등에 짊어지고 한 녀석은 시장바구니를 하나 들고 약수터를 활보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는 없었다. “저쪽으로 가자!” 우리는 인적이 드문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어느덧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저기요!” 우리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풀숲에서 어떤 남자가 튀어나왔다. 길이 아닌 곳에서 튀어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화들짝 놀랐고 그의 행색에 또 한번 놀랐다. 적어도 일주일은 감지 않은 듯 떡진 머리에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바바리를 걸치고 있었다. 대충 보면 노숙자 같았고 자세히 보면 여학교 앞에 출몰한다는 변태 바바리맨 같았다. 하지만 바지에 남장 까지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변태 바바리맨은 아닌 듯 했다. 그렇다면 길 잃은 노숙자일 확률이 컸다. 이런 약수터에서 길을 잃은 것 보면 조금 지능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지독한 길치일 듯싶었다. “그냥 가자.” 잠깐 놀랬던 우리는 상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잠깐만요.” 남자는 다시 우리를 불러 세웠다. 남자의 목소리는 왠지 힘이 있어보였다. “왜 그러시죠?” “길을 잃어서 말입니다.” 그의 어투는 매우 진지했다. “아. 네. 이쪽 길로 쭉 가면 공원이 나옵니다.” 나는 손으로 우리가 왔던 쪽을 가리켰다. “아 네. 감사합니다.” 남자는 자신의 머리에 붙어 있는 나뭇잎을 털며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남자가 가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발길을 옮겼다. “아! 잠깐만요!” 등 뒤에서 다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무시하고 가도 되련만 우리는 또 멈춰 섰다. 이상하게도 그 남자의 목소리에는 무엇인가 모를 힘이 느껴졌다. “혹시 이 근처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 못 봤나요?” 나와 신중이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고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약수터에서 노숙자 복장의 길 잃은 남자도 보기 힘들겠지만 검은 양복의 남자는 더욱 보기 힘들 것 같았다. 만약 봤다면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 그렇군요. 그 남자를 쫓다가 이렇게 길을 잃었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네. 쩝.” “아 네. 저희 가 봐도 되나요?” “아 네.” 우리는 다시 뒤를 돌았다. “빨리 가자! 또 부를 거 같아 기분에.” 나는 신중이 녀석에게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발 째 내딛으려는 찰나 역시나 등 뒤에서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왜욧!” 나는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노숙자 복장의 남자는 까치집 같은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우리를 쏘아 보았다. 목소리도 왠지 모를 힘이 느껴졌지만 눈빛은 더욱 그랬다. “그냥 무시하고 가자! 저런 아저씨랑 놀고 있을 시간 없잖아!” 신중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나도 녀석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딱!] 노숙자 복장의 남자는 갑자기 머리를 긁던 손가락 튕겼다. “아하! 그 살인 용의자!” 남자의 입에서 아무런 긴장감 없이 튀어나온 말이었기에 우리는 잠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짧은 침묵을 깬 것은 신중이 녀석이었다. “너 유명해졌다. 저런 노숙자도 너를 알아보고 말이야. 하긴 네가 죽인 아니 TV에서 말한 죽은 남자가 노숙자라고 했으니 노숙자들 사이에서는 너 요주의 인물로 뽑혔을지도 모르지.” 녀석이 나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이름의 뭐였더라? 아 조성환. 조성환씨 맞죠? “네? 네!” 군대에서 상관에 부름을 받은 졸병마냥 나는 남자의 부름에 재빠르게 대답했다. 나는 내가 대답하고도 조금 어이없었다. 하지만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힘이 있었다. “나는 노숙자가 아닙니다. 형사입니다.” 노숙자 아저씨 입에서 형사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우리들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신중이 녀석의 얼굴은 ‘저 아저씨가 형사라면 나는 검사정도는 되겠다.’라는 표정 같았다. 나는 ‘그냥 미친놈 같으니 빨리 무시하고 가자.’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빨리 가자!” 녀석이 재촉했다. “잠깐만!” 다시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아씨!‘ 나는 나에게 화를 냈다. 왜 그냥 가지 못하고 자꾸 저 남자의 말에 멈칫거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칭 형사라는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남자는 좀 전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자세로 이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용의자를 만난 형사라면 당연히 무슨 반응이라도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별다른 동작의 변화 없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움츠려드는 기분이었다. “아저씨! 형사라면 잡으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총을 꺼내서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라고 하던지 것도 아니면 본부에 지원 요청이라도 하던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물었다. “별로! 내가 안 잡아도 잡을 사람은 많으니깐!” “형사 맞긴 맞아요?” 나의 물음에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시 총 같은 거 있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차에다 두고 왔군요.” “진짜 형사인지 아니면 정신 나간 노숙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울 경찰청 강력 5반 오지혁!” 자칭 형사라는 노숙자 아저씨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총이라도 꺼내나 싶어 우리는 잠시 움찔했지만 모양새가 영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뒤적거리다가 멋 적은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런 경찰증도 차에 놓고 왔네.” “뭐하는 거야? 빨리 가자니깐!” 신중이 녀석이 재촉했다. 나도 빨리 가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 심상치 않아 보이는 남자가 끌렸다. “밑져야 본전이잖아.” “본전은 짭새들이 혼자 다니는 거 봤냐? 좀 있으면 떼로 몰려오면 어쩌려고 그래!” “혼자 다니는 짭새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지만 핸드폰도 차에 놓고 오고해서 연락을 취할 수도 없고요. 물론 경찰이 쫙 깔렸으니 조만간 여기도 수색을 오겠지만 말입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살인 용의자로 지명 수배된 조성환씨는 나에게 할 이야기 있으면 해 보세요!” 남자는 매우 차분한 어투로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다. “일단 그 남자는 제가 죽인 게 아닙니다. 저는 그 남자를 알지도 못하고 어제 범행 시간에는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나랑 같이 경찰서를 가서 조사를 받읍시다. 죽이지 않았다면 도망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건 안 됩니다.” “왜죠?” “지우가….” 나는 망설였다. 이 남자에게 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지우가 납치 되었습니다.” 남자에게는 별 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지우가 누구죠?” “이 녀석 여자친구입니다.” 신중이가 대신 답했다. “그런데 납치라니? 누가 납치했죠?” “모릅니다.” “역시 그렇군요.” ‘역시?’ 무슨 뜻일까? 남자는 여전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예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자! 아무래도 그냥 미친놈인거 같아.” 나는 신중이 녀석에게 질질 끌려 몇 미터 움직였다. “잠깐만 놔봐.” 나는 녀석을 뿌리쳤다. 오반장이라는 잠시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누군가가 지우씨를 납치하고 당신에게 그 남자를 죽이라고 시킨 건가요?” 남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이 남자의 정체는 정말로 무엇일까? 자신의 말대로 경찰인 것인가? 아니면 옆에서 계속 구시렁대고 있는 신중이 녀석 말대로 단순한 정신 나간 노숙자 인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 이 게임과 관련 있는 사람이 아닐까? “당신 누구야?” 나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남자는 대답 대신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총이라도 꺼내는지 알고 움찔 했지만 남자가 꺼낸 것은 구겨진 종이와 팬이었다. 남자는 종이에다가 뭐를 적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모르겠어.” 남자는 펜이 잘 안 나오는지 펜을 위 아래로 한참 동안 흔들다가 다시 종이에다가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다 적고는 그것을 구겨서 내 쪽으로 휙 하고 던졌다. “내 핸드폰 번호입니다.” “네?” “어차피 자수 할 생각은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신들을 붙잡을 수도 없는 것 같으니….” 나는 남자가 던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구겨진 종이를 펴자 핸드폰 번호가 발로 쓴 듯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번호도 헷갈렸는지 몇 번 직직 그어 수정한 흔적도 있었다. “내 핸드폰 번호니 시간 나면 꼭 전화하세요.” 의심이 가는 남자인 것은 분명했지만 왠지 뭔가 말을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는 그 남자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냥 빨리 가자니깐. 아무래도 다른 사람 올 때까지 우리를 붙들어 놓으려는 것 같아.” 신중이 녀석이 나를 다시 잡아끌었다. “그럼 이제 가보세요. 곧 경찰이 몰려올지도 모르니….” 정말 이상한 남자였다. 경찰인지 아닌지도 의심스러웠지만 정말 경찰이라면 매우 특이한 경찰인 것이 분명했다. 학생이라면 왕따가 될 만한 했다. 경찰에서도 왕따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가자!”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신중이 손에 이끌려 앞으로 달려갔다. “아 잠깐!” 우리는 다시 멈춰 버렸다. “왜 서는 거야?” 신중이가 물었다. “그러는 너는?” “그 덩치 큰 친구 손에 들고 있는 그 시장바구니는 뭐죠? 뭐 둥근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아 이거요.” 신중이는 내 눈치를 보았다. “농구공이에요. 이 녀석이 농구를 좋아해서. 덩크슛도 하는걸요.” 말도 안 되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녀석이 덩크슛을 할 줄 아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 난 또 사람 머리라도 들고 다니는 줄 알았지. 어젯밤 죽은 피해자 사체에서 머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가자!” 이번에는 내가 신중이 녀석을 잡아끌었다. 우리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등 뒤에서 ‘꼭 전화 해’라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려왔다. Data 06. Chain Murders(연쇄 살인) “반장님!” 김 형사는 오 반장이 나타나자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에 봐도 또 보고 싶은 연인을 본 사람마냥 재빠르게 달려갔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한참 찾았잖아요. 핸드폰도 차에다 놓고 가시고 말이에요. 제발 어디 가면 얘기 좀 하고 가시란 말이에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한 날 내가 무슨 얘들 보는 베이비시터도 아니고 반장님 찾아서 이 동네를 이 잡듯 돌아다녀야겠어요.” “1절만 해.” “그건 그렇고 용의자를 놓쳤어요.” “알아.” “어? 알고 계셨나요?” “그래.” “그래. 그런데 왜 놓친 거야. 그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해 놓고 놓칠 수도 있는 거야?” “총 소리 들으셨죠?” “어.” “놈들이 먼저 총을 쐈어요.” “놈들이?” 오 반장은 의아한 얼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그리고는 신출귀몰하게 사라졌어요. 녀석들 이 동네 토박이라고 하더군요. 감쪽같이 포위망을 뚫고 사라져버렸어요.” “구주구 열 좀 받았겠는데.” “그렇죠. 오늘 출동 나온 녀석들 조인트 좀 까이게 생겼네요.” “그런데 그 용의자가 쏜 것이 확실해?” “무슨 소리에요?” “그냥. 몇 발 쏜 거야? 내가 듣기에는 2발 들렸거든.” “네 두 발이요. 쏜 위치와 총탄 같은 것은 찾아냈어?” “글쎄요. 그건 아직. 아마도 조사 중이겠죠.” “그렇군. 총까지 가지고 있었던 말이지. 그렇게 안 보였는데….” 오 반장이 중얼거렸다. “네? 무슨 소리에요?” 김 형사가 놀란 얼굴로 오 반장을 돌아보았다. “용의자를 만났거든.” “네?” 김 형사의 눈이 더욱 커졌다. “정말이에요?” “총이라….” 오 반장은 손으로 머리를 잠시 긁적거렸다. “정말 만나신거냐고요?” “그래.” “잡으셨어요? 아니 잡았으면 혼자 오셨을 리 없죠. 아 어디다 묶어 두시고 오신 거예요?” “아니야. 그냥 만나기만 했어.” “예? 어디서요?” “저 뒤 편 있는 산에서 만났어.” “산이요?” “그래. 그 뒤에 작은 약수터도 있더군.” “이상하네요. 용의자는 분명 큰 길 쪽으로 도주했는데.” “무슨 소리야?” “네. 분명해요. 길 쪽 포위선을 뚫고 도주했거든요. 한 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음. 이상하군.” 오 반장은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하게 이야기 좀 해 주세요.” “뭐가 어떻게 돼? 뒷산에 갔다가 길 잃어버리고 헤매다가 만났어.” “네?” 김 형사가 얼굴을 구겼다. “길을 잃어요? 뒷산은 왜 갔는데요? 그리고 만나서 뭐라고 했어요?” “뭐가 그렇게 궁금해. 그냥 자수하라고 했지. 그랬는데 그냥 가더군.” “그래서 그냥 놓아 주었어요?” 오 반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 참 반장님도.” 김 형사는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잡으려고 했는데 불가능 할 것 같아서….” “왜요? 하긴 총을 가지고 있었을테니. 그러니까 총 좀 들고 다니세요.” 김 형사는 총을 거의 휴대하고 다니지 않았다. “총은 모르겠고 두 명이었거든. 한 명은 덩치가 엄청 크더군. 2m도 넘어 보이고 팔뚝을 보니 운동 좀 했을거 같았어.” “그렇군요. 공범일까요?” “공범은 무슨. 아직 그 용의자가 역시 범인이라는 확증도 없으면서.” “아니에요. 용의자 집에서 혈흔이 발견되었거든요. 죽은 피해자와 같은 혈액형이고요. 지금 국과연으로 검증 들어갔어요. 조금 지나면 나올 거예요.” “그래?” “어떻게 하죠? 구 반장님에게 알릴까요?” “그냥 내버려 둬. 어차피 금방 알게 될 텐데. 그리고 귀찮아.” 오 반장은 용의자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집 안은 부산했다. 다행히도 구 반장은 기자와 인터뷰를 하느라 집 안에 없었다. 오 반장은 집안을 천천히 살폈다. “선혈이 발견 된 곳은 부엌 부근이에요. 그리고 냉장고에서도 발견 되었고요.” 김 형사의 말에 오 반장은 냉장고 안을 살폈다. 냉장실 가운데에 핏자국이 보였다. 오 반장은 머리통을 그 안에 디밀어보았다. “뭐하세요?” 김 형사가 놀라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오 반장은 냉장실 문을 닫고 냉동고를 열었다. “냉동고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보시다시피 얼음과 아이스크림으로 가득 차 있으니….” 오 반장은 냉동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감식반을 피해 다니면서 다시 주변을 살폈다. 식탁위에 놓여져 있는 검은 비닐 봉지를 들췄다. 라면이 들어 있었다. 오 반장은 가스렌지로 다가갔다. 가스렌지 위에는 냄비가 하나 올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물이 담겨져 있었다. 오 반장은 다시 집안 곳곳을 살폈다. 한 15분쯤 전 집안을 살펴보았다. “그만 가지. 김 형사.” 둘은 집에서 나왔다. 오 반장은 차로 향했다. “그건 그렇고 그 놈이 진짜 범인 맞는 거 같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사람 얼굴에 살인했다고 써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반장님 원래 척 보면 알잖아요.” “내가 무슨 점쟁이야? 척 보면 알게.” “또 튕기신다.” 김 형사가 입을 삐죽거렸다. “모르겠어. 이상해. 범인이 아닌 거 같아.” 오 반장은 차 보조석에 올라탔다. 김 형사 역시 재빠르게 운전석에 탔다. 오 반장은 시트를 뒤로 눕히고 누운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정말 이상해.” “그래요? 이번 사건의 진범이 아니란 말이죠?” “모른다니깐.