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들이나 경제·경영학자들이 주식회사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면, 마치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한다. 즉, 현대의 거대 기업은 주식분산이 잘 이루어지고 주주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지고 항상 변동하기 때문에 주주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없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식회사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주식이 너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주식의 소유와 기업의 경영권 사이에 아무런 필연적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주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은 사람도 주식회사의 경영을 맡을 수 있고, 반대로 모든 주식을 소유한 사람도 경영을 남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전문가들이 사실문제(quid facti)를 권리문제(quid iuris)와 구별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가?
① 주식회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오래전에 기업을 하나의 폴리스 또는 공화국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서도 더 이상 생각을 진척시킬 수 없었던 까닭도 바로 다음 문제 때문이었다. 기업의 소유권이 남에게 있는데 어떻게 노동자들이 그것의 경영권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 물음 앞에서 나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자본주의적 기업의 성벽에도 의외로 취약한 균열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유권의 개념이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그렇게 정확하게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약 주식회사가 나의 집이 나에게 속하는 재산이듯이 어떤 개인에게 배타적으로 속하는 사유재산이라면, 그것의 경영권을 노동자에게 주겠다는 것은 마치 내 집을 다른 사람들이 관리하도록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재산권을 폭력적으로 침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주식회사는 나의 집이 나의 소유물이듯이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 귀속하는 사유재산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식회사의 경영권이 누구에게 속하느냐는 물음은 단순히 사유재산권에 기초해서 주식회사의 주인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물음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식회사의 소유권에 대해 우리가 이런저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경영권이 자동적으로 그 소유주에게 귀속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요컨대 주식회사에 관해서 보자면 소유권과 경영권이 모두 어떤 근원적인 불안정성 속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하나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김씨 성을 가진 어떤 사람이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식당을 차렸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자신의 퇴직금에 평소 예금해 두었던 돈을 보태고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아 집을 담보로 잡혀 은행에서 빚을 얻어 그 돈을 모두 합쳐 식당을 차렸다. 이런 경우 우리는 당연히 이 식당이 그 사람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런 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고용되어 더러는 홀에서 서빙을 하고 더러는 주방에서 일을 한다 하더라도 나 역시 노동자 경영권 운운하면서 사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 식당은 김씨의 소유물이니 김씨가 자기 원하는 대로 경영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용될 때 맺은 계약에 따라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으면 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노동자의 보호를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보편적으로 최저임금제도를 법제화한다든지 노동시간에 제한을 둔다든지 또는 대개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자영업 고용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제도화한다든지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식당이 김씨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상의 김씨가 차린 식당을 김씨의 소유물이라고 인정하고 그에 따른 일체의 사용권 및 경영권을 인정하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김씨는 자기가 혼자 돈을 마련해서 식당을 시작했다. 다음으로 만약 식당이 망하게 되면 김씨 혼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 식당이 김씨의 것임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다른 모든 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어떤 기업을 오로지 혼자만의 책임 아래 창업하고 또 망할 경우 모든 책임을 혼자 끝까지 진다면, 우리는 그 기업을 그 사람의 사적 소유물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이런 경우 노동자들은 계약에 따라 임금을 받고 만약 그들이 받는 임금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노사협상을 통해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업주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노동자의 임금에 비해 과도하게 많다면 국가가 개입하여 평균 이상의 세금을 걷고 이를 통해 복지제도를 확충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부의 재분배를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주가 기업의 흥망성쇠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경우에 그 기업의 경영권을 노동자가 행사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후안무치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자들이 기업경영의 모든 위험에 대한 책임은 기업주에게 맡겨놓고 기업경영의 권리만 취하겠다는 것이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역시 노동자의 권리는 그 자체로서 보호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위해 노동자 경영권을 요구할 수는 없으며, 우리는 전통적인 노동조합운동의 강화나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통해 개인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확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주식회사 역시 그렇게 한 사람이 자본을 다 출자하고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회사의 운명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회사라면, 주식회사의 경영권을 노동자에게 달라는 요구도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억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다행스런 일이지만, 주식회사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서양에서 처음으로 자본주의적 경제가 시작되었을 때, 대다수 기업이란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중소기업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규모였다. 