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웃대 : 무조건해라 님 > ** 심심풀이 넌센스 퀴즈~ 창문이 100개가 있는데 그중에 2개가 깨지면 뭘까요? -알 수 없는 일, 궁금해해요.- 영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이 흡사 석류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분노해 있다는 것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당장 나가. 당장!!!” “이보게 영기. 언제까지 이런 근근한 삶을 살 건가? 이제 그만 잊어버리게. 제발 좀...” “근근한 삶? 너야말로 탐욕에 눈이 먼 인간 아닌가? 그딴 기름진 탐욕에 쫓겨 사느니 가난한 지금의 삶을 살겠네!!!” 10년 된 벗의 충고는 그렇게 씨알도 먹히지 않은 체 무시당해버렸다. 그는 귓속에 충고를 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아이. 자네가 죽인 게 아닐세. 자네가 죽인 게 아니라고. 도대체 언제까지 그 애의 환상만을 쫓다 죽을 건가? 그만 잊어버려. 한심한 인간아.” “하핫. 신술.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 애는 내가 죽인거야. 나를 둘러싼 모두가 그랬고 나마저도 인정했어. 내가 그 아이를 죽였기에 지금의 내 삶은 업보일 뿐이라고. 현생에서의 업보. 그것뿐이야.” 신술이라 불린 남자. 눈이 파르르 떨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완전한 포기가 아닌 약간의 분노가 섞인 후회. 몇 번이나 겪은 쓰디쓴 실패에서 우러나오는 애타는 마음이었다. “좋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게. 언젠가는 자네의 그 환상이 자네 스스로를 갉아먹을 거야. 그러기 전에 자네가 먼저 빠져나와야해. 오래된 벗으로서 해주는 마지막 충고이니 제발 흘려듣지 말게. 그럼 나 이만 가보겠네.” 여전히 씩씩거리며 화를 참지 못하는 그를 뒤로한 체 신술은 방에서 나와 버렸다. 이번이 벌써 3번째. 삼고초려라는 말에 기대를 걸어 애써 찾아온 걸음이었으나 또 허탕을 치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이곳에 찾아오지 않으리라. 신술은 그렇게 다짐했다. 반면 신술이 나가고 나서야 숨을 돌린 영기는 차츰 얼굴색이 평소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그도 오래된 친구를 이렇게 내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괜히 미안한 감정까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건 내 숙명 같은, 아니지. 업보의 되갚음. 그래. 업보의 되갚음이니까.’ 자신이 소유한 5층짜리의 빌딩. 그에게 남은 유일하고도 전부인 재산이다. 빌딩을 샀을 당시 영기는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그건 바로 학원. 그 계획은 당시 교육체계의 현실성과 맞물려 크게 성공을 했다. 수많은 학생이 수강신청을 했고, 그에 따라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같이 찾아왔다. 근데 누군가 말했던가.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학원 원장으로 있던 영기에게 15살의 여중생이 상담을 원했다. 상담의 주된 내용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생기는 자살충동이었다. 그 때 영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공부를 하다보면 무심코 드는 게 그런 잡생각들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근데 그런 생각이 끝내는 큰 화를 끼치고 말았다. 대충 회유시켰다고 생각한 그 여중생은 다음날 싸늘한 시체로 학원을 방문했다. 물론 시체를 처리하는 검식 반에서 온 방문이었지만 영기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영기에겐 과실이 없기에 법적 책임은 물지 않았으나 사회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굉장한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여중생의 부모는 밤낮으로 영기를 살인자로 몰며 괴롭혔고, 그 소문으로 학생들 대부분은 수강신청을 취소해 버린 것이다. 휑한 분위기의 강의실을 살피던 영기는 마치 마약을 한 듯 몽롱한 표정이었다. 신술은 그의 옆에서 계속 다독거렸으나 그는 식물인간인 마냥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1주일 정도가 흐르자 갑자기 영기는 정신을 차렸다. 재기의 희망을 북돋았던 신술은 기뻐했지만, 상황은 재기 쪽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그는 빌딩을 개인 보육원으로 만들었다. 집을 잃은, 혹은 길을 잃은 아이들을 받아주고는 무료로 숙식제공을 해주었다. 그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은 순수한 봉사였다. 처음에 신술은 그런 그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여중생에 대한 죄의식을 치유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그 죄의식이 몇 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순수한 무료 봉사는 어느덧 파산이라는 단어를 불러일으켰고, 이제는 간간히 들어오는 자원단체의 성금으로 삶을 연명해가는 실정이었다. 더 이상 보다 못한 신술은 애들을 다른 보육원으로 보내고 이 빌딩을 팔아버리자고 말했으나 간단히 거절당했다. 안 그래도 이 빌딩을 좋은 값에 사주겠다는 사업가가 나타났던 터라 조바심은 더욱 강해졌다. 영기의 아들에게 찾아가 부탁해봤지만 명의상 영기로 되어있어 아들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오늘로써 이렇게 3번이나 영기를 찾아간 것이었지만 모두 거절당한 것이다. 영기는 그런 신술의 마음을 알고는 있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이 보육원을 유지시켜 애들에게 베풀지 않으면 왠지 자신의 죄가 씻기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벌써 몇 년째 그 죄의식은 씻기지 않은 채 그대로 자신을 괴롭혔지만, 보육원을 없앨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웠다. 그나마 이렇게 봉사를 하기에 더욱 큰 공포심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휴우...” 길게 한숨을 내쉰 영기는 신술이 피고 간 담뱃재를 힐끔 쳐다보았다. 누군가 담배는 자신의 한숨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는데 그 말이 왜 그리도 달콤하게 느껴지는지. 비흡연자인 그는 담배를 펴서라도 한숨을 보고 싶다는 짧은 충동이 느껴졌다.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라고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며칠 후. 신술은 더 이상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자주 하던 전화마저 끊겼다. 영기는 깊은 외로움에 빠져버렸다. ‘그냥 신술의 말을 들을걸 그랬나...’ 아주 찰나의 약한 마음이 그를 아프게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애써 쓸쓸함을 지우며 차에 올라탔다. 