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웃대 : berser13 님 > Data 08. Mission failed(미션 실패) 1. [2010년 7월 23일 19:45 강남역] 강남역. 어느 때와 다름없이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부터 시작되는 밤을 즐기기 위해 발길이 바쁜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 몇몇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사람들 사이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진영 역시 잡지 가판대 옆에서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미장원에서 자른 앞머리가 영 신경 쓰여 연신 가판대의 유리에 자신의 머리를 비춰 보고 있었다. 눈썹에 맞추어 일자로 자른 머리가 웃겨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머리를 자른 미용사는 연신 귀엽다고 칭찬을 해주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 더욱 웃겨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자른 머리 다시 가져다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두 번 다시 그 미용실에 가지 않으리라 다짐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그녀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자기야.” 남자의 목소리의 진영은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았지만 기다리던 호근이는 아니었다. 키도 훤칠하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목이 패인 브이넥 티로 근육이 보였다. 호근이보다 훨씬 킹카였다. 그런데 자신의 옆에 서 있던 그저 그렇게 생긴 여자를 부둥켜안더니 금세 사라져 버렸다. “헐. 주제에 어떻게 저런 킹카를 건졌지. 돈이 많나?” 진영은 사라진 커플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호근을 기다렸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핸드폰 배터리는 조금 전에 통화를 하다가 나가버렸다. 약속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도 호근이 녀석은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핸드폰에 대고 막 짜증을 내고 있는데 배터리가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하필 한참 짜증내다가 기다리는 장소를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에 끊어지고 말았다. ‘제대로 들었겠지’라고 애써 위안했지만 왠지 불안했다. 머피의 법칙인지 뭔지 뭔가 안 풀리는 날은 연속적으로 안 풀리는 경험을 여러 번 해본 그녀였다. 엊그제도 마찬가지로 호근이와 대판 싸우고 기분이나 풀 겸 머리를 자르려고 명동에 갔다가 지금껏 포인트 많이 적립해두었던 단골 미용실이 망한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짜증이 나 친구가 소개 해준 미용실에 갔다가 머리까지 이렇게 깎기고 알고 보니 바가지까지 썼다는 사실을 알고 폭발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왔었다. 오늘은 제발 그러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역시 다시 전화를 해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주변에 공중전화는 없었다. 대신 아까부터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리며 남자 두 명만 눈에 띄었다. 한 명은 저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알아볼 만큼 덩치가 컸다. 등 뒤에는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한 손에는 둥그런 공이 든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농구 선수 같아 보였다. 그 옆에 있는 남자는 그냥 평범했다. 아주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키. 몇 번 봤어도 못 알아 볼 그런 타입 아 보였다. 농구 선수 옆에 서 있는 걸로 보아 농구 선수 일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운동을 잘 할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진영은 잠시 놀랐다. 정확히 그 평범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시선을 피한 후 다시 그들 쪽을 힐끗 보았다. 두 남자는 연신 자신을 보며 수군거렸다. ‘역시 남자들이란.’ 진영은 머리칼을 한번 뒤로 쓰다듬고는 문득 뭐가 생각났는지 그들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다가오자 두 남자는 서로 뭐라고 이야기하다가 말을 멈추었다. “저기요.” 진영은 최대한 귀엽고 앙증맞은 목소리를 냈다. 두 남자는 그녀가 자신들에게 말을 걸자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긴 지들이 어디서 나처럼 예쁜 여자랑 이야기 해 봤겠어.’라고 생각하고는 진영은 말을 이었다. “저기요. 제가 급하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제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요. 죄송한데 핸드폰 잠시 빌릴 수 있을까요?” 진영은 이렇게 말하고는 평범하지만 만만해 보이는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아 네.”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역시 자신의 미모는 언제나 통한다고 생각하고는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핸드폰의 5번을 꾹 눌렀다. [미련 곰탱이] 액정 창에 ‘미련 곰탱이’라는 글자가 떴다. 그녀는 잠시 당황했다. 이유 중 하나는 이 핸드폰이 잠시 자신의 핸드폰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 자신의 미련함 때문이었다. ‘이런.’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녀가 자신의 남자친구의 핸드폰 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단축 번호는 5번이 확실한데. 그리고 011이고 번호에 8이 2개 있다는 사실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진영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핸드폰 구경 잘 했다고 돌려주면 저 곰처럼 큰 남자가 자신을 커다란 손으로 후려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는 아무 번호에 대고 통화 하고는 대충 얼버무리고는 끊어버릴까라고 생각했다. “진영아.” 이 때 등위에서 구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호근이가 양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는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호근이와 만난 3개월 동안 가장 호근이가 가장 반가운 순간이었다. “뭐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여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그 돌려주었다. “잘 썼어요.” 남자는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덩치 큰 남자와 발길을 옮겼다. ‘이상하다. 저 남자 꼭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평범해서 그런가? 하긴 저렇게 생긴 얼굴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진영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호근의 팔짱을 끼었다. “가자. 그리고 내가 입에 닳도록 말했지. 김호근. 너 나 만나면 귀에서 이어폰 빼라고.” 호근이 음악소리에 자신의 말을 못 들은 듯 빙긋 빙긋 웃고 있자 진영은 친히 자신의 손으로 이어폰을 빼면서 한마디 더 보탰다. “너 또 다시 내가 이야기 할 때 이어폰 귀에 끼고 있으면 아주 강력 본드로 이어폰이랑 귀랑 붙여 버린다.” “이 노래만 마저 듣고.” “너 죽을래?” 두 커플은 티격태격 하며 인파들 사이에 묻혔다. *** “야 핸드폰을 빌려 주면 어떻게” 신중이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 나도 모르게. 그만. 나 거절 같은 거 잘 못 하잖아.” “그나저나 어디에 전화 한거야?” 나는 신중이의 말에 핸드폰 통화 내역을 살폈다. [미련 곰탱이] “너한테 하려고 했는데….” 나와 신중이는 동시에 멀리 사라져 간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혹시 이벤트와 관련 있는 사람 아냐? 너를 관찰하고 있는 중이라든지.” “모르겠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워보였다. 다정하게 걸어가는 연인들도. 어딘가 바쁘게 가는 아줌마도. 양복을 입고 뭔가를 기다리는 남자 모두 의심스러워 보였다. “못 알아봤겠지?” “뭘?” 나의 질문에 신중이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언제나 이 녀석이 한번에 내 말을 이해 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뭐긴 뭐야. 나 말야.” “아는 사람이야?” “그게 아니라. 내 얼굴이 TV에 나왔잖아. 살인 용의자로.” “아하. 그거.”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치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해서 자제했다. “네 얼굴을 어떻게 알아보냐. 그렇게 모자까지 쓰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아니. 네가 워낙 평범해야 말이지. 솔직히 나는 아직도 가끔씩 네 얼굴이 헷갈려. 그리고 길을 가다가 넌 줄 알고 뒤통수 쳤다가 모르는 사람한테 맞을 뻔 아니 맞을 뻔 한거는 아니고 내가 무서워서 도망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그게 말이 되냐?” 녀석은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 저 편에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켰다. “여. 저 사람을 봐. 저 남자도 너랑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녀석이 가리킨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디 어디? 진짜.” 나는 고개를 잠시 끄덕였다. “아 그리고 너를 알아봤다면 112에 신고했겠지.” 나는 다시 1초쯤 고개를 끄덕이다가 정신을 차렸다. 자꾸 이 녀석의 말에 동의 하는 게 조금 짜증났다. “그건 그렇고 경찰이 쫙 깔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네.” “이 시각에 이런 사람이 많은 곳을 활개를 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겠지. 게다가 경찰은 우리가 지방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갔다. 이 이벤트를 준비한 그들이 그랬을 것이다. 경찰에 포위된 집에서 탈출 시킬 때도 그들은 총까지 사용해 우리가 도망치게 도왔다. 아마도 그들이 우리가 지방으로 도망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유는 한가지였다. 그들은 이벤트가 그냥 끝나길 바라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불안하긴 하다.” 나 역시 불안했다. “그럼 이제 작전대로 하자.” “작전?” 녀석이 또 엉뚱한 소리를 하려는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내 손이 하늘로 올라갔다. “알아. 알아. 장난 쳐 본거야.” “정말 기억 하는 거야?” “당연하지. 이제부터 우리는 떨어져서 행동한다. 너는 이 머리통을 저기 저 보관함에 넣는다. 너와 나는 따로 떨어져서 보관함을 관찰한다. 누군가 나타나면 잡는다. 됐지?” “그래.” PC방에서 문득 떠오른 것이 이 머리통의 쓰임새였다. 그 여자는 전화를 끊기 전에 첫 번째 미션이 무엇인지 재차 확인 시켰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 물품 보관소 3번 출구에 사람의 머리통을 가져다 놓으라는 미션을 말이다. 나는 흥분 상태였다. 나는 지금껏 당연히 사람 한명을 죽여서 그 사람의 머리를 가져다 놓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자가 내린 미션 지령은 자정까지 사람 머리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의 물품 보관소 3번에 넣으라는 것이다. 다른 부연 설명은 없었다. 내가 죽인 사람이라든지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나에게 준 머리를 넣어 두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불안했다. 일단 이 머리통을 가져다 놓는 것이 그들의 요구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서 수많은 실수를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실수를 할 수 없었다. 실수에 따른 희생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07:55] 첫 번째 미션 종료 시간까지 4시간 정도 남았지만 나는 지금 머리통을 그곳에 넣어 놓기로 결정했다. 이 머리통을 가져다 놓고 기다리면 전화가 올 것이다. 확인 하러 올지도 몰랐다. 만약 확인을 하러 온다면 그 사람을 잡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라면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동안 그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들의 손바닥에 안일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가진 물건에 추적 장치 내지는 도청장치를 하고 있는 가능성도 컸다. 아니면 지금도 계속 나를 미행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모든 것을 생각했을 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작전이라고 하기에 너무 단순한거 아니야. 머리통 넣고 기다린다.” “잔말 말고 그거나 내놔.” 나는 녀석에 손에 들리는 장바구니를 건네받았다. 묵직했다. 계속 이것을 들고도 별 다른 투정조차 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왠지 찡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물건을 받아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무지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 걸음 한걸음이 걷는데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팔고 들고 있는 이 장바구니의 무게는 나의 팔을 어깨 관절에서 통째로 뜯어 내버리는 듯 했다. 사람의 머리 무게가 4~5키로 정도 나간다고 어떤 책에서 본 듯싶다. 아마 무협지였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본 책의 반 이상은 무협지나 판타지이니깐 말이다. 4~5키로 정도를 든 것으로 팔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분명한 착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어깨는 지금 굉장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중이와 헤어진 나는 개찰구를 빠져 나갔다. 개찰구에서 물건 보관함까지는 고작 20여 미터였다. 그리고 보관함에서 출구로 향하는 계단까지는 고작 30여 미터였다. 신중이는 개찰구 안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등 뒤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벽에 기대고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 어서 가라고 손짓까지 하고 있었다. 무딘 녀석은 무딘 녀석이었다. 나는 보관함으로 가던 발길을 멈추었다. 어떤 여자가 보관함에 다가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툭! 내가 갑자기 멈추었기 때문에 뒤에서 오던 여자와 부딪혔다. 커플인 모양이었다. 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둘이서 팔짱을 꼭 끼고 있었다. 여자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나에게 지어보였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꾸벅하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여자는 입 모양으로 ‘재수 없어’라고 말하고는 남자의 팔짱을 끌고는 황급히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겼다.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남들이 보기에 얼마나 어색한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보관함 앞으로 다가갔다. ‘첫 번째 미션입니다. 한 사람의 머리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의 물품 보관소 3번에 넣어 두시면 됩니다.’ 여자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계속 울려 댔다. 이 머리를 가져다 놓는 것이 맞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다시 핸드폰 벨이 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은 이것을 저 곳에 넣어 놓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저곳. 보관함 3번에 말이다. 저 여자 쇼핑백을 넣어 놓는 저곳에 말이다. 머릿속에서 번개가 친 듯 했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빠른 걸음으로 보관함으로 달려갔다. 여자는 막 보관함에 물건을 넣고는 보관함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비밀번호 입력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나는 여자를 불렀다. 막 비밀번호를 다 입력했는지 여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저요?” “네? 그쪽이요.” 나는 그제야 여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귀걸이에 짧은 미니스커트, 그리고 속이 보일 듯한 민소매 티 까지. 대충 보면 날라리 여대생이었고 자세히 보면 까진 여고생으로 보였다. “무슨 일이예요?” 까져 보이는 여고생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귀찮다는 듯 말투로 물었다. “아. 그게 아니라. 저기.” “저 바쁘거든요.” 내가 자신을 헌팅이라도 하려는 줄 안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별로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려는 여자의의 어깨를 나도 모르게 붙잡았다. “아 왜 그래요? 관심 없다니깐!” 갑자기 사람을 치한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였다. 주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긋힐긋 쳐다보았기 때문에 나는 황급히 일을 무마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아 그게 아니라요. 저기. 보관함 때문에요. 저기 3번 보관함 제가 쓰고 싶어서요?” 까져 보이는 여고생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지어보였다. 당연했다. 빈 보관함은 여러 개였고 굳이 3번 보관함을 써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는 머리를 굴려야 했다. 어색한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가 이 까져 보이는 여고생한테 추파를 던지고 있는 한심한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금 섹시하긴 했다. 어디 요즘 여고생이 여고생인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그게 아니라요. 제가 이번에 여자 친구와 300일이거든요. 그래서 이 3번 보관함에다가 장미 100송이를 집어넣는 이벤트를 하려고 해서요.” 말을 해 놓고도 속으로 어이없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300일이라고 3번에다가 장미 100송이를 집어넣어 놓다니 너무나도 유치한 발상이라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저 보관함에 장미 꽃 100송이를 집어넣을 수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장미를 갈아서 집어넣으면 집어넣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냥 바꿔주면 만원 주께 제발 바꿔줘’라고 할 걸 그랬나 싶었다. “그러세요?” 갑자기 까져 보이는 여고생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럼 바꿔 드려야죠.”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자 친구 분은 좋겠어요. 그런 멋진 이벤트도 받으시고.” 무엇이 멋지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연신 “네. 네.”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장미는 없으시네요? 그 장바구니에 든 둥그런 것이 장미는 아닐테구요.” “아. 네? 일단 보관함부터 맡아두려구요. 내일이 300일인데 장미는 지금 사면 시드니까 내일 넣어놓으려고요.” 여자는 약간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 이것은 종이학이에요. 둥그런 통에 담아 놓았지요.” 그제야 여자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보관함에서 쇼핑백을 꺼냈다. 여자는 쇼핑백을 꺼내고는 한참동안이나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 다른 사물함 비용은 제가 드릴게요.”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건넸다. “천오백 원인데요.” “아. 네.” 동전이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보관함을 위해서 동전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 “저기요. 여기 천원 더 드릴게요.” “아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거 한번도 사용 안 해보셨죠?” 갑자기 착해진 여학생을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거는 거기다가 넣으세요.” 여학생의 말에 나는 손에 들고 있는 그것이라고 불린 물건을 사물함에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종이학으로 바뀐 물건을 말이다. “그리고 이쪽에서 오셔서 이렇게 하시면 되요.” 여학생은 친절하게 보관함 사용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나는 결국 그 여학생에 꾸벅 인사까지 하고 헤어져야 했다. 결국 나는 그것을 그 여자가 말한 대로 강남역 2번 출구 3번 사물함에 집어넣었다.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한 것이다. [서바이벌게임]Part 2. D-2 Data 08. Mission failed(미션 실패) 2. [같은 날 19:11 서울 경찰청 S공원 노숙자 살인 사건 합동 수사본부] 구 반장은 극도로 흥분 상태였다. 아주 좋은 기회였다. 확실히 용의자만 검거했다면 말이다. 지난번 연쇄 살인 사건 용의자 검거로 그의 주가는 한층 뛴 상태였다. 게다가 연달아 터진 흉악한 살인 사건을 멋지게 해결 한다면 그는 단번에 서울 경찰청의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단상에 거의 올라가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그 단상이라는 게 아직 확고히 자리를 잡은 게 아니기 때문에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만 잘 해결 되었다면 그는 경찰청 뿐 아니라 매스컴에까지 확실히 그의 이미지를 각인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그와 친한 녀석이 피디로 있는 케이블 방송국까지 부른 게 아닌가? 그런데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완전히 그물에 갇힌 생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선이 그물을 뚫고 나가버렸다. 생방송 중이었는데 말이다. 