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떡볶이’를 먹는 나라 ‘지네발’ 계열사가 산업 상태계를 질식시킨다

참의부201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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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재벌 3, 4세 승계의 결과

 

보나비, 휴먼티에스에스, 스테코, 에스비리모티브, 에스엔폴, 에스코어, 오픈헨즈, 월드사이버게임즈, 이엑스이씨엔티, 지이에스, 에스엠피, 에스티엠…….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할 이 회사들이 모두 삼성 계열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아마도 잘 모를 것이다. 삼성 계열사에서 장시간 근무했던 지인에게 물어봐도 모를 정도니 일반인이 알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처럼 일반인들은 잘 알지도 못할 정도로 삼성 계열사가 늘어나 있다. 삼성 계열사는 2007년 59개에서 80개로 증가했다. 2002년 삼성의 계열사수는 64개였다가 노무현 행정부 말인 2007년에는 오히려 59개까지 줄었다. 그런데 이명박 행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 4년만에 21개사가 늘어난 것이다.

 

삼성뿐만 아니라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은 36개에서 55개, SK그룹은 64개에서 92개, LG그룹은 33개에서 61개, 롯데그룹은 44개에서 79개로 늘었다. 이런 식으로 자산 기준 상위 10대 재벌들의 계열사수는 2007년 383개에서 630개로 늘었다. 무려 64%나 늘어난 것이다. 좀더 범위를 확대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상호출자란 회사간 투자로 상대 회사의 주식을 상호보유하는 것을 말하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특정 기업집단에 속하는 국내 회사들의 자산 총액이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뜻한다. LH공사와 한전 등 일부 거대 공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재벌로 구성된다.)의 계열사수를 보면 2008년 1069개에서 2011년 1621개로 늘었다. 그동안 재벌들의 계열사 확장 행태를 ‘문어발’로 표현했다면 이제는 ‘지네발’ 수준까지 온 것이다.

 

사실 이들 계열사 외에도 숨겨진 계열사가 상당수 있을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로 2010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효성그룹이 조석래 회장의 아들 또는 계열회사 등이 최다 출자자인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등 모두 7개의 계열사를 빠뜨린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들 계열사 가운데 3개 회사는 1970년대부터 설립되어 있었으나 효성은 계열사로 신고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10년간 계열사로 신고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한 경우만 52건에 이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고 조치만 받았고 겨우 3건만 고발되어 겨우 1000만원~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따라서 감시의 눈길을 벗어나 차명 등으로 설립된 재벌 계열사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공정위에 신고되지 않은 계열사를 제외해도 재벌의 계열사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다.

 

재벌 계열사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이명박 행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출자총액제한제도(재벌그룹들이 순환출자를 통해 소수의 지분으로 계열사들을 선단식으로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였는데, 폐지 당시 자산 10조원이 넘는 기업 그룹에 속한 자산 2조원 이상의 계열회사가 순자산의 일정 비율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게 했다.)를 무력화하다가 결국 2009년 3월 폐지했기 때문이다. 사실 노무현 행정부 때부터 출총제는 지배 구조 개선이나 미래 성장 동력산업 투자 등을 조건으로 적용을 제외하는 등 상당히 완화되었었다. 출총제가 완화되거나 폐지된 상태에서 재벌들은 마치 다주택 투기자들이 자신의 돈은 별로 없이 전세를 기고 빚을 내서 아타프를 사재기하는 것처럼 계열사를 늘려왔다. 출총제는 이처럼 재벌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들려 마구잡이로 계열사를 늘림으로써 여러 업종을 섭렵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였다. 재벌 계열사들이 마구잡이로 늘어나면 중소기업이 발붙일 자리가 점점 줄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출총제는 재벌 총수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비상장계열사들을 중심으로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편법으로 상속하는 것을 막는 장치로도 활용되었다.

