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막내 며느리 개똥이 예요. 엄마가 긴 여행을 떠나신지 벌써 6일이 되어가네요. 처음 인사가려고 옷 사고, 선물 사고 했던 때가 생각나요. 무서운 분이면 어떻하나.... 나를 밉게 보면 어떻하나... 이런 저런 걱정을 한가득 안고 백운동 집에 찾아 갔었어요. 부모님만 계실꺼라고 생각했었는데 고모님도 오빠 다른 형제 분들도 다 계셔서 많이 당황했어요. 간단하게 차 한잔 준비하셨겠지 했는데... 언제 그렇게 많은 음식을 준비하셨는지..... 당황해서 잘 못먹는 제게 이것도 먹어 봐라 저것도 먹어 봐라 하면서 챙겨 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못난 막내 며느리가 뭐가 그리도 이쁘신지 결혼도 하기 전에 팥죽 만들었다고 곗돈 타서 반지 사주신다고 생각도 잘 안나는 이런 저런거 해주신다고 백운동 집에 참 많이 드나들었네요. 형님네 결혼하시던 날 가족사진 같이 찍어야 한다고 하시던 모습도 떡 잘 먹는다고 형님네 이바지 음식 아버님이랑 함께 파란 트럭타고 용봉동까지 오셨던 모습이 눈앞에 선해요. 결혼식 준비하면서도 너 하고 싶은게 해라 너 좋은 거 해라 젤 좋은 거 해라 하셨던 모습이 생각나요. 본식 드레스 보고 엄마가 너무 이쁘다고 했었는데.... 신혼집이 부도나서 한 달여를 함께 살 때도 아침잠 많은 철이 없는 며느리 덕에 항상 아침 챙겨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엄마께서 당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아무도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1달 정도 살고 풍암동으로 분가할 때 김장김치며 조기... 손질을 다해서 구워 먹기만 하면 되게 해주신 조기.... 손님 모시면 쓰라고 주신 살림들... 감사해요... 당시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오빠랑 생활을 경제개념이 부족해서 저 밑바닥까지 내려갔을때도 항상 잘한다 잘한다 하셨는데... 엄마 길 잃어버리고 지나가는 사람 통해서 개똥이한테 전화 주셨을때 못가서 죄송해요... 그때는 월급을 받아 생활하던 때라 엄마 전화 통화하면서 아버님이 엄마 찾으로 갔었어요. 설마 아닐꺼야 하면서도 형님이랑 상의해 요한병원에 진찰 받으러 갈 때 까지만해도 그래 형아 말처럼 누나 말처럼 건망증일꺼야 수술을 해서 완치가능한 혈관성 치매일꺼라고 믿으며 병원을 찾아갔어요. “알츠하이머”라는 의사 진단에도 혹시나 하는 맘에 큰 병원에서 MRI를 찍던날 무서워서 그리고 도망가고 싶어서 파마한다는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의없는 핑계로 병원에 늦게 갔어요. MRI사진을 판독하는 영상기사의 입을 꼬매버리고 싶었어요. 무지한 내가 봐도 문제가 있구나 하면서 알고 있는데 알츠하이머로 거의 확신하는 영상기사 정말 미웠어요. 엄마 병증에 대해서 알아야 순간순간 대처할수 있을꺼 같아서 인터넷으로 같은 병증을 알고 있는 가족들간에 모임으로 증상 및 예후를 알아 가면서 엄마 환갑만 지나시고 가셨으면 하고 빌었어요. 어머니 55세에 병증을 확진하시고 64세에 생을 마감하실때까지 8년여를 고생하셨어요. 주간 병동 다니실 때 다른 환자 가족들이 간식을 넣어 주신다며 나도 했으면 하시면서 어렵게 말씀을 꺼내셨을때 그까짓게 뭐라고 가슴에 담아 두셨구나 하는 생각에.... 간식 들고 찾아 갔더니 에밀리아 수녀님께 우리 딸이라고 인사 시키시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엄마! 이렇게 떠나실꺼 알았다며 회갑생신상 더 신경 써서 차릴걸 하는 후회가 생기네요. 친정엄마가 생신상 사서 하지 말고 정성스럽게 음식 준비해서 하라고 하셔서 잔치음식으로 3~4일간 준비하면서도 내년에도 차려드릴수 있을꺼라고 생각했어요. 주간병동에서 생신상을 준비하고 사람들이랑 웃으며 사진을 찍으시면서도 엄마 자손들을 하나하나 챙기셨지요. 아주버님이 학교 때문에 못왔다고 하니 사람들에게 우리 큰 아들이 교수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시던 모습도 작은 아들은 돈 벌러 가 못왔다고 하니 돈 많이 벌어라고 잘 살아라고 이야기 하시던 모습도 딸도 돈 벌러 가 못 왔다고 하니 돈 많이 벌어라고 그래야 한다고 하신던 모습도 촛불 불면서 너무나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도 정말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생신상 준비하면서 당신이 기억하는 생신상이 몇 번이나 될까 하는 맘에 준비 했던게 마직막 생신상이 될지 몰랐어요. 그 뒤 생신에는 엄마 얼굴만 뵙고 오게 될지 정말 몰랐어요. 정말 죄송해요. 