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5년에 편찬되었던 《삼국사기》 에 의하면, 512년에 우산국은 신라 하슬라주의 군주인 이사부의 군대가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신라에 복속되었다. 나중의 문헌에 있는 우산도는 이 우산국의 일부이고, 그 우산도는 독도에 해당한다. 따라서 독도는 512년부터 한국의 영토이다.
1454년에 편찬되었던 《세종실록》에 "우산, 무릉 두 섬은 현 정동진에서 정확히 동쪽에 있다. 두 섬은 부속 관계이고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한 날이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고 불렀다."라는 내용이 있다. 날씨가 좋으면 울릉도(=무릉)에서 독도가 보이므로, 독도가 우산도에 해당된다.우산국은 512년에 신라에 복속되었으니, 독도는 한국 영토다.
1667년에 일본의 松江박사가 쓴 『은주시청합기』에는「이 두 섬(현재의 울릉도와 독도)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고려에서 보기에는 운주에서 은주를 바라보는 것 같다(주: 운주와 은주는 모두 현재 일본 시마네 현의 일부). 따라서 일본의 북서 지방에서 이 두 주를 갖기 힘들다고 생각된다..」고 쓰여 있다. 「이 주」는 온주에 있는 일본 땅의 한계를 오키 섬으로 하여, 이 시대에, 마쓰시마(독도)와 울릉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다.
1728년에 편찬되었던 『숙종실록』에는, 1696년 조선의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만난 일본인에 항의하여, 「송도는 바로 자산도(子山島)로, 이것 또한 우리의 땅이다.」고 말하고 있다.자산도는 우산도(于山島)와 같으며, 우산도는 독도를 말한다.당시의 일본은 독도를 송도(마츠시마)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자산도는) 조선 영토에 해당한다. 안용복이 그 3년전에 일본에 항의했던 때에는 도쿠가와 막부에게서 「우산도는 조선의 영토다」라는 서약을 받았었다.
1696년의 안용복의 항의에 의해 울릉도와 우산도의 귀속을 둘러싸고 에도 막부와 조선과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지만, 돗토리 번은 막부에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는 자기 번이 아니라고 회답하였다. 에도 막부는 조선과의 교섭에서 죽도(울릉도)를 방치하기로 전했기 때문에 울릉도의 부속도인 송도(독도)도 동시에 방치하였다.
1770년에 편찬되었던 『동국문헌비고』에「울릉,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으로, 우산은 즉 왜의 소위 마츠시마에 해당한다.」고 한다.이 우산은 독도에 해당한다.당시의 일본은 독도를 마츠시마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영토에 해당한다.1808년의『만기요람』이나 1908년의『증보문헌비고』에도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1785년에 완성된, 일본의 『삼국통람도설』에 죽도(울릉도) 와 그 부속도인 우산도(독도) 가 그려져 있고, 조선과 같은 색으로 채색되어 조선의 영토임을 명기하고 있다.
일본의『일본여지도고』, 『일본국지리측량지도』, 『관판실측일본지도』, 그 외 다른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에는, 당시 일본식 명칭이었던 마쓰시마가 기재되어있지 않다. 기재되어있는 지도도 오키 제도나 돗토리 현과 같은 색이 아닌 무색으로 되어 있다. 일본은 마쓰시마를 조선의 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많은 조선의 고지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의 근처에 그려져 있다. 이 우산도는 현재의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
1870년, 일본의「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国交際始末内探書)」에「竹島松島朝鮮附属ニ相成候始末 죽도송도 조선부속 이상성후 시말」이란 기술이 있다
1877년, 일본은 죽도와 송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일본해 내 죽도 외 한 섬을 판도외로 정한다」고 하여, 태정관 지령에서「竹島外一島之義本邦関係無之義ト可相心得事」라고 하고 있다.한 섬은 송도(현재의 독도)이므로, 일본은 이때 독도를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했다.
1882년, 일본이 제작한『조선국전도』에 송도가 그려져 있다. 또한, 1883년에 일본이 제작한 『대일본전도』에는, 송도는 그려져 있지 않다. 송도는 독도와 같으므로 이때 일본은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했다.(2003년 한국에 귀화한 세종대학교의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이 두 개의 지도의 사본을 울릉도의 독도 박물관에 기증했다.
