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톡커님들ㅎㅎ 저는 19살 수줍은 고3입니다 먼저 이렇게 글을 쓰기 앞서 방탈(이라고 해야하겠죠?)을 하게되어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뭐 100% 방탈은 아닙니다만.... 당사자가 아닌 딸의 입장에서 쓰는 글이므로 방탈이란 단어가 애매하네요...ㅎㅎ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제 엄마, 그리고 전국의 모든 어머님들의 추석준비가 좀 더 공평해지길 바라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장남(우리 아빠)의 첫째 딸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자랐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진 주로 할머니 집에서 자라왔습니다. 때문에 엄마보다도 할머니 품이 더 익숙했어죠. 게다가 가장 나이차이가 적은 사촌동생만해도 5살 차이가나니..ㅎㅎ 얼마나 제가 예쁨 받아왔는지는 상상이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제게 정말 최고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최고고요 하지만 제 엄마의 시어머니로써는 정말 최악입니다. 제가 봐도 소름끼칠 정도로요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제 큰삼촌(큰아버지,둘째)이 숙모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떄 집안의 반대가 굉장하셨다고 합니다. 이를 무릎쓰고 결혼한 숙모는 시집살이가 장난이 아니었죠 이때까지만해도 우리 엄마는 나름 시월드를 겪지 않으셨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며느리 중 제 엄마를 가장 좋아하셨을 정도니까요 할머니께선 정말 큰숙모를 싫어하셨습니다. 늘 제 엄마 옆에서 숙모 욕만 해대셨으니까요 (저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네요....) 그러던 어느날 부터 엄마의 시월드가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숙모와 할머니가 한 패가 된거죠. (숙모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전 당신이 정말 싫습니다.) 이때까진 저도 어려서(초딩부터 중1) 그냥 엄마의 한탄을 그려려니 했습니다. 이해하지 못햇죠. 그때까진 할머니가 좋았으니까요 그러던중 2008년 10월 31일 (저 중2) 정정하시더 할아버지께서 대장암 말기판정을 받은지 얼마 안되어 곧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자꾸만 두통을 호소하던 엄마(할아버지 병간호 할때에도 자주 아프다 하셨습니다.)가 뇌암 초기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화순 암센터에서 뇌암수술을 받고 2달간의 휴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학 집에온 날. 할머니께서 아빠를 불러내어 외식을 하고오셨습니다^^ 우리 엄마는요? 죽 한번 안해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로지 첫째 아들에게 맛있는거 사주기 바쁘셨으니까요 네네 이해합니다 그나마 번듯하 직업가지고 오라고 하면 어제든지 튀어나갈 준비가 되있는 아들은 우리 아빠 하나니까요. 남은 아들 둘? 엿이나 먹으라죠. 일은 여기서 그치치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길하나 건너 사시는데 두 분이 노는 노인정이 같은 곳입니다. 외할머니 성격이 정말 무뚝뚝 하신데다 표현을 잘 안하시는데 할머니께서 엄마에게 또 무슨 속상한 일이 있으신건지 아니면 숙모랑 쑥덕쑥덕 하신건지 외할머니를 왕따 시키셨습니다. 그 늙은 나이에 외할머니는 한순간에 왕따가 되고 어르신들 사이에선 제 부모님의 이혼이야기가 오르락 내리락했습니다. (제 외할머니가 말한거라고 소문이 났더군요) 이를 계기로 할머니는 왜 내 아들이 이런 구설수에 올라야 하는가에 대해 엄마를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화가난 엄마는 아빠와의 마찰이 심해졌고 제가 중3이 되던 2009년까지 이혼이야기로 정말,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365일 내내 싸우셨습니다. 피폐해진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저와 제 어린동생은 모든게 무섭기만 했습니다. 이 떄에도 숙모와 할머니의 입바람은 쌨습니다. 