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후 산모사망..

늘푸른201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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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미소 두 왕자님과 엄마 얼굴한번 못 본 셋째 공주님 이야기..


지난 2011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 둔 어느날, 너무도 충격이고 날벼락 같은 그 사고는
저희 가족에겐 평생을 가도 절대 잊지 못할 사건입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겨울 그 날은 저희 가족에게는 악몽같은 날이었습니다.

 

유난히 새언니와 사이가 좋았던 사촌 오빠에게는 개구쟁이 6살, 4살배기의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했던 새언니는 셋째를 가졌고, 남자아이만 둘이었던 언니에게 공주님이 생겼다는 소식은 가족들에게도 '로또'였습니다.


새언니는 태어나지도 않은 공주님의 머리핀을 사기도 했고, 어떤 이름이 이쁠까 하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첫째와 둘째 모두 건강하게 자연분만했던 언니였지만, 셋째가 거꾸로 있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가족들이 걱정했지만
잔병치례 한번 한 적 없다는 언니는 오히려 가족들을 다독였습니다.


12월 14일, 공주님이 저희 가족 품에 왔고 주말에 아기를 보러갈 생각에 설레이며 아기신발을 샀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12월 16일..
저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가족들에게 번갈아가며 전화가 왔습니다.

그러던 중 다급한 문자한통.. 새언니가 죽었다는 아빠의 문자...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저는 웃음이 낫습니다.

평소 장난을 잘치는 아빠엿기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며 휴게실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차라리 장난이었더라면.. 장난이었길 바랬지만.. 언니가 정말..정말 죽었다라는 겁니다.
아기와 산모가 건강하다는 소식을 들은 게 엊그제인데 말입니다.
믿을 수 없는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머리속엔 잉꼬부부였던 언니얼굴과 조카들 얼굴이 스쳤습니다.


황당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제가 회사를 조퇴하고 큰 집으로 갔을 때에는 오후 3-4시 남짓이었습니다.
악몽 같은 그날은..금요일이었습니다.

큰 어머니는 정신없이 울고 계셨고 조카 두명은 장난감 로봇을 만지며

저를 보곤 "자꾸 할머니가 운다", "할머닌 어린이날 선물 못받는다" 저에게 말했습니다.

다급한 소식을 전해들은 가족들이 모이고 사건의 내용을 전달받았습니다.

언니가 제왕절개 수술 후 병원에 입원하고 이틀째 되던 날 오전 6시 50분경

화장실 가던 도중 갑자기 쓰러졌고 10시 20분경 다시 쓰러져 그때부터 의식이 없었다고 합니다.

급하게 응급실에 내려갔지만 골든타임이라는 주장 아래, 2시간동안 간호사와 의사들이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며

심폐소생술과 주사를 투약했고, 계속되는 심폐소생술에 산모의 갈비뼈는 산산이 부러지고 모든 장기는 파열.....

더 이상의 조치가 어렵자 해당 병원(모기독병원)은 자매병원인 OO대학병원에 옮겼지만 사.망.


갑작스런 언니의 죽음이 믿기지 않은 저흰 국가수에 부검을 의뢰했으나 주말에는 부검이 안된다하여

주말내내 언니는 차가운 영안실에 있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밤새 가족들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희가족..? 악몽같았던 그 주말 밤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첫째아이가 저에게 물어보더군요.. "고모, 근데 엄마가 죽었나? 공룡처럼?"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 사촌오빠.. 어려운 형편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살았던 그런 언니였기에 가슴을 치며 더이상 울음이 나지 않을때까지 울었습니다.


절대과실이 없다던 모기독병원에서는 2009년에도 건강했던 다른 산모가 두 발로 걸어 들어갔지만.. 들것에 실려나온 또다른 사건이 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새언니의 3일 장례식은 치뤄졌고 언니의 29년 짧은 삶과 가족과의 추억은 한줌의 재로 변했습니다.

 

제가 이글을 올린 이유는 보상? 투정? 그따위 아닙니다.

병원의 어이없는 태도에 대한 답답함 심정을 담은 외침입니다. 힘없고 돈없고 빽없는 소시민들의 억울함을 토해내고자 글을 적었습니다.


결국 언니의 부검결과는 폐색전증! 이게 무슨 말일까요?

하루 아침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저희 가족은 어떻게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요?

살기위해 선택했던 제왕절개 수술.. 가족 어느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던 건강했던 산모의 수술 후 이틀 뒤의 죽음..

상식선에서 정말로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두번의 자연분만 경험이 있던 산모가 수술 후에는 사망했습니다. 유가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럼 그 수술이 얼마나 잘못 되었길래 그런 수많은 혈전을 만들었단 소립니까..

얼마나 많은 이물질을 남겼기에 그 이물질에 혈소판이 달라붙어 수없이 많은 피떡들이 몸에서 생겨

폐동맥을 막게 만들었단 말입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족에겐 그걸 증명할 자료가 없습니다. 분하고 원통하지만 오로지 진료기록지 하나뿐입니다.

어쩔수 없다는 말, 불가항력적이란 말이 오가더군요.

현대 의학으론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 병원 과실이 아니라나요..

그럼 묻고 싶습니다. 누구의 과실인가요?

이미 하늘나라로 간 제 언니의 과실이라 그리 물어야 할까요? 자살이라도 했다는 말일까요?


그럼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했던 그 2시간 동안에 병원은 뭘 했나요?

사람을 살리지 못한 것도 골든타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건가요?