1900년의 대한제국령으로 석도(독도)를 울릉군으로 하였다.
1905년의 일본에 의한 독도 편입은, 군국주의에 의한 한국침략의 시작으로 강제적인 편입이었다. 원래 일본 영토였다면, 편입할 필요가 없다.
먼저 독도의 명칭에서 독도가 우리땅임을 알 수 있다
독도는 예로부터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려 왔으며, 오늘 날의 명칭인‘독도’로 처음 쓰인 것은 1906년(광무 10년) 울릉군수 심흥택의 「울릉군수보고서」에서「本郡所屬獨島」라는 기록과 한말지사 황현(黃玹)의 「매천야록」에서였다. ▶ 행정 및 지리적 독도 위치 : 동경 131 °52′/ 북위 37 °14′ 거리 : 울릉도 동남쪽으로부터 89km 일본 은기도(隱岐島: 오키시마)로부터 160km ▶ 울릉도에서는 독도의 조망이 가능하나 일본 오키시마에서는 불가능하다. 주소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 천연기념물 336호(1982. 11 문화재관리청 지정) 소유자 : 대한민국 정부 독도의 면적과 모양 : 독도는 동도와 서도라는 2개의 주된 섬과 주변 33 개의 작은 바위와 암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186,121m2 이다. ▶ 동도(독도경비대 근무지) : 해발 99.4m / 면적 약 6만 5천 평방미터 ▶ 서도 : 해발 174m / 면적 약 9만 5천 평방미터 ▶ 동도와 서도의 거리 : 110~160m / 수심 3~10m
다음으로 독도,서기 512년부터 한국 영토 임이 많은 기록에 나와있다
독도(獨島)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 될 때부터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 삼국사기』신라본기와 열전) 우산국은 동해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우산도) 2섬으로 구성된 고대 해상 소왕국 이었다.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세종실록지리지』 (1432년 편찬)·『동국여지승람』(1481년)·『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만기 요람 군정편』(1808년), 그 밖에 각종 고문헌과 지도에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세기 후반까지 독도의 이름이‘우산도’였던 사실도 독도(우산도)가‘우산 국’의 영토였음을 분명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세번째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의 『조선왕국전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시했다
울릉도와 함께 독도(우산도)가 조선 왕조의 영토라는 사실은 일본 등에는 물론 이고 서양에도 잘 알려졌다. 서기 1737년에 프랑스의 유명한 지리학자 당빌(J. B. B. D'Anville)이 그린『조선왕국전도』(Royaume de Core´e)에도 독도(우산 도)가 조선 왕국 영토로 그려져 있다. 울릉도와 독도가 동해안에 매우 근접하게 그려져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지도처럼 우산도(독도)가 울릉도보다 안쪽 에 그려져 있는 것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더 강조해 주는 것이다.
네번째로 심지어 일본의 고문헌과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기록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에서 처음 기록했다고 지적한 1667년의 일본 관찬 고 문헌『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도 울릉도(당시 일본 호칭 竹島)와 독도(당시 일본 호칭 松島)는 고려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은기도(隱岐島)를 한계 (限界)로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1785년에 편찬한『삼국접양지도』(三國 接壤之圖)는 나라별로 색깔을 달리하여 조선은 황색으로, 일본은 녹색으로 표시 했는데, 동해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를 조선 색깔인 황색으로 정확하게 칠했을 뿐 아니라 그 옆에「조선의 것」(朝鮮ノ持ニ)이라 써서 울릉도와 독도(우 산도)가 조선 영토임을 명료하게 표시하였다.