뒤에서 엄마의 욕을 어찌나해대셨던지..ㅎㅎ 숙모뿐만 아니라 큰삼촌과 막내삼촌까지.... 엄마를 정말 물로보시덥니다. 예를 들자면 명절에 찾아가면 제 엄마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툭하면 형수님이 잘못하신거잖아요 아 왜요 등등.... 정말 제겐 더없이 좋으신 분들이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속상했습니다. 위계질서... 어느정돈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또다시 전쟁은 시작됩니다. 당신 동생들이 이렇게 못되게 구는데 도대체 당신은 뭐하냐.... 형으로써 따끔하게 한마디 못해주냐 마누라가 이렇게 당하는데 뭐냐... 네, 우리아빠. 제가 봐도 순해빠졌습니다. 할머니가 아무래도 당신 엄마라고 감싸주는건지... 저도 아빠에게 한소리 합니다. 왜 형으로써 그런 말 못하냐고... 하지만 아무말 없으십니다. 이럴수록 할머니 삼촌들 큰숙모... 거기에 정신병을 앓는 고모까지 가족이 다 함께 모일때면 저도 가시방석에 앉는 기분인데 엄마는 오죽했을까요 명절 음식 만들어 놓으면 몰래 다 가져가버리는 큰숙모. 같이 음식 먹을 떄에도 제 아들들만 챙기고 며느리들 일할때도 혼자 쏙 빠져나와 밥먹고.. 이제 할머니가 늙고 힘이 없어지니 뭐라고 하나 물 심정으로 숙모를 잡은 것 같은데 좋으신가요 큰숙모? 제 기억에도 당신은 정말 살림 꽝이었습니다. 자신 좋은 옷 열벌 살때 아들 옷한벌 사주는게 그렇게 힘들던가요? 삼촌하고 이혼한다고 난리칠때 그냥 나갔으면 좋았을 것을.... 늘 우리집 와서 다 깽판치고. 우리집이 댁들 상담소입니까 술집입니까 그리고 이 모든일의 시발점인 할머니. 오죽하셨으면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엄마더라 당신이 무섭다고 하셨을까요... 엄마는 지금 또 폐가 안좋아 광주에서 서울까지 치료하러 다니십니다. 입원해야했는데 시기를 놓치신 탓이죠. 맘고생이 심할수록 엄마는 몸은 물론 정신까지 무너져 가고있어요/ 할머니와 동생들을 막지 못한 아빠, 그 무엇보다 이 며느리 저 며느리 붙어다니며 이간질 시키는 할머니. 올해도 또 얼마나 우리 집에서 명절을 위해 돈을 써야하고 엄마의 노동을 받쳐야할까요 또 엄마가 병원에서 일하다보니 이 약 받아와라 저 약 받아와라... 한 봉지에 3만원을 호가하는 약값을 대부분 엄마의 사비에서 지불합니다. 엄마 병원비 생활비 학원비.... 특히 예체능을 하는 제게 엄청난 돈이 들어가다보니 더 휘어질대로 휘어지는 통장. 마이너스 통장갯수 세는게 가까스로 마이너스까지 내려오지 않은 통장보다 훨씬 많습니다. 할 말이 너무나 많지만 이쯤에서 줄여야겠습니다..ㅎㅎ 다시 읽어보니 굉장히 어수선하네요.. 사실 할머니 얘기에 다른 내용들이 섞여버리긴 했지만... 어쨋거나 할머니거 문제의 원인이 된거니까요. 제게있어 최고의 할머니, 하지만 시어머니로써는 최악. 요즘은 잘하지만 한땐 자식도 실망시킨 아빠 몇일 전에서야 비로소 조금씩 할머니의 세뇌교육에서 빠져나와 우리 엄마를 새롭게 본 막내삼촌. 아직도 막말하는 큰삼촌과 당신의 아내, 문제의 큰숙모 모른척 다 아는 막내숙모. 정신나간 고모까지 얼마나 큰며느리를 피폐하게만들어야 정신차릴까요. 올 추석엔 엄마가 큰며느리라는 짐을 벗고 조금이라도 편했으면 좋겠습니다. 톡커님들, 저는 이 글이 톡이 될 경우 아빠께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얼마나 엄마가 힘들었는지 독한약을 먹고 50 다 되도록 젊은 의사들 밑에서 고개 조여려야하는, 또 어디가 어떻게 아플지 몰라 하루하루가 힘든 이 상황을 아빠의 관점(할머니의 아들)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올 추석엔 엄마가 좀 더 합당한 대우를 받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숙모. 저는 숙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요. 저는 나이를 먹을 때마다 숙모가 소름끼쳐요. 시댁과 마찰이 있던날이면 내게 모든걸 내려놓고 싶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내게 이런 모습을 보여 미안한 엄마의 모습을 당신을 알까요? 나는 할머니 아래서 할머니를 지지해주는 당신의 그 못되먹은 성질이 찢어버리도록 싫습니다. 숙모도 이 판을 봤으면 좋겠네요. 내가 당신을 얼만나 혐호하고 당신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길 글 읽어주신 톡커님들 감사하고 부디 톡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감사하고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맞춤법은.... 애교로...헤헤 6
(애매한 방탈)할머니! 이젠 그만하세요, 좀! 최고의 할머니? 최악의 시어머니!