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고 말하는 거야. 이 친구야. 경찰이 증거를 가지고 범인을 찾아야지. 감으로 범인을 잡으면 되나?” “그래도 오 반장님 감은 거의 100%잖아요.” “나를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마.” “그러지 마시고….” “일단 용의자 집을 봐. 살인을 저지른 녀석들 치고는 너무나 유유자적 한 느낌이 들어.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준비를 하지 않나. 잠에서 일어난 것도 10시 45분이었어.” “그것을 어떻게 알죠?” “설명하기 귀찮아. 아무튼 그래.” “하지만 집안에 있는 혈흔은 뭐죠? 아무래도 죽은 남씨의 혈액인 게 분명해요.” “그것도 이상해.” “뭐가요? 냉장고에 넣어 놓은 거요? 상하지 말라고 넣어 놨을 수도 있죠.” “그게 아니야. 냉장고에 넣어 놓은 것은 머리뿐이야.” “머리뿐이라뇨?” “피해자 남득구 사체에서 사라진 것은 머리통 그리고 심장과 폐야.” “하지만 내장들은 모두 형체가 못 알아 볼 정도로 난도질 되어 있었잖아요.” “김 박사님한테 물어봤거든. 다른 내장들은 그래도 존재 자체는 확인 할 수 있지만 두개의 내장은 아예 존재 여부를 못 찾는다고 그랬어.” “무슨 소리죠?” “범인이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지.” “그렇군요. 뭐 머리랑 함께 넣어 놓았다가 가지고 갔나보죠.” “아니야.” “왜요?” 김 형사는 조금 신경질적인 말투로 물었다. 본인은 전혀 감이 안 잡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왜긴. 자리가 없잖아. 아까 냉장고에 머리를 디밀었을 때 딱 내 머리 정도의 공간 밖에 없었어. 다른 공간은 없었다구.” “잘 정리해서 넣어 놨나 보죠.” “김 형사 가슴속에 들어 있는 폐와 심장 크기가 얼마난줄 알긴 하는 거야?” 김 형사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손으로 만져보았다. 물론 폐와 심장이 만져 질리는 없었다. “아니면 버렸을지도 모르죠. 갈아서 버렸나?” “뭐 그럴 수도 있지. 일단 청으로 가자고. 배고파. 난 한잠 잘 테니 도착하면 깨워 줘.” 오 반장은 시트에 몸을 완전히 묻고 눈을 감아 버렸다. 김 형사는 오 반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다가 차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 시켰다. “이상하단 말이야. 그 남자가 살인을 저질렀어야 말이 되는 건데 정말 이상해.” 오 반장이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김 형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 남자는 앞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있었다. 하지만 뿌연 안개 같은 연기에 휩싸여 보이지를 않았다. ‘누구일까?’ 의문이 깊어 갈수록 더욱 뿌연 안개가 짙어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살폈다.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또 이 꿈인가?’ 꿈이었다. 남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2년 넘게 계속 반복되는 지겨운 악몽. 이 꿈은 언제나 똑같았다. 손에 들려 있는 총을 겨누었다. 총구가 겨눈 곳은 자신의 턱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예전에 총으로 자살한 남자의 시체를 본 적이 있었다. 회전하며 총구를 떠난 탄두는 남자의 턱을 뚫고 입과 눈을 통하여 남자의 뇌에 이른다. 순간적으로 머릿속 압력은 증가하게 되고 결국 뇌를 후벼 파고 정수리에 도달해 머리뼈를 뚫고 나간다. 결국 폭발적인 압력 증가와 탄두의 파괴력에 머리는 폭발하듯 터져 나간다. ‘이것을 당기면 끝나는 것인가?’ 방아쇠를 당기면 이 지긋지긋한 악몽이 끝날 수 있을까? 그리고 저 뿌연 안개에 쌓여 있는 사람을 볼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당길 수가 없었다. 손가락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건 꿈이야. 제발….’ 하지만 당길 수가 없었다. ‘만약 이게 꿈이 아니라면….’ 죽는 것이었다. 죽음. 내가 죽는 것이다. 하지만 당겨야 한다. 이 악몽을 끝내기 위해서는…. 그의 꿈은 계속 되었다. 그렇게 계속. “반장님! 반장님!” “으윽! 벌써 도착한거야?” 오반장의 질문에 김 형사는 얼굴을 한번 찡그렸다가 입을 열었다. “저랑 장난쳐요!” “내가 너랑 왜 장난을 쳐.” “아까 도착해서 그렇게 흔들고 깨워도 안 일어나서 저 혼자 조사 좀 해가지고 왔어요.” “그랬어? 얼마나 지난거야?” “한 시간 정도 지난 거 같은데요. 그건 그렇고 무슨 안 좋은 꿈 꾸셨어요? 식은 땀 흘리는 거 봐.” “아니야. 아무것도. 그건 그렇고 뭘 조사했어?” “신원자료 좀 조사했어요.” “그래? 어디 봐봐!” “그리고 용의자 조성환 집에서 발견된 혈흔과 피해자 남득구의 혈액이 일치한다고 하더군요.” “그래?” 오 반장은 김 형사가 건넨 몇 장의 서류를 받아들었다. 읽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차 시트에서 몸을 일으켰다. “배고프다! 밥 먹자!” “예?” 김 형사가 놀란 얼굴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오 반장은 이미 차에서 내려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 “아씨! 또 이 메뉴야?” 김 형사는 구시렁거리면서 식탁에 앉았다. “어 반장님! 반장님 닭도리탕에는 다리도 들어 있었네. 내 거는 뭐야! 순전히 닭모가지랑 껍질만 있네. 저 아줌마가 나랑 무슨 감정이 있나. 전에도 육개장에 고기 하나도 안 주더만!” “아 시끄러!” 오 반장은 김 형사 식판에 닭다리를 휙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는 기계적으로 밥과 반찬을 입에다 가져다 나르며 한 손으로는 김 형사가 건네준 자료를 살펴보는 듯하다가 이내 자료를 덮었다. “벌써 다 보신 거예요?” “나중에 보려고.” 오 반장은 식사에 전념했다. 사실은 벌써 다 읽은 그였다. “김신중! 반장님이 약수터에 마주친 녀석 중 덩치 큰 녀석의 이름이더군요. 조성환과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이었고 현재는 룸메이트. 유도가 3단이더군요.” “훔. 안 잡으려고 했던 것이 다행이군.” “강력 1반에서는 현재 그의 소재도 같이 파악 중이에요. 두 녀석 모두 핸드폰을 집에 두고 사라졌어요. 일단은 같이 도주중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수사를 하려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래?” “반장님이 보셨잖아요. 같이 도주 중인 거. 수사본부에 알려주면 수사에 도움이 될 텐데.” “아니야. 내버려 둬.” “왜요?” “꼭 같이 다닌다는 보장도 없잖아. 거기서 같이 다니다가 찢어졌을 수도 있어. 뭐 어차피 구주구 녀석이야 다 잡아 넣는 타입이니 알아서 하겠지. 공개수사는 못하겠지만. 용의자도 아닌데 마구 떠들었다가는 큰일 날테니….” “그런가요?” “아 그렇고 조성환 주변 인물 중에 이지우라는 여자 소재 파악은 됐나?” “이지우요? 글쎄요.” “조금 있다가 그거나 좀 알아봐.” “네. 그러죠. 그런데 반장님! 한 가지만 물어봐도 괜찮나요?” “뭘?” “왜 이번 사건에 집착하세요? 솔직히 반장님은 실종 사건 담당이잖아요.” “집착! 그런 적 없는데.” “그러지 마시고…. 제발요.” 오 반장은 비굴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김 형사에게 주머니에서 뒤적거리더니 A4용지 하나를 휙 던져주었다. “이게 뭐죠?” 김 형사는 오반장이 던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종이에는 오 반장이 손으로 적은 깨알 같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써 있었다. 워낙 글씨도 작을뿐더러 악필에다가 두서없이 적어 놓아서 완전 낙서 같았다. “외계 문서인가요?” 김 형사의 농담에 오 반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식사에 열중했다. 하는 수 없이 김 형사는 다시 종이를 살폈다. 두서없이 나열된 글자들을 한참 뚫어져라 보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살인 사건들이었다. 살인 사건이 발생한 시간과 용의자 그리고 피해자등이 적여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화살표들과 지운 흔적. “으아~” 김 형사는 손에 들린 종이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했다. 오 반장이 컴퓨터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 오 반장은 수기를 좋아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을 아무 종이에나 마구 적어서 그 바바리코트에 보관하곤 했다. “살인 사건들인가요?” “2007년 10월 20일. 토요일 서울 강서구의 주차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오 반장의 말에 김 형사는 종이에서 그 내용을 찾기 시작했다. ‘1’이라고 적혀 있는 숫자 옆에 똑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시 그 주차장은 S백화점이 건설 중 부도가 나서 거의 이용되지 않는 주차장이었지. 방치되어 풀숲이 우거져서 젊은이들이 이상한 용도로 이용하는 장소로도 유명했고.” “네. 들어본 거 같아요.” “앉아도 될까요?” 여자 목소리에 두 남자는 고개를 앞으로 천천히 들었다. 어느새 두 명의 앞에 여자 한명이 서 있었다. 검은 정장 바지 속의 미끈한 다리 위로 잘록한 허리가 들어왔다. 터질 듯 한 가슴과 그 가슴선이 들어날 듯 말 듯 아슬아슬 하게 단추가 열려 있는 흰 셔츠와 팔목 까지 걷어 올린 블랙 실크 재킷이 보였다. 가슴을 따라 시선을 올리자 희고 미끈하게 빠진 목이 보였다. 그 목을 감싸고 있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 그 흰 목을 더욱 가치 있게 해주고 있는 듯 했다. 목을 따로 올라가자 붉고 큰 입술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었다. 오뚝한 콧날을 따라 올라가자 선글라스에 숨겨져 있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이 보였다. 완벽한 글래머의 서구적인 미인이었다. “아. 문 성실! 아니 문 교수라고 해야겠지.” S대학의 문성실 심리학 박사였다. 미국에서 정식으로 범죄심리학 과정을 마치고 현재 역시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강의하고 있는 여자였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자문 역할로 경찰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아. 선배도. 참. 그럼 저도 오 반장님이라고 불려드리죠.” “아. 어서 앉으세요.” 김 형사는 재빠르게 일어나 의자까지 빼주었다. 문 교수는 자리에 앉았다. “범인은 40대 중반의 남자였죠. 20대 젊은 남녀를 잔인하게 살해했었죠. 남자의 목을 자르고 여자 역시 잔인하게 살해했죠.” 문 박사가 말했다. 김 형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김 형사의 눈빛은 존경과 황홀함이 반씩 섞여 있었다. “잘 알고 계시네요?” 김 형사가 물었다. “그냥. 조금” 문 박사가 살짝 미소 지었다. 김 형사는 그 미소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문 교수는 여기 웬일이야?” “아. 네. 이번 공원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잠시 들렀어요. 구 반장님 많이 흥분하신 것 같더군요.” 오 반장은 안 봐도 훤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그 사건은 왜 이야기 중이신가요?” “아 네. 반장님이 이번 S공원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 이유를 물어보는 중이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반장님이 이 종이와 함께 그 사건 이야기를 막 꺼내려던 중이셨어요.” 김 형사는 엄마에게 형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동생마냥 이야기를 해댔다. “아 그렇군요. 오 반장님이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이거죠? 오 반장님은 주로 실종 사건에 관심이 많으시지 않나요?” “맞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러니까 제가 더욱 궁금해요. 왜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시는지? 그리고 이 낙서들은 도대체 뭔지?” 김 형사는 A4종이를 흔들어댔다. “그것 좀 잠깐 볼 수 있을까요?” 김 형사는 오 반장을 쳐다보았다. 오 반장이 별 다른 반응을 안 보이자 A4종이를 문 교수에게 넘겼다. 문 교수는 잠시 그 내용을 살핀 후 입을 열었다. “저도 매우 궁금하네요?” 선글라스 속 문 교수의 눈이 어느 때보다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 반장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과 다른 한 남자의 조금 멍한 눈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2010년 5월 1일. 토요일 서울 강남구에서 벌어진 사건 기억나? 범인은 박동주. 나이 30세. 옆집에 사는 할머니를 죽이고 자수했던 사건.” “아 기억나죠. 그 사건 때 저도 강력 1반에 지원 나갔었잖아요. 구 반장 밑에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몰라요.” “박동주! 나이 30세. 부인은 차 사고로 사별. 가족은 4살짜리 딸아이가 있었지. 어느 날 옆집에 사는 할머니를 죽인 후 자수했었지.” “네. 자수했긴 했었죠. 그게 좀 이상한 점이 많아요. 나중에 언론에는 조금 내용이 바뀌어서 구주구 반장님이 수사 끝에 용의자를 알아낸 것으로 되었지만요. 아무튼 자수하기로 했던 그 남자가 갑자기 도주해서 결국 구주구 반장이 검거했죠. 그 과정에서 용의자가 팔이 부러졌어요.” 당시 김 형사는 강력 1반의 요청에 따라 지원을 나가 사건에 참여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렇군.” “검거 당시 난리도 아니었어요. 완전히 정신 착란상태였지요. 자신이 죽였다고 했다가 그게 아니라 누군가가 시켜서 한 일이다. 감시당하고 있다. 딸이 납치되어 있다, 내가 딸을 죽였다 등등 계속 횡설수설 했어요. 결국 쇼크가 심해 기절 하고 안정제를 맞은 후 병원에서 잠들었는데 새벽에 다시 도주를 시도했어요. 그 과정에서 경찰의 총을 빼앗아 그걸로 경찰을 쏘아 중상을 입혔고요. 결국 도주 도중에 검문에 걸려 다시 붙잡히던 과정에 경찰에 총탄에 맞고 병원에 실려 갔지만 끝내 죽고 말았죠.” 오 반장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당시 박동주의 딸은?” “물론 용의자의 말을 듣고 경찰이 딸을 찾으려 했지만 못 찾았어요. 하지만 수사는 남자가 자신의 딸을 살해하고 옆 집 부인을 살해 한 것으로 진행되었어요. 당시 그 남자는 완전한 정신 착란 증세였어요.” “딸을 살해 한 흔적 같은 것은 찾은 거야?” “네. 남자의 집에서 딸의 혈흔이 발견되었어요.” “시체는?” “못 찾았어요.” “그렇다면 남자의 말대로 납치가 된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확인 한 결과 용의자인 박동주가 자신의 딸을 데리고 유치원에서 집으로 갔다는 진술이 나왔어요. 물론 유치원 끝날 시간도 아니었고요. ‘매우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집으러 갔다’라는 아이 담당 교사의 증언이 있었어요.” “그렇군. 그리고 그날 밤 살인을 저질렀지. 하지만 결국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남자가 그냥 죽어 버렸으니.” 오 반장은 얼굴에는 아쉽다는 표정이 그려졌다. “그런데 그 사건 이야기는 왜?” 오 반장이 입을 열면 열수록 의문이 풀리기는커녕 의문이 더해져만 가는 그였다. “흠. 여기 적혀 있는 사건들 중 제일 최근에 발생한 사건이군요.” 문 교수는 종이를 뚫어져라 보면서 이야기를 해 나갔다. “조금 전에 말한 2007년 10월에 있었던 살인 사건이 제일 오래된 사건이고 방금 말씀 하신 박동주 사건이 여기 적혀 있는 사건들 중에 가장 최근 사건이군요. 그 외에도 9개의 살인 사건들이 적혀 있군요. 총 11개의 살인 사건들이 적혀 있네요.” 김 형사는 문 교수가 두 가지 면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어떻게 저렇게 개발 새발 쓴 글씨를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지였다. 두 번째 살인 사건을 이야기하면서도 저렇게 섹시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 교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이 풀렸다. 문 교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 형사의 그런 눈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오 반장의 수기로 작성한 종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2번째 사건. 2008년 1월 12일. 금요일. 수원. 가해자 가정주부 한씨 33세. 피해자. 그녀의 옆 집 아이와 그녀의 남편. 가해자 한씨는 사건 직 후 자살. 다음 3번째는 2008년 4월 5일. 토요일. 광주. 가해자 황씨 62세. 피해자는 노인정에서 알게 된 유씨. 사건 직 후 자살.” 그녀 역시 알아보기 힘든지 더듬더듬 거리며 거기 적혀 있는 사건들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4번째 사건. 2008년 6월 28일. 토요일. 용의자 김씨 35세. 피해자는 그의 이혼한 전 부인인 박씨(35세, 회사원)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던 김씨(32세). 사건 후 잠적. 수배 중이나 현재까지 잡히지 않음.” 문 교수는 잠시 고개를 들어 오 반장을 바라보았다. 오 반장은 식사를 마치고 물을 먹고 있었다. 김 형사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문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 차려!” 오 반장이 김 형사를 툭 쳤다. “아.” 김 형사는 헤 벌어져 있던 입을 다 물었다. “그런데 왜 살인 사건들을 적어 놓으신 거죠? 그냥 적어 놓으신 거 같지는 않은데.” “글쎄. 문 교수 생각에는 어떤데?” 오 반장이 도리어 문 교수에게 물었다. “일단. 모두 주말에 벌어진 사건들이군요.” “그러네요.” 김 형사가 맞장구쳤다. “흠. 그리고….” 유 경장은 종이를 앞뒤로 넘겨보다가 자신의 숄더백에서 팬과 메모지를 꺼내어서는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한 1분 쯤 무엇인가를 적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건들에 일정한 간격이 있군요. 