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의 22살 한 여대생입니다. 판을 읽기만 하다가 이렇게 글을 쓰려니 참 어색하네요. 이 밤에 동생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파서 가족들 몰래 슬그머니 일어나 글을 남깁니다. 이 이야기는 올해 고3인 제 동생의 이야기 입니다. 글이 길어질 수도 있지만, 한 번만 시간내서 읽어주시고 제 동생에게 힘을 주셨으면 합니다. 제목 그대로 제 동생은 10년 동안 학교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 제 고향은 대구의 한 가난한 동네입니다. 물론 태어난 곳은 다른 곳이지만, 아빠의 바람과 사기로 인해 부모님이 이혼 하신 뒤 엄마와 동생과 함께 16년을 이 곳에서 살았고 지금도 제 동생과 엄마는 살고있으니 고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동네는 가난하기도 가난할 뿐더러 학군 안좋기로도 소문이 난 동네입니다. 그 동네 안에서도 저희는 무시당하는 영세민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제 동생의 말에 따르면 '악몽'의 시작은 10년 전 제동생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입니다. 조용히 공부만 잘해왔던 저와는 달리, 제 동생은 끼 많고 나서기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학반 부회장 선거에 나가게 됐고 그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에게 꽤 인기 있었던 제 동생은 부회장에 뽑혔습니다. 그 당시엔 회장이나 부회장이 되면 부모님들이 반에 간식거리 등을 돌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월급 60만원으로 딸 둘을 키워야 했던 엄마의 입장에서 그런 일은 사치였습니다. 실제로 저희는 외식 몇번 한 적이 없었고, 생일 파티 한 번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엄마는 제 동생이 부회장을 하는 동안 한 번도 간식거리 등을 돌리지 못하셨고, 제 동생 반 아이들은 제 동생에게 "왜 너는 햄버거 안돌려?"라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 동생은 부회장으로서 친구들에게 인기를 잃게 되었고, 제 동생을 은근히 싫어하는 아이들도 꽤 많이 생겨났습니다. 제 동생은 다음 학기에도 부회장이 되고 싶었고, 부회장 선거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딱 한명, 제 동생이 평소에 도와주었던 몸이 불편했던 아이만이 제 동생을 뽑아주었습니다. 그 때 제 동생은 얼굴이 벌개져서 자리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 뒤로 제 동생은 그 반에서 왕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대놓고 괴롭히거나 그러진 않았고, 그 당시에는 다만 제 동생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았을 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 4학년도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제 동생은 그 때 받은 상처 때문에 다시는 반장, 부반장 선거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제 동생은 처음으로 학교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받는 큰 상이었습니다. 그림으로 받은 상이었고, 학교측에서는 전시를 해야하니 그림을 넣을 액자 값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도 저희 집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 액자값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3, 4만원대로 다른 집은 몰라도, 저희 집 형편에서는 꽤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결국 엄마는 그 액자비를 낼 수 없다고 액자를 하지 못하겠다고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철 없던 동생은 꼭 그 액자를 해서 학교에 전시하고 싶은 어린 마음에 엄마의 돈을 몰래 가져다가 조금조금 담임 선생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내가 사채업자인 줄 아느냐"며 제 동생에게 버럭 화를 내셨고, 모든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돈 문제로 제 동생을 혼내셨습니다. 그 때 이후로 제 동생의 반 아이들은 제 동생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눈에 드러나게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반 남자아이들이 너무 괴롭혀서 제 동생이 그 아이들에게 "너희 때문에 죽고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죽어봐"라며 비웃었고, 너무 괴로운 마음에 제 동생은 정말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서워서 상처를 내지는 못하고 벌벌 떨고 있던 중에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담임 선생님은 제 동생에게 미쳤냐며 혼을 내시고 아이들이 보이게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으라며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 때 그 남자아이들이 벌을 받는 제 동생을 보며 흘린 비웃음을 제 동생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제 동생은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대구는 일명 뺑뺑이인 추첨식 배정을 통해 중학교를 배정합니다. 