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게임]PART 3.(DATA5~7)

왕보리2012.06.12
조회1,591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berser13 님 >

 

Data 05. Second Mission(두 번째 미션)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02:45]

나는 몸을 씻었다.

아무리 씻어도 남자의 피는 좀처럼 내 몸에서 떨어지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흡착력 있는 물질처럼 내 몸 달라붙어 점점 내 몸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나는 한 시간 이상 몸을 씻었지만 그 느낌은 사리지질 않았다.

나는 결국 지쳐 씻기를 포기했다.


물론 내 몸에는 남자의 피는 모두 사라졌었다.

하지만 그 모든 피들이 나의 피부를 통해 온 몸으로 파고 든 듯 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의 피가 나의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잠들어 있는 신중이 녀석을 깨워 별장에서 나왔다.

더 이상 그 별장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제단 위에 있는 나체의 여자를 살펴보았지만 이미 죽어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소녀들의 시체가 있었고 내가 죽인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신고를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우리는 남자의 차를 이용하려 했지만 지문 인식 장치가 되어 있는 고급차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결국 택시를 잡을 수 있는 곳 까지 걸었다.


우리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우리는 변두리 PC방에 자리를 잡았다.

환기가 잘 안되는지 담배연기가 조금 자욱했다.

실내에는 20여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게임에 열중이었다.

신중이 녀석은 잠깐이지만 게임에 접속하는 듯 했다.

나는 의자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삐리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액정을 확인했다.


[서바이벌 이벤트]


두 번째 미션이 시작된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좋은 아침입니다. 현재 시각은 04:30분. 지금부터 무료 서바이벌 이벤트

두 번째 미션지령을 내리겠습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여자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지정된 인물을 제거하십시오. 미션 완료 시간은 오늘 자정까지입니다. 지정된 인물에 대한

잠시 후 전달됩니다.”


통화는 바로 끊어졌다. 나는 핸드폰 폴더를 닫았다.


“뭐야?”


신중이가 물었다.


“두 번째 미션이야.”


녀석은 미션이 뭔지 물어보려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참여하신 손님 계신가요?”


카운터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카운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생으로 보이는 매우 초췌해 보이는 남자가 외치고 있었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저…전데요.”


“아 그러세요? 이거.”


남자는 종이 상자를 나에게 내밀었다.

상자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남자가 가볍게 나에게 건네는 것으로 보아 그다지 무거운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이벤트에요? 처음 듣는 이벤트인데 무슨 게임인가요?”


남자가 물었다.


“아…네. 그냥. 그런데 이거 누가 준거죠?”


“퀵서비스 아저씨가 주고 나갔는데요.”


“언제요?”


내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방…방금이요.”


이런 새벽에 다니는 퀵서비스도 있나?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고 계단을 뛰어 올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드문드문 가로등이 있었지만 밖은 어두웠다.

새벽이었고 매우 후미진 곳이라 행인은 없었다.

물론 퀵서비스로 보이는 오토바이 역시 보이질 않았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헛수고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기. 혹시 우리 들어오고 나서 들어온 사람 있나요?”


나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기 이거.”


“아 예.”


나는 상자를 받아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주변을 빙 둘러 보았다.

서른 평 남짓한 작은 PC방이었다.

PC는 40여대 정도였고 나와 신중을 빼고 정확하게 11명의 손님이 있었다.

지쳐서 곯아떨어진 것 같은 한 명을 빼고 모두들 게임에 빠져 현실과는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듯 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건 뭐야?”


“나도 잘 모르겠어.”


나는 상자를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단지 소포용 포장지로 싸여 있었다.

뜯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잠깐!”


막 포장을 뜯으려는 찰나 녀석이 내 손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왜?”


“영화 같은데서 보면 이런 상자 열면 터지고 그러잖아.”


나는 녀석이 붙잡은 손을 뿌리고 녀석의 머리를 한대 툭 치고는 다시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내 손 역시 약간 떨리고 있었다.

나는 포장을 뜯고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뭐야!”


조심스럽게 열던 손이 무색하게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사진 아냐.”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수십 장의 사진과 그리고 A4용지로 뽑은 출력물 몇 개였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엇!”


나와 신중은 동시에 놀랐다.

사진 속의 인물은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인물이었다.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


“유혜원”


나는 사진을 넘겨보았다.


“역시 예쁘다.”


신중이가 나의 손에서 사진을 빼앗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녀석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아마도 천상에서 내려온 여신에게 반한 숫총각의 눈이 바로 지금 이 녀석의 눈일 것이다.


“역시 나의 여신이야. Oh my goddess!"


녀석은 이혜원의 팬이었다.

아니 광 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요즘 그녀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은 무척이나 많았다.

인터넷 팬 카페 가입자 수 1위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두 달 전에는 그녀의 광 팬인 남자가 스토킹을 하고 살해 협박을 하다가 잡힌 적도 있었다.

여신이 더 이상 더렵혀지는 것을 그냥 볼 수 없었다고 자백한 이 남자는 현재 경찰의 감시 아래

정신치료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게 뭐야?”


한참이나 넋이 나가라 사진을 바라보고 있던 신중이 나에게 물었다.


“두 번째 미션이야.”


“두 번째?”


“이 여자를 죽여야 해.”


말을 마친 나는 한참동안이나 멍한 신중이의 얼굴을 쳐다봐야 했다.

 

 

 

 


[2010년 7월 24일 05시 21분 서울 경찰청 강력 5반]


“하하하하”


멀리서 들려오는 가래 끓는 듯한 웃음소리와 동시에 오반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생각 같아서는 문을 잠그고 싶었다.

구주구반장의 웃음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웃음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이쪽으로 오는 모양이었다.


“어이 오 반장 뭐해?”


아니나 다를까 구반장이 얼굴을 들어냈다. 오 반장은 대답하지 않고 보고 있던 자료를 덮었다.


“바쁜 사람이 여긴 왜 왔어? 여기 올 시간이 있으면 잠이나 잘 것이지.”


“그냥. 잠깐 들렀어. 김 형사는?”


“김 형사는 잠시 병원에 들렀다가 숙직실에 갔어.”


“아 그렇지. 아까 그 녀석들에게 당했다면서… 하하. 위에서 난리던데. 그 사람들 많은 곳에서

그랬으니깐.”


“뭐 하러 온 거야?”


오반장이 참지 못하고 약간 언성을 높였다.


“이 친구! 발끈 하긴. 동료로서 걱정되어서 그냥 잠시 들린 것뿐이야. 왜 그런 짓을 한거야?

핸드폰 카메라에 찍힌 동영상이 경찰 홈페이지에 올라왔어. 물론 사이버 얘들이 삭제한다고

하겠지만…….”


오 반장이 역에서 범인을 그냥 놓아준 현장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한 동영상이 경찰청

게시판에 올라왔다.

무능한 대한민국 경찰이란 제목으로 말이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엄연히 상대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실탄을 발사해서라도 체포 했어야

했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


“그럴 땐 다리라도 쏴서 잡기 그랬어. 이 친구야! 그랬으면 우리도 이 고생 안하고 이번 기회에

자네도…….”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훗.”


구 반장은 콧방귀를 끼었다.


