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채연이요“안녕하세요 재석씨?”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안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보고잠시 멈칫했을 뿐.전혀 거리낌없이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아...네...안녕하세요.”당황한 것은 오히려 내쪽이다.어쨌거나 지금은 퇴근한 것이므로피씨방 바깥에서 그녀를 만나인사를 나눈 것은 처음이다.아니,알바를 하고 있는 중에도‘안녕하세요’란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그녀가 인사를 할 때는언제나 피씨방을 나갈 때‘수고하세요’라는 짤막한 인사였을 뿐.게다가인사를 건네기 전의 그녀는분명히 얼굴에 웃음을 띠었으며나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었다는 것.그리고 그녀는 내 옆에 와서 섰다.문이 닫힌다.협소한 엘리베이터 안에는 정적이 감돈다.4층에서 1층까지상당히 느려터진 엘리베이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걸리는 시간은 고작 10여초.겨우 그 정도의 시간이너무도 길게 느껴진다.지금까지 피씨방에서 보아온 그녀의 태도와는상당히 다른 모습에아직도 어리둥절할 뿐.“띵동.”엘리베이터가 멈추고문이 서서히 열린다.우리는 서로 짧게 인사한 것 외에는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물론여기까지 내?윱?시간이상당이 짧기는 했지만.문이 완전히 열리고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그녀가 먼저 나가기를 기다렸다.내가 먼저 나가게 되면그 후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당췌 감을 잡을 수가 없었으므로.1초 2초 3초...그녀도 또한 나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낡아빠진 엘리베이터 문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문이 다시 닫히려 하자나는 다급하게 열림 버튼을 누른다.“먼저...나가세요.”“아...네...”그녀가 먼저 조용히 밖으로 나가고나도 곧이어 따라 나선다.말없이 앞으로만 걸어 나간 그녀는건물 입구 쪽까지 가서야슬며시 고개를 돌린다.“지금 퇴근하시는 건가 ??”“네? 아...아 네...”“매일 이 시간에 퇴근하세요?”“네...알바 시간이...여덟시까지...거든요.”간신히 묻는 말에만대답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그녀는 서슴없이 말을 꺼낸다.“힘드시겠어요. 매일 야간에 일하시려면.”“아 아뇨...뭐...”그녀와 나란히 건물을 나선다.햇살이 내리쬐고 있음에도초가을의 아침은 쌀쌀하다.사실그녀는 더 이상노모녀라고 하기가 뭐하다.점차 쌀쌀해지는 날씨로 인해그녀가 걸친 옷들은 모두긴팔, 긴바지였으므로.인도에 내려서자그녀가 또 한 번 물어온다.“어느 쪽으로 가세요?”“네...저는...저쪽 건너편으로......주공아파트 살거든요.”“아, 그래요?”그녀는긴 머리칼을 한번 쓸어 넘기더니다시 한 번 싱긋 웃으며 말한다.“잘됐네요, 저도 그쪽으로 가는데. 같이 가요.”얼떨결에그녀와 함께 걸음을 옮긴다.집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자그마치 10분.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있던고작 10여초의 시간 동안에도한 마디도 할 수 없던 내가10분 동안을 같이 걸어가면서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다그녀가 갑자기 우뚝멈춰 선다.“잠깐만요.”그렇게 말하고는길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쏙 들어가 버린다.잠시 후,오렌지쥬스 두 병을 사들고편의점에서 걸어나온다.“드세요.”“...아...네...고맙습니다.”귀염녀와는 달리이 여자는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다.그렇게 친한 것도그렇다고 특별히 아는 사이도 아닌단지 안면만을 익힌 남자에게마치 친구를 대하듯 거침없이 얘기한다.어리벙벙하고 허둥지둥하는 귀염녀와는사뭇 다르다.무언가 묘한 매력이 있다.언제나처럼무표정인 채로이긴 하지만걸어가면서 쉴새없이 말을 건넨다.그 동안 조용했던 것은주위에 있는 두 여자의 탓이었던 건가.“대학생이에요?”“네...아 아뇨...아...지금은 아직 복학을 안 해서...”“대학생이네요.”“...네.”바보같이대화의 주도권은 계속그녀가 쥐고 있다.사실궁금한 것이 많아야할 쪽은오히려 내쪽이다.