모두 3달 간격…. 음 정확히 말하면 12주의 간격으로 벌어진 사건들이군요.” “맞아.” 오 반장이 그제야 아주 짧게 입을 열었다. “훔. 아까 그 종이에서 제일 최근 발생한 박동주 살인 사건이 이번년도 5월 1일이었죠. 오늘이 7월 23일이니 12주 후가 되네요. 이게 반장님이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인가요? 하지만 이번 살인 사건은 날짜로는 금요일이지만 새벽이었어요. 목요일 밤과 금요일 새벽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에요. 게다가 어제 만해도 전국에서 4건의 살인 사건이 접수되었어요.” 그랬다. 김 형사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12주 간격마다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지만 나열된 사건들은 모두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장소도 범죄수법도 모두 제 각각인 사건들이었다. “2001년도 한 해 1,000건을 돌파 한 후 꾸준히 증가해 작년 2009년도 살인 사건 발생 건수 무려 2545건 이에요. 대략 하루에만 해도 7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반장님이 나열한 사건들은 12주 간격으로 벌어진 사건들을 뽑아내 나열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죠.” 문 교수가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에요.” 자신이 할 말을 정확하게 대신 하자 김 형사는 손뼉을 치며 맞장구쳤다. 오 반장의 표정에는 별 반응 없이 식사에 열중이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중간에 한 번 비는군요. 2008년 9월 19일 벌어진 사건과 2009년 3월 7일에 벌어진 사건은 24주의 간격이군요. 이건 왜죠? 오 반장님.” “글쎄.” 오 반장은 처음으로 약간의 표정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역시 그것이 의문이었다. 오 반장이 머리를 긁자 혹시나 뭐가 떨어질까 김 형사는 깜짝 놀라 자신의 식판을 조금 멀리 치웠다. “나도 그 12주는 모르겠어. 하지만 일단은 위의 사건들은 대부분 이유가 뚜렷하지 않았던 살인 사건들이야.” 오 반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묻지마 살인 인가요?” ‘묻지마 살인’이란 무동기살인을 뜻한다. 원한이나 금품 혹은 치정 등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범죄를 말한다. 주로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인해 불특정 대상에게 저지르는 범죄를 뜻하지만 그런 이유도 없이 저지르는 사건들도 있었다. “그거와는 조금 달라.”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는 아주 사소한 것이 원인이 되기도 하잖아요. 단 돈 몇 만원에도 살인을 저지른 경우도 있고, 본인이 아니면 알기 힘든 경우도 많고요.” “네 김 형사님의 말이 맞아요. 첫 번째 사건만 봐도 범인인 부인을 10년 전에 교통사고로 잃은 상태였고요. 하나 뿐인 딸 역시 가출 상태였죠.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어요. 결국 오랫동안 축적되었던 사회에 대한 분노와 소외의 감정이 폭발한거죠. 그 때 사건을 보면 범인은 낫으로 피해자의 목을 잘랐어요.” 김 형사가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미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치고는 과격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나누려는 젊은 연인들이 목표가 된 거죠. 그 젊은 남자를 자신의 부인과 딸을 빼앗아간 대상으로 각인 시켰을지도 모르는 거죠.” “그렇군. 하지만 내 조사 결과 그렇다는 것뿐이야.” 오 반장은 여전히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훔. 오 반장님이 그렇게 말하니 정말로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문 교수의 말에 김 형사도 동의했다. 경찰청에서의 오 반장의 명성은 그의 비범한 외모에도 있지만 그것보다 그의 능력에 있었다. 그의 프로파일링 능력은 꽤 유명했다. “그리고….” 오 반장이 말을 이었다. “살인이 한번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야. 그리고 그 간격이 하루 정도라는 거.” 김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올해 박동주라는 남자의 경우는 아니잖아요. 그 남자는 옆 집 할머니를 죽인 후에 자수했잖아요.” “그래. 그리고 도망쳤지 병원에서. 만약 도주 중에 경찰에 총에 맞고 다시 잡히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또 살인을 저질렀을 거란 이야기인가요?” 문 교수가 물었다. “뭐….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삐리리~~~] 문 교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핸드폰의 액정을 힐끔 쳐다보았다. “흥미 있는 이야기네요. 물론 억측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물론 오 반장님이 의견이라면 정말로 뭔가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이번 공원 살인 사건도 반장님의 생각대로라면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나겠군요.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전 영원히 오 반장님의 팬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 중간에 건너 뛴 12주의 의문도 푸신다면….” 문 교수는 빙긋 웃으며 오 반장에게 윙크를 해 보이며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오 반장에게 넘겼다.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네요.” 문 교수는 인사를 하고는 핸드폰 통화를 하면서 사라졌다. “이 봐! 벌써 갔어. 그만 밥이나 먹어.” 오 반장이 그녀가 사라진 식당 문을 한 없이 쳐다보고 있는 김 형사를 툭 쳤다. “아. 네.” 김 형사는 수저를 들었다가 다시 놨다. “역시 말이 안돼요. 물론 용의자가 잡히지 않아 해결이 안 된 사건도 있지만 거의 모두 완결된 사건들이에요. 단순한 우연이 아닐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 “그게 뭐죠?” “모두 가까운 사람들이 납치 되었을지도 모른 다는 점이야.”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자네도 알고 있는 박동주 사건 말이야. 그 역시 자신의 딸이 납치되었다고 말했다고 했잖아.” “하지만 경찰 조사는 박동주가 자신의 딸을 죽인 것으로 조사되었어요.” “그렇지. 하지만 경찰은 그 아이 시체도 찾지 못했어. 남자의 말대로 납치 되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경찰은 집에서 아이 혈흔을 발견 했어요.” 김 형사 역시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혈흔이 있다고 다 죽었다고 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경찰은 그는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갔어요. 그리고 그날 밤 옆 집 아줌마를 죽인거구요." “이렇게 생각해봐. 박동주라는 남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전화가 온 거지 ‘딸아이를 납치 할 거다’라고 불안한 그는 유치원에 전화를 했지. 하지만 딸아이는 무사히 있었어. 그러나 불안해서 조퇴하고 딸 아이를 데리고 일찍 집으로 온 거야. 그런데 거기서 납치 된 거야. 집에서 말이야. 그리고 범인은 박동주에게 요구하는 거야. 옆집 부인을 죽이지 않으면 너의 딸은 죽는다.” “허허.” 김 형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청난 이야기인데요. 그래서 그 남자가 옆집 부인을 죽인건가요? 그리고 그 충격 때문에 패닉 상태에서 경찰에 자수했고 다시 도망치다가 죽은 거라 이거죠.”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엄청난 억측이에요. 이건 영화가 아니에요. 우리는 진짜 형사고 이건 진짜 살인 사건들이에요.” “그런가?” 오 반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납치되었어.” “예? 누가요?” “살인 용의자 조성환의 여자친구인 이지우라는 여자가 말이야.” “네? 정말이에요.” 김 형사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고 보니 좀 전에 차에서 오 반장이 자신에게 그녀에 대해 알아보라고 명령했던 것이 떠올랐다. “다시 질문이요.” 김 형사는 식판을 들고 잔판 처리하러 가는 오 반장을 따라나섰다. “뭐?” “이번 살인 말이에요. 아까 반장님이 조성환이 이번 사건 범인이 아닌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던가?” “네. 분명히 그러셨어요.” “반장님 말대로라면 누군가가 조성환의 여자친구를 납치했고 그것을 빌미로 살인을 시켜야 하잖아요. 그런데 왜 이번 사건 범인이 그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오 반장은 아무런 대꾸 없이 발길을 옮겼다.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그것이 의문이었다. “도대체 앞뒤가 안 맞잖아요. 구시렁구시렁….” 김 형사는 계속 구시렁거리며 오 반장을 뒤따랐다. Data 07. Penalty(벌칙) [2010년 7월 23일 16:22 서울 종로 N PC방]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검색 창에 이렇게 쳐 넣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 내용은 없었다. 쓸데없는 내용들만 즐비했다. 검색어를 바꾸어 계속해서 검색을 했지만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제기랄!” 나는 익스플로러 하나를 떠 띄웠다. 포털 사이트 뉴스란의 마우스를 올리고 클릭 했다. [인기 가수 N양 자살] 대문짝만한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유명한 가수가 의문의 자살을 한 모양이었다. 그 기사로 꽤 인터넷이 시끄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마우스 휠을 돌려 커서를 아래로 내렸다. [살인마를 놓친 허술한 경찰] 살인 사건 기사는 아래로 쳐져 있었다. 나는 제목을 클릭 했다. [어젯밤에 벌어진 공원 노숙자의 유력한 용의자로 알려진 조씨를 검거하기 위해 출동했던 경찰이 검거 일보 직전에 용의자를 놓치고 마는 실수를 범했다. 조씨는 소지한 총을 발포한 후 경찰이 우왕좌왕 하는 틈을 타 도주했다.] ‘왜 일까?’ 그들은 나에게 살인누명을 씌웠고 또 도망치게 만들어 주었다. 만약 그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꼼짝 없이 잡혔을 것이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이 이벤트를 만든 녀석은 누구일까? 나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이벤트를 만든 녀석이 한 것이라고 할 수 밖 없었다. 경찰까지 농락했다. 한 남자를 죽인 후 그 시체를 나와 신중이 모르게 우리 집에 가져다 놓았다. 분명 나는 그 공원에 간 적이 없었다. 그 런데 없는 목격자까지 만들어 냈다. 나를 완벽하게 살인범으로 몰아갔다. 그리고는 지우를 납치해 나를 무료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라는 것에 참여 시켰다. 우리 집에 카메라를 설치해 나를 관찰하고 나의 핸드폰과 똑같은 핸드폰을 준비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나와 연락을 하기 위한 핸드폰이었다. 나를 살인마를 몰리게 되면 경찰에 의해 사용하던 핸드폰은 위치 추적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준비한 것이었다. 혼자서 이 많은 것을 준비할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그들? 누구일까? 어떤 단체일지도 모른다. 돈 많아 주체 할 수 없는 미친 재벌. 혹은 사이비 종교 단체.’ 별의 별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기사로 눈길을 돌렸다. [경찰은 용의자 조씨가 이미 서울 빠져 나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수도권으로 넓혀가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용의자 조씨의 살인 수법이 매우 잔인하고 총을 휴대하고 있으므로 시민 여러분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며 용의자와 비슷한 인상착의 남자를 보면 침착하게 경찰에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아직도 신중이 녀석과 지우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신중이 녀석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 밀며 물었다. “이제 배부른 거냐?” 녀석은 컵라면 2개, 소시지 8개, 빵 2개를 먹고 음료수 2개까지 깨끗이 입에 밀어 넣고서야 입을 열었다. 우리는 PC방에서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아직 서울이었다. 물론 우리 동네에서는 한참 떨어진 동네였다. 그리고 어느 동네나 있는 허름한 지하 PC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첫 번째 미션 종료 시간까지 약 19시간이 남아 있었다. 지금 이렇게 앉아 있는 순간에도 지우는 차가운 침대 위에서 정신을 잃은 채로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손이 떨려 왔다. “어떻게 할 거야?” 녀석의 모니터에는 어느 샌가 녀석이 매일 같이 하고 있는 온라인게임이 띄워져 있었다. “모르겠어. 너무나 혼란스러워.” 녀석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고 연신 마우스를 클릭 하며 입을 열었다. “모르긴 뭘 몰라. 간단하잖아.” “간단?”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에 걸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 단순하게 생각해. 지우가 걸린 일이야. 지우가 없이 네가 살 수 있는지 생각해봐.” 녀석은 여전히 무신경하게 화면을 보고 마우스를 클릭해대고 있었다. “알아. 나도 하지만 이건 네가 하고 있는 그런 게임과는 다른 거라고….” “다를 건 뭐야.” 정말 이 녀석의 단순 무식함에는 할 말이 없다. “왜 사람들이 왜 이런 RPG게임을 좋아하는 줄 알아?” “글쎄. 재미있으니깐….” 녀석의 약간 진지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물론 재미도 있지. 말도 안 되는 마법 같은 것도 쓰고 혼자서 수십 명을 쓰러트리기도 하고. 황당하지. 하지만 이런 게임은 현실과 똑같아.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착한 사람도 있고 악질적인 녀석들도 있지. 이 곳은 작은 현실 세상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똑같은.” “그래?”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어. 이곳은 아주 평등해. 처음 계정을 만들면 모두 똑같은 시점에서 출발선에 놓이게 되는 거지. 그리고 벽도 없지. 현실 세상에는 언제나 높게 가로 막고 있는 벽이 없어. 하지만 이런 게임에서도 조차 노력이 필요해. 엄청나 노력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퀘스트만 해도 무지 힘든 퀘스트야. 난 벌써 보름 째 도전하고 있는 퀘스트야. 보상이 꽤 짭짤하거든.” 녀석은 잠시 마우스 클릭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지금 네가 하는 일은 너 인생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보상을 주는 거라고 나는 보는데. 그럼 무조건 하는 거야. 끝까지.” 단순 무식하지만 가끔은 핵심을 찌르는 때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네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두고.” 녀석은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하고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은 금세 게임에 빠져 들었다. 녀석의 캐릭터는 연신 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베고 있었다. 계속적으로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내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TV화면 속의 지우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머릿속에서 그 모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제기랄 이러면 안돼.’ 나는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인내가 필요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다 떠돌고 있는 것일까? 진짜 바다보다 넓고 깊을지도 몰랐다. 그 속에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으려면 인내가 필요했다. 결국 나는 하나를 찾아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개인 홈페이지였다. 홈페이지는 폐쇄 상태였으나 아직 게시판의 게시물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신이여.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전 사람을 죽였습니다. 제 딸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주 짧은 내용이었다. 작성자의 이름은 박동주였다. 작성날짜는 올해 5월 1일 새벽이었다. 나는 짧은 내용의 글을 계속 몇 번 이고 읽었다. 