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올해 18살되는 꿈나무어린이야 지금부터 나의 길고도 짧은 푸른 인생예기를 해줄게 참고로 가오의 절정부분이 있으니 오해하진 말아줘 그냥그렇다고 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어 1995년에 태어났고 그로부터 2년뒤 IMF가터졋지 태어날때부터 난 비정상적으로 태어났어 보통 아이가 태어나면 응애응애 하고 울어야되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배를 주리신 부모님때문에 울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지 엄마젖이 나오질 않아서 우유를 마셧어 갖고싶은것 먹고싶은것 꾹참고 부모님말씀에 순종했지 4살때 친구네 집에 놀러를 갔어 배고픈 나머지 친구네 집에서 40원을 훔치고 슈퍼로가서 빵을 사려고했지 그때빵이 아마 450원정도 였을거야 아버지에게 리모컨으로 후질나게 맞았지 나의 첫번째 범죄의 시작이였어 사실 난 도둑놈인가봐 6살땐 유치원을 다녔어 보통 4~5살이면 다니는 유치원을 6살때 7살아이들이 다니는 꿈나무반최고학년 반으로 입학을 했지 어머니는 내가 3살부터 책을 읽었대 그래서 그런지 한살 더 많은 반으로 배정이 됬나봐 그리곤 7살꿈나무반에 2년을 복학했지 같은반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뽀뽀도 받았어 어머니에게 자랑을 했지 8살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어 철없는 어린 나이에 여자아이들의 가슴을 만져보기도 했지 물론 "나는 끈적이 괴물이다!!"하면서 말이야 의도적으로 만지려는 생각은 없었어 사실 여기까진 중요한게 별로 없어 나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시작은 중학교부터시작되지 초등학교때 반에서 항상 1,2등을 하던난 서울 강동구의 어떤 중학교를 입학한후 첫 중간고사시험을 봣지 당시 그학교는 남중이였고 학뻘이 매우쌧어 그래서 그런지라 반에서 1등을 놓치고 3등을 했지 사실 3등만해도 인서울권 대학은 갈수 있는 수준이였여 하지만 어렸을때의 꿈은 대범하기만 하지 보통 유치원 초등학생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을하곤 하지 "전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될거에요","전 커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이 될거에요" 도대체 x발 대통령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린다는거지 이나이쯤 되면 대학을 다 정해놓고 당연히 합격한단 식으로 말을하지 " 서울대아니면 대학안간다","ㅄ 하버드나 옥스퍼드는 가줘야 대학이지"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꿈은 점차 클수록 작아지는 법이야 "아 제발 인서울만 가자","반에서 10등안에만 들어야지" 하지만 나의 공부다짐은 6개월도 안되서 증발해버려 우리학교가 남중이며 두발복장규정이 매우 심각했지 중1후반기쯤엔 이성에 눈을 뜨고 멋을 차리는 사춘기에 접어들잔아? 항상 귀두컷 범생이였던 난 부모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거역하고 머리를 기르고 교복을 줄였지 당시 나팔바지였던 나의 교복은 8인치로 대폭 상향업데이트 됬어 물론 8인치는 내 두 다리가 들어가는 폭이지만 그때당시 8인치는 어마어마한 변화의 시작이였어 그리고 겨울방학 송파구의 모 영어학원에서 시험을 보는데 너무 귀찬은 나머지 당시 최고가 핸드폰이였던 시크릿폰으로 답안지를 사진으로 찍고 확대해서 배껴쓰다가 걸린적이있지 어머니는 생명보다 소중한 나의 핸드폰을 배란다에서 망치로 맴매를 했고 강철유리뭐시기나의 소중한 핸드폰은 아마겟돈 지구멸망을 당햇어 핸드폰이 너무 아픈나머지 액정에서 눈물을 흘리더라 이윽고 난 '삐뚤어질테야'라고 