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은 다른 집들처럼 평범했습니다. 정규직 직장을 가지신 아버지와 마트에서 일하시는 어머니 밑에서 다른 또래 아이들과 같이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무슨 직업을 가질 지 모르니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한 교육을 특히 중요하게 받아왔습니다.
한 달 용돈이 5만원이었던 고3 땐, 더 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에도 5만원이면 충분하다며 거기서 2만원씩 통장에 저축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 년 동안 모든 돈은 30만원이란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19살이었던 제겐 큰 돈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대학을 통학하며 다니게 되어 달에 20만원씩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도 5만원씩은 저축을 하고 책값이나 과 회식비는 나머지 15만원에서 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이 공무원이시지만, 여지껏 저 하나 키워보겠다고 고생하신 부모님께 폐 끼치고 싶지 않아 이번에 어쩌다보니 장학금도 받게 되었습니다..(..ㅎㅎ....)
부모님 두 분 다 절 위해 힘써주셨지만, 유독 어머니께서 고생을 하셨습니다. 스무살 중반에 시집 와 평생을 시부모 챙기며 사신 분이십니다. 유년시절부터 마른 몸 때문에 힘이 없으셨던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나 시집 오자마자 여태까지 단 하루도 친정에서 잠을 자본 적이 없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실 때도 하루종일 옆에서 수발을 들으셨고, 아파트로 분가를 했을 땐, 매일 마트에 출근을 하시면서도 일주일에 두 번씩 혼자 계시는 할머니집에 가셔서 반찬과 청소를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할머니께서 몸이 편찮으신 것도 아닙니다. 몸이 정정하시고, 여전히 여기저기 놀러다니실 정도로 건강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엄마와 할머니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청소 한 번 안 하셨고, 반찬이 떨어질 때 쯤 되면 엄마에게 전화를 해 반찬하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땐 나이가 어리니 엄마의 고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전 외동입니다. 둘째를 가지려고 부모님께서 노력은 하셨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선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할아버지 제사 때마다 둘째가 생기게 해달라고 하셨으며, 옆 집에서 아기가 태어날 때면 그 아기를 집에 꼭 데려와 엄마에게 보여주며 우리 집은 왜 하나 뿐이냐고 눈치를 주셨습니다. 게다가 며칠 전 너무나도 기가 막힌 얘기를 들었습니다. 엄마가 둘째를 못 낳은 이유가, 외할머니께서 엄마가 저를 낳자마자 달려와 수고했다며 하나만 낳아도 된다고 하셔서 못 낳은 거라고 할머니께서 그러셨다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던지 얼이 빠져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께서 절 낳으시자마자 산후조리에 힘써야 할 시기에 할머니께선 할아버지 수발 못 들으니 엄마에게 수발 다 들으라 하셨고, 엄마는 시부모니까 어쩔 수 없이 하루종일 할아버지의 수발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미음만 드시며 소변을 제대로 가릴 수가 없어 엄마꼐서 다 가려주시던 모습을요. 저번 달엔 할머니와 둘이서 새벽시장에 가셨다가 할머니가 사람들 앞에서 엄마께 자기 뜻대로 사지 않는다며 못된 년, 나쁜 년 등등 고래고래 소리를 치셔서 엄마께서 순간적으로 다리에 마비가 와 상가 아저씨들의 부축을 받았다고 합니다..
문제가 할머니께만 있으면 참아보려했지만, 아버지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파트에 살 때, 아버지께서 주식에 빠지셔서 집 한 채 값을 날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흰 다시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 빚을 갚으기 위해 어머니께선 마트에 나가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께선 온 집안일을 혼자 다 하셨고,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할머니께 용돈을 드렸습니다. 그 이외에도 할머니께서 3만원씩 달라고 하면, 따로 드렸고요. 제 학원비나 학비, 빚, 생활비 이런 저런 거에 돈을 쓰느라 정착 어머니 저 자신은 화장품 하나 사면 할머니 눈치 보느라 제 가방에 숨겨서 집에 들어가십니다.
