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즉위년(1545)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학자인 하서 김인후가 관직을 그만두고 세상을 피해 숨어 살던 곳이다. 김인후는 낙덕암 주위의 산세를 유난히 좋아했던 것으로 전하며, 자연을 즐기는 한편 후세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쳤다. 고종 4년(1900)에는 훗날 이곳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올 것이라는 김노수의 예언을 따라 낙덕암 위에 정자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학자로서 온유돈후(溫柔敦厚)한 시풍을 바탕으로
절제와 조화미를 갖춘 시들로
당시의 사회적 모순을 은유로서 표현했던 하서.
현실적인 좌절과 불만을
광달하게 분출하여
한시들에서 감지하기 힘든
유별난 흥취(興趣)의 미(美)가 담긴 시들이 많다...
뜻을 펼칠 수 없는 선비는
우국충정...병이 깊다...-.-
공청에 홀로 누우니 온갖 느낌 생생해라
병(病)중의 회포 자연 평탄하기 어렵구려
옛 동산 아득아득 일천봉 저 너머라
어느 날 돌아가서 내 정(情)에 맞게 하리
-김인후/무료하여 읊조리다
긴 노끈으로 저 해 잡아매긴 어려우니
큰 돌로 푸른 하늘 때워볼까 생각했네
...함박잔 가득 부어 부구(浮邱)님께 읍을 하며 만고라 불평에 찬 가슴을 씻어버리네 한 번 마시니 문득 신령이 통해져서 우주가 열리련다 오히려 몽롱하고 두 번째 마시니 자연과 어울려라...
-김인후/혼돈주가(混沌酒歌)
시주(詩酒)로 다스리던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실의, 분노, 좌절한 조선의 선비는
얼마나 아팠을까?
부패와 탐욕의 껍데기들이 권력을 잡겠다고 설치는 조정을 생각하면
울분의 잔이 쌓여 넘쳤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도 혼돈의 계절?
청렴결백한 정치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판인가?
팔모단층에 건곤감리......
8개의 팔괘가 그려져 있다.
팔괘(八卦):
중국 상고 시대의 복희씨(伏羲氏)가 만들었다고 하는 여덟 가지 괘(卦). 양효(陽爻)와 음효(陰爻)로 이루어진 세 개의 효를 겹치어 자연 세계의 기본 요소인 여덟 가지의 상(相)을 나타내는 것으로, 건(乾:☰, 하늘), 태(兌:☱, 못), 감(坎:☵, 물), 이(離:☲, 불), 진(震:☳, 우레), 손(巽:☴, 바람), 간(艮:☶, 산), 곤(坤:☷, 땅)을 말한다.
고독한 선비의 벗이 된 대나무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이 느껴지는 시가 생각난다...
雨後輕雲捲白義
비 그치고 하얀 구름이 걷히니
靑山野水鷺先知
푸른 산, 들과 물에서 해오라기 먼저 아네.
西詹斜日長吟處
서쪽 처마 해 비껴 길게 읊조리는 곳에
孤竹微風獨立時
외로운 대나무 잔잔한 바람 홀로 서 있을 때 불어오네.
- 하서 김인후/次德茂韻
낙덕암에서 바라본 유수
좌절한 선비는 이곳에서 천지에 공평한 달을 보며
월하독작(月下獨酌)으로...
노자의 '가장 좋은 것은 물처럼 사는 것(上善若水)'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高低隨地勢(고저수지세)
早晩自天時(조만자천시)
人言何足恤(인언하족휼)
明月本無私(명월본무사)
높고 낮음은 땅의 형세를 따름이고,
아침저녁은 하늘의 때로부터 나오니,
사람들 말 한마디에 어찌 흔들릴까,
달은 본디 광명정대한 것일러니
- 하서(河西) 김인후/대보름 밤
김인후(金麟厚, 1510년 ~ 1560년)는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후지, 호는 하서(河西), 본관은 울산이다. 대한민국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와 기업인 김연수의 선조가 된다. 전라남도 출신이며 김안국의 문인.
생애/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김안국의 제자로 수학하였으며, 후에 성균관에 들어가 유생이 되어 이황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에 등용되었다. 명종이 즉위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장성에 돌아가 성리학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황의 이기 일물설에 반대하였으며, 이기는 혼합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천문·지리·의약·산수·율력에 정통하였다. 저서에 《하서집》, 〈주역관상편〉 등이 있다.