다짐했고 처음으로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어 그리고 중학교 2학년 한창 아침에 개념콘푸라이트에 말아먹던 시절 난 타학교 여학생을 좋아하게됬어 지금다시 회상하며 매우 찌질하단 생각이들지만 그여자에게 매우 많은 관심과 쓸데없는 발표제한 장난전화 문자질,그리고 술처먹듯한 말투로 고백을 했지 그결과 난 열라 차였고 그여자에게 욕을 하며 시비를 걸었지 하지만 의도치 않게 그여학생에게 보내려던 문자를 다른 무서운여학생한테 보내버렸고 여학생하게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친구 넷을 데리고 그학교로 가서 미안하다고 하려던차 종치자마자 수십수백명의 아이들이 나를 구경하러 왔고 몇몇 아이들은 몽뎅이와 각목을 들고 나를 보며 실실 쪼개고 있엇지 내가 대려온 친구 넷은 죄다 도망을 갔고 난 그 몃십명의 아이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어 그때 내가 학교에 '일진'이라는 것과 '일진의 인맥능력'을 깨닫게 됫지 하지만 난 작년까지 공부만했던 범생이였으며 앞서말한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부족하게 자랐어 지금 18살에 키 176 몸무게 46키로면 그떈 말안해도 잘알겠지 이 일로 인해 난 노원구로 이사를 갔어 노원구는 교육특구이기때문에 내가 공부하기 좋은 환경일거라 잘못판단하신 부모님들에 의해 노원구에서 처음으로 파출소를 갔어 노원구가 교육특구이며 거기에 공부잘하는 학생이 많음은 사실이야 하지만 그동네의 지리적 위치와 학생들의 집안은 말할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어 간단하게 뉴스에서 가출청소년에 대한 얘기를 제시하면 그 청소년들의 집안사정은 부모님들이 이혼을 하셧거나 따로사시거나 탈북 새터민 정도라고 얘기해둘게 노원구는 그런곳이였어 공부만 하는 최상류층 범생이/각좀범죄와 폭력을 주름잡는 일진 (내가 노원구를 비하하거나 까려고 의도하는 목적은 아님 사실 난 노원구에서 있었던 일이 제일 재밌엇고 좋았음 현재는 다시 강동구에 살지만 여전히 노원친구들과 연락하며 가끔놀러가기도함) 그동네 학교를 다니려고 북부 교육청에서 1,2지망 학교를 적어야 했지 학생부장의 매질을 증오했던난 두발규정이 자유로운 학교를 찾아야 했어 네이버 지식인에게 묻고 찾고 검색하고.. 그결과 좋은 소식을 발견했지 "ㅁㅁ학교는 수요일엔 교복을 안입어도되구요 토요일엔 학교안와두되구요 두발규정은 자유래요" 내가 꿈에도 그리고 찾던 이학교다! 그즉시 1지망에 ㅁㅁ학교를 적었고 이틀후 입학통지서를 받았지 다음주 월요일 학교에 등교하려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하고 교복을 입고 나서는데.. 어..나랑 같은 교복입은 남학생의 머리가,,스포츠머리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계속해서 등교를 했지 결국 학교 정문에서 교문지도를 받는 남학생의 머리는 모두 스포츠 머리였고 당연히 머리가 그들에 비해 길었던난 전학첫날 교문에서 업드려뻐쳐를 당해야했지 그리고 전학생이라고 해명후 그학교 학생부장과 상의 끝에 학교를 안다니기로 합의를 봤어 당연히 그날 저녁 아버지는 내 머리끄댕이를 잡고 가위로 자르려고 했고 난 잘못했으니 아무학교나 다니 겠다고 했지 그리고 1주일뒤 난 정말 제대로된 학교를 찾았어 정말이지 학교 홈페이지에서 제시한 두발규정은 나의 조건에 충분했고 첫날 전학생의 패기를 위해 바지통을 6통으로 줄이고 와이셔츠를 저고리로 만들었지 입학하자마자 그학교 일진들에게 찍혔어 1년동안 시달려야했지 그러나 3학년 그 애들과 친해지고 같은반이 되면서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어 이때부터 난 학교로부터 자유를 느꼇지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어 이 분류 애들중에선 여러가지 애들이 있었어 싸움을 잘하는 부류 ,말하면 터지는 개그부류, 나쁜짓을 잘하는 부류 등등.. 