“자네는 나를 너무 나쁘게만 보는 경향이 있어. 물론 내 방식이 과격한 것은 나도 알아. 내 수사

방식과 검거 방식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내 방식이 더 현실적인 것이라는

것은 확실해. 내가 처음 자네와 같이 일 했을 때 기억해. 솔직히 나는 자네처럼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분석적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자네의 과학적인 수사 방식 나도 그것이

좋다고 인정해. 점점 우리 수사 방식이 그렇게 바뀌어야 되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것 자네도 알겠지. 경찰을 지금 보다 5배 정도 더 뽑는다던가 아니면 20년 쯤 지나게

되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냥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야. 나는 정말로 자네를 존경해. 그 일이 터지기 전의

자네의 열정이 계속 되었다면 대한민국 경찰의 능력도 상당히 높아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 일’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과 동시에 오 반장에 약간의 표정의 변화가 생겼다.


“나는 하루 빨리 자네가 예전의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오늘도 분명히

그럴 기회가 있었는데 그냥 날려 버렸더군.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조금만 생각하면 말이야.

이친구야.”


구 반장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잠깐!”


오 반장의 외침에 구 반장은 멈춰 섰다.


“왜?"


“남 박사님이 보내주신 파일이야. 법의학적 소견으로 범행 추정 시각은 1시부터 4시 사이야.

피해자 상처들에 시간차이가 있다는 소견이야. 길게는 처음 생긴 상처와 나중에 생긴 상처에

1시간 반 정도의 간격이 있지. 그리고 대부분의 상처는 사후에 발생한거고.”


구 반장은 의자를 끌고 와 오 반장 앞에 앉았다.


“그 공원은 매우 후미진 곳에 있긴 하지만 그 사이에 이용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거 이상하지

않아.”


“무슨 뜻이야?”


“원래 그 공원은 폭주족 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야. 노숙자들도 많이 모여들지. 어젯밤

관할서에서 대대적인 단속이 있었지. 대부분 폭주족 녀석들이 어제는 모이지 못했어. 게다가

어제는 근처 노숙자들이 단속으로 보호소로 보내졌어. 물론 노숙자들이야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다 보낼 수는 없었겠지.”


“그래서?”


“어제 그 공원은 이상하게 조용했다는 뜻이야.”


“그렇군. 그러니 그런 범행이 더욱 일어나기 좋은 거 아냐. 범인은 매우 치밀한 놈이야. 마취제,

톱, 칼, 그리고 완전 방수 옷까지 준비한 녀석이라고. 녀석은 오랫동안 준비를 한 게 틀림없겠지.

자네 말대로라면 어젯밤은 녀석에게 준비했던 것을 실행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겠지.

조성환이란 녀석이 죽은 피해자를 전부터 노리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 남득구가 운 없게도

보호소로 안 보내지고 그 공원에서 자게 되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공원을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사실 피의자가 살아 있는 남득구를 죽은 남득구의 시체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오 반장은 남득구가 그곳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죽은 후 그곳에 옮겨진 것이다.

그곳에 오기 전에 이미 그는 죽어 있었고 화장실에서 다시 온 몸이 난도질 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현장의 남득구의 피의 양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김 박사님의 소견이었다.

죽은 후 그곳으로 옮겨졌다면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릴 수 없었다.

하지만 미리 남득구의 피를 응고하지 않게 준비했다가 사용하면 충분히 가능 했다.


이미 죽은 그를 그곳으로 옮겨 다시 난도질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공원에는 인적이 없어야 했다.

이를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오 반장은 조성환이 남득구를 죽인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느낌이 그랬다.

누군가가 조성환을 살인범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짐작 가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누군가가 남득구의 심장과 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정부에서 반년 전에 서울에 모든 노숙자들에 대한 정밀한 건강 검사를 실시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인권 보호 차원이라고 했지만 매우 자세한 검사들이 수행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의 모든 노숙자들의 신체 데이터가 수집되었다.


사체에서 없어진 부분은 남득구의 머리와 그리고 심장, 폐였다.

남득구의 머리는 회수되었다.

하지만 심장과 폐는 발견하지 못했다.

공원 주변 및 용의자인 조성환의 집 정화조까지 모두 뒤지고 분석했지만 장기 조각하나

나오지 않았다.

결국 심장과 폐는 사라진 것이다.


경찰과 언론은 이점을 완전히 놓쳐 버렸다.

특히 언론이 이상했다.

모든 언론이 한결 같이 조성환을 미친 변태 살인마로 몰았다.

용의자의 파악이 빨리 되서 그럴 수도 있지만 너무 획일적이었다.

그러다가 어젯밤을 기점으로 이 살인에 대한 내용은 언론에서 싹 사라져버렸다.

물론 유력한 용의자를 놓쳐버린 이상 흥미가 반감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살인마가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다면 충분한 기사거리였지만 이상하게도 유력 신문이나 방송사들은 아주

간략하게 기사를 보도할 뿐 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것 뿐 만이 아니었다.


“사라진 목격자는 찾은 거야?”


“아직.”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그리고 정신 지체 증상까지 있는 사람을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목격자 역시 이상했다.

목격자의 신원은 미상이었다.

게다가 약간의 정신 지체 증세를 보였고 사건 현장을 본 충격으로 패닉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정확하게 용의자를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벤치에서 신문을 얼굴에 뒤집어 쓴 채로 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기척에 잠에서 깼다고 했다.

여전히 신문은 얼굴에 뒤집어 쓴 채였고 신문에 뚫린 구멍으로 용의자를 목격했다.

커다란 백을 등에 짊어지고 손에는 둥그런 물건이 든 가방을 든 채였다고 진술했다.

그의 진술로 용의자의 몽타주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후 갑자기 목격자가 사라진 것이다.


“인력이 부족 할 뿐이야. 곧 찾을 거야.”


“용의자 조성환에 대한 정확한 제보가 들어온 것이 11시 21분. 하지만 이 제보자 역시 신원

미상이야. 이웃에 사는 주민이라고만 밝혔고. 근처의 공중전화를 이용 전화를 걸어왔지.”


“그게 어쨌다는 거야? 신원을 밝히지 않은 제보 전화가 한 두통이야?”


“이번 사건이 공개 수사하기로 결정된 것이 10시 40분이지.”


“그런가? 정확한 시간까지는….”


“방송에서도 뉴스를 내보내려면 시간이 필요해. 제일 먼저 방송 된 것은 뉴스 전문 방송이었고

방송 시간은 11시 23분이었어. 그리고 공중파 방송은 11시 30분쯤이었고.”


“뉴스에 방송되기 전에도 주변에 전단지도 붙이고 탐문 수사를 하고 있었어.”


“그렇군. 그렇다면 검거 당시 총기 사용은 어떻게 된 거지? 총은 두 발이 사용됐어. 총이 사용된

위치는 조성환의 집이 아니었어. 인근 집이었어. 당시 집 안에 인기척을 느끼고 돌격하려던 찰나

총성이 터졌지.”


“두 녀석이었잖아. 다른 녀석이 쏜 거겠지. 아니면 이미 녀석들은 집에서 빠져 나갔을 수도

있는 거구. 인기척을 느낀 것뿐이지. 커튼 때문에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으니.”


“그런가?”


“그리고 조성환이 훔쳤다는 차량은 수원에서 발견되었는데 왜 녀석들은 서울에 있는 거지?”


“일부러 그랬겠지. 수원에다 차를 버리고 다시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로 돌아왔을 거야. 서울에서

쭉 살았던 놈이니 서울이 더 편했을 거야. 우리로서도 인구 1300만이 사는 도시에 숨으면 찾는

것은 더 힘든 일이야.”


