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파혼... 남의 얘길 줄만 알았는데..

속상201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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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어디 터놓고 얘기하면 속이 좀 시원할까 싶어 익명의 힘을 빌려 이곳에 글을 쓴 건데.... 톡이 됬네요..

 

제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저 대신 시원하게 말 해주신 베플님, 고마워요.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저런 얘기를 들었을 때 그냥 머릿속이 멍해서 어버버 했습니다. 기가 막혀서 아무 말이 안 나온다는게 어떤 심정인지..... 그래도  다 정리하기 전엔 뺨 한대는 때리고, 너네집은 뭐가 잘났니? 규모도 작은 구멍가게 철물점, 유세떨지말라. 말이 좋아 자영업이지 이것저것 계산하면 흑자도 안나는 그 가게, 고정 거래처라고는 동네장식점 두 세 개가 다고 지나가는 사람한테 전구팔고 공사하다 뛰어온 사람한테 실리콘 몇개 파는 그런 철물점 필요없다- 그러고 끝냈습니다.

 

또... 자작이 아니냐는 분들도 계셨는데... 제가 여기에 부모님 팔아가면서 자작으로 글 써서 뭘 얻겠습니까... 여기가 신춘문예도 아닌데... 꽤 구체적인 정황을 들어서 자작이라고 단정지은 분도 계셔서 저도 구체적으로 해명을 해야 하나 싶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 그만두렵니다. 그렇게 변명해 본 들, 처음부터 제 글은 자작이라고 생각하신 분이니 믿어주실 것 같지도 않구요. 그런데 한마디는 씁니다. 저희 아버지 건축노동자 일 하시지만 예전에는 사장님이셨습니다. 직접 현장반장까지 하셨구요. 지금 아버지가 일하는 거래처들은 모두 예전 아버지가 사장님을 하셨을때의 동료분, 거래처사장님들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50을 지나 환갑이 다 되어가십니다. 예전에는 일을 나가셔도 막일을 하시지만 아버지가 얼만큼 일을 잘 하시는지 아시는 사장님께서 지금은 아버지에게 막일 대신에 현장감독을 부탁하시곤 합니다. 현장소장 한분을 쓰시는 것보다 저희 아버지에게 감리를 부탁하시는게 인건비가 훨씬 적게 치니까요...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저희 아버지와 같은 일용직노동자 직업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를 두신 분들. 혹시라도 아버지가 부끄럽다고 생각을 하신적이 계십니까?

저도 한창 사춘기 시절,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아버지 직업은 회사원, 공무원, 의사 그랬는데 저희 아버지는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어느날 비가 많이 오길래 "아... 오늘 우리 아빠 오랜만에 쉬시겠네-" 그랬더니 대뜸 친구들이 야, 너희 아빠 노가다냐? 비오는 날 쉬게? 그러길래 상처를 받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버지는 눈,비 오는날,명절연휴를 제외하고는 우리가족을 위해서 그 공사장 먼지 뒤집어 써 가면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퇴근하셔서는 저린 다리를 가족들 눈 피해 주물러가시면서도 힘든 내색 안 하시고 언제나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던 제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모릅니다. 저희 아버지는, 글쎄요. 저희 아버지의 인생을 모르시고 단면적인 모습만을 보는 사람은 막노동꾼이라 손가락질 하지도 모르지만 우리 가족에게만은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입니다.

 

지금 현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고 계신 당신의 아버지도 존경할만한 분입니다. 아버지를 부끄러워마시고 사랑해드리세요. 저도 아버지를 더 열심히 사랑해드릴겁니다.

 

다시 한번 이 긴 글을 읽어주시고, 저에게 힘내라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가족들을 모두 사랑해 줄 수 있는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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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을 했다는 말이.. 정말 남의 얘기 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저에게 닥치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온 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1년에 한번 걸릴까 말까 한 감기에 걸려 호되게 앓고나니 아..... 내가 정말 그 사람이랑 헤어졌구나 하는 실감도 납니다.

 

이젠 예랑이니, 남친이니 하는 좋은 말도 같다붙히기 싫네요.

 

 

결혼준비는 차근차근 잘 되가는 듯 싶었습니다.

 

일단 저와 그 사람의 조건을 적겠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지방중소기업 설계팀에서 근무중입니다. 월급 200 입니다. 회사 실적이 좋으면 인센티브가 나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차가 없어 유지비가 나갈 것도 없고 평소 옷이나 가방 등에 크게 돈을 쓰지 않아 모아놓은 돈이 꽤 됩니다. 제가 모은 돈이 5천만원입니다. 이 중 2천을 결혼식,신혼여행,혼수,예단 등등의 비용으로 쓰고 천만원을 지참금, 2천만원은 친정에 맡겨놓고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대학졸업 후 저와 비슷한 규모의 중소기업 영업직에 근무중입니다. 대학졸업 후 학자금 등을 갚았기 때문에 모아놓은 돈은 2천 정도 됩니다. 결혼식준비에 모자라는 돈은 그 사람 부모님이 보태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었습니다. 모자라는 부분은 양가집안이 서로 맞춰가기로 했고, 모든 게 저희 같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시부모 될 분들은 저희 부모님 같을 수 없죠.. 그 사람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들이기에 제 맘에 들고 안 들고를 따질 수 있는 분들이 아닙니다. 전 결혼 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친해질 수 있고 서로서로 마음에 덜 차는 부분은 당연히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제 며느리 될 입장에서 제가 양보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 그 사람 부모님은......그렇지 않으셨나 봅니다.

 

 

문제가 된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제 아버지의 직업과, 신혼집.

