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사람과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대표작가 박완서의 산문집」 저자 : 박완서 출판사 : 현대문학 출판일 : 2010년 08월 ■ 잔디밭에 등을 대고 누우면 부드럽고 편안하고 흙 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꼼지락대는 것 같은 탄력이 느껴진다. 살아 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이런 기척은 흙에서 오는 걸까, 씨앗들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니 둘 다일 것 같다. 흙과 씨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적이 많다.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 -p.15 ■ 6.25가 난 해도 경인년이었으니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해가 회갑을 맞는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이다. 노구老軀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p.20 ■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였다. -p.31 ■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다른 인생을 직조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당초에 꿈꾸던 비단은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p.25 ■ 기억 중 나쁜 기억은 마땅히 썩어서 소멸돼야 하고, 차마 잊기 아까운 좋은 기억이라 해도 썩어서 꽃 같은 것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을. -p.65~66 ■ 독자가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은 그게 명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읽을 당시의 마음상태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밑줄 친 그 책의 출판 연도를 보면서 역시나 하고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렸다. 심한 불면증과 곧 죽을 것 같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한 고통과, 그걸 아무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잘난 척 때문에 심신이 마모돼갈 때였다. 그래도 그때가 가장 살고 싶어한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p.153~154 ■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싶다. 그나저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지. 고통의 기억뿐 아니라 기쁨의 기억까지 신속하게 지우면서. 나 좀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 -p.156 ■ 이 지구상에서 나에게 허락된 시간도 이제 골인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비슷한 기억을 되풀이하며 어디로 가고 있을 뿐 처음은 없다는 사실 정도이다. 인간의 삶의 궤적이 직선인지 곡선인지 모르지만 죽는 것을 돌아간다고 말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생사관으로 치면 원圓일지도 모르겠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자전하듯이, 시간도 되풀이하며 어디론가 우리를 데려가고 있다. -p.179~180 리뷰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책은 아쉽게도 박완서 작가님의 유작이 되버렸다. 이름 세 자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작가인데 나는 이제서야 그녀를 만나게 됐다. 많고 많은 저서들 중에 왠지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와 닿아 가장 먼저 고르게 됐다. 이번 산문집에서는 흥미진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그냥 그 분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한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딸로서, 소설가로서의 소소한 일상의 얘기들을 잔잔하고 솔직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어쩌면 명성높은 작가의 문학작품이라기보다 소탈하고 인정많은 옆집 할머니의 따뜻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있는 듯 하다. 저 표지 속에 있는 사진만 봐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냥 길을 가다 만날 것만 같은 친근한 할머니의 모습. :) 나도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요즘은 왠지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글들보다는 그냥 흙냄새, 풀냄새, 사람냄새나는 이런 글들이 더 좋아진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작은 소망들을 담으며 인간 '박완서'에 대해서 좀 더 친밀히 알 수 있는 계기이자 그 시작점이 되어주는 것 같다. [1부_ 내 생애의 밑줄] 이 부분은 작가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낀 단편적인 생각들을 담고 있다.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정원에 나가 흙을 주무르다가 손톱 밑이 까맣게 된 걸 보고, 며칠만 그 때 묻은 손톱을 간직하면 열 손가락 손톱 밑에서 푸릇푸릇 싹이 돋지 않을까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하시는 그 모습은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참 귀엽우시단 생각까지 든다. :) 그렇게 작가가 서울을 떠나 노후의 전원생활에서 정원을 가꾸며 느끼는 소소한 기쁨들은 보는이로 하여금 여유를 만끽하게 하고, 왠지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게 만든다. 그 외에도 이 부분에서는6.25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내야했던 과거의 역사와, 하나밖에 없던 외아들을 먼저 저승으로 보내야했던 뼈아픈 경험들도 스스럼없이 털어놓으며 작가의 내면에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2부_ 책들의 오솔길] 작가가 읽은 몇 권의 책들이 나오는데 책에 대한 내용을 위주로 하는 서평이나 독후감이라기보다 책을 읽다가 잠깐 오솔길로 새며 그녀의 꾸밈없는 생각들을 담백한 글로 담아내고 있는 부분이다. 총 13편의 작품 중, 신경숙 님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을 빼고는 모두 아직 보지 못한 책이라서 기회가 되면 나도 그 책들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Wish List' 에도 추가해놓은 상태다. :) [3부_그리움을 위하여]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님, 박경리 선생님, 박수근 화백님과 함께했던 생전의 일화들과 살아 생전에 못다한 이야기들을 글로 써내려가며 짙은 그리움이 가득한 추모글들을 남겨놓은 부분이다. 한 줄 한 줄에서 그녀의 진심이 묻어나기에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쯤이면,,, 하늘나라에서 다같이 만나셨을까? 어쨌든,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나 꺾여져 버린 꿈들에 대한 아쉬움들이 못 가본 길이기에 더 아름다웠다고 생각될 즈음이면, 나이도 세월도 그만큼 넉넉해진 후일 것이다. 결국, 시간이 치유의 약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의 표현대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빠르게 잘도 흘러가는 그 시간'을 후회없이 좀 더 잘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다.