평소대로의 퇴근이었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내를 빠져나와 한강대교를 반 정도 건너고 있을 쯤. 가라앉은 기분을 만회하기 위해 그는 라디오를 ON시켰다. 사연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인 듯 차분한 진행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 네. 오늘의 사연은...음...보내신 분의 이름과 주소가 없네요? 뭐 일단 뽑히셨으니 읽도록 할게요. - 볼륨을 5정도 높였다. 차분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학생이랍니다. 오늘은 다름이 아니오라...지지...지지직...- “라디오가 갑자기 왜 이러지?” 속을 긁는 잡음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 잡음 소리는 여러 번 주먹으로 치고 나서야 사라졌다. -...그랬답니다. 참으로 무책임했어요. 저는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영기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채널을 바꾼 게 아니었는데 아까의 그 차분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말했으나 그 사람은 그저 ‘스트레스가 쌓인 것뿐이란다. 걱정 마렴.’ 이랬어요. 자기가 뭘 안다고. 내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응...?” 이마와 손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시야가 흐려지고 손발이 떨려왔다. 분명한 아드레날린의 과다 분비였다. - 다 아저씨 때문이야. 아저씨 때문이라고. 아저씨가 날 죽인거야. 복수할 거야. 복수할 거야. 꺄르르르륵!!!!!!!!!!!!!!!!- 끼이이이익~~~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자 차가 앞으로 쏠리며 급정지했다. 급정지한 차는 잠시 후 덜컹거리며 좀 더 나아갔다. 뒤에 차가 제때 정지를 하지 못하고 살짝 들이박은 것이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인가? 당신 똑바로 운전 안 해?” 뒤차의 주인이 다가와 욕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으나 영기에겐 그 어느 것도 들리지 않았다. 미친 듯이 라디오를 두들기며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질러댔다. “아악...말도 안 돼!!! 아악!!! 이럴 수는 없어!!! 이건 거짓말이야!!!” 라디오는 부서지면서도 제 기능을 잃지 않았다. - 치지지지직...아. 그렇군요. 참 행복한 사연이네요. 두 분...치지직...행복하시고...치직... 오래오래 사시길 바랄게요.- 어느 순간부터 라디오에선 다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버지. 오늘은 자선단체 협회장님께서 오시는 날이에요. 언제까지 방에 틀어박혀 지내실 거예요?” 무더운 여름날인데도 영기는 온몸에 오한을 느끼며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손은 바르르 떠는 게 꼭 정신병자 같았다. 아니, 정신병자였다. 영락없는.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 밤마다...나를 찾아와서는...외롭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고...방 너머에 그 애가 있어. 그 애가 날 부른다고!!!” 쇳가루가 섞인 듯 탁한 음성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영기의 아들은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자신만의 죄의식에 갇혀서는 가족을 내팽개친 그가 미웠다. 저렇게 쇠약해진 상태로도 끝까지 건물만은 팔수 없다고 하는 것에 치가 떨렸다. “아버지. 제발 그런 환상에서 깨어나시고 현실을 좀 보세요. 제가 벌어오는 월급으론 아버지 뒷바라지조차 하기 힘들어요. 저도 이제 결혼해야 할 상대가 있단 말입니다. 그러지 말고 이 건물을 팔아요. 지금 아니면 더 이상 팔수도 없어요!!!” “아...안 돼!!! 그것만은 안 돼. 자선단체 협회장님은 네가 알아서 좀 둘러대라. 내가 몸이 좀 아프다고. 진기야. 절대로 이 건물을 팔아서는 안 된다. 알겠지? 흐으윽...” 그의 퀭한 눈 속에는 온갖 공포심이 가득 들어있었다. 진기도 그런 그에게 더 이상 닦달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방에서 나온 아들은 협회장에게 대충 둘러대고는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계속 저러시면 우린 파산하고 말거야...’ 커다란 걱정과 조바심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날 밤. 영기의 아내와 진기는 자선모임에 나갈 채비를 하였다. 원래는 영기도 같이 가야할 자리지만 상태가 상태인지라 둘만 준비를 한 것이다. 내심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아들인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했다. 아버지의 상태를 점검한 다음 다시 한 번 문단속을 하며 그들은 집에서 나왔다. 오들오들.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쓴 체 눈만 좌우로 돌리며 떨고 있는 영기. 그날의 라디오 사건 이후로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르는 번호에서 걸려온 전화에서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밤이면 밤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눈앞에 나타나기라도 할까봐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죄의식은 영기 스스로의 목을 졸라오고 있었다. 딩동댕동. “흐억...?” 밤 시각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진기가 온 건가? 으흠... 새벽에서야 온다고 했었는데.’ 그는 조심스럽게 이불에서 나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불을 켰지만 고장이 났는지 작동이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천천히 더듬으며 걸어갔다. “벌써 온 거냐? 늦는다고 했으면서...” 순간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열려던 영기는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며 멈춰 섰다. 찰나의 깨달음이 그를 공포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다. ‘진기라면 분명히 열쇠가 있을 텐데...? 그럼 다른 누군가라는 것? 이 밤중에 누가 찾아온 거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어느새 초인종 소리는 멈춰있었다. 신경이 곤두서고 머리가 쭈뼛해짐을 느꼈다. 숨소리마저 죽이며 문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문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밖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장난친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철커덕. 문의 자물쇠가 자기 맘대로 열리고 있었다. “으아악!!!” 영기는 뒤로 자빠지듯이 넘어지고 말았다. 