“그렇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구 반장이 물었다.


“조성환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구 반장이 얼굴을 구겼다.


“목격자도 있고 확실한 증거도 있어. 조성환의 집에 죽은 남득구 혈액이 발견됐고. 무엇보다

조성환은 자신이 죽인 남자의 머리통을 들고 다니다가 지하철 보관함에 넣어 놓는 엽기적인

행동까지 했어. 어떻게 그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그렇군.”


오 반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의 생각을 구 반장에게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쫓고 있는 12주마다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살인 사건들.

안개 속에 갇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조성환을 만남으로서 그는 안개에서 탈출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남득구를 죽인 이는 조성환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가 쫓고 있는 사건과는 상관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제 살인을 저지른다면 아니 벌써 어디선가 누구를 죽였다면….


구 반장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난 이만 가보겠네. 녀석을 잡으려면 빨리 잡아야 해. 범행 현장 사진을 본 그 잘 빠진 심리학자

말로는 범인은 완벽한 정신 이상 상태이고 분명히 범행은 계속 될 거라고 했어.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녀석은 분명히 잡히기 전까지 다른 녀석을 죽일 게 분명 해.”


그는 한마디를 더했다.


“아무튼 만약 지하철에서 자네가 그 녀석을 잡았다면 모든 게 쉽게 해결될 수 있었던 일이었어.

그 녀석이 범인이건 아니건 말이야. 만약 그 녀석이 범인이었다면 자네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뜻이야.”


구 반장은 뒤 돌아 사라졌다. 혼자 남은 오 반장의 말없이 의자에 몸을 묻었다.


오 반장은 지갑을 열었다.

아직도 그의 지갑에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셋이 찍은 사진이었다.

자신의 옆에는 선의가 있었고 자신의 품에는 나라가 안겨 있었다.

자신의 얼굴은 딱딱했지만 선의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고 품에 안겨 있는

나라는 마치 아기 천사처럼 미소 짖고 있었다.

딸 나라의 돌에 찍은 사진이었다.


벌써 2년 전 일이었다.


당시 그때 오 반장은 마약사범을 쫓고 있었다.

당시 급격하게 유통되고 있는 신종 마약인 ‘트리플 엑스’의 국내 총 판매책을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 때 나라가 매우 아프다는 전화가 선의에게 걸려 왔었다.

하지만 그는 집에 가 볼 수가 없었다.

벌써 집에 들어간 적이 2달이 넘어가는 그였다.

그만큼 그는 일에 미쳐 있었다.


마약 판매상 중간 판매책의 아지트를 알아냈다.

녀석을 잡으면 젤 윗선까지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함정이었다.

결국 파트너였던 조형사가 죽고 말았다.

오 반장은 충격의 휩싸여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

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선의와 나라는 없었다.

사라진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그녀가 결국 가출 했다고 말했다.

오 반장은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Data 06. A Guinea pig(몰모트)

“오빠가 웬일이야?”


저녁을 먹기 위해 내가 그녀와 향한 곳은 종로 타워의 꼭대기에 위치한 ‘탑 클라우드’라는

스카이 라운지였다.

종로에서 가장 눈에 띄고 화려한 건물이 어째서 국세청 건물이 되었는가에 대한 모기업과

정부에 어떤 뒷거래 이야기는 이 거리에 넘치는 젊은이들에게는 관심 밖에 일이었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끔 종로를 다니지만 언제나 쳐다보기만 했던 곳이었다.


건물의 최상층인 33층과 바로 아래층은 수십 미터 높이차를 두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이 스카이라운지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위에 올라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라이브로 팝 음악과 클래식이 연주되고 창 밖으로는 멀리 남산 타워의 불빛을 비롯해서

서울을 곳곳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며 퇴근길 차량의 연이은 전조등 불빛의 물결로 인해 도시속의

섬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었다.

이 곳이라면 어떤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해도 통과라고도 덧붙여 있었다.


나와 그녀는 웨이터에 안내에 따라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클라리넷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발아래로는 서울의 멋진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내 발 밑에 펼쳐진 황홀한 모습이 잠시지만 내가 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는 듯 했다.


“진짜 멋지다!”


그녀 역시 감탄해 하고 있었다.

나는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알아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눈이 튀어 나왔을지도 몰랐다.

내가 본 글에서 추천한 메뉴인 스테이크는 거의 내 보름 치 생활비와 비슷했다.

얼굴이 굳어진 것을 표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입을 열었다.


“마음껏 먹어. 오늘은 내가 사는 거야.”


“오빠 말 하면서 조금 더듬은 거 알아?”


“아…아니야.”


“호호.”


주문이 끝나고 약간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녀와 사귀게 된 것은 군대 가기 한 달 전이었다.

갑작스럽게 사귀게 되었고 군대에 가 있는 바람에 나는 지금껏 그녀에게 그 말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흔한 반지조차 준 적이 없었다.

그녀를 위해 반지를 준비했다.

그리고 지금껏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말리라는 굳은 의지를 품고 이곳에 온 것이다.

물론 여기 비용은 신중이 녀석에게 빌렸지만 말이다.


“저기 저 남자 프러포즈하는 가 봐.”


그녀의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건너 건너 테이블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중인 듯 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양복의 남자는 무릎을 꿇고는 여자에게 반지를 건네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장미 바구니가 있었다.

꽃이 적어도 수백 송이는 되어 보였다.

뭐하는 남자일까?

멋진 양복에 멋들어진 구두.

일류 기업에 다니는 남자일까?

아니면 의사? 변호사? 적어도 만화가 지망생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만화가 지망생으로서는 저렇게 큰 꽃바구니와 저렇게 커다란 보석이 박힌 반지를 주려면

사채를 끌어다 쓰지 않는 한 불가능 할 테니 말이다.

너무나 좋아하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봐!”


그녀의 말에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곳까지 온 거야?”


“그…게.”


그녀도 뭔가 눈치 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가방 속에서 그것을 꺼낼 수가 없었다.

후줄근한 청바지에 모자를 눌러쓴 채 초라한 반지를 지우에게 줄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 말을 해줄 용기도 없었다.

그녀가 그런 것을 따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여자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반지를 건네면 조금 전 그 여자보다 훨씬 좋아하며 활짝 웃음 지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그냥. 여기 전부터 여기 한 번 와보고 싶었어? 야경 멋지지 않아?”


“그래.”


그녀는 살짝 미소 지었다.


‘미안해. 지우야 나중에 성공하면 그 때 꼭 산더미만한 꽃다발과 커다란 보석이 박힌 반지와 함께

….’


나는 그게 지우를 위한 것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나란 놈은 왜 이렇게 한심 할까? 그녀의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이 순간에도 얄팍한 자존심과

이기심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오빠는 자신 밖에 모르는 구나.”


지우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말이었다.

한번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이었기에 더욱 충격은 컸다.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모든 것이 사라지면서 지우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가고 있었다.


“지…지우야.”


아무리 불러도 그녀는 돌아보지 않는 그녀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 순간 온 몸에서 붉은 피가 솟아 나와 순식간에 손 모양으로 변했더니 나의 온 몸을

움켜쥐고 있었다.

너무나도 끔찍했다.

내가 죽인 남자의 피였다.

그것이 나의 온 몸을 움켜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어느새 지우는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지…지우야.”


다시 소리를 지려는 순간 엄청난 통증이 머리에 느껴졌다.

