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교육]개를 품은 민화, 세상 밖으로 나서다 곽수연 작가의 전통 민화 이야기

재능교육201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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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개를 품은 민화, 세상 밖으로 나서다 곽수연 작가의 전통 민화 이야기

[재능교육]개를 품은 민화, 세상 밖으로 나서다 곽수연 작가의 전통 민화 이야기

한국화가 곽수연은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흔히 ‘개를 그리는 작가’로 알려졌지만 곽수연 작가에게 개는 사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 자신이고 때로는 타인이다. 그래서 인물화를 그린다는 생각으로 개를 표현한다.

 


한국화가 곽수연의 작업실은 소박하다. 아파트 현관 입구에 딸린 작은 방을 작업실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비좁지만 정갈하다. 반지르르하게 윤이 나서 정갈한 게 아니라 필요한 것들이 꼭 필요한 만큼만 맞춤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탓이다. 곽수연은 그 ‘소박한 작업실’에서 한지에 아교 칠만 너댓 번씩이나 해야 하는 고단한 작업을 거뜬히 해낸다. 아이들이 잠든 이슥한 밤에 말이다. 
드디어 화폭과 대면하는 시간, 곽수연 작가는 일상에서 채 건지지 못한 숱한 사연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 일상 속으로 오롯이 침잠하는 것이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한 땀 한 땀 화폭에 담으면서 곽수연 작가는 우리 삶의 찰나를, 소중함을 복기한다. 이윽고 조금씩 채워지는 화폭 안에서 그림은 세상으로 확장되고, 타인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때로는 그 자신이 그림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 곽수연 작가의 소박한 작업실은 그 순간 어느덧 세상 그 자체가 된다. 

먹의 우연한 효과에 매료된 소녀
"솔직히 말하면 처음 전공을 선택할 때 재료비가 가장 적게 들어서 한국화를 선택했어요." 왜 한국화를 선택했냐고 질문하자 돌아온 뜻밖의 대답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아버지는 딸의 뒷바라지를 힘겨워 하셨고, 가슴 아파하셨다. 그런 형편에 비싼 재료비를 써야 하는 서양화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비교적 재료비가 적게 드는 한국화를 전공으로 선택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막상 한국화의 세계에 빠져들자 전혀 다른 울림이 있었다. 먹을 쓰면 쓸수록 묘한 매력이 있었다. 곽수연 작가는 먹이 한지에 스미면서 만들어 내는 우연한 효과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했다. 먹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자유분방한 표현력은 그림을 그릴수록 새로웠다. 하긴 먹의 농담(濃談)만으로 사물을 표현하는 용묵법은 중국 당나라 때 시작되어 원대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동양화의 오랜 기법이다. 먹의 짙고 옅음, 그리고 퍼짐의 정도에 따라 표현되는 먹의 효과는 무궁무진했다. 곽수연 작가는 어느새 먹의 세계에 빠졌다. 학교 미술실에 늦게까지 남아 정성스럽게 먹을 갈았고 필법을 닦았다. 미술고등학교에 진학하기까지의 곡절을 생각하면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이겠지만 저한텐 한국화가 잘 맞는 것 같아요. 서양화가 외향적이라면 동양화는 좀 내면적인데 제 기질과도 맞았죠." 서양화는 객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반해 동양화는 주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즉, 나의 느낌과 해석이 ‘객관적 사실’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서양화가 사물의 정확한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입체감, 원근법, 세밀한 묘사를 중요시한 반면 동양화의 전통은 그림에 담긴 의미와 관념적 세계관을 중요시하면서 평면적 표현법을 발전시켰다. 곽수연 작가는 그런 동양적 정서가 마음에 들었다. 대학 시절에는 우리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긴 옛 그림들이 전해 주는 묘한 끌림을 한 발이라도 가까이 느끼기 위해 간송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할 정도였다. 