첫 번째 자물쇠가 열리고, 그 다음으로 두 번째 자물쇠가 열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놀라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문이 스스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두 번째 자물쇠마저 열리자 철컥하며 문이 서서히 열렸다. 반쯤 문이 열리자 웬 소복차림의 여자 아이가 보였다. 긴 생머리를 앞으로 길게 늘어뜨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정신이 어질해져왔다. “너...너...너는...? 허...헉...헉...이건 꿈이야...현실이 아니야...” 문이 다 열리고 나서도 여자애는 그냥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아무런 대꾸도 미동도 없었다. 그게 더욱 큰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내...내 잘못이야. 그래. 내가 다 잘못했다고. 하지만 나도...나도 괴로웠어. 그 일로 얼마나 괴로웠는데!!! 제발...제발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영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든 여자아이의 얼굴은 코, 입이 없었고 눈만 있었다. 온통 살기로 가득한 눈.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영기의 커다란 울부짖음이 온 집안을 휘감았다. 띠리리리링. 그 때 집전화로 전화가 왔다. 갑자기 들려온 전화기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쳐다봤던 영기는 다시 급히 현관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이 닫혀있다. 언제 닫혔는지 모르지만 닫혀있었다. 공포에 찌들어있는 발을 억지로 이끌며 현관문 쪽으로 나갔다. 문을 열고 밖을 확인했으나 여자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영기가 사는 아파트는 가운데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그 좌우로 5세대가 사는 식이었다. 자신은 10층이었으며 왼쪽에서 3번째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여자애는 짧은 시간동안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죽음과 같은 나른함을 느꼈다. 띠리리리리리링...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무의식의 그가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전화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전화를 받게 했다. “여...보세요?” “자네 왜 그렇게 전화를 늦게 받나? 뭐하는데 그렇게 굼떠?” 오랜만에 들려온 친구의 목소리. 신술이었다. “쯧쯧쯧. 어쨌든 진기는 좀 늦을 거다. 굉장히 바쁜 일이 있다면서 나에게 안부전화를 부탁하더라고. 그렇다고 해서 네놈과 화해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응? 영기? 듣고 있나? 영기? 뭐라고 말 좀 해봐. 으응?” 뚜...욱...뚝...뚝... 모든 기운이 빠진 영기는 이미 기절해버린 다음이었다. 병원 침대에 앉아 멍하니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영기. 삶의 생기란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성 과다로 인한 쇼크 장애입니다. 해리성 장애가 약간 보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정상이십니다. 다만 휴우 증은 좀 있겠네요.” 진기는 의사의 말에 쓰디쓴 좌절감을 맛보았다. 병원 입원비만 해도 상당한 부담이었는데 빌딩 재산의 소유자인 아버지의 상태가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진기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영기에게 빌딩을 팔라고 윽박질렀으나 오히려 역효과였다. 겁에 질린 듯 몸만 움츠렸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졌다. 그렇게 처절한 인생의 굴레는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었으나 영기는 공포로 인해 방관만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응...응...그래그래...” “안 좋은 소식과 기쁜 소식이 있어요. 뭐부터 들으실래요?” 도리도리. 영기는 그저 고개만 좌우로 흔들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안 좋은 소식부터 말해 드릴게요. 귀신에 홀리셨다는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자선단체들이 기금을 중단했어요. 애들을 보살펴 주기는커녕 엄마와 저도 풀칠하며 살기는 글러먹었다는 거예요. 물론 아버지의 입원비는 더더욱 턱도 없고요.” “.....” “그럼 좋은 소식은 뭘까요? 그건...제가 이곳에 다신 안 오겠다는 거예요. 병원비는 제가 어떻게든 벌어서, 막노동이라도 해서 넣겠지만...다신...아버지 얼굴 보지 않을 거예요. 좋으시죠? 저같이 돈에 환장한 빌어먹을 자식 얼굴 안 봐도 되시잖아요. 흐...흑...저도 정말 정말 좋아요. 젠장.” 진기는 뜨거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분하고 치가 떨렸으나 그래도 아버지였다. 그렇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 정말 끝까지 그러실 건가요? 언제까지 저희를 힘들게 하실 거예요? 네? 제발요!!!” “진기야. 미안하구나...하지만 난...” “이런 씨펄. 앞으로는 내 이름 따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알겠어요? 젠장!!!” 굵은 눈물을 흘리며 진기는 병동에서 나와 버렸다. 영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서부터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로...못난 애비구나...죄의식에 빠져...두려운 나머지...가족을 힘들게 했어. 미안하다, 진기야...” 눈물은 관자놀이를 지나 서서히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난리가 났다. 병동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터라 더욱 큰일이었다. 원장은 바로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고, 진기는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왔다.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다짐했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갑자기 아버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진기는 살이 떨리는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끼며 생각에 빠졌다. 그로부터 며칠 후. 허름한 통나무집에 웬 손님이 찾아왔다. 말끔한 정장스타일의 남자는 살짝 머리를 긁으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오래된 듯 탁한 소리를 내며 문은 열렸고 남자는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후후. 확실히 가을이 다가오는가 보군.” 안으로 들어가자 한 남자가 몸을 흔들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낯선 남자가 들어온 지도 모르는 듯 했다. 