언니가 처음 쓰러졌을 때 의식이 없었고 놀랐던 사촌오빠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언니를 맡겼습니다.

처음 쓰러졌을 때 심방세동을 확인했다면 왜 중환자실 이동이나 큰 병원으로 이송조치를 하지 않았나요?

수술 후 입원 중인 환자에게는 심방세동 자체가 응급상황 아니던가요?

수술 후 입원 중이던 환자의 산호포화도가 갑자기 85% 까지 75% 까지 떨어지는데 응급상황이 아니던가요?

산소 좀 줬더니 포화도가 다시 올라갔으니 아무 문제없다고 판단하셨다면 판단착오 아니던가요?

두번째 쓰러지고 나서야.. 그제서야 조치가 늦었다는 판단이 들던가요?

그래서 그때부턴 막 약물(기록지엔 헤파린,혈전용해제 고용량 투여했다 되어 있다더군요)을 투여하면서

심폐소생술만 두시간 가량 했어야 했나요?


관할 담당 형사의 수사기록지에 보니 황당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담당 간호사는 두번째 언니가 쓰러졌을 때 의식이 있었고 '괜찮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을 했답니다.

쓰러진 언니의 뺨을 때리면서 000씨 000씨 하고 다급히 불렀던 게 간호사였습니다.

그리고, 회진 오지도 않았던 의사가 수사결과지에는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를 믿어야 할까요?

 

속된 말로 꿀릴 게 없다면, 진료기록지의 내용이 옆에서 지켜본 보호자의 진술과 왜 차이가 있을까요?

간호사는 위증을 할 이유가 있나요? 왜 솔직하게 말씀하지 않죠?

담당 의사선생님.. 정말 하늘에 대고! 기독교 병원 타이틀을 걸고! 한점 부끄럼이나 양심의 가책이 없나요?

온순히 정말 저희 언니가 폐색전증이었다는 겁니까?

제발 내 가족, 내 동생, 내 딸, 내 아내, 내.. 엄마라고 생각을 하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의심가는 부분이 있고, 믿을 수 없는 구석이 많음에도 부검결과 그 하나만으로 병원은 뻔뻔합니다.

관할 경찰서 형사의 변사자 확인이라는 형식적인 수사결과가 무혐의로 종결이 되었다며 병원은 당당합니다.


그 의심과 그 의문..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확보할 수 있는 증빙이 없다고.. 그래서 병원이랑 싸워 이기기 어렵다고.. 그래서 힘들다고.. 안타깝지만 어쩌겠냐고..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으로 치부되고 그냥 묻혀버리기엔 너무 억울합니다.

부검결과가 폐색전증이라고, 내사종결한 수사가 무혐의라 해서.. 모든 과실이 없다 인정되는 건 아닙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슬픔과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병원은 계속해서 황당한 태도를 보입니다.

제 사촌언니가 인터넷에.. 호소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억울한 우리 가족 사연이 이러하다며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글은 강제로 개시 중단되었으며, 언니는 고소를 당했습니다. 지금 누가 누구를 고소 했단 말입니까..!!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 병원과실 없다 한다면, 그건 그냥 평생 가슴아파하고 힘들어해야 하는 온전히 유가족만의 몫인가요?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을지 도와달라는 그 내용이 명예훼손입니까?


병원에선 인터넷에 어떤 글이 올라오나 예의주시 하기 전에, 그럴 시간있으면 먼저 병원에 있는 환자관리나 제대로 하는게 도리아닙니까?


너무나 가슴아파서.. 며느리를 잃은 시아버지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와 일인시위를 합니다.

너무나 억울해서.. 아기를 낳으러 갔던 산모가 이틀 뒤 주검으로 돌아 왔다며 억울하다 도와달라며 인터넷에 하소연을 합니다.

그토록 원했던 딸아이를 위해 모든 걸 준비했던 언니가, 그 아기에게 젖 한번 못 물리고 세상을 떠났기에
진실을 알리고자 글을 씁니다.

지금 제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아직 어딘가엔 정의가 살아있다며 저희 가족에게 힘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이 한가지는.. 반드시 명심해서 들어달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고 싶지 않고 여력이 된다면, 대학병원 종합병원으로 가는게 좋겠습니다.

'지켜보자 지켜보자' 하다가 사람잡습니다. 물론, 대학병원 종합병원에도 응급상황은 있고 위험상황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합병원에선 신속한 협진도 가능할테고 더욱 정밀한 검사로 증상을 빨리 예측할 수 있을테니까요..

 

갑작스런 산모의 죽음은.. 그저 유가족만이 한평생 품고 가야 할 안타까운 사연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시민이.. 그저 소중한 생명을 잃고도 보상하나 제대로 못받고 무시당하고만 있기에는
너무나 버겁고 힘든 이 사회 문제입니다.

어디에선가 또다시 누군가에게 반복되고 있을지 모를 안타까운 사연이 아니라,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위험한 사회문제라 여겨주십시오.


세 조카들이 컷을 때 어린시절에 대해 뭐라고 말해 줘야 할까요?
언니가 죽은지 7개월이 흘러갔습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그랬나요?? 물 흐르듯 세월을 보내면 된다고요?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꽃피는 봄 날에도, 해운대의 파도소리도.. 저희에게는 너무나 구슬프네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이 아픔을 이겨낼까요?

축복 받아야 할 우리 셋째 공주님에게..
엄마는 어떻게 돌아가셨다라고 해야 상처를 받지 않을까..오늘도 저희 가족은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