여기서난 특출나게 공부도 꾀하고 개그,나쁜짓이정도에 꼈어 (물론내가 이런애들과 어울렸다는걸 자랑하려고 하는게 아니야 단지 내가 이땐 이렇게 유치하게 놀았구나 라고 지금이여서야 웃고 떠올려보는거야) 정확히 12월25일되기 6일전인 12월 19일 한창 유행하던 귀걸이(피어싱)을 사려고 용돈을 탔었지 돈이 부족했던나머지 귀걸이를 너무 갖고싶어서 R&B문구점에서 귀걸이를 잔뜩 훔쳤어 첫번째 두번쨰 세번째까지 걸리지 않았지 5번째 되는 19일 이 문구점 점장도 눈치를 깐터라 귀걸이 거는 받침대를 랩으로 두번칭칭감아둔걸 나랑 친구가 다뜯어서 주머니에 있는대로 넣었지 당연히 점장에게 걸리고 경찰차가 올때까지 손들고 서있어야 했어 경찰서에서 합의를 본 아버지는 미용실로 대려가서 나의 머리를 3mm로 자르셨고 두부를 맥이셨어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나의 나쁜짓은 여기서 끝이 아니였어 특출나게 나쁜짓을 잘하는 애들과 어울렸고 그들은 감별소,소년원을 출소하고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 터라 대부분의 나쁜짓을 내가 하기로 했엇지 3학년 여름방학 하기 몇일 전이였어 가출한 상태였고 오토바이가 너무 타고싶은 나머지 가위질이며 딸키로 쑤시고 찌르고 박고 별짓을 다했엇지 얼마 안가서 다부셔진 떽떽이 한대를 봤어 쓰러진 떽떽이 닭발이라도 밟아보자해써 일으키는 순간 경찰차가 순찰을 오고있엇고 경찰관이 내리자마자 친구는 도망을 갔고 그대로난 직행이였지 두번째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부모님은 날 유배보내시기로 했어 그것도 미국 필리핀도아닌 아프리카 카메룬으로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3개월반동안 아프리카에서 반성을 했지 비행기로 6시간 프랑스 도착후 3~5시간 기다린후 다시 비행기를 탄후 8시간후 도착 아프리카는 정말 의외의 도시였어 정말 티비에서 보는 원시시대 움막집이런곳이 아니였고 정말 피시방 클럽 식장 호텔 등 갖출거 다갖춘 나라였어 물론 건물은 6.25전쟁 끝난후 60년대 건물갔았지만 노래방은 없었던걸로 기억함 ㅋㅋㅋ 뭐 여튼 3개월 반이라는 유배생활끝에 결심했어 '복수하리라 증오한다 치가 떨린다' 물은 녹물이였고 그나마 좀 나은 물을 쓰려면 3분동안 물을틀어야 했고 당시 아프리카는 가을이였을거야 바람이 매우 불고 비가 많이 내렸어 너무 추웠는데 보일러는 제대로 작동이 되질 않았지 세수하고 다음날이면 얼굴에 여드름 투성이였어 그래도 재밌던건 내가 곤충,동물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아프리카에서 많은 구경을 했지 가끔 집밖으로 500m정도 나가면 카멜레온과 도마뱀이 줄을 치고 돌아다녔지 그러던 어느날 난 피아노를 치게 됬어 사실 난 피아노를 6살때부터 배웟고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치다가 그만두게 되고 중학교 1학년에 다시 취미로 배우는 중이였어 아프리카에서 일요일마다 하는 예배끝에 피아노와 키보드를 만질수 있어서 그것이 유일한 낙(樂)이였지 쇼팽에튀드 중에 가장 난이도 높은 10-4번 추격을 연습하기로 했어 키보드에 있는 메트롬을 이용해 천천히 연습하고 연습했지 결국 3개월이란 오랜시간끝에 에튀드 10-4번 절반정도를 칠수있게 됬어 물론 원템포로 치진 못햇지만 여튼 한국에 돌아온 뒤 난 피아노학원을 다니기로 했어 에튀드 시작인 1번 '승리'부터 치기로 했지 하지만 2개월도 채 안되 학원을 접게 됬고 다시 노원친구들과 어울리게 됬어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는 그날 어머니는 졸업빵(옷벗기고 밀가루묻히고 등등)을 걱정하셔서 이사를 갔고 친절히 방과후 나를 집으로 태워다 주셨지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어 앞으로 수능까지 3년도 안남았다 열심히 공부해봐라 하며 강동구의 ㅇㅇ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지 