정장의 남자는 그 옆에 서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영기. 오랜만일세.” 그제야 영기로 불린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과 다르게 얼굴은 말끔했다. “병원에서는 자네가 없어져서 얼마나 요란법석을 떠는지 알고나 있나? 특히나 자네 아들. 진기는 거의 매일 밤을 울부짖더군. 그 여. 자. 애처럼.” 정장의 남자는 씨익 한번 웃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이거 약간 쌀쌀 하구만. 불이라도 떼지 그랬나? 아하. 하긴. 이 마당에 따뜻함이 다 무슨 소용이람? 하하하하핫.” 구석 탁자위에 놓여있는 3개의 약통. 흰 색의 똑같은 약통으로써 제각기 질서 없는 모양인 것으로 보아 필요에 의한 의약품은 아닌 듯 했다. “신...술...?” “그래그래. 너의 오래된 친구. 신술일세.” “자네가...어떻게...?” “여기 있을 거라 예상했지. 이곳은 자네가 좋아하는 장소 아닌가?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라 생각했겠지. 내말이 틀렸는가?” 영기는 눈을 크게 뜨며 신술을 쳐다보았다. 그의 냉혹한 비웃음을 보고 있는 순간에도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공포심을 떨쳐버리려고 했으나 그건 어렵고...뭐 남는 것은 자살밖에 없었겠지. 그래. 그 정도면 약간 슬프긴 하지만 가장 원하던 결과이긴 했어.” “뭐...라고?” “하지만 나의 오래된 친구로서 그건 너무 비극적이기도 했어. 나 스스로도 약간은 죄책감이 들더군. 너처럼 나 역시 마음이 약해서 탈이야. 후훗.” 이해하려 했으나 매우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들이었다. 또 한편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빌딩을 사려고 했던 사업가가 제의를 했어. 건물을 팔게 만들면 나에게 5천만 원을 떼어주겠다고. 그래서 고민했지. 어떤 방법으로 건물을 팔게 만들지.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더군. 가장 쉬운 방법은 죽이는 것이겠지만 그건 좀 그렇지 않겠나? 그래도 친구인데. 게다가 사람 죽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거든. 킬러를 고용해도 최소 몇 백에서 몇 천이 들고 그외의 사고사나 독극물을 이용한다 쳐도 그것들은 타이밍이 어려운데다가 가격도 여간 만만치가 않아서. 결국 생각한 게 바로 귀신놀이였네.” “신...신술!!!” “하핫. 그렇게 언성 높여 부르지 않아도 나는 다 들을 수 있네. 어쨌든 성공적이었어. 정말 기가 막힌 계획이었지. 자네, 정말 귀신이 있다고 믿은 건가? 후훗. 귀신 따윈 없어.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줄까? 우선 나는 그 애와 비슷한 애를 구해서 연기를 좀 시켰네. 그 다음 녹음한 음성을 너의 카오디오에 설치했지. 무선 리모컨으로 조종해서 자네가 라디오를 켰을 때 그 녹음된 것을 타이밍 맞혀서 튼 거야. 그것에 50만원 들었네. 그리고 밤마다 너의 집에 설치해둔 소형스피커로 여자 아이에게서 녹음해둔 테이프를 틀었지. 또 그것에 20. 마지막 방법은 어떻게 했는지 짐작하겠나?” 묵묵부답의 영기. 그저 멍하니 신술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애를 분장시킨 후 연기를 시킨 거야. 초인종을 누른 후 바닥에 눕듯이 앉아있으면 문구멍으로는 볼 수 없어. 그때 아이가 가진 열쇠로 문을 열고 너를 깜짝 놀라게 한 후 내가 전화를 걸은 거야. 분명히 전화벨 소리에 반응할거라 생각했지. 그 사이에 아이는 문을 닫고 난 옆집에서 아이를 낚아채기만 하면 상황종료. 분장비와 옆집 주인에게 준 돈으로 30. 총 100만원. 어때? 정말 싸게 먹히면서도 효과적이었지?” 신술은 비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서류와 담배를 꺼냈다. 서류를 영기에게 던진 그는 담배를 하나 물며 불을 붙였다. “저 약으로 자살하려고 했었나? 쯧쯧쯧. 자네라면 분명 그럴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여간 찜찜한 게 아니라서. 그냥 그것에 사인을 해. 죽을 필요도 없고 죄책감 느낄 필요도 더 이상은 없어. 이제까지 모두 내 연극이었다고. 귀신 따윈 없는 거야. 근데도 애써서 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찌 보면 이건 너를 위한 일이기도 했어. 안 그런가, 영기?” 깊숙이 마셨다가 내뱉은 담배연기가 허공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영기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진기에게 전화를 좀 해봐야겠어. 애써 명의를 바꿔서 계약을 해야 하는 수고 따윈 필요 없다고. 그리고 자네도 이제 집으로 가야하지 않겠나? 하핫.” 영기의 시선은 다시 바닥에 떨어진 서류로 향했다. 이제야 확연해지는 모든 일들. 가슴언저리가 탁해짐을 느꼈다. “어어? 진기? 아아. 다름이 아니라. 명의 이전 말이지. 그거 할 필요 없을 것 같아. 영기한테 직접 사인을 받으면 되거든. 응? 나랑 같이 있는데?” 전화를 하며 담배를 피던 신술의 손이 일순간 멈췄다. 들이마신 담배 연기는 그대로 폐에 갇혀버렸다. “뭐라고?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내 옆에서 서류를 쳐다보고 있다니까. 응? 영기가 어제 병원으로 실려 왔다고? 약물 과다 복용의 죽은 시체로? 그럼 지금...내 옆의 있는 건...” 담배를 손에서 놓치고 만 신술. 전화기 너머에서 진기의 목소리가 애타게 들려왔다. “신술. 네 말이 맞아. 그 여자아이의 원혼은 처음부터 없었어. 그저 내가 만든 죄책감이었을 뿐. 하지만 내가 본 것들은 무엇일까 정말로 궁금했었다네. 그래서 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방황하고 있었는데. 고마우이. 신술.” 전화기마저 떨어뜨린 신술은 극심한 공포가 밀려옴을 느꼈다. 숨을 쉴 때마다 희멀건 입김이 새어나왔다. 담배 연기가 아닌 새하얀 입김. 단지 추워서 나오는 입김과는 다르게 매우 선명하고 뚜렷했다. 영혼이 빠져나오는 듯 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한숨. 늘 보고 싶었는데...지금에서야 보는구먼.” 천천히 일어나서는 신술에게로 다가가는 영기. 말끔했던 얼굴은 어느 샌가 흉악하게 변해있었다. “담배 없이 보는 자신의 한숨은 자네도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안 그런가, 신술?” 숨이 막혀오는 한기. 간헐적인 입김만이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다른 이야기http://pann.nate.com/b315723228http://pann.nate.com/b315737692http://pann.nate.com/b315738286http://pann.nate.com/b315775792http://pann.nate.com/b315775938http://pann.nate.com/b315783901http://pann.nate.com/b315806213http://pann.nate.com/b315825660http://pann.nate.com/b315839806http://pann.nate.com/b315840325http://pann.nate.com/b315849447http://pann.nate.com/b315946845http://pann.nate.com/b316006853 8
[단편]알 수 없는 일, 궁금해해요.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무조건해라 님 >
** 심심풀이 넌센스 퀴즈~
창문이 100개가 있는데 그중에 2개가 깨지면 뭘까요?