혼자서 그 모든 걸 감당하는 게 벅찰 텐데, 아버지께선 도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월급통장 하나 넘겨주고 너가 다 하라는 투로 말을 하셨다고 하네요. 그래도 어머니께선 요즘 남자들은 월급통장도 부인한테 안 준다며, 월급통장 주는 게 어디냐며 다행이라고 하십니다. 네. 그것마저 안 줬으면 저희 어머니 벌써 집 나가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꼭 나중에 본인의 선에서 감당이 안 될 때 쯤 저희에게 말하십니다. 그것도 무엇무엇 때문에 이렇게 돈이 필요하니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얼마만 달라, 이렇게 말을 하십니다. 그러니 저희 어머니께서 매번 힘들어하시고요. 주식으로 날리셨을 때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불어난 후에야 돈을 달라 하셨고, 저번에도 돈 때문에 싸우셨습니다. 이번에도 대출을 받아 갚을 수가 없어 제가 여태까지 모아놓은 돈을 다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선 주사도 있으셔서, 술을 드시고 들어오시면 저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면 욕을 하며 던져 부십니다. 제 노트북이나 선풍기, TV 등등.. 이젠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들어오시면 겁부터 납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들어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지만 속은 조마조마합니다. 혹여나 폭발해서 던질까봐. 예전에는 이불을 깔지 않았다고 어머니께 쌍욕을 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땐 저도 옆에 있어 그 다음 날 외갓집으로 가버렸지만 그 때의 악몽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통보를 하셨다고 합니다. 다음 달에 사표 낼 테니 그렇게 하는 줄 알라고. 어머니께서 순간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아, 나는 20년 동안 이 집안에서 파출부 밖에 안 됬었구나. 이렇게 중요한 문제도 나완 상의 한 번 없이 혼자 결정을 하는구나... 그래서 어머니께선 집을 나가신다고 하시니 아버지께선 그럼 그렇게 하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감정이 격해져서 울먹이며 저에게 말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어이가 없고 화만 났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의 눈을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게 한 번에 밀려와서 혹여나 울컥할까봐. 어머니께선 지금 이혼을 결심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난 평생 엄마 곁에 있을테니 걱정말라 했고요.
이런 제가, 아버지와 할머니를 선택하지 않은 제가 나쁜 딸인가요...
며칠 동안 혼자 속앓이 하다가 이렇게 길게나마 남겨봅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20년만에 이혼을 결심한 엄마를 응원하는 전 나쁜 딸인가요..
조금 길어도, 제겐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꼭 읽어봐주세요.
올해 갓 대학교에 입학한 스무살 흔녀입니다.
저희 집은 다른 집들처럼 평범했습니다. 정규직 직장을 가지신 아버지와 마트에서 일하시는 어머니 밑에서 다른 또래 아이들과 같이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무슨 직업을 가질 지 모르니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한 교육을 특히 중요하게 받아왔습니다.
한 달 용돈이 5만원이었던 고3 땐, 더 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에도 5만원이면 충분하다며 거기서 2만원씩 통장에 저축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 년 동안 모든 돈은 30만원이란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19살이었던 제겐 큰 돈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대학을 통학하며 다니게 되어 달에 20만원씩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도 5만원씩은 저축을 하고 책값이나 과 회식비는 나머지 15만원에서 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이 공무원이시지만, 여지껏 저 하나 키워보겠다고 고생하신 부모님께 폐 끼치고 싶지 않아 이번에 어쩌다보니 장학금도 받게 되었습니다..(..ㅎㅎ....)
