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세기 초,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여행가였던 필론의 저서 '세계의 7대 경관'이 1633년 발견되면서 고대의 7대 불가사의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의 교황청 대사로 파견된 뵈시우스입니다.
필론의 저서에 등장하는 '세계 7대 경관'은 고대 지중해 근처에 존재하던 7군데의 거대 건축물로서, 이처럼 고대 7대 불가사의가 지중해에 한정된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관광하러 다닌 활동반경이 좁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다른 한편으로 필론이 선정한 7대 불가사의는 BC 330년 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불가사의의 대상을 알렉산더와 관련있는 건물로만 의도적으로 선정한 것이라는 주장도 꽤 설득력있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떻든 필론이 선정한 7대 불가사의 중에 현재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이집트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 뿐입니다. 나머지 6개의 불가사의는 필론의 기록으로 전하는 내용을 근거로 상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필론이 선정한 '고대의 7대 불가사의'를 찾아 여행을 떠나 보겠습니다.
1.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5km 지점에 우치한 도시, 기자. 그 서쪽 평야에는 사막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기자 사막에 우뚝 솟은 거대한 피라미드가 필론이 꼽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입니다.
이집트 기자에 서 있는 피라미드는 지금으로 부터 약 4500년 전에 쿠푸 왕이 건설한 왕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가들은 피라미드 공사는 나일강 범람때문에 농지를 잃은 농민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한 공공사업이었다는 설을 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자 피라미드를 쿠푸왕이 건설하였다는 근거도 상당히 애매합니다.
피라미드가 왕묘가 아니고, 쿠푸왕이 지은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누가 무엇때문에 지었는지 불가사의합니다.
2.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이집트 북부 나일강 삼각지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는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항구도시 입니다.
바로 그 앞바다, 파로스 섬에는 과거 거대한 등대가 서 있었습니다.
이 등대에 있는 반사경은 태양광선을 모아 반사함으로써 160km나 되는 먼 거리에 있는 배를 불태우는 것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믿어야 할 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이 등대는 796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그만 지중해 속에 가라 앉았다 합니다. 현재에는 지상에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메소포타미어에서 약 2700년 전의 수정렌즈가 발견됨으로써 고문서의 기록을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3.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올림픽의 발상지로 알려진 올림피아에는 과거 호화찬란한 제우스 신상이 있었습니다.
천제적인 조작가 피디아스에 의해 기원전 430년대에 제작하기 시작하여 약 10년의 시간이 걸려 완성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신상은 훗날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자세한 경위는 불명확하지만 4세기경 콘스탄티노플로 이전되었다가 화재로 불타버렸다는 설도 있고, 혹은 5세기까지 올림피아에 있었지만 지진으로 부서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단지 확실한 역사적 기록은 426년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 신전은 철저히 파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4. 할리카르나소스의 영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고관이자 훗날 페르시아 속국 카리아의 통치자가 된 마우솔로스(재위 기원전 377~353년)와 그의 아내 아르테미시아의 유해를 안치한 무덤, 그 곳이 마루솔로스 영묘 입니다.
영묘는 3층 구조의 건물로서 소아시아 서부 지중해 연안에 있던 카리아의 수도, 할리카르나소스 중심부의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영묘는 할리카르나소스가 외적의 침략으로 멸망한 뒤에도 1600년 동안 자리를 지켰지만, 거듭되는 지진으로 결국 15세기 초에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15세기 말, 그 자리에 성 요한 기사단의 요새가 들어서면서 영묘의 잔해는 외벽 자재로 사용되었으며, 그 중 일부는 훗날 영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소장 중 입니다.
5.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소아시아 서해안에서 번영했던 고대도시, 에페소스.
그 땅에서 그리스 신화의 수렵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모시던 신전이 기원전 500년경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신전은 리디아 왕국 크로이소스 왕의 명에 따라 크레타의 건축가 케르시프론가 설계 및 건축하였습니다.