다섯번째, 17세기 말 일본 정부(막부)는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했고 이를 문서로 남겼다
일본이 1592~98년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왜군은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도 침략하여 주민을 학살하고 노략질하였다. 이에 주민피살을 막기 위해 조선 조정 이 울릉도를 비워두는 공도(空島)정책을 강행했다. 이 틈에 일본 도쿠가와 막부 는 조선 조정 몰래 일본 어부 2가문에게 1618년 울릉도에 건너가는『죽도도해면 허』(竹島渡海免許)와 1656년 독도에 건너가는『송도도해면허』(松島渡海免許)를 내주었는데 이것은 외국에 건너갈 수 있는 허가장이었다. 이에 울릉도에 건너온 일본 어부들과 안용복(安龍福) 등 조선 어부들 사이에 1693년 큰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대마도 도주가 중심이 되어 울릉도(및 독도)를 일본 영토로 만들려는 외교 분쟁을 일으켰다. 수년간 논 쟁이 전개되었으나 조선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일본도 굴복하여 1696년 1월 도 쿠가와 막부 관백(關白, 집정관)은 울릉도(및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및 독도) 고기잡이를 엄금했으며, 『죽도도해면허』와『송 도도해면허』를 취소하였다. 동래 출신 어부 안용복도 이 때 울릉도와 독도를 지 키기 위해 활동했다.
여섯번째, 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공문서,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한 사실과 기록이 남아있다
일본에서 1868년 1월 도쿠가와 막부정권이 붕괴되고 새 메이지(明治)정부가 수립되자, 일본 새 정부의 태정관(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은 1869년 12월 외무성 고관들을 조선에 파견하여 14가지 항목에 대한 내탐 조사를 명령하였다. 그 가 운데「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조선 부속(朝鮮附屬)으로 되어 있는 시말」을 조사하라는 명령항목이 있었다. 당시 일본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과 외무대신은 울릉도와 독도가‘조선부속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내 탐보고서가 1870년의「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이고, 이 는 일본 외무성이 1930년대에 편찬한『일본외교문서』제3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울릉도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일본도 공지 공인했다는 명 백한 증거이다.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 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 14)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 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 26)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 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장한상 울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 에 나온 정상익의 <동국지도>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 '삼봉도', '가산도', '가지도'등으로 불렀다.조선은 한때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은주시현합기>, 1869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편찬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6년 일본 내무성에서 만든 <태정宮>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朝鮮東海 岸圖>,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전쟁실기>,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지도구역일람도>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기인 1899년(광무 3년)에 당시 중등과정 신식교육기관에서 활용됐던 <대한지지> 제 1권에 삽입 돼 있는 지도 대한전도에는 울릉도 옆에 '于山'이라는 표기와 함께 섬이 그려져 있으며 좌 측 상단에는 '光武 3년 12월 15일 學部 편집국 刊'이라는 표시가 선명히 적혀져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 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북한이 제시한 독도 영유권 근거> (연합뉴스)정일용기자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일 논평을 통해 독도 영유권을 국제법과 역사사료, 문헌들을 근거로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밝혔다. 이 논평은 최근 일본 외무성이 `2000년 외교청서'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데 대한 반박으로, "독도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고유영토"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일본측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일축했다. 다음은 이 논평이 제시한 독도 영유권의 법률적 역사적 근거이다.
△일본은 독도를 우리보다 1천년 뒤에 발견 =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사료들과 문헌들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기원 500년 이전 시기에 독도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이 곳을 어업거점으로 이용해 왔다. 반면에 일본은 16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조선 동해에 독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천년 이후에 독도를 발견했다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1천400년 늦게 귀속조치 = 법적 견지에서 볼 때에도 우리나라는 기원 512년 신라 지증왕 때 독도를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시키는 `국가적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40호로서 이 섬을 제멋대로 시마네현에 소속시키는 `지방적 조치'를 취했다이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천400년이나 늦게 독도를 저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관계 = 일본은 조선의 본토와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독도 포함)에 대한 일본의 모든 권리, 청구권을 박탈한다고 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였다. 샌프란시스코 강화(講和)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를 위해 연합국이 일본과맺은 평화조약으로 1951년 9월 8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되고 52년 4월 8일 발효됐다. 미국은 지난 47년 7월부터 대일강화를 위한 예비회담을 제의했으나 회의방식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실현되지 못하다 1950년 6.25전쟁을 계기로 다시 추진돼 체결됐다.
