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을 벗으려 하는 고무신들에게

두부두부순두부2012.07.16
조회10,084

 

 

 

 

저는 24살입니다.

그리고 남자친구도 24살입니다.

우린 2년을 사귀었고, 사귄 시간만큼 군대에 보내야 했습니다.

우린 함께 살았습니다. 우린 한번도 싸운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사람이 군대에 갔습니다.

처음엔 몇일에 한통씩 오는 전화가 너무 슬펐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에 들어간 그사람이 너무 걱정됬습니다.

선임에게 혼나진 않을까, 추운데 다치고 아프진 않을까

한날 한시 일분 일초도 걱정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사람은 이병이 되고, 일병이 되어갔습니다.

하루에 전화는 3통씩 꼬박꼬박. 그 전화가 너무나 즐거워졌습니다.

적응도 잘하고 있어 보이니 마음도 조금씩 놓여갔습니다.

아픈곳 없이 잘지내니 기특하기도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그사람의 전화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전화를 못받은 날이면 10통이 넘은 부재중과 10개가 넘은 음성메세지..

처음엔 걱정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늘어나는 전화통화, 점점 늘어나는 음성 메세지..

음성메세지에는 뭐하냐는말, 기분이 안좋다는말, 힘든다는 말들뿐..

 

어느날 , 그게 어느날인지 정확기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그져 그 많은 전화들이 익숙해질때쯤 갑자기 숨이 막혔습니다.

걱정이 아닌 집착으로 보였습니다. 자꾸 나를 질리게 했습니다.

날 그렇게 믿지 못하는지 화도나고, 나에게 매달리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장이 났다며 말도 안되는 거짓말들..

자고 있었다며 아무렇지 않은척했던 거짓말들..

그럴때 마다 미안하다고, 몰랐다고, 내일 다시한다고 말하며 끊었습니다.

그사람은 군인이여서가 아니라, 원래 착한 사람이었는데 ..

난 군인이니까, 외로우니까, 힘드니까, 날 찾는구나 착각했습니다.

 

착각이 반복되고 미워졌습니다.

군인을 왜 기다리고 있는건지 한심해졌습니다.

휴가때마다 점점 아져씨로 변하는 모습이 창피했습니다.

수많은 전화들과 메세지들이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점점 퉁명스러워 지는 말투로 전화를 받고

피곤한적 일부러 일찍 끊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화가 난 날은 3통이상 하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했습니다.

점점 전화횟수가 줄어갔습니다.

어느정도 평점심을 되 찾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상병이 되었습니다.

슬슬 전역을 준비할 떄가 되었습니다.

그사람은 계획이 없었습니다. 미래가 없었습니다.

전역에서 뭘 해야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전화할 시간에 미래를 생각해길 바랬습니다.

그사람을 점점 떠나가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린 시간보다, 앞으로 기다릴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그런 사람을 기다린 내가 너무 한심해보였습니다.

다른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돈있고 미래가 있고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

비교하게 됬습니다. 그사람과 다른사람들을..

 

결국 마음이 점점 정리되어가고 , 헤어지잔 얘기를 하려했습니다.

불과 2주전 그사람에게 이별통보를 하려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2년의 연애시절

그사람이 나에게 해줬던 그 모든 것들

그사람때문에 느꼈던 수 많은 행복들

오직 날 위해 이해하고 참아줬던 그사람을 떠올렸습니다.

그 추운날 밖에서 덜덜 떨며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지 않은 날은 하루에도 12번씩 전화를 하고

수화기 넘어로 내 목소리를 간절히 기다리는 그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비가오든날도 눈이오는날도 추운날도 더운날도

미친듯 힘들었던 훈련에도 잠한숨 못잔 근무날에도

그사람은 그져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했던 전화인데..

길지도 않던 그 통화가 왜 그렇게 싫었는지 스스로가 미워졌습니다.

 

그리곤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직 군인인데 왜 벌써부터 짐을 지어줄까

우린 아직 젊은데, 왜 늦었다고 생각했을까

천천히 함께 미래를 생각하면 되는데, 왜 모든것을 이사람에게 지어줬을까

평생을 함께 하고싶을 생각으로 기다린 사람인데, 왜 갑자기 포기하려 했을까

불안하기만 했던 미래가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리곤 그사람의 페이스북에 긴 편지를 남겼습니다.

지금껏 느꼈던 내 감정변화들. 그리고 모든 사실들을..

실망할수도 있고, 미워할수도 있다는걸 알았지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왜 그랬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지 ..

 

그사람은 지금 병장이 되었습니다.

그사람은 그 편지를 다 읽었습니다.

그사람은 나에게 미안하다 했습니다.

 

혼자둬서 미안하다고, 군대가서 미안하다고, 이해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고무신을 벗으려 하는 고무신분들..

 

왜 군대가던날 헤어지지 않았나요

왜 훈련소에 있던 날 헤어지지 않았나요

왜 그사람의 전화를 받아줬나요

왜 그사람에게 수많은 택배와 편지를 보냈나요

왜 지금 헤어지려 하나요.

왜 다가올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휴가나왔던 그 못생긴 빡빡머리 군인과 왜 함께 걸었나요

집착하듯 전화하던 못난 군인에게 왜 화내지 못했나요

 

지금 고무신을 벗으려 하는 이유는 많을겁니다.

사람 하나하나 모두 다르듯 이유마져도 재각각 일것입니다

그런데 저처럼 저런 당연한 것들을 넘기지 못해 벗으려 하신다면

단 1분이라도 좋으니 군대가기전 그사람을 떠올려 주세요.

뭘해도 멋졌고 귀여웠고 남자다웠으며 부드러웠던 그사람을.

 

만약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려도 아무렇지 않아졌다면

마음이 아프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면 , 차마 헤어지지 마세요. 란말 못드립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이 아팠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보고, 노래방을가고, 술을 먹으면서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갈테니까, 그 모든 시간들이 돌이켜보면 빠르게 느껴질테니까..

 

그 속도만큼 그사람도 곧 돌아올테니까.

너무 쉽게 벗지 마세요. 이쁘지도 않은 고무신이지만 안쓰럽잖아요.

난 편한 고무신을 신지만, 그사람은 딱딱한 군화를 신잖아요.

힘들어도 그사람이 더 힘들거니까. 아파도 그사람이 더 아팠을테니까

 

오늘 그사람에게 전화가 온다면 예전에 즐거웠던 추억을 꺼내보세요.

그리고 다시 웃었으면 좋겠네요.

 

제발. 너무 쉽게 벗지 마세요.

과거에 멋졌던 내 남자가 곧 더 멋지게 돌아올거니까..

" 벌써 내가 24살이야? " 할만큼 시간이 빨리갈테니까..

조금만 더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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