건물의 크기는 세로 110미터, 가로 55미터, 높이 18미터 짜리 돌기둥 127개가 떠 받치는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숭상하던 아르테미스 신전도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던 262년 야만족의 습격을 받아 철저하게 파괴 되고 말았습니다. 신전이 있던 자리에는 훗날 기독교 교회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6. 바빌론의 공중정원
기원전 600년경, 신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에 느부갓네살 2세에 의해 건설된 계단식 정원이 바빌론의 공중정원입니다. 높이 15미터, 넓이 400평방미터에 달하는 토대 위에 테라스가 층층이 쌓인 구조로 이루어진 정원의 높이는 최고 110미터에 달했다 합니다.
바빌론 정원은 너무 거대한 탓에 멀리서 보면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 같아 공중정원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원은 느부갓네살 2세가 왕비 아미타스를 위해 건설하였는데,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바빌론의 삭막함에 북쪽 산악지대 메디아 출신이었던 왕비가 고향을 그리워하자 그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지었다 합니다.
공중정원은 기원전 538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되었다 하며, 그 뒤로 오랫동안 전설 속에서만 남아있는 존재였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필론의 저서가 지어진 시기(기원전 2세기 초)에 공중정원은 존재했을까요?
7. 로도스섬의 헬리오스 거상
에게 해 남동부에 있는 로도스 섬은 지중해 무역의 중계지로 큰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305년 마케도니아 4만 군대가 침공하여 곤경에 빠졌는데,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1세가 원군을 파견해 마케도니아를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도스 인들은 프롤레마이오스 1세에게 감사의 표시와 승리를 자축하는 의미로 만드라키 항구에 로도스 섬의 수호신인 태양신 헬리오스의 거상을 만들었습니다. 제작자는 조각가 카레스, 주된 재료는 청동이었으며 그 높이가 무려 48미터에 달했다 합니다. 자유의 여신상이 46.3 미터이니까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겠네요.
거대한 거상은 기원전 224년 지진으로 쓰러져 900년 가까이 방치되었으나 672년 아랍 군이 섬을 점령하면서 잔해를 자재로 매각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합니다. 그런데 1987년 7월초, 로도스 섬 앞바다에서 주먹을 쥔 왼손의 형상을 한 석회암 조각물이 발견되었는데, 이 조각물이 헬리오스 거상의 주먹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계승자] 사라진 고대문명 세계7대 불가사의
기원전 2세기 초,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여행가였던 필론의 저서 '세계의 7대 경관'이 1633년 발견되면서 고대의 7대 불가사의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의 교황청 대사로 파견된 뵈시우스입니다.
필론의 저서에 등장하는 '세계 7대 경관'은 고대 지중해 근처에 존재하던 7군데의 거대 건축물로서, 이처럼 고대 7대 불가사의가 지중해에 한정된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관광하러 다닌 활동반경이 좁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다른 한편으로 필론이 선정한 7대 불가사의는 BC 330년 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불가사의의 대상을 알렉산더와 관련있는 건물로만 의도적으로 선정한 것이라는 주장도 꽤 설득력있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떻든 필론이 선정한 7대 불가사의 중에 현재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이집트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 뿐입니다. 나머지 6개의 불가사의는 필론의 기록으로 전하는 내용을 근거로 상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필론이 선정한 '고대의 7대 불가사의'를 찾아 여행을 떠나 보겠습니다.
1.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5km 지점에 우치한 도시, 기자. 그 서쪽 평야에는 사막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기자 사막에 우뚝 솟은 거대한 피라미드가 필론이 꼽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입니다.
이집트 기자에 서 있는 피라미드는 지금으로 부터 약 4500년 전에 쿠푸 왕이 건설한 왕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가들은 피라미드 공사는 나일강 범람때문에 농지를 잃은 농민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한 공공사업이었다는 설을 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자 피라미드를 쿠푸왕이 건설하였다는 근거도 상당히 애매합니다.
피라미드가 왕묘가 아니고, 쿠푸왕이 지은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누가 무엇때문에 지었는지 불가사의합니다.
2.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이집트 북부 나일강 삼각지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는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항구도시 입니다.
바로 그 앞바다, 파로스 섬에는 과거 거대한 등대가 서 있었습니다.
이 등대에 있는 반사경은 태양광선을 모아 반사함으로써 160km나 되는 먼 거리에 있는 배를 불태우는 것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믿어야 할 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이 등대는 796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그만 지중해 속에 가라 앉았다 합니다. 현재에는 지상에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메소포타미어에서 약 2700년 전의 수정렌즈가 발견됨으로써 고문서의 기록을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3.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올림픽의 발상지로 알려진 올림피아에는 과거 호화찬란한 제우스 신상이 있었습니다.