나는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5월 1일자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경찰의 총에 맞고 살인 용의자 사망] 나는 이런 제목의 뉴스에 마우스를 클릭 했다. “오늘 오후 11시 경 경찰을 찌르고 도주 중이던 살인 사건 용의자가 박씨(37)가 경찰이 쏜 총에 등을 2대 맞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이 용의자 박씨는 옆 집 부인을 죽인 혐의로 경찰에 잡혔으나 검거 도중 발이 부러진 중상을 입어 병원 치료 중이었다. 치료 도중 박씨는 경찰을 중상을 입히고 병원을 탈출 했으나 도주 2시간 만에 경찰의 총에 맞고 잡혔으나 병원으로 옮겨진 직후 사망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박씨는 부인과 사별한 후 8살의 딸과 함께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박씨가 옆집 서씨(54,여)를 죽인 이유를 찾고 있으며 또한 현재 사라진 박씨의 딸의 행방을 찾고 있다. 경찰은 검거 시 박씨의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하고 심각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 것을 보아 박씨가 딸을 살해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사는 끝이 났다. 나는 다른 몇 개의 기사를 찾았다. 이번 사건에 경찰의 총기 사용 남용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기사가 몇 개 있었을 뿐이었다. 그 이외에는 모두 비슷한 내용의 기사였다. 나는 다시 박동주라는 남자의 홈페이지에 남긴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였다. [신이여.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전 사람을 죽였습니다. 제 딸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나는 날짜를 계산해보았다. 이 남자가 죽은 날짜는 약 3개월 전이었다. ‘혹시 이 남자도 나와 같았던 것이 아닐까? 이 남자는 딸이 납치 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 남자는 죽었다. 경찰에 의해. 이 남자의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기사를 검색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를 찾았다는 내용이나 혹은 시체를 찾았다는 내용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까맣게 잊혀진 모양이었다. “제기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다시 한번 검색을 해보려는데 신중이 녀석이 나를 툭 쳤다. “야 핸드폰 받아.” [삐리리~~~] 핸드폰 소리였다. 주변의 음악소리와 게임 소리에 파묻혀 핸드폰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하지만 이미 핸드폰은 끊어져 있었다. [부재중 전화 서바이벌 이벤트] 그 여자의 전화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게임을 포기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제기랄!” 핸드폰을 검색했다. 하지만 불과 벨은 10여초 밖에 울리지 않았었다. 핸드폰에 분명히 그렇게 표시되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다. [삐리리리~] 다행히도 다시 벨이 울렸다. [서바이벌 이벤트] 나는 벨이 채 한번 다 울리기도 전에 폴더를 열어 젖혔다. “여보세요!” 떨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조성환 고객님!” 신중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시선을 피해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고객님. 저는 분명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여자는 목소리를 극도로 차가워져 있었다. 그 목소리는 나의 뇌까지 얼려 버리는 듯 했다. “분명히 저는 고객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제 전화를 받지 않으시면 게임을 포기 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겨우 벨은 10초 밖에….” “고객님. 저는 분명히 고객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고객님은 한번에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으로 이 이벤트는 끝입니다.” 이벤트의 끝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저는 다시 한번 전화를 했습니다. 물론 규정에 어긋나지만 말입니다.” “두 번 다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나는 약자였고 이 여자는 강자였다. 내가 바닥을 열심히 기어가며 먹이를 나르는 개미라면 이 여자는 그 위에서 과자를 먹고 있는 아이였다. 개미에게는 선택의 권한이 없었다.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 볼 것인지 아니면 무심히 밟아 죽일 것인지는 오직 아이의 선택이었다. 그저 개미는 열심히 먹이를 나르는 일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없었다. “그래야겠죠. 게임 포기가 의미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 말입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네. 절대로 포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은 그녀가 말하는 게임을 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우. 나의 지우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두 가지가 같은 의미였다. “지우는 무사하겠죠?” “네. 아직까지는 무사히 잠들어 있습니다. 고객님이 원하신다면 깨워서 잠시 통화를 해드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아닙니다.” 물론 지우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지우가 잠에 깨게 되면 엄청난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죽어도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고객님!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이 이벤트를 무사히 마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프로입니다. 이 이벤트가 처음이 아닙니다.” 나 말고도 이런 이벤트를 했던 이가 또 있다는 뜻이었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리고 저는 어디까지나 고객님을 도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단어가 나의 긴장시켰다. “규칙을 어긴 것을 그냥 무마하고 게임을 진행시킬 권리는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약간의 벌칙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 “그렇게 놀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약간의 제재일 뿐입니다.” “제재라니….” “첫 번째 미션 종료 시간을 12시간 앞당기겠습니다. 첫 번째 미션 종료 시간은 정확하게 0시까지입니다. 만약 0시까지 미션을 완료하지 못했을 경우 보신 바와 같이 톱날이 작동하게 됩니다. 또한 톱날이 내려오는 속도가 2배로 증가되었습니다.” “제기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만약 고객님이 자정까지 미션을 완수 하지 못하면 톱날은 이지우씨의 목을 향해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120분 후면 이지우씨의 목에 닿게 됩니다. 고객님. 제가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 입니다. 질문 있으시면 하십시오.” “제기랄! 만약 지우가 조금 이라도 다친다면 죽여 버릴 거야. 당신들 모두….” 나는 악에 바쳐 소리쳤다. “질문 없으시면 통화를 끊겠습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나는 괜히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으르렁거림은 그들에게 고양이가 두려움에 떨며 내지르는 소리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제길. 잠깐.” 나는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박동주라는 남자를 아시나요?” “무슨 소리지요? 고객님.” “2010년 5월 1일. 옆집 부인을 죽이고 경찰에 잡힌 박동주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에게는 딸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이 남자를 아나요?” 여자는 말이 없었다. “이 남자도 나와 같이 이벤트에 참여 한 것인가요? 당신들이 딸을 납치 한 것 아닌가요? 제 질문을 못 들으셨습니까?” “멋진 추리입니다. 고객님. “조금 전에 내가 이 이벤트에 참여 한 것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남자도 나와 같이 이 이벤트에 참여 한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고객님.”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털어 놓았다. “대단하시군요. 조성환 고객님. 하지만 그런 것을 알아 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그 박동주라는 남자의 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박동주 고객님은 이벤트를 실패했습니다. 첫 번째 미션은 성공했으나 두 번째 미션을 제시간에 완수하지 못해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규칙대로 처리되었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규칙대로 처리 되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에 머릿속이 얼어붙었다. “하…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네.” “이 이벤트를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까?”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이 이벤트를 끝낸 사람은 한 명 있습니다.” “끝 낸 사람?” “네. “무슨 뜻이죠? 이벤트를 끝내다니?” “그것은 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이벤트를 끝낸 것과 성공한 것은 차이가 무슨 뜻일까? 하지만 일단 한 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고객님의 첫 번째 미션완료 시간까지 6시간 53분 남았습니다. 첫 번째 미션은 기억하시고 계시겠죠?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 해보겠습니다.” “오늘 자정까지 사람 머리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의 물품 보관소 3번에 넣으라는 거 아닙니까?” “정확하게 기억하시는군요. 그럼 미션을 잘 생각하시고 나머지 시간 좋은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통화는 끊어졌다. “제기랄!” 핸드폰을 던져 버리고 싶은 생각이 치밀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만약 모든 게 끝났다면 이 망할 놈의 핸드폰을 부셔버리고 두 번 다시 핸드폰 따위는 들고 다니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왜 그래?” 신중이 녀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왜 그래? 괜찮은 거야?” “제기랄!” 나는 전화 내용을 간략하게 신중이에게 설명했다. “그럼 너 말고도 이런 이벤트를 참여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거야?” “그런 거 같아.” 신중이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 그 남자 기억나?” “그 남자라니?” “오 반장이라는 남자 말이야. 그 남자에게 이야기 해보는 거는 어때?” “아 그 남자.” 나는 약수터에 만났던 이상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냥 전화 해보는 거야. 왠지 모르게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이 사건 같은 것은 잘 해결하잖아.” “무슨 소리야?” “영화에서 보면 꼭 그런 사람 있잖아. 그런 분위기의 형사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한다.” “헛소리 하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민스러웠다. 나는 시선을 모니터로 옮겼다. [도주 중이던 살인 사건 용의자가 박씨(37)가 경찰이 쏜 총에 등을 2대 맞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다. “전화 할 거야?” “안 돼. 경찰에 조사에 받고 그러다보면 모든 게 끝나 버릴 거야.” “하긴. 너랑 나랑 패싸움 하다 끌려가서 조사 받다보면 하루는 그냥 가버렸지.” 녀석과 함께 패싸움을 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녀석이 싸우긴 했지만 이 녀석과 함께 경찰 조사를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다. 녀석과 나에 하나같이 경찰이라면 치를 떠는 것은 다 그 때 경험 때문이다. “이제 7시간도 안 남았어. 이제 결정을 해야 해.” “그렇군. 그건 그렇고 저것 좀 어떻게 하자.” “뭘?” 신중이는 바닥에 내려놓은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머리통이 든 장바구니였다. 녀석은 자신의 큰 두 손을 역시 커다란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는 입을 벙긋거리며 ‘머리통’이라고 말했다. “나도 뭔지 알아 임마.” 나는 녀석의 머리를 한대 후려쳤다. “비닐로 몇 겹을 쌌는데도 냄새가 나는 거 같아서.” “그래?” “거추장스럽게 왜 들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몰라. 그냥 버릴 수는 없잖아.” “그럼. 형사한테 전화해서 가져가라고 그러던지.”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것도 싫으면 그냥 아무데나 넣어 놓자. 나중에 찾던지 아니면 나중에 신고하면 될 거 아냐. 꺼림직 해서 죽것다.” 녀석이 나보다 더욱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녀석의 찡그린 얼굴을 보자 갑자기 머릿속에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맞다. 저것도 머리통이지.” 내가 머리통이라고 크게 외치자 신중이는 당황했는지 PC방을 빙 둘러 보았다. [야. 야. 그 새끼 죽여. 거기로 가면 안돼.] [야. 그쪽에서 온다. 머리통을 날려!] [작살 내 버려.] 누구도 내가 말한 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나보다 더 심한 말을 내 뱉는 녀석들도 많았다. “저것을 가져다 놓으면 되는 건가?”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 다른 이야기http://pann.nate.com/b315723228http://pann.nate.com/b315737692http://pann.nate.com/b315738286http://pann.nate.com/b315775792http://pann.nate.com/b315775938http://pann.nate.com/b315783901http://pann.nate.com/b315806213http://pann.nate.com/b315825660http://pann.nate.com/b315839806http://pann.nate.com/b315840325http://pann.nate.com/b315849447 3
[서바이벌게임]PART 2.(DATA5~7)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berser13 님 >
Data 5. The Fugitive(도망자)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12시 22분 서울 양천구 T약수터]
헉헉!
이 거친 숨소리는 물론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앞에 달려가는 거구의 신중이 녀석은 전혀 숨이 가쁘지
않은 듯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
“야야”
“왜?”
“너 왜 이렇게 잘 달리냐?”
“무슨 소리야?”
우리는 계속 달리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까 머리통 때문에 놀래서 집에서 도망쳤을 때는 나보다 더 헐떡거리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잘 뛰는 거야?”
“아. 그때는 너무 무서워서 호흡법 같은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나는 녀석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금 기분이 나빠 오려고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잠깐 멈춰봐!”
“왜?”
나는 녀석의 가방을 붙잡고 멈추어 세우려 했지만 오히려 내가 끌려갔다.
“멈춰 새끼야! 심장이 터질 것 같단말야!”
그제야 멈추어 섰다. 역시 이 녀석은 큰 소리를 쳐야 말을 듣는 타입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 숨을 골랐다.
총성과 함께 집 뒤편 베란다를 통해 집에서 뛰어 나온 우리는 담을 넘고 또 넘고 또 넘어 도망치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몇 몇 경찰을 만났지만 그들은 이미 쓰러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우리는 의아해 할 여유도 없이 무조건 뛰었다.
우리는 이 동네에서 살아온 토박이이다. 이 곳은 우리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저 집 옥상에서 약수터로 가자!”
“약수터는 왜?”
“산으로 가는 게 도망가는 데 편할 거 같잖아!”
“그런가? 탈옥범이나 산으로 도망 다니는 거 아냐?”
“숨 좀 돌렸으니 가자. 약수터 가본지도 몇 년이나 되었는데 잘 됐네.”
우리 둘은 내가 말한 루트로 뒷산으로 향했다.
이 동네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해발 100미터도 채 되지 않은 산이었다.
