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성관계 헛소문 퍼뜨리는 동료 글쓴입니다. 두번째 방탈 죄송합니다.

half2012.09.23
조회337,638

안녕하세요, 지난번 글 쓴 뒤로 시간이 좀 흘렀네요.

우선 오늘도 방탈 죄송합니다.

이번 글은 여기에 올릴지 약간 고민했는데, 후기 꼭 올려달라고 하신 댓글이 생각나서 왔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스크롤 압박이 심할 듯하여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상대방의 자진퇴사로 일이 종료되었습니다.

 

여기 판에다 처음 글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의 조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고소하라는 의견이 많았고, 당시 무척 화가 나 있던 저는 망설임 없이 고소를 결심했었습니다.

친구 어머니께서 사업을 오래 하셔서 법률적인 트러블을 많이 겪어보신 분입니다.

친구에게 연락해서 사정 설명하고 어머니께 민사 쪽으로 상담 가능한 변호사나 법무사 알아봐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라고 부탁했습니다.

 

이틀쯤 후에 친구 어머니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어요.

억울한 심정은 이해하겠지만 일에는 절차가 있는 법이다, 일단 회사 내 상사분들께 도움을 청해라. 그랬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그 때는 전력을 다해 법적으로 도와주겠다.

 

듣고 보니 옳으신 말씀이라 고소는 잠시 보류하고 회사 상사분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저희 회사는 각 실 밑에 파트 단위가 있는지라 직속상사인 파트장님에게 먼저 말씀드리는 게 순서였지만, 파트장님 건너뛰고 실장님께 바로 말씀드렸어요.

파트장님은 왠지 K라는 사원을 감싸주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캡처해 둔 대화로그를 PPT 파일로 만들어 보내드리니 실장님께서 저를 옥상으로 부르셨습니다.

 

"나는 솔직히 그 대화로그를 봤을 때, K가 딱히 성적인 얘기를 했단 느낌은 안 들어. 하지만 대화문의 여러 가지 정황을 봤을 때 K가 잘못한 건 분명하고, 네가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단 생각은 들어."

 

대략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순간 그분께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성인남녀가 진도를 다 나갔다느니, 자취집 비밀번호 누르고 드나든다느니 하는 말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시는 건지, 같은 남자라서 더 관대하게 보시는건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그래서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물으시기에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로 K가 이런 소문에 대한 해명 및 사과하는 글을 전체메일로 돌렸으면 좋겠고 둘째로는 얼굴 안 봤으면 좋겠다, 즉 K가 타 부서로 전배를 가든지 그만두든지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실장님 하시는 말씀이 사과메일을 꼭 보내야겠느냐, 굳이 보내겠다면 파트 내에만 보내고 K얼굴 보는 게 싫다면 네가 전배를 가는 건 어떻겠느냐 하셨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파트에만 알릴 거면 굳이 메일로 쓸 것 없이 "야 이리 모여봐" 해서 말로 해도 될 법한 규모예요. 소문이 어디까지 났는지도 모르는 건데 회사 전체에 메일을 돌려도 부족할 일을 고작 파트라뇨.

 

게다가 전배를 K가 아닌 제가 가게 된다면 남들이 보기에는 여자가 뭔가 잘못했으니까 전배를 보내는구나 싶겠죠. 일반적으로 잘못한 사람이 징계성 전배를 가는 것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메일은 최소한 팀 규모로 돌려야 하고 전배를 간다면 K가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했더니 4자대면(실장님, 파트장님, K, 저)을 해보자 하셨어요.

 

결국 며칠 뒤, 회의실에서 4자대면이 이루어졌습니다.

(왜 며칠 뒤냐면, 그 사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K가 휴가를 다녀왔기 때문이죠. 참 화딱지가 났어요. 저는 누구 때문에 밤잠도 못 자서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약 먹고 간신히 잠드는데 누구는 속 편히 휴가나 다녀오고...)

 

K를 부르기 전에 실장님과 파트장님이 우선 저만 불러놓고 물으셨어요. 혹시 그 사이에 마음이 바뀐 건 없냐, 좀 더 관대하게 넘어갈 생각은 없는지 등등...그런 것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K를 불러 놓고, 실장님이 진행(?)을 하셨습니다. OO씨(제이름)가 이러이러한 얘길 했다. 대화로그는 위/변조하지 않은 이상 사실일 테지만 네 말도 들어봐야 할 것 같아서 불렀다. 소명할 기회를 주는 거니까 얘기해 봐라.

 

실장님께서 이야기를 좀 돌려서(성적인 뉘앙스가 담긴 글을 봤다든가 하는 자세한 내용 없이) 하셨는데, K가 눈을 수차례 껌뻑거리더니 내뱉는 첫마디가 "어디까지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었어요.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어디까지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미안하대요. 상처줄 의도는 절대 없었고, 좋아했던 마음만은 진심이었다고 했습니다.

듣자니 열이 올라서 말을 끊고 직접 물었습니다. 상처줄 의도가 없는데 성적인 내용의 거짓말을 유포하냐, 정상적인 여자라면 그런 헛소문을 듣고 상처를 안 받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한테 선물을 사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 내가 너희집 비밀번호를 아느냐 등등.

 

자세한 내용을 끄집어내서 쏘아붙였더니 그저 미안하다고만 합니다. 참...저도 독한소리 많이 했습니다.

내가 유서에 네 이름 써놓고 자살해 버렸으면 어떡할 거였나, 외동딸이 전화해서 이런 이야길 울면서 할 때 우리 어머니 심정이 어땠겠으며, 귀하게 키운 아들이 이딴 짓이나 하고 다니는 걸 아시면 너희 어머니는 심정이 어떠시겠냐.

