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리뷰] 왕이 되고팠던 놀이꾼의 이야기....

이득훈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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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극장 나들이를 갔다. 국내 영화 중 사극풍은 “신기전” 이후 처음인 듯 하다. 필자 개인적으로 “사극물”은 별로 즐기지 않으나 워낙 광해에 대한 찬사가 떠들썩하기에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 광해는 조선왕조의 15번 째 왕인 광해군을 토대로 만든 픽션이다. 이런 류의 스토리는 1881년 출간 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를 기반으로 제작되는 것이 많다. 정형화된 질서 속에 일탈을 꿈꾸는 왕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화는 광해가 처음이 아니다. 왕과 민간인의 위치가 뒤바뀐 스토리는 가깝게 올 8월에 앞서 개봉했던 장규성 감독의 “나는 왕이로소이다”도 있다. 물론 광해와는 약간 다른 스토리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신분 상승을 하루아침에 이루는 것은 동일하다.

 

[광해리뷰] 왕이 되고팠던 놀이꾼의 이야기....

 

신분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에도 존재했었다. 미국은 20년대 말 노예 신분이던 흑인들이 신분 상승(보다는 평등)의 꿈을 표현하고자 재즈(Jazz)라는 장르가 생겨났었고, 시민혁명이 일어났었던 유럽에서도 신분상승의 꿈은 항상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신분상승의 기회를 현실적으로 풀어낸 영화가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이다. 리처드 기어의 빼어난 외모와 줄리아 로버츠의 연기력이 어우러져 뭇 여성들이 가슴에 꿈꾸던 “백마 탄 왕자”의 희망에 불을 지핀 대표적인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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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국내에서 드라마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가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는 사랑을 담은 소재이기도 하다. 특정 말투나 단어를 전국적으로 유행시킨 “파리의 연인”이나 “내이름은 김삼순” 등 따지고 보면 신분 상승의 기회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국내 실정에 광해는 매우 특이한 픽션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가 아닌, 신분 상승의 기회가 과거시험 밖에 없던 시절. 조선시대에 그것도 노비에서 양민이나 양민에서 양반이 아닌, 천민에서 왕으로 껑충 뛰어오르는 파격적인 신분상승을 17세기 초 광해군 시절에 담아내었다. 픽션을 가미하여 역사적 사실과 융해하는 경우는 많았으나 이만큼 적절하게 그것도 짧은 기간(약 한 달여의 기간)을 그려 냈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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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내실 정치권 싸움의 등살에 못 이겨 주색에 빠져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음대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자리인지라 대역(?)을 세워놓고 편히 지낼 생각을 한다. 그는 도승지(허균, 류승룡 役)를 시켜 적절한 인물을 물색하라고 명한다. 도부장과 함께 어명을 받들어 궁 밖에서 탐색하던 중 기방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하선을 찾게 되고 공교롭게도 하선은 임금의 외모를 빼닮아 광해군의 대역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도승지와 도부장은 임금 앞에 그를 대령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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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간단한 시험을 통과한 하선은 그 날 밤부터 광해의 대역을 하게 된다. 단순한 임금의 대역이었던 하선은 권력다툼의 배후의 음모로 광해가 몸져 누으면서 실제 임금의 역할을 하게 되고, 어릴 적 왕가에서 자라지 않고 양민의 출신으로 살아 온 하선에게 권력다툼이나 정치싸움 같은 건 두렵지 않다. 어찌보면 궁에서만 자라온 임금보다 양민 출신인 하선이기에 가능했던 일들이 아닐까 싶다. 대동법, 호패법 시행이나 중전의 오빠, 즉 처남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는 일들이 과연 왕좌에 앉아 각기 다른 좌, 우의정 등 중신들 앞에서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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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생각하면 뻔한 스토리이긴 하나, 그 결말이 궁금해 보는 이로 하여금 엉덩이를 뗄 수 없게 하는 작품이다. 하선을 내세워 거침없는 왕권 강화를 이루고 그를 보좌하는 도승지 역할은 류승룡이 맡았다. 도승지라는 관직은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장과 비슷한 위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조선시대에 도승지가 좌, 우의정의 의견에 대립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으나 극중 설정 상 왕의 신의를 받고 있었으므로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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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광해군은 실리정치로 금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 현명한 중립외교를 펼친 어진 임금이다. 선조의 차남인 광해군은 후궁의 아들이긴 하나 임진왜란 당시 혁혁한 공을 세워 민심을 얻는데 성공하였고 이를 발판으로 왕에 올랐고 양전 사업(토지의 넓이를 측량하는 일, 토지를 6등급으로 나누어 20년에 한 번씩 측량토록 하였던 업)으로 토지대장을 만들게 하였고 호적을 만들어 조세를 개편한 대표적인 왕이다. 극 중 하선이 신하들과 의견 대립하는 장면에서 후금(금나라)에 대항하여 명으로 군사를 보내는 대신 후금에도 서신을 보내어 중립을 지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중립정치”였다. 덕분에 조선은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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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의 전체적인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필자가 가장 놀랐던 것은 이병헌의 높은 연기력이었다. 지금은 G.I.Joe로 헐리우드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실제 연기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고 평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병헌의 연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조재현이나 설경구처럼 연기파 배우가 아닌 이병헌은 강인한 외모와 어투 때문인지 어느 영화 어떤 역을 맡더라도 이병헌 특유의 페이스 컬러는 벗어나지 못했다. 예전 드라마 “해피투게더”에서부터 “올인” 등 여러 드라마에서 이병헌은 자신만의 컬러를 넘어서지 못했다. 놈놈놈(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에서 그가 맡은 악역은 예상외로 잘 들어맞았고 악역을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떨어뜨리지 않은 고마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아이리스에서도 그의 연기 컬러는 단조로웠기 때문에 필자 역시 이번 작품에서의 이병헌의 연기력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하지만 광해에서의 이병헌은 자신의 컬러를 벗어던지고 연기파 배우의 반열에 오를만한 능력을 보여준 듯 하다. 어찌보면 과찬인 듯하지만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

 

 

[광해리뷰] 왕이 되고팠던 놀이꾼의 이야기....

 

[광해리뷰] 왕이 되고팠던 놀이꾼의 이야기....

 

 

최근 사극을 코믹하게 풀어내는 영화가 줄을 잇고 있지만 저급하거나 본 내용에 충실하지 못한 작품들이 다수인건 사실이다. 이에 반해 광해는 국내 흥행 역사극물의 특성인 “감동종합세트”(코믹+사랑+휴머니즘+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감동)를 그대로 이어가면서 적절한 픽션을 조합한 성공작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광해와 같은 역사물을 토대로 한 영화가 많이 나오길 기대하며 포스팅을 마칠까 한다.

 

 

 

출처 : 일상에 쉼표하나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