[166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사람과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대표작가 박완서의 산문집」
저자 : 박완서
출판사 : 현대문학
출판일 : 2010년 08월
■ 잔디밭에 등을 대고 누우면 부드럽고 편안하고 흙 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꼼지락대는 것 같은 탄력이 느껴진다.
살아 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이런 기척은 흙에서 오는 걸까, 씨앗들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니 둘 다일 것 같다. 흙과 씨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적이 많다.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 -p.15
■ 6.25가 난 해도 경인년이었으니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해가 회갑을 맞는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이다.
노구老軀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p.20
■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였다. -p.31
■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다른 인생을 직조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당초에 꿈꾸던 비단은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p.25
■ 기억 중 나쁜 기억은 마땅히 썩어서 소멸돼야 하고,
차마 잊기 아까운 좋은 기억이라 해도 썩어서 꽃 같은 것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을. -p.65~66
■ 독자가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은 그게 명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읽을 당시의 마음상태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밑줄 친 그 책의 출판 연도를 보면서 역시나 하고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렸다.
심한 불면증과 곧 죽을 것 같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한 고통과,
그걸 아무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잘난 척 때문에 심신이 마모돼갈 때였다.
그래도 그때가 가장 살고 싶어한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p.153~154
■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싶다.
그나저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지.
고통의 기억뿐 아니라 기쁨의 기억까지 신속하게 지우면서.
나 좀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 -p.156
■ 이 지구상에서 나에게 허락된 시간도 이제 골인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비슷한 기억을 되풀이하며 어디로 가고 있을 뿐
처음은 없다는 사실 정도이다. 인간의 삶의 궤적이 직선인지 곡선인지 모르지만
죽는 것을 돌아간다고 말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생사관으로 치면 원圓일지도 모르겠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자전하듯이, 시간도 되풀이하며 어디론가 우리를 데려가고 있다. -p.179~180
리뷰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책은
아쉽게도 박완서 작가님의 유작이 되버렸다. 이름 세 자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작가인데
나는 이제서야 그녀를 만나게 됐다. 많고 많은 저서들 중에 왠지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와 닿아
가장 먼저 고르게 됐다. 이번 산문집에서는 흥미진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그냥 그 분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한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딸로서, 소설가로서의
소소한 일상의 얘기들을 잔잔하고 솔직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어쩌면 명성높은 작가의 문학작품이라기보다
소탈하고 인정많은 옆집 할머니의 따뜻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있는 듯 하다.
저 표지 속에 있는 사진만 봐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냥 길을 가다 만날 것만 같은 친근한 할머니의 모습. :)
나도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요즘은 왠지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글들보다는
그냥 흙냄새, 풀냄새, 사람냄새나는 이런 글들이 더 좋아진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작은 소망들을 담으며
인간 '박완서'에 대해서 좀 더 친밀히 알 수 있는 계기이자 그 시작점이 되어주는 것 같다.
[1부_ 내 생애의 밑줄]
이 부분은 작가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낀 단편적인 생각들을 담고 있다.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정원에 나가 흙을 주무르다가 손톱 밑이 까맣게 된 걸 보고,
며칠만 그 때 묻은 손톱을 간직하면 열 손가락 손톱 밑에서 푸릇푸릇 싹이 돋지 않을까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하시는 그 모습은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참 귀엽우시단 생각까지 든다. :)
그렇게 작가가 서울을 떠나 노후의 전원생활에서 정원을 가꾸며 느끼는 소소한 기쁨들은
보는이로 하여금 여유를 만끽하게 하고, 왠지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게 만든다.
그 외에도 이 부분에서는6.25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내야했던 과거의 역사와,
하나밖에 없던 외아들을 먼저 저승으로 보내야했던 뼈아픈 경험들도 스스럼없이 털어놓으며
작가의 내면에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2부_ 책들의 오솔길]
작가가 읽은 몇 권의 책들이 나오는데 책에 대한 내용을 위주로 하는 서평이나 독후감이라기보다
책을 읽다가 잠깐 오솔길로 새며 그녀의 꾸밈없는 생각들을 담백한 글로 담아내고 있는 부분이다.
총 13편의 작품 중, 신경숙 님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을 빼고는 모두 아직 보지 못한 책이라서
기회가 되면 나도 그 책들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Wish List' 에도 추가해놓은 상태다. :)
[3부_그리움을 위하여]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님, 박경리 선생님, 박수근 화백님과 함께했던 생전의 일화들과
살아 생전에 못다한 이야기들을 글로 써내려가며 짙은 그리움이 가득한 추모글들을 남겨놓은 부분이다.
한 줄 한 줄에서 그녀의 진심이 묻어나기에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쯤이면,,, 하늘나라에서 다같이 만나셨을까?
어쨌든,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나 꺾여져 버린 꿈들에 대한 아쉬움들이
못 가본 길이기에 더 아름다웠다고 생각될 즈음이면, 나이도 세월도 그만큼 넉넉해진 후일 것이다.
결국, 시간이 치유의 약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의 표현대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빠르게 잘도 흘러가는 그 시간'을
후회없이 좀 더 잘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