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시술소 여자들 23. 미안해요

싸요20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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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다쳤어요?”

“아 아니 뭐...어쩌다보니...”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든 범인은

바로 그녀의 뒤에 있다.

만일 그렇지만 않다면


“어떤 개십호루라기가 때렸어요.”


라고 말하겠으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때의 정황을 설명하기는 좀 난감하다.




“넘어졌어요?”

“아...네 뭐...”




역시나

이 여자는 둔하다.

아무리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들

자빠질 때 주둥이부터 처박는 찌질이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저도 옛날에 넘어져서 입술 그렇게 됐거든요. 되게 아팠는데...”

“......”




...있구나.




수정과 대화를 하는 중에도

그녀의 바로 뒤에 서 있는 녀석으로부터

잠시도 신경을 끊을 수 없다.

진작부터 들어와서 가만히만 있는 것도 수상하지만

언제 또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연신 뒤쪽으로 눈길을 주는 것이 거슬리는 듯

수정은 얼굴을 돌려 뒤쪽을 쳐다본다.

수정과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적잖이 당황한 모양.

뿔테안경 속의 눈알이 좌우로 요동친다.

눈이 작은 탓에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분간하기 힘들지만

내 날카로운 관찰력을 피할 수는 없다.




“저...자 자리 하나 주세요.”

“......”

“......”




녀석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선 탓에

나도 모르게 움찔 놀라

팔을 치켜들었으나

녀석은 자리 하나를 요구한다.

진작 말하지 이새끼야.




“카드 가지고 아무 데나 앉으시면 되는데...”

“...네.”




녀석은 카운터 위에 올려진 카드 한 장을 집어

구석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최종적으로 녀석이 도달한 곳은

카운터와는 대각선 끝에 떨어진

우리 피씨방 최고의 음침한 자리.

나를 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를 피하고 싶다면

굳이 이 시간에

우리 피씨방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필름이 끊겨 어제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내 얼굴을 본 순간 기억이 떠올랐거나

내가 죽었나 확인하러 왔다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흠칫했을 수도.




“저기...”

“아...네.”




잠시 녀석에게 정신이 팔려

그녀와 대화중이라는 사실을 깜박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나

숙녀를 기다리게 한 것은 사실.

연락을 받고 나가는 것이 틀림없을진데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이유는 뭘까.




“티비 좀 봐도 돼요?”

“네...네?”

“티비...좀...”

“아...그 그러세요.”




그녀는 카운터 모퉁이를 돌아

내가 앉아 있는 안쪽으로 들어온다.

나는 부랴부랴 일어나서

그녀에게 의자를 빼준다.




“심심해서...”

“네...”




연락을 받고 나가는 것이,

‘딸기’에 가는 것이 아니었던 말인가.

그렇다면 굳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날 필요는...




그녀는 조용히

내가 빼준 의자 위에 올라앉는다.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조그맣다.

별 생각없이 보아오던 피씨방 의자가

유달리 크게 보이는 걸로 봐서.




“뭐 재미있는 거 안 해요?”

“그 글쎄요...이 시간에는...”




티비 모니터 안에서는 스타중계가 한창이다.

재방송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오래된 예전 중계를 보여주는 거라

그다지 재미는 없다.

스타를 모르는 그녀로서는 더욱 재미없을 듯.




“딴 거 보면 안 돼요?”

“돼 돼요.”




그녀의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최대한 그녀의 몸에 닿지 않으려 노력하다보니

무진장 불편한 자세가 되어 버린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카운터에

의자가 둘씩이나 나란히 있으니

활동범위는 지극히 좁다.




같은 장면이 세 번이 나올 때까지

채널을 돌려보았으나

그다지 볼만한 것이 없다.

어색한 자세가 힘들어

잠시 팔을 빼고 앞쪽으로 한발 더 들어간다.




다시 팔을 내미는 순간

은은한 파우더향이 코를 스친다.

마스크 위로 향이 스민 탓일까,

여자향수 냄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희미한 향기는

왠지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그냥 이거 볼게요.”

“네.”




채널이 멈춘 곳은

케이블의 코미디 채널.

오래된 개그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다.

김미화를 개그콘서트에서 보았던 게

언제였는지 확실친 않지만

아마도 내가 군대가기도 전이었을 듯.




모니터에서는 흘러간 개그가

쉴새없이 나온다.

오래된 프로인데다

예전에도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스치므로

전혀 재미가 없다.




수정도 또한 마찬가지로

눈은 티비화면에 고정되어 있으되

표정에서는 미소를 찾기가 힘들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차라리 스타를 보는게...




그녀가 갑자기 티비를 향해 손을 내민다.

채널을 돌리려나

생각했으나

그냥 볼륨만 살짝 줄일 뿐.

지금 보니 그녀는

굉장히 편하게 티비를 조작한다.

아까는 뭐땜에 나한테 돌려달라고 한거지?

아니 그냥 내가 돌려준거였나?




아무래도

그녀가 볼륨을 줄인 것은 실수인듯.

가뜩이나 침묵이 흐르는데

티비볼륨까지 줄었으니

말없이 나란히 앉은 남녀의 모습이

얼마나 어색할지 생각해 보라.




티비에서 나오는 사운드는

아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에

째깍째깍 시계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듯하다.

내 심장박동 소리인 것 같기도 하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그녀가 의자 위에서

작은 몸을 베베 꼬아대기 시작한다.

