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시술소 여자들 29. 우리는요 [펌]

싸요20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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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시가 되자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평소같으면 지각이라는 생각에




허겁지겁 뛰어가겠으나




오늘은 쉬는 날이므로




여유있게 걷는다.













어제 채연이 찾아왔던 시간이




열시 삼십분경.




오늘도 같은 시간에 온다고 했으니




미리 가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특별히 챙길 것은 없다.




그녀에게 돌려주어야 할 연고는




지난 한달 반 동안




언제나 가방 속에 있었으므로.













가는 길에 건널목 한가운데에서




경림과 제동을 만나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추운 날씨에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이




퍽이나 다정스러워 보인다.




언제부터 저런 사이가 됐는지.













“오늘 쉰다면서. 어디 가?”




“애인 만나러.”




“지랄한다.”













가게 건물 앞에 도착한 시간이




열시 십분.




아직 여유있다고 생각하며




건물 안쪽으로 들어선다.




문 앞에서 기다리기엔 너무 춥다.













“어? 재석씨?”




“어어...”













담배를 꺼내 물려는데




별안간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엘리베이터문이 열려 있는 걸로 봐서




벌써 가게에 올라갔다 허탕을 친 모양.













“아, 뭐예요. 오늘 쉬는 날이라면서요.”




“아...네...그게...”




“오늘 쉰다고 진작 말했으면 여기까지 안 와도 됐잖아요.”




“미 미안해요, 제가 깜빡...”













깜빡...




하고 말을 안했을 리가 없지.




쉬는 날이기 때문에




일부러 오늘로 택한 것.













“알았으면 딴 데서 만나도 되는 건데.”




“아...그러게요...”













내 생각이 짧았었군;




굳이 여기서 만났어야할 필요는...













“여기...약...”




“......”













가방 앞주머니에 손을 넣어




연고를 꺼내 건네주자




말없이 받아들고는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외투 주머니 속에 쏙 넣어버린다.













“이거 땜에 쉬는 날인데 나온 거예요?”




“아니...뭐...어차피 할 일도 없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집까지 바래다 줘요.”




“네?”




“할 일도 없다면서요.”













한 번 더 만날 생각으로




오늘 약을 주겠다고는 했었으나




그 후의 일까지는 미처 생각해놓지 못했다.




바래다 달라니.




잘된 일인가.













채연이 먼저 돌아서서 걷는다.




잽싸게 따라가 옆에 나란히 선다.













“잠깐만요.”




“......”













편의점이 보이자




채연은 안으로 재빨리 들어간다.




잠시 후에 손에 들고 나온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캔커피 두 개.













“자요.”




“네, 잘 마실게요.”




“커피 좋아하시는 거 같길래.”




“아...네, 좋아해요.”













커피라면 사족을 못쓴다.




야간알바를 하는 내내




하루에 다섯 잔 이상을 마셔댔으니.




그 모습을 매일 봤었던 모양.




오랜만에 나타나서도 그걸 기억한다는게




꽤나 신기하다.













“오늘 쉰다는거 깜빡 안 했었으면 언제 줄려고 했었어요?”




“아...글쎄요...”













깜빡한 적이 없으니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의도적인 일이었으니.













“오늘 안 받았으면 평생 못 받을 뻔 했잖아요.”




“네?”




“우리 내일 이사가거든요.”




“......”













이사간다니...




오늘이 아니었다면




다시는 못 봤을 거란 소리인가.













“어디로 가는지 안 궁금해요?”




“어디로 가는데요?”




“저어기, 뉴질랜드로.”




“......”













뉴질랜드라니




그건 이사가 아니라 이민이잖아;




이거야 원 정말인지 장난인지.




내가 심드렁하게 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제가 뻥치는 거 같아요?”




“아, 아뇨.”




“뻥인데.”




“네;”




“거기까지 멀어서 어떻게 가요. 비행기표 끊어줄 거예요?”













뻥친 건 그쪽이면서




나한테 정색을 하는 건 뭔지.













“서울 갈 거예요.”




“서울이요?”




“네, 서울. 재석씨 서울 가 봤어요?”













당연하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에만 살았는데




이 나라의 수도인 서울을 못 가봤을리가 있나.













“그럼요. 가 봤죠.”




“정말요? 거기 좋아요? 언제 가 봤어요?”




“롯데월드...초등학교 때...수학여행...”




“......”













솔직히 말하면




대학교 다닐 때도




두어 번 술먹으러 가긴 했다.