△지도 상의 표기 = 영토의 법적 소속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도 표기를 봐도 독도는 우리나라 것이다. 16세기 말 이후에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들에서 발간한 모든 조선지도들에는 독도가 명백히 조선의 섬으로 표기돼 있다. 일본의 조선 강점 이전 시기에 나온 일본지도들에도 독도는 일본의 섬으로 표기돼 있지 않았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뒤(식민지로 만든 뒤) 독도를 강도적으로 저들의 것으로 만들었지만 당시 일본에서 발간된 일부 지도들에도 섬이 조선의 것으로 서로 다르게 표기됐다.
마지막으로 정말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너무너무 자랑스럽구요.
박종우 선수 사건으로 여러가지 말이 많은데,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시는분들 박종우선수가 경솔했다고 하시는분들 그이유가 뭐죠? 독도는 우리대한민국의 땅입니다 제주도 울릉도와 마찬가지로요. 만약 박종우 선수가 '독도는 우리땅'이 아닌 '제주도는 우리땅'이라는 팻말을 들고 뛰었어도 정치적 문제가 되었을까요? 왜 독도는 우리땅을 외치면서 이번행동이 경솔했다고 한입으로 두말하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좋게말해서는 이까지고
일본 개념이있으면 역사공부나해 살다살다 저런 종은 처음본다 씨가말라야지 씨가 깔끔하게 완패 했으면 질줄알고 수그릴줄알아야지 별거가지고 다 트집잡고 지랄이야 욱일천승기 돼?
나중에 지진나고 가라앉을때 되서도 저딴말 나오는지 보자. 한국으로넘어오기만해라 내가 진짜 이제 일본인이라면 치가떨리고 끔찍하고 독도를 알던 모르던 관심이 있던 없던 역겹고 끔찍하고 같은사람이라는게 부끄럽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 집중이수제라고 한학기에 몰아서 하는데 제 동생도 보면 무슨 역사를 구석기부터 조선까지가 중간고사 시험범위라고.. 이게 말이되나 싶네요.. 영어는 국어보다 중요하고 우리나라의역사보다 토이토플이 더 중요해진 요즘..슬프네요 흥분해서 띄어쓰기 오타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망할 티아라때문에 독도 기사가 묻히는데ㅡㅡ 어이가 없네요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입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쓰는거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글쓰는 재주는 없지만 그래도 꼭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때까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생각만 했지, 왜인지 어째선지 모르고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1145년에 편찬되었던 《삼국사기》 에 의하면, 512년에 우산국은 신라 하슬라주의 군주인 이사부의 군대가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신라에 복속되었다. 나중의 문헌에 있는 우산도는 이 우산국의 일부이고, 그 우산도는 독도에 해당한다. 따라서 독도는 512년부터 한국의 영토이다.1454년에 편찬되었던 《세종실록》에 "우산, 무릉 두 섬은 현 정동진에서 정확히 동쪽에 있다. 두 섬은 부속 관계이고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한 날이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고 불렀다."라는 내용이 있다. 날씨가 좋으면 울릉도(=무릉)에서 독도가 보이므로, 독도가 우산도에 해당된다.우산국은 512년에 신라에 복속되었으니, 독도는 한국 영토다.
1667년에 일본의 松江박사가 쓴 『은주시청합기』에는「이 두 섬(현재의 울릉도와 독도)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고려에서 보기에는 운주에서 은주를 바라보는 것 같다(주: 운주와 은주는 모두 현재 일본 시마네 현의 일부). 따라서 일본의 북서 지방에서 이 두 주를 갖기 힘들다고 생각된다..」고 쓰여 있다. 「이 주」는 온주에 있는 일본 땅의 한계를 오키 섬으로 하여, 이 시대에, 마쓰시마(독도)와 울릉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다.
1728년에 편찬되었던 『숙종실록』에는, 1696년 조선의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만난 일본인에 항의하여, 「송도는 바로 자산도(子山島)로, 이것 또한 우리의 땅이다.」고 말하고 있다.자산도는 우산도(于山島)와 같으며, 우산도는 독도를 말한다.당시의 일본은 독도를 송도(마츠시마)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자산도는) 조선 영토에 해당한다. 안용복이 그 3년전에 일본에 항의했던 때에는 도쿠가와 막부에게서 「우산도는 조선의 영토다」라는 서약을 받았었다.