그러던 것이 19세기에 들어서면 산업혁명에 힘입어 엄청난 규모로 확장되었는데, 대규모 기업의 창업을 위해서는 당연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액수의 자본이 투자되어야만 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동서를 가로지르는 철도를 부설한다 할 때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한 개인이 그에 필요한 자본을 모두 조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주식을 판매하여 자본을 조달하는 관행이 주식회사를 지배적인 기업 형태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 이후 비단 철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산업생산의 규모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되면서 오늘날 시장경제체제 내에서 주식회사는 가장 중요한 기업형태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주식회사의 중요성은 그것이 단순히 시장에서 가장 큰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주식회사의 보다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어떤 본질적인 측면을 가장 전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상법(商法)에 따르면 회사에는 합명회사, 합자회사, 유한회사, 주식회사의 네가지 종류가 있다. 법학자들은 이 회사들을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인적회사와 물적회사의 구별이다. 거칠게 말해 회사의 실체가 사람들의 모임일 때, 그것이 인적회사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적회사라고 할 수 있는 합명회사는 회사에 자본을 출자하고 의결권을 가지는 “모든 사원이 회사 채권자에 대해 직접·연대·무한책임을 부담하는 회사이다.” 대신 그들은 업무집행권 및 회사대표권을 가지며, 외부적으로도 사원들 자신이 신용의 기초가 된다. 즉 회사의 채무는 마지막에는 회사 법인이 아니라 공동으로 출자한 개인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합명회사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출자하고 운영하는 단체의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개인 기업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즉 몇 사람이 공동으로 모두 출자를 하고 모든 부채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게 되므로 출자한 사원들이 공동으로 회사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온전히 가지는 것이다. 이 경우 회사의 경영권은 소유권으로부터 분석적으로 연역된다. 앞에서 말했던 김씨의 식당이 김씨 개인의 소유물이므로 김씨가 자기 원하는 대로 경영을 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합명회사의 경우에도 회사가 사원들의 공동 소유물이므로 그 경영권 역시 그들에게 배타적으로 귀속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에 반해 주식회사는 인적회사가 아니라 전형적인 물적회사로 분류된다. 그 까닭은 주식회사가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자본의 결합체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의 발행주식의 액면총액이 그 회사의 자본인데, 법에 따르면 사람이 아니라 이 자본의 주식회사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실체이다. 물론 그 자본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주식을 판매함으로써 모아져야 한다. 하지만 자본을 누가 출자했는지, 또는 그 회사의 경영진이 누구인지는 주식회사의 실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점에서 주식회사는 사람의 결합체가 아니라 자본의 결합체라고 간주된다.
주식회사의 구성원, 곧 사원(社員)은 철저히 익명적 존재이다. 그들은 자본에 부착된 이름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주식회사의 자본이 그것의 실체를 이룬다면, 그 회사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그 자본에 귀속하는 속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처럼 주식회사가 자본의 결합체이고, 사람은 한갓 자본에 귀속하는 속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주식회사에 관계하는 사람들과 주식회사의 결합관계가 다른 형태의 회사와 달리 본질적으로 우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식회사의 소유권이나 경영권에 대한 온갖 복잡한 물음은 모두 이 우연성으로부터 발생한다.
▶ 김상봉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저술『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꾸리에 편찬(2012년 출판)133쪽~180쪽.
주식회사의 소유권과 경영권은 노동자들에게 있다……주식회사의 네가지 고유성에 대하여 ⑴
법학자들이나 경제·경영학자들이 주식회사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면, 마치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한다. 즉, 현대의 거대 기업은 주식분산이 잘 이루어지고 주주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지고 항상 변동하기 때문에 주주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없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식회사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주식이 너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주식의 소유와 기업의 경영권 사이에 아무런 필연적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주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은 사람도 주식회사의 경영을 맡을 수 있고, 반대로 모든 주식을 소유한 사람도 경영을 남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전문가들이 사실문제(quid facti)를 권리문제(quid iuris)와 구별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가?
① 주식회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오래전에 기업을 하나의 폴리스 또는 공화국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서도 더 이상 생각을 진척시킬 수 없었던 까닭도 바로 다음 문제 때문이었다. 기업의 소유권이 남에게 있는데 어떻게 노동자들이 그것의 경영권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 물음 앞에서 나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자본주의적 기업의 성벽에도 의외로 취약한 균열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유권의 개념이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그렇게 정확하게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약 주식회사가 나의 집이 나에게 속하는 재산이듯이 어떤 개인에게 배타적으로 속하는 사유재산이라면, 그것의 경영권을 노동자에게 주겠다는 것은 마치 내 집을 다른 사람들이 관리하도록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재산권을 폭력적으로 침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주식회사는 나의 집이 나의 소유물이듯이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 귀속하는 사유재산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식회사의 경영권이 누구에게 속하느냐는 물음은 단순히 사유재산권에 기초해서 주식회사의 주인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물음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식회사의 소유권에 대해 우리가 이런저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경영권이 자동적으로 그 소유주에게 귀속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요컨대 주식회사에 관해서 보자면 소유권과 경영권이 모두 어떤 근원적인 불안정성 속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하나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김씨 성을 가진 어떤 사람이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식당을 차렸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자신의 퇴직금에 평소 예금해 두었던 돈을 보태고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아 집을 담보로 잡혀 은행에서 빚을 얻어 그 돈을 모두 합쳐 식당을 차렸다. 