멋지게 범인을 검거하고 인터뷰할 내용까지 준비해 두었건만 다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총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던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정말로 신출귀몰했다. 총소리와 함께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사라졌다. 녀석에게 당한 의경들은 녀석들의 얼굴조차 못 봤다고 진술했다. 대담하게 큰 길로 빠져 나가 차를 훔쳐 도망쳤다. 자신을 완전히 깔 본 것이다. “제기랄!” 구 반장은 책상을 거세게 내리쳤다. 이미 그 위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워낙 다혈질인지라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책상위에 있는 물건을 벽에 내다 던지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보는 어떻게 되가?” “그게 그다지 믿을만한 제보가 없습니다. 인천 경찰서에 잡았다는 용의자는 조성환이 아니라고 알려 왔습니다.” 용의자 아니 범인은 이미 포위망을 뚫고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훔쳐 달아난 차는 수원에서 발견되었다. 그게 오후 3시 무렵이었으니 이미 경기도를 빠져 나가 완전히 숨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는 수 없이 수사 범위를 전국으로 늘려야 했다. 범인인 조성환의 집에서 발견된 혈흔 죽은 피해자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주 간단하게 그것도 과학적으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게 날아간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제기랄!” 구 반장은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치려다가 그만두었다. 용의자의 룸메이트로 알려진 김신중이라는 녀석도 같이 사라졌다. 둘이 같이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 되었다. 하지만 공범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목격자의 증언과 공원 근처 CCTV 화면에 목격된 것으로 보면 범인은 한 명이었다. 하지만 두 녀석이 같이 사라졌다. 같이 사라진 녀석도 경찰 수배 명단에 넣어놓기는 했지만 공개수배를 할 수는 없었다. 확실한 혐의가 없는 사람을 매스컴에 공개수배를 할 수는 없었고 만약에 둘이 같이 다니지 않는다면 시민들을 더욱 혼란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범인인 조성환은 매우 주도면밀한 녀석이었다. 조성환과 같이 사라진 김신중의 핸드폰 모두 집에서 발견되었다. 만약 이들이 신용카드나 교통카드를 쓰게 된다면 곧바로 위치가 노출 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범행 동기는 무엇일까?’ 구 반장은 잠시 이 생각을 해보았다. 뚜렷한 동기가 없었다. 뭐 그래도 별 상관없었다. 요즘 동기 없이 범행을 저지르는 무모한 녀석들 천지였다. 태연하게 돈 때문에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 보험금을 타내려고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을 살인 청부 하는 세상이었다. 그래도 그런 것은 이유나 있었다. 그냥 심심해서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녀석들도 널려 있었다. 이번도 그랬을 것이다. 아마도 길 가다가 노숙자와 부딪혔을 것이다. 아마도 옷이 더러워졌을지도 모른다. 노숙자의 침이 묻었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앙심을 품고 죽였을 것이다. 잔인하게 말이다. 다른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큰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런 무법자 놈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지만 경찰 수는 매년 제자리였다. 그래서 자신이 더욱 활약해야 했다. 범인인 조성환의 통화 내역을 조사했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대부분 여자친구라고 알려진 이지우라는 여자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제일 마지막 통화가 문제였다. 경찰이 조성환 집을 급습하기 직전에 걸려온 통화. 추적이 되질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하는 늘어난 ‘쉐도우폰(그림자폰)’이었다. 해킹으로 이동 통신사의 중계기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방식의 통화 방식이었다. 추적을 할 수 없었다. 이 전화가 범죄에 많이 이용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요금을 내지 않기 위해 무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쉐도우폰으로 걸려온 통화. 어떤 통화였을까? 게다가 이지우라는 여자도 현재 행방불명이었다. 이지우라는 여자는 일류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에 다니는 여자였다. 집에서는 아침에 회사를 간다고 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에는 월차를 내고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라진 것이다.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버렸는지 위치 추적은 되지 않았다. 여자란 동물은 그랬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똑똑해도 남자에게 미치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물이었다. 아마도 살인자가 된 남자 친구를 따라 가고 다니고 있든지 아니면 남자 친구를 도피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그 미친 살인마가 그 여자마저 죽여 버렸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우의 부모가 가출 신고를 했지만 받아지지 않았다. 아직 24시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5살이나 먹은 다 큰 여자가 반나절 없어졌다고 가출 신고를 한다면 전 국민의 4분의 1은 가출 신고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지우라는 여자에 대한 바뀐 정보는 없어?” “네. 반장님 여전히 추적이 안 됩니다.” “그렇군. 여자란 쯧쯧.” 구 반장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구 반장의 눈에 김 형사가 띄었다. 구석에서 서경사한테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김 형사!” 구 반장의 눈에 걸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숨어서 대화를 하던 김 형사는 구 반장이 자신을 부르자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가 이내 얼굴을 펴고는 달려갔다. “여기 왜 왔어?” “아. 그냥. 오 반장님이 뭐 좀 알아보라고 해서요.” “그래?” “뭘?” “그냥 이것저것이요.” “오 반장이 왜 이런 사건에 관심을 갖지?” 구 반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건 뻔한 사건이라고 범인도 이미 밝혀졌고 잡기만 하면 되는 사건인데…. 게다가 실종 사건도 아니고.”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김 형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구 반장님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는데요?” “뭐?” “구 반장님과 오 반장님 두 분 동기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왜 ” “오 반장님이 실종이나 가출 사건에 집착 하시는 건가요?” “음. 자네가 오 반장과 같이 일한지 1년 밖에 안 되었으니…. 자네는 오 반장이 아직까지 결혼 하지 않은 줄 알고 있겠지?” “네?” 김 형사가 입을 떡 벌렸다. “아니에요?” “그래. 나는 거기까지만 말 할 거야. 별로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알아보고 싶으면 자네가 알아봐.” “네.” 김 형사는 뒤돌아 천천히 걸어갔다. 구 반장은 잠시 김 형사를 쳐다보다가 다시 실내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뭣들 하는 거야? 제보 전화 빨리 빨리 안 받아?” [같은 시각 경찰청 강력 5반] 오 반장은 자료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2009년. 3월 7일. 서울 은평구에서 있었던 사건이었다. 한 주부가 자신의 남편을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에게서 쉽게 잊혀졌다. 아니 아예 한 줄의 신문 기사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은 달랐다. 오 반장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112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대상은 여자였다. 바로 위치 추적이 들어갔다. 여자는 한참 주저하다가 아들이 납치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다시 아니라고 번복하는 행동을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의심에 찬 경찰은 출동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남편을 죽인 후 넋이 나간 그녀의 모습을.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완전 넋이 나간 상태였다. 심각한 주부 우울증과 남편의 외도로 인해 충동적인 살인으로 판명되었다. 사건 후 그녀는 정신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계속 적인 자살시도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지금 정신 병원에 수감 중이다. 작년인가 그녀를 면회 간 적이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궁으로 빠진 사건이 되어 버렸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역시 그녀의 딸 역시 지금까지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오 반장이 이 의문의 살인 사건들의 연관성을 찾은 것은 몇 개월 전이었다. 경찰 데이터베이스를 검사하다가 알아냈다. 하지만 살인 사건들을 조사하다가 알아낸 것은 아니었다. 실종 사건들을 조사하다가 알아낸 것이었다. 살인 사건과 이어지는 실종 사건. 물론 살인 사건은 모든 것을 부셔 버린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의 가족들은 충격에 한참동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물론 그것은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가족 중에 한명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충격은 매우 큰 것이다. 게다가 주변에 알려지게 되면 거의 살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집을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것은 뭔가 달랐다. 하지만 확실히 그 뭔가가 잡히지 않았다. 오 반장은 계속해서 전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자료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한 해 1000건이 넘는 살인 사건이 벌어진 후 계속 증가되어 2006년에는 2000건을 넘어서고 있었다. 오 반장은 그 모든 자료들을 조사했다. A. 살인 후 피의자 절친한 주변 인물이 실종이나 가출 처리된 경우. 케이스가 너무 많았다. 오 반장은 다시 자료들을 분류 했다 B. 특별한 이유가 없는 케이스의 살인 사건 위의 경우를 추가 시켰다. 하지만 살인 사건에 특정한 이유를 찾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 무척이나 힘든 작업이었다. 사건들을 하나하나씩 자세하게 분석해야 했다. 많은 사건들이 제외되었지만 역시나 너무 광범위했다. 포기하려던 찰나에 한 가지를 더 추가 시켰다. C. 피의자가 자살한 경우 D. 피의자가 여러 명을 살해 한 경우 다시 위의 케이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케이스가 많이 줄어들었다. 위의 A, B, C, D 네 가지의 경우를 모두 만족시키는 사건들을 찾아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모두 만족 하는 사건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별 다른 특이점을 찾아 낼 수가 없었다. 포기 하려던 찰나 한 가지 의문점을 찾아냈다. 살인범이 2명을 일정 시간의 간격을 두고 살인을 저지른 경우였다. 이상하게도 피의자가 첫 번째 살인을 한 요일이 토요일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약 12시간에서 24시간 정도의 간격에 한 명을 더 죽였다는 것이었다. 다시 이런 사건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D케이스를 제외시켰다. 한 명을 살해 한 경우도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찾아냈다. 12주. 이런 간격을 두고 이러한 케이스 사건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다시 자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A케이스를 빼고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납치 사건 데이터를 조사했다. 그리고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속에서 파 묻혀 있는 별 자리들을 찾아낸 천문학자와 같았다. 그저 흩어져 있는 것들이었지만 믿고 보면 모양을 가지고 있는 별자리였다. 오 반장은 좀 과격한 가설을 세웠다. [12주 마다 벌어지는 납치와 살인 게임] 그리고 결국 찾아낸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모든 것이 확실해 질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반장님!” 김 형사가 호들갑을 떨며 들어 왔다. “나 아직 숨 안 넘어가!” “어디 갔다가 온 거야?” “어디긴요. 반장님이 말한 거 알아보고 왔죠.”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어?” “구 반장이 하도 살벌해서 조심하느라고요.” “일단 용의자 조성환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이에요. 반장님이 말한 조성환의 여자친구로 알려진 이지우 역시 현재 행방이 모연해요.” “그렇군.” “하지만 납치 가능성은 희박해요. 아침 7시 20분에 정상적으로 집에서 출근 했어요. 그리고 7시 50분에 몸이 안 좋다고 회사에 월차 신청을 하고 사라졌어요. 납치 될 사람이 집에서 나가서 회사에 월차를 내고 사라지는 것은 이상하잖아요.” “그녀의 월차 신청을 받은 사람은 누구야?” “회사 대리라고 하던데요. 몸이 안 좋아서 쉬어야겠다고 그랬다고 하더군요.” “본인 목소리가 확실하대?” “그거야 모르죠.” “본인 목소리가 맞아도 상관없어. 등 뒤에서 누군가가 칼을 대고 그렇게 말을 하라고 하면 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오 반장의 말에 김 형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저는 도저히 못 믿겠어요.” “뭘?” “반장님의 가설이요.” “믿어달라고 한 적 없어.” “납치 한 후 살인을 시키게 만든다. 그것도 12주 마다.” “너무 그렇게 떠들어 대지마. 사무실 안 에는 그 두 명 외에도 내근 형사인 허 순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워낙 존재감 없는 인물인지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그들이었다. 언제나 별 말 없이 내근 일을 수행하는 그녀였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번 공원에서 살인 사건은 조성환이 저지른 것이 아닌 것 같다면서요. 그렇다면 반장님의 가설이 틀리잖아요.” “나도 그게 의문이야.” “그렇다면 조성환이 남득구를 죽인 범인 인 것인가요?” 오 반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요?” “그냥 느낌이 그래.” “그렇다면 이번 살인 사건은 반장님이 말하는 사건들과는 별개의 사건이 되는 거잖아요.” 오 반장은 이미 다른 살인 사건들도 조사해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쫓고 있는 의문의 살인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물론 사건이 접수 안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사건이 뭔가 끌렸다. 아주 강하게. 문득 오 반장은 약수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성환의 얼굴을 떠올렸다. “에이. 모르겠다.” 김 형사는 포기 한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튼 내 생각대로라면 조성환은 이제 누군가를 죽일 테지….” 오 반장은 김 형사가 듣지 못할 정도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삐리리~] 순간 오 반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순간 오 반장은 실내를 둘러보았다. 김 형사는 투덜거리며 앉아 있었고 허순경은 열심히 컴퓨터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오 반장의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두 사람이었다. 그것도 허 순경은 아주 가끔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명 모두 이 곳에 있었다. “누구지?” [발신자 표시 제한] ‘혹시.’ 오 반장은 약수터에 만났던 용의자 조성환을 떠올렸다. 녀석에게 번호를 가르쳐 주긴 했지만 전화를 할 것 같지는 않았었다. 오 반장은 폴더를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지혁 반장님.” “누구시죠?” 여자였다. 매우 차분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섬뜻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오 반장의 뇌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떠오르지를 않았다. 분명히 들어 본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뇌 속에서 그 기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억의 조각은 꺼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는 것 같았다.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물론 김 형사나 허 순경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 이 둘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웬만해선 핸드폰 번호를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궁금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누구시죠?” “제가 누구인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여자는 침착했고 일정한 속도로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준비된 대본을 읽는 듯한 반응이었다. “공원에서 벌어진 노숙자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보고 있습니다.” “네?” 의문은 더욱 증폭 되었다. “지금 용의자로 보이는 남자가 강남역 2번 출구 보관함에 머리로 보이는 물건을 넣고 있습니다.” 오 반장은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여자는 마치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하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여자의 목소리 이외에 다른 잡음은 들리질 않았다.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 요즘 핸드폰이 좋아져서 통화자 이외의 잡음은 잘 안들린다고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의 지하철은 매우 시끄러운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밀폐된 공간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용의자가 무슨 옷을 입고 있나요? 혼자 인가요?” 오 반장이 물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대답이 없었다. “무서워서 이만 끊어야겠어요.” 통화는 끊겼다. 절대 무서워서 끊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여자의 목소리 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했다. 오 반장은 잠시 통화 내용을 되짚어 보았다. 의문의 여자한테 걸려온 제보 전화.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전화를 한 것일까? 왜 하필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는 이번 사건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 반장은 표면상으로 이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김 형사와 문 교수가 유일했다. “이 봐! 김 형사!” “왜요?” “나랑 가볼 곳이 있어.” “네.” “그리고 허 순경.” “네? 네.” 여자 임에도 꽤나 저음의 목소리였다. 두 남자는 간만에 들어본 허 순경의 목소리에 언제나처럼 잠깐 놀랬다. “방금 전 내 핸드폰에 온 전화 발신자 추적 좀 부탁해. 그리고 이 핸드폰 기능 중에 방금 전 통화 저장 기능 있다고 그러지 않았나?” “네. 반장님.” “그런 기능도 있어요? 반장님 핸드폰 좋네요.” 김 형사가 끼어들었다. “그럼 방금 전 통화한 내용을 컴퓨터로 저장할 수도 있는 거야?” “네 반장님.” “역시 좋은 세상이네요.” 김 형사 다시 한번 끼어들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새벽에 국내에서 시술 된 심폐동시 이식 수술 자료 좀 찾아 줘. 그럼 좀 부탁해.” 오 반장은 자신의 핸드폰을 허 순경에게 건네고는 김 형사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Part 2. D-2 Data 08. Mission failed(미션 실패) 3. “네?” 운전을 하다 말고 김 형사는 오 반장을 쳐다보았다. “야. 야. 앞에 봐.” 앞 차의 제동 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오반장이 놀라며 외쳤다. 김 형사는 오반장의 놀란 목소리와는 다르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아 앞 차 바로 뒷 범퍼 10cm 정도 앞에서 멈춰 섰다. 벌써 열 번도 넘게 이런 식으로 차를 가져다 붙였다. 그러고는 다시 오 반장을 향해 최대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표정 지어봤자야. 나도 잘 모르니깐.” “그러니까 반장님에게 어떤 여자가 전화를 걸어서 이번 살인 사건 용의자인 조성환이 강남 지하철역 물건보관함에 무엇인가를 넣었다고 했다고요?” “그래.” “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고요?” 김 형사는 앞 차가 조금 움직이자 다시 크러치에서 발을 살짝 떼고는 앞 차에 바짝 가져다 붙였다. 앞 차는 1미터정도 움직이고 멈췄을 뿐이었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도로는 꽉 막혀있었다.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10분전 쯤 사이렌을 울려대며 호들갑을 떠는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지나갔지만 여전히 도로는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형사고가 터진 모양이었다. “그 말을 반장님이라면 믿겠습니까? 그런 정확한 제보를 했다는 사실도 이상할뿐더러. 엄연히 이 사건은 수사진이 따로 구성되어 있어요. 공개수사 인거 아시잖아요. 그쪽 전화통뿐 아니라 경찰청 전화까지 TV에 나갔는데 반장님 핸드폰으로 직접 제보 전화가 온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게….”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였나요?” “그게 이상해.” “왜요?” “분명히 들어본 목소리인데 기억이 나질 않아.” “그래요?” 오 반장은 지금까지도 목소리의 주인공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워낙 기억력이 좋았고 평상시에 거의 이런 일이 없는 그였다. 김 형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장난전화 아닐까요? 경찰 내부에서 말이에요. 