말 그대로 뒷산.
전에는 단순한 약수터였지만 구청에서 구민을 위함인지 아니면 구청장의 재선을 위한 선심 행정의
일환인지 모르지만 배드민턴장 등 체육시설을 설치 해 많은 사람들 특히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 되었다.
철조망을 넘어 약수터가 있는 뒷산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금세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찾아내 걸음을 옮겼다.
오솔길을 조금 오르락내리락 걷다 우리는 우뚝 멈춰 섰다.
“이야 사람 많네!”
나무 사이로 널찍한 공간이 나타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떼를 지어서 뒤로 걸어가고 있는 할머니들.
배드민턴을 치느라 정신없는 아줌마들.
여기 저기 벤치마다 모여서 판을 벌리고 있는 할아버지들.
“그러게.”
“사람 눈 피해서 도망친다는 게 겨우 여기냐? 어떡할 거야?”
“어떡하긴 그냥 태연하게 빠져 나가자!”
“그리고는?”
“모르겠어. 일단 빠져 나가서 생각하자. 저쪽으로 가서 오솔길 따라 가다보면 옆 동네 나오거든 그쪽에
빠져서 택시를 타자!”
우리들은 사람들 사이를 태연하게 걸어 나가려 노력했다.
“태연하게 걸으랬잖아.”
“태연하게 걷고 있는 거야! 너야 말로 너무 딱딱하게 걷고 있는 거 아냐? 군대에서 제식 훈련 하는 군인
같잖아.”
“내가 뭘!”
우리 둘이 아무리 태연하려고 해도 이상한 것은 당연했다.
두 녀석 모두 커다란 쌕을 등에 짊어지고 한 녀석은 시장바구니를 하나 들고 약수터를 활보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는 없었다.
“저쪽으로 가자!”
우리는 인적이 드문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어느덧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저기요!”
우리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풀숲에서 어떤 남자가 튀어나왔다.
길이 아닌 곳에서 튀어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화들짝 놀랐고 그의 행색에 또 한번 놀랐다.
적어도 일주일은 감지 않은 듯 떡진 머리에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바바리를 걸치고 있었다.
대충 보면 노숙자 같았고 자세히 보면 여학교 앞에 출몰한다는 변태 바바리맨 같았다.
하지만 바지에 남장 까지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변태 바바리맨은 아닌 듯 했다.
그렇다면 길 잃은 노숙자일 확률이 컸다.
이런 약수터에서 길을 잃은 것 보면 조금 지능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지독한 길치일 듯싶었다.
“그냥 가자.”
잠깐 놀랬던 우리는 상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잠깐만요.”
남자는 다시 우리를 불러 세웠다. 남자의 목소리는 왠지 힘이 있어보였다.
“왜 그러시죠?”
“길을 잃어서 말입니다.”
그의 어투는 매우 진지했다.
“아. 네. 이쪽 길로 쭉 가면 공원이 나옵니다.”
나는 손으로 우리가 왔던 쪽을 가리켰다.
“아 네. 감사합니다.”
남자는 자신의 머리에 붙어 있는 나뭇잎을 털며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남자가 가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발길을 옮겼다.
“아! 잠깐만요!”
등 뒤에서 다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무시하고 가도 되련만 우리는 또 멈춰 섰다.
이상하게도 그 남자의 목소리에는 무엇인가 모를 힘이 느껴졌다.
“혹시 이 근처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 못 봤나요?”
나와 신중이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고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약수터에서 노숙자 복장의 길 잃은 남자도 보기 힘들겠지만 검은 양복의 남자는 더욱 보기 힘들 것 같았다.
만약 봤다면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 그렇군요. 그 남자를 쫓다가 이렇게 길을 잃었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네. 쩝.”
“아 네. 저희 가 봐도 되나요?”
“아 네.”
우리는 다시 뒤를 돌았다.
“빨리 가자! 또 부를 거 같아 기분에.”
나는 신중이 녀석에게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발 째 내딛으려는 찰나 역시나 등 뒤에서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왜욧!”
나는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노숙자 복장의 남자는 까치집 같은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우리를 쏘아 보았다.
목소리도 왠지 모를 힘이 느껴졌지만 눈빛은 더욱 그랬다.
“그냥 무시하고 가자! 저런 아저씨랑 놀고 있을 시간 없잖아!”
신중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나도 녀석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딱!]
노숙자 복장의 남자는 갑자기 머리를 긁던 손가락 튕겼다.
“아하! 그 살인 용의자!”
남자의 입에서 아무런 긴장감 없이 튀어나온 말이었기에 우리는 잠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짧은 침묵을 깬 것은 신중이 녀석이었다.
“너 유명해졌다. 저런 노숙자도 너를 알아보고 말이야. 하긴 네가 죽인 아니 TV에서 말한 죽은 남자가
노숙자라고 했으니 노숙자들 사이에서는 너 요주의 인물로 뽑혔을지도 모르지.”
녀석이 나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이름의 뭐였더라? 아 조성환. 조성환씨 맞죠?
“네? 네!”
군대에서 상관에 부름을 받은 졸병마냥 나는 남자의 부름에 재빠르게 대답했다.
나는 내가 대답하고도 조금 어이없었다.
하지만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힘이 있었다.
“나는 노숙자가 아닙니다. 형사입니다.”
노숙자 아저씨 입에서 형사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우리들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신중이 녀석의 얼굴은 ‘저 아저씨가 형사라면 나는 검사정도는 되겠다.’라는 표정 같았다.
나는 ‘그냥 미친놈 같으니 빨리 무시하고 가자.’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빨리 가자!”
녀석이 재촉했다.
“잠깐만!”
다시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아씨!‘
나는 나에게 화를 냈다.
왜 그냥 가지 못하고 자꾸 저 남자의 말에 멈칫거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칭 형사라는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남자는 좀 전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자세로 이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용의자를 만난 형사라면 당연히 무슨 반응이라도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별다른 동작의
변화 없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움츠려드는 기분이었다.
“아저씨! 형사라면 잡으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총을 꺼내서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라고 하던지
것도 아니면 본부에 지원 요청이라도 하던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물었다.
“별로! 내가 안 잡아도 잡을 사람은 많으니깐!”
“형사 맞긴 맞아요?”
나의 물음에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시 총 같은 거 있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차에다 두고 왔군요.”
“진짜 형사인지 아니면 정신 나간 노숙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울 경찰청 강력 5반 오지혁!”
자칭 형사라는 노숙자 아저씨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총이라도 꺼내나 싶어 우리는 잠시 움찔했지만 모양새가 영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뒤적거리다가 멋 적은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런 경찰증도 차에 놓고 왔네.”
“뭐하는 거야? 빨리 가자니깐!”
신중이 녀석이 재촉했다.
나도 빨리 가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 심상치 않아 보이는 남자가 끌렸다.
“밑져야 본전이잖아.”
“본전은 짭새들이 혼자 다니는 거 봤냐? 좀 있으면 떼로 몰려오면 어쩌려고 그래!”
“혼자 다니는 짭새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지만 핸드폰도 차에 놓고 오고해서 연락을 취할 수도
없고요. 물론 경찰이 쫙 깔렸으니 조만간 여기도 수색을 오겠지만 말입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살인
용의자로 지명 수배된 조성환씨는 나에게 할 이야기 있으면 해 보세요!”
남자는 매우 차분한 어투로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다.
“일단 그 남자는 제가 죽인 게 아닙니다. 저는 그 남자를 알지도 못하고 어제 범행 시간에는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나랑 같이 경찰서를 가서 조사를 받읍시다. 죽이지 않았다면 도망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건 안 됩니다.”
“왜죠?”
“지우가….”
나는 망설였다. 이 남자에게 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지우가 납치 되었습니다.”
남자에게는 별 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지우가 누구죠?”
“이 녀석 여자친구입니다.”
신중이가 대신 답했다.
“그런데 납치라니? 누가 납치했죠?”
“모릅니다.”
“역시 그렇군요.”
‘역시?’
무슨 뜻일까? 남자는 여전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예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자! 아무래도 그냥 미친놈인거 같아.”
나는 신중이 녀석에게 질질 끌려 몇 미터 움직였다.
“잠깐만 놔봐.”
나는 녀석을 뿌리쳤다. 오반장이라는 잠시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누군가가 지우씨를 납치하고 당신에게 그 남자를 죽이라고 시킨 건가요?”
남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이 남자의 정체는 정말로 무엇일까? 자신의 말대로 경찰인 것인가?
아니면 옆에서 계속 구시렁대고 있는 신중이 녀석 말대로 단순한 정신 나간 노숙자 인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 이 게임과 관련 있는 사람이 아닐까?
“당신 누구야?”
나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남자는 대답 대신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총이라도 꺼내는지 알고 움찔 했지만 남자가 꺼낸 것은 구겨진 종이와 팬이었다.
남자는 종이에다가 뭐를 적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모르겠어.”
남자는 펜이 잘 안 나오는지 펜을 위 아래로 한참 동안 흔들다가 다시 종이에다가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다 적고는 그것을 구겨서 내 쪽으로 휙 하고 던졌다.
“내 핸드폰 번호입니다.”
“네?”
“어차피 자수 할 생각은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신들을 붙잡을 수도 없는 것 같으니….”
나는 남자가 던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구겨진 종이를 펴자 핸드폰 번호가 발로 쓴 듯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번호도 헷갈렸는지 몇 번 직직 그어 수정한 흔적도 있었다.
“내 핸드폰 번호니 시간 나면 꼭 전화하세요.”
의심이 가는 남자인 것은 분명했지만 왠지 뭔가 말을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는 그 남자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냥 빨리 가자니깐. 아무래도 다른 사람 올 때까지 우리를 붙들어 놓으려는 것 같아.”
신중이 녀석이 나를 다시 잡아끌었다.
“그럼 이제 가보세요. 곧 경찰이 몰려올지도 모르니….”
정말 이상한 남자였다.
경찰인지 아닌지도 의심스러웠지만 정말 경찰이라면 매우 특이한 경찰인 것이 분명했다.
학생이라면 왕따가 될 만한 했다.
경찰에서도 왕따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가자!”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신중이 손에 이끌려 앞으로 달려갔다.
“아 잠깐!”
우리는 다시 멈춰 버렸다.
“왜 서는 거야?”
신중이가 물었다.
“그러는 너는?”
“그 덩치 큰 친구 손에 들고 있는 그 시장바구니는 뭐죠? 뭐 둥근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아 이거요.”
신중이는 내 눈치를 보았다.
“농구공이에요. 이 녀석이 농구를 좋아해서. 덩크슛도 하는걸요.”
말도 안 되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녀석이 덩크슛을 할 줄 아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 난 또 사람 머리라도 들고 다니는 줄 알았지. 어젯밤 죽은 피해자 사체에서 머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가자!”
이번에는 내가 신중이 녀석을 잡아끌었다.
우리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등 뒤에서 ‘꼭 전화 해’라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려왔다.
Data 06. Chain Murders(연쇄 살인)
“반장님!”
김 형사는 오 반장이 나타나자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에 봐도 또 보고 싶은 연인을 본 사람마냥
재빠르게 달려갔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한참 찾았잖아요. 핸드폰도 차에다 놓고 가시고 말이에요. 제발 어디 가면 얘기 좀
하고 가시란 말이에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한 날 내가 무슨 얘들 보는 베이비시터도 아니고 반장님
찾아서 이 동네를 이 잡듯 돌아다녀야겠어요.”
“1절만 해.”
“그건 그렇고 용의자를 놓쳤어요.”
“알아.”
“어? 알고 계셨나요?”
“그래.”
“그래. 그런데 왜 놓친 거야. 그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해 놓고 놓칠 수도 있는 거야?”
“총 소리 들으셨죠?”
“어.”
“놈들이 먼저 총을 쐈어요.”
“놈들이?”
오 반장은 의아한 얼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그리고는 신출귀몰하게 사라졌어요. 녀석들 이 동네 토박이라고 하더군요. 감쪽같이 포위망을 뚫고
사라져버렸어요.”
“구주구 열 좀 받았겠는데.”
“그렇죠. 오늘 출동 나온 녀석들 조인트 좀 까이게 생겼네요.”
“그런데 그 용의자가 쏜 것이 확실해?”
“무슨 소리에요?”
“그냥. 몇 발 쏜 거야? 내가 듣기에는 2발 들렸거든.”
“네 두 발이요. 쏜 위치와 총탄 같은 것은 찾아냈어?”
“글쎄요. 그건 아직. 아마도 조사 중이겠죠.”
“그렇군. 총까지 가지고 있었던 말이지. 그렇게 안 보였는데….”
오 반장이 중얼거렸다.
“네? 무슨 소리에요?”
김 형사가 놀란 얼굴로 오 반장을 돌아보았다.
“용의자를 만났거든.”
“네?”
김 형사의 눈이 더욱 커졌다.
“정말이에요?”
“총이라….”
오 반장은 손으로 머리를 잠시 긁적거렸다.
“정말 만나신거냐고요?”
“그래.”
“잡으셨어요? 아니 잡았으면 혼자 오셨을 리 없죠. 아 어디다 묶어 두시고 오신 거예요?”
“아니야. 그냥 만나기만 했어.”
“예? 어디서요?”
“저 뒤 편 있는 산에서 만났어.”
“산이요?”
“그래. 그 뒤에 작은 약수터도 있더군.”
“이상하네요. 용의자는 분명 큰 길 쪽으로 도주했는데.”
“무슨 소리야?”
“네. 분명해요. 길 쪽 포위선을 뚫고 도주했거든요. 한 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음. 이상하군.”
오 반장은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하게 이야기 좀 해 주세요.”
“뭐가 어떻게 돼? 뒷산에 갔다가 길 잃어버리고 헤매다가 만났어.”
“네?”
김 형사가 얼굴을 구겼다.
“길을 잃어요? 뒷산은 왜 갔는데요? 그리고 만나서 뭐라고 했어요?”
“뭐가 그렇게 궁금해. 그냥 자수하라고 했지. 그랬는데 그냥 가더군.”
“그래서 그냥 놓아 주었어요?”
오 반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 참 반장님도.”
김 형사는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잡으려고 했는데 불가능 할 것 같아서….”
“왜요? 하긴 총을 가지고 있었을테니. 그러니까 총 좀 들고 다니세요.”
김 형사는 총을 거의 휴대하고 다니지 않았다.
“총은 모르겠고 두 명이었거든. 한 명은 덩치가 엄청 크더군. 2m도 넘어 보이고 팔뚝을 보니 운동 좀
했을거 같았어.”
“그렇군요. 공범일까요?”
“공범은 무슨. 아직 그 용의자가 역시 범인이라는 확증도 없으면서.”
“아니에요. 용의자 집에서 혈흔이 발견되었거든요. 죽은 피해자와 같은 혈액형이고요. 지금 국과연으로
검증 들어갔어요. 조금 지나면 나올 거예요.”