“밤에 혼자 일하면 심심하지 않아요?”“아뇨...뭐...별로...뭐 게임도 하고...또...”“무슨 게임 해요?“그냥 뭐...이것저것...다 해보는거죠 뭐.”차마카트라이더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비록 혼자 할 때는 신나게 즐기지만스물 넷이나 먹은 새끼가“부릉부릉 요새 차몰아염. 님하 드리프트 할줄 아셈?”이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뭐가 그래요? 피씨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뭐 재미있는 거 없어요?“아...글쎄요...으음...제가 군대 제대한 지 얼마 안되서 잘...”“뭐 쉽게 배울 수 있는 게임 있으면 좀 가르쳐 주세요. 우리 되게 할거 없거든요.”“아...네...”그렇지.매일같이 야간정액씩이나 끊으면서고작 하는 일이라곤싸이질이나, 음악감상이나, 테트리스같은 간단한 게임 뿐이니.특히나노모녀의 경우에는피씨방에 들어오자마자음악을 틀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기 일쑤였다.“네...뭐...쉬운 게임 있나 한번 보고 내일 오시면 가르쳐 드릴게요.”“오늘 가르쳐 줘야죠. 오늘 밤에 또 올 건데.”“아...네...그러니까...아 오늘이네요.”그렇군.지금은 아침이니오늘 밤에 또 오겠구나.그나저나이 여자는 도대체 뭘 믿고이토록 당돌한 것인가.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횡단보도를 건너면서대화는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아니,대화라기보다는그녀가 잠시 말을 중단했다고 보는 것이 좋다.계속해서 얘기를 꺼내는 건 그녀쪽이고나는 대답만 하기에 급급했으므로.집으로 가기 위해서는두 개의 횡단보도를 통과해야 한다.그리고 그 횡단보도는직각으로 이어져 있다.첫번째 횡단보도를 건넌 후또 한 번의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섰다.다시 그녀가 말을 꺼낸다.“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아 아뇨...꼭...그런건 아닌데...”원래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나는 낯가림이 심하다.게다가 상대가 여자라면 더더욱..........단지 경림만 예외다.어쨌거나그녀에게 이런 얘기까지 듣고 보니가만히 있기가 좀 뭐하다.애써 화제거리를 생각해 보지만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그녀가아니 그녀들이,‘딸기’와 뭔가 연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더더욱 그렇다.입을 잘못 열었다가또 무슨 실수를 할 지 모르니까.“저...다른 분들은?”“네?”아아 역시나.나는 참 지지리도 말재주가 없구나.어떻게된 상황이든 간에여자와 단둘이 걷고 있는 상황에서기껏 할 수 있는 말이다른 여자들에 대한 얘기.“아아...언니랑 수정이요? 먼저 들어갔죠.”“아...그래요?”“원래 맨날 같이 가는데...오늘 제가 좀 일이 있어서...셋이 같이 살거든요.”“아...네...”“그런 건 왜 물어요?”“네?”어이쿠.역시기분이 나빴을라나?뭐나는 여자들의 심리는도통 모르겠다.그러니까 아직도 요모양 요꼴이지.“왜요? 관심있으세요?”“네에? 아 아뇨...그런게 아니라...”갑자기 튀어나온 질문에당황하여 얼버무린다.관심있는 줄어떻게 알았지?내 반응이 재미있었는지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더니이내 푸훗하고 소리내어 웃는다.예쁘다.역시 여자들은웃는 모습이 제일 예쁘구나..........단지 경림만 예외다.그녀가 웃자나는 몸둘바를 모르겠다.웃는 모습이 예쁜 것도 물론이거니와내 속마음을 읽히고 있는 것만 같아 당황스럽다.“수정이 귀엽죠?”“...아...네...네?”이 여자는 무당인가?나의 심리상태를 어찌도 이리훤히 꿰고 있단 말인가.아,이제 맘놓고 야한 생각도 못하겠..........흠...어쨌거나 내 입장에서는굉장히 난감한 질문이다.화제를 조금 바꿔야지.“아...그분은 요즘 좀...기분이 안 좋으신가??”“네...뭐...걔는 원래 그래요. 어리버리해가지고...쿡쿡...나이만 먹었지 완전 애라니까요.”“아...네...”“걔가 요즘 질풍노도의 시기인가 ?? 맨날 혼자 삐졌다 풀렸다...아주 귀여워 죽겠다니깐.”그렇구나.거봐 역시...이상한 애 맞네.“아 그러고보니 재석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네? 아...저요?”“우리랑 비슷한 나이일거 같은데.”그녀가 또 한 번내 이름을 정확하게 말한다.내가 재석인 건 맞지만그녀에게서 들으니 뭔가 이상하다.불과 몇 분 전까지도우리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를 만큼친한 사이가 아니었으므로.