다시 또 인생의 장벽을 넘는 시기가 됬어 그학교에서 강하게 보이려면 일단 튀어보여야 겠다라고 생각을 했고 입학하고 개학한지 4일만에 가출을 한뒤 노원구로 갔어 ★이 가출로 인해 난 원피스의 그랜드라인처럼 신세계를 겪었어★ 노원구에서 제대로 가출해보자 라고 다짐한(조카한심하다 ㅋㅋ) 나와 두친구들은 먼저 금은방을 가서 금팔찌를 훔치고 의정부로 도망을 갔어 의정부에서 금팔찌를 팔고 다시 금을 훔친뒤 수원으로 갔지 지금보면 개쪽팔리고 한심한 얘기지만 그때난 '아다'와 '후다'가 뭔지 몰랐어 애들은 날보고 비웃었고 빡촌가서 아다를 떼고 오라고 했지 그때까지난 얘네들이 뭔개소리를 하는지 몰랐어 하지만 수원에 오고 분홍빛 조그만 상가안에 있는 미녀들이 보고 눈이 돌아가셨음 결국 원한건지 이끌린건지 친구들과 상가를 들어간후 30분뒤에 경험담을 털어 놓게 되었어 여튼 이번 일로 인해 난 정신적 충동과 밀려오는 후회를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됬어 하지만 귀가 후 며칠되지 않아 다시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어 학교앞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는 학생들이 많았어 걔들이 남의 주민등록증을 도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편의점 알바누나는 애들에게 담배를 팔았어 그래서 나도 한번 사보자 해서 담배사는데 성공을 했고 몇주간 계속 담배를 사게 됬어 며칠후 반학생들과 친해진 난 친구들에게 담배를 사달라고 부탁을 받았어 물론난 민증을 보여주질 않았고 가출 후에 나쁜짓을 절떄 하지 않았어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순간 누나가 눈치를 보았는데 뒤를 돌아보는 순간 떡때 조나큰 남자가 날보고 "담배사지말라고 새꺄" 라고 하더군 방과후라서 학생들이 열라 많았고 난 눈이돌아가 그 떡대한테 개기기 시작했어 아니x발 내가 담배사러가는지 먹을거사는지 어떻게 알고 당신이 나한테 뭐라하냐고 따지기 시작했지 담배살거면 신분증을 보여달라더라 난 당당히 신분증없다고 했고 학생이고 담배사러 온게 맞다고 인정했어 근데 거기서 끝나질 않았어 이아저씨는 그편의점 사장이였더군 아저씨는 나보고 경찰을 부른다고 했고 난 그러세요 그럼 나도 여기서 담배산거 신고합니다 라고 맞받아 붙였지 경찰서는 10초간격으로 두번의 신고가 들어왔고 경찰차 두대가 출동을 했어 결국 난 무죄로 풀려났지만 부모님과 학교측에 통보를 받아야 했지 당연히 그아저씨는 300만원 벌금을 맞았어 솔직히 내잘못이 더크지만 난 말싸움으로 지지 않기때문에 이아저씨가 계속욕질을 해대서 나도 엿좀맥여야지 심정으로 그렇게 했었어 이일로 인해 사회봉사징계를 받고 자퇴를 했지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됬어 더러운 인생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 라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10시간씩 연습했고 2011년 가을쯤에 계원예술고등학교에 복학하려고 입시지원을 했어 결과는 떨어졌지 실력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중2,3학년때의 철없던 학교생활과 아프리카로 유학(?)간데에 무단 결석일수만 63회였기때문에 학교성적 불충분으로 떨어져버렸어 당시 학교에서 나를 좋은 학생으로 봐주지 않아서 교장선생이 도장을 안찍어주더라 ㅅㅂ; 이일로 다시 패닉에 빠지고 하루종일 죽치고 컴퓨터게임만 하게됬어 백수생활한지 벌써 1년이 다되가고 2012년 7월이야 검정고시 공부를 준비하며 난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지만 부모님은 내말을 들어주시지 않지 뭐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고 거짓말에 나쁜짓만 하는 아들같지도 않는 아들의 말을 어떻게 