 

민화와 사랑에 빠지다
곽수연 작가가 개를 주제로 그린 그림으로 처음 전시회를 연 건 2002년, 대학원 졸업 작품전이었다. 이 낯선 화제(畵題)에 사람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왜 하필 개냐는 거였다. 
"왜 개를 소재로 선택했는지 많이들 궁금해하세요. 1999년 무렵인데, 제가 키우던 개를 그리다가 자연스럽게 개란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사람 사이에서 사람처럼 살아가지만 사람은 될 수 없는 그 모호한 경계성에 관심이 갔던 거죠. 인물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사람은 쉽게 만질 수도 없고, 또 친밀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개는 사람보다 접근이 쉬웠던 점도 개를 소재로 선택했던 이유였어요. 짧은 시간에 사람과의 관계 이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거든요."
이 낯선 소재를 '발굴'한 뒤로 곽수연 작가에게 개는 더 이상 인간의 반려동물에 머물지 않았다. 개는 때로는 인간이었고, 그 자신이었다. 그래서 인물화를 그린다는 생각으로 개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긴 사람과 개 사이는 인류의 시원까지 더듬어야 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그림 전면에 새나 동물을 처음 등장시킨 영모화(翎毛畵) 화가는 조선 후기에 활약했던 도화서 화원 변상벽이었다. 변상벽은 닭과 고양이를 즐겨 그렸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동물들에 관한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개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곽수연 작가의 화풍에도 변화가 생겼다. 2002년에 전통 수묵화 작업에서 채색으로 한 번 작업 방향을 틀었고, 2007년에 다시 민화로 고개를 돌렸다. 민화의 전통 채색은 채색 작업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세계였다. 먹과 한지, 석채(돌가루 안료)가 어울리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민화의 대중성과 소박함이 좋았어요.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 현대 민화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작업 과정은 훨씬 힘들지만 우리 전통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시대 작가의 숙제라는 생각도 민화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 같아요."
곽수연 작가는 옛 그림에서 따뜻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중 민화가 서민적 정서를 가장 적절하게 녹여낸 그림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곽수연 작가 감수성의 원류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하여
곽수연 작가는 지극히 평범하다. 외모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다. 자신이 화가라는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놀란다고 한다. 그런데 노자 식으로 얘기하자면 지극한 경지는 바로 그런 평범함에서 나온다.
당장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그렁그렁한 곽수연 작가의 눈매, 그런데 언뜻 온화한 눈매 사이에서 어떤 결기 같은 게 비친다. 그림을 업으로 선택한 그 때부터 쉼 없이 달려온 세월이었다. 얼마 전 여섯 번째 개인전을 막 끝내고 지금은 "쉬엄쉬엄" 작업을 하고 있지만 한 순간도 그림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림이 좋기도 하지만 지금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영원히 내 손에서 떠날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강박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가 제 스스로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스트레스를 그림을 그리면서 푸는 것 같기도 해요. 어쨌든 행복한 시간이니까요."
아, 곽수연 작가의 근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곽수연 작가에게 그림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다. 그 통로를 열기 위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곽수연 작가는 그림을 멈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멈추는 순간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진다. 우리는 누구라도 그런 순간 멈추지 못한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달려야 한다.
곽수연 작가는 삶의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다. 자연스럽게 민화가 가진 전통적 특징들과 맞물린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삶이 더욱 소중해지겠죠. 바쁠수록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들이 필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처해 있는 상황, 그 상황 속에서의 생각, 그리고 저의 관심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작가 개인의 일상이 개와 연결되어 표현된 그림, 그래서 곽수연 작가의 그림 앞에 서면 때론 미소를 짓게 되고 때로는 공감하게 된다. 해학적이고, 소박하며, 친근하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낸 그 일상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니던가! 그 일상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면 곽수연 작가의 말처럼 삶은 더욱 소중해질 테다.

곽수연 작가는 한성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2010년 겸재정선기념관이 선정한 ‘내일의 작가’에 뽑혔으며, 2000년 <문인화 정신전>(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다양한 한국화의 필치를 선보였다. 미술은행, 흥국생명, 신세계, 코리아나화장품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글장상길사진김용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