저희 동네는 가난하고 학군이 좋지 않은 동네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고, 결국엔 거리 순 배정으로 넘어가 거의 모든 아이들이 결국 이 동네의 학교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제 동생도 같은 초등학교 출신 아이들의 대부분과 같은 중학교에 배정받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땐, 초등학교때 사이가 안좋았던 여자애가 자기 남자친구한테 꼬리친다며 자기 친구들과 함께 제 동생을 왕따시켰습니다. 정작 그 남자애는 6학년 때 제 동생을 괴롭힌 남자애로 제 동생이 아주 증오하는 아이인데도 말입니다. 제 동생은 그렇게 또 왕따가 되었지만, 이런 일들을 저나 엄마에게 한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일하시느라 바쁘셨고, 당뇨나 갑상선 등으로 건강도 좋지 않으셨으며, 고등학생이 되었던 저는 밤 늦게 집에 들어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동생에게 미안합니다.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으면 금방 알아차렸을텐데. 중학교 2학년 때는 전학을 온 아이와 친해져서 친구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같이 다니던 아이의 이간질로 그 전학을 온 친구가 제 동생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싫어하게 되었고, 어느 날 점심시간에 다짜고짜 제 동생을 때렸습니다. 바보 같이 착하기만 한 제 동생은, 혹여나 자기가 이 아이를 같이 때리거나 하면 엄마가 이 아이에게 치료비를 물어내거나 하게 될까봐 반항 한 번 못해보고 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다 맞고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동생이 맞은 것 보다 저희 가족을 마음 아프게 했던 건,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이었습니다. 제 동생이 맞고 있는 동안, 단 한명도 선생님을 부르러 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때리라면서 그 전학생을 부추겼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제 동생은 목 인대가 늘어나고, 얼굴에 멍이 드는 등 전치 몇주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전학생도 할머니와 둘만 사는 처지였기 때문에 치료비는 받을 수 없었고, 폭력 사건으로 고발을 했지만, 그 전학생은 멀리 가출을 해버렸기 때문에 사과 또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건 후, 엄마가 학교로 찾아가셨고 옆에서 부추긴 아이들을 보게 된 엄마는 너무나 화가 나는 마음에, 그 아이 중 한명의 뺨을 때리셨습니다. 그리고 학교 측에서는 그 아이들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는 징계만 내렸습니다. 엄마가 학교에 와서 한바탕 경고를 하고 가셨기 때문에 남은 중학교 생활 동안 제 동생을 건드리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친구도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제 동생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떠했습니다. 하지만, 진학한 고등학교의 대부분은 제 동생이 졸업한 중학교에서 온 애들이거나, 아니면 그 애들의 친구였습니다. 그 애들끼리 도는 소문 사이에서, 저희 엄마는 애들을 '팬' 엄마가 되어있었고, 제 동생은 피해자가 아닌 같이 다니던 친구를 때린 가해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제 동생과 같은 반이 된 애들 중에서는 대놓고 제 동생이 싫다고 말한 애도 있었습니다. 겨우겨우 같은 반 친구들을 몇명 사귀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반의 다른 아이들이 가만두지 않아, 결국 제 동생은 또 왕따가 되었습니다. 이 쯤되면, 제 동생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요. 제 동생에게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시간을 겪는 동안 항상 맛있는 게 생기면 안 먹고 꼭 남겨두었다가 저랑 엄마가 오면 같이 먹곤 했던 그 천사같던 아이가 저렇게 오랜 시간 왕따를 당하는 동안, 날카롭고,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욕 잘 하는 아이가 되어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동생에겐 새로 사귄 친구들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자기가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그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하자, 먼저 그 친구들에게 사과하고 미안하다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제 동생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무시하고 깔보기만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제 동생은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고,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몇번이고 이야기 하고,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며 엄마와 실랑이를 했습니다. 