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 2px; MARGIN-BOTTOM: 2px} [순창여행] 하서 선생의 문학적 사상 '삼연'과 후학 양성 의지를 만나는 훈몽재 생지(生知) 곤지(困知)* 구별 마소 지(知)에 가면 마찬가지 성인의 도 멀다지만 잘 배우면 따라가네 부디 잊지를 말고 또한 조장(助長)도 말며 나태심을 방지하여 쉴새없이 부지런히 -권학(勸學)/김인후 *‘중용’은 앎을 3단계로 설명한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도를 아는 것을 생지(生知)라 하고, 배운 뒤 비로소 아는 것이 학지(學知), 배워도 알지 못하고 경험을 쌓고 애써서 비로소 아는 것이 곤지(困知)다. 김인후 선생의 가르침, 철학, 정신을 기억하며... 호남 출신 대표적 성리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이 당파싸움 중앙 정치에 염증을 느껴 은거한 전북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 강학당으로 지은 훈몽재는 송강 정철과 양자징, 조회문, 기효간, 변송온 등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을 배출한 곳이다. 계절이 기운 다음에야 송백(松柏)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 나오는 글귀다. 유배지 제주도에서 그린 추사의 마음이 담긴 사의적인 그림이 순창군의 하서 김인후 선생 흔적을 더듬는 문화답사 내내 아른거렸다. 권력무상을 자의로, 타의로 떠났지만, 자신의 학문과 이상을 펼칠 기회가 아닌 세상... 선비들의 처세는 각양각색...-.- 하서 선생의 문학적 삼연(三然) 사상... 산(山), 수(水), 인(人)...을 구현하기 위해 지었다는 삼연정에 올랐다.자연과 호흡하면서, 자연과 대화하면서, 자연과 서로 술잔을 나누면서 자연과 서로 교감을 나누며 귀거래사를 생각했으리라. 동남쪽 뭉게구름 산 하나를 이뤘는데 창가의 가을비는 들리나니 물소릴세 담장 너머 국화꽃엔 이슬이 무거운데 술을 따라 마시면서 문을 닫고 홀로 있네. -우중(雨中)/김인후 그때나 지금이나... 일류는 정치의 아귀다툼이 더러워 은일 사상으로! 2류, 3류들이 아욕(我慾)을 국가를 들먹이는 세상! 시주(詩酒)를 벗처럼 여기며 살지만 후학을 양성하며 나라의 동량을 만들며 살아도 꺾인 꿈의 회한과 자연 속의 외로움은 친구처럼 찾아왔기에... 하서 선생이 1548년 후학양성과 학문연구를 위해 이곳에 허룸한 초가집 형태의 초당을 세웠지만 지금은 화려한 기와로 ㅎㅎ 풍수라는 말은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다(藏風得水)'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양택과 음택의 구별은 있지만... 여행하다보면 옛날 초등학교 등의 터도 마을에서 좋은 자리에 위치했었다. 훈몽재에도 청동기시대 지석묘가 있었다. 어느 정치인의 말을 빌리면 장풍득수(藏風得水)가 아니라 장수득풍(藏水得風) 즉 '물을 막아 바람을 얻다'로 4대강 때문에 대한민국이 시끄럽다고 하지 않았나...-.- 태극이라 다함 없는 묘한 이치는 우주의 사이에 늘 유행하거니 외론 몸 늬 더불어 문의하리오 밤낮으로 그대 오길 기다리노라. -또 부치다/김인후 명당에서 공부해서 그런가? 훈몽재는 조선시대 성리학 발전에 큰 획을 그은 50여 명의 대학자를 배출한 후학양성의 도량이다. 어느 해에 과회(寡悔)*를 이별했던고 남녘 바다 초수(楚樹)의 봄철이었소 못난 나도 몇해를 나그네살이 강 풀이 또 한번 새롭네그려 -괴회를 그리워하며/김인후 * 노수신의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다. 동병상련의 벗을 그리워하는 하서의 詩 훈몽재 앞 강가를 바라보며... 충북 괴산여행에서 노수신이 유배와 살던 적소를 떠올렸다. 괴산 첩첩산중 산막이 마을에는 조선시대 문신 노수신이 을사사화 때 유배를 와서 머물던 노수신 적소가 있었다. 수월정(水月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지... 핸드폰도 없던 시절, 유배지에서 읽는 친구의 서신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괴산 여행] 산막이 옛길을 산적처럼 걷다http://blog.daum.net/iloveart/15709266 스승, 하서 선생의 인품에 송강 같은 권력욕의 화신이 제자로? 훈몽재 아래 추령천에 있는 대학암(大學岩)은 하서 김인후와 송강 정철이 '대학'을 논한 곳이라고 한다. 어릴적, 가문이 역모에 연류되어 풍지박살난 트라우마 때문인가? 서자 출신이란 태생적 한계의 옹졸한 왕 선조와의 잘못된 만남... 시인 정철은 피빛 칼춤을 추었었지...-.- 역사는 기록된다. 잘 살아야 한다. 송강 정철의 친필이라는 암각글씨 대학암... 훈몽재 들린뒤, 주변 낙덕정과 가인 김병로 선생 생가, 동학혁명 주도한 전봉준 녹두장군 피체지 등 주변 유적과 연계 역사탐방코스로도 좋다. .
