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희대의 살인마 9탄★★★★

호랄히요2012.06.26
조회146,783

안녕하세요

즐겁지 않은 화요일이네요ㅠㅠ

9탄을 쓰기 전에 저번판에 남겨주신 댓글과 궁금한 사항을 적겠습니다.

표창원 교수님의 '한국의 연쇄살인' 이라는 책을 가지고 있지않으며,읽어보지못했어요.

토씨하나 틀리지않고 베낀것같다고 했는데 베끼지 않은점을 알려드립니다.당황

 

출처를 정확히 밝혀드리기 어렵네요..

우선 모든 검색사이트의 지식백과 위키백과,그것이알고싶다 프로그램,블로그를 참조합니다.

수많은 블로그를보고 추가할점,삭제할부분은 삭제를 하는데요 블로그들중에도

한줄만 참조하는곳도 있고 사건경위만 참조하는 경우가있어 정확히 출처를 밝히기 힘들어요

 

한마디로 하나의 블로그를 보고 복사+붙여넣기가 아니라 수많은 블로그를 하나하나

보고 요약 > 추가>요약>추가>정리>최종판 이렇게해서 글이 올라가기 때문에

정확한 출처를 말씀드리기 어려운점 양해바랍니다.표창원 교수님의 책을보고 그대로

베끼진 않으니 이점 오해없으셨으면하구요 근데 왜 똑같냐고 하실분들 분명 계실텐데

(완전히 똑같진않을텐데ㅠㅠ저도 나름대로 추가하는부분이 많거든요ㅠㅠ)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 대부분이 같은글이 무수히 많은데 공통된 글인 표창원 교수님의 책을보고

올린글을 제가 가져와서 적었나봐요당황 저도 나름대로 많이 조사하니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엉엉

 

168女 일촌신청했어요윙크이름이 너무이쁘시던데 일촌신청 감사하구요!!

모든분들 제홈피에 볼건 없지만 일촌신청 환영이에요

 

 

ㅇㅇ님 댓글하나 달았다고 미워하지 않아요......................ㅎ....ㅎㅎㅎ..ㅎㅎ통곡

 

 

어의없네님부끄 말이필요없네요 ★최고!!!!!!!!!!!!★

 

출처관련 글을 적느라 글이 길어졌네요ㅠㅠ

원래 김길태에 대해 쓰려고했으나 자료부족으로인해...

오늘은 잊지못할 5.18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쓰도록..하겠습니다..

댓글남겨주신 사건들도 자료를 찾아서 올릴게요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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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잊지못할 광주학살

 

 

5.18 민주화운동 :

유신 체제의 폭압정치에 눌려왔던 국민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남 및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 운동입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후 유신 체제의 폭압정치에 눌려왔던 국민들로인해

민주화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 그러나 12.12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은

국민이 원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고

 

1980년 봄 학생들을 중심으로한 시민등의 시위가 계속되었으며 신군부 세력은 이에맞서

5.17 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 광주에서는 비상계엄확대소식을 듣고

18일 아침에 전남대 교문앞에 대학생 200여명이 모였으나 공수부대가

과잉진압을하여 부상자가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학생들은 광주 도심지로 옮겨 시위를 벌였고 공수부대는 곤봉과 대검으로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살상.19일에는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한 광주 시민들이

학생시위에 동참.5.18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됨.

 

 

 

 

첨부한 사진은 너무 잔인하여 모자이크 처리함을 알려드립니다.

 

 

 

5.18일

오전10시, 휴교령이 내린 상태에서 전남대 정문앞에 모여든 학생

100여명과 무장공수대원이 댜차 200~300명 정도로 수가 불어나자

학생들은 "계엄해제","계엄군은 물러가라","휴교령 철회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였고 공수대원들은 학생들에게 파고들면서 곤봉을 휘두름

곤봉은 쇠심이 박힌 살상용으로 이를 맞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집니다.

 

 

공수부대 병사들은 모든폭행을 마음껏 행사하였고

첫날부터 대검사용,지나친 폭력에 항의하는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입에 담지못할 욕을해대며 구타, 여성들에게 옷을찢고 폭행.

 

5월19일

시위대가 5,000명으로 불어나자 장갑차를 앞세우고

착검한 총으로 시위대를 진압.

 

저질러진 공수부대의 만행은 너무도 잔인하여

진압하러 나온 경찰들조차 시민들에게 울먹이며

"제발집으로 돌아가라,공수부대에 걸리면 죽는다"고

애원할 정도였습니다.

 

 

사살되거나 타살후 리어카에 실려있는 시신들

 

 사살되거나 대검에  찔려 방치된 시신들.

 

 

5월21일

계엄군 발포로 수십여명이 사망,시민들은 스스로 시민군이라 칭하며

경찰서나 계엄군으로 부터 탈취한 소총으로 무장.

 

5월22일

 

시민들은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차지,5.18사태 수습 대책 위원회를 결성.

사태수습에 들어갔으나 계엄군의 협상거부로 협상이 결렬되고 27일 계엄군의 총공세로

많은 희생자를 낸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막을내림.

 

광주학살을 목격한후 서울러 올라갔던 서강대 김의기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5.30일 오후5시30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 이라는 글을 뿌리면서 투신자살.

 

후일 오랫동안 집을떠나있어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사망자 수까지 합하면

전체 사망자수는 2천명에 이를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고 공수부대원들이 처음부터 사상자수를 은폐하기 위해

사상자가 발생하는대로 트럭에 싣고 아무도 모를곳에 파묻었기 때문에

더욱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후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준거가 된 이 사건은 발발당시에는 불순분자와

폭도들에 의한 난동으로 규정되었다가 1988년 6공화국 출범직후 국회에서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정식 규정되었으며 1988년 11월 사건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가 개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