일화(전설)/ 김인후가 죽고 나서 수년 뒤 이웃에 사는 오세억이란 사람이 죽었다가 하루 만에 살아났는데, 죽어서 자미궁(紫微宮)이란 곳에 갔더니 자미선으로 있는 김인후가 명부를 보며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전한다.
정조는 "도학과 절의, 문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하서 한 사람뿐"이라고 칭송하였다.[사전 자료]
[순창여행] 천지간에 불우한 시옹(詩翁)이 있어 낙덕정을 교만스레 걷다
[순창여행] 천지간에 불우한 시옹(詩翁)이 있어 낙덕정을 교만스레 걷다
때 못 만난 도연명이 어찌나 한스런지
경륜(經綸)하던 큰 뜻이 동리(東籬)에 묻히다니
술 속에 빠진 것은 단순한 일 아닐진대
요순(堯舜) 기대 마음에 품은 줄은 늬 알리오
-김인후/우연히 읊다(偶吟)
가뭄으로 타들어가던 대한민국...
장맛비가 시원하게 천지를 적신 다음날,
전북 순창을 찾았다.
순창하면 생각나는 인물...
송강 정철(시는 좋아하지만 정치인으로는 미워함, 아니 증오함 ㅋ)의 스승이며,
해동18현(海東十八賢)의 한 사람인 시인이며 성리학자인 하서 김인후.
녹두장군 전봉준이 동학혁명군인 동지의 배신으로 체포된 곳.
며칠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의 고향......
그리고,
독립운동가이면서 이승만 독재에 맞서 사법부를 지키고
청렴과 대쪽같은 기개로 상징되는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
(참, 가인은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책사(?)로
'유신의 딸'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김종인의 할아버지이기도???)
참으로 몹쓸 놈의 시대상황이 하 수상합니데이~~
그러니 입조심, 몸조심......
권력욕 암투로 선비들을 도육한 '사림의 화'와
중종의 치독승하(致毒昇遐)를 개탄,
관직을 사임하고 이곳에 은거한
하서의 은일사상을 선생의 詩와 함께 배워볼까나~~
천지간에 불우한 시옹(詩翁)이 있어
얼음 길을 교만스레 홀로 걷누나...
-김인후/설후행(雪後行) 중 일부
시대에 버림 받고
낙향길에,
고향 장성에 가지않고
처가가 있는 순창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시심(詩心)에 지친 하서(河西)는 진정 불우했을까?
이 암벽이 락덕암(樂德岩)이며
이 바위 위 우거진 숲속의 락덕정(樂德亭)...
(솔 숲에 가려 숨은 그림 찾기가 되었네 ㅎㅎ)
비온 후라,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이 바위 위에서 하서 선생은 '자연의 노래'를 읊었을지도 모른다 ㅎㅎ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山自然水自然 山水間我亦自然 已矣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哉自然生來人生 將自然自然老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 自然歌 /김인후
순창의 훌륭한 인재 예언이 가인일까?
낙덕정(樂德亭)은 팔모단층의 팔모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건물의 내부에 1칸의 방을 만들었다.
낙덕정(樂德亭)의 기둥은 원주로서 화강암을 약 80㎝높이로 깎아 받치고
그 위에 나무기둥 을 올렸으며
8개의 팔괘를 그려 넣었고 부연을 달아 처마를 길게 빼었다.
우리나라의 초대 대법원장을 역임했던
가인(佳人) 김병로(金炳魯)선생께서 소년시절에 이곳에서 공부하였다고 한다.
낙덕정(樂德亭):
명종 즉위년(1545)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학자인 하서 김인후가 관직을 그만두고 세상을 피해 숨어 살던 곳이다. 김인후는 낙덕암 주위의 산세를 유난히 좋아했던 것으로 전하며, 자연을 즐기는 한편 후세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쳤다. 고종 4년(1900)에는 훗날 이곳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올 것이라는 김노수의 예언을 따라 낙덕암 위에 정자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학자로서 온유돈후(溫柔敦厚)한 시풍을 바탕으로
절제와 조화미를 갖춘 시들로
당시의 사회적 모순을 은유로서 표현했던 하서.
현실적인 좌절과 불만을
광달하게 분출하여
한시들에서 감지하기 힘든
유별난 흥취(興趣)의 미(美)가 담긴 시들이 많다...