-알 수 없는 일, 궁금해해요.-
영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이 흡사 석류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분노해 있다는 것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당장 나가. 당장!!!”
“이보게 영기. 언제까지 이런 근근한 삶을 살 건가? 이제 그만 잊어버리게. 제발 좀...”
“근근한 삶? 너야말로 탐욕에 눈이 먼 인간 아닌가? 그딴 기름진 탐욕에 쫓겨 사느니 가난한
지금의 삶을 살겠네!!!”
10년 된 벗의 충고는 그렇게 씨알도 먹히지 않은 체 무시당해버렸다.
그는 귓속에 충고를 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아이. 자네가 죽인 게 아닐세. 자네가 죽인 게 아니라고. 도대체 언제까지 그 애의 환상만을
쫓다 죽을 건가? 그만 잊어버려. 한심한 인간아.”
“하핫. 신술.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 애는 내가 죽인거야. 나를 둘러싼 모두가 그랬고 나마저도
인정했어. 내가 그 아이를 죽였기에 지금의 내 삶은 업보일 뿐이라고. 현생에서의 업보.
그것뿐이야.”
신술이라 불린 남자.
눈이 파르르 떨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완전한 포기가 아닌 약간의 분노가 섞인 후회.
몇 번이나 겪은 쓰디쓴 실패에서 우러나오는 애타는 마음이었다.
“좋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게. 언젠가는 자네의 그 환상이
자네 스스로를 갉아먹을 거야. 그러기 전에 자네가 먼저 빠져나와야해. 오래된 벗으로서
해주는 마지막 충고이니 제발 흘려듣지 말게. 그럼 나 이만 가보겠네.”
여전히 씩씩거리며 화를 참지 못하는 그를 뒤로한 체 신술은 방에서 나와 버렸다.
이번이 벌써 3번째.
삼고초려라는 말에 기대를 걸어 애써 찾아온 걸음이었으나 또 허탕을 치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이곳에 찾아오지 않으리라.
신술은 그렇게 다짐했다.
반면 신술이 나가고 나서야 숨을 돌린 영기는 차츰 얼굴색이 평소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그도 오래된 친구를 이렇게 내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괜히 미안한 감정까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건 내 숙명 같은, 아니지. 업보의 되갚음. 그래. 업보의 되갚음이니까.’
자신이 소유한 5층짜리의 빌딩.
그에게 남은 유일하고도 전부인 재산이다.
빌딩을 샀을 당시 영기는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그건 바로 학원.
그 계획은 당시 교육체계의 현실성과 맞물려 크게 성공을 했다.
수많은 학생이 수강신청을 했고, 그에 따라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같이 찾아왔다.
근데 누군가 말했던가.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학원 원장으로 있던 영기에게 15살의 여중생이 상담을 원했다.
상담의 주된 내용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생기는 자살충동이었다.
그 때 영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공부를 하다보면 무심코 드는 게 그런 잡생각들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근데 그런 생각이 끝내는 큰 화를 끼치고 말았다.
대충 회유시켰다고 생각한 그 여중생은 다음날 싸늘한 시체로 학원을 방문했다.
물론 시체를 처리하는 검식 반에서 온 방문이었지만 영기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영기에겐 과실이 없기에 법적 책임은 물지 않았으나
사회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굉장한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여중생의 부모는 밤낮으로 영기를 살인자로 몰며 괴롭혔고,
그 소문으로 학생들 대부분은 수강신청을 취소해 버린 것이다.
휑한 분위기의 강의실을 살피던 영기는 마치 마약을 한 듯 몽롱한 표정이었다.
신술은 그의 옆에서 계속 다독거렸으나 그는 식물인간인 마냥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1주일 정도가 흐르자 갑자기 영기는 정신을 차렸다.
재기의 희망을 북돋았던 신술은 기뻐했지만, 상황은 재기 쪽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그는 빌딩을 개인 보육원으로 만들었다.
집을 잃은, 혹은 길을 잃은 아이들을 받아주고는 무료로 숙식제공을 해주었다.
그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은 순수한 봉사였다.
처음에 신술은 그런 그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여중생에 대한 죄의식을 치유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그 죄의식이 몇 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순수한 무료 봉사는 어느덧 파산이라는 단어를 불러일으켰고,
이제는 간간히 들어오는 자원단체의 성금으로 삶을 연명해가는 실정이었다.
더 이상 보다 못한 신술은 애들을 다른 보육원으로 보내고
이 빌딩을 팔아버리자고 말했으나 간단히 거절당했다.
안 그래도 이 빌딩을 좋은 값에 사주겠다는 사업가가 나타났던 터라 조바심은 더욱 강해졌다.
영기의 아들에게 찾아가 부탁해봤지만
명의상 영기로 되어있어 아들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오늘로써 이렇게 3번이나 영기를 찾아간 것이었지만 모두 거절당한 것이다.
영기는 그런 신술의 마음을 알고는 있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이 보육원을 유지시켜 애들에게 베풀지 않으면 왠지 자신의 죄가 씻기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벌써 몇 년째 그 죄의식은 씻기지 않은 채 그대로 자신을 괴롭혔지만,
보육원을 없앨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웠다.
그나마 이렇게 봉사를 하기에 더욱 큰 공포심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휴우...”
길게 한숨을 내쉰 영기는 신술이 피고 간 담뱃재를 힐끔 쳐다보았다.
누군가 담배는 자신의 한숨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는데
그 말이 왜 그리도 달콤하게 느껴지는지.
비흡연자인 그는 담배를 펴서라도 한숨을 보고 싶다는 짧은 충동이 느껴졌다.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라고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며칠 후.
