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보내는 긴 편지. 미안, 근데 나 너무 힘들었었어.

등신의왕201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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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나?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날.

식사, 술, 커피, 노래방… 무슨 풀코스로 놀았었잖아.

누가 소개팅에서 그렇게 풀코스로 노냐며 내 친구들이 놀리기도 했었어. 




두번째 만났던 날, 그떄 되게 추웠지. 

그날 오빠가 장갑 끼라며 장갑 줬었잖아.

그날도 1시엔가 헤어져서 택시타고 가는데, 오빠가 가는 택시 붙잡아서 끝까지 나한테 그랬지

연락 꼭 하라고. 문자 꼭 하라고. 

그 때, 오빠 되게 귀여웠었어. 




세번째 만난 날, 오빠가 돈없다고, 보고 싶은데 돈 없다고 그래서 

나 돈있으니까 됐다고 불러서 오빠랑 치킨이랑 맥주 먹었지. 

그리고 나 집에 가는 길에 오빠 친구분 만나서 나 여자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아니 벌써???? 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난 그냥 마냥 즐거웠어. 

위트 넘치고, 유머러스하고,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서 멋져보였거든. 





나한테서 애기 냄새 난다고, 애기라고 부르고.

난 보수적이야! 라면서 길에선 손 이상의 스킨십 절대 안하고. 

뭔가에 열중하면 혀 내미는 버릇.

무안하면 으하하하하 웃으며 맞다고 말하고.

가끔 과장되게 반응해서 나마저 헛웃음 나게 하고. 

술 좋아하고 사람좋아해서 매일 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학교는 학교, 친목은 친목 다 확실하게 하는 모습들이 

나는 그냥 다 좋았었어. 

원래 나도 연락 자주 안하고 사생활 간섭 싫어하니까, 연락 자주 안하는거.

그거 정말 다 괜찮았어. 

학교다 뭐다 바빠서 그러는 거. 진짜 다 괜찮았었어. 




근데 오빠, 시작은 그거 였던 거 같아.

우리 어디 멀리 놀러간 적 있었나? 

오빠 바쁘다고 해서 나 매번 1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 오빠 집 매번 갔었지. 

1년동안 사귀면서 나 오빠랑 시내에서 논 기억, 딱 한번 뿐인거 같아. 

그거 말고는 오빠 학교 근처 맥주집, 오빠 학교 근처 밥집, 오빠 집. 

아 밖에서 먹으면 돈 많이 쓰니까, 라고 해서 우리 무조건 50대50 아니면 내가 쏘는 거. 

그래서 내가 졸랐잖아, 우리 시내 좀 나가자고. 내가 쏠테니까 가자고. 

그럴 떄 마다 오빠 대답은 '귀찮아' '피곤해' '힘들어'. 

그래, 내가 바보 멍청이라 오빠 보고싶은 마음에 갔던 거였고 

자취하느라 고생 많겠구나 싶어서 반찬도 해다가 주고 그랬나보다. 



사실 이것도 괜찮았어, 참을만 했어.

만나면 정말 재밌었고, 시시껄렁 농담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얘기 할 수 있는게,

그런 말 통하는게 난 너무 좋았어. 

나랑 오빠 전공이 다르니까 그런 의견 공유하는 것도 배우는 거니까 너무 좋았지. 

주관 뚜렷한게 보여서 아 역시 내남자 멋있네 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내가 속상했던 거, 이제 말해줄게. 

오빠 집에 갔는데 게임을 하고 있더라. 뭔진 모르겠는데 아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 해서 

오빤 게임하고, 나는 오빠 집에 있는 책 읽다가 그대로 잠들었어. 

중간 중간에 시계 안보고 깨서 보면 그모습 그대로 게임하고 있길래, 

나도 학교 다니느라 활동하느라 피곤했던 거 푼다 생각하고 일어나 보니까 어느새 밤이야. 

뭐 내 기억으로 6-7시간정도 그대로 게임하고 있었던 거 같애. 

그리고 그런게 하루 이틀 아니었지.ㅋ 난 뭔가 싶었던 생각 처음으로 들었어. 

그래도 난 오빠가 좋아하니까 해봐야지 했는데 아. 문명 재밌는 건 인정. 

아무리 그랬어도 여자친구 있는데, 쳐다도 안보고 컴퓨터만 하다가 보내는 건 좀 아니잖아.

그럴거면 아예 오지 말라고 했으면 나도 시간낭비 안했을거고. 

꿔다 논 보릿자루 마냥 방 구석에 박혀 있어야 했었잖아. 



두번째는 나 아팠을 때. 

나 아프다니까 그래도 오라고 했었지. 어 맞아, 나 그때 열 38도였고 콧물 목 몸살감기였어. 