 

제 아버지는 건축노동자입니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일용직노동자, 노가다, 막노동인부 이렇게 얘기 할 수 있겠죠. 원래는 건축사업을 하셨습니다. 사장님 소리 들어가면서 전국을 다니면서 아파트, 빌라 등등을 지으셨는데.. IMF 때 동업하시는 분에게 사기를 당하시면서 회사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당장 다른 사업을 차릴 여건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회사에 취직할 조건도 되지 않고. 배운게 건축일이라 막노동이라도 해야 했던 가장의 책임감입니다. 제 아버지는 비록 남들이 못하다 말하는 일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셨고, 하나있는 외동딸 정말 사랑으로 키우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록 지방이지만 브랜드있는 아파트 40평대에 살고, 조그마한 빌라도 하나 전세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빌라의 전세가 올 추석이면 끝나게 되서 그 집을 리모델링 해 신혼집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명의는 제 부모님이 저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제 명의로 하구요.

 

그 사람 집에서 지원을 해 주더라도 신혼집을 구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20평 정도 전세가 6천~1억정도 합니다) 대신 그 사람은 그 집의 인테리어와 냉장고, 티피, 쇼파 같은 큰 가구를 하기로 했습니다. 자잔한 가전제품은 제가 구입을 하구요.

 

그런데 그 사람 부모는 그게 마음에 안 찼나봅니다.

 

빌라의 위치는 친정에서 차로 10분, 시댁에서 차로 50분입니다. 

신혼집이 친정과 가깝고 명의가 제 명의로 된다는 이유로 시부모 될 사람이 불만을 은근슬쩍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저녁식사를 할때 안 하던 옷차림, 머리색깔 지적이며 음식먹는 것까지...

저는 무채색의 옷을 좋아해서 주로 입는데, 시댁에 왔지 초상집 온 거냐는 말도 하고.. 원래 머리가 정말 짙은 흑발이라 인상을 순하게 하기 위해 커피색으로 염색을 했는데 그 나이에 그 색이 뭐냐고 발랑까졌냐는 말도 하고.... 제가 어릴 적 장이 자주 꼬이고 장염에 자주 걸렸는데 그 당시에 먹었던 음식을 지금도 못 먹습니다. 그것 가지고도 뭐라고 하네요.. 나중에 내 아들 굶길 거냐고..

 

그리고 얼마후... 그 사람이 대뜸 그러는 겁니다.

 

장인어른 다른 일 하시면 안 되냐고.

 

연애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걸 가지고 새삼스레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 부모님이 사돈댁 자랑을 못 하겠더랍니다.

 

노가다꾼 사돈 얻었다고 어디가서 말하겠냐고. 자기도 장인어른 그런 일 하는거 그렇다고,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쎄게 맞은 것 같았습니다. 설사 자기 부모님 입에서 저런 얘기가 나왔다 하더라도 나에게 저렇게 여과없이 전달해도 되는 것인가. 그게 장인어른과 사돈댁에 할 얘긴가 싶어서요.

 

그 사람은 부부끼리 조그만 자영업 하십니다. 무슨 일 하시는 줄 아십니까? 건축노동자 상대로 하는 철물점 운영하십니다.

 

다시 말해보라니까 뜨끔했는지 주춤 하다가 줄줄이입니다.

 

솔직히 어디서 말할 직업은 아니지 않냐. 너네아버지 지금은 벽돌나르고 모래 나르고 그런거안 하고 현장감독 비슷한거 하시지만 그래도 건축노동자는 건축노동자라고. 너는 너게 부모님이니까 그렇게 얘기하지 남들은 노가다로 알아듣는다. 장인집 얘기하기 좀 그렇다. 신혼집 문제도 주시는거 고맙지만 팔고 돈으로 주시면 적당한데 알아서 집 구할텐데 그 동네는 좀 그렇다. 시내에서 좀 떨어졌고 너네 집으로 너무 치우쳤다. 그리고 너 우리 부모님 만날때 사근사근하게 못하냐. 집 가져오고 나보다 결혼할때 돈 더 쓴다고 유세떠는 며느리 들어왔다고 부모님 굉장히 못 마땅해 하신다.

 

그저 헛 웃음만 나오죠. 내가 이 정도로 남자 볼 줄 몰랐나. 정말 어디서 그런걸 주워오셨어요 란 말이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구나..

 

자영업 한다는 그 사람이요? 노가다라고 깔본 우리집보다 못 살아요. 신혼집 해 줄 능력 없는건 둘째치고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전세로 살고 있어요.

 

거기다가 결정적 한 마디 하네요.

 

신혼집 너네 부모님 주시는 거지만, 나도 인테리어 하고 가구 보태니까 공동명의 해야지 왜 니 명의로 하냐고.

 

더이상 할 말이 없어서 다음에 보자하고 집에 왔습니다.

 

시부모는 부모고, 장인어른은 어른이라고 전 저한테 막대하시는 그 사람 부모님, 다 이해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은 아니었나봅니다. 장인어른이 부끄럽다는데요.........

 

 

제 아버지 부끄럽게하는 결혼 하기싫어서 파혼한다했습니다.

 

다행히 아직 청첩장 나오지 않았고, 예식장은 계약전이고 크게 돈 무러가면서 정리할 일은 없었네요.

 

부모님은 자세한 내막 모르셨으면 했는데, 그 사람 부모님과 언쟁중에 알게되셨습니다.

 

번듯한 직장 없어서 하나뿐인 외동딸 혼사 막았다고 미안하다 우시는데, 이런 불효가 어딨나 싶어서 그 날 하루종일 울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그 기억 훌훌 털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오랜 시간 만났던 사람이나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게 어렵겠지만..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온 장인어른 자랑스러워 할 남자 만나고 싶네요.

 

제 넋두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