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나에게 미치는 작용에 대한 의문

송최신201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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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붉은 랍스터가 되었던 주말, 내 연인이 찍어 준 사진이다.

  송최신 랍스터 모드.jpg

 

 

  연인이 나에게 미치는 한 가지 작용을 나는 궁금해 했다.

 

 

 "왜 연인은 내가 분열되지 않고 현실 속에 현존재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하는가?"

 

 

  4월 11일에 시작된 이 의문이 오늘 6월 5일에 풀렸다.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에 대한 글을 우연히 보고 나서였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사실상 실존함이란 오히려 인간이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가능성 가운데 한 가지 가능성을 움켜쥐고 다른 가능성을 내던져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인간의 자유는 결단으로서 실행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현실에 이르고 현존재 속에 자신의 자리를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접하자마자 "현실"과 "현존재"라는 단어가 동시 등장했다는 것에 경악했다.

 내 마음 속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두 단어가, 4월 11일에 일기장에 연인의 작용에 대해 쓸 때에 정확히 언급했던 두 단어가, 어떻게 우연히 접한 글에서 불현듯 등장할 수 있을까!

 내 마음 속에 있던 두 단어가 다른 곳에 있던 똑같은 두 단어를 끌어당겼던 것일까!

 실상 끌어당김의 법칙이 내 인생에서 수도 없이 실현되었으므로 심히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도 놀랍다.

 

 

 여튼 이 글을 읽고서 나는 의문을 해소했다.

 

 

 연인은 내가 비전으로 보았던 바로 그 가능성이 현현한 것이었다.

 필연적인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현현했을 때 나는 그것을 꽉 잡았다.

 자유와 결단력과 용기를 발휘하여서 말이다.

 그렇게 선택한 존재가 나날이 내 선택에 확신을 더해 줄 때, 나는 이 현실 속에서 현존재로서 더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다.

 

 

 이 글과는 별개로 지금 막 돈오하여 의문이 해소되었다.

 연인과 지속적으로 하는 그립감이 확실한 신체적 접촉에 의해서도 내가 분열되지 않고 현실, 현재에서 공고해진다.

 그 과정은 풀풀 날리는 밀가루를 반죽해서 떡으로 만드는 것 같다.

 연인은 나를 찰지게 반죽한다.

 나는 동그랗고 속이 꽉 찬 찰떡이 되었다.

 

 

 밥 사러 밖에 갔다 오는 길에 생각이 더 전개되었다.

 사 온 밥을 먹고 나서 컴퓨터를 켜서 글을 이어서 쓴다.

 연인이 내가 분열되지 않고 현실 속에 현존재로 온전히 있도록 하는 데에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 말고도,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연인이 이 현실 속에서 현재에 생생히 살아 있는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봐 주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다정히 말을 걸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기 때문이다.

 손을 잡아주고 살뜰하게 품어 주기 때문이다.

 나를 그렇게 대해 주는 연인이 현재에 현존재로서 건강하게 아름답게 존재하니까, 나도 그러한 모습으로 그의 곁에 있고 싶은 것이다.

 분열되는 시간 속에서 분열되는 공간 속에서 자아를 산산조각내어 편재시키기가 더 이상 싫은 것이다.

 예전엔 내가 싫어하고 좋고를 떠나서 그러한 경향성이 나를 끌고 갔다.

 그런데 이제는 그 경향성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사랑을 시작하고서 멈추었다.

 그렇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 의문에 대한 정답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