이 때 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탓에 기숙사에서 지냈기 때문에 눈으로 제 동생의 상태를 보지는 못했지만, 거의 매일 아침, 학교가기 싫다는 동생을 엄마가 달래고 혼내다, 결국 눈물을 보이면 마지 못해 동생이 학교에 가곤 했다고 들었습니다. 고등학교만은 졸업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제 동생은 꾹 참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으로 식당에 갈 친구가 없어서, 혼자 몰래 화장실이나 저 복도 끝에서 빵과 우유를 먹었고, 굶기도 다반사였습니다. 그래도 엄마를 생각해서 제 동생은 그 지옥같은 시간을 견디며 꾹 참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동생은 악몽같은 그 10년이라는 시간을 뒤로한 채 고3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집안 형편이 나아져서, 몇번 상담치료도 받았지만 그 비용도 부담되어 그만 두었습니다. 그래도 그 상담치료 덕분인지, 제 동생이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지금은 다행히 친구들이 몇명 있어서, 학교 다니는 것이 즐겁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요즘엔 학교폭력 문제로 자살하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워낙 많이 접해서, 제 동생은 별로 심하지 않은 경우인데 엄살 부린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입니다. 말이 10년이지, 제가 살아온 인생과 제 동생이 살아온 시간의 거의 반과 맞먹는 시간입니다. 제 동생은 지금도 마음의 상처가 많습니다. 지금 제 동생은 증상이 심하진 않지만 조울증을 겪고 있고, 화가 심하게 나거나 하면 슬프거나 하면 자기 몸을 자해합니다. 자해라는 걸 보지 못하신 분들은 잘 모를겁니다. 사랑하는 동생이 자기 몸을 피가 날 정도로 긁고 꼬집고 깨물고 때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 일인지. 그 때마다 엄마는 제 동생을 혼내다가 결국 제 동생을 끌어안고 같이 웁니다. 그럴 때면, 제 동생은 오히려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엄마를 달래주고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엄마, 나는 아직 살아있잖아." 참 다행입니다. 제 동생은 이렇게 살아있어서. 이렇게 버티고 잘 버텨서, 이렇게 저를 보며 웃으며 지나간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제 옆에서 잠들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미술을 하던 제 동생은, 집안 형편도 있고,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 패션 쪽으로 진로를 정했고, 서울에 있는 패션스쿨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나 서울로 이사할 예정입니다. 요즘 제 동생은 참 들떠 있습니다. 비록 정식 4년제 대학이나 학교는 아니지만, 예전 슬프고 힘들었던 과거를 다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생각에. 심지어 이름까지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시작하고 싶다고. 하지만, 여전히 친구를 사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합니다. 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법이 뭐냐고.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말은 해주지만, 마음은 참 아픕니다. 이런 제 동생에게 힘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짧은 시간을 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태껏 잘 견뎌왔다고, 앞으로 참 행복한 날들이 펼쳐질 거라고. 그렇게 한마디만 남겨주세요. 그렇게 제 동생에게 힘을 주세요. 제 동생이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누군가가 찔러 놓은 가시로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또 다행히 누군가가 그 상처를 감싸안아주면 피는 꽃들로 내가 만들어졌다고. 그걸 그 사람들에게 가서 한명한명 얼굴을 보고 말해주고 싶다고. 이런 아이에게 악플은 달지 말아주세요. 제 동생은 판을 자주 보는 아이이니, 언젠가 몰래 쓴 이걸 보게 될 지도 모르겠죠. 댓글이 하나라도 달리면 제 동생에게 보여줄 생각입니다. 그러니 제발 악플은 달지 말아주세요. 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학교폭력 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언젠가는 좋은 행복한 날이 올테니까 조금만 힘내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꼭 말하라고도 말해드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꼭 부탁드립니다. -동생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동생에게 너무나 미안한 한 언니가 남기는 글. 97610
10년 동안 학교폭력에 시달린 제 동생에게 힘을 주세요.