신술은 더 이상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자주 하던 전화마저 끊겼다.
영기는 깊은 외로움에 빠져버렸다.
‘그냥 신술의 말을 들을걸 그랬나...’
아주 찰나의 약한 마음이 그를 아프게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애써 쓸쓸함을 지우며 차에 올라탔다.
평소대로의 퇴근이었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내를 빠져나와 한강대교를 반 정도 건너고 있을 쯤.
가라앉은 기분을 만회하기 위해 그는 라디오를 ON시켰다.
사연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인 듯 차분한 진행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 네. 오늘의 사연은...음...보내신 분의 이름과 주소가 없네요? 뭐 일단 뽑히셨으니
읽도록 할게요. -
볼륨을 5정도 높였다.
차분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학생이랍니다. 오늘은 다름이 아니오라...지지...지지직...-
“라디오가 갑자기 왜 이러지?”
속을 긁는 잡음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 잡음 소리는 여러 번 주먹으로 치고 나서야 사라졌다.
-...그랬답니다. 참으로 무책임했어요. 저는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영기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채널을 바꾼 게 아니었는데 아까의 그 차분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말했으나 그 사람은 그저 ‘스트레스가 쌓인 것뿐이란다. 걱정 마렴.’
이랬어요. 자기가 뭘 안다고. 내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응...?”
이마와 손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시야가 흐려지고 손발이 떨려왔다.
분명한 아드레날린의 과다 분비였다.
- 다 아저씨 때문이야. 아저씨 때문이라고. 아저씨가 날 죽인거야. 복수할 거야. 복수할 거야.
꺄르르르륵!!!!!!!!!!!!!!!!-
끼이이이익~~~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자 차가 앞으로 쏠리며 급정지했다.
급정지한 차는 잠시 후 덜컹거리며 좀 더 나아갔다.
뒤에 차가 제때 정지를 하지 못하고 살짝 들이박은 것이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인가? 당신 똑바로 운전 안 해?”
뒤차의 주인이 다가와 욕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으나 영기에겐 그 어느 것도 들리지 않았다.
미친 듯이 라디오를 두들기며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질러댔다.
“아악...말도 안 돼!!! 아악!!! 이럴 수는 없어!!! 이건 거짓말이야!!!”
라디오는 부서지면서도 제 기능을 잃지 않았다.
- 치지지지직...아. 그렇군요. 참 행복한 사연이네요. 두 분...치지직...행복하시고...치직...
오래오래 사시길 바랄게요.-
어느 순간부터 라디오에선 다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버지. 오늘은 자선단체 협회장님께서 오시는 날이에요. 언제까지 방에 틀어박혀 지내실
거예요?”
무더운 여름날인데도 영기는 온몸에 오한을 느끼며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손은 바르르 떠는 게 꼭 정신병자 같았다.
아니, 정신병자였다.
영락없는.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 밤마다...나를 찾아와서는...외롭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고...방
너머에 그 애가 있어. 그 애가 날 부른다고!!!”
쇳가루가 섞인 듯 탁한 음성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영기의 아들은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자신만의 죄의식에 갇혀서는 가족을 내팽개친 그가 미웠다.
저렇게 쇠약해진 상태로도 끝까지 건물만은 팔수 없다고 하는 것에 치가 떨렸다.
“아버지. 제발 그런 환상에서 깨어나시고 현실을 좀 보세요. 제가 벌어오는 월급으론 아버지
뒷바라지조차 하기 힘들어요. 저도 이제 결혼해야 할 상대가 있단 말입니다. 그러지 말고 이
건물을 팔아요. 지금 아니면 더 이상 팔수도 없어요!!!”
“아...안 돼!!! 그것만은 안 돼. 자선단체 협회장님은 네가 알아서 좀 둘러대라. 내가 몸이 좀
아프다고. 진기야. 절대로 이 건물을 팔아서는 안 된다. 알겠지? 흐으윽...”
그의 퀭한 눈 속에는 온갖 공포심이 가득 들어있었다.
진기도 그런 그에게 더 이상 닦달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방에서 나온 아들은 협회장에게 대충 둘러대고는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계속 저러시면 우린 파산하고 말거야...’
커다란 걱정과 조바심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날 밤.
영기의 아내와 진기는 자선모임에 나갈 채비를 하였다.
원래는 영기도 같이 가야할 자리지만 상태가 상태인지라 둘만 준비를 한 것이다.
내심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아들인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했다.
아버지의 상태를 점검한 다음 다시 한 번 문단속을 하며 그들은 집에서 나왔다.
오들오들.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쓴 체 눈만 좌우로 돌리며 떨고 있는 영기.
그날의 라디오 사건 이후로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르는 번호에서 걸려온 전화에서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밤이면 밤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눈앞에 나타나기라도 할까봐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죄의식은 영기 스스로의 목을 졸라오고 있었다.
딩동댕동.
“흐억...?”
밤 시각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진기가 온 건가? 으흠... 새벽에서야 온다고 했었는데.’
그는 조심스럽게 이불에서 나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불을 켰지만 고장이 났는지 작동이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천천히 더듬으며 걸어갔다.
“벌써 온 거냐? 늦는다고 했으면서...”
순간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열려던 영기는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며 멈춰 섰다.
찰나의 깨달음이 그를 공포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다.
‘진기라면 분명히 열쇠가 있을 텐데...? 그럼 다른 누군가라는 것? 이 밤중에 누가 찾아온 거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어느새 초인종 소리는 멈춰있었다.
신경이 곤두서고 머리가 쭈뼛해짐을 느꼈다.
숨소리마저 죽이며 문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문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밖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장난친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철커덕.
문의 자물쇠가 자기 맘대로 열리고 있었다.
“으아악!!!”
영기는 뒤로 자빠지듯이 넘어지고 말았다.
첫 번째 자물쇠가 열리고, 그 다음으로 두 번째 자물쇠가 열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놀라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문이 스스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두 번째 자물쇠마저 열리자 철컥하며 문이 서서히 열렸다.