1696년의 안용복의 항의에 의해 울릉도와 우산도의 귀속을 둘러싸고 에도 막부와 조선과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지만, 돗토리 번은 막부에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는 자기 번이 아니라고 회답하였다. 에도 막부는 조선과의 교섭에서 죽도(울릉도)를 방치하기로 전했기 때문에 울릉도의 부속도인 송도(독도)도 동시에 방치하였다.
1770년에 편찬되었던 『동국문헌비고』에「울릉,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으로, 우산은 즉 왜의 소위 마츠시마에 해당한다.」고 한다.이 우산은 독도에 해당한다.당시의 일본은 독도를 마츠시마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영토에 해당한다.1808년의『만기요람』이나 1908년의『증보문헌비고』에도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1785년에 완성된, 일본의 『삼국통람도설』에 죽도(울릉도) 와 그 부속도인 우산도(독도) 가 그려져 있고, 조선과 같은 색으로 채색되어 조선의 영토임을 명기하고 있다. 일본의『일본여지도고』, 『일본국지리측량지도』, 『관판실측일본지도』, 그 외 다른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에는, 당시 일본식 명칭이었던 마쓰시마가 기재되어있지 않다. 기재되어있는 지도도 오키 제도나 돗토리 현과 같은 색이 아닌 무색으로 되어 있다. 일본은 마쓰시마를 조선의 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많은 조선의 고지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의 근처에 그려져 있다. 이 우산도는 현재의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
1870년, 일본의「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国交際始末内探書)」에「竹島松島朝鮮附属ニ相成候始末 죽도송도 조선부속 이상성후 시말」이란 기술이 있다
1877년, 일본은 죽도와 송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일본해 내 죽도 외 한 섬을 판도외로 정한다」고 하여, 태정관 지령에서「竹島外一島之義本邦関係無之義ト可相心得事」라고 하고 있다.한 섬은 송도(현재의 독도)이므로, 일본은 이때 독도를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했다.
1882년, 일본이 제작한『조선국전도』에 송도가 그려져 있다. 또한, 1883년에 일본이 제작한 『대일본전도』에는, 송도는 그려져 있지 않다. 송도는 독도와 같으므로 이때 일본은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했다.(2003년 한국에 귀화한 세종대학교의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이 두 개의 지도의 사본을 울릉도의 독도 박물관에 기증했다.
1900년의 대한제국령으로 석도(독도)를 울릉군으로 하였다.
1905년의 일본에 의한 독도 편입은, 군국주의에 의한 한국침략의 시작으로 강제적인 편입이었다. 원래 일본 영토였다면, 편입할 필요가 없다.
먼저 독도의 명칭에서 독도가 우리땅임을 알 수 있다
독도는 예로부터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려 왔으며, 오늘
날의 명칭인‘독도’로 처음 쓰인 것은 1906년(광무 10년) 울릉군수 심흥택의
「울릉군수보고서」에서「本郡所屬獨島」라는 기록과 한말지사 황현(黃玹)의
「매천야록」에서였다.
▶ 행정 및 지리적 독도
위치 : 동경 131 °52′/ 북위 37 °14′
거리 : 울릉도 동남쪽으로부터 89km
일본 은기도(隱岐島: 오키시마)로부터 160km
▶ 울릉도에서는 독도의 조망이 가능하나 일본 오키시마에서는 불가능하다.
주소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
천연기념물 336호(1982. 11 문화재관리청 지정)
소유자 : 대한민국 정부
독도의 면적과 모양 : 독도는 동도와 서도라는 2개의 주된 섬과 주변 33
개의 작은 바위와 암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186,121m2
이다.
▶ 동도(독도경비대 근무지) : 해발 99.4m / 면적 약 6만 5천 평방미터
▶ 서도 : 해발 174m / 면적 약 9만 5천 평방미터
▶ 동도와 서도의 거리 : 110~160m / 수심 3~10m
다음으로 독도,서기 512년부터 한국 영토 임이 많은 기록에 나와있다
독도(獨島)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
될 때부터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 삼국사기』신라본기와 열전)
우산국은 동해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우산도) 2섬으로 구성된 고대 해상 소왕국
이었다.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세종실록지리지』
(1432년 편찬)·『동국여지승람』(1481년)·『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만기
요람 군정편』(1808년), 그 밖에 각종 고문헌과 지도에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세기 후반까지 독도의 이름이‘우산도’였던 사실도 독도(우산도)가‘우산
국’의 영토였음을 분명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세번째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의 『조선왕국전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시했다
울릉도와 함께 독도(우산도)가 조선 왕조의 영토라는 사실은 일본 등에는 물론
이고 서양에도 잘 알려졌다. 서기 1737년에 프랑스의 유명한 지리학자 당빌(J.
