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일부일처제 결혼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대로 여성에게 억압과 착취의 ‘기제機制’가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남성들에겐 온전히 권리와 특혜만을 제공하는 것이 일부일처제 결혼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몰염치와 다를 바가 없는 얘기다. 일부일처제는 여성의 생존을 위한 강요(애걸?)를 받아들인 남성들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가부장제, 일부일처제에 대해 마르크스주의나 페미니스트들이 보는 관점은 본질적인 차이는 있지만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구조로 보는 것은 공통된다고 할 수 있는데 과연 이들이 가부장제, 일부일처제를 보는 시각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은 없는지 살펴보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일부일처제가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가 되는 원인이 ‘사유재산’으로 보고 있고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중심이기 때문에(본질적으로)착취구조를 가지게 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관점을 넘어서는 이유가 있다면, 말하자면 사유재산이 발생하기 이전의 시기에도 일부일처제가 존재해 왔고,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는 본질적으로 필연적인 것이었으며 오히려 여성들이 원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어떨까? 단 두 사람이 모인 상태에서라도 사람이기에 로봇처럼 의사결정의 동시성을 가질 수 없고 1분,1초라도 먼저 의사 결정과 행동의 실천성에 있어서 리더가 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필연성이다.
그렇다면 남녀가 만나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이 사회를 이루겠지만, 그에 앞서 남녀로 이루어진 가족뿐이라 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리더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가 창조된 시점을 6~7000년 전이나 좀 더 멀리 잡더라도 1만년 전 서아시아 일대인 ‘중동The Middle East’에서 농업이 시작되면서 최초의 도시가 출현한 ’신석기혁명‘때부터 라고 연대를 설정하고 있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유재산이 성립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부장제가 시작되었다고 할뿐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농업혁명으로 여성보다 월등한 체력을 소유한 남성들의 생산 활동이 우선시되었고 그로 인해 사유 재산이 축적되고 재산을 관리하고 상속시키기 위해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기제가 마련되고 가부장제가 탄생되었다고 정리하는 것이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가 공통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입장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부장제가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분명 가부장제의 일부일처제는 1만 년 전 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생물학적 본질로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기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이 400만 년 전이고 이미 인간은 발정기를 통해 짝짓기를 하는 다른 포유류들과 구별되기 시작했다. 원시인류의 남성은 여성보다 몸집이나 체중이 2배쯤 크고 무거웠고 남성들은 경쟁을 통해 차지한 여성들과 수시로 성관계를 하는 무규율적인 집단 성교 형태를 보였다.
남성들의 성충동에 의한 발기가 시도 때도 없는 ’수시隨時‘적인 것이기에 상대는 항상 뒤죽박죽이었고 정해져 있지 않았다. 초기 인류의 평균 수명은 20대를 넘지 않았고 발정기가 사라진 상태에서 성교할 대상을 찾는 남성 입장에선 임신이 가능한 성숙한 여성인지 미성숙한 여성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남성의 발기에 의한 성교가 이루어졌으며(종족 번식만을 위한 성관계가 아니었다는 뜻이다)임신으로 출산한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들은 무리의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양육되었다.
모권제 신화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유일하게 아이의 출생의 비밀을 아는 여성들이 위대한 어머니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하지만 아주 ’넌센스Nonsense‘한 주장일 뿐이다. 과학적으로 ’배란기排卵期‘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현대 여성들도 다소 난잡한 성생활을 하는 상태에서 임신을 했을 경우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한다.
하물며 완전한 무규율적인 성교, 하루에도 수차례 상대가 바뀔 수도 있었을 원시인류의 여성이 자신의 배란기를 정확히 알고 아이 아버지를 지목해 낼 수 있다? (그녀들은 탐폰을 즐겨 썼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이런 무규율적인 성교를 바탕으로 하는 무리는 꽤 오랫동안 무리를 이어갔을 것이고 그러다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20대를 넘지 못하는 수명에 빈번하게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으로 사망률도 높았을 것이고 자신이 출산한 아이들을 돌보는 데만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기에(인간의 아이가 혼자 생활해낼 수 있을 때 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상기해보라!)생존에 필요한 부분은 전적으로 남성을 통해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성들은 아이를 양육하고 남성들은 식량과 편의를 제공하는 과정을 통해 고정된 파트너가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인간적인 ’연민憐愍‘,’정情‘, 익숙함에 따른 안정감 등이 이유였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여성들이 고정적인 남성파트너를 적극적으로 원했다는 사실이다.’무규율적인 성교를 막기 위한 여성들의 진화는 가까이 사는 여자들은 월경주기가 모두 같아지는 변화인데, 이는 남성들이 혹시라도 배란시기를 감지하는 경우에 대비해서 모든 여성들이 한꺼번에 배란을 함으로써 남성들이 같은 집단 내에서 배란중인 여성, 즉 자신의 원래 파트너 하고만 짝짓기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클라이브 브롬홀Clive Bromhall)풀이하자면, 무리의 여성들이 저마다 다른 생리주기를 가졌다면 무규율적인 성교를 행하던 남성들이 생리를 하는 여성을 피하고 생리를 하지 않는 여성과 성교를 하게 될 것이며 매번 파트너를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리의 여성들이 모두 같은 생리주기를 가지도록 진화하여 동시에 생리를 하게 됨에 따라 남성들이 고정된 파트너를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아니, 여성이 독점적인 ’후원자‘를 확보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남성이라는 ’종種‘ 자체는 죽는 순간까지 ’발기勃起‘하고 ’사정射程‘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조건만 갖춰진다면 1년에 수 백 명의 자식도 만들 수 있지만 여성은 단 한명의 자식밖에 만들지 못한다.
