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말하다.

김경영2012.07.15
조회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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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그런 장면 종종 나온다

사랑하던 두사람이 헤어졌는데

남자는 육교 위로 지나가고 여자는 육교 밑으로 지나가고

남자는 정문 쪽으로 지나가고

여자는 같은 건물의 후문 쪽으로 지나가고

 

하지만 두사람은 서로가 같은 공간 안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그래서 관객인 우리는 볼 수 있지만

영화 속 두사람은 같은 공간 안에서도

서로를 발견하지 못한 채 엇갈리며

지나가버리게 되는 그런 장면들

남자가 버스를 타고 앞쪽에서 네번째 손잡이를

붙잡고 있다가 내렸을 때

다음다음 정거장에서 사랑했던 여자가 바로

그 버스를 타게 되는 것

그리고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앞쪽에서

네번째 손잡이를 살포시 붙잡게 되는 것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며 왠지 지나간 옛사랑을 생각하게 되는 것

 

영화 속에서 보던 거지만 영화만 그럴까

우리들도 그렇게 서로 알지 못한 채 몇번씩

엇갈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면 그 사람과 자주 갔던

단골집들도 정리하게 된다

추억이 쌓여있는 장소 괜히 거기 가서 마음

심란해지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생활반경이라는 게 있다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가던 서점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가던 산책길

그녀와 헤어졌다고 해서 일부러 피한다는 게

더 이상하고 불편한 나의 생활반경들

그리고 그녀와 내가 어쩔 수 없이 겹치는 교집합 공통부분들

그런 곳을 지날 때면 혹시 저만큼 있지 않을까

살짝 기웃거려보기도 한다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영화처럼 방금 전에

그녀가 이 곳을 다녀간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만약 만약에 정말 내가 그녀를 발견한다면

하지만 그녀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저만치쯤에서 지나가고 있다면

나는 달려가서 아는 체를 하게 될까

어쩔 수 없이 서로 맞부딪힌 상황이 아니라

나 혼자 발견하게 된 상황이라면

나는 달려가서 아는 체를 하게 될까

아니 그러진 않을 것 같다.

 

오랫동안 연락 없던 고등학교 동창녀석이

전화를 걸어와서 몇일 전에 내가 어느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 걸 봤다고 했다

왜 아는 체 안 했냐고 했더니 운전중이었다고

너무 멀어서 부르지 못하고 그냥 갔다고

그래도 우연히 지나가는 나를 만나서 반가웠다고 얘길 했다

그래 그런 거다 세상은 생각밖으로 너무 좁고

우연은 수시로 일어난다

 

그러니 난 좀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겠다

아는 체 하러 달려올린 없지만 그녀가 어디선가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사랑을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