뇌 일부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한 통증이었다.


[퍽!]


나는 화들짝 놀랐다.

타격을 받은 곳은 뒤통수였고 내 뒤통수에 타격을 준 것은 신중이의 커다란 주먹이었다.


“왜 쳐? 이 새끼야.”


“아니. 너무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꿈 꿨냐?”


“아… 아니야.”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

나는 내 몸을 살폈다.

당연히 내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피 대신 땀만 흥건하게 배어나와 젖어 있을 뿐이었다.


‘지우….’


왜 갑자기 그 날 꿈을 꾼 것일까?

후회 때문일까?

그 날 나는 그녀에게 한 번도 하지 못한 말을 하려고 했었다.

‘사랑 한다’는 이 말을 말이다.

나는 지금껏 그녀에게 한 번도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왜일까?’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녀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이 순간에도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더 이상 후회만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그다지 흐르지 않았다.

그들이 나에게 보낸 자료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내 앞에 놓여진 자료로 눈을 돌렸다.

자료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조사되어 있었다.


수십 장의 사진들. 꾸며진 사진들이 아니었다.

그 중의 몇 장은 그녀가 집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 자는 모습.

심지어는 옷을 갈아입는 모습까지 있었다.

사진 모두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들이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언제나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친근한 사람이 찍은 듯 했다.


‘망원 렌즈를 이용해서 찍은 것일까?’


이것을 나에게 보낸 사람은 몰래 그리고 아주 정성스럽게 이 사진들을 찍은 것 같았다.


그리고 수십 페이지의 출력물들.


프로필


성명 : 유혜원

출생 : 1985년 11월 16일

신장 : 168cm

체중 : 48kg

가족 관계 동생 - 유선일

약력 : 14살 때 동생 과 함께 미국 입양 후 미국 생활.

미국 하버드대 휴학

데뷔 : 2007년 S전자 CF모델 출연.

출연작 : 토지(MBC, 2008), 백야(SNS, 2009),러브스토리 인 서울(2009),

            그 여자는 외계인이었다(2008)남극점(2010)

 

간단한 프로필로 시작한 그녀의 자료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했다.

그녀의 집의 주소를 비롯해 그녀의 집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조사되어 있었다.

집의 구조와 집에 설치 된 방법 장치를 비롯해서 경찰 순찰차의 순찰 도는 시간과 사설

경비업체의 순찰 시간까지 조사되어 있었다.

이웃집까지의 거리 및 이웃집에 사는 사람들까지 조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일상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녀의 요일별 스케줄이 아주 세세하게 나와 있었다.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듯 했다.

그녀는 주 이동수단은 소속 메니저먼트사 차량이었다.

최근 찍고 있는 '남극점‘ 이라는 영화 촬영을 마치고 현재는 영화 홍보 중인 모양이었다.


‘하필 왜 이 여자일까? 왜 이 여자를 죽이라는 것일까? 무슨 이유가 있을까?’


내가 죽인 남자를 떠올렸다.

남자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최면이라는 것일까?

그 남자가 마치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나는 그 남자가 말하는 대로 움직였다.

스스로 자신을 죽이려고 했었다.

아직도 가슴에 칼에 찔린 상처가 쑤셨다.


내가 죽인 남자는 16명의 소녀를 죽이고 그 소녀의 시체를 모아 놓은 변태 살인마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유혜원.


‘이 여자에게도 숨겨진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팬 사이트의 이름은 ‘OH, MY Goddess'이었고 팬들은 그녀를 여신이라고 부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유혜원의 팬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녀의 선행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나쁜 기사는 데뷔 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관리를 잘하는 것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혹시?’


끔찍한 변태 살인마를 죽였으니 이번에는 너무나도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일까

?

여신 같은 사람을?


‘말도 안 되는 생각일까?’


나는 잠시 자료를 내려놓고 신중을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유혜원의 사진을 보던 녀석은 어느새 컴퓨터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계속 자신을 보는 것을 느꼈는지 잠시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마웠어.”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나와 신중이 동시에 인상이 구겨졌다.

나도 생전에 내 입에서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순간이 올지는 꿈에도 몰랐고 녀석 역시

내가 그런 말을 자신에게 할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뭐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녀석 때문에 그 남자를 죽일 수 있었다.

아마도 녀석이 없었더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우 역시….

하지만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나를 따라 다닐 뿐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나는 애써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녀석이 물었다.


“넌 빠져.”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뭘 빠져?”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지 의심이 갔지만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이제 빠지라고.”


녀석은 잠시 멍한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천장을 한번 쳐다보다가 다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할말을 정리하려는 모양이었다.

물론 정리가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한 1분 쯤 지났을까 녀석이 다시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싫어.”


1분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뱉은 말이었다.


“빠져!”


나도 단호하게 다시 한번 외쳤다.


“싫어!”


녀석은 이번에는 아주 빠르게 내 말을 받아쳤다.

다시 한번 ‘빠져’라고 하려다가 우습지도 않은 코미디의 한 장면을 연출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이번에는 장난이 아냐.”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아.”


“이 여자를 죽여야 한단 말이야. 이 여자를…. 나는 상관없어. 이 여자가 착한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여신이든 무엇이든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지우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뭘?”


“지우가 너 여자 친구인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내 친구인 것도 잊지 마. 우리가 몇 살부터 같이

살아왔는지도 말이야. 사실 지우를 안 것은 내가 너보다 훨씬 빨라. 너는 2학년 때 시골에서

이사 왔잖아. 나는 그전부터 지우를 알아왔다고. 그리고 말이야…”


녀석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뭐?”


나는 답답해서 녀석을 재촉했다.


“사실 지우를 좋아하는 것은 너뿐이 아냐.”


녀석의 말뜻이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녀석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는 것이 나는 모니터 화면의 불빛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는

잠깐 깜짝 놀랐다.


“사실 나도 지우를 좋아해.”


“당연하지.”


내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 거 말구 나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녀석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몸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녀석의 입에서 이런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 대상이 먹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흠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나는 네가 나에게 그 말을 했을 때 이미 포기

했으니깐.”


“무…무슨 말?”


“무슨 말은 고 1때 놀이터에서 소주 까면서 한 말 말이야.”


갑자기 옛 일을 떠올리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 때 너 울면서 나한테 그랬잖아. 지우가 좋다고 어쩌고 하면서 지우가 다른 녀석 만나면

죽는다나 어쩐다나 눈물 콧물 범벅 읍…….”


나는 녀석의 커다란 입을 간신히 손으로 틀어막았다.


“이 새끼가 소설을 쓰고 지랄이야.”


녀석은 나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고는 다시 입을 나불거렸다.


“소설은 무슨 형님이 그때 네가 하도 불쌍해서 아니 네 놈 우는 꼴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지우 양보 한거야.”


녀석이 씩 웃어 보였다.

둘 사이에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조금은 어색한 시간이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나 보고 빠지라는 소리는 하지 마.”


녀석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는 몇 번 매만졌다.


“모르겠다.”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녀석이 뭐라고 하건 일을 처리하는 것은 나라는 사실이었다.

그 남자를 죽이는 것은 나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너 생각 나냐?”


“뭐가?”


“그 녀석. 지우가 고 1때 사귀었던 서클 선배라는 녀석. 네가 그 소리 듣고 울고 불고 난리 쳤잖아.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년이 지났지만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다.