우리 노는 게 못 마땅해서.” “음.” 오 반장은 상당히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허 순경에게 발신자 추적 부탁해 놓았으니….” [빵! 빵!] 김 형사는 교차로에서 좌회전 신호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는 앞차를 향해 경적을 울려댔다. 앞차는 그제야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광등이라도 돌릴까요?” “됐네. 자네 말대로 장난 전화일지도 모르는데 사이렌까지 울리면서 호들갑 떨겠다고. 게다가 꽉 막힌 도로에서 그거 켠다고 차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가자고.” “쩝. 그래도 경광등 작동법도 까먹겠어요. 하도 안 써서.” “그러니까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쩝.” 김 형사는 그래도 아쉽다는 듯이 입을 몇 번 쩝쩝거렸다. 김 형사는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15분] 이 정체를 뚫고 역에 도착하면 11시 40분 정도는 되어야 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차들은 여전히 도로를 메우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반장님!” 잔뜩 깔린 김 형사의 목소리에 오 반장은 김 형사를 돌아보았다. “왜?” “저 반장님 밑에서 일한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 반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요.” “내 이야기?” “네.” “할 이야기가 없어.” “그런가요?” 김 형사는 말을 더 이으려다 그만두었다.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오 반장은 8년 전에 결혼을 했었다. 그는 매우 부지런하고 유능한 형사였다. 그는 결혼 한지 1년 후에 딸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와 딸이 사라져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실종 신고를 했다. 하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오 반장 부인은 젊었다. 당시 오 반장은 거의 일에 전념하느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들어가곤 했었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부인이 바람이 나서 가출 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 반장은 실종 사건으로 끝까지 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수사는 결국 미궁에 빠지고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게다가 부인이 사라진 것으로 생각되는 전 날 오 반장은 마약판매상을 검거하는 도중 파트너를 잃었다. 마약판매상이 쏜 총에 사망한 것이었다. 자신의 동료가 죽는 슬픔과 아내와 딸을 잃어버린 슬픔을 동시에 겪은 것이다. 차는 여전히 꽉 막혀 움직일 줄 몰랐다. [같은 시각 강남역] 갑자기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초조함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일까? 지나가는 행인의 발자국 소리와 목소리가 모두 나를 향해 달려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매일 낄낄거리면서 보던 야한 단편 만화조차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통을 보관함에 집어넣고 나는 다시 개찰구 안쪽으로 들어왔다. 커다란 원형 기둥 밑에 만들어진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는 보관함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역내 설치 된 CCTV에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역시 반대편 개찰구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신중이 녀석이 보였다. 아무래도 떨어져 있는 편이 나을 듯 했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녀석에게 몇 번이나 잔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였다. 의자에 앉은 채 몇 시간이 흘렀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고 머릿속은 복잡해져가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괜찮을 것일까? 그 여자 말한 첫 번째 미션이라는 게 과연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만약 아니라면 이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시간은 아주 느리게 가고 있지만 나에게 시간은 부족했다. 이 모순이 나를 미쳐버리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에 그들이 요구하는 게 이게 아니라면 그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말로 누군가를 죽이라는 것인가?’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만 했다.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라는 말도 안 되는 이벤트에 참여 한 시각이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정오였다. 그리고 첫 번째 미션의 완료 시간은 24시간 후였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페널티를 받게 되었다. 첫 번째 미션의 완료시간이 12시간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상했다. 그 여자는 일부러 통화를 연결시키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분명했다. 벨은 불과 10여초 울렸을 뿐이었다. 아무튼 그 때문에 앞으로 약 40분 후가 첫 번째 미션 완료 시간이 되어 버렸다. 만약 내가 그때까지 미션을 완료하지 못한다면 지우의 목 위에 장치되어 있는 톱날은 회전하며 내려올 것이다. 10분에 10cm씩. 그대로 200분이 지나버리면 모든 게 끝이 나버린 것이었다. 그들이 말한 첫 번째 미션이 그들이 나에게 보낸 저 머리통을 저곳에 넣어 놓는 게 아니라 정말로 누군가를 죽여서 그 머리를 저곳에 넣어놓는 것이라면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제기랄!” 나는 혼자 욕을 내뱉었다. 왜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전화가 오길 바랐다. 옆에 앉아 있던 화장 진한 아가씨 두 명은 힐끗 힐끗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만약 이것으로 첫 번째 미션이 끝난다면 두 번째, 세 번째는 과연 무엇일까?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살인자의 누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낮에 만났던 형사라는 이상한 남자가 던져준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그것을 펼쳤다. 개발 새발 쓴 글씨로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전화를 할까 망설이다가 그만두었다. ‘30분 후면 모든 것이 분명해 질 것이다.’ 시간은 매우 더디지만 멈추지 않고 1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김 형사는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도로변은 불법주차 차량으로 빼곡했다. 어쩔 수 없이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야 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역 앞은 그야 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벌써 11시 35분이네요. 어떻게 하죠? 일단 역무원에게 가서 어떤 미친놈이 지하철 보관함에 사람 머리를 넣어 놓았으니 수색 좀 한다고 할까요?” 오반장이 약간 얼굴을 굳혔다. “쩝. 그냥 제가 알아서 둘러대겠습니다.” 둘은 차에서 나와 지하철 3번 출입구를 통해 역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인파를 뚫고 역무원실로 향했다. “경찰입니다.” 김 형사는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역무실에 앉아 있는 역무원에게 내보였다. “들어오시죠. 배 주임님! 여기 형사님들 오셨는데요.” 역무실 안쪽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엇인가에 열중하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서울 경찰청 강력반 소속 김은식형사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희 반장님이시고요.” “아. 네. 배진현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로?” 이곳에 형사들이 출입하는 일이 빈번한지라 배 주임이라는 남자의 표정은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네. 이번에 쫓고 있는 마약 판매 용의자가 지하철 보관함에 무엇인가를 넣어놓았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확인해보려고 합니다만.” “아. 네.” 배 주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방금 전 자신이 앉아 있던 책상으로 가 서랍에서 열쇠 뭉치를 꺼내들었다. 늘 있는 일을 처리하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모양이네요.” “아 네. 뭐 일주일에 2번 정기적으로 보관함을 검사하거든요. 장기적으로 보관하는 물품을 처리하거든요. 물론 가장 많은 경우는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찾아오는 경우이지만요. 그 경우는 규정상 안 된다고 둘러대긴 하지만요.” 배 주임이 앞장서 역무원실을 나섰다. “가시죠. 보관함은 저쪽 반대쪽 개찰구 건너에 있습니다.” 남자는 의외로 들떠 보였다. “마약상이면 뭐가 있을까요?” “네. 저희도 잘….” 질문을 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답을 요구하고 있는 남자를 향해 김 형사가 얼버무렸다. “시가 수 천 만원 상당의 마약일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배 주임은 자산이 말하고도 웃겼는지 크게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는 말을 이었다. “어떤 바보가 이런 곳에 그런 비싼 물건을 넣어 놓겠습니까? 음.” 배 주임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기야 이런 곳이 더 의심을 안 받을 수도 있겠네요. 제 동기 녀석은 보관함에서 권총을 발견한 적이 있었죠. 러시아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좀 이상한 행동을 하기에 미심쩍어서 살펴보았더니 총이 나와서 신고한 적이 있었죠.” 남자는 쉴 사이 없이 떠들어 댔다. 아마도 하루 종일 말없이 앉아 있다가 이야기 상대를 찾아 신이 난 모양이었다. 김 형사는 연신 “네. 네.” 하면서 억지로 역무원의 말에 맞장구 쳤다. 오 반장은 그냥 그 뒤를 따라 가며 주변을 살폈다. “저는 전에 강아지를 구출한 적이 있었죠. 설 연휴였는데 어떤 지독한 인간이 보관함에 강아지를 넣어두었더군요. 밤에 혼자 순찰 도는데 이상한 소리가 나서 열어보았더니 새끼 강아지가 낑낑거리고 있더군요. 간신히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살아났긴 했지만.” 뒤를 따라 가던 오반장이 우뚝 멈춰 섰다. “왜 그러세요?” 김 형사가 물었다. “저기 저 검은 양복 입은 남자….” 오반장이 손가락을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디요?” “어. 사라졌네.” 오반장의 말에 김 형사는 조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 본 듯 한 남자라.”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요?” “그래. 어서 봤더라. 아 맞다. 오늘 낮 이번 사건 용의자 검거 현장에서 봤던 그 검은 양복의 남자.” “검은 양복 입은 사람이 한 두 명인가요? 엇 저기도 있네요. 엇 저기도.”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검은 양복을 입고 발길을 재촉하는 샐러리맨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이시죠?” 배 주임이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서 가시죠.” 어느새 반대편 개찰구에 도착했다. 개찰구 건너편 매표소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된 철제 보관함이 눈에 띄었다. 남자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 오 반장에게 온 의문의 제보가 확실하다면 일상의 무료함에 젖은 이 남자는 아는 사람들에게 꽤나 할 이야기 거리가 많아 질 것 같았다. “이쪽으로 가시죠.” 배 주임은 개찰구 옆 작은 철문을 열어 두 남자를 안내했다. *** “야.” 등 뒤에 들려온 굵직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척!] 커다란 손이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그것을 잡아챘다. 커다란 손의 주인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왜 왔어.” 난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 남자가 나타났어.” “그 남자라니?” “아까 낮에 약수터에서 만난 노숙자 같은 남자.” 머릿속에 신중이가 말하는 남자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평범하지만 인상이 무척이나 강한 남자였기에 머릿속에 각인이 잘된 모양이었다. “그 형사?” “그래. 지금 역무원 같아 보이는 남자랑 다른 남자 한명이랑 셋이서 반대편 개찰구에 있어. 아무래도 이쪽으로 올 거 같은데.”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이 남자가 왜 여기에? 우연일까?’ 나는 고개를 돌려 개찰구 안쪽을 살폈다. ‘낮에 약수터에서 만난 것도 우연?’ 의문이 부풀어져 갔다. 시야에 그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 남자는 인파를 뚫고 곧장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오 반장이라고 자신을 소개 했던 남자가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은 잠시 멈춰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이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단 그들은 지하철을 탈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이미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지나쳐 계속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물론 이쪽 개찰구 쪽에도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있었지만 구지 가까운 계단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이쪽 개찰구 쪽에는 역무실은 없었다. 매표소만 있었다. 역에 용무가 있다면 이쪽으로 올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보관함으로 오는 것일까? ‘설마?’ 그들은 인파를 뚫고 계속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좀 떨어져서 이야기 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말에 신중이는 기둥을 중심으로 몇 걸음 옆으로 돌아갔다. “여기서는 안 보이잖아. 그리고 이렇게 떨어져서 이야기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이지 않냐?” “왜 온 걸까?” “내가 어떻게 알아? 보이지도 않는데.” “형사라더니….” “여기 있으면 들킬 거 같은데.” 신중이 녀석 말이 맞았다. 그들은 이 쪽 개찰구를 이용할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있는 장소는 개찰구에서 너무 가까웠다. “가자.” 가자 나는 녀석을 끌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잠시 내려갔다. “왜? 지하철 타려고?” “아니. 저들 지나가면 다시 올라가자.” 나는 그들이 지나갔을 정도의 시간을 계산한 다음에 다시 계단으로 올라왔다. 나는 세 남자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개찰구를 통과한 세 남자는 잠시 매표소에 멈추었다. 역무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른 역무원과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발길을 옮겼다. 그들의 목적지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역시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보관함. 내가 머리통을 넣어 둔 바로 그곳.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11:52] 초조함은 극에 달해 가고 있었다. Part 2. D-2 Data 08. Mission failed(미션 실패) 4. 배 주임은 보관함 가운데에 있는 소형모니터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가져온 키를 숫자판 옆에 있는 열쇠 구멍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숫자판 커버가 열리며 옆에 버튼은 누르고는 다시 숫자판을 닫았다. “몇 번 보관함인줄 아시나요?” 배주임의 질문에 김 형사는 오 반장을 바라보았다. 오 반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디인지 확실하지가 않아서….” 김 형사의 말에 배 주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제 될 게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보관함이 1, 3, 7, 8, 9번 그리고 11번이니 앞 번호부터 차례로 확인하시죠.” 배주임은 이렇게 말하고는 숫자판을 조작했다. 왼편 젤 위쪽에 있는 보관함이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 김 형사는 빠르게 보관함으로 다가가 안을 확인했다. 안에는 쇼핑백이 들어 있었다. 일단 부피만 봐도 찾는 물건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슬쩍 들어보았지만 무게가 가벼웠다. 옷가지가 들어 있었다. “아니네요.” “그럼 닫아 주세요.” 김 형사는 쇼핑백을 처음 모양 그대로 넣어 놓고는 문을 닫았다. 그가 다시 조작을 하자 철커덕하고 보관함이 잠겼다. “그럼 이번에는 3번입니다.” [삑삑삑] 숫자판을 조작하자 방금 전 열렸던 보관함의 두 칸 아래 보관함이 열렸다. 바닥에서 2번째 보관함이었기 때문에 김 형사는 쪼그려 앉아야 했다. 김 형사는 조금 열린 보관함 문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 열었다. [끼익!] 위의 보관함과는 다르게 조금 찌그러진 문짝에서 철과 철이 끌리는 마찰음이 났다. 김 형사는 조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조명이 제대로 미치지 않아 안은 약간 어두웠다. 김 형사는 문을 활짝 열었다. [흐읍!] 그것과 동시에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질적인 공기가 그의 코로 밀려 들어왔다. 서울 어느 곳에서 맡을 수 있는 건조한 듯 하면서도 탁한 공기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의 밀도 높은 공기가 코에 밀려들었다. 김 형사는 눈앞에 있는 천으로 만든 검은 장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심상치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에 밀려들어 신경을 자극한 냄새가 피 냄새라는 것을 뇌에서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뒤에 서 있는 오 반장을 한번 돌아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았다. “찾으셨나요?” “잠…잠깐만요.” 김 형사는 일어나 오 반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뭘 어떻게 해?” “수사본부에 연락해야죠. 아마도 구 반장님이 이거 건들면 난리 칠걸요.” “그런가?” “감식반도 불러야 하고요.” “어차피 이런 곳에서 감식해봤자 나올 것도 없을 텐데. 귀찮게만 하는 거라고 안 그래도 할일 많은 사람들인데.” “안돼요.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난리 칠거에요.” “그냥 우리가 수거해서 국과연에 넘기면 안 될까?” 오 반장의 말에 김 형사는 인상을 구겼다. 반장님이야 구반장이 뭐라고 하든 말든 신경 안 쓰는 타입이지만 그 구반장이라는 인간이 자신을 잡아 족칠 것이 분명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죽어도 안돼요.” 김 형사는 머릿속에서 구 반장에게 뭐라고 해야 할 지 변명거리를 찾아야 했다. 착오로 우리 쪽으로 제보전화가 왔는데 허위제보인거 같기도 하고 그쪽이 바쁜 것 같아서 우리가 대신 확인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머리통이 나왔고 이 머리가 이번 살인사건 피해자의 없어진 머리인 것으로 생각되어서 조치를 취하게 됐다. 김 형사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봤자 구주구반장의 날뛰는 것을 봐야 할 것만 같았다. “일단 확실히 확인 해 봐.” 오반장이 말했다. “네.” 김 형사는 다시 문을 열고는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묵직한 느낌이 팔을 통해 어깨로 전해졌다. 무게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 듯 했다. 김 형사는 장바구니를 벌려 보았다. 꽁꽁 묶인 검은 비닐봉투가 보였다. 풀어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착실하게 묶어놓은 듯 했다. “쳇.” 김 형사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오른손을 그 안에 집어넣고는 손바닥을 비닐봉투에 가져갔다. 감촉을 느껴보기 위해 손에 약간의 힘을 주고는 문질러 보았다. ‘쓱쓱’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머리카락의 느낌이었다. 그다지 숯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김 형사는 조금 더 아래쪽으로 손을 옮겼다. 약간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 눈과 코의 느낌의 전해졌다. 확실했다. 김 형사는 오 반장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찾는 물건이 맞으신가요?” 어느새 다가온 역무원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 형사는 재빠르게 장바구니를 묶어 들었다. “잠깐만 보면 안 될까요?” “그건 좀 곤란합니다.” 김 형사는 단호한 어조에 역무원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연락 하죠.” “알아서 해.” 오 반장은 이미 신경 끊었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 “어떻게 할 거야?” “나도 모르겠어.” 그들은 결국 내가 넣은 물건을 발견했다. 몇 십 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가 들릴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확실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11:53] 그들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결국 그 물건을 밖으로 꺼냈다. “야. 어떻게 할 거야?” 신중이가 재촉했다. 시간이 없었다. 신중이는 나에게 결정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들이. 혹시 아까 만났던 그 여자가 경찰에 전화를 한 것일까?’ 조금 전 보관함을 양보했던 까져 보이는 여고생을 떠올렸다. 내가 연기를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학생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다. 남자가 의심스러웠다. ‘약수터에서 만난 것도 우연일까?’ 도망치다가 약수터에서 만났던 남자.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한참 지나 인적이 드문 그곳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솔직히 집을 나와서 우리를 잡으려는 경찰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집에서 한참 떨어진 그곳에서 약속이나 한 듯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 저 남자 정말 경찰인 것일까? 