 

한편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 명목으로 1979년에 도입되어 256개 업종에 적용되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도 2006년에 폐지되었다. 이 제도와 출총제 폐지가 맞물리면서 재벌 계열사들은 전통적인 중소기업영역까지 침범해서 수익을 독점하고 중소기업들을 고사시켰다.

 

두부업계가 그 여파를 잘 보여준다. 2006년 두부업종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에서 해제된 직후 당시 이미 대기업이던 풀무원 외에 CJ, 대상 등 재벌 기업의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그 후 불과 5년만에 4500억원 규모의 두부시장에서 이들 3대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절반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절반의 시장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 중소 두부가공업체들은 계속 문을 닫아야 했다. 그 결과 2006년 2300여개에 이르던 두부가공업체는 2011년 700여개나 줄면서 1580여개로 급감했다. 살아남은 업체들도 대부분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었다. 이런 ‘문어발’식 확장이 지속되면 재벌의 배를 불리지만 중소기업이 숨 쉴 공간은 점점 줄게 된다. 중소기업이 줄어든 만큼 일자리도 사라지고 중소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든 만큼 임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소업체에 주문생산하고 자체 인력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재벌 기업이 빈자리를 메워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두부업계만 이런 것은 아니다. 노영민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재생 타이어, 장류, 국수, 양말, 쇠못, 아스콘, 골판지 상자, 아연말, 리드와이어, 플러그 부착 코드 제조업 등 재벌 기업이 펼치기에는 정말 좀스러운 사업까지 재벌 기업이 파고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의 폐지는 2000년대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선 재벌 3, 4세들의 사업거리를 확보해주고 경영권 세습을 정당화해주기 위한 재벌의 로비가 작용한 측면이 크다. 그렇게 해서 재벌 3, 4세들의 ‘가만히 앉아서 돈 벌기’식의 사업확장이 있따르고 있다. 이를 통해 21세기 대명천지에 중세 봉건 왕조나 북한의 국가원수직책 세습과 맞먹는 제벌 세습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재벌가들의 ‘빵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베이커리 사업이 이를 잘 보여준다. 베이커리 사업은 삼성, 롯데, 신세계, 현대자동차 등 재벌가 여성 3세들의 주요 사업 아이템이다. 가장 먼저 빵 사업에 뛰어든 쪽은 신세계 계열의 조선호텔 베이커리. 정재은 신세계 회장의 딸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부사장이 신세계백화점 안에서 ‘달로와요’와 ‘베키아 에 누보’ 등의 브랜드를 달고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품에 안겨 안락하게(?) 장사를 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후 롯데와 삼성 쪽도 빵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0년 2월 삼성그룹에 속하는 신라호텔이 100% 출자한 자회사 보나비를 설립했다. 보나비는 이건희 회장의 맏딸인 이부진이 사장으로 승진한 뒤 전략적으로 설립해서 키워온 회사다. 역시 ‘아티제’라는 브랜드로 호텔신라영업점이나 삼성그룹 서초동 본사 등 그룹의 품 안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경영을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이 블리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인 ‘포숑’을 인수해서 2011년 하반기부터 경영에 나섰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성이까지 베이커리 카페 ‘오젠’을 시작했다.

 

이들 재벌가 빵 사업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거대한 유통업체나 외식업체 도는 그룹 소유 건물의 안정된 입지를 확보하고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이들 빵 회사들의 매출은 급증하고 있다. 재벌 3세 사업가들이 야심차게 벌이고 있다는 사업들이 겨우 이런 것이다. 아무런 사업적, 기술적 혁신도 없이 그룹의 품 안에서 온갖 특혜를 받아가며 안정적 수입을 올리는 것 말이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베이커리를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물론 모두가 애플처럼 엄청난 혁신적 기업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정한 기업인이라면 혁신적 사업에 도전해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일자리 창출의 야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재벌 그룹의 비호 아래 다른 중소 외식업체나 베이커리업체 등의 사업 기회조차 빼앗는 졸렬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이라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총애한다는 맏딸이 한다는 사업이 겨우 ‘빵집’이라니 너무 좀스럽지 않은가? 2012년 초 정부와 정치권의 질타로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사업 철수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비판 여론이 쏟아질 때 ‘소나기나 피하고 보자’는 식의 대응에 불과하다.