내가 소주 마시고 울고 녀석에게 난리 친 다음 날 나와 신중이 녀석은 조용히 지우와 사귄다는

녀석을 만났다.

녀석은 우리와 같은 학년이었다.

신중이 녀석이 조용히 자신을 지우 사촌 오빠라고 소개했고 지우를 사귀려면 자신과 맞장을

떠서 이겨야 한다고 했다.

녀석은 벌벌 떨면서 빌었다.

고등학교 시절 신중이 녀석을 모르면 우리 동네에서는 간첩일 정도로 유명했다.


우리는 그 때 일을 생각하며 실컷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어느새 사그라졌고 침묵이 이어졌다.

녀석은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준비한 것이란 말인가?


무고한 사람을 죽여 그의 머리를 우리 집에 가져다 놓고 지우를 납치해 나를 이벤트에 참여

시켰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완전히 살인범으로 몰았다.

하지만 경찰에 잡힐 뻔한 나를 탈출 시켰다.

나는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결국 그들이 시키는 대로 살인을 저질렀다.


내가 죽인 살인마는 경찰도 잡지 못했던 아니 아예 정체조차 모르던 살인마였던 것 같았다.

그런 살인마를 완벽하게 조사해 내고 있는 집단이었다.


단순한 집단이 아니었다.


국가!


이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개인이 살인을 저지르면 범죄였다.

하지만 국가의 개념에서 살인을 저지르면 정당화 될 수 있었다.

전쟁에서 살인은 당연한 것이었고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 되는 것이었다.

국가라는 개념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왜?’


나에게 전화를 걸고 지령을 내리고 있는 여자는 ‘실험’이라는 단어를 한번 들먹였다.

실수인지 일부러 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국가가 외부에 알리지 않고 엉뚱한 실험을 한다는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이런 음모론 같은 것을 올려놓은 인터넷 사이트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허구이거나 추측일뿐이었다.

게다가 그런 실험에는 정확한 목적이 있었다.

군사적 혹은 정치적 목적이라든지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살인 게임을 시키는데 무슨 목적이 있단 말인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들의 실험실에 갇힌 실험용 몰모트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나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고 실험을 위하여 나에게 자극을 주고 있었다.

미로에 넣은 몰모트를 지정된 장소로 몰기 위해 전지 자극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들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장 박동이 급속하게 치솟았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런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전화의 여자 말이 떠올랐다.

이 이벤트를 끝낸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는 누구일까?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이미 사람 한 명을 죽였다.

하지만 그 다지 죄책감 따위는 들지 않았다.

손에는 아직 남자를 찔렀을 때의 느낌이 남아 있었고 온 몸을 적신 남자의 피가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지만 그것은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왼쪽 가슴의 상처를 만져 보았다.

반창고를 붙여 놓았다.

피는 멈췄지만 아직도 고통은 느껴졌다.

만약 신중이 녀석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죽었을 것이다.


[두근! 두근!]


상처 밑의 심장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루사이에 나는 많은 죽음을 마주쳤다.

죽은 남자의 머리를 보았고 수십 명의 소녀들의 시체도 보았다.

그리고 내가 죽인 남자의 시체도 보았다.


죽음.


아주 멀리에 있을 거라고 믿어왔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내 손에 들려 있던 칼이 조금만 더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 칼이 내 심장을 찔렀다면 내 몸을 흐르고 있는 피들은 공중으로 뿜어져 나왔을 것이고

나는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죽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로 사람에게 영혼이 존재하고 사후 세상이라는 것이 있을까?

아니면 죽게 되면 그래도 끝인 것일까?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처럼 내 세포하나 모두 분해 되어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인가? 원소 단위로 분해 되어 다시 지구로 환원되는 것일까?’


내가 죽는 다 해도 이 세상은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죽고 있을 것이다.

전쟁, 기근, 질병으로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죽음은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살아 있는 사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그런 죽음을 당연히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잊어버린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죽음은 금세 잊혀 질 것이다.

나의 존재 자체는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갑자기 몸이 떨려왔다.


“괜찮냐?”


신중이 녀석이 내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안색이 안 좋은데….”


“괜…괜찮아.”


나는 지우를 떠올렸다.


‘지우가 죽는다면?’


하고 싶지 않은 상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내 머릿속 커다란 유혹에 빠져들었다.


‘과연 나는 지우가 없이 살수 있을까? 만약 지우가 죽는다면 지우를 잊지 않고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나 역시 지우를 점점 잊게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졌다.

아직은 내가 그것을 확신할 자신감이 없었다.

나와 지우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를 알아가고 그리고 서로를 사랑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이 여자를 죽이는 것뿐이었다.


유혜원!


이 여자를.

 

 


[2010년 07월 23일 토요일 05:23]


“여기서 뭐하는 거야?”


쉴 사이 없이 구시렁거리는 신중이 녀석을 내버려두고 나는 창 너머로 도로를 잘 관찰했다.

우리는 지금 비룡빌딩이라고 적혀 있는 작은 4층짜리 상업건물 2층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앞에는 왕복 4차선 도로가 있었고 우리가 있는 이 건물 바로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었다. 그

리고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LG25시가 있었다.


“야!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신중이 녀석이 대답을 하지 않으면 나의 목을 졸라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물었기에 나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차타고 가려고.”


“차?”


“그래.”


녀석은 진짜 나의 목을 조를 듯이 거대한 손을 공중에 휘두르며 나를 위협하며 입을 열었다.


“차 타려면 차도로 나가야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여기서 이렇게 창 밖만 보고 있으면 차가

생기냐?”


“조용히 좀 말해.”


아무도 없는 빌딩이고 아직 새벽인지 녀석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댔다.


“차 훔치려는 거야!”


나는 이렇게 잘라 말하고 다시 밖을 관찰했다.

아직 출근 시간 전이고 해서 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들이 많지 않았다.

멀리서 택시 한대가 다가왔다.

마침 신호등이 보행신호로 바뀌었다.

사람 한명 없는 횡단보도였지만 택시는 정확히 정지선에 차를 가져다 멈추었다가 신호가

바뀌자 출발했다.

신중이 녀석은 이제야 아무 말 없이 나와 같이 창으로 도로변을 관찰했다.


“저쪽에서 한대 온다.”


신중이가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그 차를 살펴보았다.


“혼자냐?”


내가 물었다. 녀석은 상당히 눈이 좋았다.

중, 고등학교 시절 시력검사에서 양쪽 눈 모두 2.0을 받은 것은 이 녀석 한명뿐이었다.


“음. 아니 옆에 누가 타고 있는데.”


“그럼 패스.”


패스라고 할 것도 없이 그 차는 쌩하니 횡단보도를 지나 사라져갔다.

5분이 지났지만 차 한대 지나가지 않았다.


“다시 한대 온다.”


이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소리가 들려.”


“뭐?”


나는 조금 황당했지만 녀석의 말대로 저쪽 멀리 사거리에서 한대의 차가 코너를 돌아 모습을

드러냈다.

이 녀석은 청력까지 좋았다.

내가 숨겨놓은 먹을 것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것을 보면 후각도 개 수준이다.

이 녀석은 신체는 하느님이 내린 선물인 듯싶다.

물론 실수로 뇌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멍청한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말이다.


“한 명이냐?”


“어. 여자 한 명이다.


“그래. 제발 멈춰라! 스타킹이 필요하던지, 생리대가 필요하던지 아니면 담배가 떨어졌던지

아무튼 멈춰라!”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기도가 통했는지 차는 이 쪽으로 다가오면서 속도를 줄였다.