믿고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해주겠어 그치만 난 정말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고 싶고 검정고시공부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 지금까지 헛된 삶을 버리고 곧 시작될 20대의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 뭔가를 해야하는데 나의 부모님이 나를 믿어주지 않아 마치 양치기소년에 나오는 거짓말쟁이처럼 정말이지 컴퓨터가 사라져도 피아노만 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나어떻게 해야되지? 도와줘 얘들아 14
18살남자의 길고도 조나짧은인생경험담보고 조언부탁드림
안녕 올해 18살되는 꿈나무어린이야
지금부터 나의 길고도 짧은 푸른 인생예기를 해줄게
참고로 가오의 절정부분이 있으니 오해하진 말아줘 그냥그렇다고
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어
1995년에 태어났고 그로부터 2년뒤 IMF가터졋지
태어날때부터 난 비정상적으로 태어났어
보통 아이가 태어나면 응애응애 하고 울어야되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배를 주리신 부모님때문에 울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지
엄마젖이 나오질 않아서 우유를 마셧어
갖고싶은것 먹고싶은것 꾹참고 부모님말씀에 순종했지
4살때 친구네 집에 놀러를 갔어
배고픈 나머지 친구네 집에서 40원을 훔치고 슈퍼로가서 빵을 사려고했지
그때빵이 아마 450원정도 였을거야
아버지에게 리모컨으로 후질나게 맞았지
나의 첫번째 범죄의 시작이였어
사실 난 도둑놈인가봐
6살땐 유치원을 다녔어
보통 4~5살이면 다니는 유치원을 6살때 7살아이들이 다니는 꿈나무반최고학년 반으로 입학을 했지
어머니는 내가 3살부터 책을 읽었대
그래서 그런지 한살 더 많은 반으로 배정이 됬나봐
그리곤 7살꿈나무반에 2년을 복학했지
같은반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뽀뽀도 받았어
어머니에게 자랑을 했지
8살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어
철없는 어린 나이에 여자아이들의 가슴을 만져보기도 했지
물론 "나는 끈적이 괴물이다!!"하면서 말이야
의도적으로 만지려는 생각은 없었어
사실 여기까진 중요한게 별로 없어
나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시작은 중학교부터시작되지
초등학교때 반에서 항상 1,2등을 하던난 서울 강동구의 어떤 중학교를 입학한후 첫 중간고사시험을 봣지
당시 그학교는 남중이였고 학뻘이 매우쌧어
그래서 그런지라 반에서 1등을 놓치고 3등을 했지
사실 3등만해도 인서울권 대학은 갈수 있는 수준이였여
하지만 어렸을때의 꿈은 대범하기만 하지
보통 유치원 초등학생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을하곤 하지
"전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될거에요","전 커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이 될거에요"
도대체 x발 대통령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린다는거지
이나이쯤 되면 대학을 다 정해놓고 당연히 합격한단 식으로 말을하지
" 서울대아니면 대학안간다","ㅄ 하버드나 옥스퍼드는 가줘야 대학이지"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꿈은 점차 클수록 작아지는 법이야
"아 제발 인서울만 가자","반에서 10등안에만 들어야지"
하지만 나의 공부다짐은 6개월도 안되서 증발해버려
우리학교가 남중이며 두발복장규정이 매우 심각했지
중1후반기쯤엔 이성에 눈을 뜨고 멋을 차리는 사춘기에 접어들잔아?
