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라 인식되는 오래된 고정관념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창시하지 않으셨으며, 성경 어디에서도 십자가 형상을 섬겼다거나 섬기라는 내용이 명시된 부분이 없으므로, 신앙적인 타당성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분명히 우상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형틀의 용도였기에 사도 베드로는 십자가에 대하여 칭송하기 보다는 일개 나무로 치부한 기록이 있다. [행5:30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는 성경적 가르침 앞에서 십자가는 존재의 설득력을 잃는다. 더불어 고대 이방종교 숭배의 대상물이었던 십자가가 기독교로 유입된 역사적인 기록들은, 십자가를 추앙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초대교인들에게는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으므로, 십가가를 심미적으로 미화시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
Baker’s 신학사전.,1996년 도서출판 엠마오 491페이지
그렇다면 십자가 형상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과연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문명의 이기를 통해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부여되어 악신을 쫓는 하나의 대안으로 인식되어 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십자가라는 형상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영육간에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이 있는 것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개인의 소장품과 각종 장식 등으로 굳혀져 간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는 신앙적 상징물로서의 소장가치를 넘어 악신이나 여러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인간의 어리석은 기대 속에 여러 형태로 확산되어 갔다.
그렇다면 십자가가 그 자체만으로 어떠한 효력을 발생하고 있을까?
타인을 보호할 권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십자가는 오히려 스스로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할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교회 꼭대기에 설치할 때에는 강풍(强風)에 대비한 특수설계를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번개를 방지하기 위해 피뢰침이 부착하기도 한다. 모든 자연과 만물을 관장하시는 절대자 하나님께서 자연재앙을 내리실 때에 십자가 형상을 발견하시지 못할 것을 염려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피뢰침과 결합될 수 밖에 없는 합성적 형태의 괴상한 십자가는 정작 그리스도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약한 인간은 ‘보아야 믿는 근성’이 있다. 마음에서 상상하는 신이나 연모하는 신을 구체화하여 육안으로 욕구충족을 하려는 심리가 있다. 그동안 십자가는 신앙적 상징이라는 보편적 상식에 익숙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은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어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제 시대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있는 시점에 케케묵은 인습을 버려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십자가는 분명 하나님 나라의 전통이 아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는 망령된 처사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여 우상의 달콤한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쪼록 처음부터 수정의 역사가 없었던 한결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 많은 이들에게 진리적인 측면에서 욕구충족이 보장되어야 할 때이다.
∬하나님의교회-보㉵야 믿는 ㉧ㅣ상한 심리[예루살렘어머니/김주철목사님/십자가우상숭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상숭배를 하게 된다면 억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라 인식되는 오래된 고정관념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창시하지 않으셨으며, 성경 어디에서도 십자가 형상을 섬겼다거나 섬기라는 내용이 명시된 부분이 없으므로, 신앙적인 타당성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분명히 우상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형틀의 용도였기에 사도 베드로는 십자가에 대하여 칭송하기 보다는 일개 나무로 치부한 기록이 있다. [행5:30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는 성경적 가르침 앞에서 십자가는 존재의 설득력을 잃는다.
더불어 고대 이방종교 숭배의 대상물이었던 십자가가 기독교로 유입된 역사적인 기록들은, 십자가를 추앙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초대교인들에게는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으므로, 십가가를 심미적으로 미화시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
Baker’s 신학사전.,1996년 도서출판 엠마오 491페이지
그렇다면 십자가 형상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과연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문명의 이기를 통해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부여되어 악신을 쫓는 하나의 대안으로 인식되어 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십자가라는 형상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영육간에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이 있는 것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개인의 소장품과 각종 장식 등으로 굳혀져 간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는 신앙적 상징물로서의 소장가치를 넘어 악신이나 여러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인간의 어리석은 기대 속에 여러 형태로 확산되어 갔다.
그렇다면 십자가가 그 자체만으로 어떠한 효력을 발생하고 있을까?
타인을 보호할 권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십자가는 오히려 스스로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할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교회 꼭대기에 설치할 때에는 강풍(强風)에 대비한 특수설계를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번개를 방지하기 위해 피뢰침이 부착하기도 한다. 모든 자연과 만물을 관장하시는 절대자 하나님께서 자연재앙을 내리실 때에 십자가 형상을 발견하시지 못할 것을 염려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피뢰침과 결합될 수 밖에 없는 합성적 형태의 괴상한 십자가는 정작 그리스도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약한 인간은 ‘보아야 믿는 근성’이 있다. 마음에서 상상하는 신이나 연모하는 신을 구체화하여 육안으로 욕구충족을 하려는 심리가 있다. 그동안 십자가는 신앙적 상징이라는 보편적 상식에 익숙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은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어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제 시대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있는 시점에 케케묵은 인습을 버려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십자가는 분명 하나님 나라의 전통이 아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는 망령된 처사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여 우상의 달콤한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쪼록 처음부터 수정의 역사가 없었던 한결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 많은 이들에게 진리적인 측면에서 욕구충족이 보장되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