물론 신호등 때문일 수도 있다.

때마침 신호등이 보행신호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는 신호등에 멈추지 않고 도로변에 붙여 정차했다.

잠시 뒤 차에 비상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됐다.”


여자는 차에서 내렸다.

차의 시동을 켜둔 채였다.

여자는 신호등이 꺼질까봐 황급히 횡단보도를 건너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자!”


우리는 재빠르게 빌딩을 내려갔다.


“네가 운전해!”


편의점을 들어간 여자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시선에서 우리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와 신중이는 재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시트에 놓여진 가방을 차 밖에다 던져 놓았다.


“출발 해!”


그리고는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야 좌회전 해!”


내 말에 신중이는 코너에서 바로 좌회전을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여자가 편의점에서 나오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내 코너를 돌자 시야에서 편의점이 사라졌다.

그 여자는 편의점에서 나오면 무척이나 당황해 할 것이다.

갑자기 차가 사라졌으니.

앞으로는 아마도 무슨 일이 있어도 차의 시동을 끄고 다니게 될 것이다.


“성공이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쉽게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디서 본거냐?”


“뭘?”


“차 훔치는 거 말이야.”


어디서 본걸까? 책? 영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득 생각이 난 것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더럽게 좁네.”


녀석은 구시렁거리면서 시트를 조정했다.

덩치 작은 여자가 몰던 차여서 녀석이 운전하기에 비좁은 것이 당연했다.

녀석은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시트를 조정했다.


“아씨. 훔치려면 더 좋은 차를 훔칠걸!”


“안돼. 요즘 좋은 차는 다 위성 추적이 돼.”


시트를 조정해도 녀석의 머리는 거의 차 지붕에 맞닿으려고 했다.


“아! 무슨 여자 차가 이렇게 지저분하냐. 냄새도 심하고!”


재떨이에는 담배가 가득 했다.

그리고 빈 담배곽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아무래도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간 모양이었다.

이번 기회에 담배를 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기름도 없네.”


“쳇!”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주유소에 들려야 했다.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08:22 경찰청 강력 5반]


“반장님!”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던 오 반장은 허 순경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으윽!”


힘겹게 눈을 뜬 오 반장은 자세를 바로 잡았다.


“왜 여기서 주무세요? 숙직실 나두시고.”


“지금 몇 시야?”


“아홉시에요.”


“그렇군.”


오 반장은 몸이 찌뿌드드한지 기지개를 늘어지게 폈다.

뼈마디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허 순경의 귀에까지 들렸다.


“좋은 아침!”


김 형사가 말쑥한 모습으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 반장은 김 형사의 말쑥한 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반장님 또 여기서 주무셨어요?”


김 형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까치집을 짓고 있는 오 반장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어? 어.”


“자네는?”


“전 사우나 가서 한잠 자고 씻고 왔죠?”


“그렇군.”


“아 그렇고 허 순경은 왜?”


오 반장 앞에 멀뚱하게 서 있는 허 순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허 순경은 무척이나 대조되는 겉모습의 두 남자를 한번씩 번갈아 보고는 손에 들고 있는

파일을 오 반장에게 넘겼다.


“어제 반장님이 말씀 하신 거 조사했거든요.”


“뭐였지?”


“오반장님 핸드폰에 걸려온 전화랑 금요일 국내에서 시술됐던 심폐 동시 이식 수술에 관한 거요.”


“아 그거.”


그제야 그는 자신이 허 순경에 시켰던 일을 떠올렸다.


“먼저 반장님 핸드폰에 걸려온 번호를 추적했거든요. 그런데 추적이 불가능 했어요.”


“쉐도우폰이야?”


허 순경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 반장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일단 당시 이용한 기지국은 서울 마포 기지국 이었거든요.”


“그렇군.”


쉐도우폰의 특성상 이용한 기지국 밖에 알지 못했다.

물론 위치추적 신청을 내놓은 상태라면 가능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일단 통화가 끝나게 되면 다시 통화가 되기 전까지는 위치 추적이 불가능 했다.


“그리고 말씀 하신 수술은 2건이 행해졌습니다. 한군데는 Y대학 병원이었습니다.”


이식을 받은 환자는 24살의 여자였고 48세의 뇌사자의 장기를 받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 반장은 넘겨준 파일을 넘겨보았다.


“그렇군. 다른 곳은?”


“대륜 병원입니다.”


“대륜 병원?”


대륜 병원은 모 기업이 만든 종합 병원으로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서 초빙한 최고의 의사진과

최신식 의료장비를 갖춘 최고급 병원이었다.

병실도 모두 개인실로 일류 호텔 수준이었다. 물론 아무도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은 아니었다.

정, 경계 고위 인사나 유명 연예인들이 주로 이용했다.


수술 시간은 어제 자정 무렵이었다.

하지만 이식자와 피이식자를 밝힐 수가 없었다.

후배 녀석 말로는 병원 측에서 환자의 개인 정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일관했다고 했다.

결국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후배의 말대로 병원 측에서는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허 순경은 겨우 겨우 이식자만 알아 낼 수 있었다.


“환자 개인 정보 유출은 절대 안 된다고 일관하던걸요. 그것도 겨우 겨우 알아냈어요.”


오 반장은 이식자의 자료를 확인 했다.


“윤무선 총리 아들이에요.”


“윤총리….”


오 반장의 작은 눈이 잠시 커졌다.


“네.”


“피이식자는 못 알아낸 거야?”


“네. 이식자도 겨우 알아냈어요.”


“이봐! 김 형사. 그 병원에서 어제 사건 현장까지 몇 분 정도 걸리지?”


“글쎄요. 길 안 막히면 10분정도 걸릴 거 같은데요. 새벽이면 10분도 안 걸릴 거 같은데요.”


“그렇군.”


오 반장은 잠시 서류를 움켜쥐고는 생각에 잠겼다. 뭔가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허 순경은 오늘부터 강력 1반에 지원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 가봐.”


허 순경이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어느새 김 형사는 오 반장 옆에 다가와 있었다.


“팔은 괜찮은 거야?”


“네. 그냥 좀 까진 거예요.”


오 반장은 좀 까진 것 치고는 붕대를 많이 동여매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장님 말이 맞는다고 치죠.”


“치긴 뭘 쳐.”


“말 꼬리 잡지 마세요.”


오 반장은 입을 다물었다.

김 형사가 무섭게 노려봤기 때문이었다.

다친 다음에 성질이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계집애처럼 조금 다쳤다고 삐지기는’이라고 말해주려다가 불에다 기름 붓는 격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렇다면 죽은 남득구는 거기서 죽은 게 아니고 대륜 병원에서 심장과 폐를 이식 당한 후

그곳으로 옮겨졌다는 거죠. 그리고 그곳에서 시체를 난자 한 거구. 이식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렇게 시체를 난자 한거구요. 그리고 조성환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조작을 한거구요.”


오 반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요. 윤 총리 정도의 거물이라면 노숙자

하나 처리하는 거는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겠지.”


“그렇다면 결국 이야기는 오 반장님이 말하는 그 의문의 살인 사건들과 이어지는 건가요?

12주마다 일어나는 의문의 살인사건 말이에요. 하지만 그러면 반장님이 조사하는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 아닌가요?”


“글쎄. 그거야 모르지….”


오 반장은 뒷말을 이으려다 그만두었다.

