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보면 우리 가족, 내가 온전한 신체로도 너무 불평 불만을 갖고 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 글은 장애인문화협회에서 발행하는 장애인, 노인, 다문화 가정,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시사, 문화 종합 월간지인 월간 '푸른하늘' 6월호에서 발췌한 양정근 편집위원의 에세이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
최근 한 언론매체를 통해 시각 장애우 부부가 딸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엄마는 선천적 녹내장으로 인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장애를, 그리고 아빠는 심한 약시로 거의 보이지 않는 장애 4급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부모 중 한 사람만 장애를 갖고 있어도 아이를 키우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사 안타까움과 함께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 서은이의 나이는 5살이다. 한창 엄마의 손길을 필요하고 호기심도 많을 나이이다. '미운 네살'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맘때면 엄마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제 고집만 앞세울 때라 엄마에겐 무척 버거울 때이다. 잎을 보지 못하는 엄마에게는 서은이가 묻기 보다는 엄마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아이였다.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부모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서은이 또한 자꾸만 더 짜증을 내고 엄마에게는 더 반항적인 행동을 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그런 아이의 행동이 혹여 장애를 갖고 있는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에 대한 편견으로 아이가 상처 받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였다, 그래서 항상 엄한 아빠로서만 아이를 대하였다. 그리고 엄마는 자신의 장애로 인해 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도우미 이모에게만 의존할 뿐이었다.
하지만 딸 서은이에게 필요한 것은 엄한 아빠도 아니고 자신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 엄마도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을 한 없이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엄마, 아빠가 아닐까 한다. 서은이 엄마, 아빠가 걱정하고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돈독히 형성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장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이 아이가 나중에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자양분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서은이가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가 아닌 엄마, 아빠라는 그 존재만으로도 서은에게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 서로 얼굴을 부비고 함께 놀아주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어쩜 가장 쉬울 수도 있지만 또 가장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비싼 장난감을 하나 던져주고 부모 노릇을 다한것처럼 마음을 놓는 것은 절대 우리 아이를 행복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따라서 시각 장애를 갖고 있다고 아이에게 주는 사랑 또한 장애를 갖고 있을 이유는 없다. 아이를 향한 사랑은 결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장애를 아이를 향한 사랑에마저 장애물로 만들지 않았음 한다.
더 넓고 더 큰 사랑을 아이에게 쏟았으면 한다.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은 결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모의 무한한 사랑이다.
**장애를 가진 부모이건, 신체적인 불편함이 전혀 없는 부모이건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주는 마음에는 장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짠해지는 에세이였습니다. 포도학사 회원님들, 수혜자분들. 그리고 모든 분들. 장애없는 사랑의 마음을 전해보세요~
포도학사 홈페이지에에서 퍼온 감동글입니다.
요즘같이 삭막한 사회에 좋은 글들을 많이 봐야 할 거 같아요~
포도학사라고 교육컨텐츠 제작해서 어려운 아이들에게 제공해 주는 곳이 있는데요~
포도학사 홈페이지 들어갔다가 좋은 글 있어서 올립니다.
출처를 밝히니 무단 펌은 아니겠죠?
이런 글을 보면 우리 가족, 내가 온전한 신체로도 너무 불평 불만을 갖고 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 글은 장애인문화협회에서 발행하는 장애인, 노인, 다문화 가정,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시사, 문화 종합 월간지인 월간 '푸른하늘' 6월호에서 발췌한 양정근 편집위원의 에세이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
최근 한 언론매체를 통해 시각 장애우 부부가 딸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엄마는 선천적 녹내장으로 인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장애를, 그리고 아빠는 심한 약시로 거의 보이지 않는 장애 4급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부모 중 한 사람만 장애를 갖고 있어도 아이를 키우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사 안타까움과 함께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 서은이의 나이는 5살이다. 한창 엄마의 손길을 필요하고 호기심도 많을 나이이다. '미운 네살'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맘때면 엄마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제 고집만 앞세울 때라 엄마에겐 무척 버거울 때이다. 잎을 보지 못하는 엄마에게는 서은이가 묻기 보다는 엄마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아이였다.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부모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서은이 또한 자꾸만 더 짜증을 내고 엄마에게는 더 반항적인 행동을 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그런 아이의 행동이 혹여 장애를 갖고 있는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에 대한 편견으로 아이가 상처 받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였다, 그래서 항상 엄한 아빠로서만 아이를 대하였다. 그리고 엄마는 자신의 장애로 인해 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도우미 이모에게만 의존할 뿐이었다.
하지만 딸 서은이에게 필요한 것은 엄한 아빠도 아니고 자신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 엄마도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을 한 없이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엄마, 아빠가 아닐까 한다. 서은이 엄마, 아빠가 걱정하고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돈독히 형성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장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이 아이가 나중에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자양분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서은이가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가 아닌 엄마, 아빠라는 그 존재만으로도 서은에게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 서로 얼굴을 부비고 함께 놀아주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어쩜 가장 쉬울 수도 있지만 또 가장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비싼 장난감을 하나 던져주고 부모 노릇을 다한것처럼 마음을 놓는 것은 절대 우리 아이를 행복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따라서 시각 장애를 갖고 있다고 아이에게 주는 사랑 또한 장애를 갖고 있을 이유는 없다. 아이를 향한 사랑은 결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장애를 아이를 향한 사랑에마저 장애물로 만들지 않았음 한다.
더 넓고 더 큰 사랑을 아이에게 쏟았으면 한다.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은 결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모의 무한한 사랑이다.
**장애를 가진 부모이건, 신체적인 불편함이 전혀 없는 부모이건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주는 마음에는 장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짠해지는 에세이였습니다. 포도학사 회원님들, 수혜자분들. 그리고 모든 분들. 장애없는 사랑의 마음을 전해보세요~
마음의 장애보다 더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