더구나 여성의 생식능력은 현대를 기준으로 40대를 넘어서 어김없이 ’폐경閉經‘으로 생식능력을 잃지만 남성은 유지 여하에 따라 다르겠지만 늙어 죽는 순간까지 생식능력을 보전하는 개체인데도 불구하고 고정된 파트너를 정하는 일부일처제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에게 있어서는 ’거세去勢‘나 다를 바가 없다.
파트너가 고정된다는 것은 여성이 생식능력을 잃어버린 후에도 책임져야하고 양육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하며 중요한건 되도록 많은 자식을 퍼뜨리도록 만들어진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종의 구조에 반하는 것이며 변화무쌍한 남성의 성충동을 한 여성에게만 고정 시킨다는 건 거세나 다를 바 없는 일이기에 남성의 생물학적 본질이 원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일부일처제는 여성이 진화적으로 강요하고 원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일부일처제에 의한 인류의 변화는 190만 년 전부터 남성의 체중이나 몸집이 현재 인류의 남녀 차이 정도로 변화되는 것으로 일부일처제가 정착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집단적인 무규율 성교에서 경쟁을 통해 짝짓기를 하던 환경에서 고정된 파트너의 일부일처제로 정착되어감에 따라 남성들의 체중이나 몸집이 여성들의 2배쯤으로 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적소유에 대한 개념 역시 원시 인류가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원 이외에 가능하다면(능력대로) 축적하려 노력 하지 않았을까? 그 축적된 자원에 대한 관리와 소비에 대한 결정을 남녀 중 누군가가 했을 것이고 그러한 일부일처제의 초기적인 형태는 최소한 190만년을 이어올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인 지배(?)구조이며 따라서 가부장제, 일부일처제는 여성들의 필요성과 강요에 의해 시작된 인류역사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 사실은 현대에도 변함이 없다.
펌) 일부일처제 변론
과연, 일부일처제 결혼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대로 여성에게 억압과 착취의 ‘기제機制’가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남성들에겐 온전히 권리와 특혜만을 제공하는 것이 일부일처제 결혼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몰염치와 다를 바가 없는 얘기다. 일부일처제는 여성의 생존을 위한 강요(애걸?)를 받아들인 남성들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가부장제, 일부일처제에 대해 마르크스주의나 페미니스트들이 보는 관점은 본질적인 차이는 있지만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구조로 보는 것은 공통된다고 할 수 있는데 과연 이들이 가부장제, 일부일처제를 보는 시각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은 없는지 살펴보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일부일처제가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가 되는 원인이 ‘사유재산’으로 보고 있고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중심이기 때문에(본질적으로)착취구조를 가지게 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관점을 넘어서는 이유가 있다면, 말하자면 사유재산이 발생하기 이전의 시기에도 일부일처제가 존재해 왔고,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는 본질적으로 필연적인 것이었으며 오히려 여성들이 원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어떨까? 단 두 사람이 모인 상태에서라도 사람이기에 로봇처럼 의사결정의 동시성을 가질 수 없고 1분,1초라도 먼저 의사 결정과 행동의 실천성에 있어서 리더가 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필연성이다.
그렇다면 남녀가 만나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이 사회를 이루겠지만, 그에 앞서 남녀로 이루어진 가족뿐이라 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리더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가 창조된 시점을 6~7000년 전이나 좀 더 멀리 잡더라도 1만년 전 서아시아 일대인 ‘중동The Middle East’에서 농업이 시작되면서 최초의 도시가 출현한 ’신석기혁명‘때부터 라고 연대를 설정하고 있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유재산이 성립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부장제가 시작되었다고 할뿐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농업혁명으로 여성보다 월등한 체력을 소유한 남성들의 생산 활동이 우선시되었고 그로 인해 사유 재산이 축적되고 재산을 관리하고 상속시키기 위해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기제가 마련되고 가부장제가 탄생되었다고 정리하는 것이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가 공통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입장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부장제가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분명 가부장제의 일부일처제는 1만 년 전 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생물학적 본질로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기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이 400만 년 전이고 이미 인간은 발정기를 통해 짝짓기를 하는 다른 포유류들과 구별되기 시작했다. 원시인류의 남성은 여성보다 몸집이나 체중이 2배쯤 크고 무거웠고 남성들은 경쟁을 통해 차지한 여성들과 수시로 성관계를 하는 무규율적인 집단 성교 형태를 보였다.