반쯤 문이 열리자 웬 소복차림의 여자 아이가 보였다.
긴 생머리를 앞으로 길게 늘어뜨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정신이 어질해져왔다.
“너...너...너는...? 허...헉...헉...이건 꿈이야...현실이 아니야...”
문이 다 열리고 나서도 여자애는 그냥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아무런 대꾸도 미동도 없었다.
그게 더욱 큰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내...내 잘못이야. 그래. 내가 다 잘못했다고. 하지만 나도...나도 괴로웠어. 그 일로 얼마나
괴로웠는데!!! 제발...제발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영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든 여자아이의 얼굴은 코, 입이 없었고 눈만 있었다.
온통 살기로 가득한 눈.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영기의 커다란 울부짖음이 온 집안을 휘감았다.
띠리리리링.
그 때 집전화로 전화가 왔다.
갑자기 들려온 전화기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쳐다봤던 영기는 다시 급히 현관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이 닫혀있다.
언제 닫혔는지 모르지만 닫혀있었다.
공포에 찌들어있는 발을 억지로 이끌며 현관문 쪽으로 나갔다.
문을 열고 밖을 확인했으나 여자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영기가 사는 아파트는 가운데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그 좌우로 5세대가 사는 식이었다.
자신은 10층이었으며 왼쪽에서 3번째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여자애는 짧은 시간동안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죽음과 같은 나른함을 느꼈다.
띠리리리리리링...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무의식의 그가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전화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전화를 받게 했다.
“여...보세요?”
“자네 왜 그렇게 전화를 늦게 받나? 뭐하는데 그렇게 굼떠?”
오랜만에 들려온 친구의 목소리.
신술이었다.
“쯧쯧쯧. 어쨌든 진기는 좀 늦을 거다. 굉장히 바쁜 일이 있다면서 나에게 안부전화를
부탁하더라고. 그렇다고 해서 네놈과 화해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응? 영기?
듣고 있나? 영기? 뭐라고 말 좀 해봐. 으응?”
뚜...욱...뚝...뚝...
모든 기운이 빠진 영기는 이미 기절해버린 다음이었다.
병원 침대에 앉아 멍하니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영기.
삶의 생기란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성 과다로 인한 쇼크 장애입니다. 해리성 장애가 약간 보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정상이십니다. 다만 휴우 증은 좀 있겠네요.”
진기는 의사의 말에 쓰디쓴 좌절감을 맛보았다.
병원 입원비만 해도 상당한 부담이었는데
빌딩 재산의 소유자인 아버지의 상태가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진기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영기에게 빌딩을 팔라고 윽박질렀으나 오히려 역효과였다.
겁에 질린 듯 몸만 움츠렸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졌다.
그렇게 처절한 인생의 굴레는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었으나
영기는 공포로 인해 방관만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응...응...그래그래...”
“안 좋은 소식과 기쁜 소식이 있어요. 뭐부터 들으실래요?”
도리도리.
영기는 그저 고개만 좌우로 흔들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안 좋은 소식부터 말해 드릴게요. 귀신에 홀리셨다는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자선단체들이
기금을 중단했어요. 애들을 보살펴 주기는커녕 엄마와 저도 풀칠하며 살기는 글러먹었다는
거예요. 물론 아버지의 입원비는 더더욱 턱도 없고요.”
“.....”
“그럼 좋은 소식은 뭘까요? 그건...제가 이곳에 다신 안 오겠다는 거예요. 병원비는 제가
어떻게든 벌어서, 막노동이라도 해서 넣겠지만...다신...아버지 얼굴 보지 않을 거예요.
좋으시죠? 저같이 돈에 환장한 빌어먹을 자식 얼굴 안 봐도 되시잖아요. 흐...흑...저도 정말
정말 좋아요. 젠장.”
진기는 뜨거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분하고 치가 떨렸으나 그래도 아버지였다.
그렇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 정말 끝까지 그러실 건가요? 언제까지 저희를 힘들게 하실 거예요? 네? 제발요!!!”
“진기야. 미안하구나...하지만 난...”
“이런 씨펄. 앞으로는 내 이름 따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알겠어요? 젠장!!!”
굵은 눈물을 흘리며 진기는 병동에서 나와 버렸다.
영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서부터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로...못난 애비구나...죄의식에 빠져...두려운 나머지...가족을 힘들게 했어. 미안하다,
진기야...”
눈물은 관자놀이를 지나 서서히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난리가 났다.
병동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터라 더욱 큰일이었다.
원장은 바로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고, 진기는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왔다.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다짐했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갑자기 아버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진기는 살이 떨리는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끼며 생각에 빠졌다.
그로부터 며칠 후.
허름한 통나무집에 웬 손님이 찾아왔다.
말끔한 정장스타일의 남자는 살짝 머리를 긁으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오래된 듯 탁한 소리를 내며 문은 열렸고 남자는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후후. 확실히 가을이 다가오는가 보군.”
안으로 들어가자 한 남자가 몸을 흔들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낯선 남자가 들어온 지도 모르는 듯 했다.
정장의 남자는 그 옆에 서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영기. 오랜만일세.”
그제야 영기로 불린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과 다르게 얼굴은 말끔했다.
“병원에서는 자네가 없어져서 얼마나 요란법석을 떠는지 알고나 있나? 특히나 자네 아들.
진기는 거의 매일 밤을 울부짖더군. 그 여. 자. 애처럼.”
정장의 남자는 씨익 한번 웃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이거 약간 쌀쌀 하구만. 불이라도 떼지 그랬나? 아하. 하긴. 이 마당에 따뜻함이 다 무슨
소용이람? 하하하하핫.”
구석 탁자위에 놓여있는 3개의 약통.
흰 색의 똑같은 약통으로써 제각기 질서 없는 모양인 것으로 보아 필요에 의한 의약품은
아닌 듯 했다.
“신...술...?”
“그래그래. 너의 오래된 친구. 신술일세.”