B. B. D'Anville)이 그린『조선왕국전도』(Royaume de Core´e)에도 독도(우산
도)가 조선 왕국 영토로 그려져 있다. 울릉도와 독도가 동해안에 매우 근접하게
그려져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지도처럼 우산도(독도)가 울릉도보다 안쪽
에 그려져 있는 것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더 강조해 주는 것이다.
네번째로 심지어 일본의 고문헌과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기록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에서 처음 기록했다고 지적한 1667년의 일본 관찬 고
문헌『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도 울릉도(당시 일본 호칭 竹島)와 독도(당시
일본 호칭 松島)는 고려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은기도(隱岐島)를 한계
(限界)로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1785년에 편찬한『삼국접양지도』(三國
接壤之圖)는 나라별로 색깔을 달리하여 조선은 황색으로, 일본은 녹색으로 표시
했는데, 동해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를 조선 색깔인 황색으로 정확하게
칠했을 뿐 아니라 그 옆에「조선의 것」(朝鮮ノ持ニ)이라 써서 울릉도와 독도(우
산도)가 조선 영토임을 명료하게 표시하였다.
다섯번째, 17세기 말 일본 정부(막부)는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했고 이를 문서로 남겼다
일본이 1592~98년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왜군은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도
침략하여 주민을 학살하고 노략질하였다. 이에 주민피살을 막기 위해 조선 조정
이 울릉도를 비워두는 공도(空島)정책을 강행했다. 이 틈에 일본 도쿠가와 막부
는 조선 조정 몰래 일본 어부 2가문에게 1618년 울릉도에 건너가는『죽도도해면
허』(竹島渡海免許)와 1656년 독도에 건너가는『송도도해면허』(松島渡海免許)를
내주었는데 이것은 외국에 건너갈 수 있는 허가장이었다.
이에 울릉도에 건너온 일본 어부들과 안용복(安龍福) 등 조선 어부들 사이에
1693년 큰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대마도 도주가 중심이
되어 울릉도(및 독도)를 일본 영토로 만들려는 외교 분쟁을 일으켰다. 수년간 논
쟁이 전개되었으나 조선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일본도 굴복하여 1696년 1월 도
쿠가와 막부 관백(關白, 집정관)은 울릉도(및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및 독도) 고기잡이를 엄금했으며, 『죽도도해면허』와『송
도도해면허』를 취소하였다. 동래 출신 어부 안용복도 이 때 울릉도와 독도를 지
키기 위해 활동했다.
여섯번째, 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공문서,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한 사실과 기록이 남아있다
일본에서 1868년 1월 도쿠가와 막부정권이 붕괴되고 새 메이지(明治)정부가
수립되자, 일본 새 정부의 태정관(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은 1869년 12월 외무성
고관들을 조선에 파견하여 14가지 항목에 대한 내탐 조사를 명령하였다. 그 가
운데「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조선 부속(朝鮮附屬)으로 되어 있는 시말」을
조사하라는 명령항목이 있었다. 당시 일본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과
외무대신은 울릉도와 독도가‘조선부속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내
탐보고서가 1870년의「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이고, 이
는 일본 외무성이 1930년대에 편찬한『일본외교문서』제3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울릉도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일본도 공지 공인했다는 명
백한 증거이다.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 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 14)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 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 26)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 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장한상 울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 에 나온 정상익의 <동국지도>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 '삼봉도', '가산도', '가지도'등으로 불렀다.조선은 한때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은주시현합기>, 1869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편찬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6년 일본 내무성에서 만든 <태정宮>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朝鮮東海 岸圖>,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전쟁실기>,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지도구역일람도>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기인 1899년(광무 3년)에 당시 중등과정 신식교육기관에서 활용됐던 <대한지지> 제 1권에 삽입 돼 있는 지도 대한전도에는 울릉도 옆에 '于山'이라는 표기와 함께 섬이 그려져 있으며 좌 측 상단에는 '光武 3년 12월 15일 學部 편집국 刊'이라는 표시가 선명히 적혀져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 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북한이 제시한 독도 영유권 근거> (연합뉴스)정일용기자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일 논평을 통해 독도 영유권을 국제법과 역사사료, 문헌들을 근거로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밝혔다. 이 논평은 최근 일본 외무성이 `2000년 외교청서'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데 대한 반박으로, "독도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고유영토"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일본측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일축했다.
