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 최강의 무개념녀.jpg

뉴비201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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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장군도 순식간에 해적왕으로 둔갑시키는 그녀의 패기를 보라

 

 ▲ 흔한 해적녀의 셀카

 

[칼럼]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2012년 여름, 대한민국은 굵직한 사회적 이슈들로 소란스럽다.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으로 촉발된 정치권의 사상 검증 열풍, 소위 ‘종북(從北)’ 인사들의 국회 입성 등을 두고 사회 도처에서 여러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 역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나의 쟁점을 두고 환경, 경제 등 저마다의 가치가 충돌하는 중이다. 찬반양론은 안보 분야에서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국의 국토는 육지와 접해있다. 반도 위에 터전을 잡았다. 영국이나 일본 같은 섬나라와는 다르다. 그쪽은 사방, 우리는 삼면이 바다다. 하지만 53년 7월 이후 155마일 휴전선에 의해 육로가 막히면서 본의 아니게 섬나라 아닌 섬나라가 되었다. 철도를 통한 무역은 불가능했고 때문에 물자의 대부분이 선박을 통해 운송되었다. 어떻게 보면 세계 수위권을 다투는 조선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해상교역량의 99.8%가 제주도 근해를 거쳐 들어온다. 만에 하나 적의 해군이 이 지역의 해상봉쇄에 성공해 숨통을 움켜쥐게 되면 5천만 국민이 살아가는 국가는 불과 보름도 버티지 못하고 고사(枯死)하고야 만다. 그밖에 영토 분쟁 지역인 이어도에서 가까워 지리적 우위를 점할 수 있고 3함대 주둔지인 목포에 비해 수심이 깊어 대형 군함을 배치할 수 있다는 게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측의 논리다.


한편 일각에서는 신냉전(新冷戰)이라 불리는 중국과 미국의 힘겨루기에 속절없이 휘말리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괜히 나섰다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될 수도 있으며 괜히 중국을 자극해 후일 해코지라도 당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과거의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1904년 1월 21일, 고종 황제는 전시 국외 중립을 선언했다.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운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 등 6개국이 이를 확인했다. 그때 군부대신 이용익은 런던데일리 특파원 매킨지(Mckenzie)와 가진 대담에서 재차 조정의 입장을 밝혔으나 도리어 국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조약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훈수만 들어야 했다. 이후 2월 8일, 일본은 전쟁 발발과 동시에 서울로 군대를 진입시킨다. 대한제국 정부는 고작 2개 대대의 병력 앞에 무력화되었고 중립을 승인했던 열강들은 사태의 추이를 보고 곧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제사회의 냉엄함과 약육강식의 섭리를 익히 깨닫고 있던 매킨지의 시각이 정확했던 것이다. 아무리 역사에 ‘만약(If)’은 없다지만 당시 충분한 군사적 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면 일국의 장관이 외신 기자에게 대놓고 면박을 듣는 망신도, 또한 그토록 허무하게 평화를 짓밟히는 일도 없었을 터이다.


인간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 동양 사서에 거울 감(鑑)자가 들어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러일전쟁이 발발했던 그때부터 백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의 상황처럼 약체(弱體)도 아니요, 든든한 동맹국 하나 없이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1904년의 비극’에서 알 수 있듯이 평화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군사력을 비롯한 총체적 힘이 뒷받침 돼야 상대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올 수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고금(古今)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보너스 짤방 : 해병대 얼짱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