안녕하세요 톡커님들ㅎㅎ
저는 19살 수줍은 고3입니다
먼저 이렇게 글을 쓰기 앞서 방탈(이라고 해야하겠죠?)을 하게되어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뭐 100% 방탈은 아닙니다만.... 당사자가 아닌 딸의 입장에서 쓰는 글이므로
방탈이란 단어가 애매하네요...ㅎㅎ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제 엄마, 그리고 전국의 모든 어머님들의 추석준비가 좀 더 공평해지길 바라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장남(우리 아빠)의 첫째 딸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자랐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진 주로 할머니 집에서 자라왔습니다.
때문에 엄마보다도 할머니 품이 더 익숙했어죠.
게다가 가장 나이차이가 적은 사촌동생만해도 5살 차이가나니..ㅎㅎ
얼마나 제가 예쁨 받아왔는지는 상상이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제게 정말 최고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최고고요
하지만 제 엄마의 시어머니로써는 정말 최악입니다. 제가 봐도 소름끼칠 정도로요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제 큰삼촌(큰아버지,둘째)이 숙모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떄 집안의 반대가 굉장하셨다고 합니다.
이를 무릎쓰고 결혼한 숙모는 시집살이가 장난이 아니었죠
이때까지만해도 우리 엄마는 나름 시월드를 겪지 않으셨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며느리 중 제 엄마를 가장 좋아하셨을 정도니까요
할머니께선 정말 큰숙모를 싫어하셨습니다.
늘 제 엄마 옆에서 숙모 욕만 해대셨으니까요 (저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네요....)
그러던 어느날 부터 엄마의 시월드가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숙모와 할머니가 한 패가 된거죠. (숙모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전 당신이 정말 싫습니다.)
이때까진 저도 어려서(초딩부터 중1) 그냥 엄마의 한탄을 그려려니 했습니다.
이해하지 못햇죠.
그때까진 할머니가 좋았으니까요
그러던중 2008년 10월 31일 (저 중2)
정정하시더 할아버지께서 대장암 말기판정을 받은지 얼마 안되어 곧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자꾸만 두통을 호소하던 엄마(할아버지 병간호 할때에도 자주 아프다 하셨습니다.)가
뇌암 초기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화순 암센터에서 뇌암수술을 받고 2달간의 휴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학 집에온 날. 할머니께서 아빠를 불러내어
외식을 하고오셨습니다^^ 우리 엄마는요? 죽 한번 안해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로지 첫째 아들에게 맛있는거 사주기 바쁘셨으니까요
네네 이해합니다 그나마 번듯하 직업가지고 오라고 하면 어제든지 튀어나갈 준비가 되있는 아들은
우리 아빠 하나니까요. 남은 아들 둘? 엿이나 먹으라죠.
일은 여기서 그치치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길하나 건너 사시는데 두 분이 노는 노인정이 같은 곳입니다.
외할머니 성격이 정말 무뚝뚝 하신데다 표현을 잘 안하시는데
할머니께서 엄마에게 또 무슨 속상한 일이 있으신건지 아니면 숙모랑 쑥덕쑥덕 하신건지
외할머니를 왕따 시키셨습니다.
그 늙은 나이에 외할머니는 한순간에 왕따가 되고 어르신들 사이에선
제 부모님의 이혼이야기가 오르락 내리락했습니다. (제 외할머니가 말한거라고 소문이 났더군요)
이를 계기로 할머니는 왜 내 아들이 이런 구설수에 올라야 하는가에 대해
엄마를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화가난 엄마는 아빠와의 마찰이 심해졌고 제가 중3이 되던 2009년까지 이혼이야기로
정말,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365일 내내 싸우셨습니다.
피폐해진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저와 제 어린동생은 모든게 무섭기만 했습니다.
이 떄에도 숙모와 할머니의 입바람은 쌨습니다.
뒤에서 엄마의 욕을 어찌나해대셨던지..ㅎㅎ
숙모뿐만 아니라 큰삼촌과 막내삼촌까지.... 엄마를 정말 물로보시덥니다.
예를 들자면 명절에 찾아가면 제 엄마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툭하면 형수님이 잘못하신거잖아요 아 왜요 등등.... 정말 제겐 더없이 좋으신 분들이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속상했습니다. 위계질서... 어느정돈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또다시 전쟁은 시작됩니다.
당신 동생들이 이렇게 못되게 구는데 도대체 당신은 뭐하냐.... 형으로써 따끔하게 한마디 못해주냐
마누라가 이렇게 당하는데 뭐냐...