안녕하세요. 서울의 22살 한 여대생입니다.
판을 읽기만 하다가 이렇게 글을 쓰려니 참 어색하네요.
이 밤에 동생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파서 가족들 몰래 슬그머니 일어나 글을 남깁니다.
이 이야기는 올해 고3인 제 동생의 이야기 입니다.
글이 길어질 수도 있지만, 한 번만 시간내서 읽어주시고 제 동생에게 힘을 주셨으면 합니다.
제목 그대로 제 동생은 10년 동안 학교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
제 고향은 대구의 한 가난한 동네입니다.
물론 태어난 곳은 다른 곳이지만, 아빠의 바람과 사기로 인해 부모님이 이혼 하신 뒤
엄마와 동생과 함께 16년을 이 곳에서 살았고
지금도 제 동생과 엄마는 살고있으니 고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동네는 가난하기도 가난할 뿐더러 학군 안좋기로도 소문이 난 동네입니다.
그 동네 안에서도 저희는 무시당하는 영세민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제 동생의 말에 따르면 '악몽'의 시작은 10년 전 제동생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입니다.
조용히 공부만 잘해왔던 저와는 달리, 제 동생은 끼 많고 나서기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학반 부회장 선거에 나가게 됐고
그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에게 꽤 인기 있었던 제 동생은 부회장에 뽑혔습니다.
그 당시엔 회장이나 부회장이 되면 부모님들이 반에 간식거리 등을 돌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월급 60만원으로 딸 둘을 키워야 했던 엄마의 입장에서 그런 일은 사치였습니다.
실제로 저희는 외식 몇번 한 적이 없었고, 생일 파티 한 번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엄마는 제 동생이 부회장을 하는 동안 한 번도 간식거리 등을 돌리지 못하셨고,
제 동생 반 아이들은 제 동생에게 "왜 너는 햄버거 안돌려?"라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 동생은 부회장으로서 친구들에게 인기를 잃게 되었고,
제 동생을 은근히 싫어하는 아이들도 꽤 많이 생겨났습니다.
제 동생은 다음 학기에도 부회장이 되고 싶었고, 부회장 선거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딱 한명, 제 동생이 평소에 도와주었던 몸이 불편했던 아이만이 제 동생을 뽑아주었습니다.
그 때 제 동생은 얼굴이 벌개져서 자리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 뒤로 제 동생은 그 반에서 왕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대놓고 괴롭히거나 그러진 않았고,
그 당시에는 다만 제 동생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았을 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 4학년도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제 동생은 그 때 받은 상처 때문에 다시는 반장, 부반장 선거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제 동생은 처음으로 학교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받는 큰 상이었습니다.
그림으로 받은 상이었고, 학교측에서는 전시를 해야하니 그림을 넣을 액자 값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도 저희 집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 액자값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3, 4만원대로
다른 집은 몰라도, 저희 집 형편에서는 꽤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결국 엄마는 그 액자비를 낼 수 없다고 액자를 하지 못하겠다고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철 없던 동생은 꼭 그 액자를 해서 학교에 전시하고 싶은 어린 마음에
엄마의 돈을 몰래 가져다가 조금조금 담임 선생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내가 사채업자인 줄 아느냐"며 제 동생에게 버럭 화를 내셨고,
모든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돈 문제로 제 동생을 혼내셨습니다.
그 때 이후로 제 동생의 반 아이들은 제 동생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눈에 드러나게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반 남자아이들이 너무 괴롭혀서
제 동생이 그 아이들에게 "너희 때문에 죽고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죽어봐"라며 비웃었고,
너무 괴로운 마음에 제 동생은 정말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서워서 상처를 내지는 못하고 벌벌 떨고 있던 중에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담임 선생님은 제 동생에게 미쳤냐며 혼을 내시고
아이들이 보이게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으라며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 때 그 남자아이들이 벌을 받는 제 동생을 보며 흘린 비웃음을 제 동생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제 동생은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대구는 일명 뺑뺑이인 추첨식 배정을 통해 중학교를 배정합니다.