부모님 두 분 다 절 위해 힘써주셨지만, 유독 어머니께서 고생을 하셨습니다. 스무살 중반에 시집 와 평생을 시부모 챙기며 사신 분이십니다. 유년시절부터 마른 몸 때문에 힘이 없으셨던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나 시집 오자마자 여태까지 단 하루도 친정에서 잠을 자본 적이 없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실 때도 하루종일 옆에서 수발을 들으셨고, 아파트로 분가를 했을 땐, 매일 마트에 출근을 하시면서도 일주일에 두 번씩 혼자 계시는 할머니집에 가셔서 반찬과 청소를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할머니께서 몸이 편찮으신 것도 아닙니다. 몸이 정정하시고, 여전히 여기저기 놀러다니실 정도로 건강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엄마와 할머니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청소 한 번 안 하셨고, 반찬이 떨어질 때 쯤 되면 엄마에게 전화를 해 반찬하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땐 나이가 어리니 엄마의 고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전 외동입니다. 둘째를 가지려고 부모님께서 노력은 하셨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선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할아버지 제사 때마다 둘째가 생기게 해달라고 하셨으며, 옆 집에서 아기가 태어날 때면 그 아기를 집에 꼭 데려와 엄마에게 보여주며 우리 집은 왜 하나 뿐이냐고 눈치를 주셨습니다. 게다가 며칠 전 너무나도 기가 막힌 얘기를 들었습니다. 엄마가 둘째를 못 낳은 이유가, 외할머니께서 엄마가 저를 낳자마자 달려와 수고했다며 하나만 낳아도 된다고 하셔서 못 낳은 거라고 할머니께서 그러셨다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던지 얼이 빠져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께서 절 낳으시자마자 산후조리에 힘써야 할 시기에 할머니께선 할아버지 수발 못 들으니 엄마에게 수발 다 들으라 하셨고, 엄마는 시부모니까 어쩔 수 없이 하루종일 할아버지의 수발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미음만 드시며 소변을 제대로 가릴 수가 없어 엄마꼐서 다 가려주시던 모습을요. 저번 달엔 할머니와 둘이서 새벽시장에 가셨다가 할머니가 사람들 앞에서 엄마께 자기 뜻대로 사지 않는다며 못된 년, 나쁜 년 등등 고래고래 소리를 치셔서 엄마께서 순간적으로 다리에 마비가 와 상가 아저씨들의 부축을 받았다고 합니다..
문제가 할머니께만 있으면 참아보려했지만, 아버지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파트에 살 때, 아버지께서 주식에 빠지셔서 집 한 채 값을 날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흰 다시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 빚을 갚으기 위해 어머니께선 마트에 나가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께선 온 집안일을 혼자 다 하셨고,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할머니께 용돈을 드렸습니다. 그 이외에도 할머니께서 3만원씩 달라고 하면, 따로 드렸고요. 제 학원비나 학비, 빚, 생활비 이런 저런 거에 돈을 쓰느라 정착 어머니 저 자신은 화장품 하나 사면 할머니 눈치 보느라 제 가방에 숨겨서 집에 들어가십니다.
혼자서 그 모든 걸 감당하는 게 벅찰 텐데, 아버지께선 도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월급통장 하나 넘겨주고 너가 다 하라는 투로 말을 하셨다고 하네요. 그래도 어머니께선 요즘 남자들은 월급통장도 부인한테 안 준다며, 월급통장 주는 게 어디냐며 다행이라고 하십니다. 네. 그것마저 안 줬으면 저희 어머니 벌써 집 나가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꼭 나중에 본인의 선에서 감당이 안 될 때 쯤 저희에게 말하십니다. 그것도 무엇무엇 때문에 이렇게 돈이 필요하니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얼마만 달라, 이렇게 말을 하십니다. 그러니 저희 어머니께서 매번 힘들어하시고요. 주식으로 날리셨을 때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불어난 후에야 돈을 달라 하셨고, 저번에도 돈 때문에 싸우셨습니다. 이번에도 대출을 받아 갚을 수가 없어 제가 여태까지 모아놓은 돈을 다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선 주사도 있으셔서, 술을 드시고 들어오시면 저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면 욕을 하며 던져 부십니다. 제 노트북이나 선풍기, TV 등등.. 이젠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들어오시면 겁부터 납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들어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지만 속은 조마조마합니다. 혹여나 폭발해서 던질까봐. 예전에는 이불을 깔지 않았다고 어머니께 쌍욕을 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땐 저도 옆에 있어 그 다음 날 외갓집으로 가버렸지만 그 때의 악몽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통보를 하셨다고 합니다. 다음 달에 사표 낼 테니 그렇게 하는 줄 알라고. 어머니께서 순간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아, 나는 20년 동안 이 집안에서 파출부 밖에 안 됬었구나. 이렇게 중요한 문제도 나완 상의 한 번 없이 혼자 결정을 하는구나... 그래서 어머니께선 집을 나가신다고 하시니 아버지께선 그럼 그렇게 하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감정이 격해져서 울먹이며 저에게 말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어이가 없고 화만 났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의 눈을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게 한 번에 밀려와서 혹여나 울컥할까봐. 어머니께선 지금 이혼을 결심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난 평생 엄마 곁에 있을테니 걱정말라 했고요.
이런 제가, 아버지와 할머니를 선택하지 않은 제가 나쁜 딸인가요...
며칠 동안 혼자 속앓이 하다가 이렇게 길게나마 남겨봅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