그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조성환과 자신이 쫓고 있는 의문의 사건이 분명히 연관성이 있을 거라는 확신 말이다.


“그럼 전 다녀오겠습니다.”


“어딜?”


“대륜 병원이요. 대륜 병원에 가서 피이식자가 누구인지 알아 봐야 할 거 아닙니까?”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쳇. 언제는 쉬운 거 있었어요. 그럼.”


“잠깐 김 형사.”


나가려는 김 형사를 오 반장이 불러 세웠다.


“왜요?”


“일단 밥이나 먹고 가자고. 배고프니깐….”


“아 그러고 보니 밥을 안 먹었네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건 그렇고 반장님 안 씻으세요

?”


“귀찮아.”


“제발요. 같이 다니는 사람 좀 생각하시라구요.”


둘은 경찰청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09:23 서초구]


내가 살던 동네도 분명 서울의 주택가였다.

하지만 언덕에 마구 잡이로 지어진 집 들 사이로 미로처럼 길들이 이어져 있었다.

비슷한 모양의 작은 2층에서 4층짜리 다세대 주택들이 따닥따닥 붙어서 지어져 있어

다 그 집이 그 집으로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오면 딱 길 잃어버리기 쉬운 동네였다.

재개발을 한다고 한지 꽤 되었지만 내가 이 곳에 이사 온 그 때부터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

동네였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도 서울의 주택가였다.

하지만 평지에 넓은 길 위에는 아스팔트가 쫙 깔려져 있었고 커다란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다른 도시 같았다.


“이 집이군.”


내 손에 들고 있는 사진 속과 아주 일치했다.

아마도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곳이었던 것 같았다.

4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붉은 벽돌 담장과 커다란 철 대문이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철제문은 차고로 보였다.

벽돌 담장 너머로 보이는 조경수의 위치와 모양까지도 아주 똑같았다.

그 너머로 보이는 푸른 기와의 2층 양옥집.


나는 차를 세워둔 큰 길로 나왔다.

이 동네에는 차를 세워둘 공간이 없었다.

모든 집이 개인 차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집 앞에 세워둔 차가 없어서 너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왜 나와 있어?”


신중이 녀석은 차 안이 비좁았는지 밖에 나와 있었다.


“좁잖아.”


“그나저나 찾았어?”


“어.”


파일의 내용은 정확했다. 우리는 차 안에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차를 기다렸다.


“저 차인가 본데.”


깜빡이를 켜고 한대의 차가 접근했다.

우리는 번호판을 확인했다.

자료에 써 있는 번호의 차량이 맞았다.

유혜원이 이용하는 소속사 차량이었다.

 

[09:30 소속사 차량 도착 후 집 출발]

[10:20 경기도 부천에서 드라마 야외 촬영]

[14:00 서울 을지로 국제 인권협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인권 보호 명예대사 수여식 참석]

[17:00 서울 S시네마 영화 홍보를 위한 팬 사인회 참석]

[18:35 S대학 병원 백혈병 어린이 방문]

[20:00 N호텔에서 S일보 45주년 만찬 참석]

[22:00 귀가]

 

그녀의 오늘의 스케줄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잠시 후 소속사 차량은 다시 큰길로 나왔다.

진한 썬팅 때문에 안은 보이지 않았다.


“저 차에 타고 있겠지?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따라 가자.”


우리는 그 차를 따라 가지 시작했다.

일단은 이 내용이 확실한지 확인 할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 미션의 완료 시간은 오늘 자정까지였다.

나는 자정이 지나기 전에 그녀를 죽여야 했다.

그들이 보내준 자료는 아주 자세했다.

나는 이를 토대로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오늘 밤 10시 이후에 집에 오게 된다.

그리고 집에는 그녀 혼자였다.

그 때가 기회였다.

자료에 써 있는 대로라면 들키지 않고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위험부담은 컸다.

집에는 사설 방범장치가 되어 있었고 집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동네는 경찰이 자주 순찰을 도는 모양이었다.

자료에는 CCTV위치와 경찰 순찰 시간까지 자세하게 조사되어 있었다.

충분히 들키지 않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스케줄대로 행동하는지가 문제였다.

만약 그녀가 밤 10시에 집에 오지 않는다면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단 스케줄대로 따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

 

김 형사는 대륜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병원 측은 환자의 신변 보호를 명목으로 공개를 하지 않았다.

수사를 목적으로 라고 해도 절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병원 측의 관계자라는 남자도 꽤나 사람들을 다루는 데는 이골이 난 듯싶어 보였다.

고위층들이 주로 이용하는 병원에서 총무과장을 맡고 있는 남자라서 뒤도 꽤 든든한 모양이었다.


결국 김 형사는 포기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반장이 생각한 것은 다른 방법이었다.


[사이버 수사대]


오 반장은 이런 팻말이 붙어 있는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기계들의 낮은 소음들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에어컨이 가동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와 모니터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인지 방안은

후덥지근 했다.


전화벨이 열심히 울리고 있었지만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 반장은 구석으로 향했다.

칸막이와 캐비닛으로 둘러져 사무실안에 작은 방처럼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공간에는 몇 대의 컴퓨터에 둘러싸여 있는 남자가 보였다.

모니터 한대에는 남녀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서로 뒹굴어 대고 있었다.

다행히도 소리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다른 모니터는 계속해서 무의하게 보이는 숫자들이 화면을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운데 앉아 있는 남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모니터를 보며 무의미하게 마우스를 클릭 하고

있었다.


“음~”


아무리 뒤에서 서서 기다려도 자신을 보아 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오 반장은 헛기침을 한번 했다.

남자는 귀찮은 듯 고개를 돌리지 않고 목과 등을 뒤로 꺾고는 뒤집어 쳐다보았다.


“엇 오 반장님!”


그제야 남자는 자리에 일어나 제대로 오 반장에게 인사를 했다.


“바빠?”


“아니 별로요.”


이 남자는 이우성이었다.

나이는 22세인 천재 해커였다.

15살에 국내 유명 은행 몇 개를 해킹해 수 조원을 빼돌리고 30시간이나 업무를 마비시킨

적이 있었다.

본인이 직접 범행 사실을 실토하고 자수하지 않았다면 잡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유명해지려고 했던 장난이었다고 밝혔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보호관찰로 끝났다.

그 후로 그는 자문 역할로 사이버 수사대 일을 돕고 있었다.

물론 직업은 모 인터넷 보안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연봉이 수억이라는 말만 돌았다.


“뭐 부탁 할게 하나 있어서?”


“뭔데요?”


“대륜 병원의 수술 데이터와 영환실 이용 데이터 보고 싶어서.”


“대륜 병원이요?”


“어.”


“거기 한번 가봤었는데 좋더군요. 전에 맹장 수술 받을 때….”


“그 병원 비싸다고 하던데.”


“그런가요? 전 돈은 잘 몰라서요.”


오 반장은 할말이 없었다.

대화를 하고 있는 도중에도 이우성은 눈은 모니터에 가 있었고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오 반장 눈에는 그냥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 적 거 뽑으면 되요? 1년치 뽑아 드려요?”


“벌써 된 거야?”


“아. 네. 여기 보안장치 프로그램 제가 만든 툴을 이용한거라….”


오 반장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훔. 집에 자물쇠 있잖아요. 그 자물쇠를 제가 달아준거라구요. 물론 제가 열쇠도 하나 가지고

있는거고요.”