“네...저...스물 네 살입니다. 팔십일년 생이요.”“아, 그래요? 수정이랑 동갑이네?”“네...아...그런가요?”물론 알고 있다.그렇지만 티를 낼 수는 없다.알고 있다고 해서“네 맞아염 누나. 누나보다는 한 살 어??”이라고 하기엔내 나이가 너무 많다;걷다 보니어느새 우리 아파트 앞까지 왔다.당초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갔다.물론그녀가 쉴새없이 말해준 덕택이긴 하지만.“아...저 여기가...우리 집이에요.”“아, 그래요?”그녀는 우뚝 솟은 고층의 아파트를한 번 올려다 본다.“집에 들어가시면 뭐하세요?”“네? 뭐...씼고...밥먹고...자야죠.”“아, 네. 아직 아침도 안 드셨나??”“아...네.”원래 아침밥은 안 먹긴 하지만들어가자마자 그냥 자빠져잔다고 말하기엔먼가 허전한 감이 있었으므로.“그럼 같이 밥이나 먹고 들어가요.”“네...네?”“저도 지금 들어가면 어차피 혼자 먹어야 되거든요. 같이 아침이나 먹어요.”상당히파격적인 제안이다.10여분 전까지만 해도얼굴만 알고 있을 뿐이었던 상대에게이토록 쉽게 같이 밥을 먹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우리나라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아...네...그쪽도 아직...식사 안 하셨나 ??”“채연이요.”“네?”“제 이름 채연이라고...저번에 말했던 것 같은데?”네.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출처] [펌]안마시술소 여자들 11.채연이요 |작성자 극빙 4
안마시술소 여자들 11. 채연이요 [펌]
11. 채연이요
“안녕하세요 재석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안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을 뿐.
전혀 거리낌없이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아...네...안녕하세요.”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내쪽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퇴근한 것이므로
피씨방 바깥에서 그녀를 만나
인사를 나눈 것은 처음이다.
아니,
알바를 하고 있는 중에도
‘안녕하세요’란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녀가 인사를 할 때는
언제나 피씨방을 나갈 때
‘수고하세요’라는 짤막한 인사였을 뿐.
게다가
인사를 건네기 전의 그녀는
분명히 얼굴에 웃음을 띠었으며
나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내 옆에 와서 섰다.
문이 닫힌다.
협소한 엘리베이터 안에는 정적이 감돈다.
4층에서 1층까지
상당히 느려터진 엘리베이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걸리는 시간은 고작 10여초.
겨우 그 정도의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피씨방에서 보아온 그녀의 태도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에
아직도 어리둥절할 뿐.
“띵동.”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서서히 열린다.
우리는 서로 짧게 인사한 것 외에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물론
여기까지 내?윱?시간이
상당이 짧기는 했지만.
문이 완전히 열리고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그녀가 먼저 나가기를 기다렸다.
내가 먼저 나가게 되면
그 후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
당췌 감을 잡을 수가 없었으므로.
1초 2초 3초...
그녀도 또한 나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낡아빠진 엘리베이터 문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문이 다시 닫히려 하자
나는 다급하게 열림 버튼을 누른다.
“먼저...나가세요.”
“아...네...”
그녀가 먼저 조용히 밖으로 나가고
나도 곧이어 따라 나선다.
말없이 앞으로만 걸어 나간 그녀는
건물 입구 쪽까지 가서야
슬며시 고개를 돌린다.
“지금 퇴근하시는 건가 ??”
“네? 아...아 네...”
“매일 이 시간에 퇴근하세요?”
“네...알바 시간이...여덟시까지...거든요.”
간신히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서슴없이 말을 꺼낸다.