 

빵집뿐만 아니라 재벌 그룹이 벌이는 창피할 정도의 사업 확대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형 할인점 등을 통해 ‘통큰 치킨’이나 ‘이마트 피자’ 등을 팔고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을 통해 골목 상권을 위협하는 것은 극히 일면일 뿐이다. 이제 재벌은 음식 체인, 온라인 교육, 차량 정비, 와인 판매 등까지 파고들었다. 특히 재벌가 3, 4세 여성들을 중심으로 베이커리뿐만 아니라 백화점, 공항 면세점, 명품, 광고, 의류 시장 등에 봇물 터지듯이 진출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그들은 재벌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다. 일례로 광고업계를 보더라도 삼성그룹 계열의 제일기획과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의 이노션이 업계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둘째 딸인 이서현이 부사장으로 있는 제일기획의 경우 계열사의 광고 물량이 절반 이상이다. 제일기획이야 오랫동안 업계의 주도 회사였으니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성이 고문이 지분 40%를 보유한 이노션은 2005년에 설립되어 바로 업계 2위로 진입했다. 설립 이후 이노션은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 등의 물량을 싹쓸이함으로써 매년 50~60%대의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이노션 또한 계열사 매출액이 절반을 넘는다. 더구나 현대-기아차의 실적이 크게 호조를 보인 2010년에는 매출이 69.5%나 급증했다. 이밖에 한진그룹의 대한항공 기내지 광고와 면세품 인터넷 판매를 대행하는 싸이버스카이 역시 조양호 회장의 두 딸이 각각 3분의 1씩 지분을 보유하고 아주 손쉽게 사업을 펼치고 있다.

 

와인 열풍이 불자 LG, SK, 롯데, 신세계 보광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와인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LG는 트윈와인, SK는 WS통상, 보광은 아미뒤뱅, 신세계는 신세계와인컴퍼니라는 법인을 세워서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이들은 ‘고급화’라는 포장 아래 와인 가격을 올리고 관련 재벌 유통사 등의 지원 아래 중소 와인 도매업체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와인 열풍에 이어 막걸리 열풍이 불자 이번에는 CJ, 롯데, 진로, 오리온 등 유통업을 배경으로 한 대기업들이 막걸리 사업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이번에는 중소 막걸리 제조업체들의 몫까지 빼앗아가고 있다.

 

이병철, 정주영 등은 어쨌든 창업자들이고, 여러 특혜와 탈불법 행위를 감안하더라도 일정하게 자신들의 영역을 개척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도 여러 부정부패 이력 등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도전을 이어받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3대 이후로는 제대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고 볼 만한 이들이 드물다. 특히 3, 4세로 갈수록 초기 투자금 부담이 크지 않으면서 재벌 계열사의 품 안에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서비스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실제로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5개 그룹의 계열사 증가 가운데 76%가 서비스업 분야였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막대한 부를 독점하고 있다.

 