 

여하간 긴 이야기가 끝나고 결론이 났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사과메일을 돌리고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모든 게 평화롭게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다음 날,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K의 사과 메일을 검수하러(혹여 딴소리할까봐) 회사에 나온 저는 또다시 실장님께 불려갔습니다. 사과메일 안 쓰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사과메일을 돌리면 괜히 몰랐던 사람들까지 다 알게 되고 제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겠냐고 하셨지만, 저는 왠지 일을 축소하시려는 느낌이 들어서 거절했습니다.

 

더 이상 나빠질 이미지도 없고, 사과메일 이후의 일은 제가 다 감당할 겁니다. K가 오늘 3시까지 회사에 와서 메일을 쓰기로 약속했으니 저는 조금 기다렸다가 3시가 되면 사과메일을 받아낼 겁니다.

 

그러자 실장님 왈, K는 오전에 이미 와서 퇴직원을 내고 갔다. 이대로 사과메일 안 쓰고 잠수탄 거면 어떡할 거냐 하십니다.

어떻게든 받아내겠다고 하니 웃으시며 "그래, 잘 받아내 봐." 하셨습니다.

 

2시 50분이 되었습니다. 파트장님이 저를 회의실로 부르시더니 좀 전에 실장님과 나눈 대화를 반복하셨습니다. 설득하고 설득하고 끝없이 설득하시는 중에 3시가 넘었습니다.

그 때 느낌이 왔어요. 아, 이분들은 3시에 K가 오지 않을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는구나.

 

그분들과 K 사이에 뭔가 있었는지, K가 자체적으로 잠수를 탄 건지 몰라도 파트장님은 K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사과메일은 포기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소하겠다고 했습니다.

"고소를 하면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피해보상금 등등 훨씬 큰 것을 얻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대외적 이미지나 내부적 요인을 생각해서 사과메일로 끝내려는 것 아닙니까. 제가 원하는 최소한의 것이 거부당했으니 저는 제 명예 회복을 위해 고소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라고 했더니 잠시 기다려 보라는 파트장님...잠시 후 K와 연락이 되었다며 5시까지 오겠다는 말을 전해 주셨습니다. 참 신기하기도 하죠. 연락이 안 되던 사람이 고소하겠다니까 갑자기 전화를 받았답니다.

 

3시에 약속했는데 5시에 온 어이없는 K가

"퇴직 문제로 어머니랑 이야기 좀 하느라 늦었어요." 랍니다. 어머니랑 이야기하면 손가락이 부러지는 건지, 그 흔한 카톡 하나 못 남기냐고 따졌지만 그런 건 이미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사과메일을 기다렸습니다.

 

참 성의없게도 인삿말 1줄 포함하여 꼴랑 5줄짜리 메일이 왔지만, 어쨌든 제가 원하는 내용은 간결하게나마 모두 써 놨기에 OK사인을 보냈습니다.

그마저도 '예약발송'하면 안 되겠냐며 사정하더군요. 보내고 나가면서 사람들 얼굴을 못 보겠다나요.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30분 뒤에 메일이 왔고, 그 메일에 전체답장 형태로 저도 회사 분들께 메일 하나 보냈습니다. 앞뒤 사정이 이러이러했습니다, 앞으로 근거없는 헛소문이 안 돌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후로는 보다 진중한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도로요.

 

이렇게 사건은 끝났지만, 아직 후유증은 남아 있습니다.

밤에 잠을 쉽사리 못 드는 거며,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을 못 열게 되네요. 한 번 데이고 나니 어쩔 수가 없나봐요.

정신과 약을 먹으면 잠은 오지만 하루종일 멍하고 기운이 없어서 가급적이면 약의 도움 없이 이겨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K와 친했던 남자 사우분들께서 저와 대화를 안 하시거나, 혹은 OO씨가 어느 정도 오해할 여지를 줬으니까 이런 일이 생겼다고도 하십니다.

가재는 게 편인가도 싶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정말 남자분들과 일정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많은 걸 배우게 된 사건이에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K는 내년 3월에 결혼한다고 하네요.

널 좋아했던 건 진심이었어, 라는 말을 들은 지 하루만에 그 소식을 접했더니 참...축하한다는 말이 안 나오더군요.

 

부산 모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ㅎㄴ씨. 내 욕을 아주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이 글을 그쪽이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쪽 오빠가 충청도 지역에서 회사 다니다 그만뒀고 바둑을 아주 잘 두는 사람이라면 이 글이 그쪽 얘기라는 걸 깨닫기 바랍니다.

본인 오빠가 웬 여우같은 X한테 걸려 헬렐레 하는 꼴 보기 싫어서 소개팅까지 주선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소개팅한 여자분은 별 되어먹지 못한 거짓말쟁이한테 시집가시게 됐네요.

K와 결혼할 그 여자분께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보냅니다.

 

다시 한 번 이 글을 통해 여러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PPT 증거자료 만들 수 있게 자료 제공해준 L씨, 어른으로서 진지한 조언 해주신 친구 어머니, 뭐 그런 나쁜놈이 다 있냐며 고소할 때 진단서 필요하면 꼭 오라고 하신 정신과 원장님, 곁에서 위로해 준 친구들, 동료분들, 이전 글에 댓글 달아주신 네티즌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방탈해서 죄송합니다.

이후 여기에 글을 쓸 일이 없을 거예요. 쓴다면 결혼에 관련된 좋은 소식, 행복한 이야기를 쓰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모두 행복한 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