나도 진짜 등신중 상등신이지.ㅋㅋㅋㅋ 그 몸으로 오빠 보겠다고 갔으니까. 

나 보고서 한 소리가 뭐였니, '어 진짜 아팠네.' 그럼 내가 아픈 걸로 사기치겠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아프다고 뻥카를 쳐.

그래서 감기 옮으니까 뽀뽀 하지 말라고 하니까 뽀뽀 아니면 되냐고 했을 때, 허 참…

나 입으로 겨우 헥헥거리고 숨쉬고 약기운 때문에 헤롱거리는데 그러고 싶은가 싶더라. 

아무튼, 정말 너무 아파서 그냥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몇시간 있다가 그랬지. 

너 아프면 집에 가라 그냥.ㅋㅋㅋㅋㅋㅋ

재밌드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파서 싸울 기력도 없어서 그냥 집에 가는 길에 서운해서 

문자 했더니 한다는 소리는 또 와..ㅋㅋㅋㅋ 어떻게 보살펴줘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도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 




세번째는 피자. 

학교에서 고생하는 거, 열심히 하는 거 예뻐서 오빠 학교로 피자 주문해서 몇번 보냈지.

너무 맛있었다고 극찬에 극찬을 하길래 나도 기분 되게 좋았어. 

근데… 아, 배고파 피자 맛있었는데 라고 문자 안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문자하면 

내가 대체 무슨 기분이 들까 응?ㅋㅋㅋㅋㅋㅋㅋ 

아이쿠 우리오빠 배고프시구나, 얼른 시켜드려야지^^^^^^^ 이런 생각이 들까? 

하루에 문자 한 두통 보내는 사람이, 전화는 더욱이 안하는 사람이 피자사달라고 연락해.ㅋㅋㅋ

내가 오빠 호구지 그렇지???? 

뭐 이거랑 연결해서 하나 더 얘기 하자면 그래, 자취하면 돈 없지. 근데 있잖아 나도 학생이어서 돈 없는 건 매한가진데 너무 당연하게 뭐 쏘라고 하면 난 좀 그래.

더군다나 오빠 용돈 받는 날, 친구들하고 술마신다고 앱솔루트 보드카에 뭐 이런거 사서 진탕 마시고 하루만에 10만원 써놓고는 나한테 뭐 사죠 사죠 이러고 애기짓 하면 그건… 정말… 욕나와…. 

술 좋아하고 친목 다지는 거 정말 좋은데, 나 오빠 집까지 왔다갔다 하는 거 그냥 지하철에 버스도 아니었잖아. 거기다가 밥값 내려니까 나도 진짜 학교 다닐 때 김밥 한줄 먹고 돈 아껴서 주말에 오빠 사준 거 였는데… 술마신다고 돈쓰고 아…. 




네번째는 우리 싸울 때 오빠 손올라 갔던 거.

아 싸웠던 내용은 기억안나. 그런데 오빠가 하는 레퍼토리에 따르면 내가 말꼬리를 잡았겠지. 난 잘 모르겠어, 팩트를 얘기하는게 말꼬리 잡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무슨일이 있어도 손 올라가는 건 정말 아니야. 나 아빠한테 어릴 때 부터 너무 많이 맞아서 진짜 소리 지르고 그러면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무서워서 미치겠어. 맞진 않았어도 오빠 나 때리려고 했던 거, 두번 정도 됐었지. 미안하단말도 안했잖아, '니가 화나게 했으니까 당연하지.' 식. 아, 화나면 사람 때려도 별 문제 없구나. 그럼 오빤 이미 나한테 여러번 맞았었겠다 그렇지? 




다섯번째, 그 무성의한 태도들. 

정말 너무 힘들어서, 지쳐서 힘내고 싶어서 전화하면 '어, 그래? 기분 나아지면 연락해. 뚝'

그냥 너무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심각한 일 마주치기 싫다며 뭐 들어보지도 않고 그냥 전화끊고 끊고…. 다들 힘든데 왜그러냔 식. 그래놓고 오빠 힘들 땐 나한테 왜 몰라주냐고 징징징. 

아 그래? 오케. 이게 오빠랑 사귀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네.ㅋㅋㅋㅋㅋㅋ 나 그래서 나중엔 아무리 힘들어도 오빠 한테 연락 안했던 거 알고는 있어? 

그리고 기타 치면서 노래 불러주고 싶어서 연습해서 해줄 생각에 들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아 나 기타 소리 별로 안좋아해. 기타소리 괴로워'. 그래 기타 연주 한번 하면 내가 오빠 묶어놓고 3시간 정도 째지는 소리로 헤비메탈을 연주한다 했으면 말을 안해, 오빠가 좋아해서 나보고 불러달라던 You and I, 무반주 보다 기타랑 같이 들려주고 싶었던 건데. 적어도 좀 돌려 말해줬으면 아 그랬구나, 이러기라도 하지, 연습하는 거 번히 알면서 아무말도 안하다가 그렇게 얘기하는 건 대체 뭐야 나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섯번째, 나한테 한 거짓말. 