다음은 이 논평이 제시한 독도 영유권의 법률적 역사적 근거이다.
△일본은 독도를 우리보다 1천년 뒤에 발견 =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사료들과 문헌들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기원 500년 이전 시기에 독도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이 곳을 어업거점으로 이용해 왔다. 반면에 일본은 16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조선 동해에 독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천년 이후에 독도를 발견했다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1천400년 늦게 귀속조치 = 법적 견지에서 볼 때에도 우리나라는 기원 512년 신라 지증왕 때 독도를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시키는 `국가적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40호로서 이 섬을 제멋대로 시마네현에 소속시키는 `지방적 조치'를 취했다이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천400년이나 늦게 독도를 저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관계 = 일본은 조선의 본토와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독도 포함)에 대한 일본의 모든 권리, 청구권을 박탈한다고 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였다. 샌프란시스코 강화(講和)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를 위해 연합국이 일본과맺은 평화조약으로 1951년 9월 8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되고 52년 4월 8일 발효됐다.
미국은 지난 47년 7월부터 대일강화를 위한 예비회담을 제의했으나 회의방식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실현되지 못하다 1950년 6.25전쟁을 계기로 다시 추진돼 체결됐다.
△지도 상의 표기 = 영토의 법적 소속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도 표기를 봐도 독도는 우리나라 것이다. 16세기 말 이후에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들에서 발간한 모든 조선지도들에는 독도가 명백히 조선의 섬으로 표기돼 있다. 일본의 조선 강점 이전 시기에 나온 일본지도들에도 독도는 일본의 섬으로 표기돼 있지 않았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뒤(식민지로 만든 뒤) 독도를 강도적으로 저들의 것으로 만들었지만 당시 일본에서 발간된 일부 지도들에도 섬이 조선의 것으로 서로 다르게 표기됐다.
마지막으로 정말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너무너무 자랑스럽구요. 박종우 선수 사건으로 여러가지 말이 많은데,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시는분들 박종우선수가 경솔했다고 하시는분들 그이유가 뭐죠? 독도는 우리대한민국의 땅입니다 제주도 울릉도와 마찬가지로요. 만약 박종우 선수가 '독도는 우리땅'이 아닌 '제주도는 우리땅'이라는 팻말을 들고 뛰었어도 정치적 문제가 되었을까요? 왜 독도는 우리땅을 외치면서 이번행동이 경솔했다고 한입으로 두말하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좋게말해서는 이까지고 일본 개념이있으면 역사공부나해 살다살다 저런 종은 처음본다 씨가말라야지 씨가 깔끔하게 완패 했으면 질줄알고 수그릴줄알아야지 별거가지고 다 트집잡고 지랄이야 욱일천승기 돼? 나중에 지진나고 가라앉을때 되서도 저딴말 나오는지 보자. 한국으로넘어오기만해라 내가 진짜 이제 일본인이라면 치가떨리고 끔찍하고 독도를 알던 모르던 관심이 있던 없던 역겹고 끔찍하고 같은사람이라는게 부끄럽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 집중이수제라고 한학기에 몰아서 하는데 제 동생도 보면 무슨 역사를 구석기부터 조선까지가 중간고사 시험범위라고.. 이게 말이되나 싶네요.. 영어는 국어보다 중요하고 우리나라의역사보다 토이토플이 더 중요해진 요즘..슬프네요 흥분해서 띄어쓰기 오타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망할 티아라때문에 독도 기사가 묻히는데ㅡㅡ 어이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