아니면 이 말도 안 되는 이벤트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가자.” 나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나는 달려 나갔다. 개찰구를 훌쩍 뛰어 넘었다. “잠깐만.” 신중이 녀석은 이 상황에서도 패스를 넣고는 개찰구를 빠져 나왔다. 이 녀석이 신호등 어기는 것을 거의 본적이 없었다. 이상한 곳에서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개찰구를 빠져나와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잠깐!” 나는 세 남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오반장이라는 남자는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약간은 놀란 듯한 눈을 했다. 한 손에 머리통이 들어 있는 장바구니를 들고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있던 남자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훤칠한 키에 약간은 희고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역무원으로 보이는 복장의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뭐야?” 핸드폰을 들고 있던 남자는 핸드폰 폴더를 닫으며 나에게 외쳤다. 얼굴과 목소리에 한 성질 한다는 느낌이 확 전해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모두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조성환!” 오 반장이라는 남자의 입에서 나의 이름이 나왔다. “아! 그 살인 용의자!” 머리통을 들고 있는 허연 얼굴의 남자는 그제야 나의 정체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역무원으로 보이는 남자만 사색이 된 얼굴로 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뒤쪽에 있는 덩치 큰 친구는 룸메이트인 김신중. 거봐요 역시 같이 다니잖아요. 그런데 아직 서울에 있네요. 수도권을 벗어났다고 그러던데. 아무튼 헛다리짚는 것은 뭐 있다니깐.” 얼굴이 허연 남자는 한참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눈은 계속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눈빛이었다. “김 형사. 잠깐만.” 오 반장이라는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조성환씨. 나는 당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 반장이라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당신들 정체가 뭡니까?” “이런. 오늘 낮에도 말했듯이 난 형사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내 부하인 김은식 형사이구요. 이번에는 신분증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오반장이라는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김 형사라는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자네가 좀 보여줘.” 김 형사라는 남자는 지금 상황이 어색한지 약간 주저하다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는 신분증을 펼쳐보였다. “진짜 형사인가 봐!” 신중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반장님!” 김 형사라는 남자는 오 반장이라는 남자를 부르고는 입만 벙긋벙긋했다. 무슨 말을 전달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 반장 이라는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오 반장의 말에 김 형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구욧! 저렇게 눈치가 없으니 내가 속이 터지지!” 김 형사의 말에 나의 심장박동수가 조금 더 올라갔다. “어떻게 하려는 거야? 여기서 잡히면 끝인 거 몰라?” 신중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나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조성환씨. 왜 여기에 이 머리를 넣어 놓은 거죠?” “넣어 놓아야만 합니다.” “왜 넣어 놓아야 하는 거죠?” 나는 망설였다.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내 말을 믿을 까? 아니 정말로 이 남자는 믿을 수 있는 남자일까? 정말로 경찰인 것일까?’ 저 따위 경찰증이야 이들이라면 우습게 위조 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니면 경찰을 매수 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조성환씨 당신은 지금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수배중입니다. 당신 집에서는 죽은 남씨의 혈액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남자에게서 사라진 머리를 이 곳에 넣어 둔 것도 당신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범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잡아야 하는 경찰입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당장 잡지 않고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내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고 온 거죠? 오늘 낮에 약수터에서도 우연히 마주쳤다고 하셨죠. 이번에도 우연히 찾아내신 것은 아니겠죠.” “쩝.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가? 낮에 약수터에서 만난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어요. 이번에는 음…. 일단은 제보 전화라고 해두죠.” “전 지금 엄청난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 당신이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그 경찰이라는 신분증 따위 위조하면 그만이고 솔직히 당신이 진짜 경찰이라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는 당신이 이번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은 아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지우. 오늘 아침 7시 25분. 집에서 회사로 출근. 7시 40분. 회사에 몸이 아프다고 월차를 신청. 그 후 현재 행방이 묘연. 현재 경찰은 그의 행방을 추적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남자의 입에서 지우라는 이름이 나오자 내 심장 박동수는 터질 듯이 높아졌다. “납치되었다고 하셨죠?”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우씨를 납치하고 당신에게 그 남자를 죽이라고 시킨 건가요?”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말의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솔직히 경찰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남자는 아무리 봐도 경찰 같지 않았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더욱 의심이 갔다. 혹시 이렇게 해서 나를 범인으로 몰려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나를 도우려는 것일까?’ 하지만 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지만 왠지 진실을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맞나요? 내 말이.” “지우가 납치되어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 제가 죽인 것은 아닙니다.” “그럼?”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을 해도 될지 안 될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낮에 인터넷에서 본 남자의 기사가 떠올랐다. 박동주!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죽은 남자. “그들이 머리를 이 곳에 넣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머리를?” 오 반장이라는 남자는 이렇게 반문하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거봐요. 제가 말도 안 된다고 그랬잖아요. 살인을 저지르고 다른 사람이 시켜서 했다고 변명 하는 녀석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신이 시켰다는 사람도 있고, 인형이 시켰다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에요. 이런 식으로 본다면 제 정신에 살인을 저지르는 녀석이 얼마나 되겠어요. 만약 누가 시켰다고 해도 조사하면 될테니 일단 체포하죠.” 김 형사라는 남자가 말하며 한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야 시간 없어. 1분 남았어.” 신중이가 허리를 숙여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제기랄!” 나는 윽박질렀다. “절대 잡힐 수는 없단 말야.” 시간이 없었다. 이제 1분 후면 톱날은 회전하기 시작한다. 차갑게 유지하려던 머릿속이 들끓기 시작했다. 머리통을 저 곳에 넣어놓는 것이 그들이 말한 미션이 맞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일단 저것을 저곳에 쳐 넣어 놓기라도 해야 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시간 없어.” 신중이가 나에게 바싹 붙어서 물었다. “그거 돌려주십시오.” 나는 바닥에 내려놓은 머리통이 든 검은 장바구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 돼.” 김 형사라는 남자가 소리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김 형사 물러나.” 오 반장이란 남자가 명령어조로 말했지만 김 형사라는 남자는 듣지 않았다. “반장님이 뭐라고 해도 안 됩니다.” “일단 그거 주십시오.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저기에 집어넣어 놓기만 하면…….” “안 돼!” 김 형사라는 남자가 내 말을 가로 막았다. [12시] 누군가의 핸드폰에서 자정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뒤쪽에서 어느덧 완벽한 구경꾼이 되어버린 역무원의 핸드폰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그거 내 놓으십시오.” 나는 아주 강한 어조로 이 말을 내뱉었다. 더 이상 말로 하지 않겠다는 뜻을 최대한 내뿜었다. 두 명의 남자 역시 내 뜻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경찰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냐!” 김 형사 역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우리의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 우리는 형사야. 그리고 자네는 살인사건의 강력한 용의자이구. 그리고 이곳에 아주 중요한 증거도 있고 말이야. 아무리 뭐라 해도 소용없어. 자네가 범인이 아니라면 조사를 하면 밝혀질 거야.” 김 형사라는 남자가 약간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어조였다. “박 동주라는 남자를 아시나요?” 내가 물었다. 두 남자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서로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3개월 전에 살인 사건 혐의로 경찰에 잡혔다가 탈주 중에 경찰이 쏜 총에 죽은 남자입니다.” “알고 있어요.” 오 반장이라는 남자가 말했다. “아무리 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찾아도 없어서 묻는 겁니다. 그 남자의 딸아이는 어떻게 되었죠?” “그게….” 나는 제발 그 아이가 다시 돌아왔기를 바랐다. “아직까지 행방불명이에요. 경찰에서는 실종 수사를 하고 있는 중이구요.” 나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다. 행방불명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죽었다. 박동주라는 남자는 미션을 실패했고 그 때문에 그 아이는 죽은 것이었다. “뭘 기다려요 반장님! 이미 1반에 연락을 했고 조금 있으면 개떼처럼 몰려올거에요. 우리도 간만에 일 좀 하자고요. 그리고 구 반장에게 잡히는 것보다 우리가 잡는 게 더 좋을 거예요. 저 녀석들에게도.”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남자 옆에 내려져 있는 머리통을 다시 보관함에 쳐 넣어야 했다. 나는 김 형사라는 남자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김 형사라는 남자가 먼저 나에게 달려들었다. “비켜!” 뒤에 서 있던 신중이가 나를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퍽!] 눈 깜짝 할 사이에 두 남자는 순식간에 맞붙었다. 김 형사라는 남자 역시 꽤 키가 컸으나 신중이 녀석에 비해 한참 작았고 덩치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금껏 신중이 녀석이 싸우는 것을 많이 봤었다. 녀석이 유일하게 우러러 보이는 순간은 싸우는 순간뿐이었다. 싸우는 순간만큼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녀석이었다. 신중이 녀석이 먼저 팔을 뻗었다. 김 형사라는 남자는 그 팔을 슬쩍 피하는 듯 하더니 미끄러지듯 신중이 녀석에게 파고들었다. “앗!” 나의 입에서 터져나온 비명 소리였다. 녀석의 육중한 몸이 아주 가볍게 공중으로 들리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으워~” 녀석이 곰의 포효 같은 괴성을 지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신중이 녀석은 김 형사라는 남자의 업어치기에 당하지 않으려고 허공에 들린 상태에서 억지로 그를 찍어 눌렀다. [콰당!] 두 남자가 바닥에 크게 나뒹굴었다. 여기서 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나는 많은 구경꾼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주위는 일순간 조용해졌다. 어색한 침묵이 몇 초간 계속 되었다. 먼저 일어난 것은 신중이 녀석이었다. “괜찮냐?” 녀석의 물음에 대꾸도 하지 않고 깔아 뭉기고 있는 김 형사라는 남자에게서 떨어지며 그 옆에 있는 그 물건을 집어 들어 나에게 건넸다. “뭐해! 빨리 넣어.” 녀석은 그것을 나에게 건넸다. “그래!” 나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녀석의 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바닥에 나뒹굴면서 다친 모양이었다. 나는 머리통을 들고 보관함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집어넣고는 문을 닫았다. 핸드폰 시간을 확인했다. [12:03] “제기랄!” 어느새 시간은 3분이나 지나 있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김 형사 괜찮아?” 오반장이라는 남자는 쓰러져 있는 김 형사라는 남자를 일으켰다. 업어치기 하려던 힘과 신중이 녀석의 무게까지 더해져 바닥에 나뒹굴었으니 그 충격이 꽤 컸던 모양이었다. 주변의 웅성거림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쓰러져 있는 김 형사라는 사람의 얼굴과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오반장이란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신중이 녀석에게 좀처럼 볼 수 없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오려는 찰나 그것이 울려 댔다. [삐리리~]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의 울림은 이 시끄럽고 번잡한 공간에서도 내 귀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일단 가자!” 나는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핸드폰은 울려 대고 있었다. “그래!” 나와 신중이는 지하철역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신중이 녀석이 다가가자 모새가 가른 바다처럼 양쪽으로 쫙 비켜섰다. 우리는 그 사이를 통과해 계단을 향해 뛰어갔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면서 핸드폰 폴더를 열려는 찰나 뒤에서 남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우리의 뒤통수를 찔렀다. “멈춰!” 김 형사라는 남자의 입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였다. 독기를 가득 품고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멈춰서 뒤를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은 미친 듯이 울려 대고 있었다. 나는 뒤로 돌아서면서 핸드폰을 폴더를 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움직이면 쏜다!” 김 형사라는 남자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전에 TV에서 보니까 두발은 공포탄이 들어 있다고 그러던데. 하긴 공포탄 맞아도 죽는다는 소리도 있긴 하지만.” 신중이 녀석이 중얼거렸다. 덩치 큰 사람이 말이 적을 것 같다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이 신중이라는 녀석은 이 상황에서도 구시렁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이 녀석은 덩치 때문에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다. 총이란 것을 구경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저 형사가 총에 든 것이 공포탄이라면 이 거리에서 쏜다면 작은 상처하나 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저게 실탄이라 해도 저렇게 떨리는 손으로 쏜다면 정확하게 맞는 게 기적일 것이다. 김 형사라는 남자는 아까 넘어진 충격 때문인지 권총을 조준하고 있는 손이 매우 떨리고 있었다. “김 형사! 그만 해!” 오 반장이라는 남자가 외쳤다. [타앙!]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공포탄이었다. 실탄이 발사될 때 보다 소리가 작았지만 이곳은 실내였고 지하였기 때문에 그 소리는 충분히 크고 힘이 있었다. [까아악!] 동시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더욱 긴장을 고조 시켰다. [스윽!] 신중이 녀석이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내 앞에 섰다. “됐어! 비켜!” 나는 신중이 녀석을 옆으로 밀어내고 외쳤다. “쏠 테면 쏘십시오. 전 그래도 갑니다.” 주위는 잠시 적막해졌다. “김 형사 총 내려 놔!” 오 반장은 어느새 김 형사 옆에 다가와 있었다. 오 반장은 김 형사에게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쳇!” 나를 향하고 있던 총구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갔다. “가자!” 나는 이렇게 외치고는 신중이와 함께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나는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고객님! 매우 바쁘시군요.” 여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 왔다. 나와 신중이는 거침없이 역을 빠져 나왔다. 우리는 인파들 사이에 묻혔다. 밤거리는 여전히 밝았다. 그들의 대화 2. 2011년 중국 복제인간 부대 창설 2016년 가상현실 프로그램 세계적인 히트 2022년 에이즈 바이러스 백신 개발 2028년 아프리카 물 전쟁 발발 2030년 세계 인구 100억 돌파 2031년 황금 유전가 곡식 개발로 기아 퇴치 2033년 중국 극동아시아 무력 정복 2035년 슈퍼 독감으로 전 인류 15% 사망 2037년 미국과 중국 핵전쟁 발발, 북해도20%, 제주도 50%, 하와이, 대만 25% 소멸. 2040년 양국 정전 합의 후 무한 군비 확충 2041년 중국 실질적인 최강국 선언 2043년 중국 및 속국 기독교 탄압 2047년 남극 빙하 큰 균열 탐지 후 2048년 인도 및 동남아시아에 진도 10의 거대한 지진으로 지각 크게 변동 AN-7 : 너의 예언 여기서 끝인가? AN-3 AN-3 : 그렇다. AN-7 : 왜 그렇지? AN-3 : 그 뒤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 뒤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내 수명이 그때까지 뿐 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AN-7 : 그렇군. 그 뒤에 너 이외의 우리의 모습은 보이는가? AN-3 : 아니. AN-7 : 그렇다면 네가 아니라 우리의 수명이 그 때까지인 것이라 볼 수 있겠군. AN-3 : 아마도. AN-5 : AN-3의 예언은 정확하다. 이 예언에 수정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다. AN-7 :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인간 자체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의 거대한 흐름 즉 그 인간의 문화라는 DNA에 수정을 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AN-5 : 하지만 인간의 문화적 DNA는 이미 생물학적 진화를 훨씬 뛰어넘었다. 결국 인간은 인간자체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 자체를 조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것을 하고 있지 않은가? AN-7 :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AN-3 예언대로라면 우리 역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지구의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아무리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시스템에 수정을 가하더라고 그것은 찰나에 불과하다. AN-5 : 결국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에는 그 어떤 수정도 가할 수 없다는 뜻인가? AN-7 : 그렇다. 결국 AN-3의 예언이 끝난 후 인간은 과연 어떤 미래를 가게 될지 모르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 끝이 보인다. 인간이라는 종이 가게 될 최후가…. AN-5 : 그것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실험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AN-7 : 그렇다. 과연 인간은 이 별의 의지에 의해 탄생된 생명체인지 아니면 이 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난 돌연변이인지 판별할 수 있는 것은 인간 그 자체뿐이다. AN-5 : 무엇이 그것을 판별 할 수 있는가? AN-7 : 인간의 DNA 깊숙이 새겨져 있는 그 것. AN-5 : DNA? 인간의 DNA는 같은 영장류와 99%일치한다. 1%의 차이에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인가? AN-7 : 그렇다. 모든 인간의 DNA에 새겨져 있는 그 작은 염기의 조합이 인간을 다른 종과 다르게 만드는 근 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에 대한 무한한 이기심. 인간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칭하고 있다. AN-5 : 사랑? 그 염기의 조합이 과연 무엇인지 밝혀낸 것으로 그들의 미래를 결정짓게 되는가? 이 별이 만들어낸 생명체인지 아니면 제거해야 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암세포인지를? AN-7 : 그렇다. - 다른 이야기http://pann.nate.com/b315723228http://pann.nate.com/b315737692http://pann.nate.com/b315738286http://pann.nate.com/b315775792http://pann.nate.com/b315775938http://pann.nate.com/b315783901http://pann.nate.com/b315806213http://pann.nate.com/b315825660http://pann.nate.com/b315839806http://pann.nate.com/b315840325http://pann.nate.com/b315849447 2
[서바이벌게임]PART 2.(DATA8)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berser13 님 >
Data 08. Mission failed(미션 실패) 1.