뜻을 펼칠 수 없는 선비는
우국충정...병이 깊다...-.-
공청에 홀로 누우니 온갖 느낌 생생해라
병(病)중의 회포 자연 평탄하기 어렵구려
옛 동산 아득아득 일천봉 저 너머라
어느 날 돌아가서 내 정(情)에 맞게 하리
-김인후/무료하여 읊조리다
긴 노끈으로 저 해 잡아매긴 어려우니
큰 돌로 푸른 하늘 때워볼까 생각했네
...함박잔 가득 부어 부구(浮邱)님께 읍을 하며
만고라 불평에 찬 가슴을 씻어버리네
한 번 마시니 문득 신령이 통해져서
우주가 열리련다 오히려 몽롱하고
두 번째 마시니 자연과 어울려라...
-김인후/혼돈주가(混沌酒歌)
시주(詩酒)로 다스리던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실의, 분노, 좌절한 조선의 선비는
얼마나 아팠을까?
부패와 탐욕의 껍데기들이 권력을 잡겠다고 설치는 조정을 생각하면
울분의 잔이 쌓여 넘쳤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도 혼돈의 계절?
청렴결백한 정치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판인가?
팔모단층에 건곤감리......
8개의 팔괘가 그려져 있다.
팔괘(八卦):
중국 상고 시대의 복희씨(伏羲氏)가 만들었다고 하는 여덟 가지 괘(卦). 양효(陽爻)와 음효(陰爻)로 이루어진 세 개의 효를 겹치어 자연 세계의 기본 요소인 여덟 가지의 상(相)을 나타내는 것으로, 건(乾:☰, 하늘), 태(兌:☱, 못), 감(坎:☵, 물), 이(離:☲, 불), 진(震:☳, 우레), 손(巽:☴, 바람), 간(艮:☶, 산), 곤(坤:☷, 땅)을 말한다.
고독한 선비의 벗이 된 대나무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이 느껴지는 시가 생각난다...
雨後輕雲捲白義
비 그치고 하얀 구름이 걷히니
靑山野水鷺先知
푸른 산, 들과 물에서 해오라기 먼저 아네.
西詹斜日長吟處
서쪽 처마 해 비껴 길게 읊조리는 곳에
孤竹微風獨立時
외로운 대나무 잔잔한 바람 홀로 서 있을 때 불어오네.
- 하서 김인후/次德茂韻
낙덕암에서 바라본 유수
좌절한 선비는 이곳에서 천지에 공평한 달을 보며
월하독작(月下獨酌)으로...
노자의 '가장 좋은 것은 물처럼 사는 것(上善若水)'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高低隨地勢(고저수지세)
早晩自天時(조만자천시)
人言何足恤(인언하족휼)
明月本無私(명월본무사)
높고 낮음은 땅의 형세를 따름이고,
아침저녁은 하늘의 때로부터 나오니,
사람들 말 한마디에 어찌 흔들릴까,
달은 본디 광명정대한 것일러니
- 하서(河西) 김인후/대보름 밤
김인후(金麟厚, 1510년 ~ 1560년)는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후지, 호는 하서(河西), 본관은 울산이다. 대한민국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와 기업인 김연수의 선조가 된다. 전라남도 출신이며 김안국의 문인.
생애/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김안국의 제자로 수학하였으며, 후에 성균관에 들어가 유생이 되어 이황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에 등용되었다. 명종이 즉위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장성에 돌아가 성리학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황의 이기 일물설에 반대하였으며, 이기는 혼합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천문·지리·의약·산수·율력에 정통하였다. 저서에 《하서집》, 〈주역관상편〉 등이 있다.
일화(전설)/ 김인후가 죽고 나서 수년 뒤 이웃에 사는 오세억이란 사람이 죽었다가 하루 만에 살아났는데, 죽어서 자미궁(紫微宮)이란 곳에 갔더니 자미선으로 있는 김인후가 명부를 보며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전한다.
정조는 "도학과 절의, 문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하서 한 사람뿐"이라고 칭송하였다.[사전 자료]
하서 선생의 병든 학이란 시를 읽으니
불혹 넘긴 사내의 마음에도 병학(病虐)이 찾아든다.
사납게 병이 든 시절......
산 언덕에 슬피 운들 아는 자가 뉘라더뇨
날개를 드리운 채 마른 가지 기댔었네
하늘가를 바라보니 구름은 아스랗다
만리를 날을 생각 부질없이 가졌구려
-김인후/병학(病鶴)
하서의 초탈과 덕행고사(德行高士)의 초세(超世)에서
시대를 비껴사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눈물겹다.
다수 민중을 밟고,
탐욕을 부리며
공동체를 파괴하는
한 줌도 안되는 도시인들을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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