오 반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이번 주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새벽까지 것만 뽑아주면 돼.”


“네.”


[위잉!]


옆에 놓여져 있는 프린터가 낮은 기계음을 내더니 이내 A4용지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거 가져가시면 되요.”


오 반장은 10여장의 출력물을 집어 들었다.


“다른 거 필요 없으세요?”


“어. 매번 고마워.”


“뭘요.”


“그건 그렇고 이번에 유출된 서채림 몰카 안 필요하세요?”


“서채림?”


최근 인기가 치솟고 있는 탤런트 서채림의 성행위 몰카가 유출되었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떠돌았었다.

사전에 사이버 수사대에서 틀어막아 유출은 안 되었지만 말이다.


“아 그렇군. 필요하면 연락할게. 김 형사가 좋아하려나….”


오 반장은 출력물을 들고 다시 강력 5반으로 돌아와 살펴보고 시작했다.

오 반장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삐리리~]


오 반장은 핸드폰이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김 형사였다.


“반장님! 접니다.”


“어. 그래? 어디야?”


“대륜 병원이요. 제가 간호사들을 통해 알아보려고 했거든요. 쉽지가 않네요.”


“이제 안 알아 봐도 돼.”


“왜요?”


“방금 알아 봤거든.”


“어떻게요?”


“우성이.”


“네? 병원 데이터 해킹 한거에요? 그거는 범죄라고요. 엄연히 수색 영장을 가지고 검사해야

하는 거란 말입니다.”


“흠. 언제부터 김 형사가 법 지켰다고 그래?”


“아니. 경찰이 법을 지키지 누가 지켜욧!”


“알았어. 알았으니깐 그만 하구. 어차피 우성이 녀석이 한거면 아무도 몰라.”


“그건 그렇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자료를 살펴봤거든. 심폐 이식을 받은 것은 윤 총리 아들이 확실해. 수술 시간은 금요일

01:50분에서 시작해서 04:45분에 끝났어. 수술자는 미국에서 초빙 해 온 저명한 외과 의사

케빈이라는 사람이구. 그 의사는 수술 후 바로 출국 했고.”


“그리고 목요일 밤 11시부터 금요일 낮 12시까지 대륜병원 영환실을 이용한 사람들 리스트를 살

펴봤지만 전혀
없어. 피이식자 자료 같은 게 전혀 없어.”


“훔. 이야기가 좀 되가네요. 피이식자가 영환실을 이용할 수가 없었을 테니. 자료가 있을 리가

없겠죠.”


“그렇지. 피해자 남득구의 몸에서 폐와 심장을 적출하는데 걸린 시간이 대략 한 시간 정도라고

치면 약 03시. 공원까지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15분. 03:15 그리고 거기서 사체를 다시

그렇게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정도라 치면 03시 45분.”


“그렇게 되면 범행 시각이 얼추 비슷하네요? 죽은 남득구가 마취 상태인 이유도 그리고 상처들에

시간의 차이가 있는 이유도 설명이 되고요. 그리고 수술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그렇게 사체를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거구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는 거지.”


“뭔가 재미있게 되어가네요.”


김 형사는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일단 제가 청으로 들어갈게요.”


“그래.”


김 형사는 핸드폰을 끊었다. 왠지 모르게 신이 났다.

오 반장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들어맞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형사는 지하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앗 죄송합니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다시 열었다.


“밑으로 내려가시나요?”


“네.”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두 명 모두 건장했고 어깨가 딱 부러진 것이 운동 좀 한 몸이었다.

한 명은 자신보다 나이가 좀 더 있어 보였고 다른 한 명은 20대 초반정도로 보였다.

어려 보였다.


“몇 층이시지요?”


김 형사가 물었다.


“3층입니다.”


젊은 남자가 대답했다. 김 형사는 지하 3층 버튼을 눌렀다. 김 형사의 차도 지하 3층에 있었다.


[위잉!]


엘리베이터가 특유의 기계음을 내며 하강을 시작했다.

김 형사는 약간 긴장했다.

형사 특유의 감일지 모르겠지만 두 남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띵!]


어느덧 엘리베이터는 지하 3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두 남자는 먼저 걸어 나갔다.

두 남자는 김 형사와는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김 형사는 잠시 멀어져가는 두 남자를 쳐다보다가 자신의 차로 향했다.


“괜히 긴장했네.”


김 형사는 차에 올라타고 차를 출발 시켰다. 그는 곧장 경찰청으로 향했다.


그 뒤를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쫓고 있는지 김 형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일단은 따라 가시죠. 아직 시간이 아닙니다.”


“네.”


승용차에는 방금 김 형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두 남자가 타고 있었다.

보조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의 얼굴에는 얇은 미소가 여전히 지어져 있었다.

 

[2010년 7월 24일 17:55 서울시 종로구 S시네마]


유혜원은 한 TV 연예 프로 리포터와 인터뷰 중이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뭔가요?”


“네? 뭐라고 하셨죠?”


“잠깐만요.”


유혜원의 매니저가 잠시 끼어들었다.


“혜원씨? 오늘 왜 그래요? 어디 아프세요? 자꾸 시계만 보고….”


“아…아니에요.”


“아니 몸이 안 좋으시면 오늘 스케줄 조정을 하려고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시 시작하죠.”


유혜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얼굴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건 조금 다른 질문인데요. 유혜원씨 동생인 유선일군에 대한 질문이에요. 엄청난 천재잖아요.

어릴 때 동생 때문에 놀라거나 그런 일화 없으세요?”


“네. 그건 전에도 많이 이야기 한 거라.”


유혜원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진 것을 보고 리포터는 깜짝 놀랐다.

한번도 인터뷰 도중에 유혜원이 얼굴을 찌푸린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에 대한 내용은 안 물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유혜원은 조금은 냉담하게 대답했다.


“아. 네. 이 부분은 편집하죠. 그럼 이번 영화 잘 되길 바라면서 시청자 분들에게 하실 말씀

있으시면 이 자리를 빌려 말씀하세요.”


유혜원은 힘들게 인터뷰를 마친 그녀는 다음 스케줄을 위해 차에 올라탔다.

평소의 여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시간만 확인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예정대로 스케줄을 하고 있었다.

요구대로였다.


‘선일!’


선일이 보통 아이가 아니란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를 낳은 것은 자신이었다.

이것은 자연계의 법칙에 위배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선일과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선일이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점점 알아갔다.

그럴수록 점점 머릿속에는 의문이 점점 커져갔다.


‘이 아이는 왜 이 세상에 온 것일까?’


바로 이것이 그 의문이었다.

가끔 이야기 할 때마다 선일도 자주 이 질문을 하곤 했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곤 했다.

또한 그 아이는 항상 자신이 대답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묻곤 했다.

자신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선일이 궁금하게 생각 한 것 중에는 하나가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은 타인을 위해 왜 죽는 걸까요?”


그 아이가 물었던 질문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 내에서 했던 질문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의 대답이었다.

평소에 선일의 질문에 그다지 대답을 하지 못했던 그녀가 오래간만에 답을 했었다.

하지만 선일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럼 어머니도 저를 위해서 죽을 수 있나요?”


선일의 물음이었다.

그 아이는 무표정하게 묻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대답을….


“그럼. 나는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단다.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너를 위해서….”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대답을 들은 선일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아주 짧게 미소 지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낳은 이 아이가 그 때 지은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 밤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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