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배려)EBS 지식채널 e [잃어버린 33년] 인혁당 사건 1

8시간201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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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 e

 

 

 그날 남편은 목욕탕에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33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쎄, 제 남편이 신문에 나온 겁니다.

 

 

 

 

1972년 10월 유신선포

1973년 10월 유신 반대 시위

전국 대학으로 확산

 

 

 

 

1974년, 중앙정보부는 유신에 반대하는

민청학련을 범죄단체로 규정

 

그리고

민청학련 배후로 인혁당(인민혁명당) 검거

 

 

 

인혁당은 반국가단체다.

-중앙정보부

 

 

 

그러던 어느날

저는 어딘가로 끌려가서

다른 피고인의 아내들처럼

강제로 각서를 썼습니다.

 

"내 남편은 간첩" 이라고,

 

 

 

그런 각서를 썼다는 죄책감으로

자살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쥐약을 먹으려고 하는

그 모습을 친정어머니가 보셨지요.

 

 

 

 

저는 죽음을 면하게 되었지만

친정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한 달 뒤,

눈을 감으셨습니다.

-유승옥(故 김용원 씨 아내)

 

 

남편을 살리려고

언론에 손톱만큼이라도 기사를 내달라고

애원했지만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막내아들의 목에 새끼줄을 묶고

총살놀이를 하더군요.

'빨갱이 자식'이라고 놀리면서...

그때 이웃들은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간첩' 이라는 누명을 쓴 것도 억울했지만

자칫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피해를 끼칠까봐

지인들과 접촉을 끊고서

숨만 쉬며 살았습니다.

-신동숙(故도예종 씨 아내)

 

 

 

1975년 4월 8일 대법원,

인혁당 피고인 8명 사형선고

다음 날 새벽 4시(사형선고 18시간 후)

교수형 집행

 

 

 

"대법원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심혈을 기울여 심리하고 선고한 것이므로

더 이상 불복할 여지가 없다."

-서울신문 1975년 4월 10일 사설 중에서

 

 

 

 "한국정부가 억압적이라는 비판은 편견입니다.

한국에서는 한국 형편에 맞는

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

-뉴스위크 지 회견, 박정희 대통령

 

 

 

민주주의(民主主義)

: 국민이 주인인 정치 형태

 

 

 

2007년 1월 23일 법원, 무죄 판결

"당시 진술은 고문, 구타, 협박으로

허위 자백을 한 것으로 인정되므로

증거능력이 없다"

 

 

 

본 편을 제작하면서

잠시 주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시 나중에 세상이 바뀌어서

이 영상물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나쁜일을

겪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이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진짜 사과는 기자들 앞에서 할게 아니라

직접 피해자들을 찾아가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이야기를 덧붙이지는 않을게요.

그 분이 역사의 판단에 맡기셨듯이

여러분의 판단에 맡길게요.

 

 

인혁당 아내 “죽어서 돌아온 남편 시신 손발톱 다 빠져…” 기사 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14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