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국제결혼의 문제성을 말하기 말하기 위하여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글솜씨가 부족하고 몹시 화가나서 흥분된 상태라 글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이해바랍니다. 우선 저는 3년전 국제결혼으로 베트남여자와 결혼을 한 저의 외삼촌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외삼촌은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다가 외할머니께선 혼자로 계속지낼 삼촌이 걱정되어 국제결혼을 선택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없으며 농촌으로 시집을 오려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기에 결혼을 하기위해선 불가피하게 많은 농어촌 남자들은 국제결혼을 선택하게 됩니다. 여하튼 외삼촌은 그렇게 베트남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초기에는 굉장히 착했으며 싹싹하기도 했습니다.(지금 생각으로 연기였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일가친척들도 그여자에게 매우 잘해주었고 특히 저희 가족은 외갓댁에 갈때 마다 그 여자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잔뜩싸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 저희가족은 엄청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할머니와 삼촌께선 울면서 눈물로 저희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많이 사례가 있으므로 차례차례 얘기하겠습니다.
첫번째. 그 여자는 애기를 본다는 이유로 농사일을 전혀돕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날 공장에가서 돈을 벌겠다고 했다는 군요. 할머니께선 애기들 때문에 말렸지만 본인은 끝까지 가겠다고 하여 가게되었고 그 때문에 할머니는 농사일을 끝마치고 와서도 아기들 돌보는데 기력을 다해 매번 지쳐 잠드셨습니다. 반면 그 여자는 공장일이 끝나고도 읍내에 나가 같은 베트남친구들과 놀고 먹고 옷사는데 바빠 집에도 곧바로 오지않았으며 월급탄돈은 모조리 자신의 친가로 보내거나 자기 치장하는 옷가지와 악세사리, 먹을거 사는데만 쓰곤 했습니다. 엄마라면 아기들 간식이나 우유를 사거나 하다못해 양말한쪽이라도 살텐데 그여자는 오직 자기 자신것만 사기 바빴습니다. 삼촌이 화가나서 너도 아기우유 좀 사라고 말을 하니 그건 남자들이 사는 거라며 말했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습니다.
두번째. 이번 태풍올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날도 역시 귀가가 늦어 화가나신 할머니께서는 대문앞에서 그여자를 기다렸고 한참이나 후에야 오던
그 여자에게 할머니는 공장일 다니면서 아기도 못돌볼거면 다만 20만원이라도 집에 보태라고 했더니 그 여자는 그럼 자기가 애를 돌볼태니 한달에 50만원을 달라고 했답니다.
자기애 자기가 돌보는데 돈달라는 심리는 뭡니까? 할머니는 화가나셔서 그럼 집에라도 곧장들어오고 그만 좀 돌아다니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 여자는 엄마는(저희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릅니다) 늙었으면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며 저희 할머니를 밀어버려습니다. 그 때문에 저희 할머니는 아직까지도 팔과 어깨에 멍 투성이 입니다.
세번째. 이번 추석때 얘깁니다. 그 얘기를 모두 전해들은 저희 일가친척들은 그여자에게 싸늘하게 대하였고 그여자 또한 방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추석 다음날 아침일찍 할아버지 산소에 갔고 가기전까지도 그여자는 방에서 나오지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녀오고 보니 그여자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사과랑 배 그리고 고기를 싸들고 자기 베트남 친구동네에 놀러갔다고 동네분들이 얘기하였습니다. 더욱 기가 찬건 그여자는 저희 친척들이 보기싫어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화장실도 가지않고 아기 기저귀에다가 오줌을 싸서 방안에 널부려뜨려 놓았습니다.
최소한 부끄럼이라도 있으면 나갈때 치우고 가야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커녕 보란듯이 널부려뜨러 놓고 할머니께서 한숨을 쉬시며 그것을 치우셨습니다.
아주 배변훈련 잘된 똥개같습니다.