주간병동에서 케어하기 힘들어지셔서 용욱요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결정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엄마 버리는 것 같은 생각에... 죄송해요... 그래도 용욱은 주간병동에서 엄마 모셨던 선생님들이 계셔서 조금이라도 편안하셨다고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자주 못 찾아 뵈서 죄송해요. 올 초에 아프셨을때 많이 힘드시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좀 더 옆에 계셨으면 하는 어리석은 욕심에 또 엄마 가시는 걸음을 다시 한번 잡았습니다. 어리석은 자식의 마음 헤아려 아프신 몸으로 옆에 오랫동안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개똥이 왔다고 하면 눈 마주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식거리 챙겨가서 먹여 드리면 잘 드셔서 감사합니다. 떠나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개똥이 말소리에 눈 맞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종 개똥이가 지킬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개똥이 손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마지막에 깨끗하게 이쁘게 떠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바람처럼 나비처럼 가시고 싶은곳 드시고 싶은 것들 다 보고 느끼세요... 아주 가끔은 바람처럼 개똥이 머리 만져 주심 더 감사하구요. 오빠랑 잘 살께요라는 말은 못하지만 항상 노력하면 생활 하도록 할께요. 오빠랑 친구처럼 그렇게 가끔은 다툼도 하고 투정도 하면서 살겠지만 엄마 걱정하시는 일은 안할께요. 엄마도 하늘에서 부족한 저희들 잘 살아가게 지켜주세요. 다음 생에는 더 많은 사랑을 받으세요. 아기때부터.... 다음 생에는 제 며느리로 좋은 인연을 맺어 이 생에서 받은 사랑 돌려 드릴께요. 하고 싶은말은 너무 많은 데 가슴에 담아두렵니다. 엄마 생각날때마다 하나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어리석은 개똥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 깊이 감사 드립니다. 9월 21일 개똥이 올림. 47
먼길 떠나신 시어머니께 개똥이가.....
엄마~!
엄마 막내 며느리 개똥이 예요.
엄마가 긴 여행을 떠나신지 벌써 6일이 되어가네요.
처음 인사가려고 옷 사고, 선물 사고 했던 때가 생각나요.
무서운 분이면 어떻하나....
나를 밉게 보면 어떻하나...
이런 저런 걱정을 한가득 안고 백운동 집에 찾아 갔었어요.
부모님만 계실꺼라고 생각했었는데
고모님도 오빠 다른 형제 분들도 다 계셔서 많이 당황했어요.
간단하게 차 한잔 준비하셨겠지 했는데...
언제 그렇게 많은 음식을 준비하셨는지.....
당황해서 잘 못먹는 제게 이것도 먹어 봐라 저것도 먹어 봐라 하면서
챙겨 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못난 막내 며느리가 뭐가 그리도 이쁘신지
결혼도 하기 전에 팥죽 만들었다고
곗돈 타서 반지 사주신다고
생각도 잘 안나는 이런 저런거 해주신다고 백운동 집에 참 많이 드나들었네요.
형님네 결혼하시던 날
가족사진 같이 찍어야 한다고 하시던 모습도
떡 잘 먹는다고 형님네 이바지 음식
아버님이랑 함께 파란 트럭타고 용봉동까지 오셨던 모습이 눈앞에 선해요.
결혼식 준비하면서도
너 하고 싶은게 해라 너 좋은 거 해라 젤 좋은 거 해라
하셨던 모습이 생각나요.
본식 드레스 보고 엄마가 너무 이쁘다고 했었는데....
신혼집이 부도나서 한 달여를 함께 살 때도
아침잠 많은 철이 없는 며느리 덕에 항상 아침 챙겨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엄마께서 당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아무도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1달 정도 살고 풍암동으로 분가할 때 김장김치며
조기... 손질을 다해서 구워 먹기만 하면 되게 해주신 조기....
손님 모시면 쓰라고 주신 살림들...
감사해요...
당시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오빠랑 생활을 경제개념이 부족해서 저 밑바닥까지 내려갔을때도
항상 잘한다 잘한다 하셨는데...
엄마 길 잃어버리고 지나가는 사람 통해서
개똥이한테 전화 주셨을때 못가서 죄송해요...
그때는 월급을 받아 생활하던 때라
엄마 전화 통화하면서 아버님이 엄마 찾으로 갔었어요.