그런데 서비스업은 대부분 중견 기업이나 자영업자의 사업 영역과 겹친다. 따라서 재벌 기업의 진출은 당연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재벌 기업이 가장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도소매업의 취업자수가 2004년 380만명에서 2009년 360만명으로 20만명이나 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8년가지 대형 마트의 매출액이 17조원에서 31조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재래시장의 매출액은 42조원에서 26조원으로 급감했다. 대형 마트의 매출 증가액이 15조원으로 재래시장의 매출 감소액 16조원과 거의 일치한다. 한마디로 재벌 기업의 대형 마트가 재래시장 매출액을 거의 다 빨아들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래시장만이 아니다. 지식경제부의 2005년 조사에 따르면 대형 마트의 진출로 중소 소매업체의 94%가 매출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또 이들 대형 매점의 진출로 51% 이상 매출이 감소했다는 점주자 22.9%를 차지하는 등 전체 평균 매출액이 42.8%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마트 하나만 들어와도 그 주변의 재래시장이 초토화되고 동네 상권이 무너지는 것이 다반사다. 재벌 계열사들이 활개를 치면 칠수록 대한민국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떡실신’을 한다. 재벌 그룹이 3세까지 내려온 상황에서 이 정도인데 4, 5세까지 이런 추세로 대물림이 되고 계열사가 확장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의 산업 생태계는 질식하고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며 극단적인 양극화는 계속될 것이 뻔하다. 그런 경제를 원하는가?

 

② ‘이건희 떡볶이’, ‘이재용 오뎅’을 먹는 나라 

 

지금과 같은 속도로 재벌 계열사들이 늘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작성한 재벌 계열사수 추이 표(서적 원문을 참조)에서 보는 것처럼 이런 추세로 재벌 계열사의 수가 늘어난다면 현재 630개인 상위 10대 재벌 계열사의 수는 2020년 1000개를 넘고, 2030년경에는 1500개를 넘게 된다. 현재 55개 기업집단의 계열사수는 2020년 약 2200개, 2030년 약 3000개까지 늘게 된다. 지금보다 재벌 계열사의 수가 2배 가까이 늘어나게 되었을 때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얼마나 심각해질까? 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몰락은 얼마나 가속화될까?

 

2010년 기준 30대 재벌의 GDP 대비 매출액 비중은 82%에 이른다. 이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가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8년으로 86%였다. 그것이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하락해서 2003년 50%까지 내려갔다가 이후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처럼 재벌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제가 없다면 20년 후쯤에는 이 비중이 지금의 2배 수준인 150%를 넘어설 수도 있다. 그렇게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높아지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 등 서민 경제의 토대는 무너지게 된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지나치게 과도해지면서 대한민국은 사실상 ‘멕시코형 경제’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유추해보기 위해 한국 경제가 재벌 2세에서 3세로 이어지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삼성그룹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보통 삼성가라고 하면 현재의 삼성그룹만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범삼성가는 이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현재의 삼성그룹 외에 CJ, 신세계그룹, 한솔, 중앙일보, 보광그룹 등이 원래는 한 뿌리였다. 알다시피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일제강점기에 세운 삼성상회에서 시작되었다.

 

이병철 회장 타계 후 삼성은 5개의 친족 회사로 계열이 분리된다. 우선 1987년 이병철 회장 타계 후 셋째인 이건희 회장이 물려받아 일궈온 삼성그룹이 있다. 이어 1993년 장남 이맹희가 제일제당을 계열 분리한 뒤 CJ그룹을 세웠다. 현재 장손인 이재현이 CJ그룹 회장으로, 장손녀 이미경이 CJ E&M의 부회장직을 맡고 3세까지 내려간 상태다. CJ그룹만 해도 2011년 현재 계열사가 66개사로 불어났다. 66개사는 디시네마오브코리아, 미디어웹, 바둑텔레비전, CJ오쇼핑, OCN, 온게임네트워크, 프리머스시네마, CJ CGV, CJ푸드, CJ E&M 등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산업으로 광범위하게 사업을 확장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한편 이병철 회장의 다섯째로 태어난 이명희가 1991년 삼성으로부터 독립한 신세계그룹을 키워오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연예인 고현정과의 이혼으로 유명한 장남 정용진이 이미 그룹 부회장을, 딸 정유경이 부사장을 맡아 3세 경영을 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신세계를 비롯해서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신세계푸드, 이마트, 이마트슈퍼 등 자영업자들을 끝없이 몰아내는 유통 사업을 중심으로 18개사까지 늘어났다.   