항상 귀두컷 범생이였던 난 부모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거역하고 머리를 기르고 교복을 줄였지
당시 나팔바지였던 나의 교복은 8인치로 대폭 상향업데이트 됬어
물론 8인치는 내 두 다리가 들어가는 폭이지만 그때당시 8인치는 어마어마한 변화의 시작이였어
그리고 겨울방학
송파구의 모 영어학원에서 시험을 보는데 너무 귀찬은 나머지 당시 최고가 핸드폰이였던 시크릿폰으로
답안지를 사진으로 찍고 확대해서 배껴쓰다가 걸린적이있지
어머니는 생명보다 소중한 나의 핸드폰을 배란다에서 망치로 맴매를 했고
강철유리뭐시기나의 소중한 핸드폰은 아마겟돈 지구멸망을 당햇어
핸드폰이 너무 아픈나머지 액정에서 눈물을 흘리더라
이윽고 난 '삐뚤어질테야'라고 다짐했고 처음으로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어
그리고 중학교 2학년
한창 아침에 개념콘푸라이트에 말아먹던 시절 난 타학교 여학생을 좋아하게됬어
지금다시 회상하며 매우 찌질하단 생각이들지만
그여자에게 매우 많은 관심과 쓸데없는 발표제한 장난전화 문자질,그리고 술처먹듯한 말투로 고백을 했지
그결과 난 열라 차였고 그여자에게 욕을 하며 시비를 걸었지
하지만 의도치 않게 그여학생에게 보내려던 문자를 다른 무서운여학생한테 보내버렸고
여학생하게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친구 넷을 데리고 그학교로 가서 미안하다고 하려던차
종치자마자 수십수백명의 아이들이 나를 구경하러 왔고 몇몇 아이들은 몽뎅이와 각목을 들고 나를 보며
실실 쪼개고 있엇지
내가 대려온 친구 넷은 죄다 도망을 갔고 난 그 몃십명의 아이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어
그때 내가 학교에 '일진'이라는 것과 '일진의 인맥능력'을 깨닫게 됫지
하지만 난 작년까지 공부만했던 범생이였으며 앞서말한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부족하게 자랐어
지금 18살에 키 176 몸무게 46키로면 그떈 말안해도 잘알겠지
이 일로 인해 난 노원구로 이사를 갔어
노원구는 교육특구이기때문에 내가 공부하기 좋은 환경일거라 잘못판단하신 부모님들에 의해
노원구에서 처음으로 파출소를 갔어
노원구가 교육특구이며 거기에 공부잘하는 학생이 많음은 사실이야
하지만 그동네의 지리적 위치와 학생들의 집안은 말할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어
간단하게 뉴스에서 가출청소년에 대한 얘기를 제시하면 그 청소년들의 집안사정은 부모님들이 이혼을
하셧거나 따로사시거나 탈북 새터민 정도라고 얘기해둘게
노원구는 그런곳이였어
공부만 하는 최상류층 범생이/각좀범죄와 폭력을 주름잡는 일진
(내가 노원구를 비하하거나 까려고 의도하는 목적은 아님 사실 난 노원구에서 있었던 일이 제일 재밌엇고 좋았음 현재는 다시 강동구에 살지만 여전히 노원친구들과 연락하며 가끔놀러가기도함)
그동네 학교를 다니려고 북부 교육청에서 1,2지망 학교를 적어야 했지
학생부장의 매질을 증오했던난 두발규정이 자유로운 학교를 찾아야 했어
네이버 지식인에게 묻고 찾고 검색하고..
그결과 좋은 소식을 발견했지
"ㅁㅁ학교는 수요일엔 교복을 안입어도되구요 토요일엔 학교안와두되구요 두발규정은 자유래요"
내가 꿈에도 그리고 찾던 이학교다!
그즉시 1지망에 ㅁㅁ학교를 적었고 이틀후 입학통지서를 받았지
다음주 월요일 학교에 등교하려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하고 교복을 입고 나서는데..
어..나랑 같은 교복입은 남학생의 머리가,,스포츠머리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계속해서 등교를 했지
결국 학교 정문에서 교문지도를 받는 남학생의 머리는 모두 스포츠 머리였고 당연히 머리가 그들에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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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다고 했지
그리고 1주일뒤 난 정말 제대로된 학교를 찾았어
정말이지 학교 홈페이지에서 제시한 두발규정은 나의 조건에 충분했고
첫날 전학생의 패기를 위해 바지통을 6통으로 줄이고 와이셔츠를 저고리로 만들었지
입학하자마자 그학교 일진들에게 찍혔어
1년동안 시달려야했지
그러나 3학년 그 애들과 친해지고 같은반이 되면서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어
이때부터 난 학교로부터 자유를 느꼇지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어
이 분류 애들중에선 여러가지 애들이 있었어
싸움을 잘하는 부류 ,말하면 터지는 개그부류, 나쁜짓을 잘하는 부류 등등..