“자네가...어떻게...?”
“여기 있을 거라 예상했지. 이곳은 자네가 좋아하는 장소 아닌가?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라 생각했겠지. 내말이 틀렸는가?”
영기는 눈을 크게 뜨며 신술을 쳐다보았다.
그의 냉혹한 비웃음을 보고 있는 순간에도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공포심을 떨쳐버리려고 했으나 그건 어렵고...뭐 남는 것은 자살밖에 없었겠지.
그래. 그 정도면 약간 슬프긴 하지만 가장 원하던 결과이긴 했어.”
“뭐...라고?”
“하지만 나의 오래된 친구로서 그건 너무 비극적이기도 했어. 나 스스로도 약간은 죄책감이
들더군. 너처럼 나 역시 마음이 약해서 탈이야. 후훗.”
이해하려 했으나 매우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들이었다.
또 한편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빌딩을 사려고 했던 사업가가 제의를 했어. 건물을 팔게 만들면 나에게 5천만 원을
떼어주겠다고. 그래서 고민했지. 어떤 방법으로 건물을 팔게 만들지.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더군. 가장 쉬운 방법은 죽이는 것이겠지만 그건 좀 그렇지 않겠나? 그래도 친구인데.
게다가 사람 죽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거든. 킬러를 고용해도 최소 몇 백에서 몇 천이
들고 그외의 사고사나 독극물을 이용한다 쳐도 그것들은 타이밍이 어려운데다가 가격도
여간 만만치가 않아서. 결국 생각한 게 바로 귀신놀이였네.”
“신...신술!!!”
“하핫. 그렇게 언성 높여 부르지 않아도 나는 다 들을 수 있네. 어쨌든 성공적이었어. 정말
기가 막힌 계획이었지. 자네, 정말 귀신이 있다고 믿은 건가? 후훗. 귀신 따윈 없어.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줄까? 우선 나는 그 애와 비슷한 애를 구해서 연기를 좀 시켰네. 그 다음
녹음한 음성을 너의 카오디오에 설치했지. 무선 리모컨으로 조종해서 자네가 라디오를 켰을
때 그 녹음된 것을 타이밍 맞혀서 튼 거야. 그것에 50만원 들었네. 그리고 밤마다 너의 집에
설치해둔 소형스피커로 여자 아이에게서 녹음해둔 테이프를 틀었지. 또 그것에 20. 마지막
방법은 어떻게 했는지 짐작하겠나?”
묵묵부답의 영기.
그저 멍하니 신술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애를 분장시킨 후 연기를 시킨 거야. 초인종을 누른 후 바닥에 눕듯이 앉아있으면
문구멍으로는 볼 수 없어. 그때 아이가 가진 열쇠로 문을 열고 너를 깜짝 놀라게 한 후 내가
전화를 걸은 거야. 분명히 전화벨 소리에 반응할거라 생각했지. 그 사이에 아이는 문을 닫고
난 옆집에서 아이를 낚아채기만 하면 상황종료. 분장비와 옆집 주인에게 준 돈으로 30.
총 100만원. 어때? 정말 싸게 먹히면서도 효과적이었지?”
신술은 비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서류와 담배를 꺼냈다.
서류를 영기에게 던진 그는 담배를 하나 물며 불을 붙였다.
“저 약으로 자살하려고 했었나? 쯧쯧쯧. 자네라면 분명 그럴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여간
찜찜한 게 아니라서. 그냥 그것에 사인을 해. 죽을 필요도 없고 죄책감 느낄 필요도 더 이상은
없어. 이제까지 모두 내 연극이었다고. 귀신 따윈 없는 거야. 근데도 애써서 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찌 보면 이건 너를 위한 일이기도 했어. 안 그런가, 영기?”
깊숙이 마셨다가 내뱉은 담배연기가 허공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영기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진기에게 전화를 좀 해봐야겠어. 애써 명의를 바꿔서 계약을 해야 하는 수고 따윈 필요
없다고. 그리고 자네도 이제 집으로 가야하지 않겠나? 하핫.”
영기의 시선은 다시 바닥에 떨어진 서류로 향했다.
이제야 확연해지는 모든 일들.
가슴언저리가 탁해짐을 느꼈다.
“어어? 진기? 아아. 다름이 아니라. 명의 이전 말이지. 그거 할 필요 없을 것 같아. 영기한테
직접 사인을 받으면 되거든. 응? 나랑 같이 있는데?”
전화를 하며 담배를 피던 신술의 손이 일순간 멈췄다.
들이마신 담배 연기는 그대로 폐에 갇혀버렸다.
“뭐라고?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내 옆에서 서류를 쳐다보고 있다니까. 응? 영기가
어제 병원으로 실려 왔다고? 약물 과다 복용의 죽은 시체로? 그럼 지금...내 옆의 있는 건...”
담배를 손에서 놓치고 만 신술.
전화기 너머에서 진기의 목소리가 애타게 들려왔다.
“신술. 네 말이 맞아. 그 여자아이의 원혼은 처음부터 없었어. 그저 내가 만든 죄책감이었을 뿐.
하지만 내가 본 것들은 무엇일까 정말로 궁금했었다네. 그래서 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방황하고
있었는데. 고마우이. 신술.”
전화기마저 떨어뜨린 신술은 극심한 공포가 밀려옴을 느꼈다.
숨을 쉴 때마다 희멀건 입김이 새어나왔다.
담배 연기가 아닌 새하얀 입김.
단지 추워서 나오는 입김과는 다르게 매우 선명하고 뚜렷했다.
영혼이 빠져나오는 듯 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한숨. 늘 보고 싶었는데...지금에서야 보는구먼.”
천천히 일어나서는 신술에게로 다가가는 영기.
말끔했던 얼굴은 어느 샌가 흉악하게 변해있었다.
“담배 없이 보는 자신의 한숨은 자네도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안 그런가, 신술?”
숨이 막혀오는 한기.
간헐적인 입김만이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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