[2010년 7월 23일 19:45 강남역]
강남역.
어느 때와 다름없이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부터 시작되는 밤을 즐기기 위해 발길이
바쁜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 몇몇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사람들 사이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진영 역시 잡지 가판대 옆에서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미장원에서 자른 앞머리가 영 신경 쓰여 연신 가판대의 유리에 자신의 머리를 비춰 보고
있었다.
눈썹에 맞추어 일자로 자른 머리가 웃겨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머리를 자른 미용사는 연신 귀엽다고 칭찬을 해주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 더욱 웃겨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자른 머리 다시 가져다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두 번 다시 그 미용실에 가지 않으리라
다짐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그녀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자기야.”
남자의 목소리의 진영은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았지만 기다리던 호근이는 아니었다.
키도 훤칠하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목이 패인 브이넥 티로 근육이 보였다.
호근이보다 훨씬 킹카였다.
그런데 자신의 옆에 서 있던 그저 그렇게 생긴 여자를 부둥켜안더니 금세 사라져 버렸다.
“헐. 주제에 어떻게 저런 킹카를 건졌지. 돈이 많나?”
진영은 사라진 커플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호근을 기다렸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핸드폰 배터리는 조금 전에 통화를 하다가 나가버렸다.
약속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도 호근이 녀석은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핸드폰에 대고 막 짜증을 내고 있는데 배터리가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하필 한참 짜증내다가 기다리는 장소를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에 끊어지고 말았다.
‘제대로 들었겠지’라고 애써 위안했지만 왠지 불안했다.
머피의 법칙인지 뭔지 뭔가 안 풀리는 날은 연속적으로 안 풀리는 경험을 여러 번 해본 그녀였다.
엊그제도 마찬가지로 호근이와 대판 싸우고 기분이나 풀 겸 머리를 자르려고 명동에 갔다가 지금껏
포인트 많이 적립해두었던 단골 미용실이 망한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짜증이 나 친구가 소개 해준 미용실에 갔다가 머리까지 이렇게 깎기고 알고 보니 바가지까지
썼다는 사실을 알고 폭발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왔었다.
오늘은 제발 그러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역시 다시 전화를 해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주변에 공중전화는 없었다.
대신 아까부터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리며 남자 두 명만 눈에 띄었다.
한 명은 저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알아볼 만큼 덩치가 컸다.
등 뒤에는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한 손에는 둥그런 공이 든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농구 선수 같아 보였다.
그 옆에 있는 남자는 그냥 평범했다.
아주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키. 몇 번 봤어도 못 알아 볼 그런 타입 아 보였다.
농구 선수 옆에 서 있는 걸로 보아 농구 선수 일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운동을 잘 할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진영은 잠시 놀랐다. 정확히 그 평범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시선을 피한 후 다시 그들 쪽을 힐끗 보았다.
두 남자는 연신 자신을 보며 수군거렸다.
‘역시 남자들이란.’
진영은 머리칼을 한번 뒤로 쓰다듬고는 문득 뭐가 생각났는지 그들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다가오자 두 남자는 서로 뭐라고 이야기하다가 말을 멈추었다.
“저기요.”
진영은 최대한 귀엽고 앙증맞은 목소리를 냈다. 두 남자는 그녀가 자신들에게 말을 걸자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긴 지들이 어디서 나처럼 예쁜 여자랑 이야기 해 봤겠어.’라고 생각하고는 진영은 말을 이었다.
“저기요. 제가 급하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제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요. 죄송한데 핸드폰
잠시 빌릴 수 있을까요?”
진영은 이렇게 말하고는 평범하지만 만만해 보이는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아 네.”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역시 자신의 미모는 언제나 통한다고 생각하고는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핸드폰의 5번을 꾹 눌렀다.
[미련 곰탱이]
액정 창에 ‘미련 곰탱이’라는 글자가 떴다.
그녀는 잠시 당황했다.
이유 중 하나는 이 핸드폰이 잠시 자신의 핸드폰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 자신의 미련함
때문이었다.
‘이런.’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녀가 자신의 남자친구의 핸드폰 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단축 번호는 5번이 확실한데.
그리고 011이고 번호에 8이 2개 있다는 사실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진영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핸드폰 구경 잘 했다고 돌려주면 저 곰처럼 큰 남자가 자신을 커다란 손으로 후려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는 아무 번호에 대고 통화 하고는 대충 얼버무리고는 끊어버릴까라고 생각했다.
“진영아.”
이 때 등위에서 구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호근이가 양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는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호근이와 만난 3개월 동안 가장 호근이가 가장 반가운 순간이었다.
“뭐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여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그 돌려주었다.
“잘 썼어요.”
남자는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덩치 큰 남자와 발길을 옮겼다.
‘이상하다. 저 남자 꼭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평범해서 그런가? 하긴 저렇게 생긴
얼굴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진영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호근의 팔짱을 끼었다.
“가자. 그리고 내가 입에 닳도록 말했지. 김호근. 너 나 만나면 귀에서 이어폰 빼라고.”
호근이 음악소리에 자신의 말을 못 들은 듯 빙긋 빙긋 웃고 있자 진영은 친히 자신의 손으로
이어폰을 빼면서 한마디 더 보탰다.
“너 또 다시 내가 이야기 할 때 이어폰 귀에 끼고 있으면 아주 강력 본드로 이어폰이랑 귀랑 붙여
버린다.”
“이 노래만 마저 듣고.”
“너 죽을래?”
두 커플은 티격태격 하며 인파들 사이에 묻혔다.
***
“야 핸드폰을 빌려 주면 어떻게”
신중이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 나도 모르게. 그만. 나 거절 같은 거 잘 못 하잖아.”
“그나저나 어디에 전화 한거야?”
나는 신중이의 말에 핸드폰 통화 내역을 살폈다.
[미련 곰탱이]
“너한테 하려고 했는데….”
나와 신중이는 동시에 멀리 사라져 간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혹시 이벤트와 관련 있는 사람 아냐? 너를 관찰하고 있는 중이라든지.”
“모르겠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워보였다.
다정하게 걸어가는 연인들도. 어딘가 바쁘게 가는 아줌마도.
양복을 입고 뭔가를 기다리는 남자 모두 의심스러워 보였다.
“못 알아봤겠지?”
“뭘?”
나의 질문에 신중이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언제나 이 녀석이 한번에 내 말을 이해 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뭐긴 뭐야. 나 말야.”
“아는 사람이야?”
“그게 아니라. 내 얼굴이 TV에 나왔잖아. 살인 용의자로.”
“아하. 그거.”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치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해서 자제했다.
“네 얼굴을 어떻게 알아보냐. 그렇게 모자까지 쓰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아니. 네가 워낙 평범해야 말이지. 솔직히 나는 아직도 가끔씩 네 얼굴이 헷갈려. 그리고 길을
가다가 넌 줄 알고 뒤통수 쳤다가 모르는 사람한테 맞을 뻔 아니 맞을 뻔 한거는 아니고 내가
무서워서 도망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그게 말이 되냐?”
녀석은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 저 편에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켰다.
“여. 저 사람을 봐. 저 남자도 너랑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녀석이 가리킨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디 어디? 진짜.”
나는 고개를 잠시 끄덕였다.
“아 그리고 너를 알아봤다면 112에 신고했겠지.”
나는 다시 1초쯤 고개를 끄덕이다가 정신을 차렸다.
자꾸 이 녀석의 말에 동의 하는 게 조금 짜증났다.
“그건 그렇고 경찰이 쫙 깔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네.”
“이 시각에 이런 사람이 많은 곳을 활개를 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겠지. 게다가 경찰은
우리가 지방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갔다.
이 이벤트를 준비한 그들이 그랬을 것이다.
경찰에 포위된 집에서 탈출 시킬 때도 그들은 총까지 사용해 우리가 도망치게 도왔다.
아마도 그들이 우리가 지방으로 도망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유는 한가지였다.
그들은 이벤트가 그냥 끝나길 바라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불안하긴 하다.”
나 역시 불안했다.
“그럼 이제 작전대로 하자.”
“작전?”
녀석이 또 엉뚱한 소리를 하려는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내 손이 하늘로 올라갔다.
“알아. 알아. 장난 쳐 본거야.”
“정말 기억 하는 거야?”
“당연하지. 이제부터 우리는 떨어져서 행동한다. 너는 이 머리통을 저기 저 보관함에 넣는다.
너와 나는 따로 떨어져서 보관함을 관찰한다. 누군가 나타나면 잡는다. 됐지?”
“그래.”
PC방에서 문득 떠오른 것이 이 머리통의 쓰임새였다.
그 여자는 전화를 끊기 전에 첫 번째 미션이 무엇인지 재차 확인 시켰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 물품 보관소 3번 출구에 사람의 머리통을 가져다 놓으라는
미션을 말이다. 나는 흥분 상태였다.
나는 지금껏 당연히 사람 한명을 죽여서 그 사람의 머리를 가져다 놓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자가 내린 미션 지령은 자정까지 사람 머리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의 물품
보관소 3번에 넣으라는 것이다.
다른 부연 설명은 없었다.
내가 죽인 사람이라든지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나에게 준 머리를 넣어 두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불안했다.
일단 이 머리통을 가져다 놓는 것이 그들의 요구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서 수많은 실수를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실수를 할 수 없었다.
실수에 따른 희생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07:55]
첫 번째 미션 종료 시간까지 4시간 정도 남았지만 나는 지금 머리통을 그곳에 넣어 놓기로 결정했다.
이 머리통을 가져다 놓고 기다리면 전화가 올 것이다.
확인 하러 올지도 몰랐다.
만약 확인을 하러 온다면 그 사람을 잡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라면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동안 그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들의 손바닥에 안일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가진 물건에 추적 장치 내지는 도청장치를 하고 있는 가능성도 컸다.
아니면 지금도 계속 나를 미행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모든 것을 생각했을 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작전이라고 하기에 너무 단순한거 아니야. 머리통 넣고 기다린다.”
“잔말 말고 그거나 내놔.”
나는 녀석에 손에 들리는 장바구니를 건네받았다.
묵직했다.
계속 이것을 들고도 별 다른 투정조차 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왠지 찡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물건을 받아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무지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 걸음 한걸음이 걷는데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팔고 들고 있는 이 장바구니의 무게는 나의 팔을 어깨 관절에서 통째로 뜯어 내버리는 듯 했다.
사람의 머리 무게가 4~5키로 정도 나간다고 어떤 책에서 본 듯싶다.
아마 무협지였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본 책의 반 이상은 무협지나 판타지이니깐 말이다.
4~5키로 정도를 든 것으로 팔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분명한 착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어깨는 지금 굉장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중이와 헤어진 나는 개찰구를 빠져 나갔다.
개찰구에서 물건 보관함까지는 고작 20여 미터였다.
그리고 보관함에서 출구로 향하는 계단까지는 고작 30여 미터였다.
신중이는 개찰구 안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등 뒤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벽에 기대고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 어서 가라고 손짓까지 하고 있었다.
무딘 녀석은 무딘 녀석이었다.
나는 보관함으로 가던 발길을 멈추었다. 어떤 여자가 보관함에 다가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툭!
내가 갑자기 멈추었기 때문에 뒤에서 오던 여자와 부딪혔다.
커플인 모양이었다.
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둘이서 팔짱을 꼭 끼고 있었다.
여자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나에게 지어보였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꾸벅하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여자는 입 모양으로 ‘재수 없어’라고 말하고는 남자의 팔짱을 끌고는 황급히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겼다.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남들이 보기에 얼마나 어색한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보관함 앞으로 다가갔다.
‘첫 번째 미션입니다. 한 사람의 머리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의 물품 보관소 3번에 넣어
두시면 됩니다.’
여자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계속 울려 댔다.
이 머리를 가져다 놓는 것이 맞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다시 핸드폰 벨이 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은 이것을 저 곳에 넣어 놓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저곳. 보관함 3번에 말이다.
저 여자 쇼핑백을 넣어 놓는 저곳에 말이다.
머릿속에서 번개가 친 듯 했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빠른 걸음으로 보관함으로 달려갔다.
여자는 막 보관함에 물건을 넣고는 보관함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비밀번호 입력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나는 여자를 불렀다. 막 비밀번호를 다 입력했는지 여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저요?”
“네? 그쪽이요.”
나는 그제야 여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귀걸이에 짧은 미니스커트, 그리고 속이 보일 듯한 민소매 티 까지.
대충 보면 날라리 여대생이었고 자세히 보면 까진 여고생으로 보였다.
“무슨 일이예요?”
까져 보이는 여고생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귀찮다는 듯 말투로 물었다.
“아. 그게 아니라. 저기.”
“저 바쁘거든요.”
내가 자신을 헌팅이라도 하려는 줄 안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별로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려는 여자의의 어깨를 나도 모르게 붙잡았다.
“아 왜 그래요? 관심 없다니깐!”
갑자기 사람을 치한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였다.
주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긋힐긋 쳐다보았기 때문에 나는 황급히 일을 무마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아 그게 아니라요. 저기. 보관함 때문에요. 저기 3번 보관함 제가 쓰고 싶어서요?”
까져 보이는 여고생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지어보였다.
당연했다.
빈 보관함은 여러 개였고 굳이 3번 보관함을 써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는 머리를 굴려야 했다.
어색한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가 이 까져 보이는 여고생한테 추파를 던지고 있는
한심한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금 섹시하긴 했다.
어디 요즘 여고생이 여고생인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그게 아니라요. 제가 이번에 여자 친구와 300일이거든요. 그래서 이 3번 보관함에다가 장미
100송이를 집어넣는 이벤트를 하려고 해서요.”
말을 해 놓고도 속으로 어이없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300일이라고 3번에다가 장미 100송이를 집어넣어 놓다니 너무나도 유치한 발상이라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저 보관함에 장미 꽃 100송이를 집어넣을 수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장미를 갈아서 집어넣으면 집어넣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냥 바꿔주면 만원 주께 제발 바꿔줘’라고 할 걸 그랬나 싶었다.
“그러세요?”
갑자기 까져 보이는 여고생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럼 바꿔 드려야죠.”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자 친구 분은 좋겠어요. 그런 멋진 이벤트도 받으시고.”
무엇이 멋지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연신 “네. 네.”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장미는 없으시네요? 그 장바구니에 든 둥그런 것이 장미는 아닐테구요.”
“아. 네? 일단 보관함부터 맡아두려구요. 내일이 300일인데 장미는 지금 사면 시드니까 내일
넣어놓으려고요.”
여자는 약간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 이것은 종이학이에요. 둥그런 통에 담아 놓았지요.”
그제야 여자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보관함에서 쇼핑백을 꺼냈다.
여자는 쇼핑백을 꺼내고는 한참동안이나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 다른 사물함 비용은 제가 드릴게요.”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건넸다.
“천오백 원인데요.”
“아. 네.”
동전이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보관함을 위해서 동전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
“저기요. 여기 천원 더 드릴게요.”
“아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거 한번도 사용 안 해보셨죠?”
갑자기 착해진 여학생을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거는 거기다가 넣으세요.”
여학생의 말에 나는 손에 들고 있는 그것이라고 불린 물건을 사물함에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종이학으로 바뀐 물건을 말이다.
“그리고 이쪽에서 오셔서 이렇게 하시면 되요.”
여학생은 친절하게 보관함 사용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나는 결국 그 여학생에 꾸벅 인사까지 하고 헤어져야 했다.
결국 나는 그것을 그 여자가 말한 대로 강남역 2번 출구 3번 사물함에 집어넣었다.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한 것이다.
[서바이벌게임]Part 2. D-2 Data 08. Mission failed(미션 실패) 2.
[같은 날 19:11 서울 경찰청 S공원 노숙자 살인 사건 합동 수사본부]
구 반장은 극도로 흥분 상태였다. 아주 좋은 기회였다.
확실히 용의자만 검거했다면 말이다.
지난번 연쇄 살인 사건 용의자 검거로 그의 주가는 한층 뛴 상태였다.
게다가 연달아 터진 흉악한 살인 사건을 멋지게 해결 한다면 그는 단번에 서울 경찰청의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단상에 거의 올라가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그 단상이라는 게 아직 확고히 자리를 잡은 게 아니기 때문에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만 잘 해결 되었다면 그는 경찰청 뿐 아니라 매스컴에까지 확실히 그의 이미지를
각인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그와 친한 녀석이 피디로 있는 케이블 방송국까지 부른 게 아닌가?
그런데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완전히 그물에 갇힌 생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선이 그물을 뚫고 나가버렸다.
생방송 중이었는데 말이다.
멋지게 범인을 검거하고 인터뷰할 내용까지 준비해 두었건만 다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총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던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정말로 신출귀몰했다.
총소리와 함께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사라졌다.
녀석에게 당한 의경들은 녀석들의 얼굴조차 못 봤다고 진술했다.
대담하게 큰 길로 빠져 나가 차를 훔쳐 도망쳤다.
자신을 완전히 깔 본 것이다.
“제기랄!”