이런 경우 우리는 당연히 이 식당이 그 사람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런 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고용되어 더러는 홀에서 서빙을 하고 더러는 주방에서 일을 한다 하더라도 나 역시 노동자 경영권 운운하면서 사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 식당은 김씨의 소유물이니 김씨가 자기 원하는 대로 경영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용될 때 맺은 계약에 따라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으면 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노동자의 보호를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보편적으로 최저임금제도를 법제화한다든지 노동시간에 제한을 둔다든지 또는 대개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자영업 고용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제도화한다든지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식당이 김씨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상의 김씨가 차린 식당을 김씨의 소유물이라고 인정하고 그에 따른 일체의 사용권 및 경영권을 인정하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김씨는 자기가 혼자 돈을 마련해서 식당을 시작했다. 다음으로 만약 식당이 망하게 되면 김씨 혼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 식당이 김씨의 것임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다른 모든 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어떤 기업을 오로지 혼자만의 책임 아래 창업하고 또 망할 경우 모든 책임을 혼자 끝까지 진다면, 우리는 그 기업을 그 사람의 사적 소유물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이런 경우 노동자들은 계약에 따라 임금을 받고 만약 그들이 받는 임금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노사협상을 통해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업주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노동자의 임금에 비해 과도하게 많다면 국가가 개입하여 평균 이상의 세금을 걷고 이를 통해 복지제도를 확충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부의 재분배를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주가 기업의 흥망성쇠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경우에 그 기업의 경영권을 노동자가 행사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후안무치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자들이 기업경영의 모든 위험에 대한 책임은 기업주에게 맡겨놓고 기업경영의 권리만 취하겠다는 것이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역시 노동자의 권리는 그 자체로서 보호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위해 노동자 경영권을 요구할 수는 없으며, 우리는 전통적인 노동조합운동의 강화나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통해 개인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확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주식회사 역시 그렇게 한 사람이 자본을 다 출자하고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회사의 운명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회사라면, 주식회사의 경영권을 노동자에게 달라는 요구도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억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다행스런 일이지만, 주식회사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서양에서 처음으로 자본주의적 경제가 시작되었을 때, 대다수 기업이란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중소기업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규모였다. 그러던 것이 19세기에 들어서면 산업혁명에 힘입어 엄청난 규모로 확장되었는데, 대규모 기업의 창업을 위해서는 당연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액수의 자본이 투자되어야만 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동서를 가로지르는 철도를 부설한다 할 때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한 개인이 그에 필요한 자본을 모두 조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주식을 판매하여 자본을 조달하는 관행이 주식회사를 지배적인 기업 형태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 이후 비단 철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산업생산의 규모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되면서 오늘날 시장경제체제 내에서 주식회사는 가장 중요한 기업형태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주식회사의 중요성은 그것이 단순히 시장에서 가장 큰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주식회사의 보다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어떤 본질적인 측면을 가장 전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상법(商法)에 따르면 회사에는 합명회사, 합자회사, 유한회사, 주식회사의 네가지 종류가 있다. 법학자들은 이 회사들을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인적회사와 물적회사의 구별이다. 거칠게 말해 회사의 실체가 사람들의 모임일 때, 그것이 인적회사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적회사라고 할 수 있는 합명회사는 회사에 자본을 출자하고 의결권을 가지는 “모든 사원이 회사 채권자에 대해 직접·연대·무한책임을 부담하는 회사이다.” 대신 그들은 업무집행권 및 회사대표권을 가지며, 외부적으로도 사원들 자신이 신용의 기초가 된다. 즉 회사의 채무는 마지막에는 회사 법인이 아니라 공동으로 출자한 개인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합명회사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출자하고 운영하는 단체의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개인 기업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즉 몇 사람이 공동으로 모두 출자를 하고 모든 부채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게 되므로 출자한 사원들이 공동으로 회사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온전히 가지는 것이다. 이 경우 회사의 경영권은 소유권으로부터 분석적으로 연역된다. 앞에서 말했던 김씨의 식당이 김씨 개인의 소유물이므로 김씨가 자기 원하는 대로 경영을 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합명회사의 경우에도 회사가 사원들의 공동 소유물이므로 그 경영권 역시 그들에게 배타적으로 귀속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에 반해 주식회사는 인적회사가 아니라 전형적인 물적회사로 분류된다. 그 까닭은 주식회사가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자본의 결합체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의 발행주식의 액면총액이 그 회사의 자본인데, 법에 따르면 사람이 아니라 이 자본의 주식회사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실체이다. 물론 그 자본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주식을 판매함으로써 모아져야 한다. 하지만 자본을 누가 출자했는지, 또는 그 회사의 경영진이 누구인지는 주식회사의 실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점에서 주식회사는 사람의 결합체가 아니라 자본의 결합체라고 간주된다.
주식회사의 구성원, 곧 사원(社員)은 철저히 익명적 존재이다. 그들은 자본에 부착된 이름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주식회사의 자본이 그것의 실체를 이룬다면, 그 회사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그 자본에 귀속하는 속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처럼 주식회사가 자본의 결합체이고, 사람은 한갓 자본에 귀속하는 속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주식회사에 관계하는 사람들과 주식회사의 결합관계가 다른 형태의 회사와 달리 본질적으로 우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식회사의 소유권이나 경영권에 대한 온갖 복잡한 물음은 모두 이 우연성으로부터 발생한다.
▶ 김상봉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저술『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꾸리에 편찬(2012년 출판)133쪽~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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