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단 운전병 이야기 - 306 & 신교대

하얀구름201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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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장정들 신체 검사 및 자대 배치, 군용품 지급을 위해

 

잠시 대기하는 곳이 306 보충대이다.

 

 

강당에 들어선 후 간단한 소개를 듣고서

 

연병장으로 나가 구대를 정했다.

 

몇 구대였는지는 기억 안나고 우리 구대를 맡은 구대장 포스가

 

제대로였다는것만 기억난다

(이것도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ㅋㅋ)

 

 

 

 

306보충대에서 첫 저녁..

 

군대에선 숟가락만 써야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밥이 정말 맛없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 점호를 마무리하고 자리에 누웠다.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남은 군생활이 정말로 너무나

 

크게 느껴져왔다. 긍정적인 나조차 그 날 만큼은.. 정말로 우울했다.

 

 

 

눈을 떴다. 집이 아니었다.

 

다시금 입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주머니에 진동이 울려서 손을 집어넣어 봤는데..

 

핸드폰이 없었다.. 아직 민간인을 벗어나지 못했다.

 

 

 

신체검사를 받고 군복을 지급 받았는데 그때 내 몸에 맏는 걸로

 

지급받지 못한건 지금까지도 후회가 된다. 껴입을려면 크게 입어야한다는

 

구대장 말을 믿은 내가 바보였다.

 

이래서 신병들이 야상이 무식하게 커 바보처럼 보이는거다.

(입대할 분들 참고 하세요. 무조건 딱 맞는 걸로!!)

 

 

 

정말 이때 운이 좋았다. 우리 기수에서 운전병을 200명정도

 

뽑는다고 햇다. 그땐 운전병이 좋은줄도 몰랐고 될려면 되라

 

그런 식이었다. 근데 운전병으로 차출 되었다.

 

후일 생각해봤을 때, 운전병으로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그땐 몰랐다. 그냥 그땐 그저 막연했다.

 

 

 

운전병이기에 자대는 아직도 몰랐다.

 

일단 28사단으로 신교대를 가게 되었고

 

그 다음은 야수교였다.

 

 

먼저 급한건 신교대였다.

 

난 그렇게 파주에 있는 28사단 신교대로 갔다

 

 

 

-신교대-

 

 

 

말로만 듣던 상상만 했던 신교대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말로 듣던만큼 무섭고 힘들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신교대로 향했다.

 

 

도심에서 점점 산골로 들어가더니

 

자그만 길로 들어갔다.

 

 

 

신교대 위병소를 지나 차가 멈췄다.

 

어떤 조교가 들어와서는 옆에 보이는 연병장으로 집합하라고 소리쳤다.

 

구대장은 이제 귀엽게만 느껴졌다. 조교 포스에 완전 쫄았다.

 

허겁지겁 연병장으로 뛰어갔다. 거기서 소지품 검사를 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딱히 숨길 것도 없어서

 

난 그냥 짐을 풀어놓고 무심히 딴 사람을 지켜봤었다.

 

거기서 줄 선 그대로 번호를 지급 받았고 난 109번 훈련병이 되었다.

 

 

 

금요일날 입소했는데 일요일까지는 입소대기 기간이었다.

 

그땐 전투복에 손바로크를 치고 내 개인신상을 적을 서류에

 

기재하라는 내용을 빽빽히 기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도 어색했었고

 

부모님과 전여친 생각만 하고 있었다.

 

 

 

1주차 제식훈련이었다. 박자감각이 떨어지던 난 제식 배우는게

 

꽤 힘들었던걸로 기억한다.

 

2주차 사격이 주. 영점잡는게 너무 어려웠으나 실사격은 잘했다.

 

총을 처음 싸본다는 호기심이 컸던 시기였다.

 

3주차 총검술과 수류탄을 던졌다. 수류탄은 그때 던진게 군생활 마지막 수류탄이었다.

 

4주차 각개전투와 숙영, 야간행군 모두를 한 빡센 한주였다.

 

5주차에는 정신교육 및 수료식이 있었다.

 

 

 

훈련간 기억나는 것은

 

일단 근무중에 두명이 화장실을 가고 나만 근무서고 있었는데..

 

그게 걸렸다. 그래서 군기교육대를 갔다왔다...ㅠㅠ

 

야간사격 만발해서 전화를 했었다. 처음에 부모님한테 했는데

 

받지 않아.. 전여친한테 했다. 맨날 연락하던 전여친이었는데

 

한 달 만에 연락을 했었다. 그동안 서럽고 그랬던게 생각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그때만큼 전여친이 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또 정말 우연하게 1주차에 취사장에서 친한 대학 동기를 만났다.

 

동기는 5주차였고 난 첫주차.. 너무 반가웠으나 말걸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말을 걸었었는데.. 그땐 서로 눈치 보기 바빠서

 

제대로 말을 못했다. 지금 기억나는 말은 각개,숙영, 행군이 엄청

 

힘들다는 얘기였고 자긴 GOP간다고 했고 난 운전병이라 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볼일 보던 내가 3주만에 볼일을 봐서 놀랐었다.

 

 

인터넷 편지를 받을 수 있었는데 전여친한테도 감사했지만

 

고모가 써준 한장의 편지가 너무나 감사했다.

 

 

 

5주간 훈련하면서 말투도 다나까로 변해갔고

 

조금씩 군대에 적응한줄 알았다. 그리고 5주차 이등병을 달때

 

뭔가 뿌듯해했었는데 그게 얼마나 웃긴건지 이제야 알겠다.

 

 

너무나 적응했었는지 수료식을 마치고

 

동기들과 헤어지는게 너무 아쉬웠다.

 

108번 배성재 110번 만경이형만 기억난다.

 

111번도 꽤 친했고 112번 하늘이형은 수색대가서 고생한다고 들었다.

 

 

 

이렇게 정든 28사단을 떠나 난 야수교로 갔다.

 

야수교는 야수파라다이스라고 불릴 정도로 편하다고 해 기대만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