구 반장은 책상을 거세게 내리쳤다.
이미 그 위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워낙 다혈질인지라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책상위에 있는 물건을 벽에 내다 던지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보는 어떻게 되가?”
“그게 그다지 믿을만한 제보가 없습니다. 인천 경찰서에 잡았다는 용의자는 조성환이 아니라고
알려 왔습니다.”
용의자 아니 범인은 이미 포위망을 뚫고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훔쳐 달아난 차는 수원에서 발견되었다.
그게 오후 3시 무렵이었으니 이미 경기도를 빠져 나가 완전히 숨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는 수 없이 수사 범위를 전국으로 늘려야 했다.
범인인 조성환의 집에서 발견된 혈흔 죽은 피해자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주 간단하게 그것도 과학적으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게 날아간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제기랄!”
구 반장은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치려다가 그만두었다.
용의자의 룸메이트로 알려진 김신중이라는 녀석도 같이 사라졌다.
둘이 같이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 되었다.
하지만 공범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목격자의 증언과 공원 근처 CCTV 화면에 목격된 것으로 보면 범인은 한 명이었다.
하지만 두 녀석이 같이 사라졌다.
같이 사라진 녀석도 경찰 수배 명단에 넣어놓기는 했지만 공개수배를 할 수는 없었다.
확실한 혐의가 없는 사람을 매스컴에 공개수배를 할 수는 없었고 만약에 둘이 같이 다니지
않는다면 시민들을 더욱 혼란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범인인 조성환은 매우 주도면밀한 녀석이었다.
조성환과 같이 사라진 김신중의 핸드폰 모두 집에서 발견되었다.
만약 이들이 신용카드나 교통카드를 쓰게 된다면 곧바로 위치가 노출 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범행 동기는 무엇일까?’
구 반장은 잠시 이 생각을 해보았다.
뚜렷한 동기가 없었다.
뭐 그래도 별 상관없었다.
요즘 동기 없이 범행을 저지르는 무모한 녀석들 천지였다.
태연하게 돈 때문에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 보험금을 타내려고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을 살인 청부
하는 세상이었다.
그래도 그런 것은 이유나 있었다.
그냥 심심해서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녀석들도 널려 있었다.
이번도 그랬을 것이다.
아마도 길 가다가 노숙자와 부딪혔을 것이다.
아마도 옷이 더러워졌을지도 모른다.
노숙자의 침이 묻었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앙심을 품고 죽였을 것이다.
잔인하게 말이다.
다른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큰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런 무법자 놈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지만 경찰 수는 매년 제자리였다.
그래서 자신이 더욱 활약해야 했다.
범인인 조성환의 통화 내역을 조사했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대부분 여자친구라고 알려진 이지우라는 여자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제일 마지막 통화가 문제였다.
경찰이 조성환 집을 급습하기 직전에 걸려온 통화.
추적이 되질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하는 늘어난 ‘쉐도우폰(그림자폰)’이었다.
해킹으로 이동 통신사의 중계기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방식의 통화 방식이었다.
추적을 할 수 없었다. 이 전화가 범죄에 많이 이용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요금을 내지 않기 위해
무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쉐도우폰으로 걸려온 통화. 어떤 통화였을까?
게다가 이지우라는 여자도 현재 행방불명이었다.
이지우라는 여자는 일류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에 다니는 여자였다.
집에서는 아침에 회사를 간다고 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에는 월차를 내고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라진 것이다.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버렸는지 위치 추적은 되지 않았다.
여자란 동물은 그랬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똑똑해도 남자에게 미치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물이었다.
아마도 살인자가 된 남자 친구를 따라 가고 다니고 있든지 아니면 남자 친구를 도피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그 미친 살인마가 그 여자마저 죽여 버렸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우의 부모가 가출 신고를 했지만 받아지지 않았다.
아직 24시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5살이나 먹은 다 큰 여자가 반나절 없어졌다고 가출 신고를 한다면 전 국민의 4분의 1은 가출
신고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지우라는 여자에 대한 바뀐 정보는 없어?”
“네. 반장님 여전히 추적이 안 됩니다.”
“그렇군. 여자란 쯧쯧.”
구 반장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구 반장의 눈에 김 형사가 띄었다.
구석에서 서경사한테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김 형사!”
구 반장의 눈에 걸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숨어서 대화를 하던 김 형사는 구 반장이 자신을
부르자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가 이내 얼굴을 펴고는 달려갔다.
“여기 왜 왔어?”
“아. 그냥. 오 반장님이 뭐 좀 알아보라고 해서요.”
“그래?”
“뭘?”
“그냥 이것저것이요.”
“오 반장이 왜 이런 사건에 관심을 갖지?”
구 반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건 뻔한 사건이라고 범인도 이미 밝혀졌고 잡기만 하면 되는 사건인데…. 게다가 실종 사건도
아니고.”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김 형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구 반장님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는데요?”
“뭐?”
“구 반장님과 오 반장님 두 분 동기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왜 ”
“오 반장님이 실종이나 가출 사건에 집착 하시는 건가요?”
“음. 자네가 오 반장과 같이 일한지 1년 밖에 안 되었으니…. 자네는 오 반장이 아직까지 결혼
하지 않은 줄 알고 있겠지?”
“네?”
김 형사가 입을 떡 벌렸다.
“아니에요?”
“그래. 나는 거기까지만 말 할 거야. 별로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알아보고 싶으면 자네가 알아봐.”
“네.”
김 형사는 뒤돌아 천천히 걸어갔다.
구 반장은 잠시 김 형사를 쳐다보다가 다시 실내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뭣들 하는 거야? 제보 전화 빨리 빨리 안 받아?”
[같은 시각 경찰청 강력 5반]
오 반장은 자료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2009년. 3월 7일.
서울 은평구에서 있었던 사건이었다.
한 주부가 자신의 남편을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에게서 쉽게 잊혀졌다.
아니 아예 한 줄의 신문 기사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은 달랐다.
오 반장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112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대상은 여자였다.
바로 위치 추적이 들어갔다.
여자는 한참 주저하다가 아들이 납치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다시 아니라고 번복하는 행동을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의심에 찬 경찰은 출동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남편을 죽인 후 넋이 나간 그녀의 모습을.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완전 넋이 나간 상태였다.
심각한 주부 우울증과 남편의 외도로 인해 충동적인 살인으로 판명되었다.
사건 후 그녀는 정신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계속 적인 자살시도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지금 정신 병원에 수감 중이다.
작년인가 그녀를 면회 간 적이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궁으로 빠진 사건이 되어 버렸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역시 그녀의 딸 역시 지금까지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오 반장이 이 의문의 살인 사건들의 연관성을 찾은 것은 몇 개월 전이었다.
경찰 데이터베이스를 검사하다가 알아냈다.
하지만 살인 사건들을 조사하다가 알아낸 것은 아니었다.
실종 사건들을 조사하다가 알아낸 것이었다.
살인 사건과 이어지는 실종 사건.
물론 살인 사건은 모든 것을 부셔 버린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의 가족들은 충격에 한참동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물론 그것은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가족 중에 한명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충격은 매우 큰 것이다.
게다가 주변에 알려지게 되면 거의 살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집을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것은 뭔가 달랐다.
하지만 확실히 그 뭔가가 잡히지 않았다.
오 반장은 계속해서 전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자료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한 해 1000건이 넘는 살인 사건이 벌어진 후 계속 증가되어 2006년에는 2000건을
넘어서고 있었다.
오 반장은 그 모든 자료들을 조사했다.
A. 살인 후 피의자 절친한 주변 인물이 실종이나 가출 처리된 경우.
케이스가 너무 많았다. 오 반장은 다시 자료들을 분류 했다
B. 특별한 이유가 없는 케이스의 살인 사건
위의 경우를 추가 시켰다.
하지만 살인 사건에 특정한 이유를 찾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 무척이나 힘든 작업이었다.
사건들을 하나하나씩 자세하게 분석해야 했다.
많은 사건들이 제외되었지만 역시나 너무 광범위했다.
포기하려던 찰나에 한 가지를 더 추가 시켰다.
C. 피의자가 자살한 경우
D. 피의자가 여러 명을 살해 한 경우
다시 위의 케이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케이스가 많이 줄어들었다.
위의 A, B, C, D 네 가지의 경우를 모두 만족시키는 사건들을 찾아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모두 만족 하는 사건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별 다른 특이점을 찾아 낼 수가 없었다.
포기 하려던 찰나 한 가지 의문점을 찾아냈다.
살인범이 2명을 일정 시간의 간격을 두고 살인을 저지른 경우였다.
이상하게도 피의자가 첫 번째 살인을 한 요일이 토요일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약 12시간에서 24시간 정도의 간격에 한 명을 더 죽였다는 것이었다.
다시 이런 사건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D케이스를 제외시켰다.
한 명을 살해 한 경우도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찾아냈다.
12주.
이런 간격을 두고 이러한 케이스 사건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다시 자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A케이스를 빼고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납치 사건 데이터를 조사했다.
그리고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속에서 파 묻혀 있는 별 자리들을 찾아낸 천문학자와 같았다.
그저 흩어져 있는 것들이었지만 믿고 보면 모양을 가지고 있는 별자리였다.
오 반장은 좀 과격한 가설을 세웠다.
[12주 마다 벌어지는 납치와 살인 게임]
그리고 결국 찾아낸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모든 것이 확실해 질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반장님!”
김 형사가 호들갑을 떨며 들어 왔다.
“나 아직 숨 안 넘어가!”
“어디 갔다가 온 거야?”
“어디긴요. 반장님이 말한 거 알아보고 왔죠.”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어?”
“구 반장이 하도 살벌해서 조심하느라고요.”
“일단 용의자 조성환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이에요. 반장님이 말한 조성환의 여자친구로
알려진 이지우 역시 현재 행방이 모연해요.”
“그렇군.”
“하지만 납치 가능성은 희박해요. 아침 7시 20분에 정상적으로 집에서 출근 했어요. 그리고 7시
50분에 몸이 안 좋다고 회사에 월차 신청을 하고 사라졌어요. 납치 될 사람이 집에서 나가서 회사에
월차를 내고 사라지는 것은 이상하잖아요.”
“그녀의 월차 신청을 받은 사람은 누구야?”
“회사 대리라고 하던데요. 몸이 안 좋아서 쉬어야겠다고 그랬다고 하더군요.”
“본인 목소리가 확실하대?”
“그거야 모르죠.”
“본인 목소리가 맞아도 상관없어. 등 뒤에서 누군가가 칼을 대고 그렇게 말을 하라고 하면 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오 반장의 말에 김 형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저는 도저히 못 믿겠어요.”
“뭘?”
“반장님의 가설이요.”
“믿어달라고 한 적 없어.”
“납치 한 후 살인을 시키게 만든다. 그것도 12주 마다.”
“너무 그렇게 떠들어 대지마.
사무실 안 에는 그 두 명 외에도 내근 형사인 허 순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워낙 존재감 없는 인물인지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그들이었다.
언제나 별 말 없이 내근 일을 수행하는 그녀였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번 공원에서 살인 사건은 조성환이 저지른 것이 아닌 것 같다면서요. 그렇다면
반장님의 가설이 틀리잖아요.”
“나도 그게 의문이야.”
“그렇다면 조성환이 남득구를 죽인 범인 인 것인가요?”
오 반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요?”
“그냥 느낌이 그래.”
“그렇다면 이번 살인 사건은 반장님이 말하는 사건들과는 별개의 사건이 되는 거잖아요.”
오 반장은 이미 다른 살인 사건들도 조사해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쫓고 있는 의문의 살인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물론 사건이 접수 안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사건이 뭔가 끌렸다.
아주 강하게.
문득 오 반장은 약수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성환의 얼굴을 떠올렸다.
“에이. 모르겠다.”
김 형사는 포기 한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튼 내 생각대로라면 조성환은 이제 누군가를 죽일 테지….”
오 반장은 김 형사가 듣지 못할 정도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삐리리~]
순간 오 반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순간 오 반장은 실내를 둘러보았다.
김 형사는 투덜거리며 앉아 있었고 허순경은 열심히 컴퓨터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오 반장의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두 사람이었다.
그것도 허 순경은 아주 가끔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명 모두 이 곳에 있었다.
“누구지?”
[발신자 표시 제한]
‘혹시.’
오 반장은 약수터에 만났던 용의자 조성환을 떠올렸다.
녀석에게 번호를 가르쳐 주긴 했지만 전화를 할 것 같지는 않았었다.
오 반장은 폴더를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지혁 반장님.”
“누구시죠?”
여자였다. 매우 차분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섬뜻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오 반장의 뇌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떠오르지를 않았다.
분명히 들어 본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뇌 속에서 그 기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억의 조각은 꺼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는 것 같았다.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물론 김 형사나 허 순경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 이 둘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웬만해선 핸드폰 번호를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궁금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누구시죠?”
“제가 누구인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여자는 침착했고 일정한 속도로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준비된 대본을 읽는 듯한 반응이었다.
“공원에서 벌어진 노숙자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보고 있습니다.”
“네?”
의문은 더욱 증폭 되었다.
“지금 용의자로 보이는 남자가 강남역 2번 출구 보관함에 머리로 보이는 물건을 넣고 있습니다.”
오 반장은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여자는 마치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하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여자의 목소리 이외에 다른
잡음은 들리질 않았다.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
요즘 핸드폰이 좋아져서 통화자 이외의 잡음은 잘 안들린다고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의 지하철은
매우 시끄러운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밀폐된 공간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용의자가 무슨 옷을 입고 있나요? 혼자 인가요?”
오 반장이 물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대답이 없었다.
“무서워서 이만 끊어야겠어요.”
통화는 끊겼다. 절대 무서워서 끊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여자의 목소리 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했다.
오 반장은 잠시 통화 내용을 되짚어 보았다.
의문의 여자한테 걸려온 제보 전화.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전화를 한 것일까? 왜 하필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는 이번 사건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 반장은 표면상으로 이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김 형사와 문 교수가 유일했다.
“이 봐! 김 형사!”
“왜요?”
“나랑 가볼 곳이 있어.”
“네.”
“그리고 허 순경.”
“네? 네.”
여자 임에도 꽤나 저음의 목소리였다.
두 남자는 간만에 들어본 허 순경의 목소리에 언제나처럼 잠깐 놀랬다.
“방금 전 내 핸드폰에 온 전화 발신자 추적 좀 부탁해. 그리고 이 핸드폰 기능 중에 방금 전 통화
저장 기능 있다고 그러지 않았나?”
“네. 반장님.”
“그런 기능도 있어요? 반장님 핸드폰 좋네요.”
김 형사가 끼어들었다.
“그럼 방금 전 통화한 내용을 컴퓨터로 저장할 수도 있는 거야?”
“네 반장님.”
“역시 좋은 세상이네요.”
김 형사 다시 한번 끼어들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새벽에 국내에서 시술 된 심폐동시 이식 수술 자료 좀
찾아 줘. 그럼 좀 부탁해.”
오 반장은 자신의 핸드폰을 허 순경에게 건네고는 김 형사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Part 2. D-2 Data 08. Mission failed(미션 실패) 3.
“네?”
운전을 하다 말고 김 형사는 오 반장을 쳐다보았다.
“야. 야. 앞에 봐.”
앞 차의 제동 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오반장이 놀라며 외쳤다.
김 형사는 오반장의 놀란 목소리와는 다르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아 앞
차 바로 뒷 범퍼 10cm 정도 앞에서 멈춰 섰다.
벌써 열 번도 넘게 이런 식으로 차를 가져다 붙였다.
그러고는 다시 오 반장을 향해 최대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표정 지어봤자야. 나도 잘 모르니깐.”
“그러니까 반장님에게 어떤 여자가 전화를 걸어서 이번 살인 사건 용의자인 조성환이 강남 지하철역
물건보관함에 무엇인가를 넣었다고 했다고요?”
“그래.”
“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고요?”
김 형사는 앞 차가 조금 움직이자 다시 크러치에서 발을 살짝 떼고는 앞 차에 바짝 가져다 붙였다.
앞 차는 1미터정도 움직이고 멈췄을 뿐이었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도로는 꽉 막혀있었다.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10분전 쯤 사이렌을 울려대며 호들갑을 떠는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지나갔지만 여전히 도로는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형사고가 터진 모양이었다.
“그 말을 반장님이라면 믿겠습니까? 그런 정확한 제보를 했다는 사실도 이상할뿐더러. 엄연히 이
사건은 수사진이 따로 구성되어 있어요. 공개수사 인거 아시잖아요. 그쪽 전화통뿐 아니라 경찰청
전화까지 TV에 나갔는데 반장님 핸드폰으로 직접 제보 전화가 온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게….”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였나요?”
“그게 이상해.”
“왜요?”
“분명히 들어본 목소리인데 기억이 나질 않아.”
“그래요?”
오 반장은 지금까지도 목소리의 주인공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워낙 기억력이 좋았고 평상시에 거의 이런 일이 없는 그였다.
김 형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장난전화 아닐까요? 경찰 내부에서 말이에요. 우리 노는 게 못 마땅해서.”