네번째. 삼촌께 장을 본다고 카드를 받아갔습니다. 장은 커녕 양파한쪽 사지않고 그여자가 직행한곳은 금은방 .. 80만원 짜리 팔찌를 사서 밤늦게 집에 오지않았습니다. 다행히 소식을 들은 친척들께서 여자를 찾아 금은방으로 가서 환불 조치를 하긴 했습니다.. 이 여자 정말 생각이 있긴 한걸까요 ..
이 외에도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혹시나 추가 글을 원하시면 그때 더 적겠습니다. 지금 농촌에서는 국제결혼이 5명중3명꼴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희집 사정뿐만 아니라 딴 집 얘기를 들어봐도 말 못할 정도로 기가차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이런 여자들은 먼저 한국으로 시집올때 목표가 있다고 합니다. 처음 1~2년은 착하게 살다가 돈을 자기가 어떻게든 모아서 자신의 나라에 집을 짓는게 첫번째 목표입니다. 집이 지어지고 나면 한국남자를 못살게 괴롭혀 이혼 하자는 소리를 얻어내여 위자료를 뜯어낸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는게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순박하고 착하기 짝이 없는 농촌남자들은 그렇게 말도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당하고만 있는겁니다.
저희가족도 이번사건으로 인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 아직 아기들도 2살3살이라 엄마품이 그리워할 아이들입니다. 그렇기에 함부로 내쫓지도 못하고 지금 속수무책입니다. 아직까진 국제결혼을 활성화 하기 위해 이런걸로 법적으로 한다고 해도 그 여자편을 들어줄 확률이 높다고 하네요 .. 법적 부분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 저희 할머니 삼촌 이러다가 정말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두렵습니다. 할머니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웁니다 행여 삼촌이 들을까 창고안에 웅크려 숨죽이고 우십니다. 저희 삼촌.. 할머니께 우는모습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건너편 동네 나무밑까지 가서 눈물을 흘리고 돌아옵니다 ...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나시는분 아무거라도 좋습니다 .. 조금만 조언 좀 해주십시요...
농촌사람들의 국제결혼 그현실과 비참함 도와주세요 ...
안녕하세요.
제목 그대로 국제결혼의 문제성을 말하기 말하기 위하여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글솜씨가 부족하고 몹시 화가나서 흥분된 상태라 글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이해바랍니다.
우선 저는 3년전 국제결혼으로 베트남여자와 결혼을 한 저의 외삼촌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외삼촌은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다가 외할머니께선 혼자로 계속지낼 삼촌이 걱정되어 국제결혼을 선택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없으며 농촌으로 시집을 오려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기에 결혼을 하기위해선 불가피하게 많은 농어촌 남자들은 국제결혼을 선택하게 됩니다.
여하튼 외삼촌은 그렇게 베트남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초기에는 굉장히 착했으며 싹싹하기도 했습니다.(지금 생각으로 연기였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일가친척들도 그여자에게 매우 잘해주었고 특히 저희 가족은 외갓댁에 갈때 마다 그 여자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잔뜩싸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 저희가족은 엄청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할머니와 삼촌께선 울면서 눈물로 저희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많이 사례가 있으므로 차례차례 얘기하겠습니다.
첫번째. 그 여자는 애기를 본다는 이유로 농사일을 전혀돕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날 공장에가서 돈을 벌겠다고 했다는 군요.
할머니께선 애기들 때문에 말렸지만 본인은 끝까지 가겠다고 하여 가게되었고 그 때문에 할머니는 농사일을 끝마치고 와서도 아기들 돌보는데 기력을 다해 매번 지쳐 잠드셨습니다.
반면 그 여자는 공장일이 끝나고도 읍내에 나가 같은 베트남친구들과 놀고 먹고 옷사는데 바빠 집에도 곧바로 오지않았으며 월급탄돈은 모조리 자신의 친가로 보내거나 자기 치장하는 옷가지와 악세사리, 먹을거 사는데만 쓰곤 했습니다.
엄마라면 아기들 간식이나 우유를 사거나 하다못해 양말한쪽이라도 살텐데 그여자는 오직 자기 자신것만 사기 바빴습니다.