“그래?”
“어떻게 하죠? 구 반장님에게 알릴까요?”
“그냥 내버려 둬. 어차피 금방 알게 될 텐데. 그리고 귀찮아.”
오 반장은 용의자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집 안은 부산했다.
다행히도 구 반장은 기자와 인터뷰를 하느라 집 안에 없었다.
오 반장은 집안을 천천히 살폈다.
“선혈이 발견 된 곳은 부엌 부근이에요. 그리고 냉장고에서도 발견 되었고요.”
김 형사의 말에 오 반장은 냉장고 안을 살폈다.
냉장실 가운데에 핏자국이 보였다.
오 반장은 머리통을 그 안에 디밀어보았다.
“뭐하세요?”
김 형사가 놀라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오 반장은 냉장실 문을 닫고 냉동고를 열었다.
“냉동고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보시다시피 얼음과 아이스크림으로 가득 차 있으니….”
오 반장은 냉동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감식반을 피해 다니면서 다시 주변을 살폈다.
식탁위에 놓여져 있는 검은 비닐 봉지를 들췄다.
라면이 들어 있었다.
오 반장은 가스렌지로 다가갔다.
가스렌지 위에는 냄비가 하나 올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물이 담겨져 있었다.
오 반장은 다시 집안 곳곳을 살폈다.
한 15분쯤 전 집안을 살펴보았다.
“그만 가지. 김 형사.”
둘은 집에서 나왔다. 오 반장은 차로 향했다.
“그건 그렇고 그 놈이 진짜 범인 맞는 거 같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사람 얼굴에 살인했다고 써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반장님 원래 척 보면 알잖아요.”
“내가 무슨 점쟁이야? 척 보면 알게.”
“또 튕기신다.”
김 형사가 입을 삐죽거렸다.
“모르겠어. 이상해. 범인이 아닌 거 같아.”
오 반장은 차 보조석에 올라탔다.
김 형사 역시 재빠르게 운전석에 탔다.
오 반장은 시트를 뒤로 눕히고 누운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정말 이상해.”
“그래요? 이번 사건의 진범이 아니란 말이죠?”
“모른다니깐.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고 말하는 거야. 이 친구야. 경찰이 증거를 가지고 범인을 찾아야지.
감으로 범인을 잡으면 되나?”
“그래도 오 반장님 감은 거의 100%잖아요.”
“나를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마.”
“그러지 마시고….”
“일단 용의자 집을 봐. 살인을 저지른 녀석들 치고는 너무나 유유자적 한 느낌이 들어.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준비를 하지 않나. 잠에서 일어난 것도 10시 45분이었어.”
“그것을 어떻게 알죠?”
“설명하기 귀찮아. 아무튼 그래.”
“하지만 집안에 있는 혈흔은 뭐죠? 아무래도 죽은 남씨의 혈액인 게 분명해요.”
“그것도 이상해.”
“뭐가요? 냉장고에 넣어 놓은 거요? 상하지 말라고 넣어 놨을 수도 있죠.”
“그게 아니야. 냉장고에 넣어 놓은 것은 머리뿐이야.”
“머리뿐이라뇨?”
“피해자 남득구 사체에서 사라진 것은 머리통 그리고 심장과 폐야.”
“하지만 내장들은 모두 형체가 못 알아 볼 정도로 난도질 되어 있었잖아요.”
“김 박사님한테 물어봤거든. 다른 내장들은 그래도 존재 자체는 확인 할 수 있지만 두개의 내장은 아예
존재 여부를 못 찾는다고 그랬어.”
“무슨 소리죠?”
“범인이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지.”
“그렇군요. 뭐 머리랑 함께 넣어 놓았다가 가지고 갔나보죠.”
“아니야.”
“왜요?”
김 형사는 조금 신경질적인 말투로 물었다. 본인은 전혀 감이 안 잡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왜긴. 자리가 없잖아. 아까 냉장고에 머리를 디밀었을 때 딱 내 머리 정도의 공간 밖에 없었어. 다른 공간은
없었다구.”
“잘 정리해서 넣어 놨나 보죠.”
“김 형사 가슴속에 들어 있는 폐와 심장 크기가 얼마난줄 알긴 하는 거야?”
김 형사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손으로 만져보았다. 물론 폐와 심장이 만져 질리는 없었다.
“아니면 버렸을지도 모르죠. 갈아서 버렸나?”
“뭐 그럴 수도 있지. 일단 청으로 가자고. 배고파. 난 한잠 잘 테니 도착하면 깨워 줘.”
오 반장은 시트에 몸을 완전히 묻고 눈을 감아 버렸다.
김 형사는 오 반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다가 차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 시켰다.
“이상하단 말이야. 그 남자가 살인을 저질렀어야 말이 되는 건데 정말 이상해.”
오 반장이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김 형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
남자는 앞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있었다. 하지만 뿌연 안개 같은 연기에 휩싸여 보이지를 않았다.
‘누구일까?’
의문이 깊어 갈수록 더욱 뿌연 안개가 짙어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살폈다.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또 이 꿈인가?’
꿈이었다.
남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2년 넘게 계속 반복되는 지겨운 악몽.
이 꿈은 언제나 똑같았다.
손에 들려 있는 총을 겨누었다.
총구가 겨눈 곳은 자신의 턱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예전에 총으로 자살한 남자의 시체를 본 적이 있었다.
회전하며 총구를 떠난 탄두는 남자의 턱을 뚫고 입과 눈을 통하여 남자의 뇌에 이른다.
순간적으로 머릿속 압력은 증가하게 되고 결국 뇌를 후벼 파고 정수리에 도달해 머리뼈를 뚫고 나간다.
결국 폭발적인 압력 증가와 탄두의 파괴력에 머리는 폭발하듯 터져 나간다.
‘이것을 당기면 끝나는 것인가?’
방아쇠를 당기면 이 지긋지긋한 악몽이 끝날 수 있을까?
그리고 저 뿌연 안개에 쌓여 있는 사람을 볼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당길 수가 없었다.
손가락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건 꿈이야. 제발….’
하지만 당길 수가 없었다.
‘만약 이게 꿈이 아니라면….’
죽는 것이었다. 죽음. 내가 죽는 것이다. 하지만 당겨야 한다. 이 악몽을 끝내기 위해서는….
그의 꿈은 계속 되었다. 그렇게 계속.
“반장님! 반장님!”
“으윽! 벌써 도착한거야?”
오반장의 질문에 김 형사는 얼굴을 한번 찡그렸다가 입을 열었다.
“저랑 장난쳐요!”
“내가 너랑 왜 장난을 쳐.”
“아까 도착해서 그렇게 흔들고 깨워도 안 일어나서 저 혼자 조사 좀 해가지고 왔어요.”
“그랬어? 얼마나 지난거야?”
“한 시간 정도 지난 거 같은데요. 그건 그렇고 무슨 안 좋은 꿈 꾸셨어요? 식은 땀 흘리는 거 봐.”
“아니야. 아무것도. 그건 그렇고 뭘 조사했어?”
“신원자료 좀 조사했어요.”
“그래? 어디 봐봐!”
“그리고 용의자 조성환 집에서 발견된 혈흔과 피해자 남득구의 혈액이 일치한다고 하더군요.”
“그래?”
오 반장은 김 형사가 건넨 몇 장의 서류를 받아들었다.
읽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차 시트에서 몸을 일으켰다.
“배고프다! 밥 먹자!”
“예?”
김 형사가 놀란 얼굴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오 반장은 이미 차에서 내려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
“아씨! 또 이 메뉴야?”
김 형사는 구시렁거리면서 식탁에 앉았다.
“어 반장님! 반장님 닭도리탕에는 다리도 들어 있었네. 내 거는 뭐야! 순전히 닭모가지랑 껍질만 있네. 저
아줌마가 나랑 무슨 감정이 있나. 전에도 육개장에 고기 하나도 안 주더만!”
“아 시끄러!”
오 반장은 김 형사 식판에 닭다리를 휙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는 기계적으로 밥과 반찬을 입에다 가져다 나르며 한 손으로는 김 형사가 건네준
자료를 살펴보는 듯하다가 이내 자료를 덮었다.
“벌써 다 보신 거예요?”
“나중에 보려고.”
오 반장은 식사에 전념했다. 사실은 벌써 다 읽은 그였다.
“김신중! 반장님이 약수터에 마주친 녀석 중 덩치 큰 녀석의 이름이더군요. 조성환과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이었고 현재는 룸메이트. 유도가 3단이더군요.”
“훔. 안 잡으려고 했던 것이 다행이군.”
“강력 1반에서는 현재 그의 소재도 같이 파악 중이에요. 두 녀석 모두 핸드폰을 집에 두고 사라졌어요.
일단은 같이 도주중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수사를 하려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래?”
“반장님이 보셨잖아요. 같이 도주 중인 거. 수사본부에 알려주면 수사에 도움이 될 텐데.”
“아니야. 내버려 둬.”
“왜요?”
“꼭 같이 다닌다는 보장도 없잖아. 거기서 같이 다니다가 찢어졌을 수도 있어. 뭐 어차피 구주구 녀석이야
다 잡아 넣는 타입이니 알아서 하겠지. 공개수사는 못하겠지만. 용의자도 아닌데 마구 떠들었다가는
큰일 날테니….”
“그런가요?”
“아 그렇고 조성환 주변 인물 중에 이지우라는 여자 소재 파악은 됐나?”
“이지우요? 글쎄요.”
“조금 있다가 그거나 좀 알아봐.”
“네. 그러죠. 그런데 반장님! 한 가지만 물어봐도 괜찮나요?”
“뭘?”
“왜 이번 사건에 집착하세요? 솔직히 반장님은 실종 사건 담당이잖아요.”
“집착! 그런 적 없는데.”
“그러지 마시고…. 제발요.”
오 반장은 비굴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김 형사에게 주머니에서 뒤적거리더니 A4용지 하나를 휙 던져주었다.
“이게 뭐죠?”
김 형사는 오반장이 던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종이에는 오 반장이 손으로 적은 깨알 같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써 있었다.
워낙 글씨도 작을뿐더러 악필에다가 두서없이 적어 놓아서 완전 낙서 같았다.
“외계 문서인가요?”
김 형사의 농담에 오 반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식사에 열중했다.
하는 수 없이 김 형사는 다시 종이를 살폈다.
두서없이 나열된 글자들을 한참 뚫어져라 보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살인 사건들이었다.
살인 사건이 발생한 시간과 용의자 그리고 피해자등이 적여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화살표들과 지운 흔적.
“으아~”
김 형사는 손에 들린 종이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했다.
오 반장이 컴퓨터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 오 반장은 수기를 좋아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을 아무 종이에나 마구 적어서 그 바바리코트에 보관하곤 했다.
“살인 사건들인가요?”
“2007년 10월 20일. 토요일 서울 강서구의 주차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오 반장의 말에 김 형사는 종이에서 그 내용을 찾기 시작했다.
‘1’이라고 적혀 있는 숫자 옆에 똑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시 그 주차장은 S백화점이 건설 중 부도가 나서 거의 이용되지 않는 주차장이었지. 방치되어 풀숲이
우거져서 젊은이들이 이상한 용도로 이용하는 장소로도 유명했고.”
“네. 들어본 거 같아요.”
“앉아도 될까요?”
여자 목소리에 두 남자는 고개를 앞으로 천천히 들었다.
어느새 두 명의 앞에 여자 한명이 서 있었다.
검은 정장 바지 속의 미끈한 다리 위로 잘록한 허리가 들어왔다.
터질 듯 한 가슴과 그 가슴선이 들어날 듯 말 듯 아슬아슬 하게 단추가 열려 있는 흰 셔츠와 팔목 까지
걷어 올린 블랙 실크 재킷이 보였다.
가슴을 따라 시선을 올리자 희고 미끈하게 빠진 목이 보였다.
그 목을 감싸고 있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 그 흰 목을 더욱 가치 있게 해주고 있는 듯 했다.
목을 따로 올라가자 붉고 큰 입술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었다.
오뚝한 콧날을 따라 올라가자 선글라스에 숨겨져 있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이 보였다.
완벽한 글래머의 서구적인 미인이었다.
“아. 문 성실! 아니 문 교수라고 해야겠지.”
S대학의 문성실 심리학 박사였다.
미국에서 정식으로 범죄심리학 과정을 마치고 현재 역시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강의하고 있는 여자였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자문 역할로 경찰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아. 선배도. 참. 그럼 저도 오 반장님이라고 불려드리죠.”
“아. 어서 앉으세요.”
김 형사는 재빠르게 일어나 의자까지 빼주었다. 문 교수는 자리에 앉았다.
“범인은 40대 중반의 남자였죠. 20대 젊은 남녀를 잔인하게 살해했었죠. 남자의 목을 자르고 여자 역시
잔인하게 살해했죠.”
문 박사가 말했다.
김 형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김 형사의 눈빛은 존경과 황홀함이 반씩 섞여 있었다.
“잘 알고 계시네요?”
김 형사가 물었다.
“그냥. 조금”
문 박사가 살짝 미소 지었다. 김 형사는 그 미소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문 교수는 여기 웬일이야?”
“아. 네. 이번 공원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잠시 들렀어요. 구 반장님 많이 흥분하신 것 같더군요.”
오 반장은 안 봐도 훤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그 사건은 왜 이야기 중이신가요?”
“아 네. 반장님이 이번 S공원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 이유를 물어보는
중이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반장님이 이 종이와 함께 그 사건 이야기를 막 꺼내려던 중이셨어요.”
김 형사는 엄마에게 형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동생마냥 이야기를 해댔다.
“아 그렇군요. 오 반장님이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이거죠? 오 반장님은 주로 실종 사건에
관심이 많으시지 않나요?”
“맞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러니까 제가 더욱 궁금해요. 왜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시는지? 그리고 이
낙서들은 도대체 뭔지?”
김 형사는 A4종이를 흔들어댔다.
“그것 좀 잠깐 볼 수 있을까요?”
김 형사는 오 반장을 쳐다보았다.
오 반장이 별 다른 반응을 안 보이자 A4종이를 문 교수에게 넘겼다.
문 교수는 잠시 그 내용을 살핀 후 입을 열었다.
“저도 매우 궁금하네요?”
선글라스 속 문 교수의 눈이 어느 때보다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 반장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과 다른 한 남자의 조금 멍한 눈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2010년 5월 1일. 토요일 서울 강남구에서 벌어진 사건 기억나? 범인은 박동주. 나이 30세. 옆집에 사는
할머니를 죽이고 자수했던 사건.”
“아 기억나죠. 그 사건 때 저도 강력 1반에 지원 나갔었잖아요. 구 반장 밑에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몰라요.”
