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정부의 힘은 축소되고 분배는 오로지 시장의 몫으로 전가된다. 그리고 이 시장에 의한 분배는 완전경쟁 시대를 초래하며 오늘날 우리를 무한한 경쟁의 굴레로 밀어넣고 있다.
인간은 경쟁을 통하여 발전해왔다. 경쟁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하게 진화하였으며 이는 인류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동인(動因)이 되었다. 무한경쟁 메커니즘 속에서 인류는 어제보다 한층 더 강해지고 한발자국 더 진보할 수 있다. 우리는 1분 전의 우리보다 진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쟁 메커니즘은 우리에게 인도주의를 잊게 만들었다. 경쟁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은 어느 순간 인간의 근원적인 가치를 망각하였다. 우리는 1분 전의 우리보다 진화하였지만, 반면 우리는 1분 전의 우리보다 더욱 짐승이 되었다.
복지국가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인간의 권리에는 ‘아프지 않을’ 권리와 ‘아플 때 치료받을’ 권리가 포함된다. 현대의 발전한 의료기술 아래서 우리는 최대한의 치료를 금전적인 우려 없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할 수 있는 병마를 경제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방관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또는 스스로 그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경쟁의 끝이라면 우리는 되돌아가야 한다. 인류의 진보는 근원적으로 그 출발이 잘못되었다.
의료민영화를 다룬 영화 「SICKO」에서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실천하는 미국과 이에 반하여 복지라는 개념을 우선적으로 지향하는 타 국가의 사례를 보여준다. 신자유주의의 끝에서 최소한도의 복지 개념을 제거한 미국의 의료민영화는 결국 환자들을 더욱 더 비참하게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다. 인간이 만든 ‘돈’은 오히려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다. 언제부터 인간의 목숨이 돈보다 낮은 가치로 전락하였는가?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범지구적 태풍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이 물결에 동참하여 의료민영화를 조심스레 안건으로 상정하고 있다. ‘의료’를 ‘기업’ 차원에서 관리한다는 이 법안은 결국 우리의 목숨을 ‘기업가 저울’ 위에 올려 저울질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의 목숨은 철저히 우리가 가진 재산 총합에 비례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바다 속에서 복지국가를 향해 항해해야 한다. 최소한의 인본주의가 없어진 미래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더 이상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베버가 언급한 자본주의의 ‘철창’은 결국 우리의 목숨줄까지 쥐고 흔들게 될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들의 고귀한 소명의식이 사라진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는 철창 속에 갇힌 새의 운명을 따라갈 것이다.
영화 「SICKO」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이 반대 사례로 언급한 프랑스, 쿠바, 영국, 캐나다를 제외하고서라도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국가들 가운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국가들은 많다. 독일과 스웨덴,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은 복지국가를 지향하지만 전 세계 GDP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선진국들이다. 의료민영화가 국가차원의 수익증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목숨은 무엇보다 고귀하다. 그 목숨의 값어치를 마치 푸줏간 고기처럼 저울에 매달아 값어치를 측정해서는 안 된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도 국가 발전에 저해되지 않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의료민영화가 절대적인 답안으로 제시될 수는 없다.
의료민영화,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짧은 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정부의 힘은 축소되고 분배는 오로지 시장의 몫으로 전가된다. 그리고 이 시장에 의한 분배는 완전경쟁 시대를 초래하며 오늘날 우리를 무한한 경쟁의 굴레로 밀어넣고 있다.
인간은 경쟁을 통하여 발전해왔다. 경쟁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하게 진화하였으며 이는 인류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동인(動因)이 되었다. 무한경쟁 메커니즘 속에서 인류는 어제보다 한층 더 강해지고 한발자국 더 진보할 수 있다. 우리는 1분 전의 우리보다 진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쟁 메커니즘은 우리에게 인도주의를 잊게 만들었다. 경쟁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은 어느 순간 인간의 근원적인 가치를 망각하였다. 우리는 1분 전의 우리보다 진화하였지만, 반면 우리는 1분 전의 우리보다 더욱 짐승이 되었다.
복지국가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인간의 권리에는 ‘아프지 않을’ 권리와 ‘아플 때 치료받을’ 권리가 포함된다. 현대의 발전한 의료기술 아래서 우리는 최대한의 치료를 금전적인 우려 없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할 수 있는 병마를 경제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방관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또는 스스로 그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경쟁의 끝이라면 우리는 되돌아가야 한다. 인류의 진보는 근원적으로 그 출발이 잘못되었다.
의료민영화를 다룬 영화 「SICKO」에서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실천하는 미국과 이에 반하여 복지라는 개념을 우선적으로 지향하는 타 국가의 사례를 보여준다. 신자유주의의 끝에서 최소한도의 복지 개념을 제거한 미국의 의료민영화는 결국 환자들을 더욱 더 비참하게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다. 인간이 만든 ‘돈’은 오히려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다. 언제부터 인간의 목숨이 돈보다 낮은 가치로 전락하였는가?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범지구적 태풍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이 물결에 동참하여 의료민영화를 조심스레 안건으로 상정하고 있다. ‘의료’를 ‘기업’ 차원에서 관리한다는 이 법안은 결국 우리의 목숨을 ‘기업가 저울’ 위에 올려 저울질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의 목숨은 철저히 우리가 가진 재산 총합에 비례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바다 속에서 복지국가를 향해 항해해야 한다. 최소한의 인본주의가 없어진 미래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더 이상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베버가 언급한 자본주의의 ‘철창’은 결국 우리의 목숨줄까지 쥐고 흔들게 될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들의 고귀한 소명의식이 사라진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는 철창 속에 갇힌 새의 운명을 따라갈 것이다.
영화 「SICKO」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이 반대 사례로 언급한 프랑스, 쿠바, 영국, 캐나다를 제외하고서라도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국가들 가운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국가들은 많다. 독일과 스웨덴,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은 복지국가를 지향하지만 전 세계 GDP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선진국들이다. 의료민영화가 국가차원의 수익증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목숨은 무엇보다 고귀하다. 그 목숨의 값어치를 마치 푸줏간 고기처럼 저울에 매달아 값어치를 측정해서는 안 된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도 국가 발전에 저해되지 않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의료민영화가 절대적인 답안으로 제시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