남성들의 성충동에 의한 발기가 시도 때도 없는 ’수시隨時‘적인 것이기에 상대는 항상 뒤죽박죽이었고 정해져 있지 않았다. 초기 인류의 평균 수명은 20대를 넘지 않았고 발정기가 사라진 상태에서 성교할 대상을 찾는 남성 입장에선 임신이 가능한 성숙한 여성인지 미성숙한 여성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남성의 발기에 의한 성교가 이루어졌으며(종족 번식만을 위한 성관계가 아니었다는 뜻이다)임신으로 출산한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들은 무리의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양육되었다.
모권제 신화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유일하게 아이의 출생의 비밀을 아는 여성들이 위대한 어머니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하지만 아주 ’넌센스Nonsense‘한 주장일 뿐이다. 과학적으로 ’배란기排卵期‘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현대 여성들도 다소 난잡한 성생활을 하는 상태에서 임신을 했을 경우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한다.
하물며 완전한 무규율적인 성교, 하루에도 수차례 상대가 바뀔 수도 있었을 원시인류의 여성이 자신의 배란기를 정확히 알고 아이 아버지를 지목해 낼 수 있다? (그녀들은 탐폰을 즐겨 썼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이런 무규율적인 성교를 바탕으로 하는 무리는 꽤 오랫동안 무리를 이어갔을 것이고 그러다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20대를 넘지 못하는 수명에 빈번하게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으로 사망률도 높았을 것이고 자신이 출산한 아이들을 돌보는 데만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기에(인간의 아이가 혼자 생활해낼 수 있을 때 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상기해보라!)생존에 필요한 부분은 전적으로 남성을 통해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성들은 아이를 양육하고 남성들은 식량과 편의를 제공하는 과정을 통해 고정된 파트너가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인간적인 ’연민憐愍‘,’정情‘, 익숙함에 따른 안정감 등이 이유였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여성들이 고정적인 남성파트너를 적극적으로 원했다는 사실이다.’무규율적인 성교를 막기 위한 여성들의 진화는 가까이 사는 여자들은 월경주기가 모두 같아지는 변화인데, 이는 남성들이 혹시라도 배란시기를 감지하는 경우에 대비해서 모든 여성들이 한꺼번에 배란을 함으로써 남성들이 같은 집단 내에서 배란중인 여성, 즉 자신의 원래 파트너 하고만 짝짓기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클라이브 브롬홀Clive Bromhall)풀이하자면, 무리의 여성들이 저마다 다른 생리주기를 가졌다면 무규율적인 성교를 행하던 남성들이 생리를 하는 여성을 피하고 생리를 하지 않는 여성과 성교를 하게 될 것이며 매번 파트너를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리의 여성들이 모두 같은 생리주기를 가지도록 진화하여 동시에 생리를 하게 됨에 따라 남성들이 고정된 파트너를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아니, 여성이 독점적인 ’후원자‘를 확보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남성이라는 ’종種‘ 자체는 죽는 순간까지 ’발기勃起‘하고 ’사정射程‘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조건만 갖춰진다면 1년에 수 백 명의 자식도 만들 수 있지만 여성은 단 한명의 자식밖에 만들지 못한다.
더구나 여성의 생식능력은 현대를 기준으로 40대를 넘어서 어김없이 ’폐경閉經‘으로 생식능력을 잃지만 남성은 유지 여하에 따라 다르겠지만 늙어 죽는 순간까지 생식능력을 보전하는 개체인데도 불구하고 고정된 파트너를 정하는 일부일처제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에게 있어서는 ’거세去勢‘나 다를 바가 없다.
파트너가 고정된다는 것은 여성이 생식능력을 잃어버린 후에도 책임져야하고 양육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하며 중요한건 되도록 많은 자식을 퍼뜨리도록 만들어진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종의 구조에 반하는 것이며 변화무쌍한 남성의 성충동을 한 여성에게만 고정 시킨다는 건 거세나 다를 바 없는 일이기에 남성의 생물학적 본질이 원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일부일처제는 여성이 진화적으로 강요하고 원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일부일처제에 의한 인류의 변화는 190만 년 전부터 남성의 체중이나 몸집이 현재 인류의 남녀 차이 정도로 변화되는 것으로 일부일처제가 정착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집단적인 무규율 성교에서 경쟁을 통해 짝짓기를 하던 환경에서 고정된 파트너의 일부일처제로 정착되어감에 따라 남성들의 체중이나 몸집이 여성들의 2배쯤으로 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적소유에 대한 개념 역시 원시 인류가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원 이외에 가능하다면(능력대로) 축적하려 노력 하지 않았을까? 그 축적된 자원에 대한 관리와 소비에 대한 결정을 남녀 중 누군가가 했을 것이고 그러한 일부일처제의 초기적인 형태는 최소한 190만년을 이어올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인 지배(?)구조이며 따라서 가부장제, 일부일처제는 여성들의 필요성과 강요에 의해 시작된 인류역사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 사실은 현대에도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