“언니는 고향에 내려갈 거구요.”




“네.”




“수정이는 공부할 거래요.”













아아...공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데;




수정은 공부가 하고 싶었던 건가.













“걔가 대학 못 간 게 한인가 ?? 몇 년 만에 공부하는 거라 쉽진 않겠지만...”




“네...”




“의외로 똑똑한 애라구요. 집안 형편이 안 좋았을 뿐이지.”




“......”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사정은 있는 거겠지.




그녀들이 매일같이 피씨방에 왔던 이유도.













“나는요.”




“......”




“서울 가서 돈 벌 거예요.”




“...네.”




“아무래도 서울이 일자리가 많겠죠? 놀기도 좋고.”




“그렇겠죠.”













그녀가 말하는 일자리가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슨 일이건 서울에 많겠지.













두 번째의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건너편으로 우리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재석씨는 꿈이 뭐예요?”




“네?”




“꿈이요, 꿈.”













입을 다문 채로




건널목을 다 건너가자




채연이 물어온다.




꿈이라니...




굉장히 어색한 단어이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머리가 어느 정도 커진 후부터




누구로부터 꿈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뭐해먹고 살거냐.’, ‘무슨 일 할거냐.’라는 말들을




대신 들어왔을 뿐.













꿈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초딩 저학년일 때 짝지와







“얘, 재석아. 너의 꿈은 무엇이니?”




“응, 영희야. 나는 훌륭한 대통령이 될 테야.”




“어머, 재석아. 너의 꿈은 정말 조낸 간지나는구나.”







라고 한다거나







오래된 청춘영화에서







“아자씨, 아자씨는 꿈이 모오야?”




“하핫, 영자. 아저씨는 말이지.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게 꿈이란다.”




“오모! 아자씨 너무 낭만적이야!”







따위의 대사에서나 나오는 소리.





이 나이에 꿈은 무슨.




슬금슬금 닭살이 돋는다.




이 여자 유치한 면이 있구나.





“꿈이 뭐냐구요.”




“아...글쎄요...그냥 뭐...대충 남한테 안 꿀리게 살면...”




“꿈이 크시네요.”




“네?”





이런 이런;




남한테 안 꿀리게 사는게




나한테는 그렇게나 큰 꿈이란 말인가;





“나는요.”




“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평범하게요?”




“네. 평범한 직장 다니다가 평범한 남자 만나서 애도 하나 낳고...




돈모으면 내 집도 사고...애들 학교도 보내고...가족들끼리 가끔 외식도 하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만을 늘어놓는다.




나랑 별 차이도 없잖아.




그렇게 따지면 니 꿈도 큰 거야.





“저도 꿈이 크죠?”




“아, 아뇨.”




“커요.”




“네...뭐.”





그게 뭐가 그리 큰 꿈인지.




남한테 안 꿀리게 사는 거나




그냥 평범하게 사는 거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최소한




조낸 간지나는 대통령이 된다거나




저 하늘의 별이 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인데.




“쉬울 것 같죠?”




“네? 아 아니...”




“그거 그렇게 안 쉬워요.”




내 속마음을 읽고 있는 건가;




그래도 역시 쉬운 일 같은데.





“그래도 역시 쉬운 일 같죠?”




“아 아닌데요;”




“그거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네...”




“특히 나같은 애들은요.”




“......”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자신이 스스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평범해요.”




“네?”




“채연씨도...평범한 사람이에요.”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와버렸다.




특별히 위로해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뭐가요?”




“네?”




“제가 어디가 그렇게 평범해요?”




“아...그러니까 그게...”





세 번째의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선 채




다시 나한테 물어온다.





“그러니까 그냥...얼굴도 그렇게 안 예쁘...평범하고...




또 가슴도...아니 이건 아니고...그냥...다 평범한데...”





말이 더듬어지면서




추운 날씨에 식은땀이 흐른다.




평범함을 증명하는 일이 이토록 어??일이었던가.





곧 신호가 바뀌고




입을 다문 채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다 건널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평범한 얼굴이라고 해서 삐졌나;




횡단보도를 다 건너자




다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나를 마주본 채로 싱긋이 웃고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뭐하는 애들인 줄 알아요?”




“...몰라요.”




어차피 몰라도 된다고 말할 테지.




한두 번 당해봤어야지.




“우리는요.”




“아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답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려한다.




당황하여




황급히 제지해보려 했으나




이미 늦어 버렸다.



“몸 파는 애들이에요.”



듣고 싶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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