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오늘은

개굴이20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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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충청남도 천안군 병천면 용두리 지령마을에서 유중권의 딸로 태어남. 1905 2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됨. 1910 7 한일합방조약이 조인됨. 1911 8 아버지가 천원에 흥호 학교를 세움. 1915 12 아버지가 일본인 고마다에게 매를 맞고 자리에 누움. 1916 13 선교사 부인의 도움으로 사촌언니 애다가 다니는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입학함.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주위의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줌.

1918 15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이 되어 ‘잔 다르크’, ‘나이팅게일’ 전기를 읽고 크게 감명받음. 1919 16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남. 31독립 운동이 일어남.

국현숙, 김희자, 유점선 등 5명과 함께 31운동에 참가하여 시위함.

3월 3일 조선총독부에서 휴교령을 내려 고향으로 돌아감.

천안, 청주, 공주, 조치원, 진천 등지를 돌아다니며 만세운동 참가를 권유함.

음력 2월 그믐달, 매봉산에 올라가 만세 운동을 알리는 횃불을 밝힘.

1919 16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 부모가 일본헌병의 총탄에 사망.

헌병대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함. 공주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음.

나이가 어리다는 점을 들어 석방시키라는 여론이 빗발침.

만세를 부르지 않으면 석방시키겠다는 재판장의 말을 듣고 격분함.

법정모독죄로 4년의 형이 추가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형무소에 갇힘.

감방 안에서 만세소동을 일으켜 독방에 갇힘.

심한 고문으로 병들었으나, 함께 고생하는 동지들을 도와주고 격려함.

1920 17 음력 3월 1일 낮 12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다 간수들에게 고문당함.

고문으로 병이 심해져 병자가 있는 감방으로 옮겨짐.

10월 12일 아침, 병든 몸을 일으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세상을 떠남.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 - 1920년 9월 28일

 

18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학교 고등과 1년생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1일 아오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헌병에 의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살 당하고

유관순은 주모자로 잡혀 고된고문을 받았지만 끝내 굴하지 않았다.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으나 이에 불복,

 

항소하여 경성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제의 한국침략을 규탄, 항의하고,

일제법률에 의하여 일제법관에게 재판받음이 부당함을 역설하다가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흥. 충청남도 천안출신.

아버지는 중권, 어머니는 이씨이며, 5남매 중 둘째 딸.

 

 

 

 

 

유관순 열사님께서 순국하신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