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주류업체 변심에 카프병원 문 닫나 (보건복지부 산하재단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정철201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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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피해 대책으로 재단 설립뒤
‘적자’라며 2010년부터 출연 중단
알코올중독자 재활 희망 잃을 판

*카프병원 : <국내 유일 알코올중독 전문 치료기관>

청춘을 술로 보냈다. 나이 열일곱에 공장일을 시작하며 배운 술은 최일우(가명·51)씨에게 유일한 낙이고 휴식이었다. 날마다 소주 5병씩 마셨다. 그렇게라도 해야 밤샘 노동의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뒤에야 심각한 알콜중독에 빠진 것을 알았다. 더는 일도 할 수 없었다.

“술을 끊겠다는 약속을 두 번 했습니다. 한 번은 장모님과, 한 번은 신과 한 약속이었어요.” 금주는 번번이 실패했다. 끊겠노라 결심하고 며칠 버티고 나면 다시 2병을 마셨고, 곧 3병을 마셔야 직성이 풀렸다. 종교에 의지해보기도 했지만 기도만으론 유혹을 끊을 수 없었다. 새벽 기도를 다녀오는 길엔 으레 바지 주머니에 소주 한 병이 담겨 있었다.

최씨가 30년 음주 인생을 정리한 것은 2008년 찾은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카프재단) 산하 카프병원 덕분이었다. 알콜중독은 단순히 술을 안 마시는 것만으로 치료할 수 없다. 카프병원에서 최씨는 6개월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치료와 재활교육을 거쳤다.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들로부터 음악·미술치료, 스트레스·분노 관리 교육 등을 받았다. 최씨는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했다.

재단에서 제공한 직업교육은 최씨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줬다. 술만 마실 줄 알았던 최씨는 직업교육을 통해 커피 맛도 알게 됐다. 지금은 서울 영등포 문래동 ㅋ카페의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9년 만에 다시 찾은 일자리다. 최씨는 “알콜중독자의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결국 울분을 술주정으로 풀게 된다”며 “알콜중독자들의 이야길 들어주고 새 삶을 열어준 카프병원 같은 곳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설립돼 알콜중독 예방·연구·재활·치료 활동을 하고 있는 카프재단은 비영리 원칙에 따라 일반 병원보다 치료비를 적게 받아 알콜중독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 달 입원 치료비가 70만~80만원 선이다. 치료 효과가 크다는 입소문도 나면서 환자도 해마다 늘었다. 지난해 외래환자는 하루 평균 18.1명 수준이었고, 입원 환자는 71.1명이었다. 직전인 2010년에 견줘 각각 29%, 5.3% 늘었다.

그런 카프병원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카프병원의 재원은 오는 10월이면 바닥난다. 롯데칠성,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등 대형 주류·주정 제조업체들로 구성된 한국주류산업협회가 2010년 말부터 지원을 끊었기 때문이다. 2000년을 전후해 국내 알콜중독자가 늘자 ‘원인제공자’격인 주류업체들은 음주피해 대책으로 현재의 카프재단을 설립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내놨다. 이후 협회 회원사들은 해마다 50억원을 모아 카프재단에 주기로 했다. 그러나 2006년부터 출연금을 내지 않는 회사가 늘더니 2010년 말 모든 업체가 출연을 중단했다. 누적 미납금이 110억원에 이른다. 협회는 “카프병원의 알콜중독 치료사업 때문에 해마다 재단 적자가 8억여원씩 나고 있다”며 “병원 사업을 포기하고 재단 건물을 매각하면 출연금을 다시 주겠다”고 통보해왔다.

정철 카프병원노동조합 분회장은 “카프재단은 매년 출연금 범위 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병원 때문에 적자가 난다는 협회의 주장은 수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분회장은 또 “국내에 하나뿐인 알콜중독 전문 치료기관인 카프병원이 없는 재단은 존재 의미가 없다”며 “주류업체들이 사회공헌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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