“박동주! 나이 30세. 부인은 차 사고로 사별. 가족은 4살짜리 딸아이가 있었지. 어느 날 옆집에 사는
할머니를 죽인 후 자수했었지.”
“네. 자수했긴 했었죠. 그게 좀 이상한 점이 많아요. 나중에 언론에는 조금 내용이 바뀌어서 구주구
반장님이 수사 끝에 용의자를 알아낸 것으로 되었지만요. 아무튼 자수하기로 했던 그 남자가 갑자기
도주해서 결국 구주구 반장이 검거했죠. 그 과정에서 용의자가 팔이 부러졌어요.”
당시 김 형사는 강력 1반의 요청에 따라 지원을 나가 사건에 참여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렇군.”
“검거 당시 난리도 아니었어요. 완전히 정신 착란상태였지요. 자신이 죽였다고 했다가 그게 아니라
누군가가 시켜서 한 일이다. 감시당하고 있다. 딸이 납치되어 있다, 내가 딸을 죽였다 등등 계속 횡설수설
했어요. 결국 쇼크가 심해 기절 하고 안정제를 맞은 후 병원에서 잠들었는데 새벽에 다시 도주를
시도했어요. 그 과정에서 경찰의 총을 빼앗아 그걸로 경찰을 쏘아 중상을 입혔고요. 결국 도주 도중에
검문에 걸려 다시 붙잡히던 과정에 경찰에 총탄에 맞고 병원에 실려 갔지만 끝내 죽고 말았죠.”
오 반장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당시 박동주의 딸은?”
“물론 용의자의 말을 듣고 경찰이 딸을 찾으려 했지만 못 찾았어요. 하지만 수사는 남자가 자신의 딸을
살해하고 옆 집 부인을 살해 한 것으로 진행되었어요. 당시 그 남자는 완전한 정신 착란 증세였어요.”
“딸을 살해 한 흔적 같은 것은 찾은 거야?”
“네. 남자의 집에서 딸의 혈흔이 발견되었어요.”
“시체는?”
“못 찾았어요.”
“그렇다면 남자의 말대로 납치가 된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확인 한 결과 용의자인 박동주가 자신의 딸을
데리고 유치원에서 집으로 갔다는 진술이 나왔어요. 물론 유치원 끝날 시간도 아니었고요. ‘매우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집으러 갔다’라는 아이 담당 교사의 증언이 있었어요.”
“그렇군. 그리고 그날 밤 살인을 저질렀지. 하지만 결국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남자가 그냥 죽어 버렸으니.”
오 반장은 얼굴에는 아쉽다는 표정이 그려졌다.
“그런데 그 사건 이야기는 왜?”
오 반장이 입을 열면 열수록 의문이 풀리기는커녕 의문이 더해져만 가는 그였다.
“흠. 여기 적혀 있는 사건들 중 제일 최근에 발생한 사건이군요.”
문 교수는 종이를 뚫어져라 보면서 이야기를 해 나갔다.
“조금 전에 말한 2007년 10월에 있었던 살인 사건이 제일 오래된 사건이고 방금 말씀 하신 박동주 사건이
여기 적혀 있는 사건들 중에 가장 최근 사건이군요. 그 외에도 9개의 살인 사건들이 적혀 있군요. 총 11개의
살인 사건들이 적혀 있네요.”
김 형사는 문 교수가 두 가지 면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어떻게 저렇게 개발 새발 쓴 글씨를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지였다.
두 번째 살인 사건을 이야기하면서도 저렇게 섹시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 교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이 풀렸다.
문 교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 형사의 그런 눈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오 반장의 수기로 작성한
종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2번째 사건. 2008년 1월 12일. 금요일. 수원. 가해자 가정주부 한씨 33세. 피해자. 그녀의 옆 집 아이와
그녀의 남편. 가해자 한씨는 사건 직 후 자살. 다음 3번째는 2008년 4월 5일. 토요일. 광주. 가해자 황씨
62세. 피해자는 노인정에서 알게 된 유씨. 사건 직 후 자살.”
그녀 역시 알아보기 힘든지 더듬더듬 거리며 거기 적혀 있는 사건들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4번째 사건. 2008년 6월 28일. 토요일. 용의자 김씨 35세. 피해자는 그의 이혼한 전 부인인 박씨(35세,
회사원)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던 김씨(32세). 사건 후 잠적. 수배 중이나 현재까지 잡히지 않음.”
문 교수는 잠시 고개를 들어 오 반장을 바라보았다.
오 반장은 식사를 마치고 물을 먹고 있었다.
김 형사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문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 차려!”
오 반장이 김 형사를 툭 쳤다.
“아.”
김 형사는 헤 벌어져 있던 입을 다 물었다.
“그런데 왜 살인 사건들을 적어 놓으신 거죠? 그냥 적어 놓으신 거 같지는 않은데.”
“글쎄. 문 교수 생각에는 어떤데?”
오 반장이 도리어 문 교수에게 물었다.
“일단. 모두 주말에 벌어진 사건들이군요.”
“그러네요.”
김 형사가 맞장구쳤다.
“흠. 그리고….”
유 경장은 종이를 앞뒤로 넘겨보다가 자신의 숄더백에서 팬과 메모지를 꺼내어서는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한 1분 쯤 무엇인가를 적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건들에 일정한 간격이 있군요. 모두 3달 간격…. 음 정확히 말하면 12주의 간격으로 벌어진 사건들이군요.”
“맞아.”
오 반장이 그제야 아주 짧게 입을 열었다.
“훔. 아까 그 종이에서 제일 최근 발생한 박동주 살인 사건이 이번년도 5월 1일이었죠. 오늘이 7월 23일이니
12주 후가 되네요. 이게 반장님이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인가요? 하지만 이번 살인 사건은
날짜로는 금요일이지만 새벽이었어요. 목요일 밤과 금요일 새벽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에요. 게다가 어제
만해도 전국에서 4건의 살인 사건이 접수되었어요.”
그랬다. 김 형사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12주 간격마다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지만 나열된 사건들은 모두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장소도 범죄수법도 모두 제 각각인 사건들이었다.
“2001년도 한 해 1,000건을 돌파 한 후 꾸준히 증가해 작년 2009년도 살인 사건 발생 건수 무려 2545건
이에요. 대략 하루에만 해도 7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반장님이 나열한 사건들은 12주
간격으로 벌어진 사건들을 뽑아내 나열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죠.”
문 교수가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에요.”
자신이 할 말을 정확하게 대신 하자 김 형사는 손뼉을 치며 맞장구쳤다.
오 반장의 표정에는 별 반응 없이 식사에 열중이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중간에 한 번 비는군요. 2008년 9월 19일 벌어진 사건과 2009년 3월 7일에 벌어진
사건은 24주의 간격이군요. 이건 왜죠? 오 반장님.”
“글쎄.”
오 반장은 처음으로 약간의 표정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역시 그것이 의문이었다.
오 반장이 머리를 긁자 혹시나 뭐가 떨어질까 김 형사는 깜짝 놀라 자신의 식판을 조금 멀리 치웠다.
“나도 그 12주는 모르겠어. 하지만 일단은 위의 사건들은 대부분 이유가 뚜렷하지 않았던 살인 사건들이야.”
오 반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묻지마 살인 인가요?”
‘묻지마 살인’이란 무동기살인을 뜻한다.
원한이나 금품 혹은 치정 등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범죄를 말한다.
주로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인해 불특정 대상에게 저지르는 범죄를 뜻하지만
그런 이유도 없이 저지르는 사건들도 있었다.
“그거와는 조금 달라.”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는 아주 사소한 것이 원인이 되기도 하잖아요. 단 돈 몇 만원에도
살인을 저지른 경우도 있고, 본인이 아니면 알기 힘든 경우도 많고요.”
“네 김 형사님의 말이 맞아요. 첫 번째 사건만 봐도 범인인 부인을 10년 전에 교통사고로 잃은 상태였고요.
하나 뿐인 딸 역시 가출 상태였죠.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어요. 결국 오랫동안 축적되었던 사회에 대한
분노와 소외의 감정이 폭발한거죠. 그 때 사건을 보면 범인은 낫으로 피해자의 목을 잘랐어요.”
김 형사가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미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치고는 과격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나누려는 젊은 연인들이 목표가 된 거죠. 그 젊은 남자를 자신의 부인과 딸을 빼앗아간 대상으로
각인 시켰을지도 모르는 거죠.”
“그렇군. 하지만 내 조사 결과 그렇다는 것뿐이야.”
오 반장은 여전히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훔. 오 반장님이 그렇게 말하니 정말로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문 교수의 말에 김 형사도 동의했다.
경찰청에서의 오 반장의 명성은 그의 비범한 외모에도 있지만 그것보다 그의 능력에 있었다.
그의 프로파일링 능력은 꽤 유명했다.
“그리고….”
오 반장이 말을 이었다.
“살인이 한번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야. 그리고 그 간격이 하루 정도라는 거.”
김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올해 박동주라는 남자의 경우는 아니잖아요. 그 남자는 옆 집 할머니를 죽인 후에 자수했잖아요.”
“그래. 그리고 도망쳤지 병원에서. 만약 도주 중에 경찰에 총에 맞고 다시 잡히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또 살인을 저질렀을 거란 이야기인가요?”
문 교수가 물었다.
“뭐….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삐리리~~~]
문 교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핸드폰의 액정을 힐끔 쳐다보았다.
“흥미 있는 이야기네요. 물론 억측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물론 오 반장님이 의견이라면 정말로 뭔가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이번 공원 살인 사건도 반장님의 생각대로라면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나겠군요.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전 영원히 오 반장님의 팬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
중간에 건너 뛴 12주의 의문도 푸신다면….”
문 교수는 빙긋 웃으며 오 반장에게 윙크를 해 보이며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오 반장에게 넘겼다.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네요.”
문 교수는 인사를 하고는 핸드폰 통화를 하면서 사라졌다.
“이 봐! 벌써 갔어. 그만 밥이나 먹어.”
오 반장이 그녀가 사라진 식당 문을 한 없이 쳐다보고 있는 김 형사를 툭 쳤다.
“아. 네.”
김 형사는 수저를 들었다가 다시 놨다.
“역시 말이 안돼요. 물론 용의자가 잡히지 않아 해결이 안 된 사건도 있지만 거의 모두 완결된 사건들이에요.
단순한 우연이 아닐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
“그게 뭐죠?”
“모두 가까운 사람들이 납치 되었을지도 모른 다는 점이야.”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자네도 알고 있는 박동주 사건 말이야. 그 역시 자신의 딸이 납치되었다고 말했다고 했잖아.”
“하지만 경찰 조사는 박동주가 자신의 딸을 죽인 것으로 조사되었어요.”
“그렇지. 하지만 경찰은 그 아이 시체도 찾지 못했어. 남자의 말대로 납치 되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경찰은 집에서 아이 혈흔을 발견 했어요.”
김 형사 역시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혈흔이 있다고 다 죽었다고 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경찰은 그는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갔어요. 그리고 그날 밤 옆 집 아줌마를 죽인거구요."
“이렇게 생각해봐. 박동주라는 남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전화가 온 거지 ‘딸아이를 납치
할 거다’라고 불안한 그는 유치원에 전화를 했지. 하지만 딸아이는 무사히 있었어. 그러나 불안해서
조퇴하고 딸 아이를 데리고 일찍 집으로 온 거야. 그런데 거기서 납치 된 거야. 집에서 말이야. 그리고
범인은 박동주에게 요구하는 거야. 옆집 부인을 죽이지 않으면 너의 딸은 죽는다.”
“허허.”
김 형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청난 이야기인데요. 그래서 그 남자가 옆집 부인을 죽인건가요? 그리고 그 충격 때문에 패닉 상태에서
경찰에 자수했고 다시 도망치다가 죽은 거라 이거죠.”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엄청난 억측이에요. 이건 영화가 아니에요. 우리는 진짜 형사고 이건 진짜 살인 사건들이에요.”
“그런가?”
오 반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납치되었어.”
“예? 누가요?”
“살인 용의자 조성환의 여자친구인 이지우라는 여자가 말이야.”
“네? 정말이에요.”
김 형사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고 보니 좀 전에 차에서 오 반장이 자신에게 그녀에 대해 알아보라고 명령했던 것이 떠올랐다.
“다시 질문이요.”
김 형사는 식판을 들고 잔판 처리하러 가는 오 반장을 따라나섰다.
“뭐?”
“이번 살인 말이에요. 아까 반장님이 조성환이 이번 사건 범인이 아닌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던가?”
“네. 분명히 그러셨어요.”
“반장님 말대로라면 누군가가 조성환의 여자친구를 납치했고 그것을 빌미로 살인을 시켜야 하잖아요.
그런데 왜 이번 사건 범인이 그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오 반장은 아무런 대꾸 없이 발길을 옮겼다.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그것이 의문이었다.
“도대체 앞뒤가 안 맞잖아요. 구시렁구시렁….”
김 형사는 계속 구시렁거리며 오 반장을 뒤따랐다.
Data 07. Penalty(벌칙)
[2010년 7월 23일 16:22 서울 종로 N PC방]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검색 창에 이렇게 쳐 넣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 내용은 없었다.
쓸데없는 내용들만 즐비했다.
검색어를 바꾸어 계속해서 검색을 했지만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제기랄!”
나는 익스플로러 하나를 떠 띄웠다. 포털 사이트 뉴스란의 마우스를 올리고 클릭 했다.
[인기 가수 N양 자살]
대문짝만한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유명한 가수가 의문의 자살을 한 모양이었다.
그 기사로 꽤 인터넷이 시끄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마우스 휠을 돌려 커서를 아래로 내렸다.
[살인마를 놓친 허술한 경찰]
살인 사건 기사는 아래로 쳐져 있었다. 나는 제목을 클릭 했다.
[어젯밤에 벌어진 공원 노숙자의 유력한 용의자로 알려진 조씨를 검거하기 위해 출동했던 경찰이 검거
일보 직전에 용의자를 놓치고 마는 실수를 범했다. 조씨는 소지한 총을 발포한 후 경찰이 우왕좌왕 하는
틈을 타 도주했다.]
‘왜 일까?’
그들은 나에게 살인누명을 씌웠고 또 도망치게 만들어 주었다.
만약 그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꼼짝 없이 잡혔을 것이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이 이벤트를 만든 녀석은 누구일까?
나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이벤트를 만든 녀석이 한 것이라고 할 수 밖 없었다.
경찰까지 농락했다.
한 남자를 죽인 후 그 시체를 나와 신중이 모르게 우리 집에 가져다 놓았다.
분명 나는 그 공원에 간 적이 없었다. 그
런데 없는 목격자까지 만들어 냈다.
나를 완벽하게 살인범으로 몰아갔다.
그리고는 지우를 납치해 나를 무료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라는 것에 참여 시켰다.