“힘드시겠어요. 매일 야간에 일하시려면.”
“아 아뇨...뭐...”
그녀와 나란히 건물을 나선다.
햇살이 내리쬐고 있음에도
초가을의 아침은 쌀쌀하다.
사실
그녀는 더 이상
노모녀라고 하기가 뭐하다.
점차 쌀쌀해지는 날씨로 인해
그녀가 걸친 옷들은 모두
긴팔, 긴바지였으므로.
인도에 내려서자
그녀가 또 한 번 물어온다.
“어느 쪽으로 가세요?”
“네...저는...저쪽 건너편으로......주공아파트 살거든요.”
“아, 그래요?”
그녀는
긴 머리칼을 한번 쓸어 넘기더니
다시 한 번 싱긋 웃으며 말한다.
“잘됐네요, 저도 그쪽으로 가는데. 같이 가요.”
얼떨결에
그녀와 함께 걸음을 옮긴다.
집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자그마치 10분.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있던
고작 10여초의 시간 동안에도
한 마디도 할 수 없던 내가
10분 동안을 같이 걸어가면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다
그녀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선다.
“잠깐만요.”
그렇게 말하고는
길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잠시 후,
오렌지쥬스 두 병을 사들고
편의점에서 걸어나온다.
“드세요.”
“...아...네...고맙습니다.”
귀염녀와는 달리
이 여자는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다.
그렇게 친한 것도
그렇다고 특별히 아는 사이도 아닌
단지 안면만을 익힌 남자에게
마치 친구를 대하듯 거침없이 얘기한다.
어리벙벙하고 허둥지둥하는 귀염녀와는
사뭇 다르다.
무언가 묘한 매력이 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인 채로이긴 하지만
걸어가면서 쉴새없이 말을 건넨다.
그 동안 조용했던 것은
주위에 있는 두 여자의 탓이었던 건가.
“대학생이에요?”
“네...아 아뇨...아...지금은 아직 복학을 안 해서...”
“대학생이네요.”
“...네.”
바보같이
대화의 주도권은 계속
그녀가 쥐고 있다.
사실
궁금한 것이 많아야할 쪽은
오히려 내쪽이다.
“밤에 혼자 일하면 심심하지 않아요?”
“아뇨...뭐...별로...뭐 게임도 하고...또...”
“무슨 게임 해요?
“그냥 뭐...이것저것...다 해보는거죠 뭐.”
차마
카트라이더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비록 혼자 할 때는 신나게 즐기지만
스물 넷이나 먹은 새끼가
“부릉부릉 요새 차몰아염. 님하 드리프트 할줄 아셈?”
이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뭐가 그래요? 피씨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뭐 재미있는 거 없어요?
“아...글쎄요...으음...제가 군대 제대한 지 얼마 안되서 잘...”
“뭐 쉽게 배울 수 있는 게임 있으면 좀 가르쳐 주세요. 우리 되게 할거 없거든요.”
“아...네...”
그렇지.
매일같이 야간정액씩이나 끊으면서
고작 하는 일이라곤
싸이질이나, 음악감상이나,
테트리스같은 간단한 게임 뿐이니.
특히나
노모녀의 경우에는
피씨방에 들어오자마자
음악을 틀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기 일쑤였다.
“네...뭐...쉬운 게임 있나 한번 보고 내일 오시면 가르쳐 드릴게요.”
“오늘 가르쳐 줘야죠. 오늘 밤에 또 올 건데.”
“아...네...그러니까...아 오늘이네요.”
그렇군.
지금은 아침이니
오늘 밤에 또 오겠구나.
그나저나
이 여자는 도대체 뭘 믿고
이토록 당돌한 것인가.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대화는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아니,
대화라기보다는
그녀가 잠시 말을 중단했다고 보는 것이 좋다.
계속해서 얘기를 꺼내는 건 그녀쪽이고
나는 대답만 하기에 급급했으므로.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횡단보도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 횡단보도는
직각으로 이어져 있다.
첫번째 횡단보도를 건넌 후
또 한 번의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섰다.
다시 그녀가 말을 꺼낸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아 아뇨...꼭...그런건 아닌데...”
원래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낯가림이 심하다.
게다가 상대가 여자라면 더더욱.
......
...단지 경림만 예외다.