저희 동네는 가난하고 학군이 좋지 않은 동네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고,
결국엔 거리 순 배정으로 넘어가 거의 모든 아이들이 결국 이 동네의 학교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제 동생도 같은 초등학교 출신 아이들의 대부분과 같은 중학교에 배정받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땐, 초등학교때 사이가 안좋았던 여자애가
자기 남자친구한테 꼬리친다며 자기 친구들과 함께 제 동생을 왕따시켰습니다.
정작 그 남자애는 6학년 때 제 동생을 괴롭힌 남자애로 제 동생이 아주 증오하는 아이인데도 말입니다.
제 동생은 그렇게 또 왕따가 되었지만, 이런 일들을 저나 엄마에게 한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일하시느라 바쁘셨고, 당뇨나 갑상선 등으로 건강도 좋지 않으셨으며,
고등학생이 되었던 저는 밤 늦게 집에 들어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동생에게 미안합니다.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으면 금방 알아차렸을텐데.
중학교 2학년 때는 전학을 온 아이와 친해져서 친구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같이 다니던 아이의 이간질로 그 전학을 온 친구가 제 동생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싫어하게 되었고,
어느 날 점심시간에 다짜고짜 제 동생을 때렸습니다.
바보 같이 착하기만 한 제 동생은,
혹여나 자기가 이 아이를 같이 때리거나 하면 엄마가 이 아이에게 치료비를 물어내거나 하게 될까봐
반항 한 번 못해보고 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다 맞고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동생이 맞은 것 보다 저희 가족을 마음 아프게 했던 건,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이었습니다.
제 동생이 맞고 있는 동안, 단 한명도 선생님을 부르러 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때리라면서 그 전학생을 부추겼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제 동생은 목 인대가 늘어나고, 얼굴에 멍이 드는 등 전치 몇주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전학생도 할머니와 둘만 사는 처지였기 때문에 치료비는 받을 수 없었고,
폭력 사건으로 고발을 했지만, 그 전학생은 멀리 가출을 해버렸기 때문에 사과 또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건 후, 엄마가 학교로 찾아가셨고
옆에서 부추긴 아이들을 보게 된 엄마는 너무나 화가 나는 마음에, 그 아이 중 한명의 뺨을 때리셨습니다.
그리고 학교 측에서는 그 아이들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는 징계만 내렸습니다.
엄마가 학교에 와서 한바탕 경고를 하고 가셨기 때문에 남은 중학교 생활 동안
제 동생을 건드리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친구도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제 동생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떠했습니다.
하지만, 진학한 고등학교의 대부분은 제 동생이 졸업한 중학교에서 온 애들이거나,
아니면 그 애들의 친구였습니다.
그 애들끼리 도는 소문 사이에서, 저희 엄마는 애들을 '팬' 엄마가 되어있었고,
제 동생은 피해자가 아닌 같이 다니던 친구를 때린 가해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제 동생과 같은 반이 된 애들 중에서는 대놓고 제 동생이 싫다고 말한 애도 있었습니다.
겨우겨우 같은 반 친구들을 몇명 사귀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반의 다른 아이들이 가만두지 않아, 결국 제 동생은 또 왕따가 되었습니다.
이 쯤되면, 제 동생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요.
제 동생에게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시간을 겪는 동안 항상 맛있는 게 생기면 안 먹고 꼭 남겨두었다가 저랑 엄마가 오면 같이 먹곤 했던
그 천사같던 아이가 저렇게 오랜 시간 왕따를 당하는 동안,
날카롭고,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욕 잘 하는 아이가 되어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동생에겐 새로 사귄 친구들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자기가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그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하자,
먼저 그 친구들에게 사과하고 미안하다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제 동생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무시하고 깔보기만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제 동생은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고,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몇번이고 이야기 하고,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며 엄마와 실랑이를 했습니다.