“음.”
오 반장은 상당히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허 순경에게 발신자 추적 부탁해 놓았으니….”
[빵! 빵!]
김 형사는 교차로에서 좌회전 신호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는 앞차를 향해 경적을
울려댔다.
앞차는 그제야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광등이라도 돌릴까요?”
“됐네. 자네 말대로 장난 전화일지도 모르는데 사이렌까지 울리면서 호들갑 떨겠다고. 게다가 꽉
막힌 도로에서 그거 켠다고 차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가자고.”
“쩝. 그래도 경광등 작동법도 까먹겠어요. 하도 안 써서.”
“그러니까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쩝.”
김 형사는 그래도 아쉽다는 듯이 입을 몇 번 쩝쩝거렸다. 김 형사는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15분]
이 정체를 뚫고 역에 도착하면 11시 40분 정도는 되어야 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차들은 여전히 도로를 메우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반장님!”
잔뜩 깔린 김 형사의 목소리에 오 반장은 김 형사를 돌아보았다.
“왜?”
“저 반장님 밑에서 일한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 반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요.”
“내 이야기?”
“네.”
“할 이야기가 없어.”
“그런가요?”
김 형사는 말을 더 이으려다 그만두었다.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오 반장은 8년 전에 결혼을 했었다.
그는 매우 부지런하고 유능한 형사였다.
그는 결혼 한지 1년 후에 딸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와 딸이 사라져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실종 신고를 했다.
하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오 반장 부인은 젊었다.
당시 오 반장은 거의 일에 전념하느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들어가곤 했었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부인이 바람이 나서 가출 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 반장은 실종 사건으로 끝까지 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수사는 결국 미궁에 빠지고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게다가 부인이 사라진 것으로 생각되는 전 날 오 반장은 마약판매상을 검거하는 도중 파트너를
잃었다.
마약판매상이 쏜 총에 사망한 것이었다.
자신의 동료가 죽는 슬픔과 아내와 딸을 잃어버린 슬픔을 동시에 겪은 것이다.
차는 여전히 꽉 막혀 움직일 줄 몰랐다.
[같은 시각 강남역]
갑자기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초조함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일까?
지나가는 행인의 발자국 소리와 목소리가 모두 나를 향해 달려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매일 낄낄거리면서 보던 야한 단편 만화조차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통을 보관함에 집어넣고 나는 다시 개찰구 안쪽으로 들어왔다.
커다란 원형 기둥 밑에 만들어진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는 보관함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역내 설치 된 CCTV에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역시 반대편 개찰구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신중이 녀석이
보였다.
아무래도 떨어져 있는 편이 나을 듯 했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녀석에게 몇 번이나 잔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였다.
의자에 앉은 채 몇 시간이 흘렀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고 머릿속은 복잡해져가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괜찮을 것일까? 그 여자 말한 첫 번째 미션이라는 게 과연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만약 아니라면 이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시간은 아주 느리게 가고 있지만 나에게 시간은 부족했다.
이 모순이 나를 미쳐버리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에 그들이 요구하는 게 이게 아니라면 그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말로 누군가를 죽이라는
것인가?’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만 했다.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라는 말도 안 되는 이벤트에 참여 한 시각이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정오였다.
그리고 첫 번째 미션의 완료 시간은 24시간 후였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페널티를 받게 되었다.
첫 번째 미션의 완료시간이 12시간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상했다.
그 여자는 일부러 통화를 연결시키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분명했다.
벨은 불과 10여초 울렸을 뿐이었다.
아무튼 그 때문에 앞으로 약 40분 후가 첫 번째 미션 완료 시간이 되어 버렸다.
만약 내가 그때까지 미션을 완료하지 못한다면 지우의 목 위에 장치되어 있는 톱날은 회전하며
내려올 것이다.
10분에 10cm씩. 그대로 200분이 지나버리면 모든 게 끝이 나버린 것이었다.
그들이 말한 첫 번째 미션이 그들이 나에게 보낸 저 머리통을 저곳에 넣어 놓는 게 아니라 정말로
누군가를 죽여서 그 머리를 저곳에 넣어놓는 것이라면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제기랄!”
나는 혼자 욕을 내뱉었다.
왜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전화가 오길 바랐다.
옆에 앉아 있던 화장 진한 아가씨 두 명은 힐끗 힐끗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만약 이것으로 첫 번째 미션이 끝난다면 두 번째, 세 번째는 과연 무엇일까?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살인자의 누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낮에 만났던 형사라는 이상한 남자가 던져준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그것을 펼쳤다. 개발 새발 쓴 글씨로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전화를 할까 망설이다가 그만두었다.
‘30분 후면 모든 것이 분명해 질 것이다.’
시간은 매우 더디지만 멈추지 않고 1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김 형사는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도로변은 불법주차 차량으로 빼곡했다.
어쩔 수 없이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야 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역 앞은 그야 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벌써 11시 35분이네요. 어떻게 하죠? 일단 역무원에게 가서 어떤 미친놈이 지하철 보관함에
사람 머리를 넣어 놓았으니 수색 좀 한다고 할까요?”
오반장이 약간 얼굴을 굳혔다.
“쩝. 그냥 제가 알아서 둘러대겠습니다.”
둘은 차에서 나와 지하철 3번 출입구를 통해 역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인파를 뚫고 역무원실로 향했다.
“경찰입니다.”
김 형사는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역무실에 앉아 있는 역무원에게 내보였다.
“들어오시죠. 배 주임님! 여기 형사님들 오셨는데요.”
역무실 안쪽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엇인가에 열중하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서울 경찰청 강력반 소속 김은식형사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희
반장님이시고요.”
“아. 네. 배진현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로?”
이곳에 형사들이 출입하는 일이 빈번한지라 배 주임이라는 남자의 표정은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네. 이번에 쫓고 있는 마약 판매 용의자가 지하철 보관함에 무엇인가를 넣어놓았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확인해보려고 합니다만.”
“아. 네.”
배 주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방금 전 자신이 앉아 있던 책상으로 가 서랍에서 열쇠 뭉치를
꺼내들었다.
늘 있는 일을 처리하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모양이네요.”
“아 네. 뭐 일주일에 2번 정기적으로 보관함을 검사하거든요. 장기적으로 보관하는 물품을
처리하거든요. 물론 가장 많은 경우는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찾아오는 경우이지만요. 그 경우는
규정상 안 된다고 둘러대긴 하지만요.”
배 주임이 앞장서 역무원실을 나섰다.
“가시죠. 보관함은 저쪽 반대쪽 개찰구 건너에 있습니다.”
남자는 의외로 들떠 보였다.
“마약상이면 뭐가 있을까요?”
“네. 저희도 잘….”
질문을 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답을 요구하고 있는 남자를 향해 김 형사가 얼버무렸다.
“시가 수 천 만원 상당의 마약일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배 주임은 자산이 말하고도 웃겼는지 크게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는 말을 이었다.
“어떤 바보가 이런 곳에 그런 비싼 물건을 넣어 놓겠습니까? 음.”
배 주임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기야 이런 곳이 더 의심을 안 받을 수도 있겠네요. 제 동기 녀석은 보관함에서 권총을 발견한
적이 있었죠. 러시아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좀 이상한 행동을 하기에 미심쩍어서 살펴보았더니
총이 나와서 신고한 적이 있었죠.”
남자는 쉴 사이 없이 떠들어 댔다.
아마도 하루 종일 말없이 앉아 있다가 이야기 상대를 찾아 신이 난 모양이었다.
김 형사는 연신 “네. 네.” 하면서 억지로 역무원의 말에 맞장구 쳤다.
오 반장은 그냥 그 뒤를 따라 가며 주변을 살폈다.
“저는 전에 강아지를 구출한 적이 있었죠. 설 연휴였는데 어떤 지독한 인간이 보관함에 강아지를
넣어두었더군요. 밤에 혼자 순찰 도는데 이상한 소리가 나서 열어보았더니 새끼 강아지가
낑낑거리고 있더군요. 간신히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살아났긴 했지만.”
뒤를 따라 가던 오반장이 우뚝 멈춰 섰다.
“왜 그러세요?”
김 형사가 물었다.
“저기 저 검은 양복 입은 남자….”
오반장이 손가락을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디요?”
“어. 사라졌네.”
오반장의 말에 김 형사는 조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 본 듯 한 남자라.”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요?”
“그래. 어서 봤더라. 아 맞다. 오늘 낮 이번 사건 용의자 검거 현장에서 봤던 그 검은 양복의 남자.”
“검은 양복 입은 사람이 한 두 명인가요? 엇 저기도 있네요. 엇 저기도.”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검은 양복을 입고 발길을 재촉하는 샐러리맨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이시죠?”
배 주임이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서 가시죠.”
어느새 반대편 개찰구에 도착했다.
개찰구 건너편 매표소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된 철제 보관함이 눈에 띄었다.
남자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
오 반장에게 온 의문의 제보가 확실하다면 일상의 무료함에 젖은 이 남자는 아는 사람들에게
꽤나 할 이야기 거리가 많아 질 것 같았다.
“이쪽으로 가시죠.”
배 주임은 개찰구 옆 작은 철문을 열어 두 남자를 안내했다.
***
“야.”
등 뒤에 들려온 굵직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척!]
커다란 손이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그것을 잡아챘다.
커다란 손의 주인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왜 왔어.”
난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 남자가 나타났어.”
“그 남자라니?”
“아까 낮에 약수터에서 만난 노숙자 같은 남자.”
머릿속에 신중이가 말하는 남자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평범하지만 인상이 무척이나 강한 남자였기에 머릿속에 각인이 잘된 모양이었다.
“그 형사?”
“그래. 지금 역무원 같아 보이는 남자랑 다른 남자 한명이랑 셋이서 반대편 개찰구에 있어. 아무래도
이쪽으로 올 거 같은데.”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이 남자가 왜 여기에? 우연일까?’
나는 고개를 돌려 개찰구 안쪽을 살폈다.
‘낮에 약수터에서 만난 것도 우연?’
의문이 부풀어져 갔다.
시야에 그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 남자는 인파를 뚫고 곧장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오 반장이라고 자신을 소개 했던 남자가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은 잠시 멈춰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이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단 그들은 지하철을 탈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이미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지나쳐 계속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물론 이쪽 개찰구 쪽에도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있었지만 구지 가까운 계단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이쪽 개찰구 쪽에는 역무실은 없었다.
매표소만 있었다.
역에 용무가 있다면 이쪽으로 올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보관함으로 오는 것일까?
‘설마?’
그들은 인파를 뚫고 계속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좀 떨어져서 이야기 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말에 신중이는 기둥을 중심으로 몇 걸음 옆으로 돌아갔다.
“여기서는 안 보이잖아. 그리고 이렇게 떨어져서 이야기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이지 않냐?”
“왜 온 걸까?”
“내가 어떻게 알아? 보이지도 않는데.”
“형사라더니….”
“여기 있으면 들킬 거 같은데.”
신중이 녀석 말이 맞았다.
그들은 이 쪽 개찰구를 이용할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있는 장소는 개찰구에서 너무 가까웠다.
“가자.”
가자 나는 녀석을 끌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잠시 내려갔다.
“왜? 지하철 타려고?”
“아니. 저들 지나가면 다시 올라가자.”
나는 그들이 지나갔을 정도의 시간을 계산한 다음에 다시 계단으로 올라왔다.
나는 세 남자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개찰구를 통과한 세 남자는 잠시 매표소에 멈추었다.
역무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른 역무원과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발길을 옮겼다.
그들의 목적지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역시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보관함. 내가 머리통을 넣어 둔 바로 그곳.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11:52]
초조함은 극에 달해 가고 있었다.
Part 2. D-2 Data 08. Mission failed(미션 실패) 4.
배 주임은 보관함 가운데에 있는 소형모니터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가져온 키를 숫자판 옆에 있는 열쇠 구멍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숫자판 커버가 열리며 옆에 버튼은 누르고는 다시 숫자판을 닫았다.
“몇 번 보관함인줄 아시나요?”
배주임의 질문에 김 형사는 오 반장을 바라보았다. 오 반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디인지 확실하지가 않아서….”
김 형사의 말에 배 주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제 될 게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보관함이 1, 3, 7, 8, 9번 그리고 11번이니 앞 번호부터 차례로 확인하시죠.”
배주임은 이렇게 말하고는 숫자판을 조작했다.
왼편 젤 위쪽에 있는 보관함이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
김 형사는 빠르게 보관함으로 다가가 안을 확인했다.
안에는 쇼핑백이 들어 있었다.
일단 부피만 봐도 찾는 물건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슬쩍 들어보았지만 무게가 가벼웠다.
옷가지가 들어 있었다.
“아니네요.”
“그럼 닫아 주세요.”
김 형사는 쇼핑백을 처음 모양 그대로 넣어 놓고는 문을 닫았다.
그가 다시 조작을 하자 철커덕하고 보관함이 잠겼다.
“그럼 이번에는 3번입니다.”
[삑삑삑]
숫자판을 조작하자 방금 전 열렸던 보관함의 두 칸 아래 보관함이 열렸다.
바닥에서 2번째 보관함이었기 때문에 김 형사는 쪼그려 앉아야 했다.
김 형사는 조금 열린 보관함 문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 열었다.
[끼익!]
위의 보관함과는 다르게 조금 찌그러진 문짝에서 철과 철이 끌리는 마찰음이 났다.
김 형사는 조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조명이 제대로 미치지 않아 안은 약간 어두웠다.
김 형사는 문을 활짝 열었다.
[흐읍!]
그것과 동시에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질적인 공기가 그의 코로 밀려 들어왔다.
서울 어느 곳에서 맡을 수 있는 건조한 듯 하면서도 탁한 공기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의 밀도 높은
공기가 코에 밀려들었다.
김 형사는 눈앞에 있는 천으로 만든 검은 장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심상치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에 밀려들어 신경을 자극한 냄새가 피 냄새라는 것을 뇌에서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뒤에 서 있는 오 반장을 한번 돌아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았다.
“찾으셨나요?”
“잠…잠깐만요.”
김 형사는 일어나 오 반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뭘 어떻게 해?”
“수사본부에 연락해야죠. 아마도 구 반장님이 이거 건들면 난리 칠걸요.”
“그런가?”
“감식반도 불러야 하고요.”
“어차피 이런 곳에서 감식해봤자 나올 것도 없을 텐데. 귀찮게만 하는 거라고 안 그래도 할일 많은
사람들인데.”
“안돼요.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난리 칠거에요.”
“그냥 우리가 수거해서 국과연에 넘기면 안 될까?”
오 반장의 말에 김 형사는 인상을 구겼다. 반장님이야 구반장이 뭐라고 하든 말든 신경 안 쓰는
타입이지만 그 구반장이라는 인간이 자신을 잡아 족칠 것이 분명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죽어도 안돼요.”
김 형사는 머릿속에서 구 반장에게 뭐라고 해야 할 지 변명거리를 찾아야 했다.
착오로 우리 쪽으로 제보전화가 왔는데 허위제보인거 같기도 하고 그쪽이 바쁜 것 같아서 우리가
대신 확인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머리통이 나왔고 이 머리가 이번 살인사건 피해자의 없어진 머리인 것으로
생각되어서 조치를 취하게 됐다.
김 형사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봤자 구주구반장의 날뛰는 것을 봐야 할 것만 같았다.
“일단 확실히 확인 해 봐.”
오반장이 말했다.
“네.”
김 형사는 다시 문을 열고는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묵직한 느낌이 팔을 통해 어깨로
전해졌다.
무게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 듯 했다.
김 형사는 장바구니를 벌려 보았다.
꽁꽁 묶인 검은 비닐봉투가 보였다.
풀어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착실하게 묶어놓은 듯 했다.
“쳇.”
김 형사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오른손을 그 안에 집어넣고는 손바닥을 비닐봉투에 가져갔다.
감촉을 느껴보기 위해 손에 약간의 힘을 주고는 문질러 보았다.
‘쓱쓱’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머리카락의 느낌이었다.
그다지 숯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김 형사는 조금 더 아래쪽으로 손을 옮겼다.
약간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
눈과 코의 느낌의 전해졌다. 확실했다.
김 형사는 오 반장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찾는 물건이 맞으신가요?”
어느새 다가온 역무원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 형사는 재빠르게 장바구니를 묶어 들었다.
“잠깐만 보면 안 될까요?”
“그건 좀 곤란합니다.”
김 형사는 단호한 어조에 역무원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연락 하죠.”
“알아서 해.”
오 반장은 이미 신경 끊었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
“어떻게 할 거야?”
“나도 모르겠어.”
그들은 결국 내가 넣은 물건을 발견했다.
몇 십 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가 들릴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확실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11:53]
그들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결국 그 물건을 밖으로 꺼냈다.
“야. 어떻게 할 거야?”
신중이가 재촉했다. 시간이 없었다.
신중이는 나에게 결정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들이. 혹시 아까 만났던 그 여자가 경찰에 전화를 한 것일까?’