여기서난 특출나게 공부도 꾀하고 개그,나쁜짓이정도에 꼈어
(물론내가 이런애들과 어울렸다는걸 자랑하려고 하는게 아니야 단지 내가 이땐 이렇게 유치하게 놀았구나 라고 지금이여서야 웃고 떠올려보는거야)
정확히 12월25일되기 6일전인 12월 19일 한창 유행하던 귀걸이(피어싱)을 사려고 용돈을 탔었지
돈이 부족했던나머지 귀걸이를 너무 갖고싶어서 R&B문구점에서 귀걸이를 잔뜩 훔쳤어
첫번째 두번쨰 세번째까지 걸리지 않았지
5번째 되는 19일 이 문구점 점장도 눈치를 깐터라 귀걸이 거는 받침대를 랩으로 두번칭칭감아둔걸 나랑 친구가 다뜯어서 주머니에 있는대로 넣었지
당연히 점장에게 걸리고 경찰차가 올때까지 손들고 서있어야 했어
경찰서에서 합의를 본 아버지는 미용실로 대려가서 나의 머리를 3mm로 자르셨고 두부를 맥이셨어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나의 나쁜짓은 여기서 끝이 아니였어
특출나게 나쁜짓을 잘하는 애들과 어울렸고 그들은 감별소,소년원을 출소하고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 터라
대부분의 나쁜짓을 내가 하기로 했엇지
3학년 여름방학 하기 몇일 전이였어
가출한 상태였고 오토바이가 너무 타고싶은 나머지 가위질이며 딸키로 쑤시고 찌르고 박고 별짓을 다했엇지
얼마 안가서 다부셔진 떽떽이 한대를 봤어
쓰러진 떽떽이 닭발이라도 밟아보자해써 일으키는 순간 경찰차가 순찰을 오고있엇고
경찰관이 내리자마자 친구는 도망을 갔고 그대로난 직행이였지
두번째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부모님은 날 유배보내시기로 했어
그것도 미국 필리핀도아닌 아프리카 카메룬으로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3개월반동안 아프리카에서 반성을 했지
비행기로 6시간 프랑스 도착후 3~5시간 기다린후 다시 비행기를 탄후 8시간후 도착
아프리카는 정말 의외의 도시였어
정말 티비에서 보는 원시시대 움막집이런곳이 아니였고
정말 피시방 클럽 식장 호텔 등 갖출거 다갖춘 나라였어
물론 건물은 6.25전쟁 끝난후 60년대 건물갔았지만
노래방은 없었던걸로 기억함 ㅋㅋㅋ
뭐 여튼 3개월 반이라는 유배생활끝에 결심했어
'복수하리라 증오한다 치가 떨린다'
물은 녹물이였고 그나마 좀 나은 물을 쓰려면 3분동안 물을틀어야 했고
당시 아프리카는 가을이였을거야 바람이 매우 불고 비가 많이 내렸어
너무 추웠는데 보일러는 제대로 작동이 되질 않았지
세수하고 다음날이면 얼굴에 여드름 투성이였어
그래도 재밌던건 내가 곤충,동물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아프리카에서 많은 구경을 했지
가끔 집밖으로 500m정도 나가면 카멜레온과 도마뱀이 줄을 치고 돌아다녔지
그러던 어느날 난 피아노를 치게 됬어
사실 난 피아노를 6살때부터 배웟고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치다가 그만두게 되고 중학교 1학년에 다시 취미로 배우는 중이였어
아프리카에서 일요일마다 하는 예배끝에 피아노와 키보드를 만질수 있어서 그것이 유일한 낙(樂)이였지
쇼팽에튀드 중에 가장 난이도 높은 10-4번 추격을 연습하기로 했어
키보드에 있는 메트롬을 이용해 천천히 연습하고 연습했지
결국 3개월이란 오랜시간끝에 에튀드 10-4번 절반정도를 칠수있게 됬어 물론 원템포로 치진 못햇지만
여튼 한국에 돌아온 뒤 난 피아노학원을 다니기로 했어
에튀드 시작인 1번 '승리'부터 치기로 했지
하지만 2개월도 채 안되 학원을 접게 됬고 다시 노원친구들과 어울리게 됬어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는 그날 어머니는 졸업빵(옷벗기고 밀가루묻히고 등등)을 걱정하셔서 이사를 갔고 친절히 방과후 나를 집으로 태워다 주셨지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어
앞으로 수능까지 3년도 안남았다 열심히 공부해봐라 하며 강동구의 ㅇㅇ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지
다시 또 인생의 장벽을 넘는 시기가 됬어
그학교에서 강하게 보이려면 일단 튀어보여야 겠다라고 생각을 했고
입학하고 개학한지 4일만에 가출을 한뒤 노원구로 갔어
★이 가출로 인해 난 원피스의 그랜드라인처럼 신세계를 겪었어★
노원구에서 제대로 가출해보자 라고 다짐한(조카한심하다 ㅋㅋ) 나와 두친구들은 먼저 금은방을 가서 금팔찌를 훔치고 의정부로 도망을 갔어