삼촌이 화가나서 너도 아기우유 좀 사라고 말을 하니 그건 남자들이 사는 거라며 말했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습니다.
두번째. 이번 태풍올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날도 역시 귀가가 늦어 화가나신 할머니께서는 대문앞에서 그여자를 기다렸고 한참이나 후에야 오던
그 여자에게 할머니는 공장일 다니면서 아기도 못돌볼거면 다만 20만원이라도 집에 보태라고 했더니
그 여자는 그럼 자기가 애를 돌볼태니 한달에 50만원을 달라고 했답니다.
자기애 자기가 돌보는데 돈달라는 심리는 뭡니까?
할머니는 화가나셔서 그럼 집에라도 곧장들어오고 그만 좀 돌아다니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 여자는
엄마는(저희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릅니다) 늙었으면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며 저희 할머니를 밀어버려습니다.
그 때문에 저희 할머니는 아직까지도 팔과 어깨에 멍 투성이 입니다.
세번째. 이번 추석때 얘깁니다.
그 얘기를 모두 전해들은 저희 일가친척들은 그여자에게 싸늘하게 대하였고 그여자 또한 방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추석 다음날 아침일찍 할아버지 산소에 갔고 가기전까지도 그여자는 방에서 나오지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녀오고 보니 그여자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사과랑 배 그리고 고기를 싸들고 자기 베트남 친구동네에 놀러갔다고 동네분들이 얘기하였습니다.
더욱 기가 찬건 그여자는 저희 친척들이 보기싫어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화장실도 가지않고 아기 기저귀에다가 오줌을 싸서 방안에 널부려뜨려 놓았습니다.
최소한 부끄럼이라도 있으면 나갈때 치우고 가야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커녕 보란듯이 널부려뜨러 놓고 할머니께서 한숨을 쉬시며 그것을 치우셨습니다.
아주 배변훈련 잘된 똥개같습니다.
네번째. 삼촌께 장을 본다고 카드를 받아갔습니다.
장은 커녕 양파한쪽 사지않고 그여자가 직행한곳은 금은방 ..
80만원 짜리 팔찌를 사서 밤늦게 집에 오지않았습니다.
다행히 소식을 들은 친척들께서 여자를 찾아 금은방으로 가서 환불 조치를 하긴 했습니다..
이 여자 정말 생각이 있긴 한걸까요 ..
이 외에도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혹시나 추가 글을 원하시면 그때 더 적겠습니다.
지금 농촌에서는 국제결혼이 5명중3명꼴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희집 사정뿐만 아니라 딴 집 얘기를 들어봐도 말 못할 정도로 기가차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이런 여자들은 먼저 한국으로 시집올때 목표가 있다고 합니다.
처음 1~2년은 착하게 살다가 돈을 자기가 어떻게든 모아서 자신의 나라에 집을 짓는게 첫번째 목표입니다.
집이 지어지고 나면 한국남자를 못살게 괴롭혀 이혼 하자는 소리를 얻어내여 위자료를 뜯어낸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는게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순박하고 착하기 짝이 없는 농촌남자들은 그렇게 말도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당하고만 있는겁니다.
저희가족도 이번사건으로 인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 아직 아기들도 2살3살이라 엄마품이 그리워할 아이들입니다.
그렇기에 함부로 내쫓지도 못하고 지금 속수무책입니다.
아직까진 국제결혼을 활성화 하기 위해 이런걸로 법적으로 한다고 해도 그 여자편을 들어줄 확률이 높다고 하네요 ..
법적 부분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 저희 할머니 삼촌 이러다가 정말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두렵습니다.
할머니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웁니다 행여 삼촌이 들을까 창고안에 웅크려 숨죽이고 우십니다.
저희 삼촌.. 할머니께 우는모습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건너편 동네 나무밑까지 가서 눈물을 흘리고 돌아옵니다 ...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나시는분 아무거라도 좋습니다 ..
조금만 조언 좀 해주십시요...
뒤죽박죽인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