 

이병철 회장의 장녀인 이인희가 고문인 한솔그룹도 한솔제지, 한솔케미컬, 한솔LCD, 한솔홈데코, 한솔개발 등 9개 계열사로 늘어났다. 이병철 회장의 둘째아들 이창희는 1995년 새한그룹을 넘겨받았지만 1999년 외환사변을 거치면서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이창희가 기업 경영에 성공했다면 삼성가의 세력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이뿐 아니다. 이건희 회장의 처남, 즉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와 동생 홍석현이 중앙일보 회장을, 홍석규가 보광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중앙일보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있을 테니 생략하고 보광그룹의 경우를 살펴보자. 1987년에 설립된 보광그룹은 삼성전자에 기대 TV브라운관 부품 생산을 시작으로 사업을 키웠다. 이어 보광그룹은 보광훼미리마트, 보광휘닉스파크, 코아로직 등 15개 업체를 거느리고 유통, 금융, 서비스, 제조업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편의점 사업을 주도해온 보광훼미리마트는 동네 구멍가게와 소매점을 몰락시킨 대표적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보광훼미리마트의 점포수는 1992년 100개에서 출발, 10년만인 2002년 1000개를 돌파한 데 이어 2003년 2000개, 2005년 3000개, 2008년 4000개, 2010년 5000개를 돌파했고 2011년 11월 현재 6453개까지 늘어났다. 실로 엄청난 급성장이다. 이에 따라 당기순이익은 2000년 11억원에서 2010년에는 657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처런 늘어난 순이익의 거의 대부분은 동네 구멍가게들과 영세 슈퍼마켓들의 몰락을 딛고 얻은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이들 편의점이 늘어나는 대신 동네 골목에 들어서 있던 슈퍼마켓이나 소매점들이 계속 문을 닫는 광경을 우리 누구나 보아왔기 때문이다.

 

범삼성가 재벌 그룹 하나만 해도 이렇게 사회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이들 삼성가의 자산 총액은 약 220조원으로 50대 그룹 자산의 5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범삼성가의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은 그 이상이다. 삼성은 삼성전자라는 전자제조업에서부터 놀이공원, 유통, 보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까지 한국 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에 진출해서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되면 그 회사의 시장점유율 이상으로 시장을 주도하는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이 사람들의 문화생활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나 엔터테인먼트 쪽이라면 더 더욱 그렇다.

 

그동안 삼성그룹은 홍석현 회장이 경영하는 중앙일보를 사실상 ‘삼성신문’으로 활용해왔다. 또한 외환사변 당시 자금난에 시달리는 동아일보에 자금을 대주고 1999년에는 동아일보와 사돈관계를 맺었다(김병관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3남인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이 회장의 둘째 딸인 이서현의 남편이다). 이후 동아일보도 중앙일보 못지않은 삼성 친위신문이 되었다. 내가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로 일하던 1999년 양가의 결혼이 이뤄졌는데 이후 동아일보 지면에서는 삼성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거의 모든 신문에 나오는 삼성의 편법 상속 등에 대한 비판도 지면 구속으로 찌그러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해서 1990년대 중반까지 삼성 일가의 비리를 스스럼없이 비판하던 동아일보를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조선일보, 매일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 등도 삼성 광고를 매개로 친삼성 논조를 벗어나기 어려움은 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에 CJ그룹이 영화 및 엔터테인먼트 채널인 tvN과 여러 지역 케이블 채널 등을 통해 이미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영역에 사업을 확장해온 상황이다.

