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건] 죽첨정 ‘단두 유아 ' 사건

하하네가족201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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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6월7일 경성제대 의학부에서는 머리 없는 아이 몸통과 몸통 없는 아이 머리를 맞춰보는 역사적인 부검이 실시된다. 부검장에 들어가는 수사 수뇌부를 담은 ‘동아일보’ 1933년 6월8일자 사진.

 

6월6일 새벽, 장대 같은 비가 퍼붓고 있었다. 노무라 형사과장은 20여 명의 특별수사대원을 염리공동묘지 산꼭대기에 배치했다. 목표는 산 아래 아현리 움집촌이었다. 특별수사대원은 산 정상에서 세 방면으로 일시에 달려들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10여 가족 남녀 30여 명을 검거했다. 노무라 형사과장은 이들을 도경찰부에 가두고 수사본부를 서대문경찰서에서 도경찰부로 이전했다.

일단 용의자는 검거했고, 다음은 몸통 잃은 머리의 주인이 한기옥이 맞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아이 머리와 한기옥의 몸통을 맞춰보니 크기는 거의 일치했다. 그러나 흉측하게 손상된 아이 머리를 본 한창우가 자기 딸의 얼굴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6월7일, 사건 발생 23일째. 온 국민의 관심 속에 경성제대 의학부에서 사체의 부검이 실시되었다. 집도는 구니후사 교수가 맡았고, 요다 검사, 노무라 형사과장, 기무라 서장 등 수사 수뇌부가 입회했다. 사안의 중대성 때문인지 통상 한 시간이면 끝나는 부검이 세 시간이나 이어졌다. 부검 결과 예상대로 머리와 몸통은 동일인의 것임이 판명됐다.

피해자가 한기옥임이 밝혀지자 범인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았다. ‘용의주도한’ 경찰은 머리 주인이 밝혀지기도 전, 새벽 기습작전을 통해 용의선상에 오를 만한 인물 전원을 체포해두었기 때문이다. 남은 일이라곤 30명의 용의자 중 범인을 가려내 죄 없는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범인은 한창우의 집 건넛방에 사는 배구석이었다. 그는 검거된 지 사흘 만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배구석의 자백이 있은 후 경찰은 죽첨정으로 출동하여 공범 윤명구를 체포했다. 이로써 백주 경성 한복판에 나뒹군 아이 머리를 둘러싼 대소동은 23일 만에 종결됐다.

배구석과 한창우는 충북 음성에서 농사를 짓다가 4년 전 상경한 이래, 아현리 빈민가에 집을 얻어 방 한 칸씩 쓰고 있었다. 배구석은 석탄상점에서 일하는 가난하지만 선량한 노동자였다. 배구석의 지인인 엿장수 윤명구에게는 간질병을 앓는 아들이 있었다.

5월11일 한창우의 딸 한기옥이 죽자, 윤명구는 배구석에게 한기옥의 무덤을 파서 뇌수를 꺼내달라고 부탁한다. 배구석은 죽은 아이 뇌수로 산 아이 병을 낫게 해달라는 윤명구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배구석은 5월15일 밤 한기옥의 무덤을 파헤쳐 머리를 베고 뇌수를 꺼내 윤명구에게 주고 그 대가로 2원을 받는다.

이 사건의 주인공 윤명구는 정주 출생으로 어려서는 한학을 공부하다가 가세가 빈한하여 15~6세 때부터 농사를 지었다. 그 후 농사에도 실패하고 시골에서 이 장사 저 장사를 했으나 그 역시 여의치 못하므로 작년 8월에 남부여대하여 서올로 올라와 엿장사 행상을 하여 그날그날 살았다. 그와 같은 생활을 하여 오는 동안에 자식을 여럿 나았으나 현재에 데리고 있기는 큰아들 천구, 둘째아들 정구, 셋째아들 진구(가명-편집자)인데, 셋째아들 진구는 세 살 되던 때부터 간질병이 있어서 항상 그것을 염려하고 여러 가지 약도 써보았으나 효험이 없으므로 전하는 미신에 의하여 사람의 뇌수를 먹으면 낫는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구하다가 이와 같은 언어도단의 범행을 한 것이라 한다. 윤명구의 품행은 얌전하여 동료들 사이에도 칭찬을 받아왔으며 술 한 모금 마시지 않는다 한다. (‘동아일보’ 1933년 6월8일자)

윤명구는 자식의 병을 고치려는 선한 마음에서 남의 자식 사체를 훼손하는 끔찍한 죄를 범했다. 그러나 한기옥의 뇌수를 먹은 후 윤진구의 간질 증세는 악화될 뿐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6월8일은 여러 사람에게 뜻 깊은 날이었다. 기무라 서장은 오랜만에 활짝 웃으며 기자들을 만났고, 23일 동안 휴일도 없이 칼잠을 자며 근무했던 4000여 경찰은 오랜만에 두다리 뻗고 잠들 수 있었다. 죽첨정 윤명구의 집에는 철모르는 정구와 진구가 아비도, 어미도, 형도 없이 하루를 보냈다. 뻐꾸기와 무당 가족은 열흘 만에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을 나갔다.