우리 집에 카메라를 설치해 나를 관찰하고 나의 핸드폰과 똑같은 핸드폰을 준비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나와 연락을 하기 위한 핸드폰이었다.
나를 살인마를 몰리게 되면 경찰에 의해 사용하던 핸드폰은 위치 추적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준비한
것이었다.
혼자서 이 많은 것을 준비할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그들? 누구일까? 어떤 단체일지도 모른다. 돈 많아 주체 할 수 없는 미친 재벌. 혹은 사이비 종교 단체.’
별의 별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기사로 눈길을 돌렸다.
[경찰은 용의자 조씨가 이미 서울 빠져 나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수도권으로 넓혀가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용의자 조씨의 살인 수법이 매우 잔인하고 총을 휴대하고 있으므로 시민 여러분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며 용의자와 비슷한 인상착의 남자를 보면 침착하게 경찰에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아직도 신중이 녀석과 지우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신중이 녀석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 밀며 물었다.
“이제 배부른 거냐?”
녀석은 컵라면 2개, 소시지 8개, 빵 2개를 먹고 음료수 2개까지 깨끗이 입에 밀어 넣고서야 입을 열었다.
우리는 PC방에서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아직 서울이었다.
물론 우리 동네에서는 한참 떨어진 동네였다.
그리고 어느 동네나 있는 허름한 지하 PC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첫 번째 미션 종료 시간까지 약 19시간이 남아 있었다.
지금 이렇게 앉아 있는 순간에도 지우는 차가운 침대 위에서 정신을 잃은 채로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손이 떨려 왔다.
“어떻게 할 거야?”
녀석의 모니터에는 어느 샌가 녀석이 매일 같이 하고 있는 온라인게임이 띄워져 있었다.
“모르겠어. 너무나 혼란스러워.”
녀석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고 연신 마우스를 클릭 하며 입을 열었다.
“모르긴 뭘 몰라. 간단하잖아.”
“간단?”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에 걸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 단순하게 생각해. 지우가 걸린 일이야. 지우가
없이 네가 살 수 있는지 생각해봐.”
녀석은 여전히 무신경하게 화면을 보고 마우스를 클릭해대고 있었다.
“알아. 나도 하지만 이건 네가 하고 있는 그런 게임과는 다른 거라고….”
“다를 건 뭐야.”
정말 이 녀석의 단순 무식함에는 할 말이 없다.
“왜 사람들이 왜 이런 RPG게임을 좋아하는 줄 알아?”
“글쎄. 재미있으니깐….”
녀석의 약간 진지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물론 재미도 있지. 말도 안 되는 마법 같은 것도 쓰고 혼자서 수십 명을 쓰러트리기도 하고. 황당하지.
하지만 이런 게임은 현실과 똑같아.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착한 사람도 있고 악질적인 녀석들도 있지. 이 곳은 작은 현실 세상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똑같은.”
“그래?”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어. 이곳은 아주 평등해. 처음 계정을 만들면 모두 똑같은
시점에서 출발선에 놓이게 되는 거지. 그리고 벽도 없지. 현실 세상에는 언제나 높게 가로 막고 있는 벽이
없어. 하지만 이런 게임에서도 조차 노력이 필요해. 엄청나 노력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퀘스트만 해도
무지 힘든 퀘스트야. 난 벌써 보름 째 도전하고 있는 퀘스트야. 보상이 꽤 짭짤하거든.”
녀석은 잠시 마우스 클릭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지금 네가 하는 일은 너 인생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보상을 주는 거라고 나는 보는데. 그럼 무조건
하는 거야. 끝까지.”
단순 무식하지만 가끔은 핵심을 찌르는 때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네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두고.”
녀석은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하고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은 금세 게임에 빠져 들었다.
녀석의 캐릭터는 연신 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베고 있었다.
계속적으로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내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TV화면 속의 지우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머릿속에서 그 모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제기랄 이러면 안돼.’
나는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인내가 필요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다 떠돌고 있는 것일까?
진짜 바다보다 넓고 깊을지도 몰랐다.
그 속에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으려면 인내가 필요했다.
결국 나는 하나를 찾아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개인 홈페이지였다.
홈페이지는 폐쇄 상태였으나 아직 게시판의 게시물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신이여.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전 사람을 죽였습니다. 제 딸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주 짧은 내용이었다.
작성자의 이름은 박동주였다.
작성날짜는 올해 5월 1일 새벽이었다.
나는 짧은 내용의 글을 계속 몇 번 이고 읽었다.
나는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5월 1일자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경찰의 총에 맞고 살인 용의자 사망]
나는 이런 제목의 뉴스에 마우스를 클릭 했다.
“오늘 오후 11시 경 경찰을 찌르고 도주 중이던 살인 사건 용의자가 박씨(37)가 경찰이 쏜 총에 등을
2대 맞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이 용의자 박씨는 옆 집 부인을 죽인 혐의로 경찰에 잡혔으나
검거 도중 발이 부러진 중상을 입어 병원 치료 중이었다. 치료 도중 박씨는 경찰을 중상을 입히고 병원을
탈출 했으나 도주 2시간 만에 경찰의 총에 맞고 잡혔으나 병원으로 옮겨진 직후 사망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박씨는 부인과 사별한 후 8살의 딸과 함께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박씨가
옆집 서씨(54,여)를 죽인 이유를 찾고 있으며 또한 현재 사라진 박씨의 딸의 행방을 찾고 있다. 경찰은
검거 시 박씨의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하고 심각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 것을 보아 박씨가 딸을 살해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사는 끝이 났다.
나는 다른 몇 개의 기사를 찾았다.
이번 사건에 경찰의 총기 사용 남용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기사가 몇 개 있었을 뿐이었다.
그 이외에는 모두 비슷한 내용의 기사였다.
나는 다시 박동주라는 남자의 홈페이지에 남긴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였다.
[신이여.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전 사람을 죽였습니다. 제 딸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나는 날짜를 계산해보았다.
이 남자가 죽은 날짜는 약 3개월 전이었다.
‘혹시 이 남자도 나와 같았던 것이 아닐까? 이 남자는 딸이 납치 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 남자는 죽었다. 경찰에 의해. 이 남자의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기사를 검색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를 찾았다는 내용이나 혹은 시체를 찾았다는 내용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까맣게 잊혀진 모양이었다.
“제기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다시 한번 검색을 해보려는데 신중이 녀석이 나를 툭 쳤다.
“야 핸드폰 받아.”
[삐리리~~~]
핸드폰 소리였다.
주변의 음악소리와 게임 소리에 파묻혀 핸드폰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하지만 이미 핸드폰은 끊어져 있었다.
[부재중 전화 서바이벌 이벤트]
그 여자의 전화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게임을 포기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제기랄!”
핸드폰을 검색했다.
하지만 불과 벨은 10여초 밖에 울리지 않았었다.
핸드폰에 분명히 그렇게 표시되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다.
[삐리리리~]
다행히도 다시 벨이 울렸다.
[서바이벌 이벤트]
나는 벨이 채 한번 다 울리기도 전에 폴더를 열어 젖혔다.
“여보세요!”
떨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조성환 고객님!”
신중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시선을 피해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고객님. 저는 분명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여자는 목소리를 극도로 차가워져 있었다. 그 목소리는 나의 뇌까지 얼려 버리는 듯 했다.
“분명히 저는 고객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제 전화를 받지 않으시면 게임을 포기 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겨우 벨은 10초 밖에….”
“고객님. 저는 분명히 고객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고객님은 한번에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으로 이 이벤트는 끝입니다.”
이벤트의 끝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저는 다시 한번 전화를 했습니다. 물론 규정에 어긋나지만 말입니다.”
“두 번 다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나는 약자였고 이 여자는 강자였다.
내가 바닥을 열심히 기어가며 먹이를 나르는 개미라면 이 여자는 그 위에서 과자를 먹고 있는 아이였다.
개미에게는 선택의 권한이 없었다.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 볼 것인지 아니면 무심히 밟아 죽일 것인지는 오직 아이의 선택이었다.
그저 개미는 열심히 먹이를 나르는 일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없었다.
“그래야겠죠. 게임 포기가 의미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 말입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네. 절대로 포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은 그녀가 말하는 게임을 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우. 나의 지우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두 가지가 같은 의미였다.
“지우는 무사하겠죠?”
“네. 아직까지는 무사히 잠들어 있습니다. 고객님이 원하신다면 깨워서 잠시 통화를 해드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아닙니다.”
물론 지우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지우가 잠에 깨게 되면 엄청난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죽어도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고객님!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이 이벤트를 무사히 마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프로입니다.
이 이벤트가 처음이 아닙니다.”
나 말고도 이런 이벤트를 했던 이가 또 있다는 뜻이었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리고 저는 어디까지나 고객님을 도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단어가 나의 긴장시켰다.
“규칙을 어긴 것을 그냥 무마하고 게임을 진행시킬 권리는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약간의 벌칙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
“그렇게 놀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약간의 제재일 뿐입니다.”
“제재라니….”
“첫 번째 미션 종료 시간을 12시간 앞당기겠습니다. 첫 번째 미션 종료 시간은 정확하게 0시까지입니다.
만약 0시까지 미션을 완료하지 못했을 경우 보신 바와 같이 톱날이 작동하게 됩니다. 또한 톱날이 내려오는
속도가 2배로 증가되었습니다.”
“제기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만약 고객님이 자정까지 미션을 완수 하지 못하면 톱날은 이지우씨의 목을 향해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120분 후면 이지우씨의 목에 닿게 됩니다. 고객님. 제가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
입니다. 질문 있으시면 하십시오.”
“제기랄! 만약 지우가 조금 이라도 다친다면 죽여 버릴 거야. 당신들 모두….”
나는 악에 바쳐 소리쳤다.
“질문 없으시면 통화를 끊겠습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나는 괜히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으르렁거림은 그들에게 고양이가 두려움에 떨며 내지르는 소리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제길. 잠깐.”
나는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박동주라는 남자를 아시나요?”
“무슨 소리지요? 고객님.”
“2010년 5월 1일. 옆집 부인을 죽이고 경찰에 잡힌 박동주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에게는 딸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이 남자를 아나요?”
여자는 말이 없었다.
“이 남자도 나와 같이 이벤트에 참여 한 것인가요? 당신들이 딸을 납치 한 것 아닌가요? 제 질문을 못
들으셨습니까?”
“멋진 추리입니다. 고객님.
“조금 전에 내가 이 이벤트에 참여 한 것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남자도 나와 같이 이 이벤트에
참여 한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고객님.”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털어 놓았다.
“대단하시군요. 조성환 고객님. 하지만 그런 것을 알아 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그 박동주라는 남자의 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박동주 고객님은 이벤트를 실패했습니다. 첫 번째 미션은 성공했으나 두 번째 미션을 제시간에 완수하지
못해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규칙대로 처리되었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규칙대로 처리 되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에 머릿속이 얼어붙었다.
“하…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네.”
“이 이벤트를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까?”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이 이벤트를 끝낸 사람은 한 명 있습니다.”
“끝 낸 사람?”
“네.
“무슨 뜻이죠? 이벤트를 끝내다니?”
“그것은 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이벤트를 끝낸 것과 성공한 것은 차이가 무슨 뜻일까?
하지만 일단 한 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고객님의 첫 번째 미션완료 시간까지 6시간 53분 남았습니다. 첫 번째 미션은 기억하시고 계시겠죠?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 해보겠습니다.”
“오늘 자정까지 사람 머리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의 물품 보관소 3번에 넣으라는 거 아닙니까?”
“정확하게 기억하시는군요. 그럼 미션을 잘 생각하시고 나머지 시간 좋은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통화는 끊어졌다.
“제기랄!”
핸드폰을 던져 버리고 싶은 생각이 치밀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만약 모든 게 끝났다면 이 망할 놈의 핸드폰을 부셔버리고 두 번 다시 핸드폰 따위는 들고 다니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왜 그래?”
신중이 녀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왜 그래? 괜찮은 거야?”
“제기랄!”
나는 전화 내용을 간략하게 신중이에게 설명했다.
“그럼 너 말고도 이런 이벤트를 참여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거야?”
“그런 거 같아.”
신중이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 그 남자 기억나?”
“그 남자라니?”
“오 반장이라는 남자 말이야. 그 남자에게 이야기 해보는 거는 어때?”
“아 그 남자.”
나는 약수터에 만났던 이상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냥 전화 해보는 거야. 왠지 모르게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이 사건 같은 것은
잘 해결하잖아.”
“무슨 소리야?”
“영화에서 보면 꼭 그런 사람 있잖아. 그런 분위기의 형사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한다.”
“헛소리 하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민스러웠다. 나는 시선을 모니터로 옮겼다.
[도주 중이던 살인 사건 용의자가 박씨(37)가 경찰이 쏜 총에 등을 2대 맞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다.
“전화 할 거야?”
“안 돼. 경찰에 조사에 받고 그러다보면 모든 게 끝나 버릴 거야.”
“하긴. 너랑 나랑 패싸움 하다 끌려가서 조사 받다보면 하루는 그냥 가버렸지.”
녀석과 함께 패싸움을 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녀석이 싸우긴 했지만 이 녀석과 함께 경찰 조사를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다.
녀석과 나에 하나같이 경찰이라면 치를 떠는 것은 다 그 때 경험 때문이다.
“이제 7시간도 안 남았어. 이제 결정을 해야 해.”
“그렇군. 그건 그렇고 저것 좀 어떻게 하자.”
“뭘?”
신중이는 바닥에 내려놓은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머리통이 든 장바구니였다.
녀석은 자신의 큰 두 손을 역시 커다란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는 입을 벙긋거리며 ‘머리통’이라고 말했다.
“나도 뭔지 알아 임마.”
나는 녀석의 머리를 한대 후려쳤다.
“비닐로 몇 겹을 쌌는데도 냄새가 나는 거 같아서.”
“그래?”
“거추장스럽게 왜 들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몰라. 그냥 버릴 수는 없잖아.”
“그럼. 형사한테 전화해서 가져가라고 그러던지.”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것도 싫으면 그냥 아무데나 넣어 놓자. 나중에 찾던지 아니면 나중에 신고하면 될 거 아냐. 꺼림직
해서 죽것다.”
녀석이 나보다 더욱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녀석의 찡그린 얼굴을 보자 갑자기 머릿속에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맞다. 저것도 머리통이지.”
내가 머리통이라고 크게 외치자 신중이는 당황했는지 PC방을 빙 둘러 보았다.
[야. 야. 그 새끼 죽여. 거기로 가면 안돼.]
[야. 그쪽에서 온다. 머리통을 날려!]
[작살 내 버려.]
누구도 내가 말한 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나보다 더 심한 말을 내 뱉는 녀석들도 많았다.
“저것을 가져다 놓으면 되는 건가?”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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