네, 우리아빠. 제가 봐도 순해빠졌습니다. 할머니가 아무래도 당신 엄마라고 감싸주는건지...
저도 아빠에게 한소리 합니다. 왜 형으로써 그런 말 못하냐고...
하지만 아무말 없으십니다.
이럴수록 할머니 삼촌들 큰숙모... 거기에 정신병을 앓는 고모까지
가족이 다 함께 모일때면 저도 가시방석에 앉는 기분인데
엄마는 오죽했을까요
명절 음식 만들어 놓으면 몰래 다 가져가버리는 큰숙모.
같이 음식 먹을 떄에도 제 아들들만 챙기고 며느리들 일할때도 혼자 쏙 빠져나와 밥먹고..
이제 할머니가 늙고 힘이 없어지니 뭐라고 하나 물 심정으로 숙모를 잡은 것 같은데
좋으신가요 큰숙모? 제 기억에도 당신은 정말 살림 꽝이었습니다.
자신 좋은 옷 열벌 살때 아들 옷한벌 사주는게 그렇게 힘들던가요?
삼촌하고 이혼한다고 난리칠때 그냥 나갔으면 좋았을 것을....
늘 우리집 와서 다 깽판치고. 우리집이 댁들 상담소입니까 술집입니까
그리고 이 모든일의 시발점인 할머니.
오죽하셨으면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엄마더라 당신이 무섭다고 하셨을까요...
엄마는 지금 또 폐가 안좋아 광주에서 서울까지 치료하러 다니십니다.
입원해야했는데 시기를 놓치신 탓이죠.
맘고생이 심할수록 엄마는 몸은 물론 정신까지 무너져 가고있어요/
할머니와 동생들을 막지 못한 아빠, 그 무엇보다 이 며느리 저 며느리 붙어다니며
이간질 시키는 할머니.
올해도 또 얼마나 우리 집에서 명절을 위해 돈을 써야하고 엄마의 노동을 받쳐야할까요
또 엄마가 병원에서 일하다보니 이 약 받아와라 저 약 받아와라...
한 봉지에 3만원을 호가하는 약값을 대부분 엄마의 사비에서 지불합니다.
엄마 병원비 생활비 학원비.... 특히 예체능을 하는 제게 엄청난 돈이 들어가다보니
더 휘어질대로 휘어지는 통장. 마이너스 통장갯수 세는게 가까스로 마이너스까지 내려오지 않은
통장보다 훨씬 많습니다.
할 말이 너무나 많지만 이쯤에서 줄여야겠습니다..ㅎㅎ
다시 읽어보니 굉장히 어수선하네요..
사실 할머니 얘기에 다른 내용들이 섞여버리긴 했지만...
어쨋거나 할머니거 문제의 원인이 된거니까요.
제게있어 최고의 할머니, 하지만 시어머니로써는 최악.
요즘은 잘하지만 한땐 자식도 실망시킨 아빠
몇일 전에서야 비로소 조금씩 할머니의 세뇌교육에서 빠져나와
우리 엄마를 새롭게 본 막내삼촌.
아직도 막말하는 큰삼촌과 당신의 아내, 문제의 큰숙모
모른척 다 아는 막내숙모.
정신나간 고모까지
얼마나 큰며느리를 피폐하게만들어야 정신차릴까요.
올 추석엔 엄마가 큰며느리라는 짐을 벗고 조금이라도 편했으면 좋겠습니다.
톡커님들, 저는 이 글이 톡이 될 경우 아빠께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얼마나 엄마가 힘들었는지
독한약을 먹고 50 다 되도록 젊은 의사들 밑에서 고개 조여려야하는,
또 어디가 어떻게 아플지 몰라 하루하루가 힘든 이 상황을
아빠의 관점(할머니의 아들)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올 추석엔 엄마가 좀 더 합당한 대우를 받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숙모.
저는 숙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요.
저는 나이를 먹을 때마다 숙모가 소름끼쳐요.
시댁과 마찰이 있던날이면 내게 모든걸 내려놓고 싶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내게 이런 모습을 보여 미안한 엄마의 모습을 당신을 알까요?
나는 할머니 아래서 할머니를 지지해주는 당신의 그 못되먹은 성질이
찢어버리도록 싫습니다.
숙모도 이 판을 봤으면 좋겠네요. 내가 당신을 얼만나 혐호하고 당신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길 글 읽어주신 톡커님들 감사하고 부디 톡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감사하고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맞춤법은.... 애교로...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