의정부에서 금팔찌를 팔고 다시 금을 훔친뒤 수원으로 갔지
지금보면 개쪽팔리고 한심한 얘기지만 그때난 '아다'와 '후다'가 뭔지 몰랐어
애들은 날보고 비웃었고 빡촌가서 아다를 떼고 오라고 했지
그때까지난 얘네들이 뭔개소리를 하는지 몰랐어
하지만 수원에 오고 분홍빛 조그만 상가안에 있는 미녀들이 보고 눈이 돌아가셨음
결국 원한건지 이끌린건지 친구들과 상가를 들어간후 30분뒤에 경험담을 털어 놓게 되었어
여튼 이번 일로 인해 난 정신적 충동과 밀려오는 후회를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됬어
하지만 귀가 후 며칠되지 않아 다시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어
학교앞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는 학생들이 많았어
걔들이 남의 주민등록증을 도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편의점 알바누나는 애들에게 담배를 팔았어
그래서 나도 한번 사보자 해서 담배사는데 성공을 했고 몇주간 계속 담배를 사게 됬어
며칠후 반학생들과 친해진 난 친구들에게 담배를 사달라고 부탁을 받았어 물론난 민증을 보여주질 않았고
가출 후에 나쁜짓을 절떄 하지 않았어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순간 누나가 눈치를 보았는데 뒤를 돌아보는 순간 떡때 조나큰 남자가 날보고 "담배사지말라고 새꺄" 라고 하더군
방과후라서 학생들이 열라 많았고 난 눈이돌아가 그 떡대한테 개기기 시작했어
아니x발 내가 담배사러가는지 먹을거사는지 어떻게 알고 당신이 나한테 뭐라하냐고 따지기 시작했지
담배살거면 신분증을 보여달라더라 난 당당히 신분증없다고 했고 학생이고 담배사러 온게 맞다고 인정했어
근데 거기서 끝나질 않았어 이아저씨는 그편의점 사장이였더군
아저씨는 나보고 경찰을 부른다고 했고 난 그러세요 그럼 나도 여기서 담배산거 신고합니다 라고 맞받아 붙였지
경찰서는 10초간격으로 두번의 신고가 들어왔고 경찰차 두대가 출동을 했어
결국 난 무죄로 풀려났지만 부모님과 학교측에 통보를 받아야 했지
당연히 그아저씨는 300만원 벌금을 맞았어
솔직히 내잘못이 더크지만 난 말싸움으로 지지 않기때문에 이아저씨가 계속욕질을 해대서 나도 엿좀맥여야지 심정으로 그렇게 했었어
이일로 인해 사회봉사징계를 받고 자퇴를 했지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됬어
더러운 인생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 라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10시간씩 연습했고
2011년 가을쯤에 계원예술고등학교에 복학하려고 입시지원을 했어
결과는 떨어졌지
실력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중2,3학년때의 철없던 학교생활과 아프리카로 유학(?)간데에 무단 결석일수만
63회였기때문에 학교성적 불충분으로 떨어져버렸어
당시 학교에서 나를 좋은 학생으로 봐주지 않아서 교장선생이 도장을 안찍어주더라 ㅅㅂ;
이일로 다시 패닉에 빠지고 하루종일 죽치고 컴퓨터게임만 하게됬어
백수생활한지 벌써 1년이 다되가고 2012년 7월이야
검정고시 공부를 준비하며 난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지만 부모님은 내말을 들어주시지 않지 뭐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고 거짓말에 나쁜짓만 하는 아들같지도 않는 아들의 말을 어떻게 믿고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해주겠어
그치만 난 정말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고 싶고 검정고시공부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
지금까지 헛된 삶을 버리고 곧 시작될 20대의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 뭔가를 해야하는데
나의 부모님이 나를 믿어주지 않아 마치 양치기소년에 나오는 거짓말쟁이처럼
정말이지 컴퓨터가 사라져도 피아노만 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나어떻게 해야되지? 도와줘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