어쨌거나
그녀에게 이런 얘기까지 듣고 보니
가만히 있기가 좀 뭐하다.
애써 화제거리를 생각해 보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가
아니 그녀들이,
‘딸기’와 뭔가 연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입을 잘못 열었다가
또 무슨 실수를 할 지 모르니까.
“저...다른 분들은?”
“네?”
아아 역시나.
나는 참 지지리도 말재주가 없구나.
어떻게된 상황이든 간에
여자와 단둘이 걷고 있는 상황에서
기껏 할 수 있는 말이
다른 여자들에 대한 얘기.
“아아...언니랑 수정이요? 먼저 들어갔죠.”
“아...그래요?”
“원래 맨날 같이 가는데...오늘 제가 좀 일이 있어서...셋이 같이 살거든요.”
“아...네...”
“그런 건 왜 물어요?”
“네?”
어이쿠.
역시
기분이 나빴을라나?
뭐
나는 여자들의 심리는
도통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직도 요모양 요꼴이지.
“왜요? 관심있으세요?”
“네에? 아 아뇨...그런게 아니라...”
갑자기 튀어나온 질문에
당황하여 얼버무린다.
관심있는 줄
어떻게 알았지?
내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더니
이내 푸훗
하고 소리내어 웃는다.
예쁘다.
역시 여자들은
웃는 모습이 제일 예쁘구나.
......
...단지 경림만 예외다.
그녀가 웃자
나는 몸둘바를 모르겠다.
웃는 모습이 예쁜 것도 물론이거니와
내 속마음을 읽히고 있는 것만 같아 당황스럽다.
“수정이 귀엽죠?”
“...아...네...네?”
이 여자는 무당인가?
나의 심리상태를 어찌도 이리
훤히 꿰고 있단 말인가.
아,
이제 맘놓고 야한 생각도 못하겠....
......
흠...
어쨌거나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난감한 질문이다.
화제를 조금 바꿔야지.
“아...그분은 요즘 좀...기분이 안 좋으신가??”
“네...뭐...걔는 원래 그래요. 어리버리해가지고...쿡쿡...나이만 먹었지 완전 애라니까요.”
“아...네...”
“걔가 요즘 질풍노도의 시기인가 ?? 맨날 혼자 삐졌다 풀렸다...아주 귀여워 죽겠다니깐.”
그렇구나.
거봐 역시...
이상한 애 맞네.
“아 그러고보니 재석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네? 아...저요?”
“우리랑 비슷한 나이일거 같은데.”
그녀가 또 한 번
내 이름을 정확하게 말한다.
내가 재석인 건 맞지만
그녀에게서 들으니 뭔가 이상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도
우리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를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었으므로.
“네...저...스물 네 살입니다. 팔십일년 생이요.”
“아, 그래요? 수정이랑 동갑이네?”
“네...아...그런가요?”
물론 알고 있다.
그렇지만 티를 낼 수는 없다.
알고 있다고 해서
“네 맞아염 누나. 누나보다는 한 살 어??”
이라고 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다;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 아파트 앞까지 왔다.
당초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갔다.
물론
그녀가 쉴새없이 말해준 덕택이긴 하지만.
“아...저 여기가...우리 집이에요.”
“아, 그래요?”
그녀는 우뚝 솟은 고층의 아파트를
한 번 올려다 본다.
“집에 들어가시면 뭐하세요?”
“네? 뭐...씼고...밥먹고...자야죠.”
“아, 네. 아직 아침도 안 드셨나??”
“아...네.”
원래 아침밥은 안 먹긴 하지만
들어가자마자 그냥 자빠져잔다고 말하기엔
먼가 허전한 감이 있었으므로.
“그럼 같이 밥이나 먹고 들어가요.”
“네...네?”
“저도 지금 들어가면 어차피 혼자 먹어야 되거든요. 같이 아침이나 먹어요.”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다.
10여분 전까지만 해도
얼굴만 알고 있을 뿐이었던 상대에게
이토록 쉽게 같이 밥을 먹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
“아...네...그쪽도 아직...식사 안 하셨나 ??”
“채연이요.”
“네?”
“제 이름 채연이라고...저번에 말했던 것 같은데?”
네.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출처] [펌]안마시술소 여자들 11.채연이요 |작성자 극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