[순창여행] 하서 선생의 문학적 사상 '삼연'과 후학 양성 의지를 만나는 훈몽재
[순창여행] 하서 선생의 문학적 사상 '삼연'과 후학 양성 의지를 만나는 훈몽재
생지(生知) 곤지(困知)* 구별 마소 지(知)에 가면 마찬가지
성인의 도 멀다지만 잘 배우면 따라가네
부디 잊지를 말고 또한 조장(助長)도 말며
나태심을 방지하여 쉴새없이 부지런히
-권학(勸學)/김인후
*‘중용’은 앎을 3단계로 설명한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도를 아는 것을 생지(生知)라 하고,
배운 뒤 비로소 아는 것이 학지(學知),
배워도 알지 못하고 경험을 쌓고 애써서 비로소 아는 것이 곤지(困知)다.
김인후 선생의 가르침, 철학, 정신을 기억하며...
호남 출신 대표적 성리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이
당파싸움 중앙 정치에 염증을 느껴 은거한
전북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
강학당으로 지은 훈몽재는
송강 정철과 양자징, 조회문, 기효간, 변송온 등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을 배출한 곳이다.
계절이 기운 다음에야 송백(松柏)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 나오는 글귀다.
유배지 제주도에서 그린 추사의 마음이 담긴 사의적인 그림이
순창군의 하서 김인후 선생 흔적을 더듬는 문화답사 내내 아른거렸다.
권력무상을 자의로, 타의로 떠났지만,
자신의 학문과 이상을 펼칠 기회가 아닌 세상...
선비들의 처세는 각양각색...-.-
하서 선생의 문학적 삼연(三然) 사상...
산(山), 수(水), 인(人)...을 구현하기 위해 지었다는 삼연정에 올랐다.
자연과 호흡하면서, 자연과 대화하면서,
자연과 서로 술잔을 나누면서
자연과 서로 교감을 나누며
귀거래사를 생각했으리라.
동남쪽 뭉게구름 산 하나를 이뤘는데
창가의 가을비는 들리나니 물소릴세
담장 너머 국화꽃엔 이슬이 무거운데
술을 따라 마시면서 문을 닫고 홀로 있네.
-우중(雨中)/김인후
그때나 지금이나...
일류는 정치의 아귀다툼이 더러워 은일 사상으로!
2류, 3류들이 아욕(我慾)을 국가를 들먹이는 세상!
시주(詩酒)를 벗처럼 여기며 살지만
후학을 양성하며 나라의 동량을 만들며 살아도
꺾인 꿈의 회한과 자연 속의 외로움은 친구처럼 찾아왔기에...
하서 선생이 1548년 후학양성과 학문연구를 위해 이곳에
허룸한 초가집 형태의 초당을 세웠지만
지금은 화려한 기와로 ㅎㅎ
풍수라는 말은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다(藏風得水)'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양택과 음택의 구별은 있지만...
여행하다보면 옛날 초등학교 등의 터도
마을에서 좋은 자리에 위치했었다.
훈몽재에도 청동기시대 지석묘가 있었다.
어느 정치인의 말을 빌리면 장풍득수(藏風得水)가 아니라
장수득풍(藏水得風)
즉 '물을 막아 바람을 얻다'로
4대강 때문에 대한민국이 시끄럽다고 하지 않았나...-.-
태극이라 다함 없는 묘한 이치는
우주의 사이에 늘 유행하거니
외론 몸 늬 더불어 문의하리오
밤낮으로 그대 오길 기다리노라.
-또 부치다/김인후
명당에서 공부해서 그런가?
훈몽재는
조선시대 성리학 발전에 큰 획을 그은
50여 명의 대학자를 배출한 후학양성의 도량이다.
어느 해에 과회(寡悔)*를 이별했던고
남녘 바다 초수(楚樹)의 봄철이었소
못난 나도 몇해를 나그네살이
강 풀이 또 한번 새롭네그려
-괴회를 그리워하며/김인후
* 노수신의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다.
동병상련의 벗을 그리워하는 하서의 詩
훈몽재 앞 강가를 바라보며...
충북 괴산여행에서 노수신이 유배와 살던 적소를 떠올렸다.
괴산 첩첩산중 산막이 마을에는 조선시대 문신 노수신이
을사사화 때 유배를 와서 머물던 노수신 적소가 있었다.
수월정(水月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지...
핸드폰도 없던 시절,
유배지에서 읽는 친구의 서신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괴산 여행] 산막이 옛길을 산적처럼 걷다
http://blog.daum.net/iloveart/15709266
스승, 하서 선생의 인품에 송강 같은 권력욕의 화신이 제자로?
훈몽재 아래 추령천에 있는 대학암(大學岩)은
하서 김인후와 송강 정철이 '대학'을 논한 곳이라고 한다.
어릴적, 가문이 역모에 연류되어 풍지박살난 트라우마 때문인가?
서자 출신이란 태생적 한계의 옹졸한 왕 선조와의 잘못된 만남...
시인 정철은 피빛 칼춤을 추었었지...-.-
역사는 기록된다.
잘 살아야 한다.
송강 정철의 친필이라는 암각글씨 대학암...
훈몽재 들린뒤,
주변 낙덕정과 가인 김병로 선생 생가,
동학혁명 주도한 전봉준 녹두장군 피체지 등
주변 유적과 연계 역사탐방코스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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