내가 언제 오빠가 여자들이랑 논다고 뭐라고 했었나? 나도 동아리 활동하고, 이성 만나는 거 당연한거라고 생각해. 술도 마실 수 있고, 선만 안넘으면 되니까. 

거기다가 오빠한테 전화 해보고 놀고 있으면 응 알았어 재밌게 놀고 술 많이 마시지마! 라고 하고 나 더이상 연락도 안했고 터치도 안했던건 진짜 오빠를 믿어서 그런거였어. 

나 미국 가기 1주일 전, 오빠 과제 때문에 밤 새야 한다고 연락 못받을 거라고 그랬지. 나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그냥 아침 점심 저녁 의례적으로 보냈던 문자만 딱 했었고 바쁜가 보다 했는데 너 엠티가서 아주 재미지게 놀았더라?ㅋㅋㅋㅋㅋ아니 내가 엠티 가는 거 뭐라고 했었어?? 안그래도 우리 사이 불안해서 미칠 지경인데, 미국 갈 날이 3일인가 남았는데 그 사실 아니까 좀 많이 마음 아파서, 전화해서 눈물 폭발 했더니 별것도 아닌 걸로 운다고 '아 알았어 미안해 미안해 됐어?' 

내가 진짜 부탁했지, 다른건 몰라도 거짓말 하지 말고 바람피우지 말라고. 다 괜찮은데 두개만 하지 말라고. 작은거든 큰거든 하지 말라고. 그 두가지가 그렇게 어려웠니?




7번째, 나 미국 갔을 때 오빠가 한 행동들.

나 룸메랑 너무 안맞아서 힘들다고 울며 전화 했을 때, '사는 게 다 그래' '나 호주 한 달 다녀왔을 때도 힘들었어.' 야 임마 너 한달이지 나는 1년 잡고 온 거였었잖아. 

빈말로라도 힘내란 말 듣고 싶었다니까 '어 그래? 힘내.' 이런씨.ㅋㅋㅋㅋㅋㅋㅋ쳐죽일.ㅋㅋㅋㅋ

거기다 핸드폰이 영어로 문자 보내기 안좋아서 문자 못하겠다고, 일주일에 한두통 했지?

전화? 얼어죽을, 한 대여섯번 했나?ㅋㅋㅋㅋㅋ 8개월동안?ㅋㅋㅋㅋㅋㅋ

스카이프 하자고 조르고 졸라서 겨우 한번인가 하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홈씩 왔을 때 오빠가 아니라 외국인 친구들이 위로해 줘서 버텼었어, 알아? 




우리 헤어진지 이제 1년이 되간다. 

우리 싸우다가 오빠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난 사실 후련해서 그래 알았어 하고 떠날 수 있었어.

그리고 얼마 안돼서 술먹고 전화하고

'자?' '잘 지내?' '아픈 데 없어?' 라고 할 때마다 

'나의 꼬치는 외로운데 너는 어떠니' 라고 밖에 안들렸었어. 

서너번 정도 강남에서 새벽까지 술마시다가 나 보고 싶다고 4시에, 5시에 집 앞으로 나오라 한 것들이 오빠가 날 사랑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했지. 난 대체 오빠를 얼마나 사랑했길래 매주 3번을 오빠 게임하는 뒷통수 보러 갔을까? 술마시는 데 결명자차가 좋다고해서 그거 떨어지기 전에 매번 끓이고 반찬 떨어졌다고 하면 또 해가는 난 대체 뭐였지? 




나, 오빠 욕 친구들한테 이제까지 안해왔었어. 내 친구들은 오빠 그냥 무지 재밌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리지 않는 건 동정 받기 싫고, 그리고 욕먹고 등짝 맞기 싫고, 오빠랑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 근데 이렇게 쓰고 보니까 이제 내가 상바보라는 거 너무 잘알겠다. 




오빠 힘든 건 당연한 거라 생각해. 그동안 받기만 받고 내가 차갑게 대한 적 없으니까 이런 게 낯설겠지. 그런데 난 세상에 남자가 오빠 하나 뿐이라 해도 다신 오빠 안만날 거 같아. 좋았던 기억보다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너무 커서 참 미안하지만 난 오빠가 오빠보다 못된 애 만나면 좋겠어. 이런 일 다 겪고 행복하라고 말하기엔 위선이잖아?  


앞으로 연락하지 마. 그게 이제 오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