다소 지루한 듯,

바닥에 닿지도 않는 발을

까닥대는 모습도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이 어색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처럼 보인다.




“저...있잖아요...”

“아...네?”




결국

지루한 침묵을 깨고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된다.




“저기...”

“......”

“...대학생이에요?”

“네? 아...복학은 아직 안했는데...대학생...”

“아...”




대화는 이걸로 끝났다.

같은 질문을

일전에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채연이 물어보았던가?




생각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의미있는 질문은 아닌 듯.

단지 침묵을 깨뜨리고자

말을 걸기 위한 수단일까.

그리고 다시 침묵이 계속된다.




“저기...”

“네?”




다시 한번 입을 연 쪽도 수정이다.

하긴

저 재미없는 코미디를 계속 보느니

뭐라도 대화를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듯하다.

다만

내쪽에서 먼저 말을 걸 용기도,

또한 말재주도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




“몇시까지...일해요?”

“네? 아...여덟시...까지...”

“네...”




지난날 아침에 채연과 만났을 때

그녀에게도 같은 얘기를 해준 기억이 어렴풋하다.

수정에게 직접 해준 얘기는 아니었으니

다시 묻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녀들은 전혀

나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소리.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없단 말인가;




“끝나면 뭐해요?”

“아...집에 가서 밥먹고...씻고 쉬다가...자는데...”

“네...”

“......”

“맨날 여덟시까지 일해요?”

“네.”




역시나 그때와 같은 질문들.

이 정도의 관심은 아마도

아주 기본적인 대화의 전략인 듯.

그다지 궁금해할만한 내용도 아닌 것 같다.




“그럼 쉬는 날은 언제예요?”

“네? 쉬는 날요?”

“네.”

“아, 그런 건 따로 없는데...”

“저번에는 쉬는 날이었다면서요. 그리고 다음주...”




쉬는 날이라.

물론 계약조건에는

한 달에 두 번 쉬기로 되어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약속인데.

물론 나는 쉴 거지만;




그나저나

다음주의 술 약속을

벌써 수정에게 알렸구나.

처음 얘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단순한 인사치레인줄만 알았는데

이것이 현실이 될 줄이야.




“아 그건...원래 한달에 두 번은 쉬는데...그런데 못쉬는데...그러니까...”

“......”

“아...그러니까...쉬는 날이 정해진 건 아니고...제가 일 있으면...”




이번에도 나는 횡설수설.

일곱 살 때 웅변학원 대신에

피아노학원을 보냈던 울 엄마가

이토록 원망스러울 줄이야.




“그럼 다음에는 또 언제 쉴 거예요?”

“네?”

“다음 주 말고. 그 다음에 또 쉴 때.”

“글쎄...아직 생각은 안 해봤는데...”

“......”

“......”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대화는 중단.

또 한번의 침묵이 이어질 것이다.

채연의 경우에는

술 약속을 위해 나의 쉬는 날을 물어본 것이지만

지금 수정에게 있어

내가 쉬는 날이 궁금한 이유는 무엇인지.




“저기...있잖아요...”

“...네...”




이번에도 역시

수정이 먼저 말문을 연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있는 모양.




“저...음...그러니까...”

“......”

“음...만약에요...”

“네...”

“만약에...다음에 쉬면요...”

“......”

“다음에...쉬는 날에...”




그녀는 무언가 망설이고 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까

귀가 쫑긋 세워지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머리 위로는 그림자가 어둠을...




......

그림자라니?




“저...저기요.”

“네?”




카운터 너머에 서 있는 것은

다름아닌 어제 그놈, 제동이다.

게임이나 하러 온 줄 알았더니

난데없이 다시 눈앞에 나타나서는

그녀와의 대화를 끊고 끼어든다.




“저...그게...어제는 제가 술이 취해서...”

“......”

“제 제가 좀...술버릇이 나빠서...미 미안해요.”




미안하다고?

이새끼 사람을 우주괴물로 만들어 놓고...

어차피 나에게 보복할 용기 따윈 없으니

안 미안해도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나저나

굳이 그 얘기를 이런 중요한 순간에 하다니

내 좃;만한 똘똘이만큼이나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새끼.




“저...계 계산...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생각해보니

아까 들어와서 망설인 것은

나에게 사과할 용기가 안나서였나.

그러다 수정이 끼어들자

얼떨결에 게임을 하러 온 것인양 위장했던 것이고.

이새끼,

나와 같은 냄새가 난다;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을 내어주니

녀석은 도망치듯 후다닥 나가버린다.

나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쳤을 때

저것은 조카 미안하거나 무안할 때 하는 짓.

진심으로 미안하긴 한가 보군;




녀석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려 보니

수정은 자리에 없다.

어느새 그녀는 카운터를 빠져나가고 있는 중.

아니,

아까 하던 말은 계속 해야지...




다시 카운터 앞으로 와서 선 그녀는

말없이 조용히 나를 쳐다본다.

조금 전에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

그리고는

그녀의 작은 입이 조용히 열린다.




“...저...이제 안 와요.”

“네?”

“저...그러니까...음...내일 아니 오늘 밤부터는...여기 안 와요.”

“아...”




이게 무슨 소리지?

이제 안 오다니.

며칠 만에 와놓고는

또 안 온다고?




“...미안해요.”




짤막한 이 한마디를 내뱉고는

제동이 그랬던 것처럼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간다.




미안하다니.

뭐가 미안한데...

[출처] [펌] 안마시술소 여자들 23. 미안해요 |작성자 극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