설마 아닐꺼야 하면서도
형님이랑 상의해 요한병원에 진찰 받으러 갈 때 까지만해도
그래 형아 말처럼 누나 말처럼 건망증일꺼야
수술을 해서 완치가능한 혈관성 치매일꺼라고
믿으며 병원을 찾아갔어요.
“알츠하이머”라는 의사 진단에도 혹시나 하는 맘에
큰 병원에서 MRI를 찍던날
무서워서 그리고 도망가고 싶어서 파마한다는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의없는 핑계로 병원에 늦게 갔어요.
MRI사진을 판독하는 영상기사의 입을 꼬매버리고 싶었어요.
무지한 내가 봐도 문제가 있구나 하면서 알고 있는데
알츠하이머로 거의 확신하는 영상기사 정말 미웠어요.
엄마 병증에 대해서 알아야
순간순간 대처할수 있을꺼 같아서
인터넷으로 같은 병증을 알고 있는 가족들간에 모임으로
증상 및 예후를 알아 가면서
엄마 환갑만 지나시고 가셨으면 하고 빌었어요.
어머니 55세에 병증을 확진하시고
64세에 생을 마감하실때까지 8년여를 고생하셨어요.
주간 병동 다니실 때 다른 환자 가족들이 간식을 넣어 주신다며
나도 했으면 하시면서 어렵게 말씀을 꺼내셨을때
그까짓게 뭐라고 가슴에 담아 두셨구나 하는 생각에....
간식 들고 찾아 갔더니 에밀리아 수녀님께 우리 딸이라고
인사 시키시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엄마!
이렇게 떠나실꺼 알았다며
회갑생신상 더 신경 써서 차릴걸 하는 후회가 생기네요.
친정엄마가 생신상 사서 하지 말고
정성스럽게 음식 준비해서 하라고 하셔서
잔치음식으로 3~4일간 준비하면서도
내년에도 차려드릴수 있을꺼라고 생각했어요.
주간병동에서 생신상을 준비하고
사람들이랑 웃으며 사진을 찍으시면서도
엄마 자손들을 하나하나 챙기셨지요.
아주버님이 학교 때문에 못왔다고 하니
사람들에게 우리 큰 아들이 교수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시던 모습도
작은 아들은 돈 벌러 가 못왔다고 하니
돈 많이 벌어라고 잘 살아라고 이야기 하시던 모습도
딸도 돈 벌러 가 못 왔다고 하니
돈 많이 벌어라고 그래야 한다고 하신던 모습도
촛불 불면서 너무나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도
정말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생신상 준비하면서 당신이 기억하는
생신상이 몇 번이나 될까 하는 맘에
준비 했던게 마직막 생신상이 될지 몰랐어요.
그 뒤 생신에는 엄마 얼굴만 뵙고 오게 될지 정말 몰랐어요.
정말 죄송해요.
주간병동에서 케어하기 힘들어지셔서
용욱요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결정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엄마 버리는 것 같은 생각에...
죄송해요...
그래도
용욱은 주간병동에서 엄마 모셨던 선생님들이 계셔서
조금이라도 편안하셨다고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자주 못 찾아 뵈서 죄송해요.
올 초에 아프셨을때 많이 힘드시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좀 더 옆에 계셨으면 하는 어리석은 욕심에
또 엄마 가시는 걸음을 다시 한번 잡았습니다.
어리석은 자식의 마음 헤아려
아프신 몸으로 옆에 오랫동안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개똥이 왔다고 하면 눈 마주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식거리 챙겨가서 먹여 드리면 잘 드셔서 감사합니다.
떠나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개똥이 말소리에 눈 맞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종 개똥이가 지킬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개똥이 손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마지막에 깨끗하게 이쁘게 떠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바람처럼 나비처럼 가시고 싶은곳
드시고 싶은 것들 다 보고 느끼세요...
아주 가끔은 바람처럼 개똥이 머리 만져 주심 더 감사하구요.
오빠랑 잘 살께요라는 말은 못하지만
항상 노력하면 생활 하도록 할께요.
오빠랑 친구처럼 그렇게 가끔은 다툼도 하고
투정도 하면서 살겠지만 엄마 걱정하시는 일은 안할께요.
엄마도 하늘에서
부족한 저희들 잘 살아가게 지켜주세요.
다음 생에는 더 많은 사랑을 받으세요.
아기때부터....
다음 생에는 제 며느리로 좋은 인연을 맺어
이 생에서 받은 사랑 돌려 드릴께요.
하고 싶은말은 너무 많은 데 가슴에 담아두렵니다.
엄마 생각날때마다 하나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어리석은 개똥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 깊이 감사 드립니다.
9월 21일 개똥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