 

2세까지 내려와 이미 5개의 친족 회사로 쪼개진 범삼성그룹 하나만 해도 한국 경제의 엄청난 철옹성이 되어버렸다. 이런 추세가 재벌 3, 4세까지 내려갈 20~30년 후쯤이면 20~30개의 친족 회사 그룹이 생겨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설사 그룹이 쪼개지지 않더라도 재벌 3, 4세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재벌 계열사들이 계속 ‘새끼치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속도로 재벌 4, 5세까지 내려가도록 방치한다면 웬만한 자영업은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자영업을 한다고 해도 재벌 계열사의 각종 프랜차이즈 가맹점 형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일반 자영업자들은 재벌 계열사에 로열티를 내고 시시때때로 인테리어를 바꿔야 하므로 손에 쥐는 몫이 점점 줄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몇몇 재벌 계열사가 시장을 점유한 뒤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면 무엇이든 비싸게 사먹을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가 사오는 닭 한마리의 가격은 3000원도 안 되는데 최종 치킨 판매가는 1만 6000춴~1만 8000원에 이르게 되는 식이다. 아무리 가공, 유통, 마케팅 과정의 비용을 고려해도 너무 심한 ‘뻥튀기’다. 이는 또래오래, BBQ, 교촌 등 상위 5개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자가 57%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사실상 담합 구조를 형성한 탓이다. 프랜차이즈의 개별 체인 자체는 큰 돈벌이를 못하거나 겨우 현상 유지만 하는 경우도 수두룩한데 말이다. 재벌 계열의 프랜차이즈들이 온갖 영역에 침투해 들어올 때 이런 행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이건희 떡볶이’, ‘이재용 오뎅’을 사먹게 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10여년 전까지 남아 있던 피카디리, 단성사, 극도극장 등이 재벌 영화 체인들의 멀티플렉스 공세에 밀려나고 CJ CGV와 롯데시네마의 스크린 점유율이 60%를 넘어선 것처럼 말이다(그나마 남아 있는 대한극장, 서울극장, 명보극장 등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재벌 영화 체인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잘 때까지 단 한순간도 재벌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는 ‘순도 100% 재벌독점 국가’가 완성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재벌 계열사의 무분별한 확장을 허용하는 것은 생산자 입장에서든 소비자 입장에서든 맹독이 퍼지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맹독을 퍼뜨리는 재벌이라는 지네들을 막지 못하면 한국 경제가 죽기 때문이다.

 

③ 기업인 정신이 사라지고 소시오패스가 지배한다.

 

재벌 3, 4세의 경영권 상속이 지속되면서 부와 경영권의 대물림을 위한 계열사 사이 부의 이전과 부실 계열사 지원이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동양증권 채권분석팀이 2011년에 발간한「2012년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라는 보고서는 “대기업의 대주주 지분율이 3대에 이르면 4분의 1로 줄게 되어 경영권 유지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면서 “전문 경영인의 도전에 맞서 자녀들의 경영 업적을 만들어주기 위한 계열사간 인적, 물적 자원의 이동이 활발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일감 몰아주기’나 ‘계열사 채무 떠안기’나 자금 지원 등을 통해 비상장 계열사의 매출이나 영업이익이나 자산 가치 등을 늘려주는 것이다. 실제로 2011년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자산 순위 30대 그룹 가운데 총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사의 대부거래 비중이 거의 절반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말 기준으로 이들 20개 비상장사의 총매출 7조 4229억원 가운데 계열사 매출이 3조 4249억원으로 46.1%나 되었다. 이는 전체 계열사의 평균 내부거래 비율인 28.2%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한편 내부거래의 88%는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는 비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율 41%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다. 특히 물류 분야는 99%, 광고 분야는 96%, 시스템 통합 분야는 78%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비상장사는 보통 총수 일가가 지분을 거의 독식한 채로 계열사의 각종 지원을 받아 초고속 성장을 한다. 실제로 해당 20개 기업의 실적은 5년 사이 평균 3.27배나 늘었다. 초고속 성장의 과실은 거의 대부분 재벌 3, 4세에게 돌아갔다. 예를 들어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차녀가 지분 18.61%를 보유한 식음료업체인 롯데후레쉬델리카는 2010년 매출액 584억원 가운데 계열사간 거래액이 97.5%에 이르렀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장남 허윤홍 등 자녀가 지분 100%를 확보하고 있는 GS아이티엠의 계열사 매출액은 81%에 육박했다.