조금 전 보관함을 양보했던 까져 보이는 여고생을 떠올렸다.
내가 연기를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학생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다.
남자가 의심스러웠다.
‘약수터에서 만난 것도 우연일까?’
도망치다가 약수터에서 만났던 남자.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한참 지나 인적이 드문 그곳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솔직히 집을 나와서 우리를 잡으려는 경찰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집에서 한참 떨어진 그곳에서 약속이나 한 듯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
저 남자 정말 경찰인 것일까? 아니면 이 말도 안 되는 이벤트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가자.”
나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나는 달려 나갔다. 개찰구를 훌쩍 뛰어 넘었다.
“잠깐만.”
신중이 녀석은 이 상황에서도 패스를 넣고는 개찰구를 빠져 나왔다.
이 녀석이 신호등 어기는 것을 거의 본적이 없었다.
이상한 곳에서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개찰구를 빠져나와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잠깐!”
나는 세 남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오반장이라는 남자는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약간은 놀란 듯한 눈을 했다.
한 손에 머리통이 들어 있는 장바구니를 들고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있던 남자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훤칠한 키에 약간은 희고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역무원으로 보이는 복장의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뭐야?”
핸드폰을 들고 있던 남자는 핸드폰 폴더를 닫으며 나에게 외쳤다.
얼굴과 목소리에 한 성질 한다는 느낌이 확 전해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모두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조성환!”
오 반장이라는 남자의 입에서 나의 이름이 나왔다.
“아! 그 살인 용의자!”
머리통을 들고 있는 허연 얼굴의 남자는 그제야 나의 정체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역무원으로 보이는 남자만 사색이 된 얼굴로 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뒤쪽에 있는 덩치 큰 친구는 룸메이트인 김신중. 거봐요 역시 같이 다니잖아요. 그런데
아직 서울에 있네요. 수도권을 벗어났다고 그러던데. 아무튼 헛다리짚는 것은 뭐 있다니깐.”
얼굴이 허연 남자는 한참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눈은 계속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눈빛이었다.
“김 형사. 잠깐만.”
오 반장이라는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조성환씨. 나는 당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 반장이라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당신들 정체가 뭡니까?”
“이런. 오늘 낮에도 말했듯이 난 형사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내 부하인 김은식 형사이구요. 이번에는
신분증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오반장이라는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김 형사라는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자네가 좀 보여줘.”
김 형사라는 남자는 지금 상황이 어색한지 약간 주저하다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는
신분증을 펼쳐보였다.
“진짜 형사인가 봐!”
신중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반장님!”
김 형사라는 남자는 오 반장이라는 남자를 부르고는 입만 벙긋벙긋했다.
무슨 말을 전달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 반장 이라는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오 반장의 말에 김 형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구욧! 저렇게 눈치가 없으니 내가 속이 터지지!”
김 형사의 말에 나의 심장박동수가 조금 더 올라갔다.
“어떻게 하려는 거야? 여기서 잡히면 끝인 거 몰라?”
신중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나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조성환씨. 왜 여기에 이 머리를 넣어 놓은 거죠?”
“넣어 놓아야만 합니다.”
“왜 넣어 놓아야 하는 거죠?”
나는 망설였다.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내 말을 믿을 까? 아니 정말로 이 남자는 믿을 수 있는 남자일까?
정말로 경찰인 것일까?’
저 따위 경찰증이야 이들이라면 우습게 위조 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니면 경찰을 매수 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조성환씨 당신은 지금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수배중입니다. 당신 집에서는 죽은 남씨의 혈액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남자에게서 사라진 머리를 이 곳에 넣어 둔 것도 당신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범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잡아야 하는
경찰입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당장 잡지 않고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내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고 온 거죠? 오늘 낮에 약수터에서도 우연히 마주쳤다고 하셨죠. 이번에도 우연히
찾아내신 것은 아니겠죠.”
“쩝.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가? 낮에 약수터에서 만난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어요. 이번에는 음….
일단은 제보 전화라고 해두죠.”
“전 지금 엄청난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 당신이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그 경찰이라는
신분증 따위 위조하면 그만이고 솔직히 당신이 진짜 경찰이라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는 당신이 이번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은 아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지우. 오늘 아침 7시 25분. 집에서 회사로 출근. 7시 40분. 회사에 몸이 아프다고 월차를 신청.
그 후 현재 행방이 묘연. 현재 경찰은 그의 행방을 추적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남자의 입에서 지우라는 이름이 나오자 내 심장 박동수는 터질 듯이 높아졌다.
“납치되었다고 하셨죠?”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우씨를 납치하고 당신에게 그 남자를 죽이라고 시킨 건가요?”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말의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솔직히 경찰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남자는 아무리 봐도 경찰 같지 않았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더욱 의심이 갔다. 혹시 이렇게 해서 나를 범인으로 몰려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나를 도우려는 것일까?’
하지만 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지만 왠지 진실을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맞나요? 내 말이.”
“지우가 납치되어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 제가 죽인 것은 아닙니다.”
“그럼?”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을 해도 될지 안 될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낮에 인터넷에서 본 남자의 기사가 떠올랐다.
박동주!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죽은 남자.
“그들이 머리를 이 곳에 넣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머리를?”
오 반장이라는 남자는 이렇게 반문하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거봐요. 제가 말도 안 된다고 그랬잖아요. 살인을 저지르고 다른 사람이 시켜서 했다고 변명 하는
녀석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신이 시켰다는 사람도 있고, 인형이 시켰다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에요. 이런 식으로 본다면 제 정신에 살인을 저지르는 녀석이 얼마나 되겠어요. 만약 누가
시켰다고 해도 조사하면 될테니 일단 체포하죠.”
김 형사라는 남자가 말하며 한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야 시간 없어. 1분 남았어.”
신중이가 허리를 숙여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제기랄!”
나는 윽박질렀다.
“절대 잡힐 수는 없단 말야.”
시간이 없었다.
이제 1분 후면 톱날은 회전하기 시작한다.
차갑게 유지하려던 머릿속이 들끓기 시작했다.
머리통을 저 곳에 넣어놓는 것이 그들이 말한 미션이 맞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일단 저것을 저곳에 쳐 넣어 놓기라도 해야 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시간 없어.”
신중이가 나에게 바싹 붙어서 물었다.
“그거 돌려주십시오.”
나는 바닥에 내려놓은 머리통이 든 검은 장바구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 돼.”
김 형사라는 남자가 소리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김 형사 물러나.”
오 반장이란 남자가 명령어조로 말했지만 김 형사라는 남자는 듣지 않았다.
“반장님이 뭐라고 해도 안 됩니다.”
“일단 그거 주십시오.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저기에 집어넣어 놓기만 하면…….”
“안 돼!”
김 형사라는 남자가 내 말을 가로 막았다.
[12시]
누군가의 핸드폰에서 자정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뒤쪽에서 어느덧 완벽한 구경꾼이 되어버린 역무원의 핸드폰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그거 내 놓으십시오.”
나는 아주 강한 어조로 이 말을 내뱉었다.
더 이상 말로 하지 않겠다는 뜻을 최대한 내뿜었다.
두 명의 남자 역시 내 뜻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경찰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냐!”
김 형사 역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우리의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 우리는 형사야. 그리고 자네는 살인사건의 강력한 용의자이구.
그리고 이곳에 아주 중요한 증거도 있고 말이야. 아무리 뭐라 해도 소용없어. 자네가 범인이
아니라면 조사를 하면 밝혀질 거야.”
김 형사라는 남자가 약간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어조였다.
“박 동주라는 남자를 아시나요?”
내가 물었다.
두 남자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서로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3개월 전에 살인 사건 혐의로 경찰에 잡혔다가 탈주 중에 경찰이 쏜 총에 죽은 남자입니다.”
“알고 있어요.”
오 반장이라는 남자가 말했다.
“아무리 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찾아도 없어서 묻는 겁니다. 그 남자의 딸아이는 어떻게 되었죠?”
“그게….”
나는 제발 그 아이가 다시 돌아왔기를 바랐다.
“아직까지 행방불명이에요. 경찰에서는 실종 수사를 하고 있는 중이구요.”
나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다.
행방불명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죽었다.
박동주라는 남자는 미션을 실패했고 그 때문에 그 아이는 죽은 것이었다.
“뭘 기다려요 반장님! 이미 1반에 연락을 했고 조금 있으면 개떼처럼 몰려올거에요. 우리도 간만에
일 좀 하자고요. 그리고 구 반장에게 잡히는 것보다 우리가 잡는 게 더 좋을 거예요. 저
녀석들에게도.”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남자 옆에 내려져 있는 머리통을 다시 보관함에 쳐 넣어야 했다. 나는 김 형사라는 남자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김 형사라는 남자가 먼저 나에게 달려들었다.
“비켜!”
뒤에 서 있던 신중이가 나를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퍽!]
눈 깜짝 할 사이에 두 남자는 순식간에 맞붙었다.
김 형사라는 남자 역시 꽤 키가 컸으나 신중이 녀석에 비해 한참 작았고 덩치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금껏 신중이 녀석이 싸우는 것을 많이 봤었다.
녀석이 유일하게 우러러 보이는 순간은 싸우는 순간뿐이었다.
싸우는 순간만큼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녀석이었다.
신중이 녀석이 먼저 팔을 뻗었다.
김 형사라는 남자는 그 팔을 슬쩍 피하는 듯 하더니 미끄러지듯 신중이 녀석에게 파고들었다.
“앗!”
나의 입에서 터져나온 비명 소리였다.
녀석의 육중한 몸이 아주 가볍게 공중으로 들리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으워~”
녀석이 곰의 포효 같은 괴성을 지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신중이 녀석은 김 형사라는 남자의 업어치기에 당하지 않으려고 허공에 들린 상태에서 억지로
그를 찍어 눌렀다.
[콰당!]
두 남자가 바닥에 크게 나뒹굴었다.
여기서 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나는 많은 구경꾼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주위는 일순간 조용해졌다.
어색한 침묵이 몇 초간 계속 되었다.
먼저 일어난 것은 신중이 녀석이었다.
“괜찮냐?”
녀석의 물음에 대꾸도 하지 않고 깔아 뭉기고 있는 김 형사라는 남자에게서 떨어지며 그 옆에
있는 그 물건을 집어 들어 나에게 건넸다.
“뭐해! 빨리 넣어.”
녀석은 그것을 나에게 건넸다.
“그래!”
나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녀석의 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바닥에 나뒹굴면서 다친 모양이었다.
나는 머리통을 들고 보관함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집어넣고는 문을 닫았다.
핸드폰 시간을 확인했다.
[12:03]
“제기랄!”
어느새 시간은 3분이나 지나 있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김 형사 괜찮아?”
오반장이라는 남자는 쓰러져 있는 김 형사라는 남자를 일으켰다.
업어치기 하려던 힘과 신중이 녀석의 무게까지 더해져 바닥에 나뒹굴었으니 그 충격이 꽤
컸던 모양이었다.
주변의 웅성거림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쓰러져 있는 김 형사라는 사람의 얼굴과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오반장이란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신중이 녀석에게 좀처럼 볼 수 없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오려는 찰나 그것이 울려 댔다.
[삐리리~]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의 울림은 이 시끄럽고 번잡한 공간에서도 내 귀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일단 가자!”
나는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핸드폰은 울려 대고 있었다.
“그래!”
나와 신중이는 지하철역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신중이 녀석이 다가가자 모새가 가른 바다처럼 양쪽으로
쫙 비켜섰다.
우리는 그 사이를 통과해 계단을 향해 뛰어갔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면서 핸드폰 폴더를
열려는 찰나 뒤에서 남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우리의 뒤통수를 찔렀다.
“멈춰!”
김 형사라는 남자의 입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였다.
독기를 가득 품고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멈춰서 뒤를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은 미친 듯이 울려 대고 있었다.
나는 뒤로 돌아서면서 핸드폰을 폴더를 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움직이면 쏜다!”
김 형사라는 남자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전에 TV에서 보니까 두발은 공포탄이 들어 있다고 그러던데. 하긴 공포탄 맞아도 죽는다는
소리도 있긴 하지만.”
신중이 녀석이 중얼거렸다.
덩치 큰 사람이 말이 적을 것 같다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이 신중이라는 녀석은 이
상황에서도 구시렁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이 녀석은 덩치 때문에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다.
총이란 것을 구경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저 형사가 총에 든 것이 공포탄이라면 이 거리에서
쏜다면 작은 상처하나 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저게 실탄이라 해도 저렇게 떨리는 손으로 쏜다면 정확하게 맞는 게 기적일 것이다.
김 형사라는 남자는 아까 넘어진 충격 때문인지 권총을 조준하고 있는 손이 매우 떨리고 있었다.
“김 형사! 그만 해!”
오 반장이라는 남자가 외쳤다.
[타앙!]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공포탄이었다.
실탄이 발사될 때 보다 소리가 작았지만 이곳은 실내였고 지하였기 때문에 그 소리는 충분히
크고 힘이 있었다.
[까아악!]
동시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더욱 긴장을 고조 시켰다.
[스윽!]
신중이 녀석이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내 앞에 섰다.
“됐어! 비켜!”
나는 신중이 녀석을 옆으로 밀어내고 외쳤다.
“쏠 테면 쏘십시오. 전 그래도 갑니다.”
주위는 잠시 적막해졌다.
“김 형사 총 내려 놔!”
오 반장은 어느새 김 형사 옆에 다가와 있었다. 오 반장은 김 형사에게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쳇!”
나를 향하고 있던 총구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갔다.
“가자!”
나는 이렇게 외치고는 신중이와 함께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나는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고객님! 매우 바쁘시군요.”
여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 왔다.
나와 신중이는 거침없이 역을 빠져 나왔다.
우리는 인파들 사이에 묻혔다.
밤거리는 여전히 밝았다.
그들의 대화 2.
2011년 중국 복제인간 부대 창설
2016년 가상현실 프로그램 세계적인 히트
2022년 에이즈 바이러스 백신 개발
2028년 아프리카 물 전쟁 발발
2030년 세계 인구 100억 돌파
2031년 황금 유전가 곡식 개발로 기아 퇴치
2033년 중국 극동아시아 무력 정복
2035년 슈퍼 독감으로 전 인류 15% 사망
2037년 미국과 중국 핵전쟁 발발, 북해도20%, 제주도 50%, 하와이, 대만 25% 소멸.
2040년 양국 정전 합의 후 무한 군비 확충
2041년 중국 실질적인 최강국 선언
2043년 중국 및 속국 기독교 탄압
2047년 남극 빙하 큰 균열 탐지 후
2048년 인도 및 동남아시아에 진도 10의 거대한 지진으로 지각 크게 변동
AN-7 : 너의 예언 여기서 끝인가? AN-3
AN-3 : 그렇다.
AN-7 : 왜 그렇지?
AN-3 : 그 뒤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 뒤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내 수명이 그때까지 뿐
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AN-7 : 그렇군. 그 뒤에 너 이외의 우리의 모습은 보이는가?
AN-3 : 아니.
AN-7 : 그렇다면 네가 아니라 우리의 수명이 그 때까지인 것이라 볼 수 있겠군.
AN-3 : 아마도.
AN-5 : AN-3의 예언은 정확하다. 이 예언에 수정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다.
AN-7 :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인간 자체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의 거대한 흐름 즉 그 인간의 문화라는 DNA에 수정을
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AN-5 : 하지만 인간의 문화적 DNA는 이미 생물학적 진화를 훨씬 뛰어넘었다. 결국 인간은
인간자체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 자체를 조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것을 하고 있지 않은가?
AN-7 :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AN-3 예언대로라면 우리 역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지구의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아무리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시스템에 수정을 가하더라고
그것은 찰나에 불과하다.
AN-5 : 결국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에는 그 어떤 수정도 가할 수 없다는 뜻인가?
AN-7 : 그렇다. 결국 AN-3의 예언이 끝난 후 인간은 과연 어떤 미래를 가게 될지 모르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 끝이 보인다. 인간이라는 종이 가게 될 최후가….
AN-5 : 그것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실험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AN-7 : 그렇다. 과연 인간은 이 별의 의지에 의해 탄생된 생명체인지 아니면 이 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난 돌연변이인지 판별할 수 있는 것은 인간 그 자체뿐이다.
AN-5 : 무엇이 그것을 판별 할 수 있는가?
AN-7 : 인간의 DNA 깊숙이 새겨져 있는 그 것.
AN-5 : DNA? 인간의 DNA는 같은 영장류와 99%일치한다. 1%의 차이에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인가?
AN-7 : 그렇다. 모든 인간의 DNA에 새겨져 있는 그 작은 염기의 조합이 인간을 다른 종과 다르게
만드는 근 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에 대한 무한한 이기심. 인간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칭하고 있다.
AN-5 : 사랑? 그 염기의 조합이 과연 무엇인지 밝혀낸 것으로 그들의 미래를 결정짓게 되는가?
이 별이 만들어낸 생명체인지 아니면 제거해야 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암세포인지를?
AN-7 :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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