천제적인 조작가 피디아스에 의해 기원전 430년대에 제작하기 시작하여 약 10년의 시간이 걸려 완성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신상은 훗날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자세한 경위는 불명확하지만 4세기경 콘스탄티노플로 이전되었다가 화재로 불타버렸다는 설도 있고, 혹은 5세기까지 올림피아에 있었지만 지진으로 부서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단지 확실한 역사적 기록은 426년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 신전은 철저히 파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4. 할리카르나소스의 영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고관이자 훗날 페르시아 속국 카리아의 통치자가 된 마우솔로스(재위 기원전 377~353년)와 그의 아내 아르테미시아의 유해를 안치한 무덤, 그 곳이 마루솔로스 영묘 입니다.
영묘는 3층 구조의 건물로서 소아시아 서부 지중해 연안에 있던 카리아의 수도, 할리카르나소스 중심부의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영묘는 할리카르나소스가 외적의 침략으로 멸망한 뒤에도 1600년 동안 자리를 지켰지만, 거듭되는 지진으로 결국 15세기 초에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15세기 말, 그 자리에 성 요한 기사단의 요새가 들어서면서 영묘의 잔해는 외벽 자재로 사용되었으며, 그 중 일부는 훗날 영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소장 중 입니다.
5.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소아시아 서해안에서 번영했던 고대도시, 에페소스.
그 땅에서 그리스 신화의 수렵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모시던 신전이 기원전 500년경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신전은 리디아 왕국 크로이소스 왕의 명에 따라 크레타의 건축가 케르시프론가 설계 및 건축하였습니다.
건물의 크기는 세로 110미터, 가로 55미터, 높이 18미터 짜리 돌기둥 127개가 떠 받치는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숭상하던 아르테미스 신전도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던 262년 야만족의 습격을 받아 철저하게 파괴 되고 말았습니다. 신전이 있던 자리에는 훗날 기독교 교회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6. 바빌론의 공중정원
기원전 600년경, 신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에 느부갓네살 2세에 의해 건설된 계단식 정원이 바빌론의 공중정원입니다. 높이 15미터, 넓이 400평방미터에 달하는 토대 위에 테라스가 층층이 쌓인 구조로 이루어진 정원의 높이는 최고 110미터에 달했다 합니다.
바빌론 정원은 너무 거대한 탓에 멀리서 보면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 같아 공중정원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원은 느부갓네살 2세가 왕비 아미타스를 위해 건설하였는데,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바빌론의 삭막함에 북쪽 산악지대 메디아 출신이었던 왕비가 고향을 그리워하자 그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지었다 합니다.
공중정원은 기원전 538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되었다 하며, 그 뒤로 오랫동안 전설 속에서만 남아있는 존재였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필론의 저서가 지어진 시기(기원전 2세기 초)에 공중정원은 존재했을까요?
7. 로도스섬의 헬리오스 거상
에게 해 남동부에 있는 로도스 섬은 지중해 무역의 중계지로 큰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305년 마케도니아 4만 군대가 침공하여 곤경에 빠졌는데,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1세가 원군을 파견해 마케도니아를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도스 인들은 프롤레마이오스 1세에게 감사의 표시와 승리를 자축하는 의미로 만드라키 항구에 로도스 섬의 수호신인 태양신 헬리오스의 거상을 만들었습니다. 제작자는 조각가 카레스, 주된 재료는 청동이었으며 그 높이가 무려 48미터에 달했다 합니다. 자유의 여신상이 46.3 미터이니까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겠네요.
거대한 거상은 기원전 224년 지진으로 쓰러져 900년 가까이 방치되었으나 672년 아랍 군이 섬을 점령하면서 잔해를 자재로 매각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합니다. 그런데 1987년 7월초, 로도스 섬 앞바다에서 주먹을 쥔 왼손의 형상을 한 석회암 조각물이 발견되었는데, 이 조각물이 헬리오스 거상의 주먹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출처 : 세계의 초고대 문명 File>
상당히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