이 때 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탓에 기숙사에서 지냈기 때문에
눈으로 제 동생의 상태를 보지는 못했지만,
거의 매일 아침, 학교가기 싫다는 동생을 엄마가 달래고 혼내다, 결국 눈물을 보이면
마지 못해 동생이 학교에 가곤 했다고 들었습니다.
고등학교만은 졸업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제 동생은 꾹 참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으로 식당에 갈 친구가 없어서,
혼자 몰래 화장실이나 저 복도 끝에서 빵과 우유를 먹었고, 굶기도 다반사였습니다.
그래도 엄마를 생각해서 제 동생은 그 지옥같은 시간을 견디며 꾹 참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동생은 악몽같은 그 10년이라는 시간을 뒤로한 채 고3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집안 형편이 나아져서, 몇번 상담치료도 받았지만 그 비용도 부담되어 그만 두었습니다.
그래도 그 상담치료 덕분인지, 제 동생이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지금은 다행히 친구들이 몇명 있어서, 학교 다니는 것이 즐겁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요즘엔 학교폭력 문제로 자살하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워낙 많이 접해서,
제 동생은 별로 심하지 않은 경우인데 엄살 부린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입니다.
말이 10년이지, 제가 살아온 인생과 제 동생이 살아온 시간의 거의 반과 맞먹는 시간입니다.
제 동생은 지금도 마음의 상처가 많습니다.
지금 제 동생은 증상이 심하진 않지만 조울증을 겪고 있고,
화가 심하게 나거나 하면 슬프거나 하면 자기 몸을 자해합니다.
자해라는 걸 보지 못하신 분들은 잘 모를겁니다.
사랑하는 동생이 자기 몸을 피가 날 정도로 긁고 꼬집고 깨물고 때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 일인지.
그 때마다 엄마는 제 동생을 혼내다가 결국 제 동생을 끌어안고 같이 웁니다.
그럴 때면, 제 동생은 오히려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엄마를 달래주고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엄마, 나는 아직 살아있잖아."
참 다행입니다. 제 동생은 이렇게 살아있어서.
이렇게 버티고 잘 버텨서, 이렇게 저를 보며 웃으며 지나간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제 옆에서 잠들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미술을 하던 제 동생은, 집안 형편도 있고,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 패션 쪽으로 진로를 정했고,
서울에 있는 패션스쿨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나 서울로 이사할 예정입니다.
요즘 제 동생은 참 들떠 있습니다.
비록 정식 4년제 대학이나 학교는 아니지만,
예전 슬프고 힘들었던 과거를 다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생각에.
심지어 이름까지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시작하고 싶다고.
하지만, 여전히 친구를 사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합니다. 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법이 뭐냐고.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말은 해주지만, 마음은 참 아픕니다.
이런 제 동생에게 힘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짧은 시간을 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태껏 잘 견뎌왔다고, 앞으로 참 행복한 날들이 펼쳐질 거라고.
그렇게 한마디만 남겨주세요.
그렇게 제 동생에게 힘을 주세요.
제 동생이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누군가가 찔러 놓은 가시로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또 다행히 누군가가 그 상처를 감싸안아주면 피는 꽃들로 내가 만들어졌다고.
그걸 그 사람들에게 가서 한명한명 얼굴을 보고 말해주고 싶다고.
이런 아이에게 악플은 달지 말아주세요.
제 동생은 판을 자주 보는 아이이니, 언젠가 몰래 쓴 이걸 보게 될 지도 모르겠죠.
댓글이 하나라도 달리면 제 동생에게 보여줄 생각입니다.
그러니 제발 악플은 달지 말아주세요.
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학교폭력 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언젠가는 좋은 행복한 날이 올테니까 조금만 힘내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꼭 말하라고도 말해드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꼭 부탁드립니다.
-동생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동생에게 너무나 미안한 한 언니가 남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