 

이렇게 일감을 몰아주는 등의 방식으로 회사를 키워준 데에는 이를 재벌가의 ATM으로 사용한다. 다시 말해 부의 상속 수단인 비상장 계열사들이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린 뒤 파격적인 배당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현대엠코의 경우다. 2002년 10월에 설립된 현대엠코는 설립 첫해 매출이 94억원에 지나지 않았지만 2010년에는 무려 1조 2416억원으로 늘어났다. 매출의 대부분은 계열사들과의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현대엠코의 내부거래 비율은 2007년 94%(1조 1041억원), 2010년 57%(7119억원)였다. 이처럼 고속 성장한 현대엠코 지분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0%,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25.1% 보유하고 있다. 현대엠코는 매년 고액 배당을 실시하고 있는데 2011년의 경우 회장과 부회장은 이 같은 고액 배당으로 각각 50억원과 125억원을 챙길 수 있었다.

 

사실 현대엠코에 앞서 현대글로비스도 마찬가지 사례였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현대차 계열 4개사가 2001년에 설립된 물류회사 글로비스에 물류업무 95%를 몰아줬다. 그 결과 글로비스는 5년만에 매출액이 676%나 성장했다. 당시 글로비스의 최대 주주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 사장이었다. 그가 막대한 배당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계열사 지원으로 회사가 급성장하다 보니 회사 가치가 치솟았다. 그 결과 2004년 11월 정의선 사장은 자신의 글로비스 지분 25%를 팔아 1000억여원을 벌었다. 이 돈으로 정의선 사장은 기아차 지분을 1% 늘리면서 경영권 승계에 조금씩 다가갔다. 또한 2006년 12월에는 주식시장에 글로비스를 상장해 수천억원대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 글로비스 설립에 정 회장 부자가 투자한 돈은 약 50억원에 불과했다. 일반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는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현대가의 3세 대물림 사례만 들었지만 사실 거의 모든 재벌 일가가 비상장 계열사를 통한 부와 경영권 세습을 자행하고 있다. 이 같은 탈불법적인 부의 대물림은 3, 4세가 경영에 나서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다. 이는 재벌 계열사의 매출과 이익을 비상장 계열사로 이전함으로써 주주의 이익을 훼손하고 재벌 일가의 부를 축적하는 파렴치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손쉽게 부와 경영권을 물려받은 재벌 3, 4세가 대기업을 주도할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흔히 말하는 기업인 정신인 사라지고 기술 및 제품 혁신에 대한 유인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2011년 연합뉴사가 11개 주요 재벌가 성인 남자 124명의 병역 사항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재벌가는 2세대, 3세대 등 젊을수록 군대에 안 간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2세~51세(1960년대생)는 27명 중 10명(37.0%)이, 32세~41세(1970년대생)는 36명 가운데 15명이 군대에 가지 않아 면제율이 41.7%나 되었다. 이는 일반인인 1970년대생의 병역 면제율 18.3%, 1980년대생의 병역 면제율 9.8%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다. 1970년대생의 경우에는 일반인보다 2.3배나 면제율이 높아진 것이다. 재벌가는 이런저런 이유로 국방의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다. 온갖 탈불법을 저지르면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부와 경영권을 물려받고,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불리는 사회 지도층의 책임 의식도 없는 이들이 한국 경제의 주력 기업들을 이끌게 되는 미래를 생각해보라. 이런 식으로는 재벌 기업의 건강한 역할도 기대할 수 없고, 한국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이 너무나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들 재벌 3, 4세 가운데는 ‘소시오패스(Sociopath)형‘ 인간이 양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 재벌 3, 4세들은 이미 여러 탈불법적 상황에서 부를 대물림하고 있음에도 양심의 가책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사실 이 같은 인간형은 한국의 재벌들에게 나타나는 거의 공통된 특징이다. 4조 5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2조원대의 탈세를 하는 등 온갖 탈불법을 자행한 이건희 회장이 오히려 평범한 국민들에게 “제발 정직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설교하는 게 전형적인 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시비 끝에 아들을 때린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을 심야에 인적이 드문 청계산으로 끌고 가서 조직폭력배와 함께 폭행한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대표적인 사례는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이 차를 매매하기 위해 찾아간 노조원을 야구 방망이로 실컷 때리고 맷값을 던져준 사건이다. 그는 경찰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을 때도 기자들 앞에서 히죽히죽 웃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의 뜻은 전혀 없었다. 사실 최철원은 드러난 경우일 뿐 재벌 3, 4세 가운데 자신의 탈불법 행위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게 될 때는 ‘동정’을 구한다고 말한다. 동정을 구한 뒤 다시 강자로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악행을 거듭하는 것이다. 2003년 재판에서 선처를 구해 경영 일선에 복귀했던 최태원 회장이 2011년 다시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범죄를 저지를 때도 ‘나눔 경영’과 사회 공헌을 떠들어댔다. 그리고 이제 법정에 다시 서게 된 그는 또 다시 선처와 동정을 구하고 있다. 문제는 재벌 3, 4세로 내려오면서 이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다른 국민들을 등치고 희생시켜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이들이 활개 치는 한국 경제의 미래에 다수 국민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을까?

 

게자다 재벌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져도 언론에 미치는 재벌의 영향력 때문에 아예 문제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될지 모른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뉴스보다 여성들이 주로 보는 드라마가 훨씬 더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TV드라마는 어느 순간부터 재벌가 자녀들의 사랑 이야기로 넘쳐나고 있다. KBS〈너는 내 운명〉이나 SBS〈시크릿가든〉에서 그랬듯이 재벌가 자녀들은 미남 미녀에 너무나도 멋진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횡령, 배임, 주가 조작, 회계 조작, 비자금 조성, 탈세 등 재벌가 자녀들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폐해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재벌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특히 ‘신데렐라 이야기’로 끝나 재벌 일가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비판 의식마저 마비시킨다. 대신 MBC〈전원일기〉나 SBS〈2004인간시장〉처럼 서민들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나 한국의 부조리한 현실을 정면으로 파헤친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렵다. 장애인과의 사랑이나 대학 졸업을 앞둔 젊은이의 고뇌, 가업인 식당을 물려받은 가족과 이 식당에 들르는 서민들의 애틋한 사연 등 평범한 서민들의 얘기를 종종 다루는 일본의 TV드라마와는 주제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 TV드라마들의 재벌 미화는 PPL광고 등을 통해 제작비를 재벌 기업들에 기대는 탓도 있겠지만, 이미 이들 재벌 일가에 대한 찬양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재벌 기업들이 재벌가 자녀들을 ‘셀러브리티(Celebrity)’로 포장하는 언론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스포츠지나 연예지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지와 종합일간지까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딸들인 이부진, 이서현의 ‘럭셔리 패션’을 보도하는 식이다. 이런 보도들을 통해 현실의 재벌가 자녀들의 이미지를 드라마 이미지와 동조화하는 것이다. 이는 이를 의도적으로 연출하고 홍보하는 재벌 기업들의 홍보 전략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 예를 들어, 서민들의 빵집을 문 닫게 하는 이부진 삼성애버랜드 사장의 베이커리 사업에 대한 비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미 한국은 기존 제도권 언론에서는 재벌가에 대한 비판조차 생각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이 10여년 이상 지속되면 재벌가는 온갖 탈불법과 파렴치한 행동도 떳떳하게 자행할 수 있는 특권 지배계급으로 서민들에게 내면화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 선대인 민생경제전략연구소장 저술『문제는 경제다』「버리고, 바꾸고, 